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1 「14-10 : 왜 내 인생은 늘 이러냐……? (16)」 =========================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냐!?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연이어 다가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내들한테 버림받았다는 것은 나한테 있어 최고·최강·최악의 일이었다. 사랑하는 그녀들한테서 도움은커녕 매몰차게 버림받다니! 지금 생각해도 인정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자기가 견딜 수 없는 일’을 연달아 겪게 되면 실성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을 여러 번 겪어왔다. 환장할 거 같은 상황부터 시작해 안나와 니나 모녀한테 납치도 당해보고, 원하지도 않는데 2천 명 이상의 여성한테 아기를 만들어줘야만 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현재 진행형으로 두 번째 납치를 당해 언제 괴물한테 죽을지 모르는 사태에 직면했다. 지금까지 당해온 것만 봐도 실성할 수 있을 레벨인데 이것도 모자랄까봐 최악의 사태를 나한테 끼얹었다. 바로 내 아내들이 날 버렸다는 거지……. 으으,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고 정말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었다. 우선 이 숲에서 빠져나가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어쩌면 내가 착각을 했을 수도 있고 정말 나를 구하러 올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사정 혹은 상황에 직면했을 수도 있으니까.
정말 그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구하러 오지 못한 것이 되니까 마음의 위안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겪은 것 중에 가장 슬프고 힘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내들이 날 버린 것이었다. 지금도 안 믿고 싶고 안 믿겨지지만……내가 안 믿는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기에 우선은 수긍했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만.
근데 설마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사태가 또. 또? 또! 또 벌어질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마력봉인수갑을 푼 나는 곧바로 내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홀로그램 윈도우를 띄우자 나타나는 메뉴 중 [스테이터스]를 누르자 내 이름과 레벨, HP와 MP. 경험치와 직업이 나타났다. 직업이야 뭐 여전히 비어 있으니 별 의미가 없다만……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 레벨은 30.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HP와 MP는 3,000이 된다. HP는 레벨에 맞는 수치였지만 MP는 달랐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레벨 10이 됐을 때 아이나와 잠자리를 가지며 나누었던 마력증폭기. 본래라면 5배지만 아이나와 나누어 가진 마력증폭기는 절반의 성능인 ‘기본 마력 2.5배 증폭’을 늘 나한테 적용시켜줬다.
따라서 내 마력은 기본적으로 ‘원래 레벨에 맞는 MP x 2.5배’가 되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7,500을 가져야 하는 마력이 3,000……? 말도 안 된다……!! 아, 아니. 말이 안 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와서 옷은 빼앗겼지만 [사랑과 신뢰의 반지]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마력을 봉인당한 이상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반지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쓸모가 없었다.
하물며 반지의 성능을 모르는 그녀들은 그냥 반지구나 싶어 그걸 빼앗아가지 않았다. 재물(財物)면에서는 별로 탐욕이 없는 그녀들 덕분에 이건 빼앗기지 않아 다행이구나 싶었지.
내 좆에 있는 ‘회복의 반지’는 로라가 결혼 선물로 준 것이다. 미미하지만 회복을 시켜주는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덕을 봤고, 야만족들 또한 이 물건의 성능을 알고 있었기에 가져가지는 않았다. 즉……‘회복의 반지’와 ‘사랑과 신뢰의 반지’. 두 가지를 장비한 상태였다.
마력의 회복뿐만 아니라 절대량 상승까지 시켜주는 초 고성능의 반지. [사랑과 신뢰의 반지]는 ‘마력반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아내 한 명당 1,000의 MP가 상승했었고, 총 인원까지 합친 결과 42,500이라는 무식한 MP 수치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왜 과거형인지는 모두 잘 알 거라 생각한다.
만(萬) 단위까지 갔었던 찬란한 MP가 지금은 고작 3,000. 2.5배의 뻥튀기 효과조차 받지 못한 초라한 수치가 됐으니까. 이걸 보니 도무지 내가 미친 건지 이 스테이터스 스크린이 미친 건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안즈는 내 표정과 상황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는지 ‘왜 그래……?’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래. 한 번 물어보자.
“……안즈. 지금부터 존나 중요한 거 물을 테니까. 절대……절대 거짓말하지 말고 대답해줘.”
안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한숨을 쉬며 천장을 봤다. 좋아. 그래. 침착하자. 일단 내가 물어야 하는 것부터 물어보자.
“……어, 마력봉인수갑을 오래 쓰면 마력이 줄어들어?”
그래. 마력봉인수갑 때문에 절대량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돌아온다면……당장은 무리라도 다시 원래 수치인 42,500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가득한 질문에 절망이라는 대답을 끼얹지는 말아다오.
“아, 아니……. 마력을 봉인할 뿐이지 본래 지닌 마력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는데……?”
씨발. 10초도 안 지났는데 희망을 와장창 부수는구나. 그럼 내 마력이 줄어든 것은 수갑 때문이 아니라는 거다.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그럼……혹시 내가 지금까지 먹거나 접한 것에 마력을 없애는 약 같은 건 없었어? 이미 습득한 마법을 지운다거나 없애는……그런 부류의 약 말이야!”
“그, 그런 거 없어! 마력을 회복시키는 거라면 모를까 없애다니. 우린 그런 것 모르고 있더라도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애초에……우리가 원했던 건 배가 능력을 쓸 수 있는 아기 씨앗이었어! 마력 같은 건 신경도 안 썼다고!”
지금의 안즈한테 거짓말을 할 능력이나 여유는 없을 것이다. 즉……사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마력을 봉인당한 나는 전형적인 ‘마법 못 쓰는 마법사’였다.
마력을 못 쓰는 마법사만큼 쓸모없는 존재가 또 있을까? 전사처럼 검을 잘 다루지도 못하고 도적처럼 민첩하지도 못한데? 그 정도로 내가 얕보였다는 사실에 다시금 슬픔을 느꼈지만……지금은 눈앞의 사태를 해결해야지.
“그럼……너를 포함해 야만족은 마력을 없애지도 못하고 아예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는 거네?”
내가 계속 마력에 관련된 질문을 하자 그녀도 내 상태를 눈치 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OK. 별로 위안은 안 되지만 쟤들 탓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잡힌 이후로는 스테이터스를 포함해 아예 홀로그램 윈도우 자체를 안 열어봤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몰랐다.
마력이 줄어든 이유는 모르겠지만……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을 상승시켜주던 요인은 두 개. 하나는 몸에 있던 ‘마력증폭기’다. 지금까지 충실하게 제 역할을 하던 마력증폭기의 효과가 어째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만……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건 바로 두 번째 요소였다.
난 손에 있던 마력 반지를 뺐다. 마력 수치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다시 반지를 장비해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걸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뜨거워진 눈시울에 가열된 건지 뜨거운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아아……!! 어떻게……어떻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내 아내들이 나를 버렸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날 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다. 걸어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이 숲에 5일째 되는 오늘날까지……단 한 명의 아내들도 오지 않았다.
근거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 아내들의 전투력은 희진이나 은채, 아스카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꽤 강한 편이다. 아이라는 마법사 양성소에서 교사를 할 정도로 강한 여자였지. 로라와 미카 또한 경비대장 클래스의 실력을 지녔다.
마리아와 아테나는 강한 걸로 소문이 자자한 여왕과 공주였으며, 헬레나는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일부 아내들은 전투력이 너무나 쩔어줘서 싸울 엄두조차 못 낼 정도였다. 모의전에서도 실컷 두들겨 맞았지. 내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내들이 남편이 납치됐는데 5일 동안 코빼기도 안 보였다고? 그 강력한 힘과 지위를 가지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왕기사단 같은 고급인력을 못 쓸 정도로 지위가 낮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안 왔다고?
하물며 나는 남편이다! 그들을 위해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일했던 나를! 납치당하는 당일까지도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했던 그녀들이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다니! 이걸 ‘버렸다’라고 하지 않으면 대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란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동물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날 버린 것에 대해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일이 일어나 날 구하러 오지 못했다’라는 변명을 만들어 정당화시키려고도 했다. 나조차 이런 생각을 하며 이게 말이 되냐며 울었지만……그래도 믿고 싶었다. 아내들을…….
헌데 이걸 보니 빼도 박도 못했다. 흔히 말하는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 한다는 말에 Can't. 영어로 할 수 없다는 말을 합친 것. 뜻은 같다─’였다. 아이템에 문제가 있나 싶어 다시 뺐다가 장비했지만 마력 수치는 그대로였고 이걸 본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랑과 신뢰의 반지는 나 혼자 쓸 수 있는 장비(裝備)가 아니었다. 마력 회복 및 절대량 상승의 이점을 보기 위해 클리어해야만 하는 조건은 ‘이 반지의 사용자와 사랑과 신뢰를 나누고 있는 여성 캐릭터가 있어야만 효과를 발휘한다’였다.
난 지금까지 14명분의 효과. 단순 수치로만 따져도 14,000의 마력 수치를 얻고 있었다. 그 기본 수치에 원래 가지고 있는 MP를 합쳐 2.5배를 곱한 것이 42,500이라는 무식한 수치였지.
그런데……그 수치가 사라졌다. 모조리. 2.5배뿐만 아니라 14,000의 수치가 사라졌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냐?
내 아내들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래! 믿을 수가 없지만 이 결론 외에는 도출해낼 답이 없었다!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렸으니 더 이상 효능을 볼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그 자연스럽다 못해 지당한 대답에 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어떻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안다! 날 버렸다는 건 지금까지 나누었던 사랑과 신뢰를 모조리 버렸다는 뜻이라는 걸! 그래도 나는 내 아내들을 끝까지 믿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핑계까지 만들어가며 그녀들을 믿으려 했었지!
근데 이게 뭐냐? 단 한 명도……단 한 명의 아내도! 심지어 딸조차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핫!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어떻게 니들이 이럴 수가 있냐……이 시발년들아……흐윽……!!”
눈물샘이 망가진 거 같다고 안즈를 깠다만 남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안즈처럼 펑펑 눈물을 쏟으며 쓰러진 나는 아내들을 욕하며 상투적인 말을 뱉어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바람을 핀 아내 혹은 남편한테 ‘어떻게 당신이 이럴 수가 있냐’라는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나 치정(癡情)을 다룬 영화를 볼 때마다 저런 대사가 나오면 ‘에이, 너무 식상한 거 아냐?’라고 말했었다만……그런 말할 자격은 나한테 없었다. 나도 지금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예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게 후회된다. 이래서 사람은 혀 끝을 조심해야 한다니까. 설마 내가 그들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더욱 초라하고 비참한 건 내 쪽이었다. 그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설령 실제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 치더라도 그들은 나와 같이 명확하게 사랑이나 신뢰가 없어졌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사랑과 신뢰의 반지 따위는 현실에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봐라. 한 사람당 1,000씩 주는 마력은 사랑과 신뢰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력은 모조리 잘려나가고, 2.5배의 증폭 효과조차 사라졌다. 2.5배의 경우 사랑이고 지랄이고 관계없으니 그냥 놔둔다 치자.
헌데 14명의 아내가 동시에? 사랑과 신뢰, 그 어느 쪽이든 간에 다 잃어버렸다고? 하, 하하……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말이 된다. 말이 되니까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거겠지! 솔직히 믿고 싶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는다! 이혜린! 로라! 메이! 아이나! 미카! 안나! 니나! 아이라! 항희진! 박은채! 아스카! 마리아! 아테나! 헬레나! 마리아와 아테나, 헬레나는 심지어 프레그넌트에 있지조차 않은데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이럴 수가……!!
“정말로……너희가 날 어떻게 버릴 수가 있냔 말이다……이 개좆같은 년들아……!!”
수갑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난 절망에 슬퍼하며 무릎을 꿇었다. 흔히 말하는 좌절 자세(OTL)를 취한 채 두 주먹으로 땅을 두드릴 때마다 흙이 튀었다만……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아내들이 나를 버렸다는 걸 이렇게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 그 외에 뭐를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마치 어린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그래도 온갖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핑계까지 만들며 그녀들을 믿었다. 끝까지 믿었다.
난 상상이나마 그녀들이 풀 죽은 채 나한테 변명하는 모습까지 그리고는 했었다.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바라는 모습까지 그렸건만 그 결과가 요거냐? 더 이상 마력 증폭도, 회복도 못 시켜주는 반지 꼴랑 하나?
아, 아니군! 좆에 달린 ‘회복의 반지’도 있군! 그럼 뭐해? 지금 중요한 건 회복이 아니라 마력의 절대량이다. 내 생각대로였다면 마력을 쓸 수 있게 된 나는 그녀들을 데리고 프레그넌트 앞에 있는 숲으로 갈 생각이었다. 텔레포트라면 너끈히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 있었으니까.
헌데 마력을 되찾으니 온갖 증폭 효과와 회복 효과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까지 배웠던 마법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심지어 내가 가장 믿고 좋아했던 ‘자지의 맹세’마저! 난 말 그대로 빈털터리, 백치가 된 거나 다름없었다.
마력이 적은 건 둘째 치더라도, 쓸 수 있는 마법이 없는데 마력이 있으면 뭐 하나? 이 마력으로 기우제라도 지내? 괴물이 우리를 습격하지 않도록 신한테 절이라도 할 거냐? 하하…….
“이런 씨발 개좆같은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할 수가 있는 거냐고! 씨발! 씨바아아알! 으, 으아아아아아────────ㅅ!!”
원래라면 간수가 와서 날 패야 했지만 그 간수는 키리를 도와 부상자 치료에 여념이 없다. 안즈와 내가 이야기하는 곳에 막 들어올 짬도 안 되겠지만……어찌 됐든 욕을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텔레포트를 써서 이곳에서 안전하게 나간다는 선택지마저 사라진 지금……남은 것은 코스튬을 이용해 어떻게든 이곳을 헤쳐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코스튬은 다행스럽게도 남아있었다. 다시금 투영마술을 쓸 수 있게 되자 그것만으로 세상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어찌 이다지도 간사하단 말인가? 아내한테 버림받았다는 슬픔은 어느 새인가 싸울 수 있다는 기쁨에 지워진 상태였다.
투영마술(投影魔術)을 쓸 수 있게 된 나는 다시 내 옷을 봤다. 『Fate / Stay night』에 나오는 아처(Archer / アーチャー)의 옷.
5차 성배전쟁 때 소환된 아처 클래스의 보구(宝具)는 무한의 검제(無限の剣製 / アンリミテッドブレイドワークス / Unlimited Blade Works). 마력을 많이 소비하지만 죽는 것에 비하면 귀여운 코스트다.
물론 투영마술로 만든 검 또한 일종의 ‘마법’으로 취급됐기에 아마 마법내성을 지닌 괴물들한테는 높은 위력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무것도 못 한 채 죽을 바에야 발버둥치다 죽는 게 사람이거든.
무기 외에도 복제가 가능했지만 검 종류를 복제해서 미사일처럼 폭격시키는 전법은 까놓고 말해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이었으니까. M16A1와 K2 소총 또한 건재했고 어떻게든 남은 마력을 알뜰살뜰 잘 써서 이 숲을 벗어나야만 했다.
“……혜린아……!!”
빌어먹을……결국 혜린이의 이름을 불러버렸다. 이 옷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혜린이의 코스튬. 원래라면 불러온 배를 귀엽게 내놓은 아름다운 코스튬으로 날 기다리고 있어야 했지만……지금은 도저히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사랑과 신뢰는 어느새 없어져 버렸고 남은 것은 싸늘한 현실뿐. 눈물을 닦고 입을 열었다.
“이 숲에서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사, 삼십분 정도야…….”
삼십분? 긴 건지 짧은 건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숲의 어디야? 끝이야? 아니면 정중앙이야?”
“저, 정중앙…….”
시발! 이 마을 누가 지은 거래? 그냥 전부 다 불태워 버리고 엎어버리고 싶었다. 정중앙에 왜 마을을 지어!? 아, 그래! 이해 간다! 사람이 집을 살 때도 교통편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이런 숲에서는 오고 가는 게 쉽도록 정중앙을 잡았겠지!
이곳이 숲의 끝이라면 숲을 나간 후 돌아서 갈 수도 있었겠지만……이렇게 되니 사태가 심각했다. 우리는 지금 360°. 사방팔방에서 언제 어떻게 습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용케 살아남았다, 야만족!
“일단 너는 나가서 멀쩡한 사람이랑 다친 사람 머릿수 좀 세어 봐. 멀쩡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친 사람을 옮기기 쉬우니까 다친 부위도 자세히 보고!”
“그, 그 다음은?”
이런. 안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출진할 때까지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불안해하며 떠는 그녀를 범하고 싶다 생각하니 나도 참 미친놈이었다. 아내한테 버림받으니 이제 아무나 잡아서 강간이라도 하고 싶다, 이거냐? 더러운 자식.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은 후 재빨리 대답했다.
“생존자가 50명도 안 되지만 너희가 출진했을 때 이곳을 지키던 사람들. 그리고 다친 동족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처럼 멀쩡한 사람이 많으면 빠져나가기가 쉬워져. 조금 전에 너희가 돌아오는 걸 봤을 때……다친 사람은 꽤 있었지만 걷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적었던 걸로 기억나거든. 설령 걷기 어려워도 업어줄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다음……! 빨리!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최대한의 인원이 가장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불안해하는 안즈한테 최대한 정확한 명령을 내려 이곳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시켜야 뭐가 해결될 거 같기도 했고.
“가면서 괴물이랑 만나면 일단 내가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야. 하지만 너희의 힘도 필요해. 다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부축하거나 데리고 가는 인원이 줄어들어. 멀쩡한 야만족은 아직 배가 능력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나랑 협공을 놓는 거야. 그 괴물들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쪽수 앞에 장사는 없거든?”
내 투영마술과 그녀들의 배가 능력만 있다면 빠져나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내 말에 조금이나마 고개를 끄덕이는 안즈를 보니 그녀도 조금씩 진정이 되고 있는 거 같았다.
“괴물은 아마 우리를 에워싸고 총공격을 가해올 거야. 난 본 적이 없지만……그놈들이 쓰는 건 아마 마법이 아니라 레이저랑 비슷한 게 아닐까 싶어. 뭐? 레이저가 뭐냐고? 어……레이저는 쉽게 말해 빛이야. 아주 강한 빛을 한 군데에 모아 임의(任意)의 방향으로 보내는 거지. 나도 자세히 모르니까 막 묻지 마! 지금 그게 중요해!? 난 문과란 말이다! 그게 묻고 싶거든 이과 학생한테 물어!”
문과인 내가 왜 광학병기(光學兵器)를 설명해야 하는 걸까? 레이저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아주 강한 빛을 모아 한 방향으로 보내는 마법’이라 설명을 하니 그제야 이해를 하는 거 같았다. 솔직히……얘가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전혀 생각 안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엄청 위험하다는 사실이지.
배가 능력을 쓴 안즈나 야만족이 겨우 피했을 정도다. 입에서 나오는 레이저의 위력과 스피드는 보통 나라면 결코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럴 때는 나무 같은 엄폐물을 이용하거나……좀 잔인하긴 하다만. 야만족을 먼저 미끼로 보낸 후 투영마술을 난사할 수밖에 없지. 난 이 싸움에 원래부터 하등 관계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생존자와 그들의 다친 상태를 보겠다며 안즈는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움막에 주저앉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내들이 날 버린 것도 모자라 더 이상 사랑과 신뢰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거 같다.
근데 내가 예전에도 말했듯이……지금은 ‘슬픔에 잠긴 히로인’ 역할을 맡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 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 청록색 괴물의 먹이가 될 테니까.
괴물이랑 싸우다 죽는 것도 싫지만 그놈들한테 먹히는 것도 싫었다. 그 더러운 놈들의 내장에 다른 야만족의 살점과 섞여 나중에 노폐물로 나올 생각을 하니 소름이 절로 돋는다.
아주 약간 마력을 써서 투영마술을 써봤다. 좋아. 발동은 된다. 투영마술이 발동되는 걸 보니 살아남을 방법이 생겨 기쁘기도 했다만……역시 씁쓸했다. 이것과 같은 옷,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혜린은……정확히 말해서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던 이혜린’은 두 번 다시 못 볼 거 같았으니까.
내가 만약 이곳에서 무사히 돌아간다면 그녀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심정으로 나를 맞이할까?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는 말을 하며 울까?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버러지 새끼가 왔다고 표정을 구기지 아닐까?
아니지? 어쩌면 울면서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 말이 입 발린 거짓말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속아줘야 하나? 하렘 만화의 주인공처럼 화나지 않았다며 껴안아야 할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까지 사랑했던 그녀들이……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아내들이 완전히 타인(他人). 듣도 보도 못한 사람처럼 나를 대할까봐 미치도록 무서웠다!
젠장……!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다 그 머리 하얀 미친년 때문이다! 근데 왜 지금이지? 아기를 낳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거 아니었어? 뭐가 대체 어떻게 됐길래 이렇게 꼬였느냔 말이다……!?
아무도 없는 움막에 홀로 주저앉은 나는 다시금 뜨거운 눈물을 흘려댔다. 원래라면 내 주변에서 ‘괜찮아? 무서운 꿈 꿨어?’라며 걱정을 해줬을 아내들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더 이상 그런 아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사실에 분해하며 더욱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부터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괴물과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라는 사실보다는,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던 아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더 무섭고 힘들었다.
============================ 작품 후기 ============================
문과인 저한테 레이저의 원리를 설명하라니! 미토메라레나이와!
젠카이노……아이도루마스타아아앗!
예? 러브라이브는 어디 갔냐고요? 하핫, 가끔씩은 다른 것도 봐야죠.
주위는 괴물로 바글거리는데 MP는 기본 수치. 아내들의 사랑과 신뢰는 어디로 갔는지 MP 뻥튀기 보정은 아예 없어졌고, 구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내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통수 OF 통수.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겠죠.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안즈는 세린한테 명령을 들을 정도로 정신이 붕괴됐고 주변의 아군(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은 부상자나 살아남은 야만족뿐. 진짜 뭘 어떻게 하라고 이런 전개가 이어지는 걸까요. 예? 이걸 적은 작가는 바로 저라구요?
……하핫, 아닙니다! 이걸 적은 것은 또 다른 작가 ‘메리사’입니다! 지금 저는 ‘신세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일 뿐! 제가 아닙니다! 메리사라는 놈이 적은 탓 데슥! 와타시는 이거랑 아무런 연관이 없는 뎃샤아아아아앗!
점점 좆망으로 굴러 떨어지는 세린. 과연 세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까지 하반신을 마구 박아대며 즐길 거 다 즐겼던 세린의 몰락을 마음껏 즐겨주세요!
예? 제 성격 존나 더럽다구요? 하핫, 뭘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전 원래 성격이 더럽습니다! 착한 성격으로 이런 글을 쓸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니 와타시한테 코멘트, 추천, 선작, 쿠폰, 응원을 달라는 뎃샤아아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