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71화 (171/235)

00168 「17-7 : 빼앗겨버린 아내들 (17)」 =========================

야만족의 숲뿐만 아니라 프레그넌트까지 개박살낸 청록색 촉수 괴물. 그런 놈들이 다른 마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피해 상황까지 듣자 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방법은 모르지만 프레그넌트에 괴물을 소환시켰던 것처럼……다른 지역에도 그 미치다 못해 무시무시한 청록색 촉수 괴물들을 소환시키다니……!! 미쳤다고밖에 형언(形言)할 길이 없었다.

누군가 ‘미쳤다’라는 표현보다 속 시원하게 놈의 정신상태를 표현할 말을 알고 있다면 나한테 말 좀 해다오. 그런 말이나 해야 속이 좀 시원해질 거 같으니까.

대가리 나사가 빠졌냐? 기어코 이 미친놈은……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 지금까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까지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했다! 아내들을 통해 듣는 다른 마을의 피해 보고와 현황은 끔찍하다 못해 내 상상력을 한계 이상으로 돌리게 만들 정도였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는 모르지만, 그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누구긴 누구겠어? 날 괴롭히는 걸 즐기던 백발(白髮)의 여자, 남자로 성전환을 하고 나타난 카인 새끼지!

그 변태 같은 새끼는 이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죽여 버리는 미친 짓까지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는 경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야, 잠깐만. 카인 이 미친놈아. 여긴 니가 만든 세상 아니었어? 니가 만든 ‘하렘 어드벤처’ 아니었냐? 야, 이 미친 새끼야……여긴 니가 만든 곳이잖아! 여기 있는 모든 여자들! 모든 세상은 너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被造物)이라고! 근데 그걸 죽여? 아무렇지도 않게? 그 괴물들을 시켜서?

늘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인은 내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었다. 아니, 미친놈이라는 말도 얌전하게 표현한 거지. 그야말로 사이코패스 새끼였다.

사람의 목숨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장난감? 자기가 만들었으니 언제, 어떻게 죽이든 간에 자기 마음이라는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 새끼한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피조물일지 몰라도 나나 아내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란 말이다! 그걸 그렇게……그리도 쉽게 죽여 버리다니……!!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가본 적도 없는 루인이었다만 상상 이상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마음을 에워쌌다. 안 그래도 좆물 캡슐이 아니었다면 인구가 더 줄어들었을 마을이다. 모처럼 아기를 얻게 되어 평화로운 일상을 맞이하나 싶었는데 그런 참사(慘事)를 당하다니! 한숨이 그치지가 않았다.

문제는 원인과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카인에 의해 내 아내들과 지위를 모조리 빼앗긴 것도 있지만, 놈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량 살인. 학살(虐殺)에 가까운 행동부터 시작해 괴물을 온갖 마을에 동시다발적으로 뿌린 행동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극명하게 눈에 보이는 문제. 이미 피해가 발생한 문제가 산적(山積)해 있건만……이보다 훨씬 더. 이 모든 것들을 망라(網羅)해도 모자랄 절대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이거보다 더 큰 문제가 있냐고? 아주 정직하게 대답하자면……그래. 있다. 그것도 꽤 많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그 원인이 누구인지!

원흉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절망적이지만 카인과 이 세상을 여기서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 나를 소환했는가, 왜 그가 ‘하렘 어드벤처’의 무대로 올라왔는가. 어째서 사람들을 죽이는가, 왜 괴물들을 풀어 놓았는가 등. 오직 나만이 아는 문제까지 제시했기에 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기껏 아내들과 만나 대화의 장을 나눈다 싶었는데 왜 문제만 나한테 이렇게 안겨주는 건데? 내가 무슨 문제 해결사냐? 게다가 문제의 태반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내가 이곳에 오는 건 2주도 채 걸리지 않았겠지! 아무리 길어도 하루면 충분히 프레그넌트, 수도로 올 수 있었을 거다. 텔레포트뿐만 아니라 ‘마법 복사’로 베낀 마법들도 있었으니 전투에도 큰 지장은 없었겠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괴물을 죽여 희생과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을 거다.

그뿐이냐? 마음 같아서는 부카케나 루인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고 싶었다! 부카케는 이미 한 번 갔다 온 곳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단 한 번도 간 적 없는 루인까지 도움을 주고 싶을 정도로 상황은 개차반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러긴 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가 되어버렸다. 마법과 기존의 마력을 모조리 잃어버린 현재 상태로 다른 마을을 구하러 갔다간 내 목숨만 잃게 되겠지. 지금도 ‘사랑과 신뢰의 반지’의 효력은 안즈 한 명분밖에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리게 됐다지만 카인에 의해 더 이상 아내들의 사랑과 신뢰는 받을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14명분의 백업. 단순 수치로만 쳐도 14,000의 MP를 잃어버린 것은 뼈아픈 손해 중 하나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방어나 자기 한 몸 구하기 위한 전투밖에 못 한다. 그것도 단기전(短期戰)이지.

장기전(長期戰)이나 지구전(持久戰) 같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물자나 MP를 쓰는 전투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나는 질 것이다. 그럴 물자도, MP도 없으니까. 도망조차 칠 수 없어서 전투를 하는 건데 MP가 떨어진 나는……그냥 고깃덩이지. 할 줄 아는 거 없는 고깃덩어리.

체술과 검술? 괴물한테 체술이 통할 거 같냐? 배가 능력을 쓰지 않으면 좀처럼 물리적 타격도 통하지 않는 놈한테 펀치나 킥을 먹이라고? 내 몸이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인수분해 당하는 걸 그렇게 보고 싶냐?

검술? 지금 내 상태 알긴 아니? 코스튬과 소총을 제외하면 따로 가지고 다니는 검조차 없는 상태다. MP를 아끼려고 검 또한 『Fate Stay / Night』에 나오는 것들이 아니라 물리적 데미지 주는 것에 특화된 철 쪼가리를 날리는 상황인데 검이라고? 그놈들 앞에서 검술을 뽐내라고? 내 머리가 몸에서 날아가는 최후를 그렇게 보고 싶냐!?

남을 도와주느라 내 목숨 거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야만족의 숲은 원래 수도에 귀속된 마을이 아니었다 치자.

아, 귀속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지 그곳이 어찌 됐든 좋은 곳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히 그런 말도 나오지 않을 곳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곳은 야만족의 숲뿐만이 아니었다. 프레그넌트뿐만이 아니라 부카케, 자멘부터 시작해 루인까지. 옆에 있는 카미유─카미유라고 하니 또 ‘섹스다!’하며 소리를 치는 카미유 비단이 떠올랐다. 이 와중에 이걸 떠올리는 나도 참 진국이다 진국이야─또한 결코 무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많은 곳이 동시다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건 틀림없이 카인의 짓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나를 괴롭히는 거라면 이해가 간다. 내가 그놈한테 일종의 ‘흥미 있는 장난감’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은? 나 외에는 그의 진정한 정체는커녕 카인에 대한 존재조차 모를 텐데?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짓이었다. 내 아내들을 빼앗아 간 건 나랑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니 그렇다 치자. 근데 다른 사람들은? 야만족의 숲, 프레그넌트, 수도. 이 세 곳과는 전혀 연관도 없는 사람들한테 대체 무슨 이유로 괴물을 보냈단 말인가? 설마 그딴 괴물들을 선물로 준 건 아니겠지? 그딴 건 줘도 안 가진다! 바로 반품 처리다!

사은품은 반품 처리가 안 된다고? 교환도 안 되고? 아, 시발! 그 괴물 새끼들이 사은품으로 쓸 가치나 있냐? 사은품이 집안에 들어와 사람들한테 레이저 빔을 발사하지는 않잖아! 그 흉측한 괴물 새끼들의 어디를 귀엽게 봐야 하는 건데!? 귀엽게 볼 건덕지나 있냐? 사람을 죽여 대는 미친 괴물 새끼들한테?

난 결국 한숨을 푹푹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행동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 거 같았고, 그 횟수는 더욱 늘어날 것 같았다. 실제로 이러고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가 날 소환한 목적은 여전히 모르지만 만약 목적이 날 미치게 만드는 거라면 이미 확실하게 성공했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자신을 가지고 말이다.

현실 세상에서는 부모님이 만든 빚 때문에 미칠 거 같았는데 여기 와서는 내 걱정, 아내 걱정, 남 걱정, 그놈 욕하기 등 온갖 짓을 다 해야 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건 당연한 거고!

그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그가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이유.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조종하고 능욕하다 못해 엿까지 먹이는 행동! 이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일련(一連)의 행동에는 틀림없이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미친 짓을 벌이니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웃기잖아. 왜 괴물들을 소환하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데 왜 괴물을 소환해 죽이는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지? 그냥 죽이면 될 걸 왜 괴물까지 불러 호러 영화나 슬래셔 영화 같은 장면을 재현(再現)시키려 하는 거지? 피랑 내장 튀기는 게 취향인가?

그가 나를 포함한 모두를 조종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실이지만, 그런 사실을 오래 숙지하다보니 이제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게 됐다. 실제로 이 세상의 신인 그한테 있어 나나 아내들은 그냥 장난감으로 보일 테니 조종한다고 한들 거부할 수도 없다. 그게 옳지 않다는 점은 여전하다만…….

미친놈의 생각은 일반인이 추리하거나 유추해낼 수가 없다. 일반인의 생각을 추리하거나 유추해내는 것과 달리 미친 사람의 사고방식은 범인(凡人)을 넘은 것이기에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논리나 경험에 의한 반복적인 행동보다는 즉흥적인 생각, 흥미에 따라 변화하는 행동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이?

내가 나름 미친 짓을 많이 해서 이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겠지만……카인 또한 미친놈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끔찍한 짓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미친놈이 아니라 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목숨과 평화를 앗아가는 짓은 결코 일반인이 할 법한 짓이 아니었다. 미친놈한테 최강의 파워를 주다니.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그러나 미친놈과 달리 카인은 뛰어난 지능 또한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영웅처럼 나타나기 위해서는 용사 같은 인물이 되어야 했고,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타도해야만 하는 적이 필요했다. 그 적은 마을과 숲을 모조리 부순 괴물로 선정됐으며 그는 멋지게 괴물을 제압함으로써 모두의 뇌리에 단번에 각인됐다.

다른 마을에서 일어난 죽음과 피해 때문에 모두 숙연(肅然)해진 분위기지만 물어야 할 것은 어쩔 수 없이 물어야 했다. 이 이상 나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있잖아. 그……카인이라는 인물은 너희한테 어떤 존재야?”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 나한테 집중된다. 그래, 이상한 질문을 이상하게 표현한 거.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 너희의 국어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걸 감안하지 못한 내가 죽일 놈이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물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다시 입을 놀렸다.

“음, 그러니까……. 첫 인상이나 그의 사람 됨됨이. 점차 같이 있은 후부터 로라한테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그에 대한 감상부터 시작해 카인이 너희한테 얼마나 많이 신뢰받고 존중받는지를 알고 싶어.”

괴로운 질문이었다. 나를 이 시궁창까지 몰아넣은 상대방이 아내들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묻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역겨운 상황이었지만……이런 식으로라도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아내들과 함께 있었으니 무언가 중요한 말이라도 했던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아내들이 한 명씩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홀연히 나타나 괴물을 무찔러준 고마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시체와 혈흔의 처리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를 도와준 인물이었으니 그런 마음을 느낀 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마움만을 느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6개월 이상 나와 함께 있었던 아내들부터 시작해 원래 세상에서 소환된 혜린이, 희진이, 은채는 ‘세린 외에도 남자가 있었나?’라는 생각을 맨 먼저 했다고 했다.

어느 마을이든 간에 여자밖에 존재하지 않는 ‘하렘 어드벤처’에서 나 이외의 남자가 존재한다는 건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아내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워낙 경황이 없었기에 시체 및 혈흔의 처리가 끝난 후부터 그가 ‘나 이외에 처음으로 만난 남자’라고 생각하게 됐대나…….

카인이 주변에서 없어진 후부터는 그녀들 또한 점차 이 상황에 모순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프레그넌트의 주민들을 신경 쓰던 그는 어느 새인가 아내들의 중심에 있었고, 그녀들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그를 연인, 남편, 아버지로 보게 됐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싶었지만……지금의 나는 그녀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세상으로 소환된 것도 모자라 마법도 쓰고 괴물이랑도 싸웠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좋아하게 됐다’라는 것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 급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신세린’이라는 존재는 점차 자신들의 의식, 마음속에서 점점 멀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카인한테 끌리는 자신들한테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걸었던 세린을 어떻게 이렇게 배신할 수가 있지?’라는 질문을 하며 혐오감까지 느꼈다고 하지만……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카인이 당연한 듯이 앉아 있었고, 아내들은 그를 나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곤란한 일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그와 상담을 했고, 밤이면 늘 그와 사랑을 나눔으로써 서로간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했다. 그 부분에서는 나는 잠시 이야기를 멈춰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없어져버린 마법들은 카인이 나한테 부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줬다고 쓸 수 없을 리는 없지만 내가 했던 방법 그대로 아내들을 만족시킨 그의 수법은……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나를 노리고 한 짓이었다.

내가 한 방법을 그대로 아내들한테 써먹음으로써 자신을 내 이미지에 덧씌었을 뿐만 아니라 나한테 정신적인 충격까지 먹이다니…….

당장에라도 카인을 쏴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이곳에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내 능력으로는 무리다. 괴로운 마음을 움켜쥔 채 이야기를 계속 해달라고 했다. 이 수모는 언젠가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곳에 온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카인은 그녀들의 남편이 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모순(矛盾)은 그와 멀어짐으로써 점차 깨닫게 되었지만……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모순은 느꼈지만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그가 왕궁을 떠나는 빈도와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원래 남편은 나였는데 이래서야 바람난 여자와 만나는 거나 다름없군.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시궁창이 되었……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현실 세상에서도 시궁창이었군. 어느 쪽이든 간에 시궁창에 가는 게 내 운명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섭섭하고 슬프네. 그나마 이 세상에서는 달라질 거라 생각했었는데……사실은 오십보백보였다니.

마음을 후벼 파는 과거 이야기가 끝났지만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듣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계속 났으니까. 안 들었다 치더라도 이미 아내들이 그놈한테 범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기분이 이렇게까지 더러워지다니. 당장 내 가슴팍을 쪼갠 후 시원한 물을 쳐부어주고 싶은 기분이 무럭무럭 든다.

미안하다는 아내들의 말에 너희 탓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카인이 모든 것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거고 그녀들은 그 새끼한테 조종당했을 뿐이니까. 오히려 이러한 사과를 말해야 하는 건 카인이다만……절대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사과할 거 같았으면 사과할 만한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의 성격이나 품성에 대해 물으니 크게 거슬리거나 하는 건 없었다고 했다. 무엇이든 간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는 태도. 마법이나 검술 부분에 있어서도 꿀리는 부분이 없었기에 전투 부분에서도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확실히……나와는 달리 올 라운더 타입. 체술, 검술, 마법 등. 어느 부분에서도 부족한 면이 없는 놈이다.

그게 마법으로 얻은 능력인지 그 자신이 타고난 능력인지는 모르지만……나한테 있어서는 나쁜 소식이었다. 약한 부분이 있으면 파고들어 공략이라도 하지, 약점이 없다는 건 격투, 검술, 마법. 어느 쪽으로 공격한다 치더라도 골고루 처발린다는 뜻이니까. 안 그래도 약한 내가 더욱 더 확실하게 처발릴 거라는 근거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마치 게임이나 소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군. 내 적임에 틀림없는 카인을 생각하니 엉뚱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생긴 것도 모자라 모든 능력에 부족함, 치우침이 없으며 성격이나 행동 또한 나무랄 데가 없으니 말이다.

왜 있잖아. 게임이나 소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한결같이 능력 있고, 멋있고, 강하잖아. 얼굴이 못 생겼다 치더라도 능력이 있거나 센스가 있고, 머리가 좋은 책사 타입도 있고. 기연(奇緣)이나 멋진 스승을 만나 강해지기도 하니 어딜 보더라도 그놈이 주인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그놈한테 엿을 먹고 있는 나는 무엇일까? 그 답도 간단하게 나왔다. 뭐긴 뭐겠어? 인생 시궁창에 빠진 좆망 병신 3류 엑스트라지.

자기 자신에 대해 비참할 정도로 인색한 평가였지만……그런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와 카인. 태생부터 시작해 힘, 외모, 능력. 어딜 보더라도 내가 이기는 부분이 없었다. 그나마 이기는 거라면……변태적인 부분?

이기는 부분이 아무한테도 자랑할 수 없는 변태성이라니. 대체 그 부분에서 이겨서 좋을 건 또 뭐냐? 없잖아! 승패를 나눌 수 없는 부분이라지만 지금까지 머리가 훼까닥 돌아 저질렀던 미친 짓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변태적인 부분에서는 내 압승이었다. 하핫, 나도 그놈한테 이기는 게 있었군! 별로 기뻐할 만한 승리는 아니다만…….

카인에 대한 정보는 이미 들었기에 그 다음 질문은 놈의 목적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가 비록 나뿐만 아니라 아내들까지 희롱하긴 했지만 거기에는 틀림없이 무언가 목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안다. 목적 없이 날 엿 먹이고 정신적 충격까지 줄려고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도 있긴 있지. 그걸 꼭 지금 말해야겠냐? 그건 이미 생각했거든? 이미 사건이 발생했다면 거기에서 건질 수 있는 건 모조리 건져야 이 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만 같았다.

아내들한테 놈의 목적. 혹은 나에 대해 무언가 말한 것은 없냐고 물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기억이 나는 게 있다면 말해 달라 했지. 결과는 나쁜 의미로 대박이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그의 입에서 앞으로 할 일이나 그가 가진 목적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나왔던 건 내가 로라와의 잠자리를 방해했던 것인데……그것마저 그냥 ‘방해꾼이 끼어들어서 로라와 즐거운 시간을 나누지 못했다’라는 것 정도? 화를 낸 것뿐만 아니라 총까지 쐈건만 그걸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정도로 일축해버리다니. 대범한 건지, 나를 벌레 같은 걸로 여기는 건지…….

웃긴 건……전자(前者)와 후자(後者)가 모두 동일하다는 거였다. 신이나 다름없는 자기한테 벌레 같은 나 따위가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겠지. 그런데……그렇게 생각하니 열 받네?

아니, 자기한테 상처를 입힐 수도 없다면 내 마력, 마법, 아내들의 코스튬은 왜 빼앗아 간 건데? 있어도 상처를 못 입히는데 왜 가져갔냐고!? 그렇게 철저하게 엿을 먹이고 싶었던 거냐? 만약 그런 거라면 성격 존나 못돼 처먹었네! 애미 애비가 그렇게 교육시키디!? 망할 놈!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는 패드립까지 하며 그를 욕했다. 패드립이 뭐냐고? 패륜 + 드립. 다른 사람의 아버지나 어머니. 소중한 가족을 욕하는 ‘패륜(悖倫)’과 드립을 합친 단어. 쉽게 말해 ‘니기미’, ‘너희 엄마 창년!’같은……남의 소중한 가족을 저열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절대 어디 가서 하지 마라. 아니, 할 생각도 하지 말자!

예전에 꿈에서 ‘병신 같은 부모’라며 내 부모님을 깠었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리네, 개새끼! 그때도 말했지만……그래.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멋지게 살아오시지는 않으셨다. 아무 말 없이 빚을 만들어 나한테 떠넘긴 것만 해도 그렇지. 절대 ‘올바른 부모님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그래도 내 부모님이었다. 최선을 다해 나를 길러주셨다는 것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내 부모님을 까고는 했지만 그건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질러서 그랬지.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거나……그런 식으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까도 자식인 내가 까야지, 왜 아무런 관련도 없고 뭘 보태준 적도 없는 그 씨발놈이 우리 부모님을 깐단 말인가? 교황조차 패드립을 하면 한 대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하며, 그게 정상이라 했는데 이 시발놈이 감히 우리 부모님을 까? 병신 같다고? 이런 개새끼가……!!

어떻게 그놈이랑 관련돼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을까? 이렇게까지 ‘나타난다 = 엿 먹인다’라는 일관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인물도 드물었다. 그 엿을 먹는 사람이 나만 아니었다면 일관성을 칭찬해주고 싶었지만……이제 와서 칭찬할 일도 아니고, 칭찬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그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아내들한테 접근한 것인지, 앞으로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아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서 앞으로의 행동 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카인을 생각하니 역시 용의주도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는 평가밖에 나오지가 않았다.

내 아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어떤지는 솔직히 모르겠다만……설령 아니라고 치더라도 자신에 대한 것은 한 마디도 하지 않다니. 그 용의주도함과 담백함을 생각하니 유령이 떠올랐다. 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는 아름다운 이목구비였다만, 멀리서 보면 하얀 머리에 피 같이 시뻘건 눈동자를 가진 귀신으로 보일 수도 있었으니까.

귀신이든 유령이든 간에 자기가 있던 곳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으니 그곳에 있더라도 알아볼 사람도, 알아낼 수 있는 단서도 없는 것이다.

카인의 행동과 태도는 마치 유령과 같았다.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누군가한테 알려주려는 마음도 없는……잔혹하면서도 자비심 없는 귀신. 그게 바로 내가 상대해야만 하는 자의 본질이었다.

============================ 작품 후기 ============================

내일부터 시작해 다음 주부터는 다시 자정 업로드가 진행될 거 같습니다. 집안사정은 그럭저럭 괜찮아졌는데 회사 근무 일정이 엉망으로 변했습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근무지만 여러 모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힘드네요.

그치만 어쩌겠습니까. 한가한 백수보다는 바쁜 근로자가 낫겠죠. 돈을 버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겠네요. 어떻게든 삶이 나아지길 바랍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로리콤MK님, 요즘은 로리 캐릭터의 수요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굳이 로리콘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가냘프고 어린 아이를 보며 일종의 정신적 안정을 얻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거겠죠.

업계도 로리 캐릭터의 수요를 알고 있으니 만드는 거겠죠. 로리콘이다 뭐다 말은 하지만 사실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수요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겠죠. 사람 따라 좋아하는 게 다른데 로리도 그 수요에 포함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당당히 외칠 수 있습니다.

하앍하앍! 로리 좋아한다능! 지켜주고 싶다는! 같이 놀고 싶다능!

……왜 그렇게 범죄자 보듯이 절 보십니까?

전 결백합니다!

gud5917님, ㅈㅇ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ㅠㅠ 요즘에 ㅇㅈ이나 이런 말이 유행인데 정작 그런 건 전혀 몰라서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정29현이라는 말조차 여러 번 되읽다가 알게 될 정도로 유행에는 뒤쳐졌습니다 =_=;; 뜻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양이새벽님, 세린이 고생하지만 사실상 세린의 주변 상황 등을 자세히 아는 건 작가와 독자입니다. 쉽게 말해, 독자분들은 '아~이쯤되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작가가 세린 졸라리 굴리고 있구만 ㅋㅋㅋ'하며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정작 굴렁쇠처럼 굴려지는 세린은 '데샤아아아! 어째서 와타시가 이렇게 굴러야만 하는 데스? 이건 무언가가 잘못된 것인 데샤아아아앗!'라며 외치는 겁니다.

사실상 독자분들보다 훨씬 더 얻는 정보가 적으니 억지에 가까운 추론밖에 못 하게 됐습니다. 즉, 세린은 생각이나 정보에 있어서도 엄청나게 불리하다는 거죠.

과연 이런 상황에서 세린이 어떻게 결과나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잃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현재 훈련소에서 복무 중이신 zxc54님께서는 건강하신지 걱정이네요. 신병교육대는 밖에서 자유를 만끽하시던 분들한테는 진짜 힘든 곳입니다. 별로 밖에 안 돌아다니던 저조차 입대 첫날에는 눈물 흘리며 잤습니다. =_=;

군 복무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군 복무는 진짜 깜깜합니다. 신병대 들어간 때부터 전역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는 있는데……앞이 너무 깜깜해요. 진짜 엄청. 현역 다녀오신 분들은 입대 첫날 생각해보세요. 토 나옵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좋아졌다지만……군대가 좋아져봤자 군대죠. 가혹행위나 폐해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이 부디 빨리 근절되면 좋겠네요. 물론 근절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부디 zxc54님을 포함한 신병분들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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