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19-9 : 종언의 카운트다운 (20)」 =========================
사람의 직감(直感)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가까운 미래. 혹은 자기 자신한테 닥쳐올 사건이나 사고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흔히 말하는 제6감(第六感)에 의해 자기 혹은 누군가가 위험한 것을 시간이나 거리에 관계없이 깨닫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람은 오감(五感)을 가지고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다섯 개의 감각이 사람의 일반적인 감각이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여섯 번째 감각. 식스 센스(Six Sense)라는 감각도 존재하긴 했다.
문제는……저 여섯 번째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 같이 실제로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감각이 아니라는 거였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실제로 그 감각을 발휘하여 위험이나 위기를 알아내거나, 사고나 사건의 전조(前兆)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는 둘째 치더라도 자기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없는 감각. 시간이나 거리에 관계없이 발동될 수 있지만 정작 그 감각을 가진 사람이 원할 때는 쓸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제6의 감각’이었다.
나도 제6감과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은 있었다. 이 세상에 맨 처음 떨어진 후 괴물과 만났을 때였지. 어, 정확히는 괴물과 만나기 전이라고 해야 하나? 무언가가 다가오긴 하는데 그 무언가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위험한 거라는 걸 단숨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제6감을 쓴 적도 없거니와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봤자 자위 중에 부모님이나 쓸데없는 방해가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주의를 하는 정도였는데, 그렇게 단숨에 ‘위험한 무언가가 다가온다’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제6감 덕분이 아닌가 싶었다.
싸움이나 전투랑은 전혀 인연이 없었던 내 몸마저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마자 바로 숨으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다. 이 정도로 사람의 직감(直感)이나 제6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생존을 위한 명령을 내릴 정도니까.
직감과 제6감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도 아니었기에 난 그 두 개가 대략 비슷한 감각 혹은 개념이라 생각했다. 누군가 ‘두 개는 완전히 다른 개념(감각)이다!’라고 논문을 써서 발표한 것도 아니잖아? 설령 냈다 하더라도 그게 정의는 아닐 테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 거니 대강 그러하다 치자.
이 직감은 남녀 모두한테 있는 것이었지만……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 감각을 누구보다 잘 사용하는 부류는 여성들이었다. 여성들만큼 이 감각의 사용에 뛰어난 사람들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들은 항상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란 참으로 힘든 인생을 부여받은 존재라 생각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몸가짐과 행동을 가지런히 해야 하며, 옷이나 화장품 같은 것들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느꼈었지.
화장이나 옷뿐만 아니라 유행, 액세서리 등 다양한 것들을 파악해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여성들의 대화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여성들의 대화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아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원활한 정보공유 및 의사소통의 상대를 얻을 수 없게 된다는 걸 뜻한다.
친구가 없는 내 경우에는 ‘그게 뭐 어때서? 혼자 잘 지내면 되지’라고 대답하겠지만……여성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쿨하게 살아가기에는 ‘여자’라는 성별이 너무나 많은 것을 강요하고 제약하니까.
친구와 함께 있음으로써 ‘나는 교우관계가 원활하며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능력 있는 여자야’라는 걸 어필할 수 있다. 그뿐인가? 위험하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관해 즉각 어드바이스나 해결 방법 등을 들을 수도 있다.
여자들만이 가지는 문제, 고민 등에 대해 적극적인 상담을 나눔으로써 여러 해결책을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여러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식 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너무 과장된 거 같다고? 여자들이 생각하는 이해타산(利害打算)에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항상 남자들과 비교를 당하며 심할 경우에는 멸시(蔑視)를 받을 수도 있었다. 성차별적인 발언은 기본이고 편견이나 모욕을 듣더라도 남자에 비해 매우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인 만큼 정신적 데미지가 큰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니 ‘어, 이 새끼 여혐(여성혐오를 가진 사람을 칭하는 말) 아냐?’라고 생각하겠지만……절대 아니다. 난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남자인 나도 여러 가지 막말과 푸대접 등을 들으며 살아왔는데 대체 내가 왜 여자들을 혐오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은 빼앗겨버렸지만 내 아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힘든 일, 슬픈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려 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적어도 그들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길은 선택하지 않았었다.
그에 비해 나는……늘 도망쳤었다. 이유가 있어 도망치긴 했지만 아내들처럼 적극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냐, 다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 때문이라며 현실을 바꿀 수 없는 핑계와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도망쳤었지.
그런 내가 여성들을 혐오한다고? 아내들 같은 여자한테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고?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따로 없었다. 그럼 내가 이 세상에 있고 싶어 했겠냐?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 제2의 인생, 내가 바라던 평화와 행복. 가족을 가지고 싶어 했겠냐고.
난 절대 여자를 혐오하지 않았다. 단지 남자와 여자에 비해 여자가 어떤 인생을 사는가를 말할 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자로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남성한테 늘 비교당하면서 그 잘난 ‘남자’들한테 폭행 등을 당할 때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가정폭력부터 시작해 부조리한 일, 불합리한 상황 등을 맞이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었다.
폭행 등을 비롯해 사람으로서 결코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을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 노인, 여자라니. 여성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순식간에 피해자가 됐으니 말이다. 설령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험한 평가를 받고는 했으니 어느 쪽이든 슬픈 일이긴 했다.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세상이 계속 되다 보니 여성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만 했다. 위험하거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곳에는 최대한 출입을 자제해야만 했으며, 만나는 사람이 자신한테 호의(好意)를 가지고 있는지 음욕(淫慾)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해야만 했다.
이러한 통찰력과 판단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 됐으며 그 힘은 어렸을 때부터 길러야만 했다. 반드시 길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험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가져야 하는 능력이었으며, 싫어도 언젠가 세상의 험난함을 깨달아야만 했기에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능력은 자신에 대한 감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의 가치를 비교하는 능력에도 쓰이고는 했다. 남자나 여자의 경제력, 품성, 태도, 첫인상, 성격 등을 파악하는 데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기에 ‘생각 이상으로 범용성이 뛰어난 힘’이 되곤 했다.
이러한 힘을 직감이나 제6감이라 칭하긴 어렵지만 통찰력과 판단력, 관찰력 등은 개인의 노력한다고 무조건 늘어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여자들의 관찰력과 통찰력이 ‘직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 얻은 파생물’이 아닐까 싶었다.
이루이는 그런 직감(直感)을 사용한 것 같았다. 본인이 원해서 쓴 것은 아니었겠지만……대낮부터 격렬한 섹스를 요구하는 이루이를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그녀의 언행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와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아 나를 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카인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무참하게 살해당할 내 미래를 제6감으로 깨달았기에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정액을 몸에 스며들게 하려는 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아주 틀렸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나와 카인 사이가 절대 좋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모두를 희생시킨 카인과 내가 손을 맞잡고 불타오르는 석양을 향해 함께 뛰어갈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收斂)했으니 남은 건 싸움밖에 없었다.
모두를 괴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마을까지 파괴시키게 만든 미친놈.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흑막인 카인은 절대 살려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사악한 일이겠지만……세상에는 ‘죽어도 상관없는 놈’이 늘 존재했다. 원래 세상이든, 여기든 말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태연하게 다니는 인간쓰레기부터 시작해 온갖 인간말종, 성격파탄자,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이 존재했다. 그들은 세상과 사회의 발전에는 하등 쓸모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내가 자주 나 자신을 인간쓰레기라고 하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범죄자들과 비교한다면 난 너무나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이 정도니 아마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말 그대로 ‘죽어도 상관없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카인이 바로 그러한 놈이었다. 명색이 이 세상의 모든 걸 만들었다는 새끼가 자기 외에는 모조리 장난감, 병신, 죽어도 상관없는 년 취급을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도 싫었지만 다른 사람이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벌레 취급당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싸우기 위해 가는 거지만 나 자신도 알고는 있었다. 결과는 패배, 실패, 참패, 좆망 등. 여러 말로 형용할 수 있지만 아주 쉽게 말하자면 ‘못 이긴다’였다.
이길 수 있다고? 이기긴 커녕 상처나 주면 기적이게? 카인이 ‘ㅋㅋㅋ 너님 제법인 듯?’라며 조롱하면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싶었다. ‘제법 한 가닥 한다’라는 표현이나 쓰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패배로 인해 죽음을 경험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죽어본 적도 없고 걔랑 싸워서 져본 적도 없으니까. 어찌 됐든 내 비참하고 병신 같은 최후를 깨달았는지 이루이는 더욱 더 많은 정액과 자극을 요구했다. 내가 지금 그녀를 껴안고 가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
그녀는 코알라처럼 나한테 매달린 상태였다. 두 손은 목을 껴안은 상태였고 다리는 켄타우로스 보행법을 할 때처럼 허리를 휘감은 상태다. 끈으로 두 발을 묶었기에 만약 내가 앞으로 넘어지면 그녀가 쿠션이 되겠지. 이루이를 쿠션으로 쓸 생각은 별로 없다만…….
뒤에서 박은 채 앞으로 걸어가는 것은 이루이한테는 무리였던 것 같다. 그녀는 나한테 욕을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지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그녀가 괴로워하는데도 그걸 즐기며 사정까지 했으니까.
소중한 아기의 목숨을 위해서 노력한 이루이를 탓할 것은 없었기에 앞으로는 켄타우로스 보행법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이루이는 제2라운드를 요구했고 난 그녀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자지를 박은 채 끌어안은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이 모습으로 걸으니 아이나가 생각났다. 동생을 데려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결혼까지 한 아이나는 정말 귀여웠었지. 이루이를 끌어안은 것처럼 아이나와 하나가 된 채 마을을 돌아다녔던 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레베카와 안느는 이미 죽어버렸지만…….
이루이는 참으로 신기한 여자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많은 아내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한테 욕을 하면서도 자지를 바라는 그 모습은 은채와 매우 유사했기에 가끔 ‘으, 은채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좀 그랬지만……그만큼 이루이는 많은 아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는 키리. 울면서 콧물을 풀어줄 때는 아이나와 아이라. 천진난만한 모습에서는 메이를 찾을 수 있었고 지금도 아이나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루이가 매력적인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이렇게 많은 추억을 떠올리고도 남을 정도로 오랫동안 그녀들과 지냈구나 하는 감탄도 들었다. 아직도 떠올리지 못한 추억이 많다니.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켄타우로스 보행법만큼은 아니었지만 걸을 때마다 자지가 자궁을 꾹꾹 찔러댔기에 이루이는 바들바들 떨었다. 아기를 빌미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이제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설령 아기가 죽는다 하더라도 나와의 연결을 해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이 기특했기에 그녀와 입맞춤을 했다.
가는 동안 나눈 이야기는 아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녁 늦게 도착하겠지만 이런 자세에서는 잠들 수도 없었기에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아내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영 탐탁지 않았지만 이루이가 들려달라고 하니 별 수가 없었다. 이게 마지막이니 서비스나 실컷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지. 이야기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
나와 같이 맨 처음 이 세상에 온 이혜린. 내 첫 번째 아내이자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녀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현실세상에서는 만나기는커녕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었지만……이곳에 와서는 오붓한 결혼식까지 올리며 부부 사이가 됐었지.
나름 건방지고 응석받이긴 했지만 다른 아내들을 생각해주는 배려와 씀씀이도 남달랐기에 아내들과 매우 친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첫 번째 아내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기도 했었기에 그녀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었건만……지금은 카인 곁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겠지. 말아먹을.
로라와 메이는 프레그넌트에서 만난 모녀(母女)였지. 괴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격무(激務)로 인해 로라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리 뛰어나지 못한 메이한테 정신적 학대를 가하며 그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이는 별로 친하지 못했다.
딸인 메이는 그런 로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로라는 메이의 성과를 제대로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로라한테 애증을 지니게 된 메이는 나한테 결혼을 요구했고, 나를 둘러싼 모녀간의 사랑 싸움이 일어났었지…….
어머니와 딸이 내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걸 생각하니 하반신이 더 뿔룩거렸고, 이루이는 자지의 고동에 대해서는 기뻐했지만 아직도 아내들한테 미련이 남은 거냐며 살짝 비꼬았다. 난 그 말에 웃으며 그런 거 같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프레그넌트의 촌장인 아이나와 그녀의 동생인 아이라. 아이나는 어렸을 때부터 촌장의 역할을 맡았기에 동생인 아이라한테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했었다. 아이라는 그런 언니와 현실에 환멸감을 느껴 어보션으로 가고 말았지.
아이나는 촌장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그들의 호의와 마음을 늘 거절하고 있었다. 자기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아이라가 나가버렸건만, 그런 아이라를 내버려둔 채 마을 주민들과 행복하게 지낼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아이나와 결혼하며 동생을 데려온다는 무리수를 두었기에 이런 저런 개고생을 하게 됐었지만……뭐, 그 와중에 아내를 네 명이나 더 얻게 됐었으니 큰 불만은 없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비교하면 귀여울 정도니까.
동생인 아이라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언니를 향한 사랑을 완전히 끊을 수가 없었기에 늘 프레그넌트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더 강한 마법사가 되어 언니를 돕고 싶다는 기특한 마음을 가졌지만, 정작 그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었기에 늘 괴로워했었지.
두 명 다 자기 마음에 솔직해진 이후로는 늘 함께 다녔기에 참 보기 좋았다. 두 명과 함께 밤일을 할 때마다 서로를 욕하며 내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기에 졸도할 뻔했지……. 이렇게 귀여운 미녀 자매가 나를 원하는데 기분 나빠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미카는 프레그넌트 다음에 찾은 ‘부카케’ 마을의 경비대장이었다. 프레그넌트의 경비대장인 로라와 친밀한 사이였지만 성격은 상당히 달랐기에 그냥 이런 사람이 있는가 싶었다. 괴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중 왼쪽 눈을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늘 평가절하(平價切下)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 눈을 잃게 됐지만……그녀 또한 여자였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름답다, 사랑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했던 여인이지만 치료할 수 없게 된 상처로 인해 자기 자신을 늘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하겠어?’라며 평가했었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챙기지 않았던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에 난 미카와 결혼했다. 이미 뜰 수 없게 된 왼쪽 눈에 자지를 비벼댈 때마다 소심해지는 미카는 누구보다 깜찍했기에 몇 번이고 거기에 비벼댔었지…….
안나와 니나는 용병(傭兵)이었다. 늘 목숨을 걸고 살아야만 하는 용병 생활에 넌덜머리를 느낀 안나와 니나는 사람들을 납치해 금품이나 무기, 코스튬 등을 강탈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들을 잡아 많은 걸 빼앗으려 했던 그녀들이지만……당시 쓸 수 있었던 ‘자지의 맹세’와 ‘좆물캡슐’을 잘 이용해 내 노예가 되고 말았었지.
나중에는 정식적으로 두 명을 내 아내로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프레그넌트에서 새로운 삶. 더 이상 돈을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생활을 선물했기에 두 명 다 나한테 고마워했다. 용병이었으니 마을을 지키는 경비대 업무에 종사하게 됐지만 그녀들한테는 의외로 맞는 직업이었지.
모녀 관계 중에서는 가장 최악 같아 보이는 두 명이었지만……말은 그렇게 해도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매우 컸다. 흔히 말하는 ‘츤데레 + 욕데레’라고 해야 할까? 두 명을 볼 때마다 참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항희진과 박은채는 현실 세상에서 소환된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백발(白髮)의 여자였던 카인에 의해 소환된 두 명은 미카에 의해 구조 받았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두 명이지만……내 협박에 가까운 강간에 의해 행복한 삶을 맞이하게 됐지.
두 명을 강간한 것에 대해서는 별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 내가 돌봐주지 않았다면 죽었을 테고, 돌봐주는 이상 프레그넌트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활동해야 했으니까. 당시에는 프레그넌트의 숲에 괴물들이 남아 있는 상태였기에 긴장을 풀기에는 일렀었다.
늘 말썽이었던 프레그넌트의 숲. 그 안에 있던 괴물들을 토벌하며 얻은 아내가 아스카였다. 초록색 촉수괴물의 여왕이었던 아스카는 ‘낙태(落胎)’ 마법을 사용해 의존도와 호감도를 단숨에 올릴 수 있었다.
‘자지의 맹세’의 몬스터 버전인 ‘몬스터 테이밍’을 사용해 그녀한테 제약을 걺으로써 폭주나 배신의 위험을 없앤 나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괴물의 여왕을 길들인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누구도 못 했었기에 모두 다 놀랐었지.
처음에는 사람과 나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거듭되는 섹스와 달콤한 말에 아스카는 ‘여자’가 되어갔다. 괴물들을 모두 없애고 평화로운 숲까지 찾은 프레그넌트. 그런 평화로운 때에 우리를 방문했던 사람이 여왕인 마리아와 공주인 아테나였다.
원래라면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 있었던 두 명이었지만……나와 혜린이가 소환된 후부터는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가 없게 되어 곤란한 지경에 처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아기 씨앗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된 거였다.
두 명은 나한테 수도로 가서 그 능력(임신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해달라고 했지만……나를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난 그걸 거절했다. 대신 두 명한테 ‘자지의 맹세’를 거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었는데……그게 바로 가장 커다란 병신짓 중 하나였다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됐었다.
내 아내가 됐을망정 백성들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먹는 것만으로 임신이 가능한 ‘좆물캡슐’을 2천 개 정도 만드느라 미친 듯이 섹스를 해댔지…….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짓이다. 그거 하다가 진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온몸의 정액과 피가 빨리는 느낌을 너희가 아냐?
마지막으로 얻은 아내는 헬레나였다.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이자 마리아와 아테나를 호위하는 그녀는 커다란 엉덩이를 자랑하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마리아와 아테나를 지키다보니 그녀들한테 반하게 된 레즈비언이라는 점이 더욱 더 귀엽고 끌렸었지.
본의 아니게 왕이 된 나한테 칼을 내밀었기에 난 그녀한테 왕족시해죄를 물었지. 나 같이 약해빠진 놈이 마리아와 아테나 곁에 있다는 걸 참을 수 없어 했던 그녀지만……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내 아내가 됐다. 내 아내가 된 후에도 나를 까는 건 여전했기에 ‘아, 쟤를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안즈와 이루이는 모든 아내를 잃은 후에 사귀게 됐으니 굳이 말을 안 해도 알겠지. 이루이는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건지 내 목을 끌어안은 상태에서 걸을 때마다 전해지는 자지의 충격에 더 이상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잠을 자다니……역시 그녀는 순수한 여성이다.
이제 곧 나올 수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가능하면 수도의 검문을 피하고 싶었다. 텔레포트 때문에 카미유로 날아갔었다는 내용을 설명해봤자 믿을 리도 없을 테고, 내가 수도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를 별로 알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예전에 괴물들이 수도를 공격했을 때 성벽이 꽤 많은 손상을 입었었지……. 그 틈을 찾아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나 다름없는데 범죄 좀 저지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게다가……내가 다른 마을이나 수도를 위해 싸웠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역시 그녀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게 생각하자 너무나 아련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늘 함께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되찾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미래가 보였으니까.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나 미래는 바꿀 수 있겠지. 하지만……이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미래나 결과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난 그런 험난한 길에 스스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목숨이라는 담보만 든 채 말이다.
무기? 마법? 그것들은 쓰지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설령 쓸 수 있어도 상처 하나 줄 수 없겠지. 그렇게 된다면 맨몸으로라도 돌격을 해야 하는데……내가 그놈한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 거수(擧手 ; 손을 들라는 뜻)!!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의 삼아 손이라도 좀 들어주지? 뭐? 들면 ‘어, 진짜? 내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근거는? 이유는? 나도 알고 싶어!’라고 들이댈 거 같아서 안 들었다고? 이 독자들이 진짜……어떻게 된 게 이 소설은 작가, 캐릭터, 세계관, 독자까지 다 이 모양일까? 맨 마지막에는 헛된 희망이라도 좋으니 좀 배려를 해주면 안 돼?
작가와 소설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디스해 버리는 미친 짓을 저질렀지만……이런 게 한두 번도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래, 아무렴 어떤가? 사랑스러운 이루이한테는 내 정액을 듬뿍 주입시켰다. 이게 그녀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추억이 되겠지. 나를 기억해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다. 그래. 이 이상은 필요 없다.
이 여행의 마지막. 내 인생의 종착지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끝에 다가가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가장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생각도,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기다려라, 시발놈아. 내가 간다.”
이루이가 듣지 못할 크기로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왔을 때부터 내가 했어야 하는 일. 조금 늦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빼앗기긴 했지만……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카인이 지금까지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조차도 사라져버린다.
빼앗겨버린 소중한 아내들의 얼굴을 한 명씩 회상(回想)하며 걷는다. 걸을 때마다 그녀들과 보낸 추억이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마음과 의지, 버리고자 했던 사랑과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얘들아, 지금 구하러 갈게.”
============================ 작품 후기 ============================
드디어 ‘종언의 카운트다운’ 챕터가 끝났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이틀’이 끝났다고 해야겠네요. 아직 19챕터. 19챕터가 끝나기에는 한 편 더 남아있고, 내일부터 업로드 할 분량은 새로운 타이틀을 달게 될 테니까요. 새로운 타이틀로 들어감과 동시에 마지막 결전도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번 편을 기점으로 9시 이후에 올리는 ‘직장 업로드’가 좀 어렵게 됐습니다. 아침에 오자마자 회의 비슷한 걸 하게 돼서……중소기업도 안 되는 회사면서 효율 올릴 생각은 안 하고 회의 같은 것만 하는 걸 보니 저도 참 이상한 곳만 골라가는구나 싶더군요. 전편 후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입사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세요. 안 그러면 어떻게 되냐고요? 제 꼴 납니다.
농담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힘겨운 현실. 그런 현실 이야기를 아무리 적어봤자 달라질 건 없을 테니 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직장 업로드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생각해보니 굳이 직장 업로드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오늘 올리는 거 제외하고 11회 연재하면 200회 도달하니까요.
그런 결론에 도달하니 출근 전에 올려도 되고 직장 와서 업로드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대야 어차피 아침이고 좋든 싫든 11화 업로드로 200화 달성. 소설로 치자면 ‘절정-결말’에 해당하는 부분도 적어야 하고, 후속작 생각도 해둬야 합니다. 그 시간을 감안한다면 업로드 시간은 사소한 문제겠죠.
남은 11회,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봐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