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3 「16-2 : 빼앗겨버린 아내들 (2)」 =========================
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세상 사람들은 절대 모르지만 오직 자신만이! 자기만 아는 사실을 설명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사실을 전할 수조차 없었다. 내가 아는 사실을 아내들한테 말한다면 그녀들은 나를 미친놈 취급할 테니까. 지금도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고 있는데 하물며 ‘백발(白髮)의 여자’에 대해 말한다면? 그 날로 정신병원 한 칸을 예약하게 되겠지.
이 ‘하렘 어드벤처’에 정신병원을 비롯한 의료시설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정신병원에 갈 일은 없겠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나를 사랑하며 존중해주던 아내들. 그런 아내들이 단 한 명도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더 큰 문제였다.
카인이라는 놈한테 총을 겨눈 채 내가 없는 동안의 일을 들려달라고 했고, 메이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인을 겨누지 말라는 부탁은 상큼하게 씹었다.
내가 왜 나를 걱정해주지도 않는 니 부탁을 들어줘야 하니?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란다. 험한 세상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교육을 시켜놔야지.
은인이다, 마을을 구했다 하는 말. 카인이라는 인물의 본질. 마을의 손상을 생각했을 때 ‘설마 그런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촉이 올 텐데?
윤곽이 어렴풋이 잡히잖아?
아니나 다를까 메이의 입에서 나온 사건은 참으로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가 납치된 당일, 나는 짧은 편지 한 장을 놔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야만족의 숲에 있는 사람들을 못 본 척 할 수는 없으니 그녀들을 도와주고 오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욕을 날렸다. 세상에. 아직 이야기 시작한지 5분도 안 됐는데 욕이라니. 그럴 만도 하지. 편지를 남겼다고? 내가? 납치당해서 좆물 뽑히느라 뒤질 거 같았는데 편지라고? 장난 빠냐?
그 편지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프레그넌트에 놔두고 왔다고 하더라.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런 증거가 있을 리가 만무하지. 없어졌거나, 그녀들의 기억을 조작했거나. 어느 쪽이든 나한테 그걸 밝힐 힘 따윈 없었다.
내가 사라진 당일 점심. 밖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는 보고를 들었다 한다. 레이 시리즈와 아스카가 동시에 말을 했으니 이는 100%의 확률을 자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강력한 괴물이 느껴졌지만, 정작 그 괴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 경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적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습격이 일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대비를 해야만 했다.
일은 이튿날 아침에 발생했다고 한다. 성벽은 무사하고 밖에는 괴물의 모습조차 없었건만,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괴물이 나타났다. 청록색의 피부를 가진 그 괴물은 프레그넌트 앞의 숲에서 서식하던 초록색 촉수 괴물이나, 부카케 주변에 있던 파란색 촉수 괴물과는 궤를 달리 했다.
밖에 있지도 않았고 설령 있었다 치더라도 성벽을 뛰어넘는 게 불가능한 괴물이 어떻게 마을로 들어왔는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경비대원들이 서둘러 괴물을 없애려 했지만 거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첫 번째. 나와 야만족은 모두 알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전혀 몰랐던 사실. 이 괴물은 어지간한 괴물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촉수와 체력부터 시작해 마법내성까지 지닌 미친 괴물. 종족도 괴물이지만 스펙도 괴물인……그야말로 ‘몬스터’에 어울리는 미친 생명체였다.
물리 공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마법조차 그 위력이 반감되니 일반 경비대원이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이 이야기를 듣자 나와 안즈의 표정은 분노와 슬픔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저 망할 괴물 새끼들은 나처럼 온갖 무기를 동원하거나, 야만족의 배가 능력을 쓰지 않는 한 승산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나조차 놈의 머리나 얼굴 쪽을 공격해 가드를 집중시킨 후 다른 쪽을 공격하거나 안즈와 협공하지 않으면 이길 확률이 낮은데……프레그넌트의 경비대원이 그걸 쓰러뜨린다고?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이길 수도 없었지만 또 다른 제약이 그들을 괴롭혔다. 바로 마을 안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프레그넌트의 숲에 나타났다면 숲을 태우는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놈을 해치우거나 데미지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강력한 마법을 쓸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마법을 마을 안에서. 대피는커녕 괴물이 나타난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마법을 썼는데 그 결과 사람이 죽거나 하면 그것이야말로 본말전도(本末顚倒)였으니까.
사람은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강력한 마법을 썼다가 그로 인해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이 괴물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등. 그러나 좆같게도……괴물은 그런 걸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 이후에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촉수로 경비대원을 손쉽게 제압한 괴물은……경비대원을 ‘뜯어 먹었다’고 했다. 이 세상에 마취 도구가 있을 리도 없지만 설령 있다 해도 용도는 수술용이다. 마취 상태라고 해도 자기 살점이 뜯어 먹히는데 그걸 못 느낄 리가 없었다. 즉……산 채로 온갖 고통을 맛보며 죽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함께 있던 레이 시리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서큐버스는 전투 능력이 전무(全無)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공존을 할 수 없는 괴물끼리였기에 다음 타겟은 서큐버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레이 시리즈 중 한 명인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상반신과 하반신이 찢겨 나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총을 쥔 손을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주, 죽었다고……? 레이가……?”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대원뿐만 아니라 레이까지 죽었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와 안즈가 폐허가 된 프레그넌트를 돌아다니며 살폈지만 혈흔은 발견할 수가 없었는데……?
이야기는 계속 됐다. 단숨에 마을을 지키는 경비대원과 레이 시리즈가 죽어버리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도망쳤다고 한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판단한 아내들과 대원들은 즉시 마을로 달려가 괴물을 퇴치했다고 한다.
아이나와 아이라가 마법을 썼지만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는 말을 듣고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망할. 그 빌어먹을 마법내성 효과는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패시브 스킬. 상시(常時) 발동형이었다.
마법의 데미지를 다운시키는 그 빌어먹을 스킬이 자나 깨나 발동되고 있으니 마법사인 아이나나 아이라한테는 천적(天敵)이나 다름없는 상대!
마법의 효과가 잘 통하지 않는 걸 보고 로라, 미카가 달려들었지만……놈의 입에서 나온 빛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했다.
그 빌어먹을 청록색 촉수 괴물의 아가리에서 나온 빛에 맞은 집은 마치 날카로운 것으로 도려낸 듯이 형체 자체가 사라져 버렸고, 그 위력을 본 모두는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수밖에 없었다. 나나 야만족이 그랬던 것처럼…….
마법내성뿐만 아니라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가진 괴물을 이 이상 내버려뒀다가는 활개를 치다 못해 마을을 박살낼 가능성도 있었기에 어떻게든 제압을 해야만 했다. 그때 기발한 생각으로 모두를 도운 건 메이였다.
메이가 입은 코스튬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시리즈의 캐릭터인 페이트 테스타로사(フェイト テスタロッサ)의 것. 그녀가 쓰는 마법 중에는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바인드(Bind)가 있었으며, 메이는 곧바로 놈한테 바인드 마법을 사용했다.
데미지를 경감(輕減)시키는 것이라면 모를까 구속이나 봉인 성능을 지닌 마법을 완전히 무효화시킬 수는 없었기에 놈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아내들은 그 틈을 놈의 촉수와 다리를 모조리 잘라버렸고, 신체의 대부분을 잃은 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참으로 슬프게도, 이 이야기는 고작 ‘서장(序章)’에 불과했다. 경비대원과 레이가 죽은 것도 모자라 건물까지 날아갔지만 고작 해야 이틀째. 내가 사라진 2주의 시간 중 1/7에 해당하는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쓰러뜨린 괴물도 겨우 한 마리. 그 시점에서 놈이 죽었다는 것은 더 많은 괴물들이 마을에 쳐들어왔다는 걸 의미했다. 내가 본 마을의 처참한 광경도 한두 마리의 괴물이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스케일이 거대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을 처리하긴 했지만 상황은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성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경비대원과 레이를 죽이고 거처까지 박살냈는데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했다.
평소보다 엄중한 경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성벽 바깥에는 괴물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타난 놈은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친 상황. 이런 상황을 보다 혼란하게 만든 것은 다른 괴물들의 등장이었다.
아직 죽음의 충격과 공포가 채 가시지도 않은 이틀째 저녁. 두 마리나 되는 괴물이 마을 안, 성벽 가까운 곳에 나타나자 비상이 걸렸다. 경비대원들이 감시와 근무를 게을리 했던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런 곳에 나타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나타나자마자 그 더러운 아가리에서 빛을 뿜어댔고, 그 빛에 닿은 주민들의 몸은……여기까지 이야기하던 메이는 결국 이야기를 마치지 못한 채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바로 앞에 카인이라는 이름의 개새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메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보듬어주고 싶었지만 앞에 있는 이 망할 놈 때문에 총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라가 메이를 안으며 괜찮다며 달래주었고 아이나가 대신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촌장인 그녀는 좋든 싫든 이 일에 깊게 관여되어 있었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았지만 그녀가 내 총과 카인을 보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니 손이 부르르 떨린다. 이 상황에도 이 새끼 걱정을 하냐? 나란 놈의 존재는 너희한테 대체 뭐였냐고 물어보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아야만 했다.
주민들과 건물이 부서지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내들은 경비대원들을 시켜 사람들의 피난을 돕게 했다. 피난처는 경비대의 막사였다. 막 나타난 두 마리 외에도 괴물이 존재할 수도 있었기에 피난과 동시에 다른 괴물이 없는가도 확인해야만 했다.
메이가 다시금 바인드 마법을 쓰려 했지만 놈들은 건물을 부수거나 아내들을 향해 덤벼드는 등, 이전에 쓰러뜨린 놈과는 다른 행동을 취했다. 아침의 사건 때문에 초조해하던 사람들은 곧바로 피신했기에 인명 피해는 나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살던 건물이 부서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피신하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 마리는 경비대 막사로. 한 마리는 자기 꼴리는 대로 건물을 부수며 날뛰었다. 아내들로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힘을 합쳐 한 마리를 쓰러뜨려도 모자랄 판에 두 마리가 따로따로. 그야말로 망나니처럼 온갖 지랄을 해대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로라, 메이, 아이나는 경비대로 향했고 나머지 아내들은 건물을 부수며 활개를 치고 있는 괴물을 쓰러뜨리기로 한다. 미카와 아이라를 선두로 안나와 니나 같이 잔뼈 굵은 용병 모녀가 활개를 치고 있는 괴물한테 공격을 시도했다.
강력한 마법을 쓰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했으나 이미 주민들이 피신한데다 더 많은 피해를 낼 수도 없었기에 아이라와 안나는 강력한 화염 계열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 내성이 있다지만 고위급 마법사인 아이라와 강력한 용병인 안나의 마법에 큰 데미지를 받은 놈은 움직임이 둔해졌고, 미카와 니나가 놈의 촉수와 다리를 신속하게 제거했다.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 챈 것인지 죽어가는 와중에도 빔을 마구 발사했고, 그럴 때마다 주변에 있는 집은 고열(高熱)에 의해 불타 녹아내렸다. 성벽이 아니라 주민들의 거처에 빔을 뿜어낸 걸 보니 끝까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목적을 둔 것 같았다고 아이라가 말했다.
원래라면 아이나가 설명해야 했지만 쫓아간 괴물을 쓰러뜨린 것은 아이라 일행이었기에 그녀가 말했고, 괴물이 죽은 것을 말한 후에는 아이나가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막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비명과 고통 소리가 크게 들려왔기에 이미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반 경비대원들의 손이나 발, 살점이 피와 함께 땅에 떨어진 걸 보자 로라는 분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나와 만나기 전부터 지금까지……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경비대원들이 이토록 무참히 죽었는데 어떻게 이걸 태평하게 볼 수 있겠는가?
살아남은 경비대원들이 마법과 무기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그건 상황을 유지시킬 뿐, 개선시키지도. 쓰러뜨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로라나 아이나 같은 응원군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하는 짓. 목숨을 건 시간 끌기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상황이었다.
메이가 즉시 바인드로 놈의 움직임을 봉인한 후, 포톤 랜서를 발사시켜 놈의 주의를 끌었다. 미쳐 날뛰다 죽은 놈과 달리 경비대원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기에 바인드는 성공적으로 놈한테 적용됐다.
메이의 마법이 걸리기도 전에 달려간 로라는 손에 들고 있던 램번트 라이트를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검이 박히자 괴로워했지만 로라는 전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나라도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먼저 죽어 간 사람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 최대한 괴롭히다 죽였겠지.
검을 꼽은 상태에서 돌리자 놈의 내장이 지속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었지만 로라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지근거리 상태에서 마력으로 강화한 손으로 놈의 신체 일부분을 잡아 찢었다. 죽어간 대원들의 원한을 풀기에는 가장 적합한 행동 중 하나였다.
바인드도 모자라 날카로운 검까지 몸에 박힌 괴물은 자기 몸이 찢어발겨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경험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저지른 짓에 비하면 그것마저도 행복한 최후라고 생각된다만……그 이상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경비대원들이 그 목숨을 바친 결과 피신한 주민들 중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죽은 경비대원은 속출했기에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을 매도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죽은 사람들이 경비대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뼈아픈 타격이었다.
경비대원들은 내가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부터 경비대의 업무를 봐왔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훈련 및 실전 경험을 겸비한 그녀들을 잃었다는 것은 그 만큼의 경비대원을 선출해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일반인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난 누군가 죽기는커녕 다쳤다는 소리만 들어도 걱정이 되는 겁쟁이 새끼다! 일반인이나 주민이 죽었어야 한다는 소리 따위는 할 생각도 없었고 할 수조차 없었다. 사람의 목숨은 평등한 거니까.
경비대원이 죽었으니 그들을 대신할 대원을 선출해야만 했으나……프레그넌트의 숲이 안전을 되찾았고 주변에 괴물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이전처럼 훈련뿐만 아니라 실전의 경험을 지닌 대원을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전투력의 질은 틀림없이 떨어질 것이다.
애초에……그 날 나타난 괴물만 해도 세 마리다. 당장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만 해도 벅찬데 언제, 어떻게 경비대원을 선출해 훈련을 시킨단 말인가? 일반인을 싸움에 참여시킬 수도 없는 노릇인데 이런 상황에 경비대원을 모집한다니? 어떤 바보가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갈까?
죽은 경비대원의 시신을 모은 로라와 아내들은 그것을 창고에 두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그때는 한가하게 장례식을 치를 때가 아니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가, 그들의 거처는 박살나지 않았는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만 했다.
다친 주민들은 없었지만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막사에 300명 이상의 주민을 숙박시킬 수도 없었다. 경비대 막사는 어디까지나 경비대원들이 묵는 곳. 이런 상상도 못할 상황을 상정(想定)하여 만든 건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경비대 막사에 있기로 했다. 경비대의 숙소는 사람들도 넘쳐 났고 쓰지 않는 방에는 지치거나 다친 사람들이 우선으로 들어가게 됐다.
이렇게까지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 공간의 부족과 함께 언제 괴물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라진지 3일째 아침. 이미 프레그넌트의 운명은 파멸 직전이었다고 했다. 새벽 같이 나타난 놈들은 건물을 부수며 마을을 풍비박산(風飛雹散)으로 만들었다. 모두의 추억이 깃든 건물. 심지어 광장마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됐다는 말을 들으니 고개가 절로 밑을 향했다.
내가 혜린이를 ‘자지의 맹세’로 조종해 모두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그곳. 마을 주민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며 그녀들의 자궁 안에 사랑의 결정체를 뿌려댔던 곳이 부서지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눈물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조차 없었다. 가련한 내 인생!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혹시나 남은 주민이 없나 확인을 마친 후였기에 더 이상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나와 아이라, 메이와 안나, 로라와 미카 등. 마법을 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즉시 고위력·고화력·광범위의 마법을 사용했다.
경비대장 클래스인 로라와 미카뿐만 아니라 코스튬에 부가된 최강급 마법. 용병 활동으로 마법의 사용에 부적절함이 없었던 안나. 한 마을의 촌장과 마법사 양성소에서 선생을 맡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마법을 썼다. 결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없다는 조건이 갖추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정든 마을에 강력한 마법을 쓴다는 짓까지 저질렀다. 자신들의 소중한 마을에 파괴력 쩔어주는 마법을 썼는데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하다면 그 얼마나 좆같은 일이겠는가? 침묵한 괴물들을 보며 누구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경비대 막사가 그렇게 처참하게 박살났는데 아직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조차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했었다’]라는 말이 나오니 설마 싶었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한테 다시금 말해둔다. 몇 번이고 말해야겠지. 세상은 현실보다 기묘한 법이다. 정든 마을을 파괴하면서까지 쓰러뜨린 괴물. 하지만……. 다른 괴물들은 그 틈을 타 경비대 막사를 습격하고 있었다.
혜린이와 희진이, 은채, 니나, 아스카. 이 다섯 명은 불행 중 다행이도 경비대원들과 함께 막사를 지키고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쓸 수 있다 치더라도 미약하거나 다칠 위험이 있었기에 막사 보호 쪽으로 돌려진 상태였다.
엄청난 마법이 발동되어 괴물이 죽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다섯 명과 경비대원들. 그런 여자들의 귀에 들린 것은……지금까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던 추억이 깃든 경비대 막사가 박살이 나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자마자 뒤를 돌았고 그곳에는……다섯 마리나 되는 괴물이 막사 위에 올라가 건물을 짓뭉개고, 부수는 광경이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듣자 정신이 잠시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섯 마리?
지금 장난?
다ㅋㅋㅋ섯ㅋㅋㅋ마ㅋㅋㅋ리ㅋㅋㅋ?
이런 미친 씨발! 그 괴물이 다섯 마리라고? 그게 말이나 되냐?
난 그 당시 여자들한테 좆물을 공급하는 기계가 되어 고생하고 있었지만 얘들은 그때쯤 사경(死境)을 헤매는 싸움을 하고 있었잖아!? 세상에……!! 그 청록색 촉수 괴물의 무서움을 깨달은 건 내 아내들이 먼저였어!
다섯 마리라는 말을 듣자 무섭기도 했지만 놀랍기도 했다. 그 미친 괴물들을 다섯 마리나 정면에서 보고 살아남다니. 내 아내들이 그러한 지옥도(地獄道)를 보고도 무사하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지만……어, 절대 아내들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당시 다섯 명의 실력으로는 한 마리조차 벅찼을 텐데, 어떻게 쓰러뜨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쓰러뜨리긴 뭘 어떻게 쓰러뜨려. 내 총구가 그 해답을 가리키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정답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카인을 슬쩍 보니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메스꺼운 자식. 그딴 웃음을 짓는다고 내가 너한테 우정이나 사랑의 마음을 품을 줄 아냐? 사람 잘못 봤다, 병신아.
다섯 마리나 되는 괴물들이 건물을 짓밟자 막사는 아무런 저항조차 못한 채 으스러져야만 했다. 폭발물이 불꽃놀이처럼 마구 터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건물 부서지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건물이 부서지자 숙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급히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다. 입구 쪽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 나왔지만……입구에서 멀리 있던 사람들을 포함해 다치거나 지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자들은 괴물과 맞닥뜨려야 했고 그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무너져가는 건물 속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을 구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주민들은 허겁지겁 도망치려 했고 사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놈들의 입에서 빛이 뿜어질 때마다 주민들의 팔과 다리가 땅을 뒹굴었고, 개중에는 촉수로 한 명씩 붙잡아 잡아 찢는 새끼도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안즈는 넘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도 당장 주저앉아 무서움을 토하고 싶었다. 숲의 지옥도가 자동으로 떠오른다……그 많던 야만족이 손 쓸 틈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장면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구토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이야기를 계속해달라고 부탁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막사를 무사히 빠져나갔고 이것은 그나마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마을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발동한 고화력의 마법 덕분에 마을에는 괴물이 없었으니까.
괴물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온 막사에서 괴물을 만나다니. 아이러니했지만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즐거운 일은 더더욱 아니었고. 사람들이 도망치자 다섯 명은 배수진(背水陣)을 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놈들은 또 활개를 칠 테니까.
배수진(背水陣).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병사들이 치는 진이었지만 이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으니까.
괴물과의 싸움은 늘 이러했지만 당시 사태는 평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이러한 희생이 계속되다간 이 마을에 미래는 없을 테니까.
레벨부터 시작해 괴물을 상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다섯 명. 그런 다섯 명과 같은 건 오직 머리수뿐. 다섯 명 대 다섯 마리였지만 실제로는 다섯 명이 한 마리한테 동시에 달려들어도 이길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힘의 레벨 자체가 달랐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싸워도 죽고 도망쳐도 죽을 것이다. 설령 도망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죽을 거고, 어찌 됐든 그 결과는 자신들한테 돌아올 것이었기에 그녀들은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아가리로 살점과 뼈를 처먹던 그들의 희번뜩한 눈동자가 남은 다섯 명의 아내를 인식하고 덤비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놈들의 머리 위로 엄청난 수의 검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 저 전투 방법은 혜린이가 입은 코스튬, 「프리즈마 이리야(Fate/kaleid liner プリズマ ☆ イリヤ)」에 나오는 클로에 폰 아인츠베른(クロエ・フォン・アインツベルン/Chloe von Einzbern). 약칭(略稱), 쿠로(黑/クロ)의 전투 방법이기도 했지만……저것과 같은 전투 방법을 가진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아내들은 괴물을 향해 공격한 사람……자신들의 남편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나를 생각하며 공격이 시작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남자는 내가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여전히 야만족의 숲에 납치된 상태였으니 물리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두운 새벽을 밝히려는 듯 하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그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했으며 외모는 마치 조각을 한 듯이 아름답고 멋졌다. 붉은색의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매력에 빠져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피와 먼지로 가득 찬 허공에 선 채 아내들을 구해준 남자. 그 극적(劇的)인 등장에 모두 마음을 빼앗겼겠지만……이야기를 듣자 결국 이 새끼. 아니, 이 시발년이 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관객석에서 이야기를 보고 있던 창조주이자 절대자인 그녀가……마침내 이 이야기를 향해. ‘하렘 어드벤처’의 종말을 향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jqwws님, 주인공을 굴리는 건 단순히 육체적 노동이나 고문뿐만 아니라 정신적 데미지도 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종보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오니 자연스럽게 형태가 NTR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반신을 마구 박아댔으니 거기에 대한 댓가나 책임도 져야겠죠. 물론 세린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얘네들핵소름돋네님, 스캇 요소는 조금씩 없어집니다만……개인적으로는 더러운 것을 몸에 묻히면서도 열락에 미친 남녀를 적는 게 꽤 즐거웠습니다. 그 정도로 정신줄을 놓았다는 거니까요.
최근 회사일이 힘들고 바빠서 아침 업로드는 꿈도 못 꾸게 됐습니다. 그 덕분인지 소설의 내용과 질은 점점 더 산으로 갑니다. 출판사 도산 크리로 통수 처먹은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정신적 충격은 진짜 엄청나게 오래 가니 여러분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새롭게 나타난 남자 캐릭터, 카인은 [최종보스가 인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런 느낌일 거 같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고하며 멋지지만 속은 시커멓고 더러운 놈.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가족, 연인을 빼앗으며 자지를 불룩거리는 쓰레기……를 생각하긴 했지만, 사실 이런 건 세린한테 가까운 이미지겠죠?
아, 세린이 고고하고 멋있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즐거워하며 하반신을 딱딱하게 만드는 부분만. 그 외에는 좋게 평가해줄 부분이 없네요.
지금까지 주인공으로서 빨 수 있는 꿀은 모조리 빨며 살아온 세린입니다. 인실좆─인생은 실전이야 좆만아─의 정신을 가르쳐줄 때가 온 거겠죠. It's Morphin Time!! YEAH!!
여러분은 부디 이런 좆망작품의 등신 같은 주인공을 반면교사로 삼아 희망에 가득 찬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예?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인 저를 모티브로 삼은 거 아니냐고요?
……레드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