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2 「후기 + 변명 + 차기작 예고」 =========================
긴 시간이었다. 참으로 길고 긴 시간. 2016년 11월 28일부터 시작해 마침내 끝을 맞이하게 된 ‘하렘 어드벤처’. 작가가 처음으로 쓴 연재소설이었기에 불안한 점도 많았고 이 따위로 진행해도 되냐는 생각도 자주 들었었다만……어찌 됐든 완결은 냈다. 적어도 완결했다는 점에서만큼은 노력했다고 봐도 되겠지.
“근데 그렇다고 스토리가 산으로 간 걸 용서한다는 건 아니거든요?”
난 작가를 보며 힘주어 말했다. 작가는 움찔하며 표정을 구긴다.
“아니, 이렇게 된 게 다 내 탓도 아니고…….”
우물거리며 변명하는 작가를 향해 힘차게 소리쳤다.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아, 저 시발 새끼가! 실미도 흉내 내지 말라고! 그 작품 별로 안 좋아한다고!”
당연히 개무시. 스토리를 개☆박★살! 낸 작가의 취향 따위 뭐 하러 존중해주겠는가? 설령 존중한다 치더라도 결말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그 건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안 그러면 내가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
“작가님, 지금 그딴 말 지껄이실 때가 아니란 거 알고 계시죠?”
존댓말은 하지만 ‘지껄인다’는 모욕적인 표현을 섞어 쓰다니. 얼마나 작가한테 한이 맺혔을까? 지금 생각하니 이런 작가 밑에서 완결까지 일했다. 적어도 노력상 정도는 받을 수 있으리라.
내 모욕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똥 씹은 표정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화를 내는 건 둘째 치더라도 완결이 이 따위인데 변명의 여지가 있겠는가?
“막말로 200화 넘을 때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던 귀신들의 힘을 받아 SPEED UP! POWER UP! 유린을 없애버리겠다~쩌빱!쩌빱!허이짜! 유린 죽였다!……해피, 엔딩. 이 따위로 진행했는데 독자분들이 잘 봐주시겠어요? 예? 우쮸쮸?”
마지막의 ‘우쮸쮸?’라는 말을 듣자 작가가 ‘이 씨발놈이?’라는 표정으로 본다만……내 알 바 아니다. 난 작가의 무리한 요구에 끝까지 따랐다. 이 정도 도발을 할 자격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님, 독자분들한테 뭐 할 말 있지 않습니까? 스토리가 이 따위라서 죄송하다거나, 등장인물의 개성이 후반에 가서는 다 사라졌다거나……막말로 사과할 건 산더미지만 그래도 진솔하게 사과한다면 독자분들이 봐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솔직함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적어도 마지막 후기에서나마 진솔하게 사과를 하며 모자람을 받아들인다면 독자분들의 분노가 그렇게까지 커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내 말에 감동한 건지 작가는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무리가 어설플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미흡한 글을 써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에이, 좀 더 정중하고 길게 해야죠! 사과가 그렇게 짧아서야 독자분들이 받아주시겠어요?”
당장 빡칠 것 같은 작가. 부들부들거리던 작가는 한숨을 크게 쉰 후 다시 입을 연다.
“존나 엄청난 배틀이 될 거 같이 띄어 놓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하의 전개가 되어버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처음 쓰는 소설이긴 하지만 낚시글 비슷한 소설이 되어버린 점, 정말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오, 좀 길어졌고 내용도 구체적이다. 그치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좀 더! 좀만 더 진솔함과 정중함을 담읍시다. 예? 이번 사과 한 방으로 독자분들과 저한테 얻은 불신(不信)을 씻어버립시다! 네?”
모든 걸 다 포기한 걸까. 작가는 다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이 정도로 했으니 나도 슬슬 작가를 용서해줄까?
아마 정중하면서도 반성의 요지가 듬뿍 담긴 말이 나올 테니까.
허나……대부분 잘 알 것이다.
캐릭터를 비롯해 소설 세계관 자체가 미쳐 있었고…….
그 미친 캐릭터와 세계관, 스토리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저 작가 새끼라는 사실을.
작가는 정중하게 모았던 다리를 어깨넓이 정도로 벌린 후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좆같은 스토리로 진행해서……미안하드아아아아아악!”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게, 저건 한 때 패러디나 합성요소로 쓰였던 ‘미안하드아아아악!’의 포즈가 아닌가?
한 때 ‘못난 아버지를 둔’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왔던 그 포즈!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는데 실제로는 너무 과장스러워 웃겼던 그 포즈를 이런 상황에 쓰다니! 역시 작가! 미쳤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내가 경악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작가는 이왕 한 거, 대차게 벌려보자는 속셈으로 계속 사과를 이어나간다.
“못난 작가가 병신 같이 끝을 내서……미안하드아아아아아악!”
이상하다. 틀림없이 사과는 하고 있는데 전혀 사과하고 있는 거 같지가 않았다. 용케 저 따위로 사과할 생각이 들었구나 싶을 정도로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계속 사과하라고 비꼬니까 빡쳐서 저 지랄을 하는 거다.
명불허전 작가. 마지막 편도 그랬지만 후기에서까지 저 지랄을 하다니.
병신 같다는 점에서만큼은 한결같은 일관성과 통일성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걸 후기에서까지 써먹었다는 점이지.
“출판취소를 당해 종이책 출판도 못 하게 돼서……억울하드아아아아악!”
“이 미친 새끼가!”
“응컥!?”
참다못한 나는 작가의 장딴지를 힘껏 걷어찼다. 멍청한 단말마를 남기며 작가는 넘어졌다만 다행스럽게도 아주 형편없이 넘어져버리지는 않았다. 팔로 땅을 짚은 작가는 좆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소리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했는데 왜 발로 차 미친 새꺄!? 내가 축구공이냐? 발로 차 싸커냐? 니는 씨발 큰맘 먹고 주인공 시켜줬더니 왜 통수만 때리냐 좆만아!?”
어어? 어어?
이 작가 새끼 보소?
너무나 어이가 없었기에 작가대접도 잊은 채 반격에 나선다.
“아니 시발, 사과하라고 했지 합성갤러리 필수요소로 사과하라고 했냐? 사과하는 태도도 글러먹었는데……뭐? 출판 못 해 억울해? 그게 왜 지금 나오냐, 미친 새꺄!?”
쩐다. 작가한테 쌍욕을 하며 반격을 날리다니. 200편 넘게 막장 요소를 접한 덕분일까. 분명히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만큼은 작가와 캐릭터가 혼연일체구나. 안 닮아도 되는 부분만 닮았어.
“시발, 사과하니 정성이 부족하다고 지랄을 해! 그래서 더 정중하게 했더니 더 길게 하라고 해! 그래서 임팩트 존나 쩌는 걸로 사과했는데 왜 때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좆병신 새꺄! 사과를 하라고 했지 합갤 필수 요소로 사과하라고 했냐?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그러니까 귀신들의 힘을 모아 유린 격파라는 좆병신 전개로 간 거지 등신 새꺄!”
대단하다. 21-1부터 23-10까지.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단 한 줄로 정리해버리다니. 틀림없이 이건 한국어 사용 능력이 올라간 결과일 거다. 결코 작가를 비꼬려고 굵고 짧게 요약하려고 노력한 결실이 아닐 것이다. 틀림없다. 믿어라. 믿는 자는 구원받으니까.
“시발, 주인공 시켜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덤벼 새꺄! 다 없애버리겠다! 쩌빱!쩌빱!”
“어어? 어어? 작가라고 대접해줬더니 덤비라고 해? 시발, 잘 걸렸다 미친 새꺄! 지금까지 겪어왔던 울분을 모조리 다 풀어주마! 허이짜! 허이짜!”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대결이었다만, 나나 작가한테는 중요한 거였다. 서로의 자웅(雌雄)을 겨루려는 그 순간, 중요한 걸 깨달았다.
“잠깐만!”
내가 외치자 작가도 멈칫한다. 이대로 놔두면 ‘맞는 거 무서워서 그러냐?’며 헛소리를 지껄일 테니 중요한 거부터 말하자.
“조아라는 원칙적으로 후기를 한 개의 에피소드로 올리는 걸 허용 안 하는 거 아니었냐!?”
이 말을 듣자 작가의 표정 또한 달라진다. 그랬다. 노블레스 연재라는 것은 돈을 받으며 글을 적는 활동.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글이나 돈을 주고 보기에 적합하지 않은 글이라고 판명되면 삭제처리를 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또한 대놓고 ‘후기를 본편으로 올리지 마라’라고 적어놨으니 사실상 이 글은 상당히 아슬아슬한 선에 놓인 것이었다.
19금 씬도 없어, 여캐도 안 나와.
그런 와중에 나와 작가의 좆병신 배틀이 벌어진다면?
삭☆제! 폭★발! 전속☆전진★DA!!
안 그래도 이상한 완결을 맞이한 글이다. 작가와 주인공의 좆병신 배틀이라는 후기스러운 글을 올렸다가 삭제처리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겠지. 작가도 이 점을 파악했는지 쩌빱의 자세(무슨 자세인지는 알아서 생각하자)를 푼 뒤 옷차림을 가지런히 했다.
“흠, 흠! 죄송합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하렘 어드벤처를 끝까지 봐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와 작가가 둘 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드리는 걸로 이 글. 정확히는 하렘 어드벤처를 끝내는 마지막 글의 막이 올라간 거다. 나도 허이짜 자세(무슨 자세인지는 알아서 생각하자)를 풀었기에 좆병신 배틀은 시작조차 못한 채 끝나버렸다.
“세린이 말한 대로 사실 후기글은 올리면 안 되는 거지만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고 다른 작가분들도 막간극(幕間劇) 비슷한 형태로 글을 넣으시곤 했기에 이왕 적는 거 마지막까지 약 빨고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아니지만 글 내용을 50kb 한계 가까이 적었기에 사실상 ‘후기+변명+차기작 예고’ 세트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후기도 좋고 차기작 예고도 좋지만 변명도 잊지 않다니. 역시 작가. 자기 잘못인 건 인정하지만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물귀신 정신을 보니 역시 이 작가는 비범하다는 느낌이 든다. 말할 것도 없지만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후기긴 하지만 가장 먼저 설명 드려야 하는 건 ‘왜 끝이 그런 식으로 끝난 거냐?’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 그렇게 끝내고 싶어 끝낸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까놓고 말해 첫 작품인데 그렇게 끝을 내며 즐거워 할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깔짝대며 놀릴 때처럼 한숨을 쉬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쉬는 한숨이었다. 또 한숨을 쉬어 총 2번 숨을 뱉어낸 작가는 억울함을 담아 입을 연다.
“이미 끝난 마당에 소용없는 이야기겠지만, 사실 세린이 죽는 것까지는 초기 계획과 똑같았습니다. NTR요소나 주인공이 TS당해 ‘히, 히익! 이, 임신 당해버려! 내 아내를 빼앗은 놈의 아기 따위……히, 히힛♡’ 같은 경험을 하는 거에는 꽤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도 계셨겠죠. 여러 모로 취향 타는 글을 적게 되어 좀 그랬습니다만, 소설 구상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점은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좆 됐었죠.”
추임새를 넣어주니 작가가 째려본다.
뭐 어쩌라고. 이미 본편 끝났는데.
꼬우면 재연재를 하든가.
그게 싫으면 외전이라도 쓰든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진짜 그런 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걸까? 물어봤자 이상한 대답이 돌아올 테니 묻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받아들일 수도 없는 요소였다. 주인공을TS시켜 범하다니. 신도에루 동인지에 감명이라도 받았냐?
“까놓고 말해 세린이 죽은 후에 만날 사람은 후기에서 몇 번이고 언급했던 소설이자 제가 제일 즐겁게 적었던 글 『아스라이』의 주인공, 신세아였습니다. 같은 세계관과 설정을 채용하고 있었기에 등장시키기가 편했을 뿐만 아니라 신세아라는 캐릭터의 위치에서도 매우 적절한 등장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존나 슬퍼진다. 일단 설정상 ‘신세아’라는 인물은 유린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 그런 인물이 하렘 어드벤처의 시공차원에 온다면?
건방진 유린을 허이짜!
좆같은 세상을 쩌빱!!
행복……만땅!!!
모든 게 일사천리로 술술 풀려나갔겠지. 내가 직접 싸울 필요도 없었을 테고(물론 그렇다고 모든 걸 신세아라는 사람한테 맡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만) 그 개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결과로만 말한다면 현재보다 더 나은 결과와 스토리 전개를 펼칠 수 있었겠지.
“사실 계획하고 있던 건 신세아의 등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아의 등장, 세아 & 세린의 협동 공격 이벤트, 세린과 아내들의 자식들을 모두 소개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헐!?”
그 말을 듣자 절로 ‘헐!?’이라는 말이 나왔다. 방금 저 작가 새끼가 뭐라고 한 거지? 나와 아내들의 자식들? 귀엽고 깜찍하고 프리티한 내 딸들이 본편에 나올 예정이었다는 말인가!?
“힘을 잃어 약해진 세린을 달래며 아내와 딸들의 모녀덮밥 이벤트부터 시작해 딸들한테 위로받는 합삐☆합삐한 이벤트, 아버지이자 연인인 세린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퍽퍽 헉헉 이 맛에 주인공합니다라는 이벤트까지. 사실상 이야기의 마지막 편이 된 23-10 이후의 전개도 전부 구상은 해둔 상태였습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 말을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세상에 마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내 딸과 아내들의 모녀덮밥이라고?
딸들과 함께 ‘헤헷, 임신시켜주마!’ 하렘 전개!?
아내와 딸들이 나를 두고 19금 배캅 전개를 벌이기까지 하다니!
이 얼마나 엄청난 이벤트란 말인가!?
“헤벳, 적어라 작가! 이런 후기글은 아무도 안 보고 싶어 하고 쓸모도 없으니 당장 집어치우고 후속편이나 적어라 헤벳! 안 적으면 와타시가 죽여주는 데샤아아아아아앗!!”
한 때 ‘참피’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실장석 흉내를 내며 미친 듯이 소리 지른다. 그렇고말고. 그 이벤트를 겪을 인물은 바로 나, 신세린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런 요구를 할 권리나 자격 정도는 당연히 있지 않겠는가!?
원래대로라면 ‘귀찮다, 안 적어!’라며 소리를 쳐야 했겠지만……이번만큼은 달랐다. 작가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담겨져 있었고 그걸 보니 재촉할 수가 없었다.
“나도 적고 싶다. 근데 그럴 수가 없다.”
“데, 데데? 무, 무슨 소리 데스 닌겐?”
한숨 좀 그만 쉬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지만 작가도 ‘한숨 좀 그만 쉬어라’라는 말을 들었을 테니까. 근데 그런 말을 듣는 본인은 참으로 좆같은 기분이다. 누가 한숨 쉬고 싶어 한숨 쉬겠는가? 한숨이라도 쉬어야 기분이 좀 나아지니 그러지.
“나도 적고 싶었거든. 이왕 하는 거 300편 넘을 때까지 적고 싶었지. 실제로 적기는 어려웠지만 니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 혜린이나 원래 세상에서 온 여캐들이랑 붕가★붕가!하는 것도 생각은 했었지.”
들으면 들을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좋은 이벤트를 안 적고 왜 이딴 글이나 적고 있단 말인가? 시간낭비 노력낭비 하지 말고 얼른 가서 19금 이벤트나 열심히 적으면 될 것을! 어찌하여 이 작가는 그런 것조차 모를 정도로 우매한 존재가 되어버린 데스캇!?
“근데 스토리나 뚜렷한 목적 없이 너무 19금만 적는 것도 좀 그랬거니와……적으려 해도 적을 수가 없더라.”
“어, 어째서 데스우? 지금까지처럼 적으면 괜찮지 않은 데스카?”
그 말에 작가는 정면을 바라본다. 정면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독자분들한테 뜻을 전한다는 거다.
“어, 세린이 한 말대로입니다. 사실 19금 이벤트도 그렇거니와 300편까지 적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적고자 하면 못 적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중반까지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세아를 등장시켜 유린을 박☆살! 낼 플롯도 열심히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독자분들은 ‘그럼 왜 안 했냐?’라고 생각하실 거고 전 단 한 마디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 텍본불펌 당했기 때문입니다.”
텍본, 불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아라를 비롯해 각종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연재되는 소설들. 무료로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 중에는 돈을 지불해 보는 것들도 있었다. 이 소설 또한 노블레스라는 형식의 지불 형식을 채택하고 있기에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조아라를 포함해 각종 소설 사이트에서는 여러 형태로 불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게 텍본이든 스샷이든 스캔본이든 뭐든 간에 일단 그렇게 불법으로 유출이 되어버리면 작가나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삭제하라고 해도 삭제도 안 하고 설령 삭제가 된다 치더라도 이미 퍼져버린 상태였으니까요.”
새삼스럽지만 불펌은 딱히 이 작가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예전부터 불펌은 널리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더욱 발전된 기술과 과학력을 사용해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까놓고 말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약 빨고 적는 이 소설이 불펌텍본 당하니 뭐라고 해야 하나, 웃기고도 슬펐습니다. 내 평생 출판도 못 해봤는데 불펌텍본도 당해보는구나 하는 게 웃겼고 슬픈 거야 뭐……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겁니다. 돈 주고 봐야 하는 글이 불법복제 됐는데 그걸 보고 즐거워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머리를 벅벅 긁던 작가는 이내 말을 이어간다.
“조아라를 통해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노블레스를 비롯해 유료연재나 E-Book 등은 최근 시대의 추세에 맞게 이루어진 출판 서비스입니다. 예전처럼 종이책으로 낼 필요가 없을뿐더러 종이책 출판에 의한 자원낭비, 수정 및 교정의 어려움, 서점이나 대여점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 등의 손실(로스)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실로 시대에 맞게 출판업계 환경도 변화했다고 봐도 될 정도겠죠.”
작가는 꽤 낡아빠진 스마트폰을 들어 독자분들한테 보여줬다. 때가 탄 케이스에 군데군데 부서진 프레임. 딱 봐도 꽤 옛날 모델이었다.
“이런 낡아빠진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소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 낡아빠졌으면 좀 곤란하겠지만 그런 건 컴퓨터를 통해 볼 수도 있으니 사실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인터넷과 전용 뷰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실로 엄청난 문명의 발전이라 할 수 있겠죠.”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는 만화책 몇 권을 꺼낸 작가는 스마트폰을 만화책 위에 올려놓았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출판업계는 엄청난 세대변화에 의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종이책 출판으로 짭짤한 수익을 얻었지만 이내 그 명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죠. 컴퓨터라는 기계가 보급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컴퓨터 보급에 의한 출판업계 및 소설계의 변동은 누구나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특히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이라면 더욱 더.
“드래곤 라자, 소드 엠페러, 이드 등.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고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작가임을 알 수 있는 분들의 작품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던 시절입니다. 그런 걸 인터넷 연재로 읽을 수 있게 되니 출판업계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인터넷 연재를 책으로 출판해 어떻게든 컴퓨터 보급 & 인터넷 연재에 의한 타격을 막았던 출판업계였습니다만……여기서 두 번째 타격이 오게 됩니다. 어찌 보면 컴퓨터 보급 그 이상의 타격이었죠.”
작가는 만화책 위에 있던 스마트폰을 세웠다. 원래대로라면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서있기가 어려웠다만 작가가 잡고 있던 덕분에 만화책을 짓누르는 형태로 선 상태가 됐다.
“바로 스마트폰의 보급이었습니다.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너도나도 스마트폰 경쟁의 시장으로 뛰어들었고 그 싸움이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는 대부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보급 및 사용의 급격한 증가와 이로 인한 생활양상의 변화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겪고 있는 저조차 스마트폰이 이렇게 엄청난 아이템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었으니까요.”
그야 그랬겠지. 설마 이 스마트폰 하나로 온갖 걸 다 하게 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컴퓨터를 킬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으로 얼마든지 소설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이러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만……그와 동시에 불펌이나 텍본제작의 기술도 발전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막말로 스크린 샷만 부지런히 찍으면 훌륭한 텍본(스샷)이 완성되는데 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위험한 행동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텍본 따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면서도 안타까웠다. 그 좋은 기술을 다른 데에 쓰면 좋을 것을. 그럼 이런 글이나 설명을 적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 불펌텍본 덕분에 좌절하시는 작가분들도 많았습니다. 습작으로 바꾸시는 분들도 계셨고 아예 작품을 내리시는 분들도 적으나마 계셨습니다. 작가의 창작욕구와 의욕을 단숨에 박살내고도 남을 정도로 텍본이 가지는 파괴력은 강력했습니다. 이런 말 하는 저도 솔직히 습작으로 전환할까 고민했었구요.”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고맙다고 해야 할 거 같았다. 아무리 막장 소설이고 약 빤 작가라지만 습작으로 전환 안 하고 연재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잖아.
“근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소설을 연재하는 조아라에서는 ‘텍본러 개과천선 이벤트’ 같은 미친 짓을 저지르더군요. 이미 끝난 이야기지만 당시 얼마나 빡쳤으면 조아라 블로그, 제 블로그에 분노를 싸지를 정도였습니다. 작가와 독자분들은 어이가 없었겠죠. 정당하게 돈을 주고 보는 독자들은 병신 취급당했지만 불법으로 텍본 만들어 널리 퍼뜨린 사람들은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모니터링 요원으로까지 삼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 정도의 쇼킹 이벤트였습니다. 살아생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이었어요.”
내 아내들을 강제로 범하고 나까지 임신시켰던 유린을 생각하니 절로 빡친다. 그런 유린한테 온갖 특혜와 혜택, 권리가 부여됐더라면? 등장 예정이었던 세아라는 사람이 나나 아내들 죽이는 건 개돼지 죽이는 도살 정도로 생각하고, 유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며 응원했다면? 어이가 가출했겠지. 정신줄이 안드로메다를 넘어 M78성까지 날아갔을 거다. 근데 M78성에 가면 울트라맨들이 다 있으려나? 개인적으로는 울트라맨 오브를 보고 싶은데.
“조아라의 병신 크리티컬 대응과 이벤트 + 작품의 불펌텍본. 이 두 가지 콤보를 당하니 좌절감과 무기력함이 온몸을 지배했습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 습작으로 돌릴까, 막장 엔딩으로 끝내버릴까. 오죽하면 유린이 세린 일행을 다 죽이고 유유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엔딩으로 적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요.”
거듭 말하는 말이지만 이 작가는 진짜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딴 배드 엔딩을 정식 엔딩으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조아라 운영진도 운영진이다만, 이 인간 대가리에도 뭐가 들었는지 좀 궁금했다.
“그래도 차마 그렇게는 적을 수 없어서 생각한 게 ‘그럼 유린을 쓰러뜨리고 원래대로 되돌아갈 때까지. 딱 거기만 적자’였습니다. 이 소설 불펌하시는 분이 있다면 서로 터놓고 말해봅시다. 이 후기를 가져갈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완결 났으면 일단 불펌할 거잖아요. 포인트제 사이트나 P2P 툴로 ‘하렘 어드벤처(完)’해서 널리널리 퍼트릴 거잖아요. 그렇게 될 게 뻔한데 대체 어떻게 300편까지 적을 수 있을까요?”
변명 같지만 변명이라고 비난을 할 수가 없었다. 습작전환하면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니 그 사이에 텍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작가처럼 그냥 대놓고 적자고 해도 불펌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불펌 당할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적는 상황. 언젠가 텍본으로 만들어져 어딘가로 유출될 걸 알면서도 할 수 없이 업로드 해야만 하는 환경. 그게 현재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200화까지 적은 사이에 플롯을 급히 변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휴재 중 아스라이를 읽는 것도 괜찮을 거라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전자책을 읽으라고 한 이유 중 하나는 세아의 등장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적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던 세아를 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 또한 두근거렸습니다. 그걸 위해 시공차원계라는 세계관과 떡밥을 던졌고 이제 곧 세아를 등장시킬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슬램☆텍본! 제 대가리를 칼로 벤 다음 뇌에 불펌 텍본 처넣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기분 존나 더러웠습니다.”
분명 웃기려고 하는 말인데 웃을 수가 없었다. 작가 본인도 딱히 웃을 걸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표정을 한껏 구기고 있었다.
“불펌이 발생하니 300화까지 적을 기력과 의욕이 진짜 엄청나게 박살나더군요.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만 재미없다, 포인트 낭비라고 하며 정작 제 글을 받아 보는 포인트제 사이트 이용자들을 보니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습니다. 아니, 그럼 돈 주고 보는 독자분들은 무슨 병신 머저리입니까? 옳은 방법으로 돈 주고 보는 사람들은 죄다 바보 멍청이라서 글을 보는 겁니까? 불법으로 보면서 불평불만은 T.O.P급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자기들이 하는 짓은 불법이지만 당연한 거고 돈 주고 보는 건 합법이지만 병신짓이라니. 정신승리짓도 작작 해야죠. 아Q정전의 아Q가 형님이라 부를 정도의 인지부조화였습니다.”
아Q정전의 아Q는 현대 시점에서 보더라도 찌질하고 졸렬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등장시켜 불펌 사이트(주로 헬븐넷)를 까다니. 사스가 작가!
“불펌당할 걸 깨달으니 차마 300편까지 적을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습작전환이나 무기한 연재중지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첫 글을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기에 절충안이자 긴급 변경으로 끌어낸 결과가 23-10까지. 앞으로의 미래는 세린과 아내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취지를 담아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상 적자니 시간이나 의욕도 없지만 슬슬 후속작 생각도 해야 했고요. 어찌 됐든 하렘 어드벤처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끝이 좆같다는 점은 저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그 이상은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과와 변명을 동시에 하는 꼴이 됐습니다만 너그럽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매우 쉽게 말해 『초기 계획 구상 완료 → 200화까지 잘 가던 도중 불펌 텍본 및 조아라의 텍본러 개과천선 이벤트 발생 → 조아라와 헬븐넷, 양측의 병크로 의욕 및 San수치 급격히 다운 → 현재 상태로 쓸 수도 없겠지만 열과 성을 다해서 써도 불펌될 게 뻔함 → 초기 단계의 구상 중 후반부를 급히 변경해 마무리까지만 지음 → 현재 후기글 쓰는 중』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럼, 새롭게 쓰는 글은 텍본으로 안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냐?’라며 비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저도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작품도 텍본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못 깨닫는다면 작가 노릇은 때려쳐야겠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책을 땅에 둔 작가는 눈을 감은 채 계속 입을 놀렸다.
“그치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입니다. 조아라에 문의한 결과 헬븐넷을 포함한 불펌 사이트에 법적인 항의는 이미 들어간 상태고 그게 잘 되든 안 되든 간에 텍본은 끊임없이 나올 겁니다. 그런 거조차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꼬꼬마는 아닙니다. 막말로 저나 작가들이 바라야 하는 것은 많은 분들이 봐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텍본으로 만들어지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쓰는 족족 텍본이 되어버리면 진짜 노블레스고 뭐고 간에 다 때려 치고 싶겠죠.”
노력에 의미가 없다면 노력할 필요가 없고 자기가 노력했는데 다른 사람만 꿀을 빤다면 그 누구도 노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노동과 노력에는 그에 걸맞는 보답이 돌아와야 하는데 고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꿀 빠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노력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세아 대신 이미 사망한 12명의 남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전투를 벌이게 됐기에 결국 ‘하렘 어드벤처 안에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싸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까지 알뜰살뜰 잘 써먹은 걸 보니 저도 참 미친놈이구나 싶었습니다만……세아 대신 이런 전개로 가니 이건 이거대로 즐겁더군요.”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접이식 의자를 준다. 나도, 작가도. 둘 다 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았다.
“즐거운 것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하렘 어드벤처의 탄생 경위부터 들려드릴까 합니다. 원래 하렘 어드벤처는 2012~2013년도쯤에 아주 약간 쓴 게 다였습니다. 그때는 겨우 10편뿐이었고 당시의 세계관도 지금 같은 게임이 아니라 카드 시스템을 도입한 거였습니다. 적과 싸워 나가며 강력한 카드를 얻어나가는……쉽게 이해하자면 『록맨 + 그리드 아일랜드(Hunter X Hunter)』를 구상했었죠.”
상상이 안 간다. 록맨 시리즈야 적을 쓰러뜨려 적의 무기나 특징을 얻는 거니 그러려니 싶다만, 그리드 아일랜드라니. 폭탄마라도 내보낼 생각이었냐?
“그렇게 딱 10편정도 써둔 하렘 어드벤처였습니다만, 본격적인 수정 및 작성 계기는 출판사의 도산으로 인한 출판취소였습니다. 디씨인사이드의 판타지 갤러리(이하 ‘판갤’이라 약칭)에서 적다 말았습니다만, 이미 망해버린 ‘소라프로덕션’과 계약해 종이책 출판이 예정된 상황이었습니다. 원래부터 트위터 같은 걸 안 하는 성격이었지만 계약했을 때는 혹시나 사고 일으킬까봐 더 주의를 기울였었죠.”
웃긴 웃는데 진짜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기가 막혀서 웃는 거 같았다.
“헌데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출판사 도산 났다고. 자세한 사항은 다른 곳에서 말씀드리겠지만……쉽게 말해 출판사 사장이 병신짓해서 도산 났고, 계약했던 계약금과 출판은 물 건너 간 거였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첫 출판의 꿈이 이렇게 분☆쇄 옥★쇄 대☆갈★채! 되다니. 진짜 좆같긴 좆 같았어요 ㅋㅋㅋ”
웃으며 ㅋㅋㅋ라는 표현까지 쓴다만 저게 진짜 웃겨서 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변태 같은 작가라지만 자기 꿈이나 소망이 부서진 걸 보고 웃을 정도로 멘탈이 좋을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런 일을 겪으니 속된 말로 빡쳤습니다. 뭐 잘못한 것도 없고 나쁜 짓도 안 했는데 이게 무슨 봉변인가 싶었구요. 그러던 도중 생각난 게 ‘하렘 어드벤처’였습니다. 예전에 써뒀던 것을 수정해가며 평소 느꼈던 울분과 분노, 첫 출판의 꿈이 박살난 안타까움까지 들어가니 글이 술술 적히더군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출판 좆망했으니 유료연재에나 한 번 도전해보자는 오기가 들었습니다. 필력의 경우 유료연재를 해보는 게 낫지 않냐는 권유도 들어봤고 출판까지 갈 정도였으니 부족하지만 쓰레기급은 아니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구요.”
그 필력으로 잘 썼으면 됐을 것을. 주인공인 나까지 TS시켜 임신과 낙태에 기뻐하는 걸레 창녀 빗치로 만들어버리다니. 지금이라도 면상에 한 방 갈겨버릴까?
“최근의 트렌드는 다 파악 못 했었지만 카드 배틀 시스템보다는 RPG나 액션 게임 쪽에 베이스를 둔 시스템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고 전개도 편했습니다. 무기를 M16A1이나 K2로 고른 건 군복무 때 써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멀리서 총질하는 게 더 재밌어 보여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 다 접근전이나 마법 쓰는데 혼자 두두두 쏘고 장전하고 그러면 존나 재밌을 거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역시 이 작가는 맛이 간 놈이다. 판타지를 적는 것도 좋고 무기를 쓰는 것도 좋은데 판타지 세상에 재래식 병기를 재미삼아 넣다니. 내가 어쩌다 이런 작가 때문에 고생하게 됐을까?
아, 물론 M16A1이나 K2의 자동사격 모드는 매우 좋았다만. 그것 덕분에 득을 본 적도 있으니 작가를 마냥 욕할 수만은 없겠구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박근혜 정부 및 헬조선 묘사가 이어지는 것은 작성 시기 때문입니다. 2016년 후반부에 들어 작성한 것이었고 중반부까지 썼을 무렵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후기에서는 욕했지만 본편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넣기가 어려웠고 현실 세상의 정보를 세린이 알 수도 없었기에 그냥 진행했습니다. 사실상 세린이 경험한 마지막 대한민국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되어버렸네요.”
“아, 씨발!”
결국 난 욕을 하고 말았다. 어지간한 건 참았는데 이건 못 참겠다.
“아니, 작가님! 꼭 저를 그 지옥에 내버려둬야 했습니까? 차라리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니 정권 바뀌고 죄수번호 503과 최순실이 짝짜꿍했다는 전개가 낫잖아요!”
“미안한데 그게 어렵거든? 야, 널 원래 세상으로 보내는 거라면 세아가 나와야 했는데 거기까지 적었다면 유린이랑 피터지게 싸울 일도 없었지. 누구는 안 적고 싶었겠냐? 200화 전에 조아라 병크와 불펌텍본이 터지니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랬지.”
“끄흑! 씨발 불펌러들! 어째서 와타시는 이렇게 고통받아야만 하는 데스캇!?”
씨바아아알! 내가 이 고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불펌러들 때문이라니! 자기랑 관계없는 일 때문에 고생한다는 점에서는 작가나 나나 똑같았다.
아니, 씨발 이딴 건 안 닮아도 된다고! 왜 이딴 것만 쳐닮아서 이 고생 요 모양 콘나 꼬라지니 나룬다요오오!? 히도이요오오오! 안마리다요오오오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이렇게 됐습니다만……생각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만족스러운 전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세아 대신 다른 전개로 가서 즐거웠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전에 말씀드릴 게 너무 많아 탈이네요.”
이왕 이야기보따리 터진 거, 왕창 해라. 그래야 나도 덜 억울하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신세아(이하 ‘세아’라 약칭)는 하렘 어드벤처가 진행되는 시간축에서 보자면 이미 ‘시공차원계의 대리신(代理神)’이 된 상태입니다. [아스라이]를 못 쓰면 그냥 평범한 인간이지만 아스라이만 쓰면 최강이나 무적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생각 하나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는……전지전능조차 뛰어넘은 위치에 있는 캐릭터입니다.”
젠장.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전부 다 맡기고 꿀만 빨고 싶었는데. 세아라는 사람이 나오는 편이 나한테도, 독자들한테도, 작가한테도. 모두한테 만족감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유린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못 이기는 존재입니다만, 세아를 등장시킴에 있어서 좀 불안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강력한 존재다보니 사실상 등장=승리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절대적인 존재한테 대항할 수 없어 절망을 맛보던 세린처럼 유린도 절망과 공포를 맛보며 죽어가는 게 생각했던 플롯이었습니다만, 너무 작위적인 전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라면 ‘그딴 거 난 모른다 헤벳! 꿀 빨게 해다오 레벳!’이라며 난리 부르스를 춰야 했다만, 이야기에 내가 나오니 무턱대고 그럴 수만은 없었다. 특히 그게 유린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더욱 더.
“그냥 [세아 등장 - 다 족침 - 해피 엔딩!]이라는 전개는 제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나름대로의 개연성과 이유를 갖추지 못한 채 스피디한 진행만 한다고 해서 독자분들이 다 기뻐해주시는 것도 아니거니와, 저한테 있어서는 진짜 소중한 캐릭터인 세아를 그냥 소설 종료만을 위해 등장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세아의 등장은 구상되어 있지만 어떻게 등장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도중에 불펌텍본과 텍본러 개과천선 이벤트가 일어나 세아의 등장을 재고(再考)하게 됐다, 이거네요.”
이제야 이해가 간다. 왜 죽은 사람들의 힘을 빌려 싸우게 된 전개가 나름 괜찮았다고 했는지.
“작가님 말씀은 이거죠? 소중한 캐릭터를 그냥 유린 죽이고 사정 설명하는 1회용 캐릭터로 만들기도 싫거니와 너무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모든 일이 순식간에 해결된다면…….”
작가는 매우 드물게도 웃고 있었다. 내가 요약을 잘 해서 그런 건지 작가의 뜻을 깨달아서 그런 건지. 아마 양쪽 다 아닐까 싶다만.
“세린이 정확하게 잘 요약했네요. 또한 독자분들한테도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중 하나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초자연적 현상을 만났을 때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였습니다. 크툴루 신화적인 요소를 넣지는 못했습니다만 코즈믹 호러의 분위기나 취지는 유지하고자 했고 유린을 통해 그러한 취지나 방향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존나 강한 신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겠네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니 죽은 사람들의 힘을 빌려 싸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초월적인 존재한테 모든 걸 다 맡기고 꿀만 빠는 전개는 확실히 편하긴 편하겠다만, 결국 그것 또한 초월적인 존재가 선사해주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이룩한 게 아니니까.
“세아가 나서서 모조리 다 없애는 것보다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힘을 빌려 인간의 힘으로 신을 쓰러뜨리는……그런 전개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노력해 초월적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으로부터 발버둥친다……좀 엉성하긴 하지만 일단 결론은 나왔네요. 그런 힘조차 하렘 어드벤처의 세상과 존재들을 살리며 사라졌으니 사실상 정말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더 이상 신적인 존재의 힘없이 주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사람다운 삶을 살게 됐네요. 이런 삶을 맞이하며 마무리를 짓는 하렘 어드벤처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욕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고생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다고 다른 신이나 초월적 존재한테 모든 걸 맡긴 채 꿀만 빠는 인생 따위,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설령 살아간다 치더라도 마냥 즐겁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 상태라면 조그마한 사건조차 자기 힘으로 해결 못 해 신한테 빌기만 하지 않았을까?
고생하는 삶도 싫지만 뭐든 간에 신이나 다른 사람한테 부탁만 하는 인생이라니. 그건 그거대로 꼴불견이겠구나 싶었다. 그리 잘난 인생은 아니었다만 내 할 일은 내 스스로 하자는 주의거든.
“이상으로 대략적인 후기와 변명은 마쳤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부분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캐야 자주 언급을 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 보니 놀라웠던 건 세린과 유린의 관계였습니다.”
“!?”
잘 나가다가 갑자기 뭔 헛소리임? 내 옆에 있던 작가였기에 약을 빨았다면 금방 눈치 챘을 거다. 근데 그렇지가 않았다. 약을 빨지도 않았고 옆에서 차분하게 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갑자기 나랑 유린의 관계라니? 그거냐? ANG이냐? BL이냐? 난 그런 거 싫다고 시발!
“아, BL이나 그런 건 아닙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세린과 유린은 꽤 비슷하면서도 대립적인 캐릭터입니다. 이름이야 뒤에 ‘린’자가 서로 들어간다지만 그건 무시합시다. 그런 걸로 비슷하다고 할 거 같았으면 손 두 개 발 두 개 달렸으니 닮은 거라고 하는 거랑 동격이니 말입니다.”
은근히 무례하다, 이 작가.
“세린과 유린은 지향점이나 목적이 완전히 반대지만 하는 행동이나 습성은 꽤 비슷합니다. 세린은 원래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만 세린을 까는 유린도 사실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건 좀 새로운 소리다 싶었다. 내가 작중에서 유린을 까긴 했다만 이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세린이 원래 세상을 싫어하듯이 유린도 자기가 만든 세상(하렘 어드벤처)를 싫어합니다. 이세계로 간다고 해서 반드시 인기만점 하렘에 최강급 능력을 지닐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하렘 어드벤처를 벗어나 다른 시공차원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본인은 으스대며 말하지만 실제로 다른 곳에 갔으면 맞아죽을 확률이 높았겠죠.”
여기 안 나온 유린이 갑자기 불쌍해진다. 걔가 절대적으로 옳은 건 아니었다만, 다른 시공차원 가서도 맞아죽을 운명이었다니. 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왜 인생이 이 모양 이 팔자일까?
“남이 잘못한 건 잘 발견하면서 정작 자기한테는 그런 기준을 적용 안 시키는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케이스죠. 물론 10년 넘게 혼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사람들 소환해 죽게 내버려두고 세린 속여 영혼을 얻으려 했던 게 칭찬받아 마땅할 일은 아닙니다. 속된 말로 지가 못하니 남의 힘 빌려 소원 이루려 한 케이스죠. 그 대상이 어쩌다 보니 세린이 된 거고요.”
으음. 나도 병신이지만 유린도 병신.
병신과 병신이 서로 싸우는 광경이라니.
작가와 내가 싸우는 것보다 더 엿 같겠군.
“그런 유린이었기에 세린한테 더욱 집착했던 게 아닐까요. 세린은 실패자였지만 자기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다짐했을 겁니다. 일종의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이었겠지만 본인 또한 세린한테 있어 반면교사가 됐으니 마찬가지겠죠. 근데 세린아. 유린이는 지금 뭐 하고 있냐?”
“소설이 끝났으니 다른 애들이랑 좀 쉰다고 하던데요. 자기는 꿀 빨 테니 후기에서 실컷 고생하고 오라고 놀렸습니다.”
다른 애들은 다 쉴 수 있지만 난 주인공이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있잖아. 쉬는 날인데도 분대장들은 모여서 지시 듣고 중대원들한테 전파하는 거. 그거랑 비슷했다.
“넌 뭐라고 대답했니?”
“씨발년아 놀리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 부른 거 너님이거든요?
“후우……뭐, 그래. 이제 슬슬 끝나니까 다 끝나면 가서 같이 밥이라도 먹어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이 일했으니까. 이런 저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마침내 하렘 어드벤처를 완결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금 진심어린 감사를 보냅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맞다. 다음 작품 예고할 거라면서요.”
마지막이긴 했지만 대충 하자니 여러 이야기를 들었기에 차마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작가랑 하는 마지막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겠지.
“새로운 작품은 판타지 요소는 적고 현대적 요소가 더 강할 겁니다. 굳이 말씀드린다면 ‘배경은 현대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섞인 글’이 될 겁니다. 이번에는 NTR 요소가 아예 없으므로 NTR이나 TS에 거부감을 느끼셨던 분들도 부담 없이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간략하지만 갖출 건 갖췄군. 장르나 배경, 이번 작에 있어서 실패원인이었던 요소들의 배제 등. 적어도 나아지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점에서는 그나마 나았다.
게다가……NTR 같은 거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하다. 그건 앞으로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차라리 NTL(네토리/Netoli의 약자. NTR이 빼앗기는 거라면 NTL은 남의 부인이나 연인을 빼앗는 행위)을 한다면 또 모를까, NTR은 진짜 거론하기도 싫었다.
============================ 작품 후기 ============================
“마지막이니 세린이 니가 먼저 한 마디 올려라.”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하니 묘하게 슬프구만. 고생하는 건 싫었지만 이렇게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살짝 슬펐다.
“안녕하세요, 하렘 어드벤처의 주인공인 ‘신세린’입니다. 약 빤 작가와 미친 스토리, 병신 같은 설정 등으로 쭉쭉 진행된 하렘 어드벤처였습니다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네요. 여러 모로 감개무량하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작가님과 저를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독자분들의 응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활약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여러분을 뵐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다시 활약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작가 재량이니까. 내가 아무리 강하고 잘나면 뭐 하냐? 내 등장 여부를 결정하는 건 작가인데. 그런 시점에서 본다면 작가야말로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겠지.
“솔직히 제가 다른 작품에서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끝이라고 개판 치는 것도 그리 좋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 제 모험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장황하게 말했다만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다른 작품에서 뵈어요!’다. 내 말이 끝나자 작가도 이어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다음 작품의 주인공과 사건 전개 및 세계관은 얼마 안 있어 새 작품으로 등록될 테니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2018년 1월 1일 월요일부터 새롭게 올릴 거라 생각되네요. 2016년 11월 말부터 이어진 소설을 마침내 완결시키고 2018년 첫날부터 새로운 소설로 한 해를 시작하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이 기쁨과 즐거움을 여러분과 나눠가질 거라 생각하니 더 기쁘네요. 여러 모로 모자란 작가지만 앞으로도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졸작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빌며 글을 마칩니다. 다른 작품에서 뵙겠습니다.”
나와 작가. 두 명이 동시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 여정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작가님. 다음 작품 제목이 뭐죠?”
다음 작품 예고를 하면서 제목을 안 묻다니. 나도 웃긴 놈이군.
“그건 어차피 2018년 되면 나올 테니까 기다리라고밖에 할 말이 없네.”
“그럼 주인공은요? 주인공 이름은 뭐예요?”
나는 ‘신세린’이라는 여자 같은 이름이었다만 다음 작품 주인공 이름은 좀 다르겠지. 그렇다고 ‘카미유 비단’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생각이나 느낌이다만, 이 이름은 여자 같다는 느낌이 좀 들잖냐.
여자 이름 같다고 해서 ‘신세린이 남자 이름이여서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난 남자라고!’라며 주먹을 휘갈겨대는 열혈 청소년이 될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이게 무슨 우주세기도 아니고 건담급의 기계를 낼 정도로 작가의 지식이 높은 것도 아니잖냐. 게다가 이왕 할 거면 퍼스트나 더블제타를 해야지, 폐인이 되어버린 제타(TV판) 주인공 포지션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극장판 제타라면 또 모를까.
작가는 손수건에 힘껏 콧물을 푼 뒤 가볍게 말했다.
“신세린.”
“네? 제가 왜요?”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다니. 내가 뭐 잘못했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작가는 고개를 젓고 다시 말했다.
“새 주인공 이름도 신세린이라고.”
“……네?”
이 무슨 개소리인가. 새 주인공 이름이 신세린이라니?
“어, 잠깐만요 작가님. 새 주인공 이름도 신세린이라고요?”
“ㅇㅇㅇ”
어이가 없다. 이 작가 새끼는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기 싫어 이응(ㅇ)을 세 개나 처넣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문학적 관점에서도 용서할 수 없다만 새 주인공 이름을 내 이름과 똑같이 짓는 것 또한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왜 내 이름이 또 주인공한테 쓰인다는 거예요!?”
“이름이 같지 너랑 동일인물은 아니거든요? 그거 정하는 거 다 내거든?”
사투리가 섞였지만 그딴 거에 태클 걸 때가 아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아니, 그럴 거 같았으면 그냥 하렘 어드벤처 후속편을 적으라고! 왜 새 작품 적으면서 주인공 이름은 똑같이 하는 건데!? 헷갈리잖아!”
다르면 달랐고 같으면 같았지, 이름은 같은데 사람은 다르다니. 장난 빠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작가를 쳐죽이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김을 내지만 이내 나는 참아야만 했다. 이름은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으니까.
“자, 작가님. 그럼 저는요? 저 새로운 작품에 나와요?”
그렇고말고. 이름이 같으니 어쩌면 나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팬서비스를 위해서도 첫 연재 작품의 주인공인 나를 내보내겠지! 그런 생각으로 작가를 봤다만 작가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잘 있거라, 주인공! 허이짜! 쩌빱! 다~죽여버리겠다!”
“자, 작가님! 자, 잠깐만요……야 이 새꺄! 나 출연시키는 거 맞지? 어? 나 나오는 거 맞지?”
벌써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 작가한테 욕을 날리며 확인을 구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난 마지막 편도 그렇거니와 후기까지 이 지랄을 해대는 작가를 향해 힘껏 소리친다.
“야 이 좆병신 작가 새꺄! 지랄도 정도껏 해라아아아아아앗────!!”
그치만 작가 귀에는 안 들리겠지. 아무도 없어진 공간. 이 처량한 신세를 보고 있을 독자들을 생각하니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늘 그랬듯이 난 중얼거렸다.
“……내 인생 퀄리티가 이렇죠, 씨발.”
말은 이렇게 해도 기분은 별로 안 나빴다. 어차피 이 이야기가 하렘 어드벤처라는 소설의 마지막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어떤 이야기든 간에 끝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작가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끝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끄러워서 말은 못 했다만 작가가 사라진 지금은 시원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작가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후 한숨을 쉰다. 젠장, 작가 보며 한숨 참 많이 쉰다고 생각했었는데……내가 남 말 할 처지가 아니군.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정면을 바라본다. 날 보고 있는 수많은 독자분들한테 다시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약 거하게 빨고 적은 작가부터 시작해 캐릭터, 스토리, 설정 등. 무리수도 많고 탈도 많은 소설이었지만 여기까지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다시 뵐 날을 기대하며 이만 막을 내리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친 나도 작가가 걸어간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시금 차갑지만 깨끗한 바람이 불어왔다.
[후기]
정말로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참으로 길고 진실로 머나먼 여정.
It was truly, truly……a long Roundabout path……!!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
예? 갑자기 왜 죠죠드립이 나오냐고요? 7부의 죠니 죠스타가 제일 좋아하는 죠죠 중 한 명이거든요. 길고 긴 여정이었다는 대사가 진짜 마음에 들어서 마지막 후기에 써봤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아무렴 어떻습니까.
예, 끝났습니다. 하렘 어드벤처. 외전을 쓸까 싶었지만 소재고갈 + 후속작 준비 + 회사 생활 콤보를 처맞은 덕분에 한 자도 못 쓴 채 끝나버렸습니다. 오죽하면 100편짜리를 30화로 줄였겠습니까? 덕분에 ‘아, 이제 하렘 어드벤처는 진짜 끝났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다름 아닌 저, 작가인 제가 말입니다.
창작의 욕구는 왕성할 때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마저 능가할 정도로 강렬하지만 꺼져버리면 무슨 수를 써도 되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건 3류 작가인 저를 포함해 누구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진짜 어떻게 할 수가 없더군요.
설령 쓴다 치더라도 최근 떨어지는 조회수를 보니 써봤자 큰 의미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지금은 속이 시원합니다. 마침내 첫 장편 연재를 끝냈네요. 좀 엉망으로 끝내긴 했지만……연중보다야 낫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우선 코멘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코멘트 답변이네요.
sckgjjjDrthcjfjdj님, qndyd02님. 외전을 바라신 두 분한테는 죄송합니다만 외전은 쓸래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 후기를 쓰며 ‘아, 후기 쓰는 게 더 재밌다’라고 느꼈을 정도입니다. 사실상 이 글에서 손을 뗄 때가 온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외전을 바라신 두 분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이 바보 같은 소설에 외전까지 기대할 정도로 작품을 즐겁게 읽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루인sv님, NTR 때문에 여러 모로 죄송하네요. 스토리 진행을 위해 썼다지만 루인sv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NTR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셨습니다. 후속작에서는 안 나오는 게 확정이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쓰고 싶지는 않네요.
여러 모로 부족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루인sv님처럼 NTR 전개가 나왔을 때 글을 그만 보시다가 완결난 거 보고 '어, 이 작가 완결났네? 그럼 NTR 진행 없어졌나?'라며 봐주시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네요.
고양이새벽님, 마침내 새벽이 밝아와 아침이 되어버렸습니다. 시간은 누구한테나 공평한 것처럼 이 3류 소설에도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네요. 세린이 당하는 모습은 더 이상 적기 어렵습니다만, 부디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코멘트에 대한 답변을 씁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zxc54님, 항상 날카로운 질문을 하며 제 간을 철렁이게 하셨기에 너무나 인상에 깊었습니다. 외전을 쓰지 못한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이 글을 읽으시며 ‘아, 이 막장 작가 새끼 ㅋㅋㅋ 마지막까지 약 거하게 빨고 적네 ㅎㅎㅎ’라며 웃어주시면 정말 기쁠 거 같습니다. 실제로 막장이기도 하구요.
깊은 세계관이나 세밀한 설정이 없었기에 zxc54님의 질문은 늘 신선하면서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도 관심과 호기심이 있어야 나오는 거겠죠.
제 3류 소설이나 다름없는 글에 그러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져주신 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지만 이 표현밖에 나올 게 없네요.
좀 삼천포로 빠집니다만, 죠니 죠스타가 ‘고마워, 자이로……이 말밖에 못 하겠어’라고 하듯 독자한테 반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아, 물론 이 말을 적으면서도 죠죠 게임에서 죠니가 오라오라 러쉬를 날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 비밀입니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랏! 7부의 오라오라 러쉬 등장은 진짜 쩔어줬어요.
마지막으로 로리콤MK님. 이젠 더 이상 로리 다이스키를 외칠 수도 없게 됐네요. 사실상 이 후기가 마지막 후기이자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적고 싶은 건 많은데 막상 적게 되니 뭘 적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연재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여러 모로 모자를 뿐만 아니라 약도 거하게 한 사발 빨았던 제 글을 늘 즐겁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웃음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진짜 기쁘면서도 애절하네요. 끝을 낸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은 몰랐습니다.
로리콤MK님을 비롯해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처음에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작가가 될 뻔했다가 출판사가 망해버려 사실상 작가의 꿈이 박살난 상태. 그런 작가가 적는 소설입니다. 과연 재미있을까? 욕만 바가지로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물론 좋은 말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즐겁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니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아, 다행이다. 내 글은 그렇게까지 최악이 아니었나 보다.’
‘제대로 등단도 못 한 내 글을 이렇게까지 재밌게 읽어주다니. 진짜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입니다.
까놓고 말해, 출판사 도산 때 진짜 마음이 작살났었습니다.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디씨인사이드에 올리다 말고 거론도 별로 안 했습니다만, 살아오면서 그렇게까지 초특급 통수를 맞은 적은 꽤 적었거든요.
물론 [적었다≠없었다]니 그 전에도 통수를 맞은 적은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별로 안 맞는데 왜 저는 평생에 걸쳐 통수만 처맞을까요. 그것도 참으로 의문입니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갑시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만, 감사하는 마음은 좆털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 진짜 소라프로덕션 관계자는 뒤져라 시발.
그런 제 글을 재밌게 봐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고, 더 좋은 글로 여러분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물론 약도 거하게 한 사발 빨고 말입니다. 그거 아니면 제 글은 그냥 찐따가 쓰는 병맛 넘치는 수양록에 불과합니다.
예? 원래부터 찐따냄새 풀풀 나는 병맛 소설이었다고요?
……
…………
……………… 레드썬은 안 합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구요.
저는 제가 병신찐따 새끼라는 걸 받아들이며 살아갈 겁니다.
물론 벗어나려고 노력도 하고 시도도 해볼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이 겪고 계시는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승리만 할 수는 없고 성공만 거둘 수는 없겠죠. 그치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저 같은 병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 저보다 뛰어난 여러분이라면 틀림없이 더 좋은 결과, 더 멋진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거고 여러분도 노력할 겁니다.
언젠가 보다 더 좋은 글, 보다 더 멋진 미래에서 만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행복과 평안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완독하신 독자분들께 멋진 미래와 추억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언젠가 다시 이 글을 읽었을 때 ‘최선을 다하기를 잘 했다’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키보드에서 손을 뗍니다.
다른 글에서 다시 뵙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