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15-1 : 왜 내 인생은 늘 이러냐……? (17)」 =========================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의 차이점이 뭘까? 온라인 게임은 말 그대로 온라인.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딱히 게임 콘솔을 살 필요도 없고 온라인 게임을 설치해 모두와 함께 즐기면 된다. 컴퓨터로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 확장성 또한 좋다.
그에 비해 콘솔이나 보드 게임을 비롯한 패키지 게임은 사람들과 모이거나 혼자 즐겨야 했다. 콘솔과 좀 다르지만 보드 게임의 경우 여러 사람과 즐겨야 했기에 이 부분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콘솔 게임도 하나의 게임 카트리지나 콘솔을 가지고 함께 즐기는 거니 아주 다르다고는 말을 못 하겠군.
콘솔은 하나의 콘솔에 두세 개의 컨트롤러를 연결하거나 해서 하나의 게임을 같이 즐기는 것이었다. 내 시절 때는 패미컴이나 슈퍼 패미컴, PS나 PS2였지만 최근에는 PS3, PS4, XBOX 등 다양한 게임 콘솔이 있기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러한 게임들은 함께 즐기기 위해 컨트롤러 혹은 사람이 함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최근 콘솔 게임도 온라인 모드가 도입되어 함께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온라인 게임만큼의 속도와 쾌적함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콘솔에 연결하는 인터넷 망의 속도가 아주 우수하지 않으면 모두 다 느려지는 때도 있었으니까.
콘솔 게임은 단순히 콘솔만을 망라(網羅)하는 말은 아니었다. 컴퓨터로 하는 싱글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 또한 콘솔 게임에 들어갔으며─이렇게 컴퓨터로 하는 싱글 게임에도 온라인 모드가 있고는 했지만 세세한 것은 넘어가자─, 이러한 게임들은 온라인 게임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즐기기 어려웠다.
싱글 게임 중에서도 온라인을 지원하는 것들이 있긴 했지만 실제 ‘온라인 게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작된 게임들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의 인원과 동시에 게임을 하는 정도’였기에 온라인 게임으로 취급하기에는 좀 그랬다. 나야 뭐 온라인 게임보다는 콘솔 게임을 주로 하니까 상관없지만.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서버 점검 등의 문제였다. 게임을 서비스하는 운영진 측에서 서버 점검 등을 목적으로 게임을 닫아버리면 아예 게임 자체를 즐길 수가 없었다.
게임 재개 시간을 알려주고는 했지만 그 시간이 제대로 들어맞은 적은 별로 없었다. 1~2시간 추가되는 건 예삿일이었지. 심하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게임 접속조차 못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핫……옛날에는 온라인 게임 지인~짜 재미있게 했었지. 지금은 왜 안 하냐고? 인생이 온라인 게임 하드 모드인데 미쳤다고 합니까?
서버가 닫힌 게임에는 아예 접속조차 못했고, 혹시나 게임이 재개되더라도 업데이트로 인한 문제나 버그 등이 발생해버리면 원활한 게임 진행이 불가능했다. 온라인 게임은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그만큼 불편한 것도 많았다.
이에 비해 패키지나 콘솔 게임은 그 게임을 사기만 하면 땡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새벽 등. 온갖 시간대에 관계없이 게임기에 전원만 넣으면 끝! 언제든지 자신이 산 게임을 플레이할 수가 있었다.
서버 점검?
업데이트?
뭔가요 그건?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쿰척쿰척!?
아, 물론 무료 업데이트 등을 제공해주는 PS3~PS4 & XBOX 게임이 있기는 했다만……난 거기까지 최신 콘솔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중고 PS2는 렌즈에 이상이 있기는 했지만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두면 어떻게든 진행이 가능한 기종이었거든. 졸업하며 그것도 팔아버리기는 했지만……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다.
콘솔뿐만 아니라 패키지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라는 병신 짓거리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싱글 게임도 수두룩했다. 이런 게임에 서버 점검 같은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기에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갑자기 왜 게임 이야기를 꺼내냐고 묻는다면……내가 가진 코스튬이 패키지 게임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사랑과 신뢰의 반지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나는 마력회복 및 마력의 최대치 상승이라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게 됐다.
더 이상 아내들이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아내들한테 버림받았다는 슬픈 현실까지. 통수도 이런 통수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슬퍼했다만……슬퍼한다고 내가 초사이어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더 이상 백업을 받지 못하는 반지를 보니 문득 온라인 게임의 서버 점검이 떠올랐다. 어쩌면 서비스가 아예 종료된 게임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간에 ‘쓸모없다’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했다.
으음, 지금은 종료된 [SD건담 캡슐파이터]도 재미있게 했었는데. 아리오스 건담 좀 좋게 만들어라, 빌어먹을 소프트맥스 놈들아! 난 창세기전 4 안 한다고!
서버가 닫히거나 서비스가 종료된다면 더 이상 그 게임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게 된다. 접속조차 할 수 없는 온라인 게임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온라인 게임은 많지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게임들 또한 수없이 많았고, 그만큼 게임 업계는 치열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배틀 코스튬은 그야말로 콘솔 혹은 패키지 게임이었다. 한 번 사놓으면 그걸로 끝. 내가 팔거나 하지 않는 이상 무한히 쓸 수 있었으며, 사랑과 신뢰의 반지를 효력을 받지 못해도 마력만 있으면 바로 바로 사용이 가능했다. 실로 편하기 짝이 없었다.
온라인은 편하지만 온라인 게임과 마찬가지로 서버……음. 이 경우에는 이용할 수 있는 랜선이나 무선망이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인터넷조차 할 수 없게 되고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컴퓨터는 뭐……문서작업용으로는 쓸 수 있겠지. 패키지나 싱글 게임도 가능할 테고.
코스튬뿐만 아니라 굳이 어딘가에 연결할 필요 없이 바로바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난 좋아했다. 돈을 주고 사기만 하면 그때부터 소유권은 내 것이 되며,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신경 쓸 것 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인터넷과 온라인은 편하지만 그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어딘가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했다.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그러한 환경에 들어갈 수 없는 때도 나오게 되고, 나는 늘 그런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 그런 생각이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 현실로 다가오게 될 줄이야.
실용적인 생각이 맞아떨어져서 기쁜 것도 아주 잠시간뿐이다. 실용적이지 못하더라도 아내들과의 사랑과 신뢰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런 코스튬보다 그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사랑이……이제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좋았었는데. 그게 이토록 무참하게 부서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사랑과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다름 아닌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6개월 전쯤에 이곳에 소환됐을 때를 기억해낸다. 처음으로 만났던 혜린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사랑이나 신뢰를 가지지는 못했다. 심지어 프레그넌트에 들어온 후에도 말이다.
내 목숨을 이용하려는 그녀였다만 이전에 미리 걸어둔 ‘자지의 맹세’ 덕분에 그녀를 강간할 수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결혼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강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랫도리가 달아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과 신뢰는 점차 다른 아내들을 만나며 강해졌고, 이곳에 납치되기 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난 그것이 계속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버림받거나 끊어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안 했었다. 헌데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한 번 끊어진 사랑과 신뢰는 게임 서버와 달랐다. 부활하는 일도 없었고 다시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오죽 좋았겠냐마는……현실은 내 생각 이상으로 냉정했기에 미련을 가져봤자 소용이 없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과 신뢰는 앞서 말한 게임 같은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만……그 어떤 것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온라인 게임 따위와는 비교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아니, 비교할 대상이 있는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정도로 행복한 것들이었다. 하아……사람 앞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딱 들어맞는 순간이군.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겠지. 저 말에는 유래가 있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길어지면 독자만 귀찮으니까.
쉽게 말해……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다. 늘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내들한테서 버림받은 지금. 그녀들을 그리워하다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단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후에 프레그넌트로 갈 생각이다.
날 버린 그녀들한테 찾아가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뻐할지, 울지 슬퍼할지 모르겠다. 대놓고 왜 죽은 새끼가 찾아왔냐고 물으면 진짜 멘탈 박살날 거 같다. 으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안즈는 밖에 있는 인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겠지.
내가 그녀들과 함께 이곳을 나간다지만 야만족을 내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뭐라고 해야 하지? 왜 있잖아. 지금까지 싸우던 적과 잠시 휴전 혹은 동맹을 맺어 함께 싸우는 장면. 그럴 때는 지금까지 싸우던 라이벌이 든든한 아군이 되고는 하지. 그런 이벤트, 나는 좋아한다. 남자의 로망이라고 해야 하나?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 어느 매체든 간에 주인공이 있으면 거기에 대적하는 자가 나온다. 그 대적하는 자의 이름은 ‘라이벌’.
뭐? 이름이 아니라고? 에이, 뭐 어때? 손오공의 라이벌은 베지터지만 주인공의 라이벌을 ‘대적하는 자’라고 이름 지으면 좀 그렇잖아? 사소한 건 넘어가자.
주인공과 대립하는 라이벌은 주인공을 압도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이라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두 명의 등장인물이 의외의 사태(제3의 적 출현 혹은 생각지 못한 사건 발생으로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함) 때문에 함께 힘을 합치게 되다니! 멋진 이벤트이지 않은가!?
서로 죽일 듯이 싸워대던 두 명이 힘을 합친다는 건 그만큼 전투력이 상승한다는 뜻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으로써 서로간의 고민.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누며 서로간의 마음을 알게 된다. 뭐어……이런 루트 타다가 나중에 아군이 되고는 하지만. 난 이런 이벤트를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이벤트를 클리셰라고도 한다. 흔하디 흔한 클리셰지만 이런 클리셰를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캐릭터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작가가 가진 재능을 엿볼 수 있지. 악당한테 잡힌 여주인공을 구하는 남자 주인공과 같은 이치다.
3류 영화에서는 적이 미사일을 쏘든 따발총을 쏘든 다 피하며 모조리 작살을 낸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슷하지만 너무 말도 안 되는 장면들. 주인공은 쏘는 족족 다 맞히는데 적은 2천발 이상 쏘면서 단 한 발도 주인공을 스치지 못하는 어이없는 장면이 나오면 즐거움보다는 황당함이 느껴지니까.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오더라도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최근 영화에서는 무의미한 살생 등이 나오지 않도록 조절을 해둔 것도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앗, 주인공과 라이벌이 힘을 합치는 클리셰를 말하니 오해받을까봐 미리 말해둔다만……BL 아니라고! 난 남자놈한테 관심 없다고! 이 세상의 남자는 나만으로 충분했다. 설마 나 이외의 남자가 있겠어……?
게다가 또 말해두고 싶은 건……난 야만족과 함께 이곳에서 나갈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처한 모든 불합리한 상황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 모두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바로 그 머리 하얀 미친년이지. 그년 덕분에 내 아내들은 조종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생각을 안 하면 미칠 거 같으니까. 자의(自意)로 14명이나 되는 아내가 날 동시에 버리다니. 그게 더 오싹하잖아. 무슨 납량특집이냐?
괴물도 그렇다만 그녀들이 날 납치한 것도 백발의 미친년이 해놓은 짓이겠지. 그년이 가장 나쁜 년이고 모든 일의 원흉이긴 했다만……그렇다고 얘들의 잘못이 아주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들이 완전히 조종을 받고 있다면 그 낌새를 눈치 챌 수 있었을 테니까. 조종 받고 있는……꼭두각시 특유의 기운을.
그런 것을 감안했을 때 이들이 나를 데려온 것은 거의 100% 그녀들의 의지였다. 그 머리 하얀 미친년은 힘들고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을 만든다만, 아예 모든 걸 조종하지는 않았다. 성격 고약한 사람이 자주 그러고는 하는데 역시나 성격 나쁜 사람 아니랄까봐 이런 힘든 현실만을 강요해댔다.
상황을 만든 건 그 여자지만 그렇다고 야만족이 한 짓, 안즈의 납치를 완전히 긍정하고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 덕분에 내가 이 상황에 처했으니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 그녀들한테는 책임이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말이다.
이곳에서 나가 프레그넌트로 가서 아내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나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린 게 갑자기 없어져서 그런 거라면 이들한테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안즈는 내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눈치 챘을 것이다. 나를 구해주러 오는 아내들은 없다. 나는 아내들한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그것과 동시에 텔레포트를 쓸 수 없게 된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마력과 마법을 지울 수 있냐며 물었을 때 이미 눈치 깠겠지.
다친 사람부터 시작해 모든 야만족을 데리고 프레그넌트 앞의 숲으로 텔레포트를 할 생각이었다만,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마법이 소멸한 지금……그런 기적은 더 이상 생각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었다.
마법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행할 수 없다면 답은? 튼튼한 두 다리 11호로 걸어 나가야지. 요즘 시대에 아날로그 쓰는 사람 무시하냐? 내가 아재(아저씨)라고 무시해? 나 아직 27이거든? 그렇게 안 늙었거든요?
실시간으로 슈퍼그랑죠, 사이버 포뮬러, 천사소녀 네티, 소년기사 라무, 은하철도 999, 다간X, 가오가이거, 슬램덩크, 쥬라기 월드컵 등 온갖 걸 다 봤으니 아재 아니거든……이 아니네? 지금 와서는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았다. 으음, 내가 아재가 되다니. 좀 놀랍군.
하아……. 한숨이 나왔다. 아재가 되면 뭐하냐? 보통 아저씨라는 말은 나이가 많이 든 남자. 혹은 결혼을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열 네 명의 아내가 있으면 뭐하냐? 사실상 버림받은 놈이 됐는데.
토사구팽당할 만해서 버림받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내가 그녀들을 위해 한 게 얼마나 많은데……이렇게 버려버리다니.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진 않죠? 믿든 말든 현실은 잔혹하게 사실만을 강요하죠?’
역시 독자다! 내가 얼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으면 독자가 이런 말을 할까?
하핫, 독자와 작가, 주인공이 하나가 되는 경지!
물아일체(物我一體)!
안빈낙도(安貧樂道)!
호접지몽(胡蝶之夢)!
하이퍼 섹스! 하하핫!
……하이퍼 섹스는 또 뭔데 시발!? 너무나 어이가 없었기에 난 결국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대체 하이퍼 섹스가 뭐냐고? 하이퍼가 있으니 그거보다 낮은 슈퍼(Super)가 있을 테고. 그럼……그거냐?
초사이어인에서 초사이어인 2가 되듯이 [섹스→슈퍼 섹스→하이퍼 섹스→메가 섹스→기가 섹스→울트라 섹스→얼티밋 섹스]의 진화라도 거치는 거냐? 포켓몬이냐? 아니면 디지몬? 어이쿠, 시발! 신세린 이 미친 새끼는 끝까지 혼자 웃고 노는 미친놈이었어!
정말 오랜만에 빵 터지게 웃었다. 생각 이상으로 웃겼기에 누가 들으면 ‘저 새끼 미쳤나……왜 이런 때 웃고 지랄이야?’라고 욕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막 웃어댔지.
하하……그래도 이렇게 웃으니 기분은 좀 나아졌다. 지금부터 탈출하기 위해 없는 능력 있는 노력 모조리 다 쏟아 부어야 할 텐데 이렇게라도 마음을 좀 즐겁게 해놔야지.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을 쉬며 잔머리 스위치에 ON을 넣었다. 잔머리. 너도 도와라. 내가 죽으면 뇌, 심장을 포함해 모든 생명 기능이 정지할 텐데……잔머리. 니가 제일 짱구를 굴려야 하는 거 알지?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내가 내 뇌한테 말을 걸다니. 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군. 이왕 이렇게 된 거 좆한테도 ‘내 아들아! 세린 주니어! 오늘 기분은 어떠니?’하고 물어볼까? 내 좆은 아마 ‘시발, 제가 좆이니 좆같죠! 아버님도 기분 좆같죠?’라고 할 거 같다. 미친놈이 두 명이나 있을 필요는 없지. 얌전하게 있자.
“……나 왔어.”
키리와 함께 들어온 안즈는 나갈 때와는 꽤 달라져 있었다. 부상병의 숫자부터 시작해 앞으로 이루어질 탈출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다. 음, 좋은 생각이야.
키리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매우 마음에 안 드는 거 같았다. 으음, 건방지군. 왜 저러는지는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건방지군.
“벌레 씹어 먹었냐? 왜 표정이 그래?”
“너……제 정신이야? 대체 안즈를 어떻게 꼬드겼길래 얘가 숲을 빠져나가자는 헛소리를 지껄이게 만든 거야!? 엉!?”
으음. 역시. 숲을 나가는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안즈한테는 다 같이 죽자며 협박을 했지만 당시 없었던 키리는 우리가 얼마나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었는지 잘 알지 못하겠지. 심도만 깊었겠냐? 소리도 고래고래 질렀는데. 토론이 아니라 미친놈, 미친년들의 대화장이라고 해야겠지.
“나가자고 제안한 건 나지만 받아들인 건 안즈다. 넌 안즈랑 함께 동족들을 이끌어야 하잖아? 그럼, 다 죽자고? 이 숲에서? 야, 안즈. 다친 사람이랑 멀쩡한 사람. 다 합쳐서 총 몇 명이야?”
대화를 무시한 채 안즈한테 말을 걸자 안즈는 키리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서른일곱 명. 다리를 잃은 애들은 다 합쳐서 여덟 명이야. 멀쩡한 애들은 나랑 키리까지 합쳐서 스물한 명. 나머지 여덟 명은 팔을 잃거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냐…….”
이거 생각보다 안 좋다. 빌어먹을. 37명 중 16명이 사실상 전투 불능. 21명이라……. 가용 병력이 이렇게 적다니.
“팔을 잃거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애들은 당연히 부축을 받아야겠네.”
“……그래. 다친 사람들끼리는 부축도 못 하고 도와주지도 못해. 한 사람당 한 명씩 도와준다 치더라도……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오직 다섯 명 정도야. 나랑 키리가 들어가 있으니 아주 약하지는 않겠지만…….”
95명이나 있던 야만족 전사가 순식간에 5명으로 줄어들었다. 나머지 16명은 부상자를 부축 혹은 간호하며 빠져 나가야 하니 격렬한 움직임을 취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다친 사람과 자기 목숨. 두 명의 목숨을 구해야만 했기에 도망만을 생각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자, 우리 총명한 키리 아가씨. 어떻게 하실깝쇼? 쇤네는 그냥 혼자 나 몰라라 도망칠까요? 아니면 너님의 소중한 동족들 지키기 위해.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숲을 나갈 때까지 도움을 드릴깝쇼?”
당장 처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말투로 깝싹대니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기분 나쁘냐? 더럽지? 근데 뭐? 시발, 너도 지휘관이면 애들 목숨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이 숲에 남고 싶으면 남아. 난 나 혼자 나가도 상관없어. 야. 이거 보여? 난 이제 마법 쓸 수 있어. 지금 당장 너희랑 싸운 후에 혼자 도망쳐도 아쉬울 거 하나 없는 놈이야. 그런 내가 이렇게까지 너희 목숨 생각하며 도와준다는데 그게 싫어? 그래, 그럼 난 가야겠네……. 잘 있어라!”
“아, 안 돼! 키리! 그런 표정 짓지 마!”
호호, 이것 참……기분 좋군요!……가 아니라. 이상한 말투군. 내가 프리더냐? 키리의 표정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안즈는 그녀답지 않게 얼른 용서를 빌라 했다.
크으으으~!! 이 쾌감!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내 아내들이 나를 버리고도 남을 이 쓰레기 같은 면모! 이게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 아니겠습니까!? 데퍄퍄퍄퍄퍄퍗!
……어, 생각해보니 또 슬퍼지네. 그래도 이 쓰레기 같은 면모와 악랄한 잔머리 굴려 사람 여럿 구했는데 그렇게 버려버리다니……. 한숨을 쉬니 안즈는 그걸 더 화가 났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이 손 놔! 넌 대체 왜 그래? 너 완전 이상한 거 알아!? 왜 저딴 놈한테 머리를 굽신거려야 하는 건데!?”
명연설, 참으로 고맙다. 단숨에 ‘야만족들의 목숨을 구해줄 사나이’에서 ‘저딴 놈’으로 좌천당했군.
확실히 안즈는 이상해졌다. 많은 동족들의 죽음에 많은 책임을 느낀 거겠지. 자기의 가벼운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나라도 저렇게 바뀔 거 같았다.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을 위해서는 내 한 목숨이나 자존심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하니……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 크게 다르진 않군. 나 또한 내가 사는 마을의 안전과 평화, 밝은 미래를 위해 싸워왔었으니까. 토사구팽 당하긴 했어도 지금 안즈가 저렇게 소심하게 구는 건 궁극적으로는 야만족의 미래와 안전을 위해 그러는 거니까……이해를 못할 것도 아니었다.
“됐어. 그보다 안즈. 애들한테 이 숲에서 나가야 한다고 전해줘. 곧바로 나가야 해. 그 괴물들……아마 이 주변까지 왔을 거 같으니까.”
괴물은 우리와 다르다. 감상에 젖지도 않고 죄책감이나 공포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사람을 죽여 먹는 것에 특화된 괴물. 그들은 아마 승리에 젖어 바싹 쫓아왔을 것이다. 청록색 촉수괴물을 보거나 상대한 적은 없었지만……그렇다고 안 싸울 수는 없지.
혼자 가든 함께 가든 간에 이 숲에서는 벗어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투는 필수였다. 적어도 다섯 명. 리더급인 안즈와 키리. 그리고 세 명 정도의 우수한 야만족 전사의 힘이 있다면 일점집중(一點集中)의 돌파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역사와 긍지, 추억이 깃든 숲을 떠나는 것은 매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한테 ‘당장 프레그넌트에서 떠나야 해!’라고 말한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겠지.
‘시발, 미쳤냐? 내가 여기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소중한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 나가라고?’
아마 이런 마음이겠지. 안즈와 키리. 모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나보다 훨씬 더 이 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가 없지.”
[기동전사 건담 SEED]의 주인공. 키라 야마토가 카가리를 때리며 비슷한 말을 했었다. ‘마음만으로 뭘 할 수 있냐!?’며 뺨을 때렸고 카가리는 아무 말도 못 했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세상은 마음과 열기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아야만 했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야만족의 소중한 땅, 지금까지 살던 숲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그러한 마음은 목숨이 있어야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목숨이 없으면……죽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 작품 후기 ============================
우선은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보랏빛날개님, 아직 완결까지는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좀 더 실컷 굴려서 주인공 왜 했는지 모르겠다며 소주 마시게 할 때까지는 실컷 굴릴 생각입니다. 물론 이 굴리는 것은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지, 절대 주인공을 질투하거나 시샘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덧붙입니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요즘 나오는 콘솔 게임은 코옵 모드가 있으니 패키지 게임과 온라인 게임(협력이나 대전 요소를 포함)의 융합체라고 해야겠네요. 인터넷이 안 되거나 할 때는 혼자 즐기고 사람들이랑 왁자지껄하며 놀고 싶으면 온라인 모드(코옵 or 대전)로 들어가서 놀고.
인터넷이 안 될 경우는 잘 없지만 연습이나 혼자 게임하고 싶을 때는 싱글 플레이를 선호하겠죠. 요즘 나온 철권7의 경우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온라인 모드를 할 겁니다. 싱글 플레이 하는 사람들을 거의 배려 안 했거든요. 스토리 모드나 진행이 진짜 개판입니다. =_=;
예? 철권 잘 하냐고요? 설마요. 그치만 가족이 하는 걸 6시간 이상 보고 있으면 싫어도 보는 눈과 감정안이 발동됩니다. 싱글플레이 및 스토리모드는 진짜 개판인 거 같아요. 그 오래된 게임으로 용케 이딴 스토리를 짰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ㅋㅋㅋ
본문에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SD건담 온라인이 끝나면서 사실상 국내 건담 게임은 사장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캐주얼이라는 이름의 하드코어 게임이었던 SD건담이었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국내 건담팬들을 모아주었던 게임이었습니다.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빈말로라도 ‘게임성이 좋았다’라고는 말 못 하죠. 온갖 버그에 잠수함 패치, 신기체의 미친 성능 등. 상대방 플레이어의 부모님이 건강하게 잘 계신지 돌아가셨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패드립은 안 쳤지만 말입니다.
비록 쓰레기 같기는 했지만 대체재(代替財)가 없었기에 즐겼던 게임이었습니다만……소프트맥스 및 트리니티 게임즈 이 병신 새끼들이 창세기전4와 다른 거 한다고 이걸 버리면서 SD건담은 끝나버렸습니다. 동시에 국내 건담팬들의 건담게임도 끝나버렸죠.
익스트림 버서스 시리즈? PS3 없으면 못 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소 천 판은 해야 온라인 모드에서 그럭저럭 할 만한 게임입니다. 일본에서는 1위지만 한국에서는 하는 사람 별로 없는 캐릭터 게임인데 그걸로 대동단결될 리가 없잖습니까.
PS4로 새롭게 나온 건담 버서스? 아니, 콘솔 없으면 안 된다니까?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많겠냐 PS 같은 콘솔 가진 사람이 많겠냐? 논외죠. 게다가 그 건담 버서스도 익스트림 버서스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테크닉과 경험을 요구합니다.
익스트림 버서스 시리즈는 스텝 캔슬부터 시작해 게이지를 폭발시켜 버스트 어택(필살기)이나 연속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따라서 이전 작품보다 훨씬 더 반응속도나 외워야 하는 것이 많아졌고 이는 초보자의 이탈을 뜻했습니다.
쓰레기다, 좆망겜이다, 똥망겜이다 욕했던 캡파지만……까놓고 말해, 초보자라도 쉽게 즐길 수는 있었습니다. 스텝 캔슬? 어메캔(어시스트 메인 캔슬)? 그런 거 없었죠. 부스트 점프 버그나 역필 테크닉 같은 건 몇 판만 하면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캡파를 찬양할 생각은 없지만 익스트림 버서스 시리즈에 비하면 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스텝 캔슬 콤보를 넣을 필요도 없었거니와 무조건 양민학살 당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필살기와 다구리로 어느 정도 실력차이를 극복할 수가 있었거든요.
현질 외에는 무료로. 편하게 PC로 즐길 수 있었던 SD 건담 온라인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예? 넥스트 에볼루션? 그딴 씨발좆망겜은 몰라요 ^^ 그딴 게임 없었습니다 ^^
사족이 많아졌습니다만……쉽게 말해 건덕 만족시켜주는 게임이 없다는 겁니다. 씨발좆망겜이라도 욕 실컷 들었던 SD건담 온라인이라도 지금 부활한다고 하면 엄청나게 몰려들 겁니다. 그거 외에 즐길 게 없었거든요. 스피디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과 즐거움이 있었기에 오래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병신 같은 트리니티 게임즈가 거의 죽었다고 봐도 되는 상황. 다시금 국내 건담 게임이 부활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PS - 당분간은 아침에 글을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급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자정 업로드로 바뀌겠지만, 일단은 아침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가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