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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204화 (204/235)

00201 「20-10 : 데드 엔드 (11)」 =========================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 해도 충분히 절망적이었건만 아직도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이야기들이 남아있다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풀어주는 이야기 보따리라면 모를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더욱 악화(惡化)시킬 뿐인 이야기라니.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프레그넌트에서 그 귀찮은 짓까지 하며 나타났을 때, 아내들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생겼는지 알아? 나를 경외(敬畏)하는 마음이 생겼더라! 극적(劇的)인 등장과 활약 덕분이라지만……웃기는 이야기잖아? 너한테 온갖 입 발린 말과 아첨, 아부를 하며 하반신을 갈구하던 년들이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기는 모습이란……!!”

믿고 싶지 않았다. 저건 모두 거짓말이야. 정신지배(세뇌)로 아내들의 마음을……감정을 지배한 것뿐이라고……!!

“아니지! 그건 아니지! 정신지배로 지배했다지만……걔네들 마음에 조금씩 외도(外道)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을 때 그 꼬라지란……하핫, 웃겼다니까? 너도 너 좋을 대로 하반신을 이리 저리 박아댔었는데 니 아내들이란 년들도 은근히 불륜을 원하다니! 어휴, 이렇게 지조 없고 절조 없는 하반신을 가진 년놈들끼리 만났으니 천생연분이라 생각했었겠지! 쯧쯧!”

혀를 차는 소리에는 비웃음이 한껏 깔려 있었지만……도저히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아내들이……카인을 원했었다고? 그럼 대화는? 나를 불러다가 모두 같이 대화를 나누었던 그건 뭐였는데?

“뭐긴 뭐였겠어? 자기 자신들의 마음을 얼버무리기 위한 거였지! 생각해봐! 너랑 카인을 비교해보라고! 외모나 힘은 물론이거니와 가진 힘이나 권력은 비교할 필요도 없지! 배려심 많은 성격부터 시작해 밤일까지 잘 하는데 마음을 안 빼앗기는 게 이상한 일 아니겠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걔들은 내 아내야. 내 거였다고……!!

“오오, 그래. 그런 생각! 다른 사람을 자기 물건처럼 생각하는 것에도 그 여자들이 분노를 나타내더라? 그걸 알게 된 건 니가 카미유에 간 후였지만 그 전부터 이미 카인한테 푹 빠진 상태였었지! 널 불러 이야기를 한 이유? 간단해. 너한테 사정을 설명하면서 자기들한테 일종의……암시? 마음을 얼버무리기 위한 거였지! 우리는 이렇게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으니 다른 마음을 먹어도 분명 용서받겠구나, 문제없겠구나 하고 말이야!”

“거짓말하지 마! 적당히 지어내서 말하지 말라고!”

내 딴에는 외침이었지만 그 안에는 울먹임과 부탁의 어조(語調)가 들어가 있었다. 그 외침은 유린의 이야기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느낌이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너도 알고 있잖아! 이게 진실이라고! 게다가……마음을 빼앗긴 건 걔들이지만 니가 그걸 탓할 군번이나 돼? 아까 말한 거 안 듣고 뭐 했어? 너도 좋을 대로 자지를 마구 박아댔잖아? 안즈나 이루이를 아내로 삼을 때도 다른 년들 필요 없다며 막말을 했던 주제에 어딜 이제 와서 착한 척이야, 착한 척은? 참 나…….”

버림받았던 나한테는 안즈와 이루이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더욱 더 그녀들을 갈망했었다. 내 아내들을 욕하며 그녀들을 안을 때는 쾌락과 승리감이 느껴졌었지만 섹스가 끝난 후에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며 후회감과 패배감만이 나를 돌봐줬었지.

“니가 말했잖아? 자유의지(自由意志 ; Free Will)라고. 정신지배는 둘째 치더라도 그녀들의 마음은 그녀들이 선택한 거야. 그럼 너도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어? 설령 그 선택이 너를 속이고 카인한테 보지를 벌려주는 선택이라 해도 말이지……킥킥!!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은 너의 선택과 행동을 존중해야 하지만 너는 안 그래도 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우리 세린 학생? 우쮸쮸? 우쮸쮸!?”

압도적인 차이. 권력이나 힘, 위치뿐만 아니라 논리나 정당성에 있어서도 유린은 나를 훨씬 초월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너무나 옳았기에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늘 자유의지를 들이대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라고 했던 주제에 이제 와서 불리해지니 존중을 거부하려 하다니……!!

“야아, 진국이었어 진국! ‘몬스터 테이밍’이 걸려 있든 말든 상관은 없었지만……날 위해 사람을 죽이는 괴물을 만들어주면서도 즐거워하던 아스카의 모습! 나름 귀여웠다니까? 가능하면 사진이라도 주고 싶었을 정도로! 나중에 그 사진 가지고 딸치면 대박이었을 텐데! 큭큭……!!”

“이, 개새끼……개 같은 년……!!”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역시……아스카를! 아스카를 써서 초록색 촉수괴물을 만든 거였어!

“당연하지! 니가 찾아오는 동안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스스로 굴복해서 복종되기를 바란 고깃덩어리들을 상대하는 것도 싫증이 났으니 그런 거라도 하며 재미 좀 봤었지. 따분한 건 질색이란 말이야.”

“니 따분함 풀어주려고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초록색 촉수괴물 외에 그 많은 괴물들은 또 뭐였는데?”

레이프 안에 우글대던 좀비 타입이나 파란색 촉수괴물에 대해 물으니 유린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아아, 그거? 주민들을 모조리 괴물로 만든 거지. 파란색 촉수괴물은 적당히 소환한 거고. 소환하자마자 지들끼리 싸우는 걸 보니 가관이더라? 널 맞이하기 위해 괴물끼리라도 공존할 수 있도록 정신을 좀 만지작거리긴 했는데……어휴, 영 아니더라고. 역시 너 같이 영혼과 자기의지를 가진 사람이랑 있어야 좀 재미있지. 수준이 맞는 사람끼리 놀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럼 내 수준이 더 높네. 넌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밖에 안 여기는 좆같은 년이니까.”

통렬한 모욕이었지만 유린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아니지. 도구? 도구로 여겼을지는 몰라도 배려는 했어. 생각해봐. 내가 아스카를 죽였다면? 니 아내들을 무참히 죽여서 가지고 놀았다면? 지금 니가 겪고 있는 상황보다 훨씬 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너한테 선물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나한테는 쓸모없는 고깃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난 걔들을 살려줬어. 걔들을 위해 쾌락을 주기도 했지!”

자기가 한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난 거기에 재빨리 반박했다.

“살려두기‘는’ 했지. 너한테 이용당하고, 조종당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살아간다’라는 의미로 간주할 수 있으면 말이지. 내가 원하는 형태로 살려둔 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한 일을 존나 잘 한 것처럼 포장하기는…….”

내 말에 살짝 표정을 찌푸렸지만 곧 웃음을 되찾은 유린은 건방지다는 투로 반격했다.

“그러는 너는 존나 잘 했던 거 같다? 정신지배를 받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자기들을 위해 헌신했던 너 대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카인한테 마음을 빼앗기다니. 어이구, 그렇게 잘 하셔서 결과가 이렇게 나왔어요? 우리의 용사 신세린 씨? 네?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게 불륜과 외도, 버림받았다는 결과인데……기분 째집니까?”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한 번 더 돌격을 하고 싶었지만……그 결과는 훤히 보였기에 덤벼들 수도 없었다. 무참히 카운터 어택을 맞고 나동그라지겠지.

젠장. 왜 하필 만나도 저딴 놈을 만났을까? 소설이나 만화 같은 곳에서는 다른 세상,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면 쩔어주는 무기나 마력, 육체를 받으며 먼치킨 짓을 하는데……왜 나는 이 따위 결과를 맞이해야만 했을까? 운도 지지리 없지! 하필 와도 이딴 미친년과 만나버리다니……!!

“여기 외에도 있을걸? 나 같은 짓 하는 놈?”

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생각을 읽혀서 그런 게 아니라 뒤에 한 말 때문이었다.

“……너 같은 놈이 또 있다고?”

유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른다는 제스처였다.

“있을지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 그렇게 넓디넓은 시공차원계인데 나 같은 놈이 하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 아냐?”

나중에 묻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 묻지 못했던 말. 시공차원계(時空次元界)라는 생소한 단어가 다시금 기억에서 되살아난다. 그게 대체 뭔데?

“시공차원계란……음. 뭐라고 해야 하지? 너 평행세상(平行世上)이나 평행우주(平行宇宙)라는 말 들어봤어? 왜 있잖아. 패러렐 월드라고 하는 거. 이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이나 우주에 ‘신세린’이라는 사람이 또 존재하고, 그 사람이 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알긴 알지. 영화나 소설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는 개념이었기에 싫어도 한 번 이상은 들을 수밖에 없었다. 평행세상이나 평행우주. 혹은 평행차원이라는 말 등으로 묘사되는 그 개념은 아주 쉽게 말하자면 【차원이동】의 개념이었다. 물론 차원이동보다는 훨씬 더 고차원적인 개념과 세부적인 차이를 동반한다만…….

“그럼……이 외에도 다른 세상이 있다고? 니가 만든 세상처럼?”

유린보다 더 미친년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까? 그걸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얘만 해도 미치겠는데 얘보다 더 똘끼 충만한 괴물이 존재한다고? 대체 얼마나 내 상식과 상상을 초월해야 속이 풀리는 건데?

“너 참 무례한 놈이구나? 있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 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단정 짓기는…….”

자기가 디스 당하는 건 싫었던지 은근히 자기는 덜 하다는 식으로 자기 방어를 한다.

“여기뿐만이 아냐. 음, 뭐라고 해야 하지? 너희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나 영상매체, 인쇄매체가 있었잖아? 어벤저스라는 영웅집단부터 시작해 건담, 저승이나 사후세계 등. 너희는 그걸 일종의 작품이자 설정.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만……그거 알아?”

유린은 자세를 낮추었다. 그 웃음에는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흥미진진하다는 감정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자기도 확인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은근히 알려준다는 즐거움 또한 서려 있었기에 내 뇌는 더욱 더 빨리 나한테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해야만 했다.

“……실제로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

난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얘가 미친 게 아닌가 싶었지만……음, 아니다. 얘는 ‘원래부터 미친년’이었다. 미친년이 미친 짓이나 나사 빠진 말을 하는 건 지금까지 봤기에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어, 그러니까. 니 말은……그런 세상이 존재한다고? 마블코믹스나 건담 같은 판타지, SF의 세계관이? 시공차원계에?”

유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 말을 들은 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이 말은 해야겠다.

“저기 있잖아. 내가 너랑 존나 싸우기도 했고 영혼까지 빼앗기긴 했는데…….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거든.”

내 새삼스러운 걱정에 그녀는 말하라고 했다. 말하라고 했으니 하자.

“대가리 괜찮냐?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정신병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번에는 유린이 한숨을 쉬었다. 얘가 한숨 쉬는 건 거의 못 봐서 그런지 엄청 색다른 느낌이 났다. 얘도 어지간히 답답했나보다.

“대가리가 괜찮아서 하는 말이거든? 있잖아. 나 외에 이런 짓을 하는 놈도 그렇지만……니가 살던 세상이나 지구가 한두 개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 아니거든? 시공차원계는 말 그대로 온갖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곳이야.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대규모 전투, 별의 미래를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어. 신세린이라는 다른 이름의 니가 직장에 다니며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도 이해가 안 돼?”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믿을 수가 있겠냐? 시공차원계라고? 그런 세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럼 여기는? 내가 만든 ‘하렘 어드벤처’에서 온갖 향락을 누리다 여기까지 타락한 건 어떻게 설명할래? 그건 나라는 존재부터 시작해 니가 지금까지 만났던 아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인데?”

본의 아니게 내 아내들(유린은 아무래도 좋다)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내뱉게 된 나는 내가 한 행동을 후회했다. 그녀들을 게임 캐릭터 같은 것으로 보지 않겠다면서 은근히 속으로는 ‘저 여자들은 그래봤자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가……. 아내들이 나를 싫어할 만도 했다.

“니가 말했잖아? 바람이 눈에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마찬가지야. 이 세상을 포함해 시공차원계에는 니가 상상도 못 할 일, 꿈도 꾸지 못했던 세상이 가득해. 지금 니가 겪고 있는 세상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시공차원계를 미친 헛소리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그 무식함과 바보스러움에는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가능하면 찬사(讚辭) 대신 내 과거와 아내들을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미 영혼까지 바친 놈을 그렇게 격렬하게 비난하고 싶냐? 디스의 표현이 더욱 정교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안 그래도 짜증인데.

“자, 이제 궁금한 건 거의 다 풀렸지? 나도 엄청 즐거웠어.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한 건 난생 처음이었거든. 어휴……너무 말을 많이 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라니까? 넌 사람 속 긁는 재주만 있는가 싶었는데 대화를 즐겁게 만드는 재주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어.”

칭찬 아닌 칭찬에 이를 갈았다. 이제……끝인가. 영혼까지 빼앗긴 이상, 나한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망도, 저항도 불가능하다면……나한테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 지금까지 그토록 피해왔던 죽음을 이렇게 맞이하게 되다니. 나도 참 기구한 운명이었구나 싶었다.

“응? 무슨 소리야? 너 안 죽일 건데?”

얘는 진짜 왜 이럴까? 지금 내가 죽음의 공포와 직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중인데 갑자기 저딴 말을 꺼내다니? 두근거리는 가슴이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날, 죽이는 거 아니었어?”

죽이지 않을 거라는 말에 희망을 얻긴 했지만……그렇다고 유린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년은 지금까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괴물이다. 악마 같이 날 회유(懷柔)하여 영혼까지 얻어낸 주제에 이제 와서 죽이지 않겠다니. 오히려 그 꿍꿍이가 무엇인지가 더 신경 쓰였다.

“내 성격 잘 아네. 응, 안 죽일 거야. 널 왜 죽여? 지금까지 날 위해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과 즐거움까지 제공해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죽이다니……예절을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 안 해?”

사람을 자기 멋대로 소환해 죽이게 내버려두는 시점에서 이미 예절 운운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그녀는 내 무례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불안할 정도로 싱글벙글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지……? 날 죽이지 않는다고? 육체와 영혼은 이미 얻었을 테니 내 정신은 방해만 될 텐데? 어째서……?

“그야……이렇게 하기 위해서지.”

유린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하는 소리가 나자 시야가 잠시 어질해졌다. 빈혈 증상? 난 그런 거 없는데? 땅을 짚어 다시 일어나려는 찰나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놀랐던 적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로…….

“……뭐야, 이게? 내 손이……왜 이래?”

이상하다. 내 손이 원래 이렇게 하얀 색이었던가? 갑자기 눈에 띠게 하얗게 변한 내 손을 보며 난 위화감을 느꼈다. 내 몸을 본 순간 난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다름 아닌 내 몸을 보았는데도 말이다. 자기 몸을 보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겁쟁이냐고 묻는다면……난 이렇게 되묻고 싶었다.

【니 몸이 순식간에 여자로 바뀌었는데 너 같으면 안 놀라겠냐?】

“으, 어억! 으아앗!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뭐, 뭐야 이거!? 이게 뭐냐고? 왜 내 몸이 여자가 된 거지? 투명한 네글리제에 하얀 피부! 내 다리에 있어야 할 자지마저 완전히 사라진 그 모습은……지금까지 내가 보던 ‘유린’의 몸이었다! 뭐야, 뭐냐고 이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혼란스럽던 뇌와 몸은 단 한 마디의 목소리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틀림없는 내 목소리. 27년 동안 나를 대변해주던 ‘신세린의 목소리’였으니까. 벌벌 떠는 고개를 간신히 들어 옮긴 시선 끝에는…….

“드디어……드디어 손에 넣었어. 아아……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어! 드디어 손에 넣었다고! 이게 바로 ‘육체’구나! 대단해! 힘과 피가 몸을 돌아다니는 게 확실히 느껴져! 하하, 이거 보라고! 아직 손에 넣은 지 1분도 안 됐는데 자지가 불끈거린다고!? 정말 끝내주는데!? 아, 아하핫! 와하하하핫! 쩐다아!”

지금까지 내가 쓰던 육체.

【신세린의 몸】이 서있었다.

“……내, 내 몸……! 어떻게 니가……내 몸에 들어간 거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간신히 쥐어짜낸 질문. 내 몸에 들어간 유린은 내 몸으로 괴상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눈으로 내 몸이 나한테 대답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말했잖아! 육체와 영혼은 내 거라고! 너, 생각했었지? 육체와 영혼을 차지하면 정신은 어떻게 되냐고? 간단하잖아! 니가 겪고 있는 그대로야! 바로 정신을 다른 육체에 옮기면 그만이지! 니가 들어간 그 몸은 사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체로 만들어진 일종의 그릇이긴 하지만……뭐 어때? 중요한 건…….”

알몸인 내 몸을 쓰다듬으며 유린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위조차 하지 않았는데 정액이 찌직거리며 튀어나오는 걸 보니 느끼고 있는 쾌감이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몸을 얻었다는 기쁨이 육체적 쾌락을 초월했다는 건가?

“이제 이 몸은……내 거라는 거지……으, 으흐흣! 으하하하! 아하하하핫! 조오오~온나 좋아! 정말 쩐다고! 와아, 진짜 미치겠어! 미치고 날뛸 정도로 좋아! 아아, 이런 느낌이었구나! 고깃덩어리들을 상대할 때보다 백 배, 천 배! 오만배 이상으로 쩔어줘! 이거 봤어? 좆물이 나오는 거 봤냐고? 아아, 이 느낌! 이런 쾌감 때문에 니가 하반신을 마구 흔들어댔던 거구나!? 아아, 이해하겠어! 그래, 이해하고말고! 이 정도면 자지를 여기저기 박아댈 만하지!”

처음으로 겪는 사정(射精)의 쾌락에 미친놈처럼 열을 올리며 날 이해한다고 지껄이는 유린이었지만……전혀 기쁘지 않았다. 기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몸은……정액을 내뿜으며 움찔거리는 자지. 기분 나쁘게 웃는 얼굴. 저 몸 전부가 내 거였는데……그걸 빼앗겼는데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기뻐할 수 있겠냐고!?

“도, 돌려줘! 내 몸을 돌려달……꺄악!”

유린한테 다가가던 나는 여자 같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내 몸에 있었을 때 느꼈던 충격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졌지만 실제로 느끼는 고통은 이전보다 더 했다. 여자가 된 것 때문에 신체적 능력이 내려가서 그런 걸까? 땅을 짚고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 아아……모, 목소리까지 변했어……!?”

비명과 함께 신음하던 나는 목소리까지 변했다는 걸 눈치 채고야 말았다. 비단 같은 목소리였지만 이 목소리는 유린의 목소리다. 내 목소리는 성대에서 나는 것이었기에 육체에 속한 것이었다. 즉……이론상으로는 내 목소리는 당연히 내 육체에서 나야만 했다.

그러나……마음은 달랐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렇다지만……27년 동안 날 대변해주던 목소리가! 내 육체가! 내 모든 것을 이렇게 빼앗겼는데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다 포기할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절대 간단히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빼앗길 리도 없었을 터인 육체와 영혼을 이렇게 빼앗겨 버리다니! 이렇게 희롱당해 버리다니……!!

“헤헤, 어때? 내가 쓰던 몸은 좀 편해? 이렇게 보니 꽤 반반한 얼굴인데. 니가 자지를 발딱 세웠던 것도 이해가 가…….”

짐승 같은 몸과 목소리. 가해자였을 때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느낌이 물씬 풍겨졌다. 발기(勃起)한 생식기를 세운 채 다가오는 ‘신세린의 육체’는 여자가 된 나한테는 생리적인 공포감과 거부감을 부여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히, 히익……가, 가까이 오지 마! 내, 내 육체를……내 몸을 돌려달라고!”

마치 강간당하는 여성처럼 ‘가까이 오지 마’라고 하다니……!! 이게 정말 ‘나’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를 범하고 임신시켰던 남자, 신세린이란 말인가!? 몸을 빼앗긴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나 달라진 내 정신상태와 행동에 구역질을 느낄 정도였다!

“하핫, 너도 참……좋다며 자지를 박아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앙탈이야? 게다가, 뭐? 가까이 오지 말라면서 육체는 돌려달라니. 돌려줄 생각도 없지만……돌려받으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자아, 보라고. 니 자지.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어차피 아기 씨앗만 뿌릴 수 있으면 충분하지 뭐. 응? 보라고?”

“으, 윽! 하지 마앗! 내 자지로 날 찌르지 맛……응, 흐윽!”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보지와 똥구멍을 유린했던 내 자지에 이렇게 거부감을 나타내다니! 마치 여자처럼 반응하는 나 자신도! 내 정신상태도! 몸을 빼앗겨버린 이 상황도! 전부, 모두 다 두려웠기에 이제는 눈물까지 펑펑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만이 연속으로 일어나서 그런 걸까? 어딘가로 도망을 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헤헤……도망가게 내버려둘 거 같아? 육체는 얻었지만 아직 다른 시공차원계로 넘어갈 수는 없다고. 이 몸으로 뭘 할 수 있고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봐야 하니까 말이지. 테스트도 안 하고 기계를 막 쓸 순 없잖아? 널 상대로 마음껏 실험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여자의 슬픔과 공포, 고통. 그리고……쾌감도 알려줄 테니까♡”

“하, 하지 마앗……으? 읍!? 우웩! 하, 하악……씨, 씨발……!!”

욕을 하며 난 입을 손으로 닦아냈다. 방금 닿은 이질적인 느낌!! 단단하면서도 뜨거운 그 느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느낌이었지만……무엇이 닿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앉은 자세에서 날 향해 자지를 찔러댄 것 때문에 입에 좆이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젠장! 씨발! 내가 내 좆에 키스를 하게 되다니! 구역질을 하고 싶었다!

“헤헤……좆대가리에 키스라니. 너도 엄청 밝히네? 아직 10분도 안 지났는데 여자의 쾌감을 맛보고 싶은 거야? 완전 씹변태 노답 새끼네 이거……?”

“웃기지 마, 씨발놈아! 니가……니가 멋대로……?”

쌍욕을 퍼부을 생각이었지만……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나타난 홀로그램 윈도우. 지금까지 내가 조작했었던 그 윈도우에는……절대 나타나서는 안 되는 메시지. 하지만 이미 확실하게 출력된 절망의 문장이 나를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으니까…….

[‘자지의 맹세’가 발동했습니다. 스테이터스 파티에 ‘신세린’이 추가되었습니다.]

“……아, 아아……아앗……!!”

오열(嗚咽)이 저절로 나왔다. 아냐. 이건 아냐.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이건 꿈이야……악몽이라고! 그래, 난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남자인 내가 ‘자지의 맹세’에 걸릴 리가……내가 쓰던 맹세에 걸릴 리가 없잖아? 응? 그런 거지? 이건 꿈인 거지?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현실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된 나와 달리, 내 몸을 차지한 유린은 지금까지 내가 쓰던 자지를 이마에 꾹꾹 밀어댔다. 이마에 자지를 문지르며 침과 더러운 욕망을 뱉어내는 놈의 모습은……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을 마음껏 유린하던 거짓된 영웅, 신세린의 모습이었다.

“헤헤, 세린……세린의 이마, 기분 존나 좋네? 으윽, 아, 싼다! 야, 첫 번째로 싸는 좆물이니까 잘 받아야 한다? 아, 앗!!”

찌익! 찌직! 쯔즙!

더러운 소리와 함께 나온 정액은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내 이마와 눈두덩이, 미간에 화려하게 내려앉았다. 난생 처음으로 남자를 위한 딸감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좆이……사정(射精)했다?

내 몸이 나를 딸깜 삼아서……좆물을 끼얹었다고?

난생 처음으로 얼굴을 뒤덮은 백탁액(白濁液). 비릿한 냄새가 나는 정액 때문일까. 내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질척한 액체와 섞이며 땅에 떨어졌다. 어둠밖에 없는 공간에 떨어진 하얀 액체는 결코 아름답지도, 성스럽지도 않았다.

“말했지? 안 죽인다고. 안 죽이는 대신……이 몸으로 마음껏 쾌락을 누릴 거야. 이 지겹디 지겨운 세상을 모처럼 즐길 수 있게 됐는데 그런 은혜를 제공해준 은인(恩人)을 죽이다니. No, No. 말이 돼? 너도 지금까지 나를 즐겁게 했고 열 받게 만들기도 했으니까……후후, 기대해도 좋아? 앞으로 마음껏 범해줄 테니까…….”

“아, 안 돼……싫어……!!”

믿을 수 없는 말. 있을 수 없는 현실에 난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차라리 죽여’라는 말을 하지 않다니……. 몸이 바뀐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느낀 걸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면 또 모를까……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본능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며 나를 떠밀었다.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니 몸이었던 육체에 마음껏 봉사(奉仕)해줘. 내 아내……세린쨩♡”

신이자 악마인 유린이 웃으며 나를 아내로 삼은 순간……. 저 멀리서 내 미래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이곳에 떨어진 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했던 내 여행은……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락에 처박히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이건 끝이 아니었다. 유린과 카인한테 희롱당하고 조종당하던 내 여행이 끝이 남과 동시에……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옥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으, 아아……으아아아아앗! 아아아아아아────────ㅅ!!”

이 ‘하렘 어드벤처’에 떨어진지 대략 9-10개월. 육체와 영혼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정신까지 여자가 되어버린 나는……아무도 없는 캄캄한 지옥 속에서 울부짖었다.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 잔혹한 사실과 상황은 나를 더욱 더 울부짖게 만들었고…….

나의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웃우우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성전환이에요 성전환!

지금까지 희망이 남겨진 척 하면서 세린을 성전환하다니!

작가 새끼가 후타나리에 눈을 뜬 게 틀림없어요!

이 소설에서 BL이 나올 날도 머지 않았어요, 씨발!

엑에에에에에에────엣!!

플로듀서, 절망 엔딩이에요 절망 엔딩!

세린이 기적적으로 역관광을 먹여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좆됐어요!

지금까지 세린을 굴려온 것은 이것을 위한 것이었어요! 웃우우웃!

웃우우우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좆망이에요 좆망!

아무리 봐도 이후에 펼쳐질 전개는 붕가☆붕가에요!

닌자거북이에 나오는 코와★붕가가 아니에요! 붕가붕가에요!

지금까지 멋모르고 하반신을 놀리던 세린, 하반신으로 망하게 생겼어요!

틀림없이 ‘이 빌어먹을 작가 새끼! 지옥에나 떨어져라!’라며 분노하고 있을 거예요!

물론 이 문장 쓰면서 작가가 실실 쪼개며 처웃고 있다는 건 안 비밀이에요!

웃우우우우우우우우웃────!!

……정신줄을 다잡아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에피소드로 실질상 201화. 프롤로그를 제외한다면 마침내 200화를 달성한 신세린(메리사)입니다. 처음으로 연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0화라니. 진짜 숨 차오를 정도로 달려왔구나 싶습니다. 아마 이게 마라톤이었다면 애저녁에 뻗었겠죠. 체력도 안 좋은데 오래달리기를 하라니. 군대 생각나서 끔찍하네요.

엔딩(200화를 기준으로)에 대해 여러 모로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200화 엔딩은 원래부터 생각해오던 엔딩이었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간단합니다. 세린은 주인공이지만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먼치킨이나 하렘물이란 단어를 생각해봅시다. 뭐가 떠오르는가요?

최강, 미남, 특별한 힘, 이세계, 전생, 하렘 구축, 영웅적 면모, 숨겨진 힘 등. 진짜 온갖 게 다 떠오를 겁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게 이 정도니 자세하게 알아보면 엄청 많겠죠. 그럼 여기에 또 하나 질문을 얹도록 하겠습니다.

세린이 과연 먼치킨이나 하렘물의 주인공일까요?

대답은 No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자기 앞날도 제대로 못 만드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독자분들을 포함해 이 글을 적는 저까지. 모든 사람들이 해당하는 보통 사람이죠.

제 글과 후기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인간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늘 생각해왔습니다. 크툴루 신화를 비롯해 다양한 서브컬처나 영상물을 보며 늘 생각했었죠. 그 답이 바로 세린의 모습입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기분 나쁘다고 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유린 같은 초월적 존재를 만나면 아무것도 못 할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희는 그냥 보통 사람이거든요.

설령 특별한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죠. 까놓고 말해 유린은 하렘 어드벤처의 신이니까요. 진짜 신은 아니라지만 명색이 신급입니다. 간단하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면 세린이 저 꼴 나지는 않았겠죠.

당연한 소리입니다만 그렇다고 손 놓고 포기하자, 포기하면 편해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야 포기하면 편하긴 하겠지만, 이 소설이 포기 엔딩으로 간다면 독자분들의 분노와 질타 이전에 제 스스로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겠죠. 그딴 식으로 엔딩 낼 거 같았으면 그냥 적지 말지 그러냐 하고 자문(自問)할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200화가 끝난 건지 하렘 어드벤처라는 소설 자체가 끝난 게 아닙니다.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독자들 대부분이 상상하시겠지만, 우선 엔딩에 가까운 결말 부분은 이렇게 적자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올린 200화고요. 납득이 가지 않으시는 분들은 차후를 기대해달라고밖에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유린(초월적 존재)을 이기기 위해 발버둥 치던 세린. 그러다가 꾀임에 넘어가 영혼도, 육체도. 그리고 아내들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이기기 위한 거라고 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거라고 해야겠죠. 유린한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카인의 모습이었고, 카인이 벌였던 짓은 어떻게 보더라도 좋은 행동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유린한테 묵직한 팩트폭력을 당하는 세린의 모습을 보니 딱하긴 하지만 적당히 하지 그랬냐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니 독자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남자는 세 가지 끝을 조심해야 합니다. 손 끝, 입 끝. 그리고……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굴렁쇠처럼 세린을 굴려놓고 아직도 굴릴 생각이냐고요?

……물논! 세린은 행보칼수 업떠.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

헛소리는 이 정도로 끝내고, 우선 별로 안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200화가 됐으니 남은 이야기도 적어서 업로드해야 합니다만……저도 그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9월 중반 들어 더 이상 직장 업로드를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좆같은 거야 이해가 갑니다만, 쓸데없는 회의와 인건비 삭감에 아주 목숨을 걸게 됐습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일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웹서핑조차 제대로 못하게 됐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웹서핑이냐고 하겠지만 어차피 계약직. 정사원이라면 또 모를까 계약직은 자기 인생과 미래를 위해 계속 좋은 직장을 찾아봐야 합니다. 막말로 정사원도 잘릴 수 있는데 계약직이 미쳤다고 회사에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그 덕분에 요즘은 미칠 듯이 바쁩니다. 얼마나 바쁘냐고요?

하루에 두 편씩 소설을 적던 제가 이번 주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총 4일 동안 단 한 편의 소설도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4일 동안 한 편이 아니라 4일 지나도록 단 한 편도 채 못 적은 겁니다. 짬짬이로 썼는데도 말입니다.

타자도 그럭저럭 빠른 편이고 생각나는 초안을 거침없이 쓰는 편인데도 이 정도입니다. 얼마나 현재 회사 상황이 바쁜지는 글 쓰시는 분들이라면 더욱 더 확실히 이해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추석은 저도 사람이다 보니 쉴 수밖에 없습니다만, 진짜 이번 직장도 좀 아니다 싶네요. 이번에 퇴사하면 취업교육이나 받아볼까 싶습니다. 국가사업으로 하는 취업교육이니 일단 배워둬서 나쁠 건 없겠죠.

내적인 요소가 회사나 개인생활입니다만, 외적인 요소는 더 나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불펌텍본을 발견했습니다. 두 곳을 찾아 신고했고 그 두 곳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불펌 사이트입니다. 여러 모로 법적인 처벌이 힘들다고 조아라 신고 센터에서 직접 말하더군요. 들으니 한숨밖에 안 나왔습니다.

텍본으로 만들어진 제 글을 보니 슬펐습니다. 어, 안 기쁘냐고 묻는다면 아주 약간.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졌구나 하는 기쁨은 없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인지도 부분에서 조금은 알려진 건가 싶었죠.

헌데 그런 기쁨보다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더욱 더 컸습니다. 재미없다고 욕하면서 텍본은 긁어가다니.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츤데레짓 계속 하면 짜증날 겁니다. 헌데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사람이 제가 노력한 소설을 쓱 긁어 올리며 ‘이거 재미없는데 일단 올림 ㅎㅎㅎ’라고 합니다. 이걸 기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윽고 깨닫게 됐죠. 왜 조아라 작가분들이 자주 습작 전환을 하는 건지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습작전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해야겠죠. 자기가 노력한 소설이 아주 쉽게 불펌텍본화 당했는데 그걸 기뻐할 작가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습작 전환을 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입니다. 다른 작가분들의 대처를 보니 저도 좀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200화 이후의 전개는 회사뿐만 아니라 불펌 상황 때문에라도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 질이나 양은 예전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고요. 법적인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펌당하는 걸 알면서 얌전히 소설을 올려야 한다니. 돈 내고 보는 독자분들은 뭐 바보입니까? 저는 무슨 소설 헌납기입니까? 한숨과 분노가 지금도 치밀어 오릅니다.

겨우 불펌당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분위기 잡냐고요? 본인 노력해서 일구어낸 거 모조리 박살나고 빼앗겨도 절대 억울해하지 마세요. 남한테 그런 말 하니 본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호구 취급당하면서 화내지도 마세요. 그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슬픔에 추임새 넣지 맙시다.

좆같은 회사와 불펌텍본. 어느 쪽이든 싫습니다만 거부할 수 있는 힘도 없네요. 그렇기에 엔딩이 이렇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외적인 요소 탓을 하며 막장 엔딩을 정당화시키려 한다고요?

그럼 좀 어떻습니까. 좆같은 회사랑 불펌텍본도 절대 옳은 건 아닌데.

회사에서 치이며 소설 검색하니 불펌텍본이 떡하니 나옵니다. 이걸 보며 ‘ㅎㅎㅎ 내 소설 인기 있나 보네’라며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개인의 노력과 창작성이 깃든 글을 아무런 노력 없이 가져간 건데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덕분에 200화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후기는 이렇게 어둡습니다. 과연 추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화제도 돌릴 겸 코멘트에 대한 답변을 하겠습니다.

고양이새벽님, 늘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화가 언제 업로드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vdfs님, 저도 유린한테 성적으로 자극당하는 걸 적으며 ‘어이구, 인간아. 그 와중에 느끼고 싶냐? 좆물 발싸! 하고 싶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적인 요소도 없었습니다만,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자기와 자기 아내들한테 해를 가한 유린한테 욕정하다니. 어찌 보면 그 말릴 수 없는 성욕으로 인해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상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이 막장 소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의 조회와 추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을 다시금 만족시키기 위해 꼭 후속편을 업로드할 생각입니다. 습작전환은……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달리기도 계속 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씩 쉬어가며 해야겠죠. 지금까지 달려왔으니 조금은 쉴 생각입니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가능한 한 빠른 시기. 독자분들이 ‘ㅋㅋㅋ 이 막장 작가 다시 업로드하네?’라며 즐겁게 받아주실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언젠가 다시 뵙겠습니다.

P.S - 업로드 시간이 늦은 점,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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