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7 「19-6 : 종언의 카운트다운 (17)」 =========================
총성이 울렸다. 마력으로 만든 탄알의 좋은 점은 탄피나 기능 고장을 걱정할 필요가 일절 없다는 것이지만……그것 외에는 일반 소총과 별 차이가 없었다. 총성은 여전히 크게 울려 퍼졌고 이 소리는 충실하게 적을 모으는 쓸모없는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딴 기능은 없어도 되는데!
그렇지만 이 세상은 늘 결과만을 강요했다. 필요 없다고 해서 그 능력이나 기능이 사라질 것 같았으면 결함품이나 불량품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겠지.
소총의 소리는 우렁차게 황야로 울려 퍼졌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저 멀리에서 청록색 촉수괴물 한 마리가 힘차게 달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욕을 하며 이미 공격을 받고 있는 놈한테 더욱 많은 화력을 끼얹었다. 총알부터 시작해 투영마술로 만든 철 덩어리가 놈의 몸에 박힐 때마다 더러운 피가 흘러넘친다. 검은색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자 이루이가 기겁을 했다만……지금은 이루이의 시각적·정신적 안전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뭘 할 수 있으니까!
땅을 짚던 팔 한 쪽은 이미 살점이 완전하게 날아간 상태였다. 철 찌꺼기 같이 볼품없는 것이지만 파괴력은 확실했다. 뼈마저 분쇄(粉碎)시킬 정도의 위력 덕분에 놈은 바퀴 하나를 잃은 자동차 같이 위태위태하게 서있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땅을 짚고 있었기에 ‘개가 한쪽 발을 잃어 넘어질 것 같은 자세’라고 해야 했지만……저 새끼 입장에서는 나름 서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대강 그렇게 표현했다. 뭐 어때?
“어차피 뒈질 건데! 쩌팝! 쩌팝! 다 죽여 버리겠다!!”
내 웃긴 도발에 놈이 그르렁 대며 신음을 했지만……어쭈? 니가 나한테 덤비면 어쩌려고? 힘든 현실을 봐야 하는 건 나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거든요? 당장 나한테 죽을 수도 있는 니가 나한테 이빨을 드러낸다고? 이 쒸팔럼이!
투영마술과 소총의 탄알은 모두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놈한테는 마법내성이 있었기에 마력을 통한 타격은 어느 정도 위력을 잃게 되지만……그렇다고 ‘아예 안 통하는 정도’에 도달한 건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놈들의 약점인 얼굴 부분을 공략해 쉽게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지금 막 쓰러진 저놈은 나한테 목숨을 구걸해도 아쉬울 판국에 감히 이빨을 드러내며 반격의 의사를 나타냈다. 그럼 뒈져야지. 사람이었다가 괴물로 변한 붉은색 촉수괴물이라면 또 모를까, 너희 같은 괴물 새끼들한테는 일절의 자비심도 필요 없었다.
저 빌어먹을 괴물놈들 때문에 프레그넌트의 주민들도, 야만족들도. 모두 다 죽어버렸다. 대체 저놈들을 어여쁘게 봐줘야 하는 이유가 세상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런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탄알과 투영된 철 찌꺼기는 더욱 더 거세게 놈을 강타했다.
얼굴부터 시작해 팔, 촉수 등. 중요한 기관이 모조리 잘려나간 괴물은 검은색 피를 내뿜으며 결국 쓰러졌다.
평소라면 놈을 해치운 것에 기뻐해야겠지만 지금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놈이 더 급선무다. 이루이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무릎을 굽힌 후 최대한 정밀한 조준을 시도했다.
“이런!!”
온몸의 소름이 돋았다! 달려오던 괴물놈은 무릎을 굽혀 사격 자세를 취한 나한테 빔을 쏜 것이다! 이루이한테는 이미 저 빛에 대한 설명을 했기에 혹시나 못 빔 공격의 조짐을 못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다. 저 빛은 나를 향한 것이었기에 급히 굽힌 무릎을 풀고 우측으로 힘껏 뛰었다.
내가 있던 자리는 밝은 빛과 함께 완전히 녹아내려버렸다. 씨발 새끼. 여전히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저런 걸 맞고 죽은 야만족들을 생각하니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오른다. 안즈가 괜히 저놈들을 보고 흥분 했는 줄 아냐?
아무런 상관도 없던 나도 이 정도로 화가 나는데 저놈들을 볼 때마다 분노를 표하는 안즈한테는 위약(胃藥)을 줘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내 회피에도 불구하고 놈은 맹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설픈 조준이긴 했지만 놈이 달려와준 덕분에 사격의 난이도는 훨씬 더 쉬워졌다. 얼굴부터 시작해 팔, 어깨, 촉수의 뿌리 주변 등. 내가 노릴 수 있는 놈의 약점에 최대한 많은 화력을 퍼부었다.
철 찌꺼기는 일종의 철로 만든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검이라고 차마 부를 수조차 없는 모습이었지만……내 목적은 괴물을 ‘베는 것’이 아니라 ‘부수는 것’이었다. 찢어발기든 부수든 간에 검격(劍擊)보다는 타격(打擊)이 더 유효했다.
절삭력(切削力)이란 말 그대로 절삭(切削). 자르거나 깎는 힘을 말하는 것이지만……물건을 자르는 데에는 날카로운 것이 필요할지 몰라도 부수는 데에는 굳이 날카로운 것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때리든 차든 찍든 간에 타격을 줄 수만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가 쓰는 투영마술은 일부러 실패작을 만드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마력의 낭비가 적을뿐더러 만들어진 실패작을 그냥 고속으로 날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고속으로 날아가는 철 쪼가리. 철 찌꺼기나 쪼가리, 덩어리라고 하지만……표현에 상관없이 위력만은 최강급이었다. 기품 따위는 좆에 낀 좆밥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저 하등하고 미천한 놈들한테는 이것도 과분하지. 철 쪼가리가 놈들한테 스치기만 해도 날카로운 것으로 벤 것과 비슷한 데미지를 주었다. 맞으면 맞은 부분이 찢어지거나 파열(破裂)됐지.
막으면 작살.
맞아도 박살.
스쳐도 큰일.
놈들한테는 피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잘못 닿기만 해도 피를 뿜게 만드는 원흉일지 몰라도 나한테는 가격 대 효율비. 흔히 말하는 가성비 최강급의 공격이었다.
적을 없애는 데에 멋지고 대단한 기술 따위는 필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것.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코스튬과 무기는 내 성격과 전법(戰法)에 매우 잘 맞았다. 최고의 상성이자 궁합이라고 해야 할까?
양쪽 어깨에서 검은색 피가 줄줄 흐른다. 팔과 발을 사용해 개처럼 기어오는 놈들한테 있어 이동수단인 손이나 발의 파손 및 피해는 매우 큰 약점 중 하나였다. 왼쪽 팔꿈치 부분과 오른쪽 손바닥 부분이 관통 당하자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질러댄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씨발아!!”
앞서 말했다시피……난 저놈들을 불쌍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저놈들한테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오는데 저 새끼들을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고? 차라리 카인을 신으로 섬기겠다!
천천히 다가가며 놈의 얼굴 부분에 총을 쏜다. 마력탄이 맞을 때마다 몸이 움찔거렸고 이는 데미지가 잘 들어간다는 걸 뜻했기에 내 기분은 더욱 상쾌해진다. 저놈이 미친 척하고 이루이한테 빔을 쏠 수도 있었기에 이루이한테는 늘 괴물의 입과 시선을 주의하라고 했다.
이루이 주변에 괴물이 나타날 위험도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재빨리 시선을 돌려 그녀 주변을 확인했다. 그녀가 무사한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시선을 놈한테로 돌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빌어먹을 괴물놈이 시야에서 사라져서 만족했건만 또 이놈을 내 시신경에 인식시켜야 한다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총에서 나간 탄알 중 한 발이 놈의 입 안을 꿰뚫은 걸까? 촉수로 입 주변을 만지며 엄청난 괴성을 질러댔다. 노리고 쏴도 못 맞는 총알인데 이런 식으로 식도나 입 부근을 관통할 줄이야. 오늘 운수 좋구만.
입 주변에 피해를 입을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빔 공격의 사용횟수가 매우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고열(高熱) 덩어리인 빔 공격을 버티기에는 그들의 입. 무기로 말하자면……발사구(發射口)의 상태가 너무 약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태가 온전치 못한 무기를 사용하는 건 사용자한테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탄알이 제대로 총에서 나가지 못해 폭발을 일으키는 사건은 흔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그러한 영화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을 배경으로 만든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미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넣은 거라고 생각해도 문제는 없었다.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이든 영화든 간에 대부분의 창작물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 혹은 일어날 법한 사건’을 나타내곤 했다. 총의 상태가 좋지 않아 터질 수 있다는 건……고열(高熱)의 빔을 쏘는 입이 다친 상태에서 함부로 그 공격을 썼다간 입 주변. 좀 심하면 얼굴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빛에 닿는 모든 것을 녹이는 힘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 자기 입에서 터진다면 무사할 리는 없겠지. 내 가정이 옳은지 어떤지는 둘째 치더라도 입을 다친 덕분에 귀찮은 빔 공격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다.
개머리판을 견착시킨 후 한 발 한 발을 정성스럽게 놈의 몸에 먹여준다. 탄알이 탄착(彈着)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대는 저 모습! 저 모습이야말로 내가 놈들을 토벌할 때 가장 즐기는 요소 중 하나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길 정도로 막장 변태 새끼는 아니었지만 괴물한테만큼은 달랐다. 이놈들을 포함해 촉수괴물이란 족속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가는……그야말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놈들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도 태연한 놈들이지만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타격을 입으면 이렇게 엄살을 떨어댄다. 망할 새끼들…….
다른 사람들을 때리든 죽이든 상관은 없지만 자기들은 결코 다쳐서도, 아파서도 안 된다니. 그건 대체 어느 나라 어느 동네 개그일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기들 꼴리는 대로 행동하면서 남한테 피해만 주는 걸 생각하면 역시 카인이 만든 괴물이구나 싶었다. 그 주인에 그 새끼. 창조주나 피조물이나 다 똑같구만…….
카인이 자기 꼴리는 대로 행동해서 다른 마을 사람들, 그들의 터전, 평화와 행복까지 모조리 앗아간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백발의 여자였던 그녀가 카인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이 괴물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었다. 정말 악독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놈들에 대한 감정은 분노와 증오, 경멸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촉수가 닿는 거리까지 걸어간다. 걸어가면서도 탄알과 철 덩어리를 몇 개씩 처박아준 덕분에 놈의 촉수는 더 이상 공격, 방어. 어느 쪽으로든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씹창이 되어 있었다. 피를 내뿜으며 날 바라보는 그 모습은 괴물 영화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지만……여전히 동정심은 일어나지 않는다.
“……뭐 할 말 있냐?”
죽일 생각이기도 했고 별 감흥도 없지만……그래도 예의 삼아 남길 말이 있냐고 물었다. 이 괴물 새끼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말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 륵……케륵! 켁!? 끄, 륵……]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끝까지 반성도, 뉘우침도 없이 짖어대는 괴물의 미간에 총알을 쏘자 놈의 몸이 축 늘어진다. 경험치와 돈을 얻었다는 메시지가 떠서 아예 확인사살까지 해주는군. 레벨은 여전히 37이었다. 대량으로 붉은색 촉수괴물을 죽여 레벨업을 해서 그런 걸까? 아직도 채워야 하는 경험치는 많았다. 뭐……이제 레벨이야 큰 상관도 없다만.
저 멀리 있던 이루이는 내가 적을 해치우는 걸 확인하자마자 힘겹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달릴 필요 없다니까……. 하긴, 남편인 내가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표정에서부터 우러나오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만.
이루이는 현재 은색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었다. 카미유에 있을 때는 안즈가 존재 유무(有無)뿐만 아니라 적의 위치, 무너지지 않은 건물 등도 확인해야 했기에 무기점을 들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성벽에 올라갔다가 인해전술로 죽을 뻔했는데 무기를 찾을 생각이 들었겠냐?
마을이 박살이 난 건 루인도 마찬가지였다. 프레그넌트, 카미유, 루인. 셋 다 마을이 폐허가 된 상황이었지만 식량이나 옷, 침구류 같은 물자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루인의 무기점 주변을 둘러봤지만 변변한 무기는 찾을 수 없었다.
코스튬으로 건진 것은 하얀색 비키니 아머였다. 안즈한테 입혔던 하얀색 비키니 아머와 마찬가지로 초보자용 장비였기에 이런 초보자용 코스튬은 어느 마을에 가든 존재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모험에 도움이 될 만한 코스튬을 찾은 건 좋은 일이었지만……여전히 불안한 점은 존재했다. 초보자용 장비라고는 하지만 이루이는 초보자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로 약한 여자. 평범한 사람이었다. 당장 이걸 준다고 해서 엄청난 효과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전투에 참여시킬 수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녀가 가진 마법을 들으니 문자 그대로 ‘전투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다. 회복마법이나 물을 만드는 마법 등. 일상생활에 쓰이는 마법을 주로 익힌 그녀한테 전투에 참여하라는 것은 ‘죽어라’라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메이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마법에 대한 숙련도나 이해도가 다를까 싶어 물어봤는데……루인은 성벽이 그리 높지도 않았고 경비대의 전투력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고 한다. 괴물이라고 해봤자 초록색 촉수괴물 정도.
성벽의 높이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촉수로 어떻게 해볼 만한 높이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마을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습격하려고 했다. 그런 추억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에 프레그넌트의 숲에 있던 놈들을 토벌할 때가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새끼들은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루인은 사람이 적은 만큼 마을 사람들과 이웃사촌들 간의 유대감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마을에서 나갈 일이 있으면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 혹은 나가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 늘 함께 나갔다고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지킬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 그러한 감정과 유대감을 무기로 삼아 함께 일을 하곤 했기에 괴물에 의한 피해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던 이유는 그들 또한 필사적으로 덤벼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피해가 났다고 했었지.
아무리 괴물이라지만 에너지원……쉽게 말해 ‘사람’을 잡아먹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은 거겠지. 평소에는 팀워크나 협동성은 좆밥만큼도 없는 주제에 위급하다 싶을 때는 서로 돕는 꼬라지라니……. 그 빌어먹을 발악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이루이 또한 모두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마법 공부가 늘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공격용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마법을 연습할 수 있는 공터 등이 필요했다.
달리기 선수가 트랙을 돌듯이 마법의 사용 및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공터 같이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검술 훈련 때 목검을 가지고 훈련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습을 할 때는 거기에 맞는 장비 또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나 루인에는 그러한 공간이 별로 없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끼칠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마법 연습을 할 수도 없었거니와, 사람이 적은 만큼 일이 있으면 바로 힘을 합쳐 도와야 했기에 연습 시간도 그리 충분하지 않았다. 열의(熱意)는 넘쳤지만 현실이라는 사정이 그 열의를 가로막은 것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것부터 시작해 초록색 촉수괴물과 마주쳤을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공격마법밖에 익히지 않은 상태. 그런 상태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모두 잃었으니 마법의 연습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났을 것이다. 다 죽었는데 마법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 더 이상 마법에 대한 열의를 가질 수 없게 된 이루이. 그러나 로라의 딸이었던 메이는 이와 정반대였다. 거의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도울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가진 메이는 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마법 공부에 몰두했었다. 그 대단한 집념과 열정에는 나도 엄청 놀랐었지…….
마을 사람들을 지키며 여러 가지로 격무(激務)를 봐야 했던 로라한테 있어 메이는 자랑스러운 딸, 만족할 만한 자식이 아니었었다. 일에서 받던 스트레스를 메이한테 발산했으며 메이는 그로 인해 어머니한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일념으로 마법을 배우게 됐었다.
로라와 결혼하던 날 메이도 덩달아 ‘자지의 맹세’를 맺게 됐지만……그것도 이제 와서는 다 추억일 뿐이다. 화해를 한 다음부터는 서로의 보지를 비벼댈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지만 그 모습은 아마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 그걸 생각하니 괴물한테 이겼는데도 기분이 울적해졌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순수한 이루이는 알게 모르게 메이와 닮았었기에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손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가 종종 있었다. 메이나 이루이는 둘 다 아내이긴 했지만 메이는 나한테 있어 딸이기도 했기에 배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었다.
여하튼,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이루이한테 있어 초보자용 장비. 하얀색 비키니 아머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체력과 마력을 올리는 건 좋지만 방어력 부분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가 어려웠기에 이걸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
그런 도중 눈에 들어온 게 괴물들의 시체였다. 괴물로 변해 죽은 마을 주민들 중 은색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카인이 경비대원들도 범했다고 했었지? 마을을 지켜야 하는 여성들이 마을을 열심히 파괴했다니. 죽은 후에도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거 같아 불쌍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경비대원에 대해 생각하던 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하던 도중 한 아이디어가 엄청난 속도로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자마자 왜 지금까지 이런 걸 잊고 있었을까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마음을 연속해서 강타했다.
후회는 언제나 늦게 하지만 대가는 항상 크기 마련이다. 난 지금 후회를 했다. 그렇다면 받아야 할 대가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대처를 해야 했다. 이루이한테 무너진 경비대 막사로 안내해달라고 하자 그녀는 왜 무너진 막사를 찾느냐고 물었다.
거기 가서 꼭 둘러봐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하자 이루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막사로 안내해줬다. 프레그넌트 때와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박살이 난 막사를 보자 한숨이 나왔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한숨은 나중에 쉴 수 있고 후회는 얼마든지 하게 될 것이다.
그치만……지금 안 찾으면 나중에 더 후회할 테니 일단 찾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막사 주변을 뒤졌다. 무너진 경비대 막사의 파편을 치워가며 ‘그것’이 없나 살펴본다. 이곳에는 벌레라는 생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에 거미나 바퀴벌레 같은 해충(害蟲)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아싸! 찾았다!”
건물 파편을 뒤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이 나오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흙과 파편에 좀 더럽혀지긴 했지만 입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였다. 난 이루이한테 부탁해 물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루이는 내가 찾은 게 뭔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허공에 만들어지는 물을 보니 얘도 마법사긴 마법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만……지금은 이거부터 씻자. 그 물에 더러워진 ‘그것’을 넣어 문때고, 비비고, 씻기고, 짜니 ‘그것’은 평소 빛내던 색깔을 보이며 깨끗한 방어구로 돌아왔다.
“겨, 경비대원 언니들이 입던 거네요……?”
그랬다. 내가 찾은 것은 경비대원이 입는 은색 비키니 아머였다. 하얀색 비키니 아머를 봤을 때부터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었었는데……설마 그게 이 경비대원용 비키니 아머였을 줄이야. 가끔은 내 머리도 쓸 만하다니까?
내가 이 은색 비키니 아머를 생각하게 된 것은 안즈와 함께 프레그넌트에 들렀을 때부터였다. 그 당시에는 나와 안즈, 둘 다 몰랐었지만……카인에 의해 사망한 주민이나 경비대원, 레이 시리즈를 태웠기에 비키니 아머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경비대의 군수물품(軍需物品)이 항상 남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안즈한테는 하얀색 비키니 아머(초보자용 장비)를 입혔었지만 여행을 할 때마다 ‘경비대원들이 입던 비키니 아머가 있으면 훨씬 더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초보자용 장비에 비해 세련됐을 뿐 아니라 성능도 훨씬 좋았으니까.
내가 선물로 준 코스튬을 받은 이후로는 은색 비키니 아머를 입지 않았지만 그 전까지는 로라도, 메이도. 둘 다 은색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었다. 이 세상에 소환된 희진이와 은채한테도 잠시간 그 옷을 입혔었고.
입지 않게 된 옷은 경비대 막사의 창고에 들어가게 됐었다. 언젠가 새롭게 들어올 경비대원을 위해 물건은 늘 소중히 다루거나 보관해야 했으며, 그것은 루인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이렇게 멋지게 들어맞으니 이토록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미유에 떨어졌을 때는 그런 걸 생각할 수가 없었다. 거기 가서 맨 처음 만난 사람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괴물로 변했는데 경비대 재고 같은 게 머리에 들어 왔겠냐? 개떼 같이 몰려온 괴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오싹거리는데 퍽이나 그런 걸 생각했겠다…….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온 은색 비키니 아머는 태양빛을 아름답게 반사했다. 역시……컬러도 좋지만 디자인도 예쁘군. 흔히 ‘옷이 날개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50% 정도밖에 안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예쁜 옷이라도 그걸 입는 사람의 외모와 체격에 따라 아름다워질 수도, 안 어울리는 옷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 ‘하렘 어드벤처’에는 추녀(醜女)라는 개념이 없었다. 모두 미녀, 미소녀처럼 아름다웠으며 그들은 모두 고유의 성격과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취향 차이가 나는 옷은 있을지 몰라도 옷이 안 어울릴 정도로 못난 여자는 없었으며, 이는 내 앞에 있는 이루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루이한테 이 옷을 주니 그녀는 머뭇거렸다. 경비대원 언니들이 입던 옷을 정말 자기가 입어도 될지 어떨지 고민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루이야. 이 옷을 입지 않으면 앞으로의 여행은 더 힘들어질 거야. 너를 싸우게 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싸우는 동안에는 너는 너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해. 몸을 지키기 위해서도, 여행을 끝내기 위해서도. 이 옷은 꼭 입어야만 하는 옷이야.”
이루이는 옷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입지는 않은 상태였다. 비키니 아머를 내려다보는 이루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에휴……애가 너무 순수해도 문제군.
“경비대원들이 말했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그 모두에는 이루이, 너도 포함되어 있어.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니가 죽으면 그 마음은 다 사라져. 모두가 죽고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죽으면? 루인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돼버리는 거야. 그게 정말 모두가 바라는 일일까?”
이루이는 고개를 저었다. 연약한 아이를 협박하는 느낌이 들어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내가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서. 우리의 여행이 보다 안전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저 옷을 입어야만 했다. 거부권도, 반론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 옷은 밖의 괴물들과 상대하기 위해 입어야만 하는 옷이야. 그 옷뿐만 아니라 경비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의 넋이 틀림없이 너를 지켜줄 거야. 너와……아기를 말이야.”
그녀의 부풀어 오른 배에 손을 갖다 대자 이루이가 내 눈을 봤다. 그랬다. 전투에 참여하는 건 나뿐이라 치더라도 지켜야 하는 사람은 이루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루이 안에 있는 아기 또한 지켜야 했기에 이 옷을 권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약한데 장비라도 잘 갖추어야지. 안 그랬다간 죽음밖에 기다리는 게 없을 테니까.
“귀여운 아기를 낳아서 함께 살아야지? 이루이처럼 예쁘고 깜찍한 딸이 태어나면……틀림없이 모두 기뻐할 거야.”
이루이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웃음을 짓는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잠시 숨 쉬는 걸 잊을 정도였다. 하아……이런 아이한테 넋을 놓게 될 줄이야. 나도 어지간히 굶주렸던 모양이군.
내 설득 끝에 그녀는 은색 비키니 아머를 입게 됐다. 그 성능은 초보자용 장비보다 훨씬 더 좋았기에 혹시나 괴물한테 물리적 공격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죽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괜히 템빨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라니까?
황금색 비키니 아머는 왕족(王族)만 입는 것이었고 노란색 비키니 아머는 여왕기사단만 입는 것이었기에 성능 면에서는 그 두 종류보다 떨어지지만……반대로 말하자면 ‘그 두 종류 외에는 꿀리지 않는 성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됐다.
배가 조금 부풀어 오른 순수한 임산부(姙産婦)한테 은색 비키니 아머를 입히니 욕정이 더욱 치솟아 올랐지만……지금은 전투가 막 끝난 때였기에 함부로 사랑을 나눌 수는 없었다. 괴물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 풀도록 할까.
계속해서 걱정하는 이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성을 들었을 테니 더 이동해야겠군……. 계속해서 가자는 말에 이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낮의 뜨거운 태양빛을 등진 채 우리는 계속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웃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추석이에요 추석!
거의 10일 가깝게 놀면서도 월급이나 받아먹을 건 다 받아먹을 수 있는 추석이에요!
좆같은 상사 얼굴 볼 필요도 없이 놀면서 돈도 받아먹을 수 있다니!
엿 같은 회사 다니면서 일하는 보람이 있어요! 웃우우우우웃!
엑에에에에에────────엣!
플로듀서! 유희왕이에요 유희왕!
워낙 아크 파이브가 병신이라 어떤가 싶어 제알을 좀 보기 시작했는데 존나 재밌는 거예요! 듀얼리스트로 활동하던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태그포스 스페셜만 줄창 잡고 있어요!
이러다가 틀림없이 스트럭처 덱 하나 지를 거 같아요! 엑에에에에엣!
웃우우우우우우웃────────!!
플로듀서! 200화에요 200화!
이 뭣 같은 소설이 200화에 곧 도달한다니!
이 개막장 소설을 지금까지 봐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려야 하는 거예요!
감사의 표시로 섹스씬과 막장도를 더 높이는 거예요!
그러다가 수위 너무 높아 신고 당해도 전 관계없는 거예요! 웃우우우웃────!!
오랜만에 적는 거라서 좀 어색하네요. 안녕하세요, 여전히 회사에 혹사당하고 있는 신세린입니다. 이번 주를 채우면 200화까지 10화 남게 되네요. 여러 모로 감개무량합니다. 작년 11월 말에 소설을 적기 시작했는데 200화라니. 기쁘면서도 슬프네요. 이룬 건 나름 많지만 끝이 다가오기에 살짝 슬프기도 합니다.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소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적을 생각입니다만, 생각해둔 결말과 전개는 아마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과 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처녀 작품이라 급전개나 막장전개가 많다고 볼 수밖에 없겠네요. 좀 더 많이 연재를 하며 독자분들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했더라면 지금 이상의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곤 합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산타찡2님, 아버지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개념으로는 알고 있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중세시대면서 샤워기가 존재하는 세상이니 아버지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안 될 거 같네요.
고양이새벽님,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는 힘들지만 많은 분들이 즐겁게 봐주셔서 열심히 적자고 마음먹게 되네요.
이상입니다. 이번 9월 중으로 200화까지 적으면 잠시간 휴식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적을 생각이고, 200화 이후의 글은 어쩌면 현재 글의 양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네? 글의 양이 늘어나니까 질도 좋아지는 거 아니냐고요?
……레드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