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7 「16-6 : 빼앗겨버린 아내들 (6)」 =========================
“쮸웁……푸핫, 카인……카이인……후후…….”
악몽이다. 이건 악몽이다. 난 틀림없이 악몽을 보고 있는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로라가 저렇게 열락(悅樂) 띤 목소리로 카인의 이름을 부를 리가 없어……!!
안즈를 찾기 위해 방을 나선 것이었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일방적으로 키스를 퍼부으며 홍조를 띤 로라의 발정난 목소리. 암캐 같은 행동. 아직 옷을 벗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살짝 벌어진 문 틈 사이로 나오는 빛에 이끌려 간 나는 터무니없는 것을 보게 됐다.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나았을 것을……차라리 눈치 채지 못했다면 하다못해 희망이라도 가졌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현실도피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아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로라와 카인에 의해서 말이다.
로라는 내가 결혼 선물로 줬던 유우키 아스나의 기사복을 입은 채 그의 가슴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옷을 벗지 않은 채 서로 몸을 갖다 대는 행위는 로라가 자주 하던 것이었지만, 설마 그걸 저 새끼한테……남편인 나를 제쳐두고 저 새끼한테 하다니?
살아 돌아온 나는 그럼 대체 뭔데?
쓰레기냐?
너희 소망을 철저하게 이루어주는 램프의 요정이었냐?
“후후……가끔은 이렇게 오붓하게 둘이서 즐겨야죠. 다른 여자들한테는 분신만 던져줘도 충분하잖아요? 당신의 진실된 아내는 저 하나뿐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하우웃……자지, 엄청 부풀어 올랐어요……!!”
미치겠군. 충격과 공포다. 누군가 망치로 내 머리를 갈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 나를 엄습했다. 다른 여자들한테는 분신만 던져줘도 충분하다고?
사라진 내 마법 중 내가 매우 즐겨 쓰던 마법. 혜린이의 ‘진실된 자지의 맹세’로 인해 생겼던 분신술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카인의 정체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절대자로 확정이 난 상태였다.
자기가 만들어 지금까지 쓰게 하던 마법을 회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다. 자기가 만든 마법을 스스로 쓰지 못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로라가 꺼낸 말이었다.
다른 여자들한테는 분신만 던져줘도 충분하다는 말은 말 그대로 분신을 만들어 한 사람당 한 명씩. 혹은 그 이상 배분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내가 분신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녀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주기 위해 무슨 짓을 해왔는지.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아내들한테 분신을 던져준다’라는 말이 무얼 뜻하는지 너무나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 잔혹한 현실이지만 내 뇌는 냉정하게 결과만을 나한테 제시하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는 양.
[내 아내들은 현재 카인의 분신들한테 범해지고 있다. 강간당하고 있으며, 윤간당하고 있다. 그의 분신한테 교태(嬌態)를 부리며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하고 있다]
“아, 앗…….”
주저앉았다. 다리의 힘이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지금까지 생각은 했지만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던 사실이 단숨에 현실로 다가오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왕궁의 복도에 두 손을 간신히 댄 채 땅을 쳐다보는 자세는 그야말로 좌절 자세였고, 현재의 내 상황과 너무나 딱 맞아떨어졌다.
대체……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로라는 내 두 번째 아내였다. 늘 존댓말을 하며 다른 사람을 공경할 뿐만 아니라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비대장이었지. 정숙했지만 섹스를 할 때에는 누구보다 격했던 그녀였기에 로라에 대한 내 사랑은 매우 깊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곧잘 상담을 하고는 했기에 그녀와 보냈던 추억은 깊으면 깊었지 결코 적지는 않았다.
함께 사냥을 하고, 식사를 하고……목욕을 하며 ‘세린과 결혼해서 너무 행복해요’라며 아양을 떨던 로라가……소중한 내 아내 중 한 명인 그녀가 저 새끼한테 스스로 키스를 했다고?
남편인 내가 돌아왔는데 거들떠 보기는커녕 이곳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니. 그 좁고 낡다 못해 허름한 공간에 날 처넣은 후에는 아예 보러 오지도 않았다는 거지?
정신을 잃어 쓰러져버린 날 걱정하는 것보다 그 새끼한테 몸을 바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거냐?
다시금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말 대단했다. 아내들한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야만족의 태반이 전멸 당했던 5일차 낮. 그것도 아직 마력봉인수갑을 풀지도 않은 상태에서 눈치 챘다니. 나한테 혹시 미래시(未來視 ; 미래를 보는 눈─능력─)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겠지. 미래시가 있었더라면 이미 로라와 아내들이 저 개새끼와 몸을 나눈 걸 이미 눈치 갔었을 테니까. 잔혹한 현실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광경이었기에 내 뇌는 그걸 처리하느라 풀가동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3일차에 그 지경이 됐으니 빠르면 3일차. 늦어도 4일차. 내가 납치된 지 4일차 되던 날부터 내 아내들은 저 새끼한테 다리를 활짝 벌리는 창녀가 됐다는 소리가 된다. 당장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아냈다. 참아야만 했다. 이곳에 있다는 걸 들키기는 싫었으니까.
충격적인 광경을 본 나는 이미 예전부터 생각하던 최악의 가능성이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현실로 변했다는 사실에 견딜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이렇게까지 들어맞을 필요는 없잖아……이런 잔혹한 현실만 내 앞에 갖다 놓다니?
어째서? 내가 이렇게 힘든 현실을……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잔혹한 현실만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개새끼처럼 살아오지는 않았단 말이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 세상에 떨어져서 처음부터 죽을 뻔했었고, 무기와 마법에 대해 깨닫게 된 후로도 싸움은 계속됐었다! 목숨 걸고 싸워 이룩한 평화와 안전, 행복이었건만……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난 아주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은 하나 같이 내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는 미친 사건, 말도 안 되는 일,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태뿐이었다. 납치, 프레그넌트의 파괴, 괴물들의 습격, 아내들의 배신 등. 하지만 이렇게까지 슬픈 현실을 확인하니 단 하나의 질문이 자연히 떠올랐다.
왜 일이 이렇게 됐을까?
아니, 웃기잖아. 겨우 5일이다. 5일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나를 그토록 바라던 아내들은 순식간에 저놈을 사랑하게 됐다. [사랑과 신뢰의 반지]부터 시작해 로라가 방금 뱉은 말을 조합하면……이미 예전에 나는 눈 밖에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 밖에 났다고 하니 귀엽네. 아예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지. 살아 있었냐고 물을 정도니 관심이 없어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법이며 나는 그 결과를 맛보고 있다. 아주 확실하게. 내가 한 일이 원인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내가 전부 받아야만 하다니. 참으로 불합리한 일이 아닌가? 마치 우주의 불합리·부조리가 이곳에 모인 거 같았다.
납치당하고, 괴물한테 습격당하고, 고향은 없어지고, 아내는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났다. 멋진 요약이다만 기쁘진 않았다. 저 일의 모든 주인공이자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는 점만 아니었다면 딱이었겠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을 바란들 현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왜 이렇게 됐을까 하고 물으니 너무나 추상적이었다.
그래, 알기 쉽게 말해주마.
왜 나는 납치당해야만 했을까?
배가 능력을 위한 아기를 바란다면 캡슐만 있어도 충분했다. 무리하게 납치를 한 것은 안즈지만 그런 안즈를 조종한 사람은……다 알잖아. 이 모든 일의 흑막이자 주모자가 누구인지 정도는.
왜 아내들은 그를 사랑하게 됐을까?
내가 사라졌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단숨에 사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5일 만에 사라졌다고? 그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 대한 그녀들의 사랑은……그녀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교차적인 것이었으며 결코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로 엷은 것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왜’를 붙여 말해야 할 것은 많았다.
왜 청록색 촉수 괴물들이 프레그넌트를 습격했던 걸까?
왜 마을 주민들은 죽어야 했을까?
왜 프레그넌트를 구한 사람이 카인이었을까?
웃기게도 모든 대답은 하나로 귀결됐다.
모든 건 저 새끼가 꾸민 일이었으니까!
뭐? 남을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고? 인간불신(人間不信)도 모자라 의처증(疑妻症), 과대망상까지 걸렸냐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현실을 봐라! 난 인간불신도, 의처증도, 과대망상도 아니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다!
인간불신? 내가 사람을 못 믿었다면 아내를 만들었겠냐? 함께 사랑을 나누며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아내를 만들면서까지 가정을 만들고 싶어 했겠냐고!?
의처증(疑妻症)? 2주 만에 돌아온 남편한테 ‘살아 있었냐’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 갑자기 쓰러진 나를 허름한 방에 처넣고, 자기는 외간 남자랑 진한 키스를 하며 몸을 나누는데 이게 의처증이냐?
과대망상? 괴물과 마법이 존재하는 이 세상부터 설명 좀 해보지? 그럼 내가 과대망상이라는 거 인정할게! 진심으로! 레알!
솔직히 말해서……아직도 이 사태를 믿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내 눈에서 흐르는 것이 피눈물이 아닌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피눈물이 흐르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하겠지만 지금은 피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라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때였다.
백발(白髮)의 여자, 하얀 머리 미친년(시발년) 등으로 지칭하던 여자가 카인이라는 이름을 들고 나온다고 해서 성질이 달라질 리는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세상에 개입해 나를 엿 먹이고 있으니 훨씬 더 질이 나빠졌다고 볼 수 있겠지.
미카를 포함한 다른 아내들을 조종했던 것만으로도 이미 정황상 증거는 충분했다. 이미 아내들한테 버림받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을 ‘믿고는’ 있었다. 이 ‘믿는다’라는 의미는 그녀들이 스스로 나를 버린 게 아니라 조종당해서, 세뇌당해서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신지배나 조종, 세뇌,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등. 여러 매체에서 나온 말들이지만 그 효과는 꽤 비슷했다. 대상의 육체나 정신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조종자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조종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공통적인 효과였다.
그녀들이 나를 버리게 된 모든 이유에는 카인이 있었다. 납치, 마을 습격, 극적인 등장, 왕궁에서의 생활. 그 어느 것이든 간에 카인이 개입되지 않은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6개월 간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시간과 나날, 함께 나누었던 섹스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절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나를 향한 그녀들의 사랑과 신뢰가 사라진 것은 카인에 의해서겠지만, 그녀들의 진심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당연하잖아! 그녀들은 사람이다! 괴물인 아스카도 있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괴물이냐 사람이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녀들이 나를 믿고 사랑하느냐는 거지!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녀들은 나를 사랑하고 믿어줬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의 그녀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만……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 혼자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지만……이렇게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녀들과 내가 강한 신뢰 관계를 맺었기에 그런 거겠지.
이유가 어찌 됐든 간에 현재 로라는 카인과 사랑을 나누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걸 입 닥치고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NTR 작품에서는 자기 아내가 강간·윤간 당하는 것을 보고 자위를 해대는 남자가 나오지만 난 그런 미친놈은 아니었다. 내 물건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것에 흥분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으니까.
문을 힘차게 발로 차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이목이 나한테로 집중됐다. 이제 막 옷을 벗고 즐기려 하던 로라는 날 보자마자 허겁지겁 옷을 다시 입었고, 카인은 여전히 웃음을 띤 채 날 보고 있었다. 좀 당황이라도 하지? 넌 매일 웃고 있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실실 처웃고 있는 저런 하회탈 같은 새끼가 좋다며 아양과 교태를 부리는 로라라니……. 준엄하고 근엄하면서도 사랑스러웠던 로라의 이미지가 박살난다. 그게 그녀의 탓은 아니지만, 이렇게 일이 흘러가는데 로라한테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라는 ‘세, 세린……아, 아니에요……이건……!!’이라며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 했지만 그 이후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로라와 카인의 진한 키스 장면을 봤다는 거니까. 어설픈 변명 따위는 아예 안 하는 게 낫겠지.
슬픈 장면이었지만 변명을 하려 하는 자세 자체는 매우 기뻤다. 적어도 ‘남편인 나를 놔두고 외간 남자인 카인과 바람을 핀 것’에 대해 나쁜 행동이라고, 변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아예 완전히 나를 잊은 것은 아닌 것 같았기에 기쁘기도 했지만……지금은 그거에 기뻐할 때가 아니다. 내 아내가 다른 남자한테 추파를 던지다 못해 몸을 나누려는데 그걸 좋아하는 놈이 있다면 그 새끼가 미친 거다. 난 미친놈이긴 했지만 그런 행동을 용납하는 미친놈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니 머리에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엄마랑 아빠가 자주 보던 드라마에서는 대부분 불륜이 나오곤 했다. 난 그걸 보며 ‘어이구, 한국 드라마는 어떻게 된 게 다 똑같냐……맨날 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의 병이 나오냐. 3단 콤보도 아니고……’하며 그걸 마음속으로 깠었다.
근데 설마 내가 그러한 패턴. ‘아내가 바람을 피우던 현장을 잡는 사람’의 입장에 서게 될 줄이야. 인생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M16A1을 소환했다. 내가 그를 겨누자 ‘아, 안 돼요 세린! 지금 뭐 하는 거예요!?’라며 언성을 높이는 로라.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야 웃길 수밖에 없겠지. 내 무기를 소환 및 소멸 시킬 수 있는 카인한테 있어 내가 쓰는 모든 무기나 마법은 애들 장난. 막을 가치조차 없는 쓸모없는 행동일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떼를 써도 원하는 게 자동으로 떨어지지 않듯이,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격해도 그는 상처 하나 없을 것이다.
“밤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시다니, 예의가 별로 없군요.”
먼저 말을 꺼낸 건 카인이었다. 호오, 이 새끼 봐라? 니가 감히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에서 온 나한테 예의 배틀(禮儀 Battle)을 걸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 대하는 예의로는 꽤 깍듯하다고 칭찬 받은 놈이거든? 주제도 모르고 저딴 말을 하는 게 우스웠다.
“남의 아내한테 손을 대는 놈이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로라의 몸이 흠칫거렸다. 경비대장으로서 늘 늠름하던 그녀가 저렇게 움찔거리다니. 격한 섹스를 할 때는 사정(射精) 후에 움찔거리고는 했지만 죄를 지은 사람처럼 행동한 적은 없었기에 좀 신기했다.
“하하, 세린 씨도 참. 우스운 말을 다 하시는군요.”
우스워? 내가 눈썹을 모으자 그는 더욱 더 밝게 웃었다.
“세린 씨는 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나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딴 말을 하는 걸까. 조금 불안하다.
“많은 아내 분들을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내 분들을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아내를 가지신 분이 또 다른 아내를 만드신 분이 그런 말을 하다니. 웃기군요.”
내가 한 말이 왜 웃긴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린 씨의 아내 분들한테 손을 댄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면……그건 잘못 말씀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저를 바란 것은 그녀들이니까요.”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 새끼는 말도 안 되는 것 두 가지를 단숨에 말했다.
첫 번째, ‘아내 분들한테 손을 댔다’라고 말한 시점에서 이미 내 아내들과 몸을 섞었다는 것.
두 번째, 카인이 그녀들을 원한 게 아니라 아내들이 카인을 원했다는 것이었다.
로라를 보자 그녀는 ‘아, 아읏……아, 아니. 그건……저, 저희는……!’이라며 변명을 하려 했지만 결국 말을 잇지는 못했다. 스스로 인정했다는 시점에서 카인이 한 말은 사실이라고 봐야겠지.
이미 몸을 나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자. 사람을 되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내 눈앞에 있는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카인이 나한테 말한 ‘아내들이 자기를 먼저 원했다’라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이었다. 마인드 컨트롤 등의 세뇌나 지배 등을 통해 그가 아내들을 탐했다면 모를까, 아내들이 먼저 그를 원했다니. 이것 또한 그의 농간일까?
그녀들을 꼭두각시처럼 이용한 것도 모자라 나한테 엿을 먹이려는 이중(二重)의 효과.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말이 지금보다 더 어울리는 때는 없겠지. 내 아내들을 탐함과 동시에 나한테 정신적 충격과 절망을 듬뿍 끼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들의 진심이 아니라 생각했고, 그렇게 믿고는 있었지만……손이 부르르 떨렸다. 당장에라도 이 빌어먹을 놈의 면상에 총알을 갈겨주고 싶었다.
그놈을 겨냥한 내 손이 부르르 떨리자 ‘아, 안 돼요! 카인한테 그런 물건을 겨누지 말아요!’라며 소리를 쳤다. 가증스럽다 못해 증오스럽다. 이건 뭐 대놓고 바람을 피웠다고 인증하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아내들한테 손을 댄 것이 잘못이라면 사과드릴 수 있지만 저를 먼저 원했던 것은 그녀들입니다. 남편이었던 당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2주 정도 없었다고 저를 원할 정도라면……아내분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던 모양이네요.”
쐈다. M16A1에서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탄알이 발사됐고 그 목적지는 놈의 얼굴이었다. 놈의 얼굴을 향해 쐈던 탄알은 허공을 가르며 벽에 처박혔다. 내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게 놀라웠지만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거 맞고 죽을 놈이 아니라는 내 생각이 다시금 현실로 나타난 것뿐이었으니까.
“아아악!”
로라는 내가 총을 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총알에 맞아야 했던 카인이 자리에 없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던 걸까?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만 지금은 로라한테 뭐라고 할 때가 아니다. 뒤를 돌자 카인은 벙긋거리며 서있었다.
“어이쿠, 총을 쐈다는 건 사실상 인정했다는 거네요? 아니면……이럴 수도 있겠네요.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주려 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는 가능성. 또는……만족은 했지만 남자이기만 하다면 남편이든 아니든 간에 다리를 벌리는 창녀──”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조정간을 ‘자동’으로 맞춘 후 갈겼으니까. 야간 사격 때 ‘반자동’으로 맞추긴 했지만 한 발씩 끊어 쏘는 게 아니라 1~2초 간격으로 갈기니 두, 둑, 두둑, 거리는 느낌으로 나갔었지. 밤중에 총을 쏘니 야간 사격 때가 생각나는 걸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과 관계없이 총알은 계속해서 놈을 향해 나갔다. 땅바닥에 총알이 박혔지만 그건 놈을 관통해서 박힌 게 아니라 허공을 지나 박힌 거다. 놈은 내가 발로 찬 문 옆에 태연하게 서있었다. 텔레포트……?
“텔레포트랑 비슷하지만 그 정도로 마력을 소모하는 건 아닙니다. 뭐……세린 씨한테 설명을 한들 이해하실 수는 없을 거라 생각──”
그의 말은 다시금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지껄이든 말든 총알을 갈겼고, 놈의 모습은 더 이상 방 안에 없었다. 혹시나 싶어 천장, 벽 등을 확인했지만 역시 카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으음, 엄청 쏴댔군. 겨우 60발도 안 되는 탄알이었지만 밤중에 막 쏴대니 자던 사람들 모두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 로라를 보니 그녀는 흠칫했다. 더 이상 자신을 지켜줄 카인이 없다. 이 말은 바꿔 말하자면……내가 그녀를 사실을 요구하며 다그친다 해도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세, 세린……그, 그건……카인의 말은, 있잖아요. 아, 으……!!”
오들오들 떨며 변명을 하려는 로라의 모습은 귀여웠다. 아름다웠고, 예뻤으며, 사랑스러웠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내의 모습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
그와 동시에……가증스러웠다. 나를 그 허름하고 낡은 침실. 말이 좋아 침실이지, 헛간을 개조한 침실 같은 곳에 던져두고 카인이랑 몸을 나누려 했다니? 이미 몸을 나누었다고 대놓고 말했기에 그녀한테서 느끼는 배신감은 더더욱 컸다.
의식을 잃기 전 ‘설마 너희, 저 새끼(카인)랑 잔 거냐?’라고 생각했었지만……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사실이 되어 다시금 내 앞에 나타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원하는 남편은 없지만……그렇게 소망하는 남편들 중 일부는 아내의 외도(外道),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절망하게 된다.
로라가 이렇게 변명을 하려는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적어도 나한테 변명을 하려 한다는 것 자체는 기뻐해야겠지. 아예 관심도 없고 사랑도 없었다면 변명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죄책감이 없다면 ‘내가 누구한테 다리를 벌려주든 니 알 바야? 왜 카인과 나의 섹스를 방해하는 거야!?’라며 소리쳤겠지.
……으음, 생각해보니 존나 빡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로라와 메이의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부터 시작해 안나와 니나한테 납치당했을 때 노력했던 것. 프레그넌트의 평화를 위해 매일 같이 토벌을 나갔던 게 무슨 무료 봉사활동인 줄 아나?
로라의 몸을 노리고 한 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랑 목숨 걸고 싸우는 건 당연히 니가 해야 할 일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바보 병신 호구라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 아니었으니까. 당시에는 숙박비와 아이템, 레벨업 등을 생각해서 하다 보니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거였다.
변명을 하려는 건 좋지만 슬퍼해야 한다면……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마당에 대체 변명이 무슨 소용일까? 카인은 아마 거의 진실만을 말했을 것이다.
‘거의’라고 한 이유는 그 새끼가 원래 개구라쟁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나를 빡치게 만들려고 그러는 것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한 말이 거짓이었다면 로라는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발뺌을 했을 테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 나를 향한 사랑과 신뢰가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었기에 그녀는 변명을 하려는 것이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이미 일어나버린 사건은 그 누구라 하더라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생(蘇生)과 시간을 되돌리는 것 외에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오늘 많이 나오네.
“로라.”
겨우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그녀는 흠칫했다. 부들거리며 드는 그 표정에는 슬픔과 안타까움, 비굴함이 나타나 있었기에 마음이 착잡했다. 한 때 내 자지에 축복의 키스를 내렸던 그녀가……나를 누구보다 원했던 그녀가 카인한테 다리를 벌리며 박아달라는 장면. 그저 그것만을 상상했을 뿐인데도 정신이 아찔해진다.
“얘기 좀 하죠.”
그 말에 로라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을 끄덕였다. 내가 문을 발로 찰 때 허겁지겁 다시 입었던 옷 사이로 뽀얀 살갗이 보였지만……신기하게도 전혀 욕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만이 가슴과 온몸을 채워간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더 이상은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으니까.
나도, 로라도.
우리 모두 다 말이다.
============================ 작품 후기 ============================
또 월요일입니다. 왜 월요일은 번거롭게 찾아오는 걸까요. 이해는 되는데 이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일요일을 3~4일 정도 만끽하고 싶어요. 쉽게 말해 푹 좀 쉬고 싶다는 거죠.
결국 NTR에서 처음으로 불륜 장면을 보인 건 로라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작가인 제가 적는 건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저도 제가 웃긴 놈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웃겨서 웃긴 게 아니라, 뭐가 뭔지 몰라서 웃기다는 점이 좀 다릅니다만.
일은 힘들고 세상살이는 고달프고. 그나마 꿈이었던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것도 어렵고. 어쩌다 저쩌다 하다 보니 남은 선택지가 19금 소설 연재였네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이런 걸 적는 제가 묻고 싶을 정도네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히 돌아올 겁니다.
1) 내가 아냐, 씹쌔야. 나도 내 인생 살기 바쁘다.
2) 니가 노오오오력을 안 해서 그런 거다, 병신아.
3) 그딴 건 됐고, 내 이야기 들어봐! 내가 젊었을 적엔(이하생략)
다른 건 몰라도 3번은 안 듣고 싶네요. 이제 와서 내가 왕년에, 내가 젊었을 적에 드립이라니. 저도 젊긴 젊습니다. 이제 와서 몇 십 년 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할 정도로 센티멘탈한 놈도 아니구요.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됐냐고요? 월요일이 씹쌔끼라는 이야기 중이었죠. 이 소설을 주5회로 올린다고는 하지만 매일마다 자정까지 업로드 준비하고 세팅하는 건 꽤나 힘든 일입니다. 엄청 빨리 작업해서 12시 1분에 잔다고 칩시다. 컴퓨터가 1분 만에 꺼지냐는 질문은 그냥 무시하고요.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 7시에 일어난다치면 7시간. 8시간 정도 자야지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사실상 건강한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스케줄입니다.
7시간도 충분하지 않냐고요? 백수 때 늘어지게 자던 제 게으름을 너무 우습게 보시네요. 제 게으름은 53만입니다. 프리더도 울고 갈 수치죠. 예? 그딴 거 자랑하지 말라고요?
레드썬……이 아니라. 코멘트에 대한 답변 들어갑니다.
로리콤MK님, 이번 편에서 보셨듯이 카인이 툭툭 한두 대씩 때리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저 깔짝대는 태도와 행동이 더 강해질 겁니다. 세린은 거기에 반격도 못하고 처맞기만 해야 할 거고요.
김민철이님, 총을 쐈는데도 다 피해버리는 현 상황에서는 조지는 게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카인을 제일 빨리 조지고 싶은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세린이겠죠. 속이 부글부글 끓을 겁니다.
zxc54님, 두 번째 정주행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정주행을 안 하면 알아먹기 힘들게 이것저것 꼬아놓은 느낌이 들어서 죄송스럽기도 하네요. 초반부터 다시 본다면 '아, 주인공 인성 보니까 진짜 보기 싫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작가인 저는 어떻냐고요?
'내가 왜 이딴 놈을 주인공으로 썼을까?'하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lim2bbong님, NTR은 저도 좀 거북합니다만……소설의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써버렸습니다. 다른 분들도 NTR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셔서 좀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치만 그 덕분에 카인이라는 라이벌이 나올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전개구만'이라며 봐주시는 게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힘든 한 주의 월요일이 시작됐습니다. 여러분 모두 최대한 힘을 아끼시며 한 주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힘을 안 아끼면 어떻게 되냐고요? 대가리가 맛가서 '이히힛! 조아라는 똥이야! 이 웹소설 사이트는 똥이라고! 오줌 발싸!'라며 미쳐 날뛰는 작가처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침착하게 한 주를 보내도록 합시다.
안 그러면 저처럼 됩니다.
이히힛! 조아라는 똥이야! 작가의 저작권과 창작욕구를 쓰레기로 보는 똥이라고! 오줌 발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