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73화 (173/235)

00170 「17-9 : 빼앗겨버린 아내들 (19)」 =========================

[중2병(中二病)]이라는 병이 있다. 한국에는 2000년 후반부터 조금씩 퍼지기 알려지기 시작한 이 병은 일본에서는 유명한 병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같은 명칭이면서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거나 순화됐다고 하지만……이건 한국 특유의 오보(誤報 ; 잘못된 보도)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다. 결코 중2병이 변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중2병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강렬한 자기표출(自己表出)의 마음이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한자 넣어서 어렵다고? 음, 더 쉽게 말해주마.

[나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라는 욕망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월등히 뛰어난 능력,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뽐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자기가 가진 걸 남한테 보여준다 → 다른 사람들이 칭찬,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 존재적 우월감을 느낀다]와 같은 과정을 겪고 싶어 한다.

자기를 바라보는 선망의 눈길, 부러움의 시선을 볼 때마다 ‘하핫, 그래! 저 눈빛! 난 남들과 달라! 더 뛰어나고 우수하다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중에는 시기나 분노, 증오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사람들의 시선이 항상 선망이나 부러움을 가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중2병’을 앓고 있다면 사람들은 비웃음이나 안타까움, 바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중2병 걸린 사람을 보고는 했다. 중2병은 나중에는 ‘아, 씨발! 내가 그때 왜 그런 짓을 했지?’라며 후회할 거리가 된다면 모를까, 사람들한테 부러움을 살 소재는 아니니까.

사람들의 선망이나 부러움, 감탄의 시선을 받고 싶다면 중2병보다는 다른 쪽에 몰두하는 것이 나았다. 대회에 나가 상을 탄다거나,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거나……. 그 편이 차라리 더 낫겠지. 평범하지만 상식을 갖춘 사람들한테 두루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였으니까.

대회에서 입상했다, 우승했다. 혹은 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말을 들으면 ‘축하한다, 잘 했다, 대단하구나’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건 당연한 거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는 뜻이니까. 부모 입장이라면 더욱 기쁘기 그지없겠지. 열심히 노력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데 싫어할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치만 중2병은 아니었다. 중2병은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기 어려우며, 인정받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 그 인정마저 일종의 연민, 동정심, 재미 등을 통한 것이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인정(認定)’을 받기는 어려웠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간에 중2병의 가치는 그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싼 흰밥 먹고 멀쩡하게 생긴 놈이 ‘크, 크윽! 다가오지 마! 내 손에 잠든 흑염룡이 날뛰려 하고 있어!’라든가……갑자기 ‘영혼이나 선(線)이 보인다’라든가……. 뭔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자기한테 미지의 힘이 있다는 설정을 말하고 다니는데 이걸 어떻게 인정해줄 수 있을까?

그래, 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저러한 증상을 한두 개 정도 겪어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작가도 쪽팔린다만 저런 시기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작가는 그때 어땠냐고? 어허, 묻지 마라. 서로가 겪은 중2병을 나열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으니까.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함부로 할 수 없는 행동이란 말이다…….

예전에 겪은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현재진행형으로 중2병을 겪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응? 소설은 19세 미만 관람 불가의 성인용인데 애들이 어떻게 보냐고? 하핫, 부모님 핸드폰으로 인증하면 볼 수도 있겠지! 그뿐이랴? 중2병이 중학생이나 아이들만 앓는 병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쯤 되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래! 어른이 되어서도 중2병은 걸릴 수 있다! 보통 중2병 중이뼝 하니까 중학생만 걸린다고 생각하겠지만……엄밀히 말해 중2병은 질병(疾病)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적 자기 표출 욕구.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을 표출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다.

중2병은 아니겠지만 비싼 시계나 물건 등을 사서 다른 사람들한테 ‘어때? 이번에 새로 산 거야! 예쁘지? 멋있지?’라며 자랑하려는 사람을 한두 번 정도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2병은 아니지만 자기의 가치. 혹은 자기가 산 물건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증세는 비슷하다. 단지 그 주제가 중2병이냐, 비싼 물건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중2병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관련 영상을 보는 게 제일 좋다. 이미 중2병을 겪은 사람이라면 볼 때마다 손발이 오글거릴 것이며 당장 영상이나 문서를 끄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앞서 말했다만……내가 겪어봤거든. 안 겪어도 되는 걸 쓸데없이 겪은 덕분에 나도 죽을 맛이었지.

인기 애니메이션인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부터 시작해 중2병을 다룬 작품은 의외로 주변에 많았다.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만화 등에는 어딜 보더라도 ‘어, 얘 중2병인가?’하고 바로 알 만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캐릭터들을 내보내는 것은 개그 코드를 보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 중2병을 겪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질감(同質感), 같은 코드를 얻기 위함도 있었다. 자기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동질감을 얻게 될 것이고, 더욱 더 작품에 몰입하게 될 테니까.

오타쿠나 오덕후, 씹덕후 같은 멸칭(蔑稱)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다만……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에서도 앞서 말한 네 개의 매체 중 어느 하나를 실사화시킨 주제에 몰입한다면 흔히 말하는 ‘덕후’의 길을 걷는 사람일 것이다.

덕후라고 말하니 좀 그렇군. 여하튼, 무언가에 심취한 사람들은 자기와 코드가 비슷하거나 맞는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타입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할 수 없고 인정받기 어려운 것을 함께 즐기고 몰입하는 사람들이니까. 동료의식도 있고 그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모든 사람들이 동질감, 동료의식을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동족혐오(同族嫌惡)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부류(部類), 동류(同類).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미워한다는 뜻이다. 동족과 혐오라는 말을 합친 것이니 금방 삘(Feel)이 왔을 것이다.

서로 같은 주제, 비슷한 부류면서 왜 미워하냐고 묻는다면……원인은 다양하다. 주제는 같지만 거기서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고. 저런 놈과 내가 같은 부류인가 하는 생각에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중2병의 증상만큼 동족혐오의 증상도 많았다.

서로의 팬덤을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고 가식을 떠는 것에 경멸감을 느낀 사람도 많았다. 같은 애니나 소설을 좋아하지만 과장스러운 말투, 이상한 행동 등을 보며 ‘우와, 내가 저런 사람이랑 동급이라고? 내 주변의 사람들한테는 저런 식으로 내가 보였다는 거잖아? 존나 쪽팔린다……!!’라는 식으로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중2병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비록 같은 증세, 비슷한 중2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선의(善意)와 동족의식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증세를 가진 사람을 보고 동족혐오를 나타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

다른 사람의 중2병 증세를 보고 탈(脫)중2병. 중2병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꽤 있었으니 생각지 않게 순기능(順機能)을 가지기도 했다.

같은 분야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듯이 중2병 증세를 앓는 사람들 또한 서로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가진 설정 등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걸 따지는 사람도 있었으며, 다른 사람을 보고 수치심을 느껴 중2병을 그만두고 그 시절을 흑역사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2병을 그만둔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 당시의 언행과 설정 등으로 놀림을 받기도 했고 나중에 가서는 자기 흑역사를 아는 사람들, 지역으로부터 도망치듯이 벗어나게 되기도 했다. 자기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너무 과한 감이 없지 않기도 했지.

내가 이렇게까지 중2병에 대해 열을 띤 채 말하게 된 이유는……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그야말로 ‘예전에 앓았던 중2병이 다른 사람들한테 언급되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상황’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납치를 당했지만 그 누구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아내들한테 버림받았다는 충격도 모자라 마력, 마법, 코스튬 등이 모조리 인벤토리에서 없어졌다. 잃어버린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기 그지없는 것들인데 가만히 있다가는 괴물한테 목숨마저 잃을 상황이었지.

다친 야만족을 데리고 나가다 안즈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죽어버렸고 그 후부터 우리는 좋든 싫든 행동을 함께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행동을 보고 기억하게 됐으며 그 행동 중에는 피폐한 정신상태 때문에 저지른 이상한 짓도 들어가 있었다.

내가 안즈와 섹스를 하며 이상한 말을 한 것부터 시작해 아내들의 이름을 부르던 것 등이 거론되자 쪽팔리기 그지없었다. 당장 저 건방진 계집애(안즈)의 입을 봉인하고 싶었지만 메이의 바인드 마법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이게 바로 판타지 세상에서 남편이 가지는 위엄이었다. 대화에 방해된다고 바로 움직임을 봉인당하는 위엄!

……이걸 위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이건 아니었다.

아니, 자기들 이야기 듣는 데에 방해된다고 바인드(Bind ; 구속) 마법을 거는 미친년들이 세상에 어디 있어!? 다름 아닌 내가! 그 부끄러운 행동을 저질렀던 내가 싫다는데 왜 아무도 내 의견은 존중해주지 않는 거지?

그거냐? 예전부터 유명했지만 사망이나 자살 이후로 유명해진 기러기 아빠냐? 응? 야, 너무한 거 아니냐? 난 아내나 자식들을 외국에 보낼 생각도 없다! 애초에 이 ‘하렘 어드벤처’에 기러기 아빠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나 있나 의문이다만, 그런 사람이 되어 쓸쓸하게 노후를 보낼 생각은 추호도! 좆에 붙은 좆밥만큼도 없단 말이다!

그게 아니면 뭐야? 내 가치는 고작 이거냐? 열심히 노력해서 목숨 구하고, 아기 씨앗 심어주고, 마을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시끄럽다고 구속 마법을 거는 거라니!

아! 어쩌다 내 인생과 존재가치가 이토록 낮아지게 됐을까? 자랑은 아니지만 이렇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능력이다 능력!

뭐? 마을 구한 거부터 포함해 여러 업적을 이룬 건 알겠는데 179편에 도달하는 이 에피소드까지 그걸 꼭 우려먹고 자랑해야 하냐고? 아니, 자랑은 아니지! 내가 뭐 금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잖아! 단지 모두를 위해 노력했으니 그것만큼은 알아줬으면 한다는 거지!

무상(無償)으로 모든 걸 주는 아낌없는 나무 역할을 자처(自處)할 필요가 대체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녀들 또한 그런 노력에 반해서 내 아내가 된 것이니 여러 번 언급해서 나쁠 건 없잖아! 오히려 왜 아내들이 나랑 결혼했는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 좋지!

내가 중2병, 내가 이룬 업적, 존재의 가치 등 다양한 걸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내들은 그런 거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안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인드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흑역사를 모조리 나열당하는 아버지의 슬픔과 아픔보다는 당장의 즐거움과 쾌락에 모든 걸 바치다니. 망할 년들. 내가 왜 쟤들 걱정을 했을까?

“사정을 할 때 ‘아, 읏! 혜린아! 미안해! 너처럼 예쁘고 참한 신붓감을 빼앗기다니……흐윽!’같은 말도 했었어! 내가 목이랑 다리에 팔다리를 휘감고 엉덩이를 마구 내리칠 때마다 다른 사람 이름을 막 불렀다니까?”

죽고 싶다. 아내들은 기쁨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나와 안즈, 거론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뿐이야? 로라랑 메이, 안나랑 니나, 마리아랑 아테나. 모녀(母女)를 거론하면서 그렇게 아름답고 착한 모녀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서 너무 슬프다고 질질 짜기도 했다니까?”

당장 죽고 싶다. 방에 있는 창문을 발판 삼아 힘껏 하늘로 점프하면 어떤 느낌일까?

“더 이상 왕도 아니면서 프레그넌트의 숲을 야만족의 숲으로 만들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심 기뻤다니까? 날 기쁘게 하려는 심산도 있었겠지만……그, 뭐냐. 야만족이랑 프레그넌트의 주민들이 함께 숲을 거닐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나도 좀 부끄러웠다고.”

정신이 피폐한 와중에도 아내를 만들기 위해 하반신뿐만 아니라 아가리와 대가리까지 굴린 거냐며 날 바라보는 아내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아, 내가 왜 쟤들을 그토록 걱정했을까? 그냥 카인한테 다시 데려가라고 할까? 그놈도 이런 시선과 대우를 받아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내들을 카인한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아주 조금도 없었다. 당연하잖냐. 나도, 그녀들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부부가 될 수 있었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말도 많고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만……그래도 이 세상에서 얻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그게 바로 그녀들이었다.

그런 아내들을 카인한테 넘긴다고?

아내들과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고?

그런 거……인정할 수 없어[認(みと)められないわ!]

유명한 아이돌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의 마키쨩처럼 말했지만……으음. 슬프게도 그 누구 하나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이는 없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생각은 휘황찬란하게 했다만 저런 부끄러운 말을 입에 담으면, 안 그래도 죽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질 테니까…….

그 후에도 안즈의 헛소리는 계속됐다. 씹창이 된 정신 상태로 이상한 걸 읊어대면 나 같은 고생을 하게 되니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귀감(龜鑑)이 되긴 했지만……어쩐지 나중에 또 이딴 짓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든다.

내가 설명한 것이 만족스럽지 못했던지 아내들은 안즈한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내가 당시 어떤 상태였는가, 무슨 말을 했는가 등. 전투 부분에서는 나 혼자 괴물을 세 마리나 잡았다고 하자 모두 놀라워했다. 아, 그건 놀라워해도 돼. 이왕이면 나를 칭찬하고 숭배해도 괜찮고! 내가 그 새끼들 세 마리 잡느라 존나 개고생했었지!

내 위대함과 대단함을 찬양해도 모자랄 판에 아내들은 괴물의 약점이나 우리의 전투 패턴 등을 물어보았다. 저기, 그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이 여기 있거든요? 마법에 묶여서 제대로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굴러다니고 있거든요? 나 신경 좀 쓰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정신이 피폐했을 때의 행동도 그랬다만 마법이 사라진 때, 아내들한테 버림받았을 때 내가 미친 듯이 분노하며 울었던 것들. 감정이 격해졌을 때의 행동, 버림받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뱉어낸 말 등을 집요하게 물어댔다. 이런 망할 년들……!!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찼던 내가 뱉어냈던 말은 지금 생각해도 참 처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만……그 처절했던 말을 너희 웃기라고 뱉었던 건 아니었거든? 그렇게 감동하는 얼굴로 날 보는 건 그만 좀 해줄래? 부끄럽단 말이다! 끄흑!

생각 같아서는 귀와 눈을 막아버리고 싶었지만 내 영특한……아니군. 생각해보니 영특한 게 아니라 약삭빠른 거잖아. 자기들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편한테 마법까지 걸어대는 것을 영특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배신당한 분노와 처절함이 그대로 들어간 말. 그걸 안즈가 말하자 처음에는 놀라던 아내들이 머지않아 울먹거리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며 슬퍼하고 있었다. 이런 말아먹을!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아니, 왜 나를 그렇게 부끄럽게 만들지 못해 안달인데? 그거니? 쪽팔리게 해서 죽이라는 카인의 밀명(密命)이라도 있었던 거냐? 응?

그보다 니들, 왜 그렇게 사이가 좋은데? 날 납치한 것부터 시작해 카인의 등장을 앞당긴 건 바로 안즈라고! 너희한테서 소중하디 소중한 서방님이자 임금이자 연인인 나를 빼앗아간 안즈를! 모두의 평화를 파괴한 원인 중 한 명인 안즈한테 왜 그렇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건데!?

나중에 거기에 대해 물어보니 ‘생명의 씨앗을 얻을 수 없고 좆물캡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세린을 데려간 거잖아. 납치 자체는 용서할 수 없는 거지만……세린이 우리를 빼앗긴 것처럼 안즈도 소중한 동족들을 괴물한테 살해당했으니까……그것 때문에 몇 번이고 이야기를 꺼내면 안즈를 괴롭게 만들 뿐이야. 세린이 아내로 삼았으니 우리 동료기도 하고, 앞으로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잘 보살펴주고 배려도 해줘야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임금이자 연인인 나는?

나는 이렇게 막 대해도 됩니까?

나는 뭐 부서지거나 죽으면 리필해주는 무료쿠폰인 줄 아니?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바인드를 부순 후 카인이고 뭐고 다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마력뿐만 아니라 모든 마법을 잃은 나는 더 이상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 마법이 있었더라면 텔레포트부터 시작해 마법을 무효화하는 마법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은 그런 것을 바랄 수 없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던 일을 갑자기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로 인한 허망함과 안타까움, 슬픔과 분노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영어로 치자면 Have(has) been V-ing. 과거완료진행형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뭘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안즈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 날 씹는 이야기를 사이좋게 했지. 대체 피해자인 내가 왜 모두의 단결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까이고 씹혀야 하는 걸까? 카인의 목적도 궁금했지만 이것도 참 알 수 없는 문제였다. 누가 답 좀 다오.

아내들은 참으로 다양한 반응을 보여줬다. 씹창 같은 정신상태에서 뱉은 말에 감동을 느낀 사람, 눈물을 흘리며 날 위로하는 사람. 그렇게 우리가 보고 싶었냐며 ‘우쮸쮸’ 거리던 사람. 조금 전에 사과를 했지만 여전히 미안하다며 용서를 비는 사람. 말은 그렇게 해도 우리를 아껴줬던 거라며 키스를 해주는 사람 등.

아내가 다양한 만큼 반응도 다양했기에……기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다.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이런 게 좋다.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지금까지 느꼈던 배신감과 슬픔이 모조리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감각 또한 맛볼 수 있었다.

후회는 언제나 늦게 하기 마련이고 대가는 항상 큰 법이라고 하지만……그러한 과정을 거쳐 잠시나마 되찾은 행복은 너무나 달콤하고 편안했다. 가능하면 이 순간이 영원히 가기만을 바랐다.

더 이상 방해도, 슬픔도, 배신감도 없는……나와 아내들만의 시간과 공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만을 원했다만……현실은 그런 소망을 여지없이 부수며 잔혹한 사실만을 내밀었다.

이미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 되어버렸다. 카인이 아침 몇 시에 올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잠을 자지 않은 채 아침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일상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수면 시간이 필요했으며, 메이 같은 경우에는 벌써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 질문으로 엄숙해졌던 분위기는 그간에 있었던 일로 왁자지껄해졌고, 서로 하고 싶었던 말, 내가 없었던 동안 경험했던 즐거운 일 등을 앞 다투어 말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시간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는 것이었던가 하며 새삼 그 빠르기에 감탄했을 정도라니까?

힘들고 괴로운 시간. 군대 같은 곳에서 흐르는 시간은 전혀 빠르지 않다. 일과(日課)가 종료되는 것만을 기다리는 말년 병장의 마음만큼 슬픈 건 없지. 아, 혹한기랑 유격 훈련도. 말년에 40km 행군하고 가느라 좆빠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즐겁고 평온한 시간은 정반대로 매우 빨리 흘러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길이지만 체감(體感)하는 시간의 속도는 이토록 다르다니…….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끝이……이별이 다가오니 너무나 헤어지기 싫었다. 그저 슬프고 안타까웠다.

다시금 되찾은 소중한 현실이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뒤틀리게 되다니……. 모처럼 만난 소중한 아내들이 다시금 그놈의 곁에 다가가며 놈의 몸과 사랑을 얻으려고 교태를 부릴 걸 생각하니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결 못 하다니! 무능(無能)하다는 말은 그야말로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대로 모두 달아난다면? 그런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만……무리다. 내 아내들이 이곳에서 벗어난다고 한들 카인한테 조종당하면 단숨에 소환당하겠지. 이곳에서 도망간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될 거 같았다면 이미 옛날 옛적에 얘들을 데리고 도망쳤을 것이다.

게다가……도망칠 수 없는 이유는 물리적인 이유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경비대장인 로라와 촌장인 아이나는 프레그넌트 주민들을 끝까지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들의 딸과 여동생인 메이와 아이라는 물론이오, 프레그넌트의 주민이 된 안나와 니나, 미카와 아스카. 희진이와 은채는 주민들을 모른 채 나 몰라라 떠날 수 없었다.

마리아와 아테나, 헬레나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여왕과 공주인 마리아와 아테나가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당장 다른 마을에 추가 병력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 많은 업무를 봐야 하는 그녀들이 이곳에서 떠난다니. 나라 멸망시킬 일 있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내들은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된다면 자연히 카인과 만나게 되겠지. 그와 만나는 것만으로 의식은 날아가고 발정 난 암캐처럼 그한테 몸을 비벼댈 걸 생각하니……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내들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고는 했지만 나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 현실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이렇게 극명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너희를 꼭 구해줄게!’라는 말을 해야 했지만……그런 말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와 의문들도 해결 못 해 산처럼 쌓여있는데 최종보스이자 이 세상의 신인 카인을 쓰러뜨리고 모두를 되찾는다고? 어떻게? 무슨 수로? 내가 더 알고 싶다, 시발!

이런 한심한 나를 껴안아주며 아내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인연은 전혀 알 수 없는 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으며, 그녀들 또한 나를 잊은 채 알 수 없는 자한테 아양 떨고 교태부릴 것을 분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원망했지만……나와 마찬가지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생각 같아서는 아내들의 자궁에 정액을 한 방씩 넣어주고 싶었지만……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분신술을 쓸 수 없게 된 나는 더 이상 모든 아내들과 관계를 가질 수가 없었다. 몇 발 쏘면 더 이상 정액을 짜낼 수가 없게 되겠지. 한심하군……. 나 자신에 대한 경멸감이 이렇게 커진 것도 오랜만이었다.

결국 진한 키스와 인사말을 나누며 그녀들과 이별을 나누었다. 안즈는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운을 내라는 흔해 빠진 말마저 하지 않은 것은 질투나 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안즈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좋든 싫든 간에 현실을 체험한 사람이었으니까.

허름하고 좁은 방으로 돌아온 나는 안즈를 껴안은 채 잠을 청했다. 지금은 슬프기도 해서 몸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나누고 싶으면 식사를 한 후에 하면 그만이었다. 예전과 달리 체술이나 검술 훈련을 하지 않았기에 식사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다시금 그 슬픈 현실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에 공포와 슬픔, 분노를 느끼며 더욱 강하게 안즈를 껴안았다. 안즈는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효력을 발휘한 걸까? 쉽게 감긴 내 눈처럼 의식은 어둠 속으로 별 저항 없이 빨려 들어갔다.

아침이 되면 그 짜증나는 허연 머리 새끼가 아내들의 몸을 주물럭거리며 나를 도발하겠지. 그런 광경을 보고 싶지 않은데……!! 소중한 아내들이 누군가한테 농락당하는 걸 알면서도, 보면서도 꾹 참아야 한다니……!!

그렇다고 아내들한테서 눈을 떼면 정말 내 눈이 닿지 않는 어딘가로 가버릴 것만 같았기에 외로움과 다급함은 여전히 내 마음을 무참하게 찔러댔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아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 이렇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밤에 사라지는 횟수나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러한 대화의 장을 더 오래, 더 많이 가질 수 있겠지. 다시금 아내들과 만날 그 날을 기대하며 카인을 죽일 방법을 찾는 거야! 난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나……그러한 생각은 내 크나큰 오산이었다.

내가 아내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대략 2주 후의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개그로 점철된 에피소드지만 마지막 문장 두 줄만 봐도 이미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또 다른 일이 생기겠구나 하고. 만족동맹으로 유명한 파이브디즈 식으로 말한다면 '세린의 고생은 지금부터다!'겠죠.

물론 여기서 '역시 세린! 전설의 하렘 어드벤처의 용사야!'라고 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만둬(야메로)'라며 대답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역시 키류형은 전설의 새티스팩션의 리더야!

야.메.로

파이브디즈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되는데 왜 아크 파이브는 그 따위로 만들었을까요. 오노 감독은 존나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이브디즈 자딸한다고 아크 파이브 완성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ㅋㅋㅋ

뭐든 적당히 할 줄 알아야 했는데 오노 감독은 그걸 못 했죠. 과도한 자딸은 결국 실망과 파멸만을 부를 뿐입니다. 제알이나 한 번 볼까?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로리콤MK님, 현실과 2D의 차이가 워낙 극명하니 실제 로리에 대한 감정은 별로 없습니다. 장난 아니라 진짜로요. 실제로 보면 사악함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여자 초등학생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순진무구한 로리 캐릭터.

뭐가 아쉽다고 현실에서 걔들을 좋아합니까?

그런 고로 저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로리도(道)는 지금부터다!

아, 물론 전 GX까지만 봤습니다. 싱크로 소환? 튜너 따위 안 넣어도 엑시즈로 버틸 수 있어요 ^^

고양이새벽님, 실제로 쓰면 아무리 빨라도 2시간 이상은 걸립니다. 양을 좀 낮추면 2시간 안으로도 한 편을 완성할 수는 있지만 하렘 어드벤처는 첫 작품이라 양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20kb를 가볍게 넘는 편들이 막 올라오는 거죠.

용량을 낮춰서 13~14kb(조아라 기준)을 만든다면 2시간 안으로는 가능하겠죠. 단, 그럴 경우 내용이 생략되거나 자세한 해설로 인한 질질끌기 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생략이든 해설이든 간에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적용되기에는 충분하기에 늘 고민해야 합니다.

별빛진상님, 주인공의 모티브는 '원하지 않는 빚으로 인해 희망이나 꿈 없이 살아가는 청년'입니다. 너무 똑똑하거나 개사기 스펙이라면 오히려 그러한 배경 등을 가질 필요가 없기에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편이 훨씬 더 정감이 가기도 하고요.

개사기, 먼치킨, 최강 설정 등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너무 남발하면 보는 사람의 즐거움을 떨어뜨려버립니다. 뭘 하든 승리와 성공이 확정적일 텐데 뭐 하러 소설을 볼까요.

승리와 성공은 확실히 귀중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과정이 따라와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승리와 성공은 그것들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적용될 뿐입니다. 저는 좀 바보 같고 멍청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신념과 정의를 가지고 현실에 임하는 주인공을 적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오늘도 자정 업로드네요.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면 아침 업로드로 독자분들을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