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205화 (205/235)

00202 「21-1 : 지옥(地獄) (1)」 =========================

다른 세상이나 차원. 흔히 말하는 이세계(異世界)에 넘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작품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많았던 작품이자 장르였기에 이런 식의 작품. 흔히 말하는 ‘이세계물’ 혹은 ‘차원이동물’. 넓게 보자면 ‘환생물’이라 불리는 이 작품군(作品群)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한두 번 정도는 읽게 되는 양산형 판타지나 다름없었다.

왜 있잖아. 여름이나 겨울. 심심할 때 친구가 책방에서 빌려온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아, 이런 작품도 있구나’하면서 읽곤 했던 기억. 1~2권 정도밖에 안 빌려서 그 후에 스스로 책방에 찾아가 그 후편을 읽는다거나 했었지. 재미가 없으면 그냥 읽다가 말았지만……어찌 됐든 심심풀이 삼아 한두 번 접하는 작품이 환생물이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이러한 경향. 이세계나 다른 차원에 넘어가 위대하거나 대단한 존재로 되살아나 살아간다는 스토리 라인이 매우 유행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세계물(異世界物)을 까는 작품도 나올 정도니까. 애니메이션이나 코미컬라이즈(작품을 만화로 만드는 것) 덕분에 이세계물은 더욱 더 잘 알려졌고, 이는 더욱 더 이세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촉매(觸媒)가 됐다.

왜 이세계로 가고 싶어 하냐고 묻는다면……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 인간관계, 학업 등. 세 개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그 중 하나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전부 다 문제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해서 얻은 결과가 아닌데 거기에 얽매여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 나처럼.

날 봐라. 부모님이 멋대로 빚을 만든 다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공무원 되라고만 하는데……이런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겠냐? 내 인생도 앞이 깜깜한데 ‘예, 부모님! 전 부모님이 만든 빚을 즐겁게! 열심히! 아름답게 갚으면서 살아가겠어요!’라며 눈을 초롱초롱 빛나게 만들고 싶겠냐고? 그런 놈이 있으면 지 혼자 그러라고 그래라. 난 아니다. 난 싫다. 존나 싫다고!

나만 해도 이 지랄인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할까? 이 세속(世俗)에서 살아가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부담과 사정, 안타까움.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겠지.

‘아아, 벗어나고 싶다! 이 빌어먹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집안을 잘 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쪼들리는 집안에 뭐 하나 특출난 것도 없는 내 인생! 이런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한다고? 젠장! 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망할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건데? 리셋! 리셋 버튼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도 내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고! 게임의 리셋 버튼 누르듯이!’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이다만……안타까웠다. 인생에 리셋 버튼은 없었다. 스타트 버튼도 없고 리셋도 없지만 엔드(End ; 종료 終了) 버튼은 존재했지. 죽음이나 자살. 사고 등. 다양한 결과로 나타나겠지만……여하튼 ‘자기 인생을 종료시킨다’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엔드(End)이긴 했다. 어지간해서는 안 누르는 버튼이다만.

학업이나 교우관계, 집안사정,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최근 유행하는 이세계물이나 환생물, 차원이동물을 주위에서 접하게 된다. 접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 외에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에 자연히 이런 생각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시발! 나도 저 작품의 주인공 같이 차원이동(次元移動)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거 보라고! 저놈들은 다른 세상에 차원이동해서 잘 먹고 잘 살아가잖아! 환생을 하기도 하고 차원이동을 하기도 하지만……저기 가서 존나 꿀 빨면서 여자를 후리며 살아가는 인생이라니! 씨발! 누구는 존나 개고생하면서 힘들게 사는데 누구는 다른 세상에 가서 호사(好事)를 누리며 인생을 살다니! 씨펄! 나도……나도 이세계 갈 거야!’

당연한 이야기지만……이세계는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도 영문을 모른 채 소환을 당했지만……그 이전까지는 이세계나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걸 믿지도 않았다.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곳에 소환 당했던 그 당시의 놀라움과 충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세계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기 인생을 속박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부터 시작해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최근의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등에 나오는 경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다른 세상에 넘어가면 ‘내(자기)’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 쩐다. 정말 쩐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생각 해봐라. 이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부끄러운 기억이나 경험을 겪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 실수 때문에 부끄러웠던 경험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이유? 우리는 사람이니까.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 인간이 실수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실수를 해서 즐거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수로 인해 부끄럽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겪은 사람들은 많았다.

이러한 실수나 실패 등은 다른 사람의 입에 거론되며 짧으면 몇 달. 길면 몇 년. 심하게는 죽을 때까지 따라갔다. 실수나 실패를 지우고는 싶었지만……그게 가능할 리는 없잖냐. 잊고 싶은 기억이나 사건을 지운다고? 그게 가능하면 나부터 했겠지!

어리거나 능력이 모자라면 당연히 하는 실수나 실패.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안타까운 추억을 평생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니. 그것도 사람들한테 비웃음이나 비난 따위를 당해가면서까지? 정말 좆같을 것이다.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의 실수나 실패. 흔히 말하는 ‘과거(過去)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사람들과 아예 연관이 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거론될 걱정도,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예전에는 그런 생각 아래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가는 게 몇 안 되는 해결책이었지만……현대에 와서는 그럴 수도 없게 됐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사람의 실수나 실패는 영원에 가깝게 남게 됐고, 이를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은 전무(全無)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을 쓸 수 없도록 만들거나 하면 또 모를까…….

사람들한테 거론되는 걸 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피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찾게 됐다. 이세계에 소환되거나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 흔히 말하는 【차원이동】이었다.

이것 또한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어, 아니군. 인터넷의 차단 이상으로 어렵고 실현성이 적은 일이었지만, 이런 일을 생각하게 될 정도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냐? 아무도 나를 모른다니! 현실에서는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 실수, 실패를 거론당하며 죽고 싶은 현실을 이겨내야만 하는 나날이지만, 이세계에서는? 판타지 세상에서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부터 시작해 과거도, 실수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작품이나 세계관에 따라 다르지만 환생한 사람. 흔히 말하는 ‘주인공’한테 호의(好意)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지! 이세계물이나 차원이동물에서 주인공을 적대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있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활약으로 인해 친분을 쌓게 되는 게 플롯이었고.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니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잊고 싶었던 실수나 과거를 바탕으로 최대한 미스(Miss) 없이 일을 처리하려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보다 호감도를 올릴 수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자기를 만든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데 누가 이세계에 오고 싶어 하지 않을까?

2) 최소한 주인공. 잘 되면 영웅이나 하렘을 만들 수 있는 환경.

- 까놓고 말해보자. 이세계나 차원이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뭘까? 마법도 있겠고 몬스터도 있겠지만……역시 하렘이겠지! 여자겠지? 현실에서는 사귀는 것조차 불가능한 여자들과의 색다른 만남! 매력적인 만남! 누구나 ‘아, 나도 차원이동해서 여자들이랑 사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의 만남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깔이 다양한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성격이나 얼굴! 가슴이나 엉덩이! 노출도부터 시작해 온갖 다양한 여성들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게 대체 누가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아 할까? 보통 세상에서는 평생 볼 수도 없고 사귈 수조차 없는 여자들이 득실거리는데?

여자만 그럴까? 이론적으로는 무리지만……이세계나 다른 차원은 흔히 말하는 ‘현대인 천재론(現代人 天才論)’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현대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 및 응용함으로써 모두로부터 천재, 혁신적인 인물로 불릴 수 있는 찬스를 가질 수도 있었지.

아, 사족(蛇足) 삼아 말해두지만……현대에서 배우는 것들. 사람이 성장하면서 배우는 것들은 전체적인 지식 면에서 봤을 때 매우 협소(狹小)한 것이기에 판타지 세상에 간다 치더라도 실제로 발휘 및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收斂)한다는 것을 확실히 적어둔다.

이세계가 항상 우리가 사는 현대보다 기술이나 과학이 낮을 리도 없지만, 설령 적용할 수 있다 치더라도 거기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 등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니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문제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치더라도 그걸 현실에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나 재료가 없기에 ‘현대인 천재론’은 거의 환상이나 다름없었다.

뭐……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리얼리티를 따지면 끝이 없을 테니 현대인 천재론을 비롯한 현실성 부분은 제외하기로 하자.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차원에 넘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비현실에 현실을 섞으려고 한들 잘 섞일 리가 만무하니 아예 모조리 비현실로 만드는 게 가장 편하겠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실의 지식을 활용해 사람들로부터 천재나 혁신적인 인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라며 온갖 찬사를 들을 수도 있다. 그 지식 덕분에 자기나 주변 사람들의 생활이 훨씬 더 윤택해지거나 편리해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도움도 안 되는 지식을 말해 자기 호감도나 점수가 떨어지는 이벤트가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하렘뿐만 아니라 천재나 혁신적인 인물. 이세계에 새로운 돌풍이나 파란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현실에서는 늘 힘든 일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건 때문에 고생만 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변모해버렸으니 말이다.

싸움이나 마법뿐만 아니라 지식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의 호감과 호의, 동경을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주인공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을 만한 배경이 마련되어 있다’고밖에 형용할 길이 없었다. 이 밖에도 장점이라 한다면…….

3) 환생이나 차원 이동 후 얻은 최강 클래스의 힘

- 다음 장점은 역시 누가 뭐라 하더라도 힘이겠지. 왜 있잖아? 【환생이나 차원 이동에 따른 힘】 같은 거. 9서클 마법이나 소드 마스터급 검술 실력. 아무런 노력 없이 주어지는 최강급의 힘. 그런 힘을 가지고 이세계를 여행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은 좀처럼 없겠지.

환생물이라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검술이나 마법 훈련을 하는 것. 설령 그런 집안이 없다 치더라도 기연(奇緣) 덕분에 소드 마스터에 달하는 검술 실력이나 9서클 마법 & 마나를 전수 받는 게 스토리의 기본이었지.

이런 ‘기연(奇緣)을 통한 파워업 이벤트’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이 좆같은데 이세계에서도 노력하며 찌질한 레벨업을 할 바에야 처음부터 특별 이벤트로 존나 쎈 존재로 태어나서 꿀이나 빨자는 태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 또한 그런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가 달라도 생각하는 건 똑같다’라는 건 이를 말하는 거겠지.

혹시나 아기가 아니라 자기 나이 그대로. 원래 쓰던 몸으로 차원이동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환생물이든 자기 몸이 그대로 옮겨오든 간에 강한 힘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게임으로 치자면 만렙으로 시작하는 2주차 게임 플레이라고 해야겠지…….

비실비실해 보이는 주인공이 나쁜 적, 못된 악당을 쓰러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위험에 처한 여자나 사람들을 도와주며 명성을 쌓는 것. 그 명성과 활약 덕분에 자기한테 은근히 마음을 보이는 여자들. 그런 것들을 소설이나 만화에서 보며 ‘아……나도 이런 경험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거다. 틀림없이. 어떻게 아냐고?

어허, 이거 섭섭하게 왜 이러시나!? 다들 알잖아! 어렸을 때 드래곤볼을 보며 에네르기파─지금은 ‘에너지파’로 변했지만……에네르기파! 나는 에네르기파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를 흉내내곤 했잖아!? 스트리트 파이터를 보며 아도겐, 오류겐, 아따따뿌루겐을 흉내내기도 했고!

응? 아도겐, 오류겐, 아따따뿌루겐이 뭐냐고? 음……이걸 모르는 아해(兒孩)들이 있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 스트리트 파이터2 만큼 유명한 것도 좀처럼 없었는데.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리니 좀……흔히 말하는 ‘아재’가 됐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다. 바로 공감(共感)이지.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부터 시작해 주인공이 하는 행동, 필살기 등을 흉내 내는 것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우리 또한 그렇게 행동했었고. 이는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 아래 발현된 행동이었다. 어른들은 좀처럼 안 하는 이유?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들지만, 따라 한다고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이미 깨달아버렸으니까.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되니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힘든 삶을 잊고 즐겁고 흥미진진한 세상을 겪게 된다. 갈 수 없기에 간접적인 경험, 대리 만족을 겪는 것으로밖에 접할 길이 없는 그 세상에 갈 수 있다니……! 그 세상에 가서 온갖 즐거운 경험을 하며 진정한 인생. 제2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짱이지 않겠는가?

만화 같은 곳에서는 정말 지겹게 나오지만……골목이나 으슥한 곳에서 여자랑 같이 놀자며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 그런 남자들한테서 벗어나지 못해 곤란해 하는 소녀(혹은 여자)를 구하는 이벤트를 직접 겪는다고 생각해봐라. 내가 장담컨대……틀림없이 웃을 거다. 이걸 읽는 사람도, 상상하는 사람도. 참고로 이거 적는 작가도 지금 웃고 있다. 작가도 쪽팔리는 건 아나 보다.

너무 오래 되어서 쓰기조차 민망한 ‘찝쩍대는 남자들한테서 여자를 구하는 이벤트’라니!? 이걸 적고 있는 작가도 ‘ㅋㅋㅋ아, 시발.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나도 존나 막장이군!’이라며 킥킥댈 정도로 고전적이며 민망한 이벤트다! 아아, 진짜 민망하다! 독자들도 ‘와, 이게 언제 적 이벤트임? 요즘에도 이런 이벤트 쓰는 작가 있음?’이라며 웃을 정도로!

그치만 이세계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이런 걸 보고 그냥 넘어갈 정도로 주인공은 나쁜 놈이 아니다. 개중에는 그냥 무시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만……그러면 이야기 진행부터 시작해 히로인과의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대부분은 도와준다.

찝쩍대는 이벤트부터 시작해 온갖 위험한 일, 악당들과의 사투 등에서 주인공은 승리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무참하게 패배하는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여인들이 악당들한테 강간 혹은 윤간 당한다는 이벤트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걸 적었다간 바로 불쏘시개, 쓰레기라며 온갖 욕을 듣겠지. 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드래곤마저 잡을 정도로 존나 짱쎈 주인공이니 여자들도 많이 꼬이고 므흣한 이벤트도 많이 일어난다.

이렇게 대책 없이 강한 주인공을 보며 일부의 독자층은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아무런 노력 없이 최강급의 힘을 얻은 주인공을 보며 ‘노력을 부정하는 캐릭터’라며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솔직히 말해 ‘맞긴 맞는데 어쩔 수 없다’라고밖에 대답할 길이 없었다.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 최근의 세상은 노력만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게 됐다. 내가 존나 싫어하는 ‘노오오오오오오력’이 바로 그런 예시였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며 ‘너희가 노오오오력을 안 해서 이렇게 된 거다! 이 무능한 쓰레기 연놈들!’이라며 욕을 하는데, 대체 누가 노력을 하고 싶어 할까?

설령 노력한다고 한들 다른 사람들의 재능이나 경제력(經濟力), 혈연 & 지연 & 학연. 그 유명한 삼연(三緣)에 처발리기가 일쑤인데? 이세계도 여기랑 마찬가지로 귀족이나 재능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날 텐데 거기서도 노력하라고? 노오오오오오력을? 제정신이냐?

다른 세상에 가서도 노력하라는 말은 ‘거기 가서도 현실에서 겪었던 형편없는 삶을 계속 살아라’라는 말과 똑같았다. 아니, 안 된다니까? 드래곤을 비롯해 존나 센 놈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퇴치할 수 있는 건 존나 강한 힘을 얻어서 그런 거다! 그런 강력한 힘없이 목숨 걸고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현실에서 살지! 현실에서 목숨을 위협받지는 않잖아!?

노력에 대한 가치는 점차 내려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노력해서 힘겹게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는 쉽고 간단하게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것에 더 많은 호감을 나타냈다. 안 그래도 노력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현실을 창작물 안에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겠지. 눈을 돌리면 바로 시궁창 현실이 보이는데 미쳤다고 창작물 안에서까지 그걸 보고 싶어 하겠냐?

노력(努力)의 가치는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양산형 판타지 소설 취급받는 작품들은 몇 년도 더 전에 나온 것들인데, 그 전부터 이런 취급을 받았으니……노력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쉽게 알려주는 좋은 예시였다.

우리도 이런데 일본의 라이트노벨이나 현실에서 ‘노력의 가치’가 얼마나 낮은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자기들도 노력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달으며 바랐을 것이다. 이런 시궁창 같은 현실보다는 이세계에 가고 싶다고. 거기 가서 새로운 힘을 마음껏 휘두르며 즐거운 제2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라이트노벨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부분에서는 세계 1위를 달리는 일본이다. 눈을 돌리면 이세계를 다룬 애니메이션 등이 바로 들어올 테니 그런 욕망과 간절한 마음은 더욱 커졌겠지.

이세계에서는 주인공이 영웅이나 선구자로 쉽게 불릴 배경이 마련되었다고 친다면 일본은 자기들의 욕망과 간절한 마음을 더욱 쉽게 증폭시키는 배경이 마련되었다고 봐야 했다. 한국에서 너도 나도 차원이동물, 환생물, 이세계물을 써 대서 사람들이 ‘이젠 질렸다. 뭐 다른 거 없냐?’면서 투덜거렸었는데……설마 일본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소설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작품으로 나타냈고, 이세계를 다룬 작품이 워낙 많아지니 작품들을 대상으로 ‘이세계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 =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일본 젊은 세대의 경향’을 알아낼 정도였으니……. 저 나라 사람들도 어지간히 고생하고 있구나 하는 동정심이 들었다.

지금은 이세계나 차원이동물을 활발하게 다루고 있지만 오래되면 그 장르나 작품군에 대해 슬슬 넌덜머리를 내겠지. 한국이 게임판타지나 환생물에 예전 같은 흥미를 보이지 않듯이 일본인들도 이세계에 관련된 작품에 대해 거부감 등을 나타낼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세계 붐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나……붐이 끝나든 말든 간에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원했을 것이다. 소원해봤을 것이다. 이세계로 가보고 싶다고. 그곳에서 진정한 삶, 제2의 인생을 펼쳐 보고 싶다고.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멋진 경험과 만남을 겪으며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다고 한 번 이상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소망하고 바랐다. 나이 27 처먹고 이세계를 꿈꾸니 병신 같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바랐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은 힘들고 괴로웠으니까.

좆같은 상황이 당시보다 나아질지에 대해서는 전혀 장담할 수 없었지만, 더 심해지고 좆같아질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는……그런 시궁창 속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소망했기 때문인 걸까? 나는 이세계에 소환됐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괴물과 마법, 판타지의 세계관을 접하며 나 또한 그러한 꿈을 꿨었다. 저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인생에서 벗어나 제 2의 삶. 새로운 삶의 장(章)을 펼칠 거라 꿈을 꿨었다.

사랑하는 여인들부터 시작해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일이 없었던 여자들.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던 내가 14명 이상의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랑받는 존재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직접 경험한 나조차도 이게 꿈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행복했었다. 왜 사람들이 이세계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똑똑히 깨달았고, 이 삶과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만을 바랐다.

……이 모든 일에 흑막(黑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내가 소환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나를 소환한 것은 유린이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나 외에도 12명이나 되는 남자. 그보다 적은 수의 여자들을 소환한 유린은 그들을 죽게 내버려뒀다. 자기 목적과 이익을 위해…….

이 세상에서 살면서 점차 알게 된 진실. 내가 오게 된 ‘하렘 어드벤처’라는 이름의 세상이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이며……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은 유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끝까지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도 그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대는 먹여줘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여자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마법이나 무기를 쓸 수 없게 된 것도 컸지만……난 더 이상 내 몸에 있는 게 아니었다. 영혼을 바치면서까지 찾으려 했던 과거와 평화, 행복은 내 상상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한테 남은 것은 유린이 쓰던 몸뚱아리. 빼앗긴 내 몸에서 나온 좆물을 머리카락에 끼얹은 채 부르르 떠는……작고 가냘픈 몸뚱아리 하나뿐이었다.

소드 마스터나 9서클 마법사의 활약 따윈 더 이상 없었다. 여자들한테 둘러싸인 채 행복을 겪는 이벤트 따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도, 미래도. 완전히 박살나버린 채 넋 놓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 나한테 남겨진 것은……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옥뿐이었다.

어디선가……지옥문이 활짝 열린 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 작품 후기 ============================

웃우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재연재에요 재연재!

지가 글 잘 쓰는 줄 아는 멍청한 작가 새끼가 드디어 연재를 재개했어요!

꼴에 작가라고 연재중단이나 한 덕분에 조회수가 반타작 이하로 내려가버렸어요!

이걸 계기로 작가도 각성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엑에에에에에────엣!

플로듀서, 독백 진행이에요 독백 진행!

거의 한 달이나 연재를 안 했으면서 스토리 진행이 없다니!

니트로 박사는 시간과 예산이 부족했지만 엄청난 로봇을 차례차례로 개발했는데

작가 새끼는 변명할 여지도 없이 귀차니즘 전력전개로 소설을 다시 쓴 거예요!

틀림없이 날로 먹는 걸 좋아해 회도 존나 좋아할 거예요!

이와아아아아아────크!

플로듀서, 롱스톤이에요 롱스톤!

죠노우치가 라의 익신룡한테 효과 공격을 받으며 질렀던 비명이 일본의 롱스톤을 가리키는 명칭이라니!

이딴 걸 가르쳐주는 시점에서 작가 새끼는 빼박캔트 듀얼리스트에요 듀얼리스트!

틀림없이 자작카드를 생각하며 실실 쳐웃는 쪼렙새끼임에 틀림이 없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쓰라는 소설도 안 쓰면서 망상은 실컷 하다니!

웃우우우우────웃! 잡아다 족치고 싶어요!

……예, 안녕하세요. 잡아다 족쳐도 할 말이 없는 작가, 신세린(메리사)입니다.

결국 10월을 다 보내지 못한 채 연재를 재개했습니다. 불펌 관련 법적 대응은 아마 진행 중일 테고, 저는 사실상 결과를 기다리는 거밖에 할 일이 없더군요. 그리 잘난 놈은 아니지만 자기 작품이 무단 불펌당한다는 걸 깨달으니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치만 주눅들어봤자 남 좋은 일만 되는 거겠지 싶어 어떻게든 발악하며 글을 썼습니다.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일밖에 안 남았네요.

예전에도 적었지만 이 소설을 통해 나오는 '시공차원계'라는 개념은 예전에 쓴 소설들에도 적용되는 설정입니다. 전자책으로 쓴「아스라이」에서는 대놓고 이걸 언급했으니 하렘 어드벤처는 사실상 아스라이가 끝난 이후의 사건들 중 하나라고 봐야겠죠. 사건이든 세계관이든 간에 아스라이 이후의 것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한테 있어서도 그 작품은 여러 모로 뜻 깊은 글이기도 했거든요.

어찌 됐든 다시금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사실상 마무리 단계. 조아라의 텍본러 개과천선 이벤트라는 희대의 병신급 이벤트부터 시작해 불펌 등의 생각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만……그렇다고 '와타시, 소설 쓰는 거, 야메루!'라며 도망칠 수는 없겠죠.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도, 노블레스 작가로서도. 첫 번째 장편 소설인 하렘 어드벤처를 어떻게든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물론 내용과 진행방향은 독자분들의 생각과 좀 다르겠지만……그 점은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늑대자리님, 플레이어드님, 200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새벽님, 원하시던 '헤헷, 주인공이지만 여성으로 TS되니 별 볼일 없는 걸레구만!'이라는 전개가 곧 이뤄질 거 같습니다.

크르릉님, 코멘트에 대한 답변은 '……!?'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로리콤MK님, 주인공의 TS + 절망엔딩으로 200화를 맞이해버렸습니다. 막☆장!

엘리아님, 버프18 당선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막상 되니 묘한 기분이네요. 돼서 기쁘긴 한데 불펌 타격이 좀 커서……마냥 기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헵시엘님, 말씀하신 대로 NTR 요소는 어쩔 수 없이 넣었지만 후회 중입니다. 덕분에 작품을 보시는 분들도 많이 좀 거부감을 나타내셔서……이러한 요소는 후속작에 넣지 않도록 유의할 생각입니다.

zxc54님, 두 번째 정주행 해주시니 기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이 코멘트를 읽으니 빨리 나머지 이야기를 올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남은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12월에 끝날 거 같으니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약을 빨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