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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218화 (218/235)

00215 「22-4 : 부활하는 주인공 (4)」 =========================

“하아, 하아……으윽! 크, 윽……뭐야? 뭐가 어떻……으억! 하, 아악!”

유린은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채 계속 신음을 뱉어냈다. 늘 자신만만했던 유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걸 걱정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린의 아내들은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된지 오래였다. 세린을 가지고 놀기 위해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주기에는 최고의 장난감이었지만……세린이 죽은 후에는 단순한 고깃덩어리일 뿐이었다.

단순한 고깃덩어리들이 자기한테 총애(寵愛)를 받을 이유는 전무(全無)했기에 바로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렸다. 왕궁에 남은 생존자는 오직 자기 한 명뿐이었다. 뭐든지 만들 수 있는 그한테 있어 시녀나 하녀의 개념은 거추장스러운 고깃덩어리들이 하녀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괴물들을 처리하는 건 그리 귀찮은 일이 아니었지만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만 했다. 다른 시공차원으로 가기 전에 최대한 힘을 모아 어느 정도로 힘을 쓸 수 있을지, 그 힘이 몸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점검해봐야만 했다.

이런 모습을 본다면 누군가 【신(神)한테 어울리지 않는 근면성실(勤勉誠實)한 모습】이라고 웃겠지만……유린은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근면성실이 신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것이야말로 바보 같은 헛소리였다. 20년 동안 계획한 것이 겨우 이루어졌다. 최선을 다해 계획을 짰는데도 20년이 걸렸는데 여유를 부리라고? 머저리 같은 헛소리나 진배없었다.

괴물 만나 죽어버린 머저리들 때문에 힘은 힘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했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될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했지만……예상 이상으로 너무나 약한 존재들이었기에 흔히 말하는 ‘밸런스 패치’를 도입해야만 했다.

13번째로 소환한 세린이 상상 이상으로 잘 따라와 줘서 망정이었지. 자기가 준비한 이벤트를 수행하며 강해질수록 유린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번에야말로 될 거라며 소환했던 13번째는 지금까지 소환했던 12명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굉장한 인재(人材)였다.

자신이 준비한 것이긴 하지만 이 세상을 상상 이상으로 사랑했으며, 잘 적응했다. 그 더러운 하반신을 박아대며 자기의 만족감을 충족시킬 때마다 인간성은 타락했고 상실됐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유린은 너무나 가슴이 벅차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이토록 자기 계획에 잘 따라주다니! 가끔은 이게 환상이나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괴물들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으며 점차 강해지는 세린을 볼 때마다 유린은 생각했다.

‘나는 성공했다! 봐라! 내가 소환한 용사를! 나한테 몸을 빼앗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저 어리석은 용사를! 내가 창조한 세상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며 하반신을 여기 저기 박아대는 저 어리석은 존재를 봐라! 저것이야말로 내가 다른 시공차원에 갈 최고의 재료이자 육체다!’

그래, 최고였다. 최고가 아닐 수가 없었다. 반년(半年) 정도의 시간을 들여 소환한 12명의 남자들이 실패였다고 친다면 세린은 잭팟(Jack-Pot)이라는 이름의 대박이나 다름없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12번 정도 인트로 스테이지에서 죽은 사람이 13번째 도전 만에 클리어. 단 한 번의 실패나 죽음, 컨티뉴도 없이 게임을 클리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잭팟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잭팟이라 칭하면 좋단 말인가?

자기가 준비해놓은 길. 자신이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한테 걸맞은 육체를 얻기 위해서. 규칙적인 전투와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하도록 만든 그 길에 세린은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이 세상에 소환된 순간부터 이미 그는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신세린이라는 청년은 그것도 모른 채 그저 날뛰었다. 그저 자기 손에 들어온 마법과 여자들을 미친 듯이 탐할 뿐이었다.

힘도 없는 주제에 그 꼴같잖은 ‘평화’나 ‘행복’을 위해 자기랑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어찌나 웃었던지! 혹시 신세린이 모든 걸 다 눈치 챈 것도 모자라 자기를 웃겨서 죽이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킥킥거리는 웃음이 나올 정도니 오죽했으랴!

자기한테 달려들 수도 없고 달려 들어봤자 상처 하나 줄 수 없는 벌레나 다름없었지만……자기한테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을 곱게 돌봐줄 정도로 유린은 성격이 좋지 못했다. 야만족인 안즈를 시켜 세린을 납치시켰을 때부터 이미 세린을 비롯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계획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웅처럼 나타난 자기한테 마음이 팔린 여자들을 볼 때는 정말 역겨웠다. 고깃덩어리들이……만들어준 조물주의 이름이나 정체조차 모르면서 나한테 혹하다니!

집안에 있는 애완동물이 주인을 성적(性的)인 의미에서 사랑하고 있다고 한다면 대체 어떤 인간이 그걸 기쁘게 받아들일까?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연기(演技)라고는 하지만 고깃덩어리들과 함께 이야기나 사랑을 나누는 것은 유린한테 있어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세린을 괴롭히는 건 즐거웠지만 그것 때문에 그 더러운 년들과 대화를 하는 건 정말 짜증이었다. 세린이 있던 세상에서 온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세상을 만들며 여자는 신물이 나오도록 많이 만들었다. 남자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괜히 자기들끼리 아기를 만들거나 하면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될 뿐이었기에 남성은 아예 배제시켜버렸다.

남자를 만들 바에야 여자를 만드는 게 더 나았다. 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요는 많다는 뜻이며, 그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이라도 세린의 전투의욕이나 사기(士氣)를 유지시켜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여자들이라고 해봤자 세린을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상의 가치나 감정을 둔 적은 없었다.

세린을 죽이자마자 힘의 일부(一部)로 만들었기에 더 이상 그 귀찮은 년들을 상대해줄 필요는 없겠다며 기뻐했었다. 남은 것들도 빨리 흡수해 실험할 것을 실험한 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하렘 어드벤처. 남자한테 있어서는 꿈의 세상이나 다름없는 곳. 그러나 실상은 자기가 만든 ‘남성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한 고깃덩어리들의 소굴’일 뿐이었다. 여자를 만날 일이라곤 추호도 없는 남자들을 소환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세상에는 괴물도 존재했기에 무조건적인 생존은 보장해줄 수가 없었다.

괴물을 없애면 좋지 않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의 육체는 자기가 쓸 그릇이었다. 이 세상의 신이나 다름없는 내가 괴물한테 제대로 반격조차 못하는 머저리들의 육체에 들어간다고?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맨몸으로 이기라는 소리는 할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도망이나 전투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기만 해도 충분했다.

시공차원계는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넓고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세린이 살던 지구(地球)라는 이름의 혹성(惑星) 외에도 수많은 은하계가 존재했지만……그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광활(廣闊)한 평행우주와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니. 지금 생각해도 오싹한 이야기였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이 시공차원계 어딘가에는 ‘자기와는 다른 유린’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자기가 차지한 세린의 몸과는 다른 그릇을 얻어 활동하고 있을 유린도 있을 테고, 다른 별에서 평범하고 살아가고 있을 유린이 있을 수도 있었다.

생각하자니 재수가 없지만……죽거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유린도 있을 거라는 가능성도 머릿속을 지나간다. 당연했다. 세상일은 절대 자기 좋을 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니까. 자신을 보라. 육체 하나 얻자고 20년을 들였는데 이보다 더한 시궁창, 더 쓰레기 같은 상황을 직면한 ‘유린’이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으, 윽……빌어먹을! 카학! 허, 컥! 쿨럭……!! 뭐, 냐고. 이건 대체 뭐냔 말이야……!?”

육체와 영혼을 얻었다는 기쁨에 잠긴 것도 잠시. 조금 전부터 아프던 몸은 더욱 더 큰 통증(痛症)을 호소했고, 처음으로 겪는 고통에 유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이라는 위치와 입장,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통증이란 단어와 감각은 그녀와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감각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린의 육체로 여자가 된 세린을 범할 때 고통을 느끼기도 했지만……그 고통은 뇌에서 분비된 엔돌핀과 아드레날린, 아무런 힘도 없는 세린을 범한다는 쾌감에 의해 쾌락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받아들이는 자가 고통을 쾌락으로 여긴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이번에는 달랐다. 이건 의심할 여지도 없는 고통이었다.

어째서? 왜? 왜 갑자기 몸이 아픈 거지? 세린의 몸에 무슨 이상이 있었나 싶었지만……그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세린은 몸을 차지하기 전부터 아픔을 호소했을 것이다. 자기가 아는 세린은 병도 없었고 갑작스런 통증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겪는 인물도 아니었다.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거였다.

그럼 뭐지? 자기 자신한테 이상이 있는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린의 몸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녀는 원래 정신체였다. 정신과 영혼만을 가진 상태였기에 질병에 걸릴 수도 없었고 고통을 겪는 일도 없었다.

애초에……질병부터 시작해 질병을 일으킬 만한 병균이나 해충(害蟲)을 아예 이 세상에서 배제(排除)시켜버렸는데, 대체 무슨 질병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계속되는 고통에 가슴을 움켜진 유린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그래, 생각해라. 세린의 육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신체인 자신이 병에 걸릴 리도 없고, 이 세상에는 질병이라는 개념 자체를 넣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어, 떤 새끼야……쿨럭! 아, 하악! 컥! 누구인지는 몰라도, 으큭! 흐, 아앗!”

고통에 괴로워하던 유린은 한 움큼의 피를 왈칵 뱉어버렸다. 칼로 찌르지도 않았는데 피가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틀림없다! 어떤 병신 새끼인지는 몰라도 자신을……자기가 만든 이 세상에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증오하다 못해 벗어나고 싶어 하던 ‘하렘 어드벤처’. 이 세상은 자기가 만든 하나의 시공차원이었다. 이 시공차원을 증오하고 싫어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지만……그 중 하나는 ‘자신과 연결된 세상’이라는 것이었다.

세린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럴 리는 없었고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자기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사람이 하렘 어드벤처를 파괴하기 시작하면 그 고통이나 피해는 자신한테도 오게 되어 있었다. 자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런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알려줄 사람도 없고 누군가한테 떠벌릴 생각도 없었다. 자신의 약점이나 다름없는 것을 대체 누구한테 떠벌린단 말인가? 게다가……이 약점은 어디까지나 ‘만약에’라는 상황을 가정해야만 성립되는 것이었다.

고깃덩어리들이나 세린 같은 놈들이 이 세상을 향해 공격할 리도 만무했지만, 공격한다고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자’. 신이라는 권위를 가진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만이 타격을 가할 수 있었기에 평소에는 거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기와 동급이나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자? 하핫, 생각해보니 참 웃겼다. 그런 놈이 있었다면 바로 접촉을 시도했겠지. 상대방이 우호적(友好的)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없는가에 관계없이 자기한테 해(害)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면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만 했다. 그게 자기를 위한 길이었으니까.

하렘 어드벤처를 없애고 새로운 시공차원으로 가려는 이유에는 이러한 사정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을 상처 입힐 자는 없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신은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상대방은 이 세상 어딘가를 박살내고 초토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충격만큼의 데미지가 유린한테 전달될 테니까.

정말 싫었다. 이 시공차원의 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이 세상 전체가 내 것이면 뭐하냐? 이 세상 전체가 내 약점이기도 한데!? 나보다 강한 놈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만약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굴러야만 하는 머저리 같은 신세라니!

그리고 지금, 그 머저리 같은 신세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난 그저 이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을 뿐인데! 증오스러운 대상이자 약점이나 다름없는 이 세상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을 뿐인데! 어째서 이토록 괴로워해야만 한단 말인가?

자신의 소망을 위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나 미안함? 하! 그딴 걸 왜 내가 가져야 하는 건데? 인간성을 잃기 쉬운 인생을 살아온 자기들 탓이지! 예전의 세상에서도 쓰레기였지만 소환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죽었기에 자신의 기대감과 마음, 꿈을 산산조각으로 만든 놈들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쓸모없는 새끼들! 너희는 ‘쓸모 있다’라는 말을 모르냐? 너희의 그 더러운 몸으로 날 위해 봉사하거나 할 마음은 아예 없냐? 어차피 가지고 있어봤자 쓸모도 없으니 내가 가지려던 것뿐이잖아? 그걸 위해 하렘 어드벤처라는 무대를 준비했잖아! 현실에서는 만날 수도, 안을 수도 없는 여자들을 준비했어! 너희의 성장을 위해! 나한테 몸을 바쳐야 하는 너희를 달래기 위해!

근데 결과는 늘 꽝이었지! 너무 허약하고 병신 같았기에 이 세상의 세밀한 부분까지 대폭 손을 대야만 했었는데도 죽어가는 놈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물씬 났었던 게 기억난다. 이미 죽어버렸기에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

“하, 하악……!! 으윽! 빌어먹을, 가봐야겠어……대체 어느 부근이지……!?”

고통에 겨워하던 유린은 스스로 고통의 근원지(根源地)를 향하기로 했다. 이 이상 내버려뒀다간 지금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뻔했다. 안 그래도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다. 카인이나 유린의 원래 육체(여성)였다면 통증을 못 느끼도록 만들면 그만이었지만……기껏 얻은 인간의 몸은 함부로 굴릴 수가 없었다.

여자가 된 세린을 범하는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이 몸을 자유롭게 쓰기 위한 연습에 쏟아 부었다. 세린이 썼을 때와는 달리 인간의 한계 능력. 육체가 가진 운동 신경을 최대한 많이 발휘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 수 있었지만……그와 동시에 생각지 못한 난점(難點)을 품게 되어버린 걸 생각하니 짜증이 또 솟구쳐 올랐다.

가장 큰 난점 중 하나는 ‘세린의 육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카인이나 유린의 몸을 비롯해 다양한 육체를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근력(筋力)이나 몸의 구조 또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자신은 정신체였으며 세린의 육체로 옮겨가기 전까지 쓰던 육체는 자신이 만든 임시 그릇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세린의 육체는 달랐다. 원한다고 해서 몸의 구조나 형태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기껏 얻은 소중한 육체를 날려버리다니……그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어리석은 짓 중 하나였다.

단순한 근력 강화 등은 쓸 수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어야 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근력을 발휘하려 했다간 골격이나 근육 등이 파손될 위험이 매우 높았기에 이 또한 육체를 얻은 기쁨을 없애는 단점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에 이토록 많은 한계가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었지.

텔레포트나 ‘자지의 맹세’ 같은 마법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그건 몸의 구조나 형태를 바꾸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치만……그런 마법들이 다른 시공차원에 가서 유용하게 쓰일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부수적인 마법들은 필요할 때 쓰면 그만이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다른 시공차원에 가게 된다면 그곳은 더 이상 ‘하렘 어드벤처’가……자신의 생각과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고치거나 바꿀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기가 가진 힘만으로 어떻게든 곤란한 상황을 헤쳐 나가며 싸워야만 하는 곳.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도 부딫칠 수밖에 없는 세상. 그게 바로 시공차원계였다.

그런 시공차원계에 가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누릴 수가 없었다. 창조주이자 절대자, 신(神)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한해서의 이야기니까. 다른 시공차원에 가게 된다면 평범한 사람보다 많은 힘을 지닌 사람. 단지 그뿐이었다.

자기가 만든 마법이긴 했지만……참으로 웃긴 마법이었다. ‘자지의 맹세’를 비롯해 낙태나 좆물캡슐 등은 어디까지나 인간성의 타락을 위해 만든 것일 뿐. 실제 전투에서 바지를 까고 좆을 내밀었다간 고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미쳤다고 고자가 되려고 그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세린이 좋다며 찬양을 하던 마법들은 어디까지나 섹스나 유흥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마법일 뿐. 전투에는 하등 쓸모가 없는 병신 같은 마법을 목숨 걸고 쓸 정도로 유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게 바보였다면 20년을 들인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서 육체를 얻었겠지.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적의 천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 외의 변수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만 해도 그러했다. 생각지도 못한 아픔이 일어나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절대적인 존재인 자신이……이 세상의 신인 유린이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피를 토하다니?

그렇기에 몸을 단련하며 육체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자기가 지닌 마법은 이 시공차원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겠지만……다른 시공차원에 가서는 쓰레기 같은 마법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렇다면 자기가 가진 육체를 최대한 활용해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摸索)해야만 했고, 이는 육체의 탐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가장 큰 난점 외에도 짜증나는 점은 많았지만……지금은 그런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고통의 근원지를 깨달은 유린은 잠시간이지만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야만족의 숲? 야만족은 다 죽었는데 왜 이런 곳에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만족의 숲? 야만족은 청록색 촉수괴물한테 몰살(沒殺)당한지 오래인데? 설령 그들이 무사하다 치더라도 신인 자신한테 타격을 입힐 수는 없었다. 죽었는지 오래고 살아있다 치더라도 타격을 줄 수 없는 고깃덩어리들. 그런 야만족들이 있던 숲에서 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길래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단 말인가?

고통의 근원지로 순식간에 이동했지만 곧바로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땅을 본 유린은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흙색이어야 하는 바닥은 탁한 색에 물들어 있었고 나무나 수풀은 마치 검은색 물감을 뿌린 것처럼 새카맸다.

“뭐, 뭐야 이건……?”

나무와 수풀을 만졌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수가……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창조주인 내가 손을 댔는데도 이들은 나한테 흡수되지 않는 거지?

평소라면 다가갈 필요도 없었지만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유린은 직접 손을 대기까지 했다. 원래라면 닿자마자 그들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바로 유린한테 흡수되어야 했지만……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나무와 수풀. 이래서야……이래서야 마치……전부 다 죽은 거 같잖아.

“……읏!?”

죽어버린 것 같은 수풀과 나무를 쓰다듬던 유린은 자신의 코를 찌르는 냄새에 신음을 뱉어냈다. 뭐, 뭐야……이 고약한 냄새는? 이렇게 고약한 냄새를 만드는 식물이 이 주변에 있었던가? 그런 식물은 만든 적이 없는데……그럼 대체 이 역겨운 냄새는 어디서 흘러오고 있단 말인가?

손가락으로 코를 잡은 채 인상을 찌푸리던 유린은 자신의 오감(五感)을 최대한 발휘시켰다. 시각(視覺)과 후각(嗅覺), 촉각(觸角)뿐만 아니라 남은 청각(聽覺)이나 미각(味覺)을 써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확실히 파악해야만 했으니까.

코를 틀어막은 채 귀를 기울여서 그런 걸까? 들린다. 저 멀리서 조금씩 들려오는 소리……. 괴물 특유의 신음 소리를 듣자 유린은 약간이나마 마음이 나아졌다. 그래, 이 숲에는 괴물들이 있다. 내가 만든 것들 중 가장 강한 청록색 촉수괴물이.

배가(倍加) 능력을 써서 괴물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야만족들을 모조리 전멸시켜버린 그 힘. 입에서 나오는 고열(高熱)의 공격은 그 어떤 공격보다 위협적인 것이었다. 붉은색 촉수 괴물 입에서도 산성(酸性) 물방울이 나오지만 그것과는 위력이나 범위의 궤를 달리했으니까.

자기가 만든 괴물 중 가장 강한 것을 생각하며 약간 마음을 누그러뜨리던 유린은 다시금 청각을 집중시켜야만 했다. 잠깐만……. 신음 소리? 괴물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신음 소리라고? 어째서? 자기들끼리 싸울 리가 없을 텐데?

유린은 침을 삼켰다.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늘 신으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지켜보던 자신한테 있어 ‘이 세상에서 자기가 모르는 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세린이 발버둥을 쳐도 자기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었기에 전혀 무서울 것도, 놀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 갑자기 알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질 않나, 고통의 근원지라고 여겨지는 야만족의 숲에 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이지지를 않나.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토록 불안하고 초조한 일이었던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에는 단순한 신음 소리였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뛰어난 청력 덕분에 그런 것도 있지만……걸어갈 때마다 주변에 흩뿌려진 검은 피. 잘려나간 촉수 등을 보니 싫어도 짐작이 갈 수밖에 없었다.

죽어나가고 있다?

괴물이……!?

내가 만든 최강의 괴물이 죽어나가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죽어? 괴물이? 배가 능력이나 마법 등에 죽을 수도 있긴 하지만……이 숲에는 더 이상 생존자가 없었다. 있다 치더라도 이곳은 야만족의 숲. 여기서 득실거리는 괴물들의 수는 100마리를 넘어간다. 사람 몇 명이서 어찌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죽다니?

대체 누구한테?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거지?

저 멀리서 계속 들려오는 죽음의 소리. 소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주변에는 피와 찢겨진 괴물의 살점이 즐비했다. 아무리 자기가 만든 작품이라지만 내장인지 촉수인지도 모를 정도로 찢어발겨진 시체로부터 나는 냄새를 즐길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았다. 역겨운 냄새는 숲을 메웠고 이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시였다.

대체 누가……?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주변에서 알랑거리던 고깃덩어리들은 모조리 흡수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남편을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줘서 그런 걸까. 그 여자들의 정신 상태는 그만하라며 울부짖었지만……그런 걸로 멈춰질 육체가 아니었다. 이 세상의 인간은 신(神)인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장난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령 있다 해도 그녀들은 임신 상태다. 도망친다면 모를까 싸울 수도 없는 상태. 심지어 이미 흡수까지 당했는데 대체 누가 숲에서 괴물들을 죽이고 있단 말인가? 이건 흡사……사냥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자기가 만든 괴물들이 사냥당하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저 멀리서 우렁찬 괴성이 들려왔다. 침을 꿀꺽 삼키며 허겁지겁 달려간 곳에는 방금 막 살해당했는지 움찔거리고 있는 괴물들로 가득했다.

이 상황에서도 괴물들의 죽음을 애도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유린의 눈동자는 괴물들을 이렇게 만든 원인이자 원흉을 찾으려 했고, 검은색 피와 핑크빛 살점 사이에 선 채 가만히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됐다.

그 ‘누군가’의 얼굴을 본 순간, 유린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귀신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그것도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좀 특이했지만……틀림없었다. 저건……저놈은……!!

“……안녕. 오랜만이야?”

자신한테 육체와 영혼을 빼앗긴 어리석은 자.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가 목숨을 빼앗은 남자.

……신세린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세린이 부활했음을 암시……라고 하긴 좀 그렇네요. 전편에서 이미 부활한 걸 보여드렸으니 암시라는 말은 안 맞습니다. 세린이 부활함에 따라 유린한테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걸 극대화시키기 위해 유린 시점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지금까지 악행을 저질러왔던 유린 입장에서 글을 쓰니 꽤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악당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드러낼 수 있기도 하구요.

작중에서 나옵니다만, 유린의 약점 중 하나는 '자기랑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신적(神的) 존재가 나타나면 패배한다'입니다. 사실 이건 약점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자기보다 강한 존재한테 패배한다는 건 게임 캐릭터든 현실이든 간에 둘 다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그치만 이 경우, 신적인 존재에도 등급이나 상성이 존재하므로 상황에 따라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유린은 그런 존재를 아예 못 만났기에 예상외의 사태에 대응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쉽게 말해 싱글 플레이만 줄창 하던 사람이 갑자기 온라인 플레이로 들어간 상황입니다. 치트키나 아이템으로 얼마든지 게임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는 싱글 플레이와는 근본 자체가 다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윤리적, 사상적으로도 충분히 타락한 면모를 보입니다. 뻔뻔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거겠죠.

'시발, 내가 이렇게 존나 노력하고 있는데 개잉여 같은 너네 몸 좀 쓰려 한다. 괜찮지? 괜찮지? ㅇㅇ안 괜찮아도 괜찮은 걸로 이해할 테니까 빨리 몸 내놔, 쓰레기들아!'

아니, 미천한 인간이라며 까는 주제에 그 인간 몸을 차지하려 하다니. 이건 어느 나라 어느 동네 개그일까요. 어쨌든, 이런 유린입니다. 실전 경험도 거의 없기에 다른 시공차원에 가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세린한테는 'ㅎㅎㅎ나님은 신이라서 존나 위대함'이라고 지껄였던 주제에 막상 가려고 하니 '테에에……잘못 갔다간 개박살 나는 테치……'라며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뭐냐, 너…….

결국 마침내 신세린과 만나는 것으로 이번 편은 끝납니다. 그 다음은 물론 배틀 페이즈! 이 단어가 익숙하신 분이라면 금방 이 장면을 떠올리실 겁니다.

속공마법 발동! 버서커 소울! (이하 생략) → 이제 그만둬! 하가의 라이프는 벌써 제로야! → HA☆NA★SE!!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sckgjjjDrthcjfjdj님, 다음 편부터 세린의 반격입니다. 여기까지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틀림없이 세린이 속을 벅벅 긁으며 도발을 할 겁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응? 표정이 왜 그러냐? 나님 죽은 줄 알았음? 부활킥! 씨바, 너님도 나님을 엿 먹였으니 나도 너님을 엿 먹어야지 ㅋㅋㅋ 그래야 SameSame 아님? 엿 머겅, 두 번 머겅, 뻐큐 머겅'이겠죠. 제가 썼지만 절대 착하기만 한 놈은 아닙니다.

로리콤MK님, 저도 아직 많이 신사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글을 써가며 신사력을 키우려 합니다. 아, 그렇다고 실제 세상에서 신사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는 뜻은 아니구요. 그러다간 철컹☆철컹! 슬램★좆망! 인생은 실전이야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아무리 약을 빨았다지만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zxc54님, 외전도 그렇거니와 다양한 의견을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유린의 처우(處遇)에 대해서는 생각 중입니다. 간단하게 죽이자니 그렇고 살려두자니 좀 걱정스럽고. 원래라면 '인실좆! 권선징악! 저스티스 슬래시! 악당은 죽었다!'로 가야겠지만, 여러 모로 마음에 드는 악역이라 확 죽여버리기가 어렵네요.

아, 물론 '히, 히익! 세린이의 아기를 임신해버려어어엇!'루트는 없습니다. 거기까지는 제 신사력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피해가 일어났습니다. 사망자가 아직까지 없다는 소식이 가장 낭보(朗報)라고 생각되네요. 독자분들도 지진에 대한 대처 및 피난 요령을 숙지하시며 늘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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