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7 「22-6 : 부활하는 주인공 (6)」 =========================
이 소설은 늘 쓸데없는 잡학(雜學)이나 지식만을 전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공감(共感)한다. 그리고 동감(同感)이라 생각한다.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 인쇄 및 영상 매체를 예시로 들며 이상한 클리셰나 법칙 등을 설명하는 걸 보면 작가가 진짜 골수 오덕 새끼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지나쳤던 각종 오락 매체에 그런 클리셰나 법칙이 있을 거라고 깊게 생각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있다 해도 개인의 생각으로 치부하고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걸 말해봤자 오덕 새끼라고 비웃음만 살 뿐이니까.
그러나 작가는 다르게 생각했다. 학문(學問)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배움에 경계(經界)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학문도 유심히 보면 공통점이나 연관성이 있었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배운 지식이나 자료가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오덕 같은 말이나 자료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들은 ‘그딴 게 어디서 쓰이겠냐?’라며 웃을지 모르는 자료라 해도 지식이긴 마찬가지. 모르는 것보다야 아는 것이 나았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줄 아냐? 그런 걸 감안한다면 ‘그런 걸 어디에 쓰겠냐?’라며 가볍게 넘기는 놈들이야말로 병신이었다.
이 세상은 정보전(情報戰)이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윤택한 생활이나 높은 지위 혹은 권력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자기와 관련이 없다고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높은 자리나 권력에 올라가기를 거부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정보가 있어야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듯이, 지식이 있어야 그만큼 사용하거나 응용할 수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설 시작 부분에 모두가 알기 쉬운 예시나 이야기를 하며 클리셰나 법칙 등을 설명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고 볼 수도 있었다.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웃으면서 봐도 상관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클리셰나 법칙 설명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떡밥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딴 이야기로 분량을 처먹다니. 작가는 정말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았다.
이렇게 말하니 회도 날로 먹을 수 있으니 좋아하겠다며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작가는 회나 생선, 해산물(海産物)을 매우 싫어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회나 해산물을 좋아한다’라는 클리셰나 법칙에서 벗어난다고 봐야했다. 자기 자신마저 클리셰나 법칙 설명을 위한 예시로 삼다니. 작가도 확실히 정상인은 아니었다.
뭐,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늘의 클리셰는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의 반응’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되돌아오는 건 대부분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첫 번째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돌아온 경우’였다.
왜 있잖아. 벼랑이나 절벽으로 주인공이 떨어지면 ‘흥, 이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틀림없이 죽었겠지. 확인할 필요가 없어’라거나 ‘흥! 이런 곳에서 떨어졌으니 시체도 못 찾겠군. 장례할 수고를 덜어준 나한테 감사해라. 으하하하핫!’이라며 병신 같은 대사 주절거리는 놈들.
그런 놈들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절벽이나 벼랑에서 떨어진 경우 대부분이 ‘저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살아남을 리가 없다’라며 슬퍼했다.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 좋은데……다들 알잖아. 주인공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 같았으면 작품은 뭐 하러 썼겠니? 벼랑이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주인공이라니. 이건 좀 아니잖아…….
뻔하다 못해 모두가 예상할 만한 것이지만……당연히 주인공은 살아 있다. 일반적인 오락 매체에서는 벼랑이나 절벽 밑의 호수 혹은 강물에 떨어져 살아남는다는 게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아는 사람들한테는 지겹겠지만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시킬 수 있는 좋은 이벤트였다.
여기서 좀 더 흥미를 주자면……강이나 호수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은거기인(隱居奇人) 혹은 은둔기인(隱遁奇人)과 만나는 이벤트가 벌어지고는 했다. 그래, 무협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나오는 기연(奇緣)이 바로 이거였다.
가끔은 절벽에 있는 동굴 안에 떨어진다는 이벤트도 벌어지곤 했지만 기연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주인공의 갑작스런 파워 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한다지만 가끔씩은 너무 날로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생각해서 이야기를 써야 하기 마련이건만, 툭하면 기연에 파워업. 드래곤이나 대마법사한테 9클래스 마법 등을 전부 주입받아 킹왕짱 먼치킨 주인공이 되다니. 생각은 하고 쓰는 거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쓰니 나도 저렇게 써보자 싶어 쓰는 거냐?
물론 이 소설의 경우에도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받아들여 강해졌다는 이벤트가 존재는 했다만……거기에는 ‘세린이 강해졌지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만능의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라는 한계가 존재했다. 즉, 유린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미 좆망이 된 세상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와 같이 한계와 제약이 명백하다면 또 모를까, 허구한 날 기연 얻어서 존나 짱세진 후 무협 세상의 최강지존이 되다니.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닐까 싶었다. 뭐……정형화된 패턴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법이니 나 개인의 의견으로는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만.
클리셰나 법칙 자체를 깨뜨리면서까지 글을 적는 사람도 있지만……정형화된 패턴에 익숙해진 사람은 오히려 클리셰나 법칙을 깨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다. 괜히 이상한 전개가 되어서 흥미를 잃게 될 바에야 원래 정해진 법칙대로 작품을 진행하는 게 더 받아들이기 편해서 그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설이나 만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나 반응이 존재했다. 모두가 명작이라 일컫는 작품에 괜히 새로운 시스템 등을 집어넣었다가 망한 사례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에 ‘명작에 괜한 시스템이나 새로운 요소를 집어넣었다간 망한다’라는 법칙이 생기기도 했지.
대전격투 게임으로 유명한 KOF 시리즈에서는 매년마다 나오는 작품을 조금씩 다듬으며 내곤 했지만 99쯤에 등장한 4:4 매치. 도우미라고도 부르는 ‘스트라이커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팬들을 잃었다.
1999년쯤에는 PC방이 등장함에 따라 오락실이 쇠퇴하는 현상이 있었지만……거기에 더해 원래의 시스템에 이질적인 요소를 넣은 것이 화근이 되기도 했기에 사람들은 점점 KOF 시리즈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렇지만 새로운 요소나 시스템이 늘 나쁜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남코의 철권 태그 토너먼트에서는 오히려 태그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게 됐다. 오죽하면 이후의 시리즈인 철권4보다 태그가 더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너무나 재미있는 시스템이나 요소로 인해 의도치 않게 후속작을 팀킬하게 된 경우이긴 했다만……이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즉,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명작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에 새로운 시스템 혹은 요소를 집어넣는 것은 좆망으로의 지름길이다’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기연을 얻어 매우 강해진 상태로 돌아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을 물리친다는 패턴은 흔하디흔한 것이었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한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작품에서나마 행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비난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현실 썩었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되돌아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첫 번째 부류였다. 두 번째 부류는 별 설명할 필요가 없는데……응? 왜 설명할 필요가 없냐고? 어, 이거랑은 완전 다른 부류의 이야기니까. 궁금하니까 해보라고? 아, 쫌. 언제는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구시렁대더니 왜 이번에는 그걸 또 말하라고 하냐. 변덕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지금까지는 엿만 먹다가 이제는 엿 먹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되어서 맛이 간 주인공처럼 작가도 좀 맛이 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가, 캐릭터, 스토리 진행. 이런 것들이 마약 한 번 거하게 빨았는 놈들 같이 진행을 할 수 있겠냐? 무슨 약을 빨았는지는 몰라도 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두 번째 부류는 정말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이 시체 혹은 좀비 상태로 돌아왔다’였다. 조지.A.로메오 감독의 ‘시체 시리즈’로 유명하게 된 좀비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좀비. 혹은 구울이라고 불리는 ‘살아있는 시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했다.
물리거나 스치기만 해도 바이러스 감염 → 좀비로 변화 → 좀비가 된 후 주변의 사람들을 공격해 감염 혹은 살인이라는 테크트리를 탔기에 함부로 다가가거나 처리할 수조차 없었다. 총으로 쏘면 된다고 하겠지만……일반인들이 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냐.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를 갔다 오는 한국에서조차 총포상(銃砲商)을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총포상이 있다 치더라도 거기 가서 누구나 총을 구할 수는 없었다. 총기를 소지하기 위해서는 거주지역의 경찰서장한테 허가를 맡아야만 했다. 전과기록이 있거나 정신병을 앓았던 적이 있다면 이 단계에서 튕기게 된다.
설령 아무 문제없이 총을 얻게 된다 치더라도 그 총을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돈을 주고 산 총기는 경찰소의 총기고에 안치되었다가 일정 기간에 쓸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흔히 수렵(狩獵)을 할 무렵이 되면 총을 꺼내 쓰는 게 일반적이었고, 총을 사는 사람들도 사냥을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총 하나 사서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좀비 같은 것들이 우글거리면? 그냥 죽는 거지 뭐. 별 방법 있냐?
놈들과의 전투에서 스치기는커녕 피 한 방울도 닿으면 안 된다는 점은 매우 불리한 점으로 적용됐다. 놈들은 사람을 향해 막 다가와도 되지만 이쪽은 목숨 건 전투를 매번 벌이거나 피해야 했으니까.
물론 ‘죽은 사람이 시체(좀비) 상태로 돌아왔다’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좀비 시리즈가 많이 나오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좀비라는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있다 쳐도 군대가 나와서 해결할 일이었기에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군대는 나라를 지키라고 있는 거지 골프 치는 높으신 대가리놈들을 위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느 쪽이 됐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을 경우 그걸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기뻐하는 쪽.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영영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돌아온 것이다. 이걸 기뻐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기뻐하겠는가?
무협 소설의 경우에서는 벼랑이나 절벽. 강한 사파(邪派)와 싸우다가 행방불명이 된 주인공을 죽었다고 생각하며 그를 그리워한다. 이런 와중에 살아 돌아온 주인공을 모두 진심으로 반기며, 주인공은 지금까지의 울분과 굴욕을 풀기 위해 적을 쓰러뜨린다. 이게 대부분의 무협소설에 나오는 패턴이었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 법. 이게 바로 두 번째 반응이었다. 주인공의 동료나 친구, 가족한테는 축하할 만한 일일지 몰라도 상대방한테는 짜증을 유발시키는 소식일 뿐이었다. 화근(禍根)이 될 거라 생각해 죽였는데 더 강한 힘을 얻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안 그래도 귀찮은 놈을 처리해서 기뻐하는 와중에 주인공의 부활 소식이라도 귀에 들어가봐라. 곧바로 화를 내며 ‘내 이번에야말로 놈을 처리하고 말리라!’같은, 3류 악당이나 지껄일 법한 대사를 친다. 독자들은 당연히 예상했겠지만 이러다 처발리는 건 운명의 데스티니(Destiny), 전설의 레전드(Legend) 급으로 자명(自明)한 사실이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또한 그들의 기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게임을 하는데 어려운 보스가 나타났다 치자. 놈을 쓰러뜨리느라 열심히 모아두었던 회복 포션이나 무기 등을 최대한 소비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놈을 쓰러뜨렸는데 갑자기 ‘파워업해서 살아났습니다! 데헷☆’이라며 다시 튀어나온다면?
……시발 장난치냐!? 그렇게 살아날 것 같았으면 처음에 쓰러뜨릴 때 존나 약하게 설정해 놨어야지! 그렇게 부활할 거 같으면 시발 왜 처음부터 존나 강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 건데!? 안 그래도 강한 놈이 살아 돌아온 것도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뭐? 파워업해서 돌아왔다고? 이런 개좆같은! 그리고 ‘데헷☆’은 또 뭔데 대체!?
겨우 생각만으로 이렇게 빡칠 정도니 실제로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짜증났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겠지. 물건 던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런 짓이라도 안 하면 분이 안 풀릴 정도로 화가 났을 거다.
실제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기에 저러한 반응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주변에서 사람이 죽거나 행방불명되는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살아 돌아온다 치더라도 ‘시발, 돌아올 줄 알았다. 주인공 죽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는데 당연히 돌아와야지’라며 투덜거리곤 했었지.
평범한 인생이었기에 앞으로도 그런 이벤트를 겪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었지만……사람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다른 세상으로 소환될 줄도 몰랐는데 내가 다시 살아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자 이야기의 주체(主體)가 되어버린 나도 그런 걸 생각 못 했는데……날 보며 놀라고 있는 유린은 당연히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으음……날 보며 놀라는 걸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되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에 세 번째 부류도 추가해야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표정으로 주인공을 본다는 예시를 말이다.
놈의 모습은 그야말로 나 그 자체였다. 원래부터 나한테 빼앗은 몸이니 생김새야 예전과 달라질 부분이 없겠지만……핼쑥한 모습과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보니 내 몸이 저렇게 초췌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몸을 빼앗아 갔으면 관리라도 잘 해야지. 꼴이 그게 뭐야?
날 보며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니……한편으로는 웃겼다. 몸을 손에 넣고도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이라니. 틀림없이 독성에 의한 타격을 받은 거겠지.
지금까지 엿을 먹기만 했었는데 놈한테 엿을 먹이니 왜 유린의 성격이 저 따위로 변한 건지 쉽게 짐작이 갔다. 음, 남 엿 먹이기가 이렇게 즐거웠을 줄이야. 앞으로도 가능하면 열심히 하자. 유린 상대로.
“……안녕. 오랜만이야?”
최대한 밝은 함박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다. 날 보고 있던 놈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추가된 거 같았다. 음……인사를 너무 해맑게 했나? 보통은 간지 좔좔 흐르는 망토 같은 걸 펄럭이며 등장하기도 했다만 그건 내 타입이 아니었다. 망토가 없기도 했지만 너무 중2병틱해서 좀……그렇잖아.
“어, 어떻게……어떻게 니가……!?”
엄청 당황한 거 같았다. 늘 건방진 표정으로 자기 할 짓만 하던 놈이 저런 식으로 말을 더듬다니. 하긴……지금까지 신으로서 누릴 것 못 누릴 것 모조리 경험하며 자기 꼴리는 대로 살아왔을 테니까.
자기가 생각지도 못한 일, 상상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실제로 경험하니 패닉에 빠질 만도 하겠지. 뭐, 그렇다고 놈을 봐줄 생각은 참새 눈물만큼도 없다만!
“우리 유린, 놀라쪄염? 죽인 줄 알았던 세린이 돌아오니까 존나 놀라쪄염? 와오♪ 세린쨩 대승리! 다이쇼리(大勝利 ; だいしょうり - 대승리를 일본어로 발음한 것. 어그로를 끌 때 주로 쓰이고는 한다)~♬ 하핫, 표정이 왜 그래? 누가 보면 진짜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다 야!”
내가 웃으며 다가가자 놈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호호, 이거 봐라? 더 다가가자 거의 절망적일 정도로 두려워하며 놈은 뒤로 물러선다. 그 표정을 짓는 게 내 육체라는 점은 좀 짜증났다만……저놈과 똑같은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고 있으니 비긴 걸로 칠까?
“아, 아냐……이건 꿈이야……꿈이라고! 어, 어떻게 니가……!? 죽었, 잖아! 넌 죽었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보통 사람 같으면 ‘살아났다’라며 말하겠지만……다들 알듯이, 나는 꽤 맛이 간 놈이다. 놈이 당황하는 것을 그냥 ‘살아났다’ 한 마디로 진정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맛 간 놈이면 맛 간 놈답게 행동해야지.
보통 사람일 경우 ‘되살아났다’라며 멋진 말을 할 것이며, 중2병에 걸린 사람은 ‘지옥이 다 차서 돌아왔다’라거나 ‘너를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무덤에 들어갈 수 없다’같은……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오글거리게 만드는 말을 하기 마련이다.
중2병의 힘이 크다 못해 철철 넘칠 정도라 생각하는 것도 쪽팔릴 수준이다만……그것도 개인의 자유였기에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평범한 말은 하기 싫고 중2병틱한 말을 읊어대기도 싫었다. 그럼 뭐……평소대로 가야지. 미친놈답게 미친 것처럼 행동해야지, 그 외에 뾰족한 방법이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겠냐? 부활 같은 이벤트는 두 번 다시 못 겪을 테니까 이왕 할 거 끝내주게 해야 하지 않겠어?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끝내주게 말이다.
“표정이 진짜 왜 그래? 이 주변에 귀신의 집이라도 있냐? 아, 맞다. 지금 막 이런 말해서 묻고 싶은데……이 시공차원에 귀신이 있긴 있냐? 귀신이 있어야 정상인 거냐, 아니면 그것도 니가 만들어야 하는 거냐?”
놈은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날 보고 있을 뿐이었다. 손이나 다리, 몸이 조금씩 떨리는 걸 보니 공포가 완전히 가지는 않은 것 같군. 대화를 거는 귀신이 있나 없나 이전에 내가 물었던 것처럼, 이 시공차원에 귀신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 어떤지가 궁금했다.
나한테 힘이나 지식을 준 영혼들의 경우 이 시공차원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여기 있었던 거니까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는 유린의 허가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럼 뭐 하러 물었냐고? 놀려주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나한테 힘을 주고 사라진 영혼에 대해 알기는 아냐며 비꼬아주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아, 아냐……이건, 말도 안 된다고……!!”
완전 정신이 나갔군. 나를 괴롭히며 즐거워하던 유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똑같은 말만 중얼거리다니. 익숙하지는 않지만 비웃음을 한껏 띠며 놈한테 한 걸음 다가간다.
“말이 안 되기는? 그럼, 이 세상은? 니가 소환해서 억울하게 목숨 잃은 사람들은 말이 되고, 너한테 개기거나 반항하는 놈이 부활하는 건 말이 안 되냐? 와아, 쩌네? 자기가 필요할 때는 판타지고 뭐고 다 쓰더니 불리하다 싶으니까 전부 다 부정(否定)하냐? 와, 쩔어주는 이중 잣대 보소! 너 진짜 애가 왜 그러냐?”
다시 한 발짝 성큼 나가자 놈은 덜덜 떨면서 나를 본다. 이젠 무서워서 뒷걸음치는 것도 잊은 건가.
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돌리자 놈은 혐오스러운 것이라도 본 것 마냥 ‘히익’거렸다. 혐오스러운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저 바보 같은 새끼도 하나만큼은 확실히 깨달았겠지. 자기 눈앞에 있는 나는 결코 환상도, 헛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여자의 몸에 들어간 채 죽어야 했던 내가 괴물을 찢어죽이며 이런 곳에서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 놈이 받고 있을 정신적 충격은 내 생각 이상일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놈의 악행(惡行)을 꾸짖으며 부활을 선언한다면? 놈도 깨닫게 되겠지. 상황이 좆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는 비웃음을 담은 채 웃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심 어린 함박웃음을 지었다. 웃음을 띤 입에서 나오는 말답게 부드러움이 들어가 있었지만……내가 지금까지 하던 행동을 본 사람은 이미 알고도 남았겠지.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해서 내 입에서 좋은 말 나올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비웃음을 없앤 채 진심으로 웃고 있는 이유는 놈의 정신 상태와 판단력을 확실히 부수기 위해서였다. 다양한 표정과 여러 가지 말을 사용함으로써 철저히 놈의 정신 상태를 박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주마. 아니, 겨우 그 정도로 정신 상태가 파괴될 정도로 나약한 놈도 아니니까……확실하게 까고 쪼아주마.
“그거 알아? 너 엿 먹이느라 다시 살아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존나 고생했어. 와아……괴물 죽이는 게 어찌나 즐겁던지! 아! 앞으로도 계속 엿 먹여줄 테니 걱정 마. 지금까지 얻어먹은 엿에 비하면 이 정도야 조족지혈(鳥足之血 ; 새발의 피)이지. 자고로 사람이란 은혜를 입었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놈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귀신이나 이중 잣대 드립을 치며 놀려댈 때는 아무런 반응을 안 했으면서, 내가 괴물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하자 저렇게 눈빛이 변하다니. 함박웃음에 비웃음을 더한 ‘비웃는 함박웃음’ 표정을 지으며 난 과장스럽게 물었다.
“어랍쇼? 얼라리라네? 표정이 왜 그 따구냐? 왜? 귀신 있냐고 묻는 말에는 신경도 안 쓰고 대답도 안 했으면서 괴물 죽이고 너 엿 먹였다는 말에는 귀가 솔깃해져?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말이 나올 정도로 입이 근질거려? 야아~너무한 거 아니냐? 남이 하거나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하면서 자기가 묻고 싶은 건 질문하려 하다니! 존나 고성능 청각(高性能 聽覺) 가지고 계시네요, 씹새끼야?”
어느 정도 욕과 비난을 들어서일까? 놈의 떨림이 멎었다. 날 바라보는 눈빛은 내 육체의 눈동자였기에 마음이 좀 아팠다만……이미 나는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기에 몸에 연연할 생각은 없었다. 놈을 쓰러뜨리면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못 받는다 치더라도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왜? 떫냐? 내가 뭐 잘못 말했어? 맞잖아!? 시발, 너 듣기 싫은 건 귀에다 좆 박은 상태로 들으려 하지도 않으면서 기분 거슬리거나 너한테 필요하다 싶은 정보는 존나 잘 듣잖아. 이런 말 듣기 싫다고? 그럼 처음부터 그러지를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 너는 니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남을 죽여도 되지만 나는 안 된다, 이거냐? 시발, 오만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오, 그래. 그래야지~! 벌벌 떠는 것도 좋았지만 자기 잘못을 지적당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 또한 내 가학심(加虐心)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충분했다. 아, 혹시나 싶어 말해두지만 ‘가학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지, ‘내 몸을 보며 흥분했다’는 건 아니다.
작가나 캐릭터, 스토리. 모든 걸 다 따져 봐도 BL 요소 없다니까!? 내가 내 몸을 빼앗은 놈을 보며 투지나 분노를 불태운다면 모를까, 그걸 보고 ‘크큭……내 옛날의 육체를 범할 생각을 하니……하반신이 부풀어 오르는군……내 청년막은 과연 어떤 맛일까?’라며 즐거워할 요소는 먼지만큼도 없다니까?
나한테 한 방 먹었다는 것을 치욕으로 느낀 것인지 놈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만 저건 분노로 인해 얼굴이 빨개진 거지, 나랑 다시 만나서 기쁘다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게 아니다. BL 요소를 찾으려고 멋대로 해석하는 분이 있다면 제발 그만두자. 이건 그런 거 아니라고!
“너……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진정이 됐는지 짤막하게 묻는다. 현재 상황에 있어서 가장 궁금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묻는 걸 보니 정신 상태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은 모양이군. 크툴루 TRPG에 나오는 것처럼 정신력(Sanity)이 0가 되는 것도 보고는 싶었다만……그래서야 재미가 없으니, 잘 버텼다고 칭찬을 해야겠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놈을 보니 참으로 고소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놈한테 물었고 놈은 나보다 더 우위(優位)에 있었지만……지금은 그 반대였으니까.
내가 놈의 계획을 몰랐던 것처럼 유린 또한 내가 부활한 방법이나 이유, 앞으로 할 일을 모른다. 지금까지 놈이 느껴왔던 우위(優位)의 감각을 느껴가며 난 해맑게 대답했다. 최대한의 웃음과 호의(好意)를 담아서…….
“어떻게 살아났긴……알아서 잘 살아났지.”
고개를 한 바퀴 돌리자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음, 좋아.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다는 걸 재차(再次) 확인한 나는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너 엿 먹이려고.”
============================ 작품 후기 ============================
첫 문단부터 잡학 드립을 치더니 그 다음부터는 대놓고 삼천포로 빠집니다.
잡학과 클리셰, 오덕에 관한 언급(거기에 날로 먹는 거 좋아한다면서 회는 싫어한다는 것까지) →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의 반응 → 은거기인 및 기연 클리셰 → 갑자기 뜬금없이 KOF 시리즈 + PC방 세대 언급 → 좀비부터 시작해 발생, 감염 및 클리셰까지 → 다시 본편으로 복귀. 나니☆코레?
제가 적긴 했지만 확실히 정상은 아닌 거 같네요.
그치만 뭐 어떻습니까?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었잖습니까.
이제는 없어졌지만 '자지의 맹세'부터 시작해 공공장소에서 응원을 받으며 강간을 하지를 않나, 모녀덮밥으로 섹스를 하지를 않나, 낙태를 시키지를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인 제가 봐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삼천포로 빠지며 알기 쉬운 예시 + 모두의 공감을 사는 정보 + 본편에 적용되는 설정 등을 언급한다 해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 변명이 너무 과하다고요?
하핫, 그럼 잠시 여기로……예, 예. 제 앞에 서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자, 여기 이 손에 집중해주세요. 예, 그렇게요. 갑니다.
……레드썬!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로리콤MK님,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로리콤MK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수차례 거론했던 '로리, 다이스키이이잇!'을 실제로 적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로리 캐릭터를 내자니 아청☆아청이 철컹★철컹으로 변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안 적자니 아쉬움이 남고. 최근 또 아청법 관련으로 법이 강화된다고 하길래 이거 잘못 적다간 큰일나는 거 아닌가 싶어 결국 적지를 못 했습니다.
물론 아청법이라는 것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동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매우 훌륭한 것이며 최근 범죄 성향을 볼 때 그런 법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도 합니다.
헌데 범죄조장의 가능성이 있다며 2D 및 창작물에까지 관여를 하는 건……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좀 과한 해석이 아닌가 싶네요. 막말로 실제 아동청소년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건 그냥 그러려니 넘기면서 2D나 로리 관련 짤에는 징역형을 먹이려 하다니. 실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은 나 몰라라 하지만 2D 인권은 챙기려 하는 국가를 보니 존나 글 쓰기 싫어집니다.
로리 캐릭터는……일단 조아라측에 한 번 물어봐야겠네요. 물론 쓸 수 있다고 해서 '부히히힛♥ 이걸로 꼴릿꼴릿한 로리캐 이야기를 적을 수 있다능♬'이라는 말은 절대 안 합니다.
예? 거짓말 치지 말라구요?
음란마귀로 머리가 가득한 게 눈에 선하다고요?
……신이시여. 오늘도 정의로운 레드썬을 쓰는 것을……(이하생략 + 레드썬!)
러전님, 게임으로 치자면 캐삭빵(캐릭터 걸고 싸워서 지는 쪽이 캐릭터 삭제하는 거)입니다. 목숨 걸고 하는 거니 캐삭빵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남은 건 마지막 싸움입니다. 드래곤볼처럼 '흐아아아앗!'하며 몇 주 정도 시간 질질 끄는 일은 없을 겁니다.
sckgjjjDrthcjfjdj님, 주5일 연재라서 월~금에 한 편씩 올립니다. 주말까지 올려버리면 비축 분량과 몸이 남아나지를 못 합니다. =_=;
이상입니다. 그리고 개인적 사정이 생겨 앞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자정 업로드로 올릴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조회와 추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