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49화 (149/235)

00147 「15-6 : 절망으로 가는 길 (2)」 =========================

초록색 촉수 괴물은 이미 전멸한지 오래다. 괴물의 위협은 그 이후로 없었지만 나나 경비대원, 아내들은 괴물의 출현에 대해 늘 경계했었다. 아스카를 비롯해 레이 시리즈를 근무에 동원시켜 늘 다른 괴물의 습격 위험성은 없는가 등을 확인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프레그넌트 주변에 서식하는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존재한다 치더라도 마을은 성벽에 의해 보호 받고 있었다. 어지간한 괴물이 온다 해도 1차적인 방어 라인인 성벽이 있는 이상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었다. 높은 성벽에서 땅에 있는 괴물을 향해 마법을 쓸 수도 있었으니까.

헌데……이건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박살난 마을과 경비대 막사. 주변에 보이는 검게 타버린 흔적 등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결과.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현실을 나한테 들이댔다.

“무, 무슨 소리야……? 그, 그 괴물은 우리 숲 주변에만 있어! 설마……그럴 리가……!?”

웃긴 상황이었다. 본래라면 부서진 파편들이 검게 타거나 그을린 것을 보고 ‘청록색 촉수 괴물이 여기 왔었어’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은 안즈였다. 난 그 말에 ‘무슨 소리야! 그 괴물은 너희 숲 주변에만 있잖아!?’라고 반문(反問)했어야 했고. 근데 이건 완전히 역할이 뒤바뀌었군.

웃긴 상황이라지만 정말 웃지는 않았다. 지금 심각한 상황이다. 이건……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난 눈물을 닦고 안즈를 불렀다.

“……야, 안즈.”

“으응.”

그녀의 탓이 아닌데도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이유는 아마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이겠지. 그녀가 나를 납치하지 않았더라면 ‘괴물의 습격’이라는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어떻게든 저항은 가능했을 테니까. 설령 저항이 어렵더라도 아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물론 현실은 좆같고 개 같아서 그런 일은 없었다만.

“그 괴물이 정말 너희 숲 주변에만 있었어?”

“트, 틀림없다니까! 나도 생명의 씨앗을 구하느라 여기 저기 돌아다녀봤어! 그 빌어먹을 괴물은 우리 숲 주변에만 있었다고……!!”

자기가 괴물을 만든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방생(放生)시켜준 것도 아닌데 저렇게 필사적으로 말하다니……. 마치 변명을 하는 사람 같았다.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관련은 되어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오해받는 건 싫을 테니까.

“나, 나도 어떻게 괴물이 이 주변에 있었는지, 이렇게 프레그넌트를 파괴시켰는지는 모르겠어. 그치만……그치만 믿어줘! 정말이야! 오히려 다른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왜 청록색 촉수 괴물 같은 강한 괴물이 우리 주변에만 있는 건지 고민했었어! 증오했단 말이야! 나는……나는……!!”

알겠다. 그녀가 왜 저렇게 필사적인 것인지. 나랑 같은 이유였다. 아마 ‘아, 이런 강한 괴물들이 왜 우리 숲 주변에만 있을까? 다른 곳으로 나가면 우리도 편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할 수 있을 텐데……’같은 생각을 했던 거겠지. 그 생각이 의도치 않게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고.

안 좋은 생각이나 예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건 나만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의도치 않게 동료를 만났군. 그 ‘안 좋은 생각이나 예감’이 우리 마을에 일어나지만 않았더라면 더 완벽했을 텐데!

그렇다고 안즈를 나무랄 수도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나 예감은 들어맞기 마련이다만 그게 안즈나 내 탓은 아니었으니까.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당연히 그 머리 하얀 개년한테 물어야 한다. 그 년이 우리를, 이 세상을. 이 ‘하렘 어드벤처’를 지배하고 있을 테니까.

눈에 약간 고여 있던 눈물을 닦은 후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게 그을리거나 탄 흔적은 찾으면 찾을수록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괴물의 습격부터 이미 납득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야만족의 숲에서만 사는 괴물이 왜 세 시간 거리나 있는 프레그넌트까지 어슬렁대며 온 것인지. 왔다면 레이 시리즈나 아스카는 왜 그걸 탐지 못 했는지 궁금했다.

납득할 수 없는 문제는 더 있었다. 바로 마을의 상태였다. 아주 예전에 언급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법을 쓸 수 있다. 강력한 마법은 아니지만 괴물을 쫓아낼 정도의 힘은 있었다. 경비대원들의 훈련 상태 또한 양호했으며 아내들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레벨이었다.

아내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친다면 마을이 초토화가 된다 치더라도 경비대의 건물을 거점으로 하여 어떻게든 버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경비대의 건물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파괴되다니. 마치 괴물들이 ‘가장 먼저 철저하게 파괴해야 하는 곳’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끔찍하다……!!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사람을 잡아먹으며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괴물 잉태의 도구로까지 삼는 그 괴물들이! 그 잔학무도한 괴물들이 ‘생각’이란 걸 한다고?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물론 예외는 존재했다. 아스카나 레이 시리즈 같은 경우는 특수한 경우였다. 모두 다 사고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 생활까지 가능한 괴물들이었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다. 주로 여성형 몬스터. ‘하렘 어드벤처’를 보다 즐겁게 해줄 요소 중 하나였지. 단순한 괴물한테는 그런 지능이나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괴물의 분포, 서식, 습격부터 시작해 아내들의 대응, 마을의 상태 등도 마음에 걸렸지만……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성벽이었다. 1차적인 방어라인이자 프레그넌트의 주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던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성벽은 멀쩡했다. 어, 말 잘못 한 게 아니라. 진짜. 멀쩡하다니까? 들어올 때부터 주변의 성벽 상태를 흘끗 보며 확인했지만 부서지거나 녹은 것은 없었다. 아직 주변을 돌아다니며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성벽은 훼손되거나 파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난 커다란 의문을 느꼈다.

‘……왜 성벽은 무사한 건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1차 방어막인 성벽이 있는 이상 고저차(高低差)를 이용한 전투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아무리 길고 위력적인 촉수라도 성벽을 단숨에 뒤덮을 수는 없었다. 성벽은 애들 장난으로 쌓은 방어막이 아니었으니까.

괴물 입장에서는 몇 마리가 무사히 넘어갔다 치더라도 금방 퇴치당할 수 있으니 지속적으로 병력(괴물)을 공급해야 했고, 성벽은 그 병력 공급에 있어 최악의 요소 중 하나였다. 아예 부수거나 없애야 후환이 두렵지 않은 것이지.

근데 그 성벽은 멀쩡하다니? 성벽은 멀쩡한데 마을은 초토화, 경비대 막사는 박살.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파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괴물이 있어야 했다. 입에서 빔 같은 걸 쏜다지만 물리적 공격에까지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을 자랑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 엄청난 빔 공격을 쓸 수 있었다면 힘을 합쳐 성벽을 녹이거나 부순 후 마을로 침입하는 게 정석이자 이상적인 작전이었다. 그런데 성벽은 멀쩡하고 마을은 파괴됐다? 이게 뭐야? 하늘이라도 날았다는 뜻이냐?

안즈한테 물어봤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촉수 괴물 같은 건 듣도 보도 못 했다고 대답했다. 그렇겠지……그런 게 있었다면 초록색 촉수 괴물 토벌만 하더라도 1년은 족히 걸렸을 거다. 놈들이 하늘을 난다고? 끔찍한 상상은 그놈들이 ‘생각을 할 수 있다’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타크래프트가 유명하니 그걸로 설명하자면……주변에 미사일 터렛, 벙커, 성큰 콜로니, 포토 캐넌 등을 깔아놨는데 그것들은 무사하고 본진은 쑥대밭이 됐다는 뜻이다. 적이 드랍십이나 오버로드를 쓰지 않은 이상 경비 및 요격 시스템을 모조리 무시하고 본진만 박살낸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설령 오버로드나 드랍십 같은 것을 사용했다 치더라도 그걸로 데려올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적의 본진(本陣)이다. 본진을 치기 위해 들어온 병력에 대한 요격조차 못할 정도로 프레그넌트는 무능한 곳이 아니었다. 내 아내들과 경비대원, 마을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이곳을 방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프레그넌트의 사태는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사태’와 딱 맞아떨어졌다. 성벽은 무사한데 마을과 경비대는 개박살이 났고,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검게 타거나 그을린 흔적에서 청록색 촉수 괴물이 여기 왔었다는 사실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총체적난국? 씨발 좆됐다? 망했어요?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표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무엇보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내 아내들과 마을 주민들의 생사(生死)였다.

마을이 습격 받아 부서진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마을은 고치면 그만이다. 더러워진 카펫이나 옷을 마력으로 고치곤 했으니 아마 건물에도 적용이 될 것이다. 안 되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란 말이다.

그치만 사람은? 얼굴을 감싼 두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직면하고 싶지 않아 했던 문제가 단숨에 풍선처럼 커지며 나한테 다가온다. 여기 오기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을 괴롭히는 문제. 그건 바로……사람의 목숨이었다.

건물이나 물건은 결국 도구다. 쓰다가 부서지면 고치면 그만이다. 못 쓰게 되면 새롭게 구입하면 되고.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목숨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노화(老化)나 병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의 것이 나나 혜린이와 비슷했다.

그들 또한 사람이었으며 심하게 다칠 경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치료 마법 등이 있긴 했지만 치료 기술만을 생각한다면 아마 원래 있던 세상이 더욱 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것이다. 여러 병에 다양한 대처 방법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부서진 건물과 파편 등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

‘과연 아내들이 무사할까? 마을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을까?’

어, 그래. 솔직해지자 우리. 알잖아. 마을이 이렇게까지 초토화됐는데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라는 결론 따위는 나올 수가 없다는 거. 그래, 알아. 안다고.

그치만……세상에는 기적이란 게 존재하기 마련이잖아? 그럼 이런 때에 한 번쯤은 기적이 일어나도 나쁘지는 않잖아.

이런 상황에도 ‘세상’이라는 개새끼는 왜 기적을 바라냐고 묻는다. 왜냐고? 후우……귀지 파고 잘 들어라 시발놈아.

이미 죽은 사람의 목숨은 고칠 수도, 살릴 수도 없으니까! 됐냐, 시발놈아!?

그래, 그랬다! 사람의 목숨은! 이 세상도, 원래 살던 세상에서도!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목숨만큼은 어떻게 할 도리도, 방도도 없었다. 아무리 많은 권력과 재산을 지닌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야 했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종점에 다다르는 것을 두려워했다.

진시황을 비롯해 유명한 권력자, 왕들은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원했다. 자기가 일구어놓은 권력과 지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계속 지켜보고 싶었을 테니까. 물론 그런 놈들은 다 뒈졌다. 불로불사라니. 그딴 게 어디 있어? 신도 아니고.

내가 예전에 말했지? 사람 목숨은 한 방이라고.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고.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였다. 그 좆같은 괴물 새끼들 때문에 내 아내나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단숨에 날아갔다면? 아내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된 원인이 ‘사망’에 의한 거라면?

이런 불길한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나를 덮쳤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같은 곳에서는 흔히 저주 같은 소재가 나온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거나 저주를 건 사람. 술사(術士)를 죽여야만 했다. 대부분은 술사를 죽여 저주를 풀려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오해할까봐 말해둔다만 난 그녀들의 사랑과 신뢰를 저주 따위와 동일하게 취급할 생각은 아예 없다. 단지 공통될 수도 있는 개념에 대해 설명하려고 예시를 든 것뿐이지. 사랑과 신뢰가 사라진 것에 대해 나는 ‘아내들이 나를 버렸다’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증오마저 품었었지.

그런 증오와 분노, 슬픔을 안은 채 도착한 곳이 설마 이렇게 폐허가 되어버린 프레그넌트라니. 사람들이 죽은 것도 신경이 쓰였지만 문득 죽음을 걱정하게 되니 조금 전에 말한 저주가 생각나더라고.

저주부터 시작해 술사, 술자. 마법사 등이 버프나 디버프 계열의 마법을 걸어주면 효과는 지속된다. 시간에 따라 자동적으로 소멸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랑과 신뢰의 반지’같이 일정 조건을 채우면 계속해서 효과와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고 신뢰해주는 여자가 존재해야만 한다’라는 조건이다. 그들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러한 효과가 사라지지만, 효과 소멸에는 또 다른 요인도 존재했다. 지금까지는 상상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니 생각난 것. 그게 바로 ‘사망’. 죽음이었다.

사랑과 신뢰는 좋지만 죽어버리면 그 어느 감정도 발산할 수 없게 된다. 저주를 건 술사를 죽여 저주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한테 사랑과 신뢰를 주는 여성들이 죽는다면 그만큼 사랑과 신뢰를 사라질 수밖에 없다. 죽은 사람은 아무 말도 없으며 행동조차 취할 수 없으니까.

나를 버렸다며 미친 듯이 울며 그녀들을 원망했었다. 그치만……만약 내가 납치된 이후 괴물이 습격해왔다면?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납치된 지 5일째 되던 날에 마력봉인수갑을 풀어 마력 상태를 확인했었으니 그 전에 사태가 발생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야만족들이 돌아왔었으니 현재 시간까지 감안하자면……적어도 하루 전에 아내들이 죽거나 이곳을 떠났다는 말이 됐다. 엄청난 창피함이 몰아닥쳤지만 그건 됐다 치자. 그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몰랐고 알 수도 없었으니까. 지레짐작으로 나 자신의 사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마……죽은 건가? 내 아내들이? 숲에서 죽었던 여자처럼 찢기거나 강간당해 죽었다? 그 엄청난 빔 공격을 맞고 죽었다고?

아냐, 아냐……이봐, 세린. 무슨 생각을 그 따위로 하냐? 니 소중한 아내들이 그 짐승 같은 괴물들한테 죽었다고? 넌 그런 걸 바랐던 거냐? 응? 아니잖아? 당장 ‘아내들이 죽었다’라는 가정(假定)을 반박할 요소를 생각해보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불길한 현실을 떨쳐버리라고 하다니. 늘 나를 비난하고 욕했던 내면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늘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걱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발, 평소에 안 하던 짓 하면 더 무섭다고!

그렇지만 사람이란 정(情)에 약한 생물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자 조금씩 진정이 됐고, 목소리가 말한 대로 ‘아내들이 죽었다’라는 사실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 짜냈다.

인정할 수 없었으며,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사랑스런 아내들과 딸이 죽었다니. 결단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머리는 곧 반박할 훌륭한 요소를 찾아냈다.

“……다 죽었을 리가 없어.”

그래, 바로 그거다. 난 내 희망을 가득 담은 반문(反問)을 입에 담았다. 내 아내들은 14명이다. 마리아와 아테나, 헬레나는 왕궁에 있었기에 프레그넌트가 이렇게 파괴당한 것에 대해서는 아예 책임도, 관련도 없었다.

그럼 이상하잖아. 사랑과 신뢰의 반지의 효과는 다 사라졌다. 14명의 아내가 모두 다 나를 증오하게 됐다는 가정도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모두 다 죽었다는 가정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납치당할 때 없었던 마리아와 아테나, 헬레나까지 모조리 다 죽었다고? 그게 말이 돼? 걔들은 왕궁에 있었다. 어, 그래. 최악의 사태는 늘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걔들도 내가 납치된 이후 이 마을에 왔다고 치자. 그치만……내 아내들이 정말 모조리 다 죽었을까?

마리아와 아테나는 마력과 검술 부분에서는 이 세상에서 최강급이다. 그 실력에 대한 칭찬과 칭송은 소문이 자자했으며 레벨과 마법 또한 최상급 클래스였다. 그녀들을 보좌하는 헬레나도 탑 클래스급의 실력이었지.

14명의 아내들과 마을 주민, 경비대원들이 모조리 다 살해당했다고? 아냐, 아냐……그건 아냐. 그럴 위기에 처했었다면 텔레포트를 써서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리아와 아테나한테는 백성들이 소중하겠지만 헬레나한테 있어서는 두 명의 목숨이 더 소중했을 테니까.

텔레포트를 써서 왕궁이 있는 레이프로 돌아갔으면 돌아갔지 싸우다 죽는 걸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들이 모두 다 나를 증오하게 된 것도 아니라면, 모두 다 죽은 것도 아니다. 내 착각과 현실이 어우러지며 내 머리를 괴롭혔고, 그러한 고통 속에서 얻은 것은 조그마한 가능성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마법이나 코스튬이 왜 갑자기 다 사라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 머리 하얀 썅년이 한 짓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 함부로 넘겨짚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내들에 관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해당될 것이다.

1) 모두 다 나를 싫어하게 됐다.

2) 모두 다 죽었다.

1번과 2번. 모두 다 현실성이 없었다. 내가 ‘자지의 맹세’로 여러 미친 짓을 하긴 했지만 그 결과는 모두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아내들 모두가 나를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게 될 리는 없다고 믿고 있었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고 2번을 보자니……원래 프레그넌트에 없었던 마리아, 아테나, 헬레나. 세 명이 내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 왔다가 운 나쁘게 괴물한테 걸려 모조리 죽었다……라는 것 또한 납득할 수 없었다. 걔네들 전투력부터 시작해 헬레나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대신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두 명을 지켰겠지.

그나마 아내들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건만 이제는 그 희망을 ‘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으로 박살내는구나. 또 한숨을 푹 쉬었다. 1번과 2번이 둘 다 아귀가 안 맞아떨어졌기에 나온 다음 가정은 3번이었다. 이게 참 걸작이었다.

3) 납치된 나를 구하기 위해 모두가 모인 프레그넌트에 괴물의 습격이 시작. 나 때문에 모두가 싸우다 일부가 죽거나 다쳐 다른 마을(혹은 수도)로 퇴각. 그 당시 없었던 것부터 시작해 모두가 모이게 된 원흉(계기)인 나를 증오하게 됨.

그나마 좀 아귀가 맞는데……아, 씨발!

괴물이 나온 것도!

내가 납치된 것도!

다 내 탓 아니라고!

왜 내가 온갖 시발놈 개새끼 악의 원흉이 되어야 꼭 아귀가 들어 맞냐? 빡쳐서 못 살겠네! 아오……!!

슬퍼서 얼굴을 감쌌을 때와 달리 분노와 짜증으로 얼굴을 감싸니 안즈가 ‘괜찮아……?’라고 물었다. 난 물론 안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된 커다란 원인 중 일부는 너님이거든요? 너님 탓이거든요?

야만족 동료를 모두 잃은 그녀한테 더 이상 잘못을 따진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지만……그래도 그녀의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불안해하는 그녀를 놔둔 채 다시 깊은 생각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 3번이다. 3번이 그나마 제일 아귀가 잘 맞지.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1) 괴물은 어디에서 왔지? → 야만족의 숲에 있던 괴물이 어떻게, 왜 프레그넌트를 습격했는가?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던 괴물이 대체 어떤 방법으로 프레그넌트를 함락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다.

2) 마법, 코스튬을 포함한 소유물의 소멸 원인 → 사랑과 신뢰를 잃었든 죽었든 간에 마법, 코스튬 등의 소멸에 대해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정과 생각을 거치며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고, 그 ‘결론’이라는 것에 대해 진심 어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냐면……아아. 말하는 것도 열 받는다.

모두 알겠지만 여기에는 그 머리 하얀 씨발년도 포함된다. 아니, 그 여자가 아니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으므로 내 편견과 분노, 짜증, 증오가 결론에 포함됐다는 걸 미리 말해둔다.

[머리 하얀 쒸발년이 안즈로 하여금 날 납치하게 함 → 아내들이 납치 소식을 듣고 모임 → 청록색 촉수 괴물을 불러 프레그넌트 습격 → 아내들 중 몇 명이 다치거나 사망 → 헬레나의 결단으로 최소한 아내들을 포함해 어딘가로 텔레포트 → 습격을 받았을 때 나는 없었으므로 간접적인 책임을 지게 됨 → 나에 대한 아내들의 분노와 증오 → 사랑과 신뢰의 반지의 효과가 소멸 → 현재 상태]

미치겠군……. 일단 주변의 근거와 자료를 토대로 만든 것이지만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차라리 납치당한 상태가 나았겠네 싶을 정도니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내 탓은 하나도 없지만 모든 일에는 ‘신세린의 탓’이라는 것이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었다.

내가 납치되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모이는 일도 없었을 테고, 내가 있었더라면 설령 괴물이 들어왔더라도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테니까. 날 납치한 것뿐만 아니라 내 부재(不在)마저 이렇게 써먹다니!? 그 머리 하얀 개년한테는 두뇌 싸움으로도 못 이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생각해보니 열 받네? 감탄할 일이 아니지 쒸팔!? 으아아……끝까지! 내가 살던 제2의 고향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그 이후의 일까지 모조리 내 탓, 나 때문으로 생각하게 만들다니! 아직도 힘들어야 할 일이 수 없이 남아 있다고!? 슬프다 못해 실성할 거 같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아 있던 눈물과 슬픔을 닦은 채─표현은 멋진데 실제로는 그냥 눈 주위 닦은 거다. 개폼도 못 잡겠군─다음 할 일을 정했다.

“안즈.”

“으응.”

엄청 조심스럽군. 내가 무서워서 그렇다기보다는……어, 아니네. 무섭겠지. 혼자 울고 웃고 소리 치고 지랄하니까. 내 주변에는 미친놈만 가득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나도 그 ‘미친놈’에 들어가는 놈이군. 이렇게 된 게 주변 사람들 탓일까, 내 탓일까? 아마 둘 다일 거 같다.

“지금부터 마을 안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을 건데, 도와줄래?”

“사람이 있어……?”

“모르니까 찾는 거지. 만약 없다 치더라도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어. 사람을 찾으면서 물자(物資)도 챙기자. 우린 이동해야 해.”

이게 바로 내 결심이었다. 우선 프레그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성벽이 파괴됐는가, 죽은 사람이 있는가 등을 확인해야만 했다. 성벽이 파괴됐다면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지만 파괴의 흔적이 없으면 머리 하얀 개년이 의도적으로 괴물을 프레그넌트에 풀어놓았다는 게 되니까.

살아있는 사람이 있으면 구조, 죽은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위한 무덤 제작. 누구 한 명 못 찾는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한 물자를 찾아야만 했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집이나 물건을 뒤지는 건 좀 그랬지만……어차피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사람은 죽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무엇이든 간에 필요했다. 내가 이 마을을 위해 그렇게 노력해왔으니 폐허가 된 마을에서 물건 좀 몇 개 건진다고 날 욕할 사람은 없으리라.

다른 건 몰라도 죽은 사람만은 없기를 바라며 경비대 막사를 수색했다. 안즈한테 ‘도와줄래?’라고 물은 이유는……이제 와서 명령을 하고 싶지도 않고, 쟤가 듣지도 않을 거 같았으니까.

이유야 어찌 됐든 동족을 잃은 그녀와 가족을 잃은 나. 닮은꼴끼리 남았으니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지만 죽음으로 그 책임을 갚는 건 싫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은 보고 싶지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다시금 돌아온 제2의 고향, 프레그넌트를 떠나기 위해 마을을 둘러본다는……역설적(逆說的)인 상황에 살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7월이 됐는데도 있는 회사는 ‘야근이나 주말근무는 돈 때문에 못 시키니까 존나 열심히 일하세요 ^^’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습니다. 일을 보고 할 수 있으면 맡고 못 하겠다 싶으면 마감일을 좀 미루든가 해야 하는데 그딴 건 없고 ‘헤헤, 알겠습니다! 시간 내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라며 받아오기만 할 뿐.

그런 주제에 ‘야 이 노예 새끼들아! 열심히 일해라! 얼른 일해서 마감일까지 다 보내야 한단 말이다!’ 같은 소리나 지껄이다니. 회사가 아니라 알바 개념이라서 언제 그만둬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네요. 왜 이딴 연놈들이나 회사랑 연관이 깊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보랏빛날개님, 절망물로 쭉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단지 지금까지 호강하며 하반신을 여기저기 쑤셔댔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작가로서도, 읽는 독자분들로서도 납득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까놓고 말해, 진짜 100편 넘게 섹스만 해댔는 거밖에 기억에 안 남습니다. 작가인 저조차 말입니다.

자지의 맹세, 3P, 낙태빵, 공공장소에서 강간 및 아기 씨앗 주입, 마을 단위로 300명 정도랑 단체 섹스 등. 용케 이딴 걸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벤트에 분신까지 써가며 참여했던 세린입니다. 이제 와서 고생한다고 한들 진짜 불쌍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은 별로 없겠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꼰대식 사고방식은 없습니다만, 지금까지 즐겨왔던 것만큼의 고생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를 위해서도, 세린을 위해서도. 읽는 독자분들의 매너리점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zxc54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신화까지 읽으시느라 상당히 정신적으로 피곤하시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제가 쓴 거긴 하지만 워낙 미친놈 롤러코스터 타듯 이리저리 사건 전개가 일어나서……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업로드하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