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45화 (145/235)

00143 「15-2 : 왜 내 인생은 늘 이러냐……? (18)」 =========================

처참하군. 그게 내 감상이었다. 늠름한 근육과 용모를 자랑하며 출진했던 야만족 전사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다친 사람들과 몇 명의 멀쩡한 사람들뿐. 그녀들이 들으면 화낼 테니 직접 말을 못 하겠다만……그야말로 패잔병(敗殘兵)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이런 말을 직접 대놓고 했다간 그 날이 내 제삿날이 될 테니 차마 말은 못 했다만……그 자신만만하던 안즈부터 시작해 모두의 표정에는 그늘이 져있었다.

당연하겠지……. 지금까지 함께 밥 먹으며 생활하던 동료들이 모조리 죽어나갔는데 어떤 미친년이 웃겠냐? 나라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 새끼 미친 거 아냐? 동료가 죽었는데 웃음이 나오냐?’라고 생각하겠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부터 시작해 부하를 다루거나 하는 게임을 즐길 때마다 종종 ‘근데 게임 속에서 죽은 애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거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게임 속에서는 캐릭터가 아무리 많이 죽어도 상관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천 명이 넘는 하렘 어드벤처의 인구수로 볼 때 50명은 아주 많은 수는 아니다. 무시 못 할 숫자도 아니지만 2천에 비하면 뭐……그냥 미미하다 정도? 그런 ‘미미한 수준의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렇게 안타깝다니. 심지어 내 동족도 아닌데 말이다!

나를 납치한 안즈부터 시작해 야만족의 행위 자체를 모조리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왔건만 꼴을 보니 용서고 지랄이고 간에……얘들 여기 놔뒀다간 전멸하겠구나 싶었다. 보자마자 딱 그 느낌이 왔으니 패잔병이라는 말이 생각날 만도 했다.

이미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렸다만 이혼 신청은 안 했기에 ‘아직은’ 그녀들과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만……만약 파혼(破婚) 상태가 된 거라면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다. 버림받은 건 기분이 매우 슬프지만 내가 진짜 왕이나 임금이었다면 이런 슬픔에는 견딜 수가 없었을 테니까.

맨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구하지 못했던 여자. 그 여자가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걸 보며 나는 분노했었다. 현실 세상에서는 괴물의 존재 같은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용납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죽음조차 지금도 안타까워 죽겠는데 싸움이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으으……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내가 임금이나 왕? 지금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아내들한테 버림받은 순간부터 아마 그런 지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었겠지만, 설령 있다 치더라도 난 어울리는 인재가 아니었다. 이렇게 무력한 왕 봤냐?

그런 왕이 나라는 것도 웃겼고, 이딴 놈이 왕이다 임금이다 지껄이는 것도 병신 같았다. 그 부분만큼은 버림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을 압박하던 붕대는 그녀들의 발이나 다친 곳에 묶여져 있었고, 훈도시는 검붉은 피로 가득 얼룩져 있었다. 건강미 넘치던 야만족의 모습은 어느새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패잔병들의 모임이 되어 있었다. 내 일 아니라지만 이렇게 보니 끔찍하군. 정말 ‘끔찍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두 나와 안즈를 보며 불안해하고 있다. 괴물한테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못 한 것도 억울한데 이 숲을 떠나야 한다니 분해 죽을 지경이겠지. 헌데 이 방법 외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었기에 입 닥치고 따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떠나기 전에 확인할게. 이제 우리는 이 숲에서 나갈 거야. 오직 살아남아 나가는 것만 생각해. 전투는 나와 키리, 옆에 있는 세 명까지 합쳐 다섯 명. 거기에……내가 잡아왔던 세린도 참여할 거야.”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힘들고 슬픈 것도 모자라 나 같은 놈의 힘까지 빌려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그런 것들은 모두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목숨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목숨에 비하면 감정 따윈 사소한 것에 불과할 뿐이지. 지금처럼.

날 잡아 아기 씨앗을 마음껏 빼내던 그들이……나를 도구나 노예로만 여기던 야만족이 내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니. 어찌 보면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결국 끝까지 얘네들 좋은 일 시켜주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나야 살고 싶으니까 여기서 나가려는 거지만……그렇다고 ‘ㅋㅋㅋ 나 마법 쓸 수 있게 됨. 그럼……잘 있어라 병신들아! So long~Suckers!! 난 간다이~? 간다아아~!! 마이콜은……!! 아, 아니지. 신세린은……!! 프레그넌트의 땅으로……간드아아아아아아────!!’라며 혼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얘네들 내버려두고 혼자 갔다간 진짜 귀신 볼 거 같았으니까.

“숲에서 나간 후에 우리가 향하는 곳은……프레그넌트야. 우선 거기 가서 치료를 받은 후 마을 앞에 있는 숲에서 다시 터전을 만들자. 그 숲은 이미 괴물이 없으니 우리밖에 없어. 아마 지금 같이 힘든 일도 없을 거야…….”

힘겹게 말을 잇는 안즈의 말 속에는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도 들어 있었다. 그녀가 말한 ‘지금 같이 힘든 일’은 괴물과의 싸움부터 시작해 더 이상 동료를 잃은 슬픈 경험까지 포함한 거겠지. 나도 그녀들이 그런 힘든 일을 겪는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프레그넌트 앞에 있는 숲은 모두의 휴식처로 사용되는 곳이지만 지금, 무엇보다 그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바로 야만족이었다. 그녀들이 저지른 짓부터 시작해 생태, 행동 등을 감안한다면 마을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숲밖에 없었다.

포근하며 아늑할 뿐만 아니라 괴물의 위험도 없었기에 더 이상 배가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 말은 곧 그녀들이 아기의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했고, 그걸 생각하자 하반신이 불끈거렸다. 망할……어제 막 섹스를 끝냈을 뿐인데 이러다니. 내 몸도 어지간히 여자를 좋아하나 보군.

3시간 거리는 그냥 걸어가도 충분하다. 이미 현실 세상에서 행군까지 마쳤던 나한테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만족한테도 그건 같은 사항이었고. 단지 정말 불안한 거라면……별로 말하고 싶진 않다만. 응, 그래.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에 몇 명이나 숲을 살아나갈 수 있냐……라는 거겠지. 불길한 생각이었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친 사람부터 시작해 부축하는 사람까지 32명. 거기에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야만족은 겨우 다섯 명. 당장에라도 때려 치고 싶은 병력 상태였다.

모두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좀 심한 말이지만……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죽을 테고 우리는 그 사이에 재빨리 빠져나가야만 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싸운다고? 싸워서 이길 확신이 있으면 싸우겠지. 그치만……공격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다쳤다는 소리다.

팔이나 다리가 날아가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사람이 한 번 더 공격받으면?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치료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나부터 시작해 원래부터 마력이 적은 야만족한테 더 이상의 마력은 없을 터. 그런데 이미 죽을 거라 예상되는 동료를 위해 마력과 체력을 모두 써서 싸운다고? 장난 빠냐?

설마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누구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이 숲을 무사히 빠져나간다!’라는 시나리오를 상상한 건 아니겠지? 정반대다. 이건 그야말로 잔혹한 복불복 게임이었다.

누가 죽어도 절대 구해줄 수 없고 괴물이 가까이 오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살해당하는 복불복. 게임이라고 하니 내가 짐승 같아 보이겠지만……그 괴물놈들한테는 즐거운 게임이었다.

목표는 공격할 사람마저 변변찮은 야만족. 숫자는 물론 공격방법이나 공격의 질(質)마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그야말로 사냥꾼이 된 그놈들한테 있어서 우리를 잡는 건 일종의 즐거운 게임일 것이다. 나까지 포함됐을 테니 인간의 존엄성이 순식간에 폴리곤 쪼가리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안즈의 명령에 따라 일렬로 만들어진 줄이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나와 안즈, 키리. 줄 끝에는 세 명의 야만족이 감시 겸 후방 견제를 맡고 있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 필요한 물품을 챙긴다고는 했지만 실상 챙긴 건 붕대나 피를 닦을 수 있는 천조각. 그리고 음식 같은 것들뿐이었다. 소중한 것은 추억과 긍지로 충분한 거겠지.

걸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고통과 공포에 다친 야만족들이 신음을 뱉었지만……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무섭고 힘든데 그것마저 참으라니. 그런 잔혹한 짓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다쳤는데 아프다고 해야지. 그럼……웃냐? 아프니까 청춘이냐? 개소리죠 시팔!

“으읏……!!”

어떻게든 비명을 삼킨 키리. 그녀와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청록색의 괴물이었다. 이런 씨발……! 직접 보니 끔찍하군. 청록색의 몸은 프레그넌트의 숲에서 봤던 초록색보다 훨씬 더 비인간성을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등짝에 있는 긴 촉수는 척 보기에도 초록색 괴물보다 강하고 길어보였다. 다리 사이에 있는 촉수는 파란색 촉수 괴물이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욱 더 크고 날카로웠다. 우라질! 보기만 했는데 벌써부터 견적이 나왔다. 잡히면 진짜 죽는다……!!

“간다!”

전투에 들어가자 더 이상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안즈는 키리와 함께 뛰쳐나갔고 나는 서둘러 그녀들을 따라갔다. 강화 마법을 비롯해 모든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지금, 믿을 것은 코스튬과 무기뿐이었으니까.

오랜만의 전투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는 오랜만이군. 그치만……예전과 달리 나는 더 이상 마법을 마음껏 쓸 수 없었다.

42,500의 마력은 3,000이라는 초라한 수치가 되어버렸고 쓸 수 있는 마법은 모조리 소멸해버렸다. 무기? 맨 처음 얻은 M16A1과 후에 얻은 K2 자동소총. 이 두 개 정도?

배가 능력을 쓰고 있는 안즈와 키리는 실로 놀라운 전투 방법을 보여줬다. 중력과 가속력, 무식한 힘을 이용해 힘껏 놈의 등을 찍어댔다. 촉수가 가득한 등짝에 안즈의 킥이 들어가니 종이 쪼가리처럼 투툭하며 촉수가 끊겨 나갔다. 괴로워하며 촉수를 휘둘렀지만 안즈는 이미 그곳을 벗어난 상태다.

침착하게 조준 후 총을 쏜다. 오랜만에 쓰는 총이었지만 살상력은 여전했다. 맞을 때마다 짧은 괴성을 질러대며 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무 뒤에 모습을 감춘 채 쏘고 있으니 찾기 어렵겠지. 총알의 궤도를 읽는 것도 어려울 테고.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던 놈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입에서 무언가가 급속히 빛나는 걸 본 순간 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거다……!! 저게 바로 안즈가 말했던 놈들의 ‘마법’! 수많은 야만족들을 단숨에 시체로 만들어버린 힘……!!

“으헉!”

내가 있는 주위로 그 빛이 쏟아지기 직전. 난 얼른 숨어 있던 나무를 벗어났다. 벗어나서 다시 달린 곳 또한 나무가 울창한 곳이었기에 다시금 저격 포인트를 잡아야 했지만……내 눈은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자리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깨끗하게 타버렸다. 마치 과자가 부서지지 않도록 과자 중간을 살짝 파먹은 것처럼……깨끗하게 타버린 나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검게 탄 자국이 눈에 띠었다. 미쳤군……이딴 걸 맞았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지! 경악과 분노가 내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저놈들의 아가리에서 나오는 건 역시 레이저 같았다. 으음……정확히는 ‘빔 병기에 가까운 광학병기(光學兵器 ; optical weapons)’라고 해야 할까. 레이저로 사람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흔히 무언가를 가리킬 때 쓰는 레이저 포인터로 인체를 태울 수는 없잖아.

빔 병기가 유명한 것은 서양에서는 스타워즈나 SF 시리즈. 동양에서는 주로 일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를 비롯해 로봇이나 SF 시리즈를 통해 알려졌다.

스타워즈에서는 누구나 아는 ‘라이트 세이버’를 도입함으로써 시각적 효과까지 멋지게 보여줬다. 이 라이트 세이버 덕분에 빔 사벨 혹은 빔 세이버 등의 개념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만든 건담 시리즈에서 나온 빔 병기는 주로 빔 사벨, 빔 라이플 등이었다. 작품과 세계관이 넓어짐에 따라 빔 발칸, 빔 나기나타 등이 나타났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실탄 무장보다 훨씬 더 강하고 보관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저 괴물의 아가리에서 나온 것은 굳이 정의내리자면……빔 병기를 아주 짧게 내뿜는다 해야 할까. 빔을 쏘기 위해서는 아가리에서 빛이 날 정도로 차지(Charge) 시간이 필요했고, 그 위력은 놀라웠지만 범위는 아주 넓지 않았다. 야만족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는 빔 병기와 같은 무기나 지식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겠지.

그 증거로……키리와 안즈는 놈의 입을 주의하며 싸우고 있었다. 빛이 날 때마다 최대한 괴물의 배후를 잡았고, 나는 그런 그녀들이 맞지 않도록 조심해서 총을 쐈다. 부들부들 떨던 괴물은 결국 더러운 단말마와 함께 무릎을 꿇어버렸고 안즈와 키리는 확인 사살 겸 마무리 공격을 넣으며 승리를 획득했다.

전투에 걸린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심각하군……겨우 한 마리 처리하는데 5분이라고? 두 마리 이상 나타나면 2:2가 아니라 [1:1 x 2]가 된다.

나는 누군가한테 가세(加勢)해 싸워야 하므로 누군가는 반드시 1:1의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3:1이라서 그나마 누구 하나 다치는 일 없이 이렇게 이겼는데 두 마리 이상이라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승리의 여운을 맛보는 것도 아주 잠시간이었다. 우리가 마을에서 나온 것을 눈치 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죽은 동료의 단말마는 확실히 들었을 거 같았다. 이럴 때는 죽은 동료마저 이용하는 건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죽더라도 괴물이 남긴 비명과 단말마를 들은 괴물들은 ‘앗, 저기에 먹잇감이 있구나!’라고 느낄 테니까.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라 생각했다만 실제로 인간도 아니었기에 뭐라 할 적절한 욕이 없었다. 또한 내가 그들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나 또한 현재 인원들 중 다친 사람 혹은 부축하는 사람이 죽으면 내버려두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이유와 입장이 다르다지만 자기는 괴물과 다르다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이용해 살아남으려는 자세와 마음, 정신 상태.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가끔은 내가 사람 탈만 뒤집어 쓴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는 했다.

물론 나는 엄연한 사람이다. 괴물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나름 열심히 살아왔으며 촉수나 마법 따위는 가지고 있지도, 쓸 수도 없었던 평범한 인간. 결코 괴물일 리가 없는 생명체였다. 나 자신이 그걸 인지하고 있기에 괴물과 똑같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가끔씩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기도 했다.

……이런. 지금은 이런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괴물이든 짐승이든 간에 내 목숨이 소중한 건 아니까. 부상자를 업은 야만족들의 발걸음은 처음 때보다 더 빨라져 있었다. 괴물을 쓰러뜨렸으니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그녀들을 빨리 걷게 만든 거겠지. 아니면……괴물이 따라오고 있다는 공포감일 수도 있고.

어찌 됐든 빠르게 걷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나도 이 지옥 같은 숲에서 오래 있을 생각은 없거든. 뭐? 얘들이 숲을 나온 후에도 추격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건 그때 일이다.

원래라면 ‘안 돼……! 이런 괴물들이 숲에서 나갔다간 모두가 위험에 빠질 거야! 난 목숨을 걸고 이놈들을 막아야 해!’와 같은……주인공이나 내뱉을 법한 대사를 쳐야겠지.

그렇지만 나는 달랐다. 어,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저런 놈들이 밖에까지 나올 경우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프레그넌트에 올 거라고. 그런 걸 생각했을 때는 끔찍하기도 했지. 근데 있잖아. 뭐 중요한 거 잊고 있지 않냐?

그래. 저 괴물들이 우리를 다 죽인 후에 절대 이 숲에서 나가지 않을 거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우리를 다 죽인다면 먹잇감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다. 쟤들이 풀을 뜯어먹고 살 리는 없으니 사냥감을 찾으러 다닐 테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프레그넌트가 놈들의 침공 첫 빠따를 맞게 되겠지.

대한민국도 그랬다만 무슨 일이든 간에 시범타는 안 맞는 게 낫다. 힘을 가득 넣은 풀 스윙으로 처맞는데 누가 기뻐하겠는가? 고통을 기뻐하는 매저키스트라면 또 모를까 나는 아니었다. 이 애들도 아니고.

바깥 사람들한테 이 사태를 알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의 빔 공격 같은 걸 맞았다간……으윽!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온다!

내가 괴물의 빔 공격을 피한 것은 미리 들어둔 덕도 있었지만 반쯤은 운 덕분이었다. 놈들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아가리에서 빛이 난 걸 볼 수 있었고, 그걸 보자마자 ‘앗, 안즈한테 들었던 그거다!’라고 생각했었지. 재빨리 튄 덕분에 안 맞았다만……그런 걸 모르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맞을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일단 확인은 해봐야겠지만……날 버린 아내들한테 이 사실을 전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리 날 버렸다지만 저 괴물들한테 무참히 살해당하는 건 더 싫었으니까.

하아……또 한숨 나온다. 왜 나는 날 버린 아내들 걱정까지 해야 하는 걸까? 당장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주제에. 이런다고 아내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거 같은데.

“뒤, 뒤에서 오고 있어!”

시발, 거 봐라. 내 걱정만 해도 모자라다니까? 뒤에서 온다는 소리에 점점 더 후속 그룹의 속도가 빨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뒤로 가고 싶었지만 내가 빠지면 안즈와 키리, 두 명만이 앞에 남게 된다.

총과 투영마술. 모두 다 마법이긴 하지만 위력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탄알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총은 그야말로 현실에서 쓰던 소총과 같은 성능이었기에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마법내성? 마법내성이 있다고 해서 물리적인 충격까지 완전히 막는 건 아니었다. 마법 복사로 얻은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건 아쉽지만, 이런 숲에서 쓰는 강력한 마법은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괜히 흙먼지 등의 사고가 일어나면 아군이 위험해지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수수하게 총을 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예전 ‘시라누이 마이’의 코스튬과 비슷했다. 괜히 화염 계열 마법을 썼다가 숲이 불타버리면 도망가는 것도, 싸우는 것도. 모두 다 힘들어진다.

강력한 마법을 익혀도 쓸 수 없다는 게 짜증을 유발하지만 더 짜증나는 건……쟤들은 그런 걱정 없이 마음껏. 아주 발정난 개처럼 마법이고 뭐고 다 쓴다는 사실이다. 쟤들은 숲이나 다른 괴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자기들 꼴리는 대로 공격하고, 숲을 부수고. 아마 여기가 타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거다. 그에 비해 얘들은 지금은 비록 나가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숲이었기에 함부로 훼손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만 우리한테 주어지는 걸 보니 역시 머리 하얀 미친년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흐, 억!”

바로 뒤에서 들린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우욱……!!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부상자를 부축하던 야만족. 그녀한테 업혀 있던 부상자. 모두 다 신체의 일부가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B급 영화의 싸구려 CG처럼 없어진 신체는 자리에 풀썩 쓰러졌고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아아아악! 모두! 엎드려! 최대한 자세를 낮춰! 절대 맞으면 안 돼애에에엣!!!”

안즈가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무리한 주문을 요구했지만 불평을 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쓰러진 동료를 안타깝게 보던 이들은 그 고함에 곧바로 자세를 낮추었고, 얼마 안 가 빔 공격에 맞은 나무 조각이 이리 저리 튀는 광경이 펼쳐졌다.

우라질 새끼들! 텔레포트를 쓰지 못하게 됐다면 하다못해 비행 같은 거라도 쓸 수 있어야 했는데! 얄짤 없이 아무런 마법도 쓸 수 없게 된 나는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엎드린 채 공격이 멎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공격이 멎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체 일부가 사라져 더 이상 누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 시체를 아주 잠깐 본 후 달리는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앗, 피해!”

키리가 외쳤지만……늦었다!! 갑자기 앞에서 날아온 빛에 안즈가 간신히 몸을 틀었다만……잊어서는 안 된다. 빛은 일반적으로는 사방(四方)으로 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레이저 등의 도구를 통해 직진하는 빛은……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안즈가 피한 빛은 그대로 뒤에 있던 사람한테 직격했고 얼굴 일부와 어깨가 도려 지는……끔찍한 그로테스크 쇼가 내 앞에서 펼쳐졌다. 점심 때 먹은 빵과 스프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토할 수가 없었다. 토하다가 뒤에서 공격 맞고 뒤질 수도 있었으니까!

벌써 네 명이다! 저 새끼들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뻥뻥 쏘고 있겠지만 이렇게 잘 명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건……이건 너무하잖아! 아내들한테 버림받은 것도 슬펐지만 내 눈앞에서 다시금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다니! 그것도……이렇게 잔인하게! 이렇게 슬프게 죽다니! 어떻게 이런 짓을……!!

“저 씨발 개새끼아아아앗! 키리, 세린! 저 새끼를 죽이자! 빨리!”

슬픔을 맛볼 여유조차 없었다. 이미 네 명이나 동료를 잃었고 앞에서 날아온 공격을 통해 적이 저 앞에 있다는 걸 깨달은 이상 주저할 시간은 없다. 죽은 두 명한테 애도를 표하며 달려나갔다. 흐느적대는 촉수를 보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안즈와 키리는 나와 정반대였다. 이미 소중한 동료를 잃은 그녀들한테 있어 중요한 것은 죽은 동료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저 괴물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살려두면 더욱 더 동족을 죽일 테고, 이놈을 못 죽이면 앞으로 갈 수가 없으니까.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전진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멍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조준해 총을 쏠 때마다 놈의 몸은 움찔거렸고, 자세가 무너진 괴물의 촉수를 멋지게 잡아 찢으며 싸움의 우위(優位)를 점한다.

“죽어어어어엇!”

카득!

통쾌한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키리의 정권 찌르기가 놈의 등을 관통해 흙이 있는 땅까지 확실히 닿았다! 아아, 이 얼마나 통쾌한 복수란 말인가?

몸이 뚫리자 괴물은 비명조차 못 지른 채 꺽꺽 대다 죽어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간 야만족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정말 합당한 죽음이었다.

“잘 했어, 키리! 정말 끝내줬어!”

나도 모르게 그녀를 칭찬했고 키리는 복수를 갚은 게 만족스러웠던지 웃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흙투성이가 된 뺨에 물줄기가 흘러간 흔적을 보니 안 보이게 울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 칭찬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헤헤……당연하지. 이걸로 그 애들도──억”

말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죽은 아이들의 복수를 갚아줬으니 그 애들도 마음 편히 세상을 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겠지. 내가 그녀의 말을 대신 이어야 하는 이유는……모르는 게 나았을 텐데. 차라리 볼 수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느새 날아온 빛에 목 부분까지 깨끗하게 없어진 키리는 더 이상 키리가 아니었다. 아무 말도 못하게 된 시체에서는 분수 같이 피가 흘러 넘쳤으며, 나와 안즈는 미동(微動)도 할 수 없었다. 나랑 친하지는 않았지만 동족을 위해 달려 나가 싸웠던 키리는……목이 날아가 죽어버렸다.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미래가 더욱 더 처참하게.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리는 종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동료가 죽었다고 웃는 놈도 미친놈이지만 자기 민족 잡는다는데 활기 넘치게 행동하는 놈도 미친놈이죠. 명색이 자기 민족인데 사냥이나 토벌한다고 ‘요오시, 토바츠다!’라며 좋아하는 놈.

누구냐고요? 에이, 다들 왜 이러세요? 박정희라는 이름의 다카기 마사오 씨. 대국적인 정치도 못했고 민족을 위해 일하지도 않았던 독재자잖아요. 일본인조차 ‘자기 민족 토벌한다는데 저 새끼 미친 거 아님?’이라며 혀를 내두른 놈입니다.

예?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자 경제대국으로 만든 사람이라고요? 미국이 만들었던 경제 활성화 플랜을 실행한 거뿐이고 그 와중에 동료 팔아 살아남은 사실까지 알려져 ‘스네이크 박’이라 불렸습니다. 이게 무슨 대통령입니까? 독재자 새끼지.

그 더러운 놈의 정액으로 이루어진 년 아니랄까봐 박근혜도 멋지게 한 자리 해먹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대한민국 역사상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사건이었죠. 이상한 직장에 다니고는 있습니다만 이런 삶이라도 촛불시위에 참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적어도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긴 했으니 말입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새누리당 이 부역자 매국노 새끼들은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네요. 안 되겠다 싶으니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융합 해제를 하다니. 이딴 새끼들은 융합소재로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장 제물소환용 제물로 써도 모자랄 판국에 자기들 옳다며 발목만 잡는 꼬라지라니……. 이 새끼들 진짜 무슨 생각일까요?

앞으로 1년 정도 남은 걸로 아는데 얘네들 과연 공천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기대됩니다. 자유한국당은 주제도 모르고 5행시 이벤트했다가 개털렸고, 바른정당은 비박계열이라며 막 날뛰는데…….

아니 씨발 병신들아, 사과를 하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하란 말이다.

너희 진짜 다들 좆병신이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인물이자 공범에 속하는 너희가 어떻게 새누리당에서 융합해제를 써서 살아 남냐? 양심이란 게 있냐? 뇌를 허전해서 들고 다니는 거 맞지?

비선실세 스캔들에서 챙길 거 다 챙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가던 놈들이 위험하다 싶으니 탈당해서 다른 당 세우고. 아가리 닥치고 조용히 살아가도 모자랄 판국에 국정안 결정에 발목이나 잡고 앉아있고. 그런 주제에 현 여당과 정부는 존나 까면서 자기들 했던 비선실세 스캔들은 반성도 안 하지?

너희 진짜 병신이냐? 어떻게 그딴 짓을 하면서 정계에 남으려 하냐?

아, 알아 시발. 좋다고 자유한국당 밀어주는 얼간이 꼰대들이 많은 거. 근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너희 하늘이 안 무섭냐? 사후세계가 없다고 생각해? 죽은 후에 천국가서 합삐합삐☆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존나 신기한 놈들일세.

코디미언 이주일 씨가 왜 ‘여기(정치계)에는 나보다 더 코미디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했는지 알 거 같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병신이다. 자기들이 뭘 잘 했는지는 존나 뻐기면서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 인정 안 해.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 자체도 안 하고.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성하고 뒤도 돌아봐야 하는데……새누리당 이 시발놈들은 그 반성과 회고를 자기들 천하 찾으려는 데에만 쓰려 한다. 정말 신기하다.

단언컨대 내가 지옥 간다면 얘네들은 나보다 훨씬 더 지하에 있는 지옥에 떨어질 거다. 카이지로 말하자면 [제애]의 지하시설 최하층. 옛날 말로 하자면 난 가벼운 지옥, 새누리당은 무간지옥.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면서 국민들을 자기 발밑에 두려는 새끼들이 많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선진국? 당장 좆 자르고 벽에 힘껏 문때면서(틀린 말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자살해라. 그게 나라에 피해를 끼친 너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다.

문재인 아들 특혜건도 조작으로 밝혀졌는데 이 와중에도 ‘테? 그렇게 말한 건 일부 당원뿐인 테치! 국민의당은 아무런 죄도 없는 테챠아아아!’하는 병신들 많다. 보면 볼수록 좌절스럽고 절망스럽다. 스스로 개돼지 노예가 되려 하는 놈들이 한국에 이렇게 많다니? 내가 왜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결론?

나도 좆병신이지만 날 능가하는 좆병신들은 많이 있다.

물론 난 그들을 능가할 생각도, 따라갈 생각도 없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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