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 *
― 2028년 발롱도르 수상자는…… ‘마이클 신’입니다!
매년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그것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온 남자는 놀랍게도 동양인이었다.
마이클이라는 이름과 ‘신’이라는 성을 가진 동양인.
그러나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 3년 연속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현재 기분이 어떠신가요?
마이클 신은 동양인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남자였고, 이미 두 번이나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남자였으니까.
흔히 3대 리그라고 불리는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에서 모두 득점왕을 기록한 최고의 스트라이커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마이클 신이 마이크를 잡았다.
“기분이 어떠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기쁘지가 않습니다.”
진심이었다.
3대 리그 득점왕!
영국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
연속 3회 발롱도르 수상!
이것들을 이뤄내면 행복해질 거라고 항상 믿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
여전히 하루에 수십 번씩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불어 마지막에 남기신 유언까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이클…… 아니, 재욱아…… 엄마가 미안해…… 한국에서 태어난 너를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으로 살게 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도 네가 한국인으로 살기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단다…….’
신재욱.
마이클 신으로 불리기 전에 가졌던 이름.
남편을 일찍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신 어머니는 더 나은 살길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의 이민을 선택하셨다.
어릴 적의 마이클 신은 서럽게 울며 반대했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싫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아들을 한국계 영국인으로 살게 한 것을 늘 미안해하셨다.
한국의 국가대표 유니폼이 아닌, 영국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고.
영국인으로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영국인으로서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것을 늘 슬퍼하셨다.
그러나.
‘어머니, 저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아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한 당신을 어떻게 원망하겠습니까?’
마이클 신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자책할 뿐이었다.
‘죄송해요… 만약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전 한국으로 재귀화를 해서라도 국적을 회복했을 거예요.’
아들이 한국인으로 살길 바라셨지만, 미안한 마음에 말하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마이클 신은 수상 소감을 생략한 채 무대를 벗어났다.
이후, 그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급히 예약한 비행기에 올라탔다.
한국행 비행기였다.
이젠 친한 사람도 없는 나라였지만, 그래도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고향이었으니까.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나라였으니까.
‘오랜만에 가는 한국이네.’
영국에 이민 온 이후, 한국엔 축구경기 스케줄을 위해서만 몇 번 갔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느낌이 좋았다.
음식도 맛있었고, 문화도 잘 맞았다.
그래서일까?
“……!”
마이클 신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사고가 날 거라는 것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으로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을.
001
* * *
쿠웅!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비행기에 있던 승객들이 당황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뭐야!”
마이클 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수도 없이 비행기를 타왔지만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이거… 진짜야?!”
그라운드 위에선 침착한 플레이로 상대를 요리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다른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젠장!”
마이클 신의 눈이 의자 주변을 훑었다.
안전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의미 없는 움직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퍼어엉!
폭음이었다.
“미친!”
마이클 신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행기 안의 작은 창문.
그곳엔 보였다.
불이 붙은 채 떨어져 나가는 비행기의 한쪽 날개가.
또한, 들렸다.
― ……모든 승객 여러분…… 신께 기도를…….
비행기 기장일 것이 분명한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한국행 비행기가 아니라 지옥행 비행기였어?”
으하하!
마이클 신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어서 나온 웃음이었다.
웃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체념했기 때문일까?
불안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어머니, 아무래도 조금 더 빨리 찾아뵐 것 같네요.”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클 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직 귀만을 연 채,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그의 귀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콰아앙!
* * *
번쩍!
마이클 신이 눈을 떴다.
그의 온몸엔 소름이 돋아있었다.
“……꿈이었다고?”
전부 생생했다.
거대한 폭음과 굉음. 절망감. 이후에 느꼈던 고통까지도.
“말도 안 돼…… 그건 꿈이 아니었어!”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이상했다.
눈을 뜬 장소가 침대인 것은 맞았지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장소였다.
“이 침대, 내 침대가 아니잖아?!”
터엉!
마이클 신이 몸을 튕겼다.
너무 놀라버렸기에 나온 행동.
과거의 마이클 신의 탄력적인 몸이었다면 단번에 침대 위에 우뚝 섰을 것이다.
그러나.
티잉!
“……?”
마이클 신의 몸은 여전히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히 있어야 할 탄력이 없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힘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이거…… 왜 이래?”
이럴 리가 없잖아……?
마이클 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몸을 튕겼다.
그러나.
팅!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마이클 신은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상체조차 제대로 일으키지 못했다.
상상도 못 했던 형편없는 몸 상태였다.
마이클 신은 결국 평범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당황한 얼굴로 방안에 놓인 전신거울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 비친 건.
“엌……!”
마이클 신이 전혀 모르는 소년의 몸이었다.
휘청!
순간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마이클 신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서운 영화를 봤을 때도 이 정도로 놀라진 않았었는데…….”
마이클 신은 공포영화를 못 보는 편이었다.
특히 처음 봤을 땐 반쯤은 기절한 상태가 되어버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놀라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오…….”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뒤, 마이클 신은 방문을 열었다.
그 즉시 보이는.
“일어났니?”
뉴스를 보고 있는 이름 모를 아저씨와.
“재욱아~! 얼른 씻어.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앞치마를 두른 채로 손짓을 하는, 역시나 이름 모를 아주머니의 모습.
‘재욱…… 이라고? 학교에 가라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고.
마이클 신의 눈앞은 하얘졌다.
“오… 마이… 갓……!”
* * *
커다란 충격으로 인해서 기절한 이후.
마이클 신은 정신을 차린 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결과 그에게 벌어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눈을 뜨다니.”
환생.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는 단어였고.
마이클 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기도 했다.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한 현실이었으니까.
게다가 놀라운 일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름이 신재욱…….”
신재욱이라는 이름.
익숙한 이름이었다.
마이클 신의 한국 이름이었으니까.
영국인이 되기 전, 한국인이었을 때의 이름.
어머니가 자주 불러주셨던 그 이름, 신재욱.
때문에, 자신이 몸을 빼앗은 이 소년의 이름 역시 신재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연도는 2008년…… 내가 죽었을 때보다 무려 20년 전이고, 이 몸뚱이는 1995년 9월 3일생…… 이 친구, 출생연도와 생일까지 나랑 똑같아. 게다가 축구도 하고 있고. 하하! 미치겠다 정말.”
새로운 몸으로 눈을 뜬 세상이 자신이 살던 때보다 20년이나 과거였고, 소년의 출생연도와 생일까지 자신과 똑같고, 심지어 축구까지 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놀라는 것을 넘어 소름이 돋았다.
“정리해보자.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살던 때보다 20년 전인 2008년이고, 나는 나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모두 같은 한국인 소년의 몸으로 눈을 뜬 거야.”
하아…!
신재욱이 되어버린 마이클 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 파악을 끝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생을 한 현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더불어 인터넷에 아무리 검색해봐도 ‘축구선수 마이클 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세상에서 ‘나’만 없어질 수가 있냐고. 아니지,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살아계실지도 모르잖아?”
마이클 신의 눈이 빛났다.
어쩌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볼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러나.
“어머니도…… 없어.”
이 세상엔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 시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도 없어졌고, 사용하시던 전화번호로 전화도 걸어봤지만 역시나 없는 번호라는 음성만 반복됐다.
암울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스윽!
마이클 신은 덥수룩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어쩔 수 있나…… 천천히 받아들여 봐야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재욱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물론 아무렇게나 살 생각은 없었다.
“나쁘진 않잖아? 어차피 한국인으로 살고 싶었고.”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에서 이제는 14세 소년이 되어버린 신재욱이 눈을 빛내며 다짐했다.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것을 이뤄드릴 기회가 온 거니까.”
한국의 국가대표가 되고.
한국인으로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어보겠다고.
“해보자.”
* * *
2008년의 중학교 1학년.
열심히 피시방에 다니고 만화책을 보러 다닐 열네 살의 나이.
하지만 대한중학교 축구부 학생들에게는 아주 먼 얘기였다.
“더 빨리 뛰어!”
“집중해!”
“거기! 뭐 하냐? 움직여!”
대한중학교.
축구로 유명한 학교다.
그냥 유명한 것도 아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학교다.
당연히 훈련량도 대단했다.
비록 운동선수가 무식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4교시까지는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신재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체력훈련의 중요성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국식 체력훈련은 어색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영국의 훈련과는 너무나도 다른 스타일이었다.
좋게 말하면 투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한 스타일의 훈련법.
그래도 금방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가 누구던가!
3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세계 최고의 선수 마이클 신이지 않은가!
그러나 마이클 신은 몰랐다.
“이 몸뚱이…… 너무 쓰레기잖아?”
신재욱이라는 이름을 지닌 14세 소년의 몸이 축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허억……! 헉…! 체력도 안 좋고, 운동신경도 별로야. 심지어 몸도 뻣뻣하고 달리기도 느려.”
총체적 난국이었다.
축구에 필요한 능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이 정도면 축구뿐만 아니라 운동 자체에 소질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치겠네.”
신재욱.
마이클 신이었던 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니, 도대체 중학교 축구부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대한중학교 축구부에 이 재능 없는 소년이 들어왔다는 것이.
그래서 신재욱은 감독에게 질문했다.
“감독님, 제가 어떻게 대한중학교 축구부에 들어왔죠?”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한 질문.
이에 감독은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이윽고 진지한 얼굴로 답을 줬다.
“너를 왜 받아줬냐고? 간단해. 눈빛이 좋았거든.”
“……눈빛이 좋았군요. 그렇구나.”
신재욱은 감독의 말이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눈빛이 좋아서 축구부에 넣어줬다? 이 재능이라곤 조금도 없는 녀석을?
‘혹시 이 소년의 부모님이 고위직에 계시나?’
강력한 빽이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신재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두 분 다 평범한 회사원인 것 같았어.’
부모님이라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집안 곳곳을 훑어본 결과, 전혀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집이었다.
빽이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는 건 본인의 능력으로 축구부에 들어왔다는 건데. 거참, 이해할 수가 없네. 한국의 테스트가 영국과 많이 다른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신재욱은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답도 안 나오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감독이 마음에 들어서 뽑았다는데 어쩌겠어.’
게다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이 몸뚱이를 도대체 어떻게 하지?”
신재욱은 환생 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배우고 싶은 기술은 빠르게 익힐 수 있었고, 신체 능력은 아주 어릴 때부터 뛰어났다.
축구에 적합한 신체와 재능을 지녔었고, 노력까지 더해서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됐었다.
그래서 더 막막했다.
재능이라곤 조금도 없는 몸뚱이를 가지고 어떻게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말인가!
“이건 노력으로 될 수준이 아니야.”
최고의 선수였기에, 수준을 파악하는 능력도 대단한 그였다.
현재 이 몸으로는 최고는커녕 프로로 데뷔하는 것도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새로운 삶을 얻었는데, 하필이면 축구 재능이 조금도 없는 몸이라니. 운도 더럽게 없네.”
후우!
신재욱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일단 뛰자.’
과거, 마이클 신이었을 시절에도 머리가 복잡할 때면 무작정 많이 뛰었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뛰면, 머릿속이 하얘졌으니까.
차라리 그 상태가 더 좋았으니까.
“허억! 허억……!”
얼마나 뛰었을까?
체력이 바닥난 신재욱이 대자로 뻗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이가 없네.”
몸 상태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안 좋았다.
별로 많이 뛴 것 같지도 않은데 머리가 핑핑 돌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심지어 헛것이 보일 정도였다.
“몸뚱이가 얼마나 쓰레기면 이런 이상한 게 보이냐?”
신재욱은 헛웃음을 흘리며 눈앞에 떠오른 글씨를 바라봤다.
[체력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