005
* * *
많은 양의 훈련을 한 다음 날 아침.
신재욱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으어억!”
온몸의 근육이 쑤셨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끄으…… 자기 전에 근육을 최대한 풀어줬는데도 이러네.”
신재욱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스트레칭을 했다.
근육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심했지만 이겨내야 했다.
몸을 개조하려면 앞으로 더한 고통도 겪게 될 테니까.
“금방 익숙해질 거야.”
거실로 나간 신재욱은 식탁에 앉았다.
여전히 어색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이미 식탁에 앉아있었다.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소년의 부모님이었다.
‘이것도 익숙해지겠지.’
익숙해져야만 했다.
하루빨리 저들을 진짜 부모님처럼 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죄책감이 줄어들 것 같았으니까.
“식사 맛있게 하세요.”
식사 시간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소년의 부모님은 전날에 기절했던 것을 걱정하셨고.
관련된 질문들을 쏟아내셨다.
때문에, 신재욱은 식은땀을 흘리며 답변해야 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에 간다는 명분으로 빠르게 집을 뛰쳐나온 지금.
신재욱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차라리 훈련하는 게 훨씬 편한 것 같아.”
죄책감을 주는 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힘들었다.
저분들을 한층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조금 빨리 왔나?”
학교에 도착한 신재욱이 교실을 둘러봤다.
책상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수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등교 시간까지는 아직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오늘 배울 거나 확인해볼까?”
신재욱은 책상에 앉아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교과서를 펼쳤다.
과거, 그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릴 적 한국에 있을 때는 오로지 뛰어노는 것만 좋아했었다.
그러나 영국에 살면서부터는 공부를 했다.
그 나라의 문화나 언어 같은 것.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공부였다.
그래서일까?
공부하는 건 신재욱에게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축구부 선수들도 4교시까지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대한중학교의 교칙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재밌기까지 했다.
‘오… 이런 것도 있구나? 신기하네.’
다만, 수업을 따라가는 건 신재욱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말하고 듣는 것만 잘했으니까.
어릴 때부터 영국에서 살았던 그였기에, 한국의 문화나 중학교 학습 과정은 어렵게 느껴졌다.
‘한국의 중학생들은 벌써 이런 걸 배워? 무슨 천재들만 보여 있나?’
물론 어려운 과목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신재욱에게 아주 쉽게 느껴지는 과목도 존재했다.
‘드디어 영어 시간이네.’
영어.
영국에서 축구선수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공부했던 언어였다.
오랜 시간 영국에 살고 공부한 결과, 지금의 신재욱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
교실에 들어온 영어 선생이 학생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크게 한숨을 내쉰 그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들 안 앉아?!”
학생들의 동작은 빨랐다.
그리고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한 학생들과 권위적인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영어 선생의 모습이.
‘선생이 평소에도 자주 화를 내나 보네.’
거기까지였다.
신재욱은 선생이 화가 나든 말든 관심을 끊었다.
그저 교과서를 훑으며 수업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야, 축구부!”
“……?”
영어 선생이 신재욱을 지목했다.
“대답 안 해? 어디 어른이 부르는데 버릇없이 쳐다보고만 있어?”
신경질적인 말.
신재욱은 갑작스레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긴 인마, 경고하려는 거지. 야 축구부! 너 만약에 오늘도 자다가 걸리면 오늘이 정말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알겠냐?”
짧은 대화를 나눈 지금에서야 신재욱은 깨달았다.
영어 선생이 자신에게 왜 저러는지.
‘신재욱이… 평소에 잠이 많았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자라나는 청소년이 졸릴 수도 있지. 근데 아무리 졸려도 저 지랄 맞은 선생 시간엔 조금 자제하지 그랬니. 저기 저 눈빛 좀 봐. 나를 아주 잡아먹으려고 하잖아.’
오해를 풀어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신재욱이 영어 선생을 보며 대답했다.
“잘 생각 없습니다.”
진심이었다.
가장 자신 있기에 기다렸던 영어 시간이었다.
잘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영어 선생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겠지. 그래, 기분이다. 이 하늘 같은 선생님께서 네가 잠들지 않게 특별히 도와주도록 하마. 당장 일어나서 뒤로 나가. 오늘 너는 뒤에 서서 수업 들어. 어차피 졸 게 뻔하니까 그게 낫겠지? 자, 다들 잘 들어! 졸리면 졸지 말고 알아서 뒤로 나가서 들어.”
신재욱이 헛웃음을 흘렸다.
잘 생각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서서 수업을 들으라니.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을 듣는 건 신재욱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잘 생각이 없습니다. 영어는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열심히 들을 겁니다. 그러니 앉아서 듣겠습니다.”
신재욱의 말이 끝난 순간, 교실 안의 분위기가 변했다.
영어 선생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었고.
수군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신재욱 쟤 왜 저래? 맨날 잠만 자던 애가 갑자기 웬 영어 수업을 듣겠다는 거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하필 대한중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영어한테 덤비고 그러냐?”
“영어 쌤한테 잘못 걸리면 바로 트집잡혀서 빠따 맞을 텐데… 그리고 재욱이 쟤 영어도 못 하잖아?”
“영어를 잘할 수가 없지! 맨날 자는데 어떻게 잘하겠어? 그나저나 영어 쌤 빡치면 바로 영어 관련 질문 던진 다음에 대답 못 하면 바로 때릴 텐데…….”
대한중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무서워하는 영어 선생.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신재욱을 노려봤다.
“어쭈? 축구부, 너 지금 반항하는 거냐?”
영어 선생의 눈빛은 강렬했다.
어지간한 학생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그러나 상대는 신재욱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에게 저 정도 눈빛은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영어 선생님, 반항이 아니라 제 생각을 말씀드린 겁니다.”
“허허, 얘 봐라? 공부도 못하는 게 뭔 생각을 한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다른 공부는 몰라도, 영어는 자신 있습니다.”
“뭐? 으하핫! 얘들아! 얘가 지금 뭐라는 거냐? 맨날 잠이나 퍼 자던 놈이 영어는 무슨……!”
그때였다.
영어 선생과 반의 모든 학생이 보는 앞에서.
신재욱이 유창한 영어를 뱉어대기 시작했다.
* * *
원어민 수준의 영어로 내뱉은 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영어를 좋아하고, 실력에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영어 시간에 절대 안 잘 겁니다. 시험 성적도 괜찮을 겁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한 번만 믿어주시죠.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영어를 가르치시는 분이니 제 말을 전부 알아들으셨겠죠?”
“……어어?”
영어 선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아주 조금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버리니 말문이 막혀버렸다.
매번 잠만 퍼 자던 축구부 학생이 갑자기 유창한 영어로 말한다?
어떤 영어 선생이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 뭐냐?”
“신재욱입니다.”
신재욱은 여전히 영어로 말했고.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영어 선생은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너무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그 모습은 본 신재욱은 피식 웃어버렸다.
동시에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또다시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어 선생님.”
“……마, 말도 안 돼!”
영어 선생은 이제 말까지 더듬으며 경악했다.
이후, 그는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신재욱에게 각종 영어 관련 질문을 쏟아냈다.
어떻게든 신재욱을 찍어누르려고 애썼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영어 선생보다 신재욱의 실력이 더 뛰어났으니까.
딩―동―댕―동!
4교시였던 영어 시간이 끝났다.
자존심을 잔뜩 구긴 영어 선생은 도망가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평소라면 점심을 먹기 위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을 학생들이 교실에 남아있었다.
이들 모두 점심을 먹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신재욱에게만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재욱아! 우와! 너 어떻게 된 거야? 영어를 왜 이렇게 잘해?”
“유학이라도 갔다 왔어? 발음이 장난 아니던데? 마이 눼~임 이즈… 그리고 또 뭐라고 했더라? 하여튼 진짜 원어민인 줄 알았잖아!”
“다들 영어 쌤 얼굴 빨개진 거 봤지? 완전 통쾌했다니까? 재욱아 너 그동안 잠만 잤던 게 수업이 시시해서 그랬던 거였구나?”
“난 재욱이가 이렇게 멋있는 애인지 처음 알았잖아!”
신재욱의 주변을 둘러싼 채로 질문을 쏟아내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
그들을 귀엽다는 표정으로 보던 신재욱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우선 밥부터 먹으러 가자.”
대한중학교 급식의 퀄리티는 뛰어난 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왔던 신재욱이 깜짝 놀랐을 정도로.
‘밥 하나는 최고네. 영국의 학교에서도 이 정도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밥을 먹는 신재욱의 표정은 진지했다.
주변에서 관심을 보이며 떠들어대는 학생들도 깔끔하게 무시했다.
당연했다.
그에게 있어서 식사 시간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이건 단백질이니까 이따가 더 받아먹어야겠어. 이건 탄수화물이니까 적당히…….’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으니까.
‘몸이 너무 비실비실해. 근육을 만들려면 당분간 두 그릇씩은 더 먹어야겠어.’
식사를 마친 뒤.
신재욱은 곧바로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점심시간이기에 휴식을 취해도 됐지만, 빨리 훈련을 시작해야 했다.
“재능이 없으면 훈련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
“스트레칭부터 시작해볼까?”
신재욱은 늘 그래왔듯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할 때면 스트레칭부터 하는 것.
그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습관이었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며 신재욱은 스트레칭을 마쳤다.
20분 정도가 지난 지금, 몸의 근육들은 거친 운동을 할 준비가 끝났다.
그때였다.
“오?”
신재욱의 눈이 커졌다.
허공에 떠오른 새로운 내용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유연성이 좋아집니다!]
유연성이 좋아졌다는 메시지.
축구선수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신재욱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유연성이 좋아지는 것도 이렇게 메시지로 나오는구나. 이런 게 눈에 보이니까 기분이 좋아지네.”
환생을 한 이후,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생겼다.
바뀐 몸, 바뀐 환경, 그리고 지금처럼 허공에 떠오르는 반투명한 메시지들까지.
전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과거의 신재욱이었다면 멘탈이 깨져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변화를 완전히 인정하기로 했고.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수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해야지.”
그것들을 철저히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신재욱은 상태창을 눈앞에 소환했다.
[이름] 신재욱
[나이] 14(만 12세)
[키] 163cm
[체력] 52 [슈팅] 39 [패스] 44 [속도] 57
[민첩] 41 [대인방어] 28 [태클] 24 [몸싸움] 35
[탈압박] 33 [드리블] 41 [개인기] 38 [헤딩] 41
[특성] 뛰어난 집중력(D)
이어서.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지금까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특성’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