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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76화 (176/235)

00173 「18-2 : 종언의 카운트다운 (3)」 =========================

한국이나 중국, 미국에 수출된 일본 애니메이션은 수도 없이 많다. 그것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라 한다면……역시 닌자(Ninja)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일본에 대한 여러 환상 중 가장 인기 있으면서도 다루기 쉬운 장르 중 하나가 닌자였으니까.

키시모토 마사시(岸本 斉史 ; きしもと まさし / Kishimoto Masashi)가 그린 『나루토(NARUTO)』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닌자와 판타지가 적절하게 섞인 이 작품은 노력과 근성, 캐릭터의 개성. 서로가 쓰는 인법(忍法)이나 인술(忍術)의 강점과 약점을 적절하게 조절함으로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를 보여주고는 했지.

후반부에 가서는 스토리가 엉망이 되고 설정 구멍, 설정 충돌 등이 일어나 논란이 일어나곤 했지만……닌자에 대한 환상, 개념 등을 알리기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이 작품을 보며 즐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나루토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다양했다. 후반부로 가며 엉망이 된 스토리, 설정 충돌이나 구멍. 맥거핀으로 남은 소재들 등. 다양하게 살릴 수 있었던 소재들이 모조리 없어지고 자극적인 전개만 일삼은 것들이 비판 받는 이유였지. 뭐……작가가 휴재(休載) 없이 계속 연재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거니 어쩔 수 없지만.

주인공인 나루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금술(禁術)인 예토전생(穢土転生)을 만들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까이는 발언 중 하나였다만, 이 ‘예토전생’이란 술법이 너무나 엄청난 파장이었기에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종종 볼 수 있었다.

나루토 최대의 논란거리인 이 술법의 효과는 매우 간단했다. 너무나 심플하면서도 강력했기에 이걸 보는 사람들도 ‘저렇게 파워 밸런스를 망치면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냐?’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이 술법 때문에 엿 먹은 캐릭터가 장난 아니게 많았으니까.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기술. 쉽게 말해……산 사람의 몸에 죽은 사람 영혼을 처넣는 술법이었다. 죽은 사람을 불러내기 위해 산 사람을 바치다니. 그야말로 고인드립의 진수(眞髓)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고인드립은 말 그대로 [고인(故人) + 드립]이었다. 죽은 사람을 소재 삼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뜻했다. 이전에 말한 패드립과 동급의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기에 이거 잘못 하다가는 처맞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죽어 마땅한 범죄자나 나쁜 놈들은 예외였다. 그런 놈들은 고인드립을 당하더라도 이미 지은 죄가 있었기에 반론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이나 재산을 앗아갔으면 거기에 대해 응당 죄를 치러야 했으니까.

모욕이나 조롱을 당하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지 말았어야지.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 책임도 못 지면서 조롱이나 모욕을 당하긴 싫다고? 헛소리도 정도껏 하라 그래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토전생은 그야말로 고인드립이었다. 죽은 사람을 자기 멋대로 이용하기 위해 혼을 불러내는 것도 모자라 산 사람까지 제물로 바쳐야 하다니?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모두 희롱하는 최악의 술법을 그저 ‘주인공 손에 피 묻히기 싫으니까! 좀비는 사람이 아님! 죽여도 됨!’이라는 생각 아래 만들어 내다니. 너무 얕은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장난삼아 ‘너네 엄마 예토전생 시켜버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행하긴 했지만 사실은 매우 심각한 술법이었다. 죽은 사람을 불러 자기 뜻대로 조종하다니.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는 이미 살포시 접어 쓰레기통에 버린 거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나라면 하늘이 무서워서라도 그런 짓은 못 할 거 같았다.

물론 예토전생처럼 ‘죽은 사람을 되살려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시도’는 서양에서도 보였다. 좀비나 키메라, 프랑켄슈타인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지.

죽은 사람 혹은 괴물을 만들어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법한 일이었고, 그게 서양이냐 동양이냐. 닌자냐 괴물이냐로 나누어진 것일 뿐. 사상이나 아이디어 자체는 평범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웃거나 무서워하며 좀비 영화를 보곤 했지만 그걸 보며 ‘실제로 좀비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좀비를 포함해 ‘생명활동이 정지한 생명체가 다시 살아 움직이는 일’ 자체가 현실에 없었으니까.

세상에는 나 같은 괴짜가 많아서 그런지 ‘만약 좀비가 나타난다면?’이라는 소재로 영화나 책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심심하면 그런 책을 보며 ‘ㅋㅋㅋ아, 역시 나 외에 미친놈들이 많긴 많구나! 야,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라며 웃고는 했지.

그런 책이나 영화가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였고 그 내용 또한 아주 신뢰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소생(蘇生)한 괴물’에 대한 믿음은 적은 것이었다. 예토전생이든 좀비든 간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설령 나타난다 치더라도 총알이나 폭탄, 재래식 병기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기에 그런 것들이 나타나면 군인들이나 국가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쓰는 건 마법으로 만든 탄알이고 위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괴물을 마구 쏴죽이는 무기 앞에서 좀비나 키메라가 무사할 리가 없지 않은가? 영화 같은 곳에서는 죽는 역할로 나오는 군인들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화력이었다. 좀비든 뭐든 간에 괜히 깝치다간 THE END. 총알받이라는 말이 왜 태어났는지 몸소 실감하게 되겠지.

괴물을 죽인 나는 그 후에도 도망쳤다. 전투를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마을. 더군다나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마을에서 모든 전투를 피하며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살아있는 인간.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아‘있었던’ 인간을 쏴죽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내 눈앞에서 괴물로 변하는 걸 본 후부터 붉은색 촉수괴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괴물이 되어버렸다.

총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쫓아오려는 그들은 보통 괴물과는 달랐다. 죽은 사람을 모체로 태어나서 그런 걸까. 움직임은 느렸으며 체력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 그나마 특징이라면 등이 아니라 배를 찢으며 나온 붉은색의 촉수들. 입에서 나오는 산성 액체. 좀비처럼 끈질기게 쫓아오려 한다는 점 정도.

전체적인 스펙은 다른 괴물보다 낮았지만 저 괴물들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생각한다면 절대 웃으며 싸울 수 없는 적이었다. 몸을 숨기기 위한 집 중 가장 은폐 및 엄폐가 잘 될 거 같은 곳을 발견한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들어간 후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중얼거렸지만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괴물이다.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라지만 지금은 촉수와 산성 액체를 내뿜으며 나를 죽이려 드는 괴물이지. 얼마나 많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이 마을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심하고 이기적이다 못해 가증스러운 병신 새끼. 나는 나 자신을 미친 듯이 욕하고 저주했다. 뭐가 ‘그 사람들을 쏠 수 없다’냐? 목숨과 인간성에 대한 존중? 가식(假飾) 떨기는. 잘난 척은 혼자 다 한 주제에 목숨이 위험하다 싶으니 총부터 쏘고 보는 인성 보소! 쓰레기 같은 새끼!

괴물이지만 그들은 원래 마을 사람이었다고, 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전투를 피하려 했던 내 정체는 별 볼일 없는 한심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총을 쏜 걸 후회하면서도 혹시나 끝까지 추적할까봐 확실하게 숨통까지 끊은 주제에 뭐? 그 사람들을 쏘고 싶지 않았다고? 눈물을 흘리던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오열해야만 했다.

그래, 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이 딱하고 불쌍한 건 알지만……그대로 놔둔다고 뭐가 해결된단 말인가? 죽어서 괴물이 된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오나? 그들이 원래대로 돌아가 이 마을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전부 불가능한 일, 있을 수 없는 일들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 한 목숨을……아직 아내들을 구하지 못한 채 이런 곳에서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총을 쐈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살아남는 것이 필수조건이었으며, 그 필수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했으니까.

내가 마치 성자(聖者)인 양 말했지만 결국은 눈앞에 있는 사람 한 명 못 구하는 무력한 인간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괴물을 쓰러뜨리고 여러 일을 해내왔지만……신세린이라는 인간의 본질은 결국 이거겠지. 운이 좋고 어쩌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얻었지만, 막상 위험한 곳에 혼자 있으니 이 꼬라지다. 참……대단하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기혐오에서 나오는 자기비판 및 비난은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고개를 가볍게 흔든 나는 현재의 문제점,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은 단 두 가지였다.

⓵ 이 마을에서 생존해 탈출

- 당연한 소리다. 죽은 채로 남을 수는 없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어딘가의 마을인 이상 일주일만 소비하면 수도로 갈 수 있다. 그러한 희망을 품은 나는 아이템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아직 남아 있는 식량이 있긴 했지만 일주일 어치는 좀 어렵겠군…….

⓶ 안즈의 존재 유무(有無) 확인

- 함께 자던 안즈가 이곳에 왔는지 어떤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잠을 자던 내가 이곳에 소환됐다는 것은 함께 있던 안즈도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아내를 둔 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으니까. 만약 있다면 배가(倍加) 능력을 써서 단숨에 탈출할 수 있을 테니 그것 또한 좋은 선택지였다.

이곳에서 놈들이 물러가는 걸 확인한 후 식량 등을 모으며 안즈를 찾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계획이었다. 그녀들의 살점이나 피가 묻은 식량을 먹는 것은 피해야 했다. 괜히 그거 먹었다가 나도 저 사람들처럼 변하면 본말전도(本末顚倒)니까. 안즈를 찾아야 하는 내가 괴물이 되다니. 끔찍하잖아!

식량과 안즈─이 마을에 존재할 경우─를 찾아 이 마을에서 탈출한다. 한 마디로 요약한 문장이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이전에, 이 마을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안즈를 어디서 어떻게 찾으란 말이냐?

찾으러 가기 전에 생각해야 하는 것은 또 하나 더 있었다. 그 여자가 했던 말……. 하얀 머리의 남자가 찾아온 이후로 모든 게 다 미쳐버렸다고 하며 괴물이 되어버렸지. 그 여자의 죽음을 다시금 애도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카인이 이 마을에 와서 무슨 짓을 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유언(遺言)을 남기며 죽었을 리가 없지. 하지만……그가 온 후로 모든 게 다 미쳐버렸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말은 ‘카인이 이곳에 자주 혹은 오래 있었다’라는 조건이 있어야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아내들한테 늘 둘러싸여 있던 카인이 대체 언제 이 마을에 왔단 말인가. 나한테 빼앗아봤자 별 소득도 없고 좋을 것도 없는 임금의 자리다만, 임금이 그렇게 쉽게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나? 여기 와서 만날 사람이 누가 있다고? 바람이라도 피우지 않는 한은…….

“……어?”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 다급한 상황에 나는 ‘어’라고 중얼거렸다. 바람? 바람을 피워? 어,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카인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시간? 기회? 이유는 모르지만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머리 안에 있는 기억의 바다를 헤엄치며 잡은 그 ‘말’……!!

‘그런데 최근 들어……그가 우리를 놔둔 채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많아졌어요. 궁금해서 어디로 가냐고 물었지만 그는 알 필요가 없다는 말만을 했어요. 그와 함께 있는 동안은 그런 말을 들어도 어디로 가는지 의심할 줄도 몰랐고 의심할 필요조차 못 느꼈죠.’

왕인 주제에 아무런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던 카인. 그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궁금했지만 당시에는 어디로 가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보가 없었으니까.

‘예. 저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꽤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분신을 만드는 것도 꺼리더군요. 짧으면 1~2시간이지만 길면 밤에 나간 후 다음날 아침에 오고는 했어요. 그가 외출할 때마다 저희는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구요.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 로라와 세린의 이야기 덕분이었어요.’

분신을 만들지 않고 갔냐는 말에 마리아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집중해야 하는 일……카인급의 인물이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분신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걸 피해야 할 정도로 세밀한 작업을 해야 했다……?

‘행선지를 말하지 않은 건 안타깝지만 돌아올 시간에 대해서는 말을 했었거든요. 그게 좀 의아하다고 생각했지만……괜히 티를 내면 안 되니 그냥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했어요. 내일 아침쯤에 돌아온다고 했으니 오늘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세린을 위해 모두 모인 거구요.’

답이 나왔다. 견적(見積)까지 확실히 나왔다고. 그게 아니면 뭘 의심하겠는가? 마리아를 통해 들었던 카인의 행동이 이렇게 연결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손이 덜덜 떨렸다.

이 미친 새끼……미쳤어. 원래부터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놈한테는 윤리(倫理)나 인륜(人倫)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거 같았다.

카인은 신(神)이다. 이 세상과 모든 여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절대자. 전지전능하지는 않지만 전지전능에 가까운 인물이지. 프레그넌트의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극적으로 등장한 그였지만……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신은 자기가 있는 세상, 자기가 만든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 아냐?]

신과는 다르다만……대통령이나 총리 등 어느 나라의 수장(首長)에 해당하는 인물은 모두 국익(國益)을 위해, 국민(國民)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일하는 윗대가리들을 존중하거나 존경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국이나 일본이 그 대표적인 예시지.

그래도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과 달리 사리사욕에 관계없이 자기가 사는 세상. 자기가 만든 세상과 피조물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카인이 나를 엿 먹이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한테도 무언가 목적이나 목표, 지향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그리고 오늘, 내 생각은 모두 병신 헛짓거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가 그놈을 좋게 생각한 것, 그놈한테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다르다. 카인은 이 세상의 신이지만 놈한테 있어 이 세상은 자기의 욕망과 즐거움을 채우기 위한 놀이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놀이터도 좋게 봐준 거다. 놀이터는 모두와 함께 노는 공간이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은 카인한테 있어 즐거움을 얻기 위한 장난감이다. 언제든지, 얼마든지 조종하고 지배하며 가지고 놀 수 있는……카인 전용의 장난감 세상.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프레그넌트의 사람들이 괴물한테 죽은 것도. 생명의 씨앗을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만든 것도. 나 외에 12명이나 되는 남자(+희생양이 된 여자들)를 소환해 죽게 내버려둔 것도. 내 아내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마력과 마법, 아이템을 모조리 강탈해간 것도. 배가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야만족들이 그 고열(高熱)의 공격에 의해 다 죽어버린 것도.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모두 다. 전부 다 카인의 작품이자 사주였다.

대체 어째서? 왜? 무슨 권리가 있다고? 어떤 자격이 있다고 사람의 목숨을……이 세상 사람들의 목숨과 운명, 미래를 자기 멋대로 정한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단 말인가?

신이라서?

신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신이면 뭐든 다 해도 되는 거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한숨은 피곤하거나 힘들어서 내쉬는 한숨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울분(鬱憤)과 슬픔을 담은 한숨이었다. 이게 다 뭐야……이게 다 뭐냐고!?

아이나의 어머니는 아이나와 아이라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죽음은 슬프지만 그녀의 죽음은 질(質)로 따지자면 숭고한 희생이었다. 소중한 아이를 두 명 낳고 죽은 거니까. 그녀로 인해 아이나와 아이라를 만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없지만……아이나와 아이라의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곳에는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 정의가 존재했다. 그렇지 않은 죽음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뜻과 이유를 동반했으며, 그런 죽음을 보며 나는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와 뜻이 있었고, 죽은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지키려던 정의나 의지, 뜻이 있었다. 죽음은 슬프지만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며 뜻 깊은 것이었다. 누군가가 장난삼아 조롱하고 모욕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적 또한 있었기에 죽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맨 처음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저 죽음을 무서워했지만, 부카케에서 미카를 구하기 위해 싸웠을 때는 정말 죽음을 각오했었다. 자동사격 모드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다 쳐도 이상할 게 하나 없었지.

죽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냐고? 그럼, 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못 보게 되는데! 두 번 다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못 만나게 되는데, 안 두려울 리가 있겠냐? 오히려 현실 세상에서 맞이할 일도 없었던 죽음의 기회, 공포를 맛보게 됐는데 안 무서워하면 그게 미친놈이지!

프레그넌트 주변의 괴물을 토벌한 이후로는 좀 나아졌지만 그 전까지는 괴물에 의한 인명 피해가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 함께 웃으며 지내던 이웃이 어느 날 아침에 안 보이게 되는 건 다치거나 죽었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그 정도로 심각했던 피해가 현재에 와서는 거의 없게 됐다. 모두 덕분에 말이다. 내 덕도 있지만 모두 내 덕은 아니었거든.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인력(人力)이 곧 재산이었다. 재산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생명이 후에도 이어지도록 아기를 만드는 것이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최고의 행복이라 여겨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죽음과 상반되는 탄생. 모두가 슬퍼하는 게 죽음이라면 누구나 기뻐하는 게 탄생과 생명이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 또한 아기를 가지게 되어 밝은 미래와 행복한 나날을 바랐을 텐데……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다니. 이 비극을 표현할 말 따위는 어딜 찾더라도 없겠지.

모두가 노력해서 일군 평화와 행복. 그 평화와 행복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생명의 탄생마저 이렇게 비참하게, 무참하게 빼앗기다니! 빼앗겨서 죽은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 시체마저 괴물로 이용당하다니…….

만약 내가 이런 일을 당했더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겠지. 무덤조차 가지지 못하는 괴물로 이용당했더라면 유령이 되어서라도 복수를 하려 했을 것이다.

선을 넘었다. 무슨 선이냐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이다. 이미 예전부터 그 선을 넘고 있었지만……선을 넘는 행위, 도를 넘는 행동의 끝에는 내가 있었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가지고 놀기 위해 하는 행동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한테 늘 사죄의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헌데 이건 무엇인가? 이건 괴롭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가본 적도 없고 갈 일도 없었던 마을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다니! 이게 무슨 좀비 영화인 줄 아냐?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죽음의 안식까지 빼앗아버리다니! 이게 신이 할 짓이냐? 그 잘난 신이 할 짓이 없어 이딴 짓을 하냔 말이다?

하얀 머리의 여자. 카인. 어느 쪽이든 다 미친 연놈들이었다. 그런 연놈들은 신으로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인정하게 내버려둘 생각도 없었다. 나한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간 것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도,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무참히 살해하다니. 너희가 무슨 신이야, 개 같은 새끼들아……!!

두고 봐라……. 반드시.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원한은……너희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의 복수를 반드시 할 테니까! 이제 통하든 말든 상관없다.

다시 수도로 가서 너를 만나면 인사 대신 총알을 그 아름다운 미간에 박아주마. 너 같은 미친 살인마 새끼가 왕으로 군림하게 놔둘 수도 없고, 내 소중한 아내들의 몸을 주물럭거리게 놔둘 수도 없다……!!

눈물을 흘리며 나는 다짐했다. 늦었다. 늦어도 너무나 늦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카인의 속셈을 알아차렸더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카인을 죽이려 했다면……적어도 이런 비참한 장면은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이 마을이 이런 죽음의 마을로 변할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 설령 변했다 치더라도 몇 명이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몸과 마음을 감쌌고 나는 결국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더 이상 주변에 괴물의 낌새나 기척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내가 소리 내어 울지 않으면. 내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들의 죽음과 진상(眞相)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울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나라면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자기랑 전혀 상관도 없는 일, 짐작도 할 수 없는 존재. 그 잘난 신(神)이라는 놈 때문에 정든 집과 고향을 잃은 것도 모자라, 죽은 후에는 흉측한 괴물로 변해 살던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데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장담컨대 눈을 못 감을 것이다. 내가 치졸하고 졸렬한 놈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이건 아니다. 망자(亡者 ; 죽은 사람)한테는 갖추어야 하는 예의가 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나 학살자라면 또 모를까,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모두 죄 없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뱃속의 아기와 함께 보낼 미래를 그리며 기뻐하던 여자들이라고.

자기의 목숨과 터전,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긴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괴물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고? 소중한 아기를 넣어두던 배가 찢기며 괴물 같은 촉수가 나왔는데 그걸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씨발, 제정신이냐? 대가리를 생각하려고 올려놓은 거니, 어깨가 허전해서 올려놓은 거니? 일상생활 가능하니?

그러나 이 마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슬퍼할 수도, 분노할 수도 없다. 카인이 밤중에 나갔던 것은 이런 일을 일으키기 위한……일종의 안배(按配)였겠지. 자세한 내막(內幕)은 모르지만 죽어가던 여자의 언급과 카인의 행동. 마리아의 언급을 바탕으로 추론하자면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이딴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미친 사상이지만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단순한 망상이다. 그런 미친 사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 구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면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거지. 바로 지금, 여기처럼…….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카인은 최고 위험 요소였다. 원래 그놈을 죽일 생각이었다만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그의 목적에 대해 생각할 명분도 사라졌다. 미친놈 죽이는데 무슨 명분과 이유가 필요해? 일단 죽이고 봐야지. 죽어간 사람들을 대신해 복수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눈물과 몸에 있던 흙, 먼지를 털어낸 나는 주변을 살핀 후 은신처에서 나왔다. 이미 사람은 없는데다 부서지기까지 한 집이었지만……허리 숙여 감사를 표현한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이렇게……내 마지막 여행이 시작됐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여행이…….

============================ 작품 후기 ============================

드디어 시작된 세린의 마지막 여행입니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정해진 상태. 과연 세린의 모험이 어떻게 끌날까요.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로리콤MK님,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라는 마크가 뭘 뜻하는지 몰라서 대답을 못 드렸습니다. 전 잘 몰라서 그런데 어떤 뜻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대답을 하려고 해도 '@가 무슨 뜻이지?'라는 사태가 발생해서 뭐라고 대답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 양해바랍니다.

고양이새벽님, 여행이긴 하지만 사실상 도망치며 하는 여행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붉은색 좀비가 주변에 있는데 그걸 모조리 다 도륙내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주인공이 아니거든요. 목숨 아낄 줄 아는 캐릭터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업로드 시간을 바꿔야 하나 생각 중이네요. 회사일이 힘들어 가면 갈수록 후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창작욕구는 늘어나는데 대가리와 집필속도, 시간이 거기에 따라가질 못해요. 이게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하신 분만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고로, 앞으로도 열심히 올리겠지만 시간대는 변경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레드썬을 하겠습니다.

예? 레드썬 금지령?

미토메라레나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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