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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223화 (223/235)

00220 「22-9 : 부활하는 주인공 (9)」 =========================

유린은 자기가 느끼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몸 안에서 느껴지던 통증은 여전했지만 눈앞에 있는 세린만 없앤다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었다. 어떻게 살아났고 어떻게 자신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의 원흉(元兇)인 세린을 죽이는 것이었다.

힘겹게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세린이 ‘전부 다’라고 대답한 직후.

이변은 일어났다.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느껴졌고 자기가 떨어진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유린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빼앗은 육체의 체중과 중력. 낙하 에너지까지 더한 추락이 일어나면 기껏 얻은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 틀림없었기에 유린은 필사적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원래라면 비행 마법을 써야 했지만 날았다가 또 떨어졌다간 큰일이 날 테니까.

텔레포트를 실행한 곳은 프레그넌트였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엄청난 통증을 느끼는 곳. 자기와 연결된 세상 중 가장 빠르게 ‘이변’을 감지한 곳이었기에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텔레포트 마법으로 추락의 위기에서 벗어난 유린은 프레그넌트를 본 순간,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아, 아악! 아앗!?”

탁하다! 눈에 들어온 탁색(濁色)의 땅은 틀림없이 야만족의 숲에서 봤던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기에 그걸 본 순간 머리가 급속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고통을 느끼고 야만족의 숲으로 간 유린은 도착하자마자 탁한 색의 땅을 목격했다.

그렇다면……아무리 생각해도 저 탁한 색으로 변해버린 땅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왜 저 탁한 색의 땅이 여기에도 있는 거지?

세린은 조금 전까지 자기랑 같이 야만족의 숲에 있었는데?

땅을 탁한 색으로 만든 ‘무언가’가 자기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 원인이라면,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존재해야만 했다. 세린을 제외한 인간은 없을 텐데?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단 거지? 대체, 대체 누가……?

“어? 너 여기 왔냐? 야, 너 진짜 감 좋다. 다른 사람 아프게 만드는 건 선수면서 자기가 아프니까 바로 제일 가까운 곳에 오다니……. 인간으로서 좀 창피하지 않냐? 아, 미안. 넌 인간이 아니었지?”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유린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힘겹게 앞을 봤다. 세린……!? 왜, 어째서? 어떻게 세린이 여기 있지? 텔레포트로 따라온 건가? 아냐, 텔레포트를 쓴 걸 확인했을지는 몰라도 어디로 갔는지는 모를 텐데? 근데 왜 내 앞에 세린이 있는 거지?

“왜? 놀랐어? 내가 여기 있어서? 너는 참 놀랄 것도 많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마을에 가도 나 만났을 텐데 뭐가 그렇게 놀랍냐?”

“……뭐?”

아주 잠시지만 아픈 게 확 날아갔다. 몸 전체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지만 세린은 그런 것을 아랑곳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다른 마을에 가도 날 만났을 거라고. 아마 어딜 가든 간에 이 탁하게 변한 땅이랑 ‘나’를 볼 수 있을 거야. 분신들이랑 동시에 독을 주입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만…….”

“……분, 신? 독?”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새끼……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어, 흑! 어큭! 아, 아아악!”

유린의 생각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겪어보지도 못한 충격과 고통, 통증이 온몸을 지배했다. 마치 몸 안에서부터 벌레들이 소중한 내장이나 핏줄, 장기를 파먹고 있는 듯한 역겨움까지 느껴질 정도의 고통.

지금까지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 내성이 없다시피 한 유린한테는 지옥도(地獄道)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아, 팟! 아파! 아퍼! 으, 아아악! 아, 아앗! 허, 허억! 우, 웩!”

얼마나 아팠던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온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손은 두 개밖에 없었으며, 손으로 잡는다 하더라도 고통이 가실 일은 없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고통에 유린은 눈물과 침을 질질 흘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휴, 등신. 그러기에 못된 짓 좀 작작하지. 니가 하도 못된 짓을 하니까 벌 받는 거 아니냐…….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죽이질 않나,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건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하지를 않나. 그렇게 자기 꼴리는 대로 나쁜 짓 해오니까 이렇게 되는 거라고. 어, 야. 너 내 말 듣고는 있냐? 여보세요? 모시모시? 헬로?”

세린의 장난기 섞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아팠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옥 같은 고통만이 몸 안을 엄습(掩襲)했으며, 얼마나 아팠던지 잠시간이지만 의식이 날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의식이 영영 날아갔더라면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을 텐데!

“허, 억……어윽……끅!”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텔레포트로 간 곳은 옥좌(玉座)가 있는 곳이었다. 한 때 신하들 앞에서 마리아와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기도 했던 곳이었지만 유린한테 있어서는 그런 과거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세린의 공격을 받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거였으니까.

사력(死力)을 다해 성공한 텔레포트에 만족해하던 것도 잠시. 야만족의 숲을 비롯해 모든 마을과 자기가 있는 수도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유린은 비명을 질러댔다. 왕을 초월해 신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린은 바닥에 쓰러진 채 미친 듯이 소리만을 질러댔다. 마치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양…….

눈물과 침뿐만 아니라 코에서는 찐득한 콧물마저 나와 버렸다. 누군가 본다면 틀림없이 평생 놀림감이 될 만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아팠다. 마치 이렇게 아프다가 뒈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죽어? 내가? 내가 죽는다고?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절대자, 신(神)이나 다름없는 내가……죽는다고?

기껏 얻은 육체로 다른 시공차원에 가지도 못한 채?

20년 동안 꾸던 꿈과 계획을 드디어 실행시켰는데 다른 시공차원에는 발바닥 한 번 못 찍어보고 죽는다고?

“웃기, 지……맛! 허, 억……케헥!”

야만족의 숲에 가기 전처럼 크게 기침을 하던 유린은 결국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다음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야만족의 숲에 가기 전에는 칼로 찌르지도 않았는데 왜 피가 나오는 거지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었지만……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세린이 프레그넌트에서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말했잖아. 다른 마을에 가도 날 만났을 거라고. 아마 어딜 가든 간에 이 탁하게 변한 땅이랑 ‘나’를 볼 수 있을 거야. 분신들이랑 동시에 독을 주입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만…….’

분신들이랑 동시에 독을 주입했다고? 분신? 세린은 모든 힘을 잃었잖아!? 그런데……어떻게 나랑 대등하게 싸울 수가 있었지? 야만족에 있던 괴물들은 대체 어떻게 전부 없앤 거냐고? 괴물의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마리 이상이었는데……그걸 어떻게 혼자 다 처리했지?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어떻게 부활한 거야? 부활? 되살아났다고? 이게 무슨 만화인 줄 아냐? 소환했던 남자들을 되살리는 것은 자기한테도 불가능했는데 어떻게 그런 무능력한 병신이 되살아난 거지? 대체 누가, 무슨 목적을 위해서 세린을 되살렸냔 말이다!?

“대가리 굴리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배달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유린은 몸을 벌벌 떨며 옥좌로 기어갔다. 옥좌에 간다고 무언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떠는 모습은 결코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허이구, 저 등신 보소. 꼴에 또 신이라고 옥좌로 간다. 병신아. 지금 더 독에 중독됐거든? 거기 간다고 해독(解毒)효과가 나오거나 그런 거 없거든요?”

세린의 비아냥을 무시하며 겨우 옥좌로 가서 앉은 유린은 심장 부분을 부여잡은 채 앞을 봤다. 앞에는 세린이 서있었고 손에는 자기의 검을 막아냈을 때 썼던 검이 있었기에 숲에서 봤던 세린이라는 걸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씹어 먹을 새끼가! 대체 내 몸에……이 세상에 무슨……우, 쿨럭! 콜록! 허, 억!”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한테 소리를 지르던 유린은 제풀에 괴로워하며 기침을 연신 해댔다. 세린은 웃으며 거리를 좁혀왔지만 유린은 몸을 잡은 채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 바보냐? 내 분신이 말했잖아. 독을 넣었다고. 야아……너 미워하던 사람들, 진짜 쩐다. 널 죽이려고 온갖 지식과 힘까지 다 갖추었는데 겨우 독 좀 주입했다고 이렇게 씹창이 될 줄이야……. 독에 노출됐다고 이렇게 빌빌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 다름 아닌 유린이! 이 세상의 신이 이렇게 될 줄이야……허, 참. 진짜 세상살이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니까?”

이죽대면서 다가왔지만 유린은 말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눈에서 흘러내렸기에 팔로 닦았고, 손바닥 위에는 검붉은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아, 아앗……아, 안 돼! 소중한……쿨럭! 내, 몸의 피가……!!”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안 돼! 이대로라면 소중한 몸이……20년 만에 마침내 손에 넣은 몸이 죽어버린다! 다른 시공차원으로 갈 수 없게 된다고!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꿈도 못 이루고 죽는다니!? 싫어! 싫다! 그딴 건 싫다고!

“야! 그거 내 몸이거든요? 니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원래 다 내 거였거든요!? 어휴, 빌어먹을 도둑놈 새끼. 끝까지 밉상이구나…….”

세린은 옥좌 앞에 선 채 유린을 내려다봤다. 원래라면 옥좌에 있는 유린이 세린을 내려다봐야 했지만……옥좌에 앉은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유린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자기 목숨을 노리는 세린이 바로 앞에 올 때까지 아무런 조치조차 취할 수 없게 된……나약한 병자(病者)나 다름없었으니까.

“너어, 대체 뭘……어, 윽! 아아앗! 심, 장! 아파! 심장이 아프, 컥!?”

심장이 아프다며 소리를 높이던 것도 잠시. 세린은 들고 있던 검을 유린의 심장 부근에 힘차게 박아 넣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하던 유린은 꺽꺽대며 검에 손을 댔지만……기어가는 게 고작이었던 유린한테 검을 뽑을 만한 힘이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프냐? 하아……그러게 누가 이런 처지 될 때까지 나쁜 짓 하래? 나쁜 짓도 정도껏 했어야지. 야, 그거 아냐? 내가 독을 주입하긴 했는데……나도 무서워 임마. 너한테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거 한 방으로 떡실신이 되냐? 너랑 붙어도 어느 정도 해볼 만했는데 이건 뭐 저항이나 탈출의 방법조차 없잖아.”

검을 박은 것에 대해 사과하기보다는 자기가 주입한 독의 위력에 무서워하며 세린은 고개를 저어댔다. 당장에라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던 유린이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내용은 그녀가 의식을 잃은 채 어둠으로 떨어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나한테, 죽어간……사람, 허, 억! 우, 욱……들? 사람들이라고……!?”

입뿐만 아니라 검에 찔린 곳에서도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가 죽는다면 왜 죽는지, 누가 이런 걸 꾸몄는지에 대해 알고 나서 죽겠다는 양…….

“그래. 너한테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부탁했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은 죽여 달라고 말이지. 너도 좀 작작하지 그랬냐? 얼마나 심하게 병신짓을 했으면 이런 독까지 만들게 하냐? 어휴……내가 넣은 거긴 한데 이건 뭐 화학병기도 아니고 원. 너 보라고. 독 한 방에 완전 넉아웃(Knock Out)됐잖아.”

유린한테 죽은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들의 육체는 괴물한테 먹혔고 정신은 영혼과 함께 소멸했을 텐데……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이놈은?

“너한테 죽은 사람들은 계속 이 시공차원에 있었거든. 이해가 가? 니 병신 같은 소망 때문에 죽었는데 영혼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거지발싸개 같은 세상에 있어야만 했다고. 이제 좀 이해가 가십니까, 유린 씨발년님아?”

머리가 하얘졌다.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걸까?

영혼이 이 시공차원에 남아 있었다고?

뭐야? 왜 나는 그걸 못 느낀 거지?

영혼을 만들 수 없어서? 아니면 영혼을 볼 능력이 없어서?

신(神)인 자기가 영혼을 못 보는데 어떻게 세린은 영혼을 만날 수 있었던 거지!?

젠장! 시발!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갔길래 이 지경이 된 거냔 말이다!?

“너 때문에 죽은 후에도 안식을 되찾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노력했고, 괴물 죽이며 독을 이 세상에 주입시켰다 이 말씀! 그래, 어때? 야만족의 숲부터 시작해 마을이랑 수도. 총 8곳에 독을 퍼트렸거든. 넌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너랑 동급이나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사람이 이 세상을 공격하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상상은 못 해봤겠지. 이런 짓을 저지를 놈이 없었으니까. 응? 어때, 맞지?”

계속해서 깝죽대고 깝싹대는 세린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지금은 그럴 기력도 없었다. 정신을 집중해 어떻게든 의식을 잃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여기서 의식을 잃어버리면 그걸로 끝. 정말 모든 게 끝나니까.

“너는 아마 알겠지만……지금 내 분신들이 각 마을에 있는 괴물들을 모조리 도륙(屠戮)내고 있거든. 혹시나 니가 마지막 발버둥을 칠까봐 아예 싹을 자르고 있는 거지. 괴물흡수해서 괜히 강해지면 귀찮잖아? 하긴……독에 중독돼서 괴로워하는 괴물을 흡수해봤자 힘들어지는 건 너밖에 없으니까 해도 상관없다만. 얼마든지 해. 할 수 있으면 말이지.”

약아빠진 새끼……! 너무나 극심한 고통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세린의 말을 들은 후 괴물의 수를 파악한 결과,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세린의 분신들로부터 도망친 괴물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고 이미 독에 중독된 상태였기에 흡수를 하기에도 곤란했다.

“그거 아냐? 너나 이 세상이나 마찬가지겠지만……너 같은 놈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

지금까지 자기한테 당하기만 했던 세린이 승리를 확신한 웃음을 띠운 채 자기를 내려다본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참아야만 했다. 숲에서 자기랑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이런 간계(奸計)를 부린 거라면……자신 또한 비장의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상태는 최악이었고 ‘비장의 수’를 쓰면 틀림없이 지금 이상으로 상태는 악화되겠지만……더 이상 이런 치욕을 견딜 수는 없었다. 암, 그렇고말고. 나한테 목숨을 구걸하며 영혼과 육체를 바쳤던 저런 병신한테 내가 모욕과 수모를 당한다고? 웃기지 마라……!! 목숨을 잃더라도 네놈의 버르장머리만은 확실히 고쳐주마!!

“【머리 좋은 바보】. 그게 바로 너 같은 놈을 부를 때 쓰는 말이야. 웃긴 게……진짜 딱 너를 위해 만든 말 같거든.”

유린이 ‘비장의 수’를 준비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세린은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유린한테 있어서 세린이 지껄이는 것은 두 가지 이점을 주고 있었다.

첫 번째는 자기가 비장의 수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 자기랑 마찬가지로 자기 잘난 맛에 지껄이는 세린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곧 그 웃음을 서늘한 공포로 바꿔주마…….

두 번째는 자신의 분노를 들끓게 만드는 것이었다. 고통 때문에 안 그래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은데, 머저리 같은 세린이 시키지도 않은 말까지 주절대며 자기를 놀리고 있는 덕분에 어떻게든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머리 좋은 바보는 바로 네놈이다, 머저리 새끼야.

“머리 좋은 바보란 음……뭐라고 해야 하지? 딱 니가 한 짓이랑 똑같은 짓을 하는 놈들을 가리키는 거야. 걔들은 까놓고 말해 머리가 좋아. 평범한 사람들보다 비상(非常)한 머리를 지니고 있고, 행동력이나 판단력도 좋아.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못 했던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곤 하지.”

유린은 확실히 머리가 좋았다. 머리가 좋지 않았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 다른 시공차원에 있는 쓰레기들로부터 육체를 받으려는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머리 좋은 바보’ 중 머리가 좋다는 부분은 확실히 자기한테 해당됐다.

“하지만 그런 머리 좋은 놈들 중에도 바보가 있기 마련이거든. 머리 좋은 바보는 말이지……자기가 보고 싶은 것밖에 안 보거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밖에 안 본다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세린은 유린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보충 설명을 더했다.

“말 그대로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밖에 안 봐. 예를 들어볼까? 프레그넌트를 포함해 대부분의 마을은 수도에서 1주일 거리에 있지. 1주일 동안 걸어서 도착할 거리지만 개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일어나자마자 새벽까지, 자고 먹고 화장실 보는 시간 빼고 모조리 걷는 시간에 몰빵하면 훨씬 더 빨리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영혼은 없지만 정신은 존재했고,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고(思考)능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이상하게 여길 것은 아니었다. 헌데……왜 저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거지?

“그런 사람은 출발하기 전부터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지. 출발 시간, 걸어가는 페이스, 식사로 인한 로스 타임(Lose Time) 등. 세밀한 시간계획까지 하며 자기가 도착할 시간을 최대한 앞당기려 해. 까놓고 말해……그 생각은 옳아. 아주 정확하고 효율적이지. 근데…….”

세린은 유린의 얼굴 앞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똑같은 얼굴. 한 쪽은 괴로움과 수치감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한 쪽은 웃음을 지은 채 싱글벙글 거리고 있다.

“그게 바로 바보 같은 점이지. 웃기잖아? 야, 생각을 해봐. 출발 시간? 걷는 속도? 식사시간을 비롯해 다른 시간 손실을 줄인다고? 바보 아니냐? 괴물이나 날씨, 부상은? 자기가 생각지도 못했고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건 전혀 고려를 안 했잖아?”

그 말을 듣자 유린은 마치 단단한 쇠 같은 것으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세린의 말을 듣자마자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왜 저런 예시를 들었는지.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괴물이 떼거지로 나타나 습격하면? 여행을 하다 부상을 당하면? 갑자기 날씨가 나빠져서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다면? 그런 걸 감안해서 1주일이나 걸리는데 다짜고짜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생각하며 여행을 나가는 놈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괴물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상처나 사고, 사건이 예고하고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것들을 모조리 제외시킨 채 자기가 예상한 계획만을 믿고 설칠 수 있는 걸까? 참 의문이라니까? 그래, 바로 너 같이.”

유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할 수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세린의 말은 현재의 자신과 매우 맞아떨어졌으니까.

“너 좀 봐. 내 육체 얻어서 나가겠다며 탁탁 소리 내며 딸을 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런 병신이 되다니……. 내가 왜 널 보고 머리 좋은 바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냐? 그 총명한 머리로 20년 간 쓸데없는 계획 세웠지. 쓸데없이 행동력은 더럽게 좋아서 사람들을 죽이며 니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노력했었지. 그래, 얻었어. 거기까지는 좋았겠지. 근데 지금은? 니 꼬라지, 보이지? 설령 안 보여도 느낄 수 있잖아?”

도망친 괴물들을 대지와 융합(融合)시킨다. 오염된 힘이긴 하지만 그 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자신한테 들어오고 있었다.

“너랑 동급. 너보다 약하든 강하든……일단 삐까칠 수 있는 레벨의 힘을 가진 사람이 오면 바로 이 모양이지. 널 보라고. 너도 니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만 봤잖아. 계획으로는 원대하다 못해 장대한 계획이었지만, 내가 부활해서 몇 안 되는 행동을 하니 바로 이렇게 바보가 되어버리다니……너보다 약한 나한테 이 지경이 됐는데 다른 시공차원에는 가서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답답아……쯧쯧!!”

괴물들의 힘이 모이자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괴물들도 중독되어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군. 그래도 상관없다. 이놈만 박살낼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희생시켜주마. 괴물들은 다 모았으니 이제 다른 것들이다. 건물, 나무, 바위, 숲. 다, 전부 다. 모두 다 나한테 와라! 이놈한테 진정한 신의 힘을 보여 주마……!!

“……야, 너 대체 무슨……웅컥!?”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세린이 나가떨어졌다. 데굴거리며 뒤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참으로 통쾌했기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심장에 박힌 칼을 뽑은 후 저 멀리로 던져버렸다. 저놈한테서 만들어진 힘 따위, 필요 없다. 나는 이 시공차원의 신이다. 이 하렘 어드벤처의 창조주이자 절대자다. 그래, 나는 신이다. 누구보다 강한 신이다!

“어, 후욱……야, 너 미쳤냐? 괴물부터 시작해 건물이나 숲까지 흡수하다 죽으면 어쩌려고? 아니, 그 이전에……너 안 아프냐?”

어떻게 이런 미친놈이 있지 라는 눈빛으로 유린을 봤지만……유린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농락하며 웃던 세린처럼 싱글벙글거리고 있었고, 세린은 그 모습을 보며 약간의 공포감을 느껴야만 했다.

“아, 파? 으, 흐흑! 흐흣! 아, 니? 전혀!? 으, 억! 하, 하아……!! 기, 분 짱인데? 너 같은 병신한테 진정한 신, 어, 으윽!”

하고 싶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한 채 부들거리며 땅에 쓰러진다. 간신히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지만 상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으며, 그걸 보던 세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도 볼 수 없고 아무한테도 호소할 길이 없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했어. 그 사람들의 영혼, 너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 시간은 절대 무가치(無價値)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거든.”

뒤로 나동그라지긴 했지만 데미지 자체는 별로 없었던지 옷을 가볍게 털며 세린이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유린은 점차 기침과 떨림이 멎기 시작했다. 땅과 하늘. 세상을 이루는 극히 기초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흡수한 결과, 어떻게든 세린과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원래라면 이렇게 죽기 직전의 적이 일어나면 존나 귀찮고 짜증을 내야 하는데……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유? 아까 말했잖아. 그 사람들이 부탁했다고. 자기들이 살아있었다는 증거, 지금까지 노력했던 시간은 절대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달라고 했었지. 솔직히……독 때문에 죽으면 그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거 같았거든. 명색이 신인데 독 때문에 죽으면 좀 거시기하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무소식(無消息)은 희소식.

무대답(無對答)은 긍정.

그게 내 지론(持論)이었다. 유린은 아무 말도 안 한 채 커다란 검을 꺼냈다. 숲에서 꺼낸 게 황금색의 검이었다면 이번에 꺼낸 건 검붉은 색의 불길해 보이는 검이었다. 검날이 척 보기에도 날카로워 보였기에 저거 맞으면 골로 가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뭐……안 맞으면 땡이지만.

“솔직히 말해서……일어나줘서 고마워. 널 때려눕히고 박살낸다면 그거야말로 최고 아니겠냐? 나한테 부탁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만족할 거야. 당신들이 준 힘과 지식, 육체로 너를 죽인다면 그거만큼 ‘그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어울리는 것도 없겠지. 그 사람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가치 있었다는 건 자동으로 증명될 테고. 그렇지?”

유린은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걸어온다. 독에 오염된 괴물부터 시작해 모든 걸 다 흡수해버리다니. 그야말로 ‘날 죽이고 바로 다른 시공차원에 간다’라는 각오를 몸소 보여주시는군. 피식 웃으며 무기를 꺼냈다. 숲에서 썼던 놈의 무기를 다시 한 번 복제한 후 자세를 잡는다.

“자……이 세상의 운명을 건 마지막 싸움이다. 내가 이기면 존망(存亡)이고, 니가 이기면 좆망. 존나 심플하지?”

대답은 없었다. 놈이 달려왔고 내가 튀어나간다.

이 세상의 운명을 건 마지막 싸움이 이렇게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열심히 후기를 썼는데 모조리 날려버린 메리사(신세린)입니다. 여러분도 가능하면 문서작업 및 후기작성은 메모장이나 문서작성 툴로 하세요. 안 그러면 저처럼 멘탈이 개박살나는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죽일 조아라 작성 툴 같으니라고…….

원래 웃우우웃!까지 다 써놨는데 단숨에 다 날아가버리더군요. 어이가 없어 실행취소 하니 붙여넣기 한 부호들만 나오는 현상. 멘탈이 박살날 뻔한 걸 간신히 참으며 이 후기를 작성합니다. 여러분도 진짜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문서작성은 제대로 된 툴로 하세요. 인터넷 페이지에서 작성하지 마세요. 제 꼴 납니다.

유린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괴물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세린 또한 분신으로 독을 주입했습니다. 사실상 유린이 했던 것의 독 퍼트리기 버전이죠. 독 때문에 완전 정신이 망가져버린 유린한테 친절히 설명까지 다 해주는 세린쨩.

근데 싸우는 분량은 적으면서 자기 할 말은 다 하다니. 이런 주제에 다음편이 이 챕터의 끝이자 싸움의 끝이라고? 미토메라레나이와(인정할 수 없어)!!

이미 조회수가 뚝 떨어진 상황입니다만,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쁜 소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음 달부터 야근이 확정나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다음 주부터는 다시 자정 업로드를 할 생각입니다. 잠을 깎으면서까지 올리게 된 상황이 됩니다만 이제 아무래도 좋겠죠. 마지막은 매우 가까워졌고 이번 업로드가 끝나면 당분간은 외전 작성에 힘을 쏟아볼까 합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sckgjjjDrthcjfjdj님, 노……높은 점수를 주시는 데스우……와타시는 점수와 조회, 추천에 목마른 불쌍한 들실장 데스우…….

……데? 고평가인 데스우? 높은 점수를 주는 데스카?

……데퍄퍄퍄퍗! 역시 와타시는 위대한(그 순간, sckgjjjDrthcjfjdj님의 발길질이 찾아온다) 데복!

아, 아픈 데슥! 죄송한 데슥! 기어오르지 않는 데슥!

……데! 아, 안 되는 데스! 점수를 낮추면 안 되는 데슥!

하렘 어드벤처 평가란에 '이 작가는 맛간 작가임. 이런 거 보면 시간과 돈이 아까움. 그러니 보지 말라구! 느긋하게 이해하라규!'라고 적지 마는 데슥!

와타시의 멘탈이 부서지는 데샤아아아앗! (파킹!)

로리콤MK님, 뀨(9+9=18) x 5 = 90점! 100점 만점 중 9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시다니! 캄싸합뉘다!

예? 90점은 커녕 1.8점도 안 되는 점수라고요?

에이~우리 사이에 왜 그러십니까? 초창기 때부터 '로리, 다이스키이이잇!'을 함께 외쳐온 사이 아닙니까?

예? 업로드도 늦고 분량 반절을 대화와 묘사로 잡아먹는 호로 작가 새끼는 모르는 놈이라구요?

어허, 로리콤MK님! 실망이 크셨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 신뢰를 다시 되찾을 방법이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가서 말하려 했는데……크흠, 흠! 으흠! 로리콤MK님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귀를 가까이 좀…….

(귓속말 : ……외전에 로리캐릭 나와요. PROFIT!!)

흠, 흠. 하핫, 괜찮습니다. 회사가 늦게 끝난 거야 누구 탓도 아니니 말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로리 다이스키를 관철합시다!

고양이새벽님, 돌아와주셨군요. 이번에는 유린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시며 즐기시면 될 거 같습니다.

예? 유린이 아니라 세린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구요?

이제는 괴로워하는 세린의 모습이 아니면 만족하실 수가 없다구요?

……

…………

……………… 레드썬!

zxc54님, 개인적으로 너무 자기가 만든 세계관을 높이 평가하는 건 싫어합니다만……적절한 설명을 위해 하나의 예시를 들까 합니다.

길가메쉬나 솔로몬이 실제 업적으로도 유명하고 영령으로도 대단한 스테이터스를 가졌습니다만, 이 예시 하나를 두고 생각해봅시다.

[과연 유명 인물(실존)이나 영령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전 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대답드리고 싶네요. 실제 인물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기에 언급이 힘듭니다만, Fate의 길가메쉬를 보도록 하죠. 스테이터스에는 없지만 방심이 EX+고 UBW를 투영한 시롱이한테 '오노레~오노레 신나는 노래!'만 줄창 부르다 깨졌습니다. 극장판 UBW든 TVA UBW든 간에 말입니다.

물론 전투력에 있어서는 '다른 서번트 6명+Alpha'라는 것은 대단합니다만, 그 전투력을 가지고도 사쿠라한테 먹히지를 않나 아쳐한테 최후의 일격을 당하지를 않나. 방심이 있든 없든 간에 그 한계는 명확하며 세계창조나 신급의 기적을 행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가능했다면 오노레 디케이드 같은 대사는 나오지도 않았겠죠.

굳이 유린과 비교한다면 '정면승부에서의 단일 전투력은 길가메쉬의 압승. 하지만 지속적인 전투 및 시공차원의 창조라는 기적급의 행적 등을 생각한다면 범용성으로는 유린이 압승'이겠네요.

아, 그래도 페그오는 개창렬입니다. 진짜 개창렬이에요 ㅅㅂ…….

이상입니다. 더 자세한 비교와 탐구도 하고 싶지만 슬슬 시간이 모자라서요. 내일로 퇴근 업로드는 끝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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