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2 「18-1 : 종언의 카운트다운 (2)」 =========================
부서진 집의 파편은 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목제 가구가 부서져 끝이 뾰족한 파편도 있었으며, 그러한 파편은 잘못 찔리면 절대 좋은 꼴을 볼 수 없었기에 주의해야만 했다. 파편에 하반신이 묻힌 채 신음을 하는 그녀는 어떻게 보더라도 중상……혹은 그 이상의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잔인한 말은 하기 싫다만……가망이 없었다. 회복 마법이라도 있었다면 또 모를까 마법뿐만 아니라 마력까지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파편을 제거하는 것 정도겠지.
이것보다 더 한다 치더라도 안전한 곳에 이 여자를 눕히는 게 고작이다. 비정해 보이는 말과 행동이었지만 나도 내 목숨과 아내를 챙겨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나름 소리를 죽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녀는 ‘으어어……’라는 신음을 낼 뿐이었다. 망할! 이렇게 신음만 내서야 함부로 말도 못 걸잖아! 난 속으로 그녀를 욕하며 건물 파편으로 손을 뻗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할 일이나 빨리 마치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M16A1을 소멸시킨 후 두 손으로 파편을 옮기며 그녀를 살폈다. 배 부분이 부풀어 오른 것은 태아(胎兒) 때문인가……? 이런 제기랄!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뿐만 아니라 배 안에 있는 아기도 위험하다는 소리잖아!?
마리아와 아테나가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 없게 된 이후로 여성들은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됐었다. 그런 그녀들이 임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법으로 만들어 낸 좆물 캡슐 때문이었다. 먹는 것만으로 임신 상태가 되는 편리함 덕분에 각 마을에 캡슐을 전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모두가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됐었지.
그녀 또한 캡슐을 먹은 사람이었나……!! 더욱 더 몸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녀가 죽는 것도 싫지만 태아가 세상을 보지도 못한 채 죽다니! 이런 맙소사……어쩌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거야!? 이곳의 경비대는 청록색 촉수 괴물의 침략을 끝내 막지 못했던 건가? 애초에……이 마을은 대체 어디야!?
“저기, 괜찮아요? 예? 제 말 들려요?”
내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높아져 있었다. 더 이상 진정을 할 수 없었다. 세상에……보통 여자가 파편에 깔려 피를 흘리는 것도 안타까운데 임신이라니? 아기를 가진 상태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잘못하다간 태아가 유산(流産)될 수도 있는 상황에 어떻게 진정을 하란 말이야?
“아, 윽……도망, 쳐……!!”
처음으로 신음이 아닌 목소리. 하나의 문장이 나왔기에 나는 적잖게 놀랐다. 아직 말을 할 수 있다! 그렇다는 건……의식이 있다는 거다! 좋아, 더 빨리! 싸게 싸게 이 빌어먹을 파편들을 치우는 거다!
제대로 된 대화와 그녀의 반응.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 덕분일까? 내 몸은 내 생각 이상으로 잘 움직여줬다. 프레그넌트에서 물자를 챙길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여자의 하반신이 시선에 들어왔다.
“우욱……!!”
망할! 당장에라도 욕지기가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을 참아야만 했다! 이 여자의 몸에도 그렇지만 여기서 토해버리면 정말 실례잖아!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처참했다. 너무나 처참했다! 눈물마저 약간 나올 정도였다.
짓눌려버린 하반신은 심하게 말해……씹창. 정중하게 말하면 치료 불가능의 상태에 가까웠다. 이상한 각도로 돌아가 버린 다리를 보니 관절 부분은 이미 박살이 난 거나 다름없어 보였다.
관절만 박살났으면 차라리 나았겠지만……무거운 파편이 떨어질 때는 운동 에너지와 파편의 중량(重量). 그리고 중력에 의해 더욱 더 위력이 강해진다. 높은 곳에서 함부로 물건을 떨어뜨렸다간……으으!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그 오싹한 상상의 결과가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다니! 안 보고 싶은 걸 봐버렸어……이거 분명히 몇 달……아니. 몇 년 동안은 트라우마로 남을 거다. 장담컨대 절대 쉽게는 사라지지 않을 광경이 내 눈과 뇌리에 박혔단 말이다…….
관절이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다리 안에 있는 인체의 일부가 훤히 보였기에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까지 확인사살을 해야 하냐?
안 그래도 소생(蘇生) 가망이 없는데 그걸 ‘어떤가요? 다리가 이 상태니 영원히 걷지도 못하겠네요? 게다가 피도 많이 흘렸고. 곧 죽겠죠?’라며 동네방네 광고를 해야 하냔 말이다!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은 부지런히 파편을 제거하고 있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부지런히 움직인 게 아니라 기계적으로 움직였던 게 아닐까 싶다. 되살아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하다못해 온몸을 짓누르는 파편이라도 제거해 고통을 덜어주자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인 게 아닐까 싶더라.
파편을 다 치운 나는 달성감에 젖을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을 돌렸다. 이 이상 태아가 짓눌렸다간 어머니인 그녀뿐만 아니라 아기도 죽을……?
“헉!?”
여자 앞에서 차마 내서는 안 되는 소리였지만 난 결국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태아가 있어야 했던 배 부분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건 단순히 피가 고여 신체의 색깔이 변한 게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마치 당장에라도 무언가가 태어날 것처럼 배 일부분이 불룩대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으니까!
그로테스크(Grotesque). 고어(Gore). 그 어떤 말을 쓰든 간에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어디선가 저런 거 비슷한 걸 본 적 있는 거 같은데……아, 앗! 그래! 그거였다! 난 예전에 본 B급 공포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거미 괴물한테 ‘새끼 거미’를 주입(注入)당한 사람들. 그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새끼 거미의 모체(母體)가 되어버렸다. 새끼 거미들은 사람의 몸 안에서 내장과 피, 각종 기관을 빨아먹으며 몸을 불렸고……사람의 배를 뚫고 나오는 것으로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지.
유명한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가슴팍이 뚫리며 에일리언이 탄생하는 장면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장면 중 하나였다. 사람이 죽는 건 둘째 치더라도 외계인이 사람의 몸을 뚫고 나오는데 그 누가 놀라지 않을까? 아기가 저렇게 태어날 리는 없지 않은가!?
“윽, 아아앗! 죽여, 요! 날 죽여요!”
신음이 아닌 목소리. 문장을 만들었던 그녀는 자기 몸에 이변(異變)이 생겼다는 걸 알았는지 자기를 죽이라며 소리 질렀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부풀어 오른 배는 무언가가 활개를 치듯 들썩거렸고, 당장에라도 검게 변한 살점을 찢고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았다.
자, 잠깐만……!! 야, 잠깐만! 뭐? 죽이라고? 대체 이게 무슨……? 저, 저거 아기 아니지? 응? 아무리 봐도 아기일 리가 없잖아……!? 좆물캡슐을 복용했다 치더라도 2~3개월 정도가 되는 게 고작인데 아무리 봐도 저 배는 6개월 이상의 배였다.
문제는 부풀어 오른 배의 크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검게 변한 것도 문제지만 안에서부터 뚫고 나갈 듯한 저 수상한 움직임. 저 이상한 요동(搖動). 저건 아무리 봐도 사람의 아기가 아니었다. 당장에라도 예전에 봤던 B급 공포영화처럼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저, 저기요……! 괜찮아요? 예? 대체 무슨……허억!?”
뒷골이 오싹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고!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의 비명도 무서웠지만 더 무서운 것은……주변의 괴물들이 충분히 듣고도 남을 저 비명의 크기! 단언컨대 괴물들은 저 비명을 듣고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젠장! 역시 도망쳐야 했어……!!
때늦은 후회를 하며 M16A1을 꺼냈다. 나는 생각하기 싫었지만 내 몸과 이성은 이미 결론을 내고 있었다. 시발 새끼들! 이성과 몸은 나를 위해 최선의 결론을 내지만 항상 그걸 실행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나다! 왜 내가 맨날 나쁜 놈 역할을 해야 해!?
이제 배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불룩대고 있었다. 내 안 좋은 예감. 100%에 가까운 예지 능력에 의하자면……저건 틀림없이 터질 거다! 그리고 나를 향해 공격하겠지! 공격이 아니더라도 절대 사람한테 좋은 생명이 태어날 리는 없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지금이라도 저 여자를 죽이자! 그럼 그걸로 만사 OK! 깔끔하게 해결되는 거지! 저 여자도 자기를 죽이라고 하잖아?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녀 자신이 죽여 달라고 하니까 죽여주자고. 응? 그녀는 죽음을 맞이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너는 위험한 일에 노출될 필요가 없어. 어때, 응? 최고지? 자, 빨리! 손에 무기도 있고 타겟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뭘 망설여? 빨리 쏴!】
좀 닥쳐줄래, 시발놈아? 내 몸과 뇌, 이성이 모두 힘을 합쳐 생각한 게 그거냐? 죽여 달라며 울부짖는 사람을 쏴죽이는 거라니……! 주변을 살폈지만 괴물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죽여 달라며 소리를 지르는데도 괴물이 오지 않는 것에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만, 그 느낌도 그녀가 지르는 비명에 곧 지워진다.
“이, 이봐요! 정신 차려요! 대체……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일이 왜 이렇게 된 거냐, 그 몸은 뭐냐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지만 내 뇌는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중요한 것. 마을부터 시작해 그녀의 몸이 이렇게 된 이유를 모두 포함하는 질문을 날렸다. 너무 많은 걸 물을 수도 없지만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으니까.
“아, 윽! 제발 죽여주세요! 저, 흐극!? 아, 아앗! 흐큭, 억! 저도, 마을 사람들처럼……!”
“예!? 아, 아니……제발! 제발 말을 좀 해달라구요! 이래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을 죽여 달라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잇지 못한 말은 뇌가 명령한 것. 그녀를 죽여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녀는 힘겹게 나를 보며 피로 물든 입을 간신히 열었다.
“그, 하얀 머리의 남자……!! 그 사람이 온 후로, 모든……게엣!? 하, 하악! 으윽, 다, 미쳐버렸어요! 아악!”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말한 내용은 온몸의 힘을 쭉 빠지게 했다.
방금……뭐라고 한 거지?
하얀 머리의 남자?
……카인!?
“허, 억! 제발, 죽이세요! 마을 사람들처럼, 변해버리면……아, 아앗!? 안 돼! 안 돼에엣! 죽여! 죽, 아아아아앗!”
푸화하악!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검게 물든 배가 터져버렸다. 배가 터지며 살점과 피가 주변으로 튀었다. 피 몇 방울이 내 바지에 묻는 걸 보면서도 난 피할 엄두조차 못 냈다. 내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아, 맞아. 숲. 프레그넌트에서 한 여성이 괴물한테 무참히 살해당했을 때. 하하, 맞아. 그때도 그랬지? 그녀의 연약하디 연약한 꽃잎 안에 몇 개나 되는 촉수가 들어가 그녀를 가지고 놀았었지. 온몸이 찢겨지며 죽어갔던 그녀와 배가 터진 여성의 최후는 매우 닮아 있었다.
당장 도망쳐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난 우두커니 선 채 조금 전에 일어난 신체 폭발을 지켜보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봤지만 제대로 인식을 못 했으니까.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이었으니까. 내 눈앞에서 사람의 몸이 폭발해버리다니……?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을 보면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는데……응. 그 말 맞아. 내 몸은 여전히 목숨이 위험한 곳에 선 채 비명을 지르던 여성을 보고 있었다. 조금 전 배가 터진 것 때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탁해진 그녀의 눈은 나를 보며……움직였다?
……움직였다고?
……시체가?
“으, 으아앗……!?”
27살이나 먹은 남자 새끼가 한심하게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이나 치다니!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고말고. 조금 전, 눈앞에서 죽은 여자가 살아 움직인다는데 누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틀림없이 죽었다. 배가 터지며 살점과 피가 나왔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아니. 그녀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살점과 피가 없어진 배에서는 눈에 익은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피로 물든 것 같이 빨간 촉수. 길고 긴 촉수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카인의 행동.
그녀가 했던 말.
마을의 상태.
없는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뇌는 풀가동됐고 아주 짧은 시간 끝에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원해서 얻은 결론은 아니었다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얻어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 결론은…….
이미 부서졌음에 틀림없는 그녀의 관절이 움직인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몸은 팔과 다리를 직각으로 세웠다. 우두둑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지만 거기에는 아파하는 사람도, 신음하는 사람도 없었다.
몸에서 공기가 빠지는 듯한……매우 이질적이고 불쾌한 소리가 난다. 부러졌음에 틀림없는 몸이었지만 팔과 다리를 직각으로 세워 땅을 밟은 그 모습. 지금까지 보던 괴물들과는 다르게 등이 아니라 배에 촉수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한 자세가 될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은…….
틀림없는 「촉수괴물(觸手怪物)」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을 희생시켜 태어난…….
온몸이 피로 물든 ‘붉은색 촉수괴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앗──────!?”
마치 이곳에 처음 왔던 때 같았다. 괴물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할 줄 몰라 하다니. 당장 손에 있는 총을 쏘면 될 것을. 그런 간단한 일조차 잊어버린 채 비명을 지를 정도로 내 머리는 미쳐 날뛰고 있었다.
충격. 공포. 절망. 여러 단어들이 머리에서 피어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공포와 충격에 놀란 몸은 움직이는 것을 거부했고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이 나를 비명 지르게 만들었다.
미쳤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수가 있지? 그녀가 말했던 하얀 머리의 남자. 하얀 머리라는 특징도 그랬지만 나 이외의 남자(男子)는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기획하고 꾸며온 남자……카인.
“응컥!? 커, 허억! 콜록! 하, 우웩!”
우렁차게 비명을 지르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촉수를 처맞았다. 초록색 촉수괴물한테 촉수로 처맞은 건 매우 예전의 기억이었지만……별로 떠올리고 싶은 고통은 아니었다. 하물며 눈앞에서 벌어진 괴물탄생의 장면. 그 기념할 만한 첫 공격이 배빵이라니. 절대 좋은 추억은 못 될 것이다.
비명만을 지르던 내 몸은 배를 맞자마자 다시금 재부팅됐다. 다운이 된 컴퓨터가 리셋 후에는 멀쩡해지듯이 공포와 충격, 절망으로 젖어있던 몸과 뇌는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호를 나한테 보냈다.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는 기관지를 진정시키며 총을 겨냥한다.
자신을 죽여 달라며 고통을 호소하던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유명한 공포영화 『엑소시스트(Exorcist) 시리즈』에 나오던 여주인공처럼 하늘을 향한 채 팔과 다리로 대지를 밟은 그 모습은……몸체의 방향만 반대일 뿐. 여기 와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보던 괴물과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게 있다면……그녀는 조금 전까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내 눈앞에서 배가 터진 후, 붉은색의 촉수가 기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녀가 왜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그 문제의 답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가끔은 답보다 과정(방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주변에서 터벅거리며 나타나는 괴물들을 보자 당장에라도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치솟아 올랐다. 신체 일부가 찢겨지거나 뒤틀렸음에도 불구하고 걸어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맙소사……세상에 마상에! 이게 현실이라고? 꿈이나 악몽이 아니라?
누군가 ‘야,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난 그놈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줄 생각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을 괴물로 만들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무런 죄도 없는 마을 주민들을 말이다!
아니! 살아있는 사람을 모체(母體)로 썼을 뿐이다! 죽은 사람. 넋을 기리고 저승으로 떠나야만 하는 자들의 시체까지 이용하다니!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몸마저 가지고 놀다니! 카인 이 미친 새끼는 도를 넘어도 한참 전에 넘었다! 이건……이건 신(神)이 아니라 미치광이나 할 법한 짓이었다!
“오, 오지 마요! 오지 말란 말이야!”
날 향해 점차 다가오는 괴물들을 향해 소리쳤다. 원래라면 조정간을 반자동 혹은 자동으로 돌린 후 갈겨버리는 게 일상이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야, 이건 살인(殺人) 아니냐? 아무리 죽었다지만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은 채 다가오는 사람을 쏘다니? 이건 완전 살인이잖아!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다친 사람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기어 오는 모습을 보니 내 뇌도 미친 걸까? 슬픈 광경이지만 너무나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못 할 것이다. 자기가 괴물이 되는지 어떤지조차 모를 테니까.
자기 몸이 괴물로 이용당하는 것도 통탄할 노릇이지만……아무리 다친 상태라도 아픔을 호소하지 않을 테니 효율면에서는 최고겠지. 죽어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를 괴물로 쓴다는 것 자체가 현실 세상의 좀비(Zombie)를 연상케 만들었으니까.
움직이게 만들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데 전투력까지 갖추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다는 생각도 함께.
살아생전 아름다웠음에 틀림없었던 얼굴들은 완전히 뒤집힌 채 날 보고 있었다. 등에 촉수가 있던 괴물들은 낮은 위치긴 해도 얼굴이 보였다. 그들의 이목구비는 뒤집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나름 사람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는 했지만……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었다.
내 목숨이 당장 날아갈 수 있는데 그놈들의 미래와 건강을 생각해주며 싸워야 할 이유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부지런하게 마법으로 만든 탄알을 날려주며 놈들을 토벌하고는 했었다. 죄책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놈들은 사람들을 죽여 댔으니 용서할 수도 없었고, 인간과는 공존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은 달랐다. 이 사람들은……괴물이 된 이 사람들은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이었지! 그런 사람들이 괴물이 된 채 나를 향해 다가오는데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의 비참한 최후와 몰골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감상적이라고? 그래, 멍청한 짓이겠지! 당장 내 몸이 잘려 날아갈 수도 있는데 날 죽이려는 괴물의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저 괴물들은 원래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인간이었단 말이다!
머지않아 태어날 아기와 함께 어떻게 지낼지. 그들과 어떠한 미래를 보낼지 궁금해 하고 기대도 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저 꼬라지가 됐는데 어떻게 무미건조하게 ‘응, 죽어’라며 총을 쏴댈 수 있지? 아니,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려고 한 시점에서 이미 아웃(Out)아니냐? 대체 카인 그 새끼는 무슨 생각이지!?
아무런 죄도 없는 프레그넌트 사람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젠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그들의 시체마저 나를 괴롭히는 도구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다니!? 넌 대체……넌 대체 뭐냐!?
“으, 아앗! 오지 말란 말이야!”
한심한 말을 지껄인 나는 결국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그들을 쏘기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둘러싸인 상태에서는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했기에 도망치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들한테 엄청난 기동력이 있다면 따라잡히겠지만……시체나 다름없는 몸에서 그런 힘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놈들은 나를 쫓아왔다. 그 스피드는 빈말로도 절대 빠르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체가 용케 저 속도로 움직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심은 금물이라지만 예전에 보던 괴물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느렸기에 저거 혹시 함정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방심하다 괜히 잡히면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총을 쓰면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기에 내가 있는 장소를 알려줄 뿐. 가능하면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전투는 둘째 치더라도 이곳에 안즈가 있는지 없는지에 알아봐야 했지만……내 뇌는 ‘안즈는 이곳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
안즈를 찾다 죽기 싫어서 이런 결론을 낸 것일 수도 있겠지. 지금까지 안즈의 목소리가 행동을 인지하지 못한 것도 결론을 낸 이유에 포함되어 있을 거다.
전자(前者)의 경우 내 목숨 챙기느라 안즈를 버리려고 하냐는 비난을 들어도 쌌지만……어쩔 수가 없었다. 이 죽음의 마을에서 전투를 하며 안즈를 찾으라고? 미쳤냐?
아니, 그래. 찾는다 쳐. 어떻게 찾으려고? 소리 지르면서? 나 여기 있으니 들리면 대답하라고? 대답 대신 괴물들이 기어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시팔!
“어헉!”
또 한심한 비명을 지르며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전에 쫓아오던 놈들과는 다른 모습의 촉수괴물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가능하면 뒤로 돌아가거나 샛길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주변에는 그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전투는 불가피했고……내 목숨을 그들한테 바칠 수는 없었다.
총을 겨누긴 했지만 괴물을 쓰러뜨린다는 희열(喜悅)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이건 살인이야……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는 살인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니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내 손으로 살인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 그래! 죽은 사람이 움직이는 거니 살인은 아니지! 시체훼손죄라면 또 모를까 죽은 사람을 죽인다고 살인죄가 적용되지는 않아! 하지만……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에 입각한 이야기잖아! 내가 살던 곳의 법이나 윤리가 여기서 적용될 거 같냐?
“으, 앗! 뭐, 뭐야 시발!?”
쏘는 것을 망설이던 나는 욕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평소에는 입이 밑에 있던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하늘을 보고 있기에 입이 위, 눈이 밑에 있었다. 괴물이 된 여자의 입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기에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내가 물러난 자리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떨어진 무언가는 ‘치이이익……’이라는 소리. 물건 등이 타오르는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가 걷히자 그곳에는 물방울이 타오른 듯한 검은 자국이 보였고 그 순간, 부서진 집이나 파편 등에서 보던 ‘검은 물방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치, 침……? 타액(唾液)이란 말이야, 저게……?”
세상에……!! 다시 한 번 입을 감싸고 싶었지만 총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총을 놓치면 죽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보던 검은 물방울이 저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하니 오싹했다! 대체 몇 마리나 이 마을에 있는 거지?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렇게 변하면 그렇게 많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건데?
생각할 것은 많았지만 현실은 그런 느긋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날 향해 다가오는 괴물. 예전에는 사람이자 여성이었던 그녀를 향해 결국 발포(發砲)를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상대해오던 청록색의 촉수괴물과 달리 대여섯 발을 맞은 괴물은 힘없이 쓰러졌으며, 왈칵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살아남기 위해서.
============================ 작품 후기 ============================
이 좆같은 월요일을 맞이할 때마다 ‘아, 씨발. 또 월요일이 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월요일이 절세미녀 or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는 미소녀라면 또 모를까, 형체도 없으면서 모든 사람을 직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놈이라고 생각하니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그치만 미워할 수만도 없겠죠. 이렇게 소설을 올리는 평일의 시작을 알리는 놈이기도 하거니와, 원하는 행사나 일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하니까요. 일종의 필요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월요일에 신체가 폭발하며 촉수괴물의 탄생을 보여주다니. 저도 참 정상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하긴, 제가 정상이었다면 이런 소설은 아예 적지도 않았겠죠. 시작부터 맛 간 작가였는데 이제 와서 정상이 아니라고 한들 독자분들은 ‘그거 다 아는 사실 아님?’이라고 하겠죠.
하도 많이 나와서 좀비 같이 원래 사람이었다가 괴물로 변한 생명체에 대해 별 감흥이 없으시겠지만……실제로 생각하면 매우 오싹한 일입니다. 함께 지내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버리다니.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겁니다. SAN 수치가 쭉 떨어지겠죠.
터져버린 배에서 촉수가 나온 것도 모자라 산성 타액을 뿌리며 다가오다니. 제가 적긴 했지만 실제로 세세한 부분까지 상상하다간 정신적으로 영 안 좋은 영향이 나올 거 같습니다. 원래 인간 아니랄까봐 피로 범벅이 되기까지 하다니. 이거 적은 새끼 누구야?
예? 저라고요?
……독자들의 기억을, 레드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