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39화 (139/235)

00137 「14-6 : 왜 내 인생은 늘 이러냐……? (12)」 =========================

바보 같은 년들……. 이미 출진(出陣)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승산이 있고 없고는 그들이 정하지만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그 괴물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하다. 내가 뿌려준 정액을 너무 과신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납치당한지 오늘로 5일째건만 여전히 낭보(朗報)는 없었다. 하아……이럴 줄 알았으면 야만족에 대해 좀 더 알아둘 걸 그랬나. 내가 있는 숲이 프레그넌트에서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감시하는 사람한테 ‘여기서 프레그넌트는 얼마나 멀어요?’라고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난 물어봤다. 난 일반적인 놈이 아니었거든. 대답? ‘알아서 뭐 하게?’라고 대답하더군. 시발년.

원래라면 내 아내들이 나를 구하러 왔는데 야만족과 만나 싸운다거나 하는 사건이 발생했겠지. 그 싸움에서 희생이나 죽음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테고. 난 누군가 죽는 걸 원하지도 않고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았기에 조용하게 이 일(납치)이 해결되기를 바랐다. 물론 그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개자식이겠지만……지금 아내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가 그녀들을 바라는 이유는 아주 개인적인 것이다. 나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줬으면 한다는 마음. 다시 그녀들과 만나 프레그넌트에서 지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지.

근데 현실을 봐라. 5일째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의 모습은 터럭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까지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들과 몸을 섞어가며 정액을 주입하는 기계 취급을 당했지. 모든 여자들을 임신시킨 후에는 지금까지 별 일 없이 있다만 그렇다고 여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무능한 년들……!! 온갖 욕이 튀어나왔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내가 그녀들한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말은 안 한다. 쪽팔리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가치 있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게 뭐야……? 남편, 아빠, 왕, 임금님 등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묘사하더니 납치당한지 5일이 되는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안 보인다고?

이런 식으로 아내들을 매도하고 욕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하는 행동은……그래. 나도 알아.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이지. 어쩌면 그녀들도 지금쯤 필사적으로 나를 찾고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이 숲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그건 어디까지나 ‘어쩌면’이다.

IF라고. 현실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이 모두 아내들을 위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프레그넌트 정착 후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아이라를 데리러 갔던 것, 아스카를 아내로 삼았던 것 등. 내 욕망에 충실해서 했던 짓이 어쩌다 보니 아내들의 이익에 연결되기도 했었지. 그래, 인정해. 그치만……이건 너무하잖아……!!

내 아내들을 믿고 있냐고? 믿고 있지! 믿을 수밖에 없지! 마력이 봉인당한 현 상태에서 믿을 수 있는 건 그녀들밖에 없으니까!

근데 이게 뭐야? 5일째 되는 오늘날까지 아무런 언질이 없다고? 낚시할 때도 가끔은 물고기가 입질을 하고는 하잖아! 그럼 뭐야? 난 물고기 이하냐?

이 여자들이 괴물한테 패배한다 치자. 그럼 나는? 내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 괴물들한테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사태와 조우하는 걸 피하기 위해서는 아내들이나 수갑을 풀어줄 존재가 필요했다. 이 여자들이 나를 풀어줄 가능성은 매우 낮았기에 아내들을 기다리고 있기만 했지.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나를 사랑한다며 속삭이던 아내들은 5일째 되는 현재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나를 쥐어짜 아기 씨앗을 챙긴 년들은 괴물이랑 붙겠다고 아예 단체로 나가버렸다! 구원의 손 따위는 바라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서 어떻게 희희낙락거리며 있을 수 있겠는가?

눈을 뜨자 날 반기는 건 숲의 녹음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정액과 애액에 찌든 냄새였다. 백마 탄 왕자님이 공주를 구하는 것처럼 내 아내들이 백마를 타고 오는 걸 바란 건 아니지만……그렇다고 아예 안 오면 어떻게 하냐? 빌어먹을……. 쓸모없는 년들!

아내들이 들었더라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했겠지. 하지만 그 미안하다는 말조차 실제로 ‘옆에 있어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여긴 아무도 없다! 이 빌어먹을 년들 외에는 그 누구도!

아, 아니군! 있네? 언제 우리를 덮치러 올지 모르는 괴물 새끼들! 아직까지 싸워본 적이 없지만 현재 상태로 싸웠다간 반드시 패배할 그 빌어먹을 놈들! 그딴 놈들이 주위에 있다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하면 낙관적으로 기다릴 수 있겠냐?

난 이전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요소’라고 생각했었다.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었지. 야만족들이 이기든 지든 간에 일단 시간을 들여 싸워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분명 내 아내들이 날 구하러 와줄 거야!’라는 믿음을 가진 채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고? 난 사람이니까!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흔히 나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게 히로인─헤로인이라고도 부른다. 코카인 같은 마약이 아니라 발음의 차이니 이해하자. 필로폰 마약을 일본어 발음인 ‘히로뽕’이라 부른다 해서 뜻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이다. 여자 주인공이지.

악당이나 나쁜 놈들한테 잡힌 여자 주인공(이하 히로인이라 칭한다)은 남자 주인공을 기다린다. 하지만 악당이나 나쁜 놈들은 ‘케헤헷! 포기하라고! 그놈은 절대 여기 못 와! 여기에는 아주 많은 내 똘마니들과 최신 무기가 있다고!’라고 하지. 음, 이렇게 적어 놓으니 좀 그렇긴 하다.

히로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아니, 난 믿고 있어! 남자 주인공이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타입이지. 남자 주인공과의 끈끈한 관계와 깊은 유대가 만들어낸 반응이라 해야겠지. 그럼 악당은 ‘크헤헷, 과연 그럴까?’ 따위의 대사를 지껄이기 마련이다.

두 번째 타입은 ‘……그래, 날 구하러 올 사람은 없어’라며 자괴적(自愧的) & 자학적(自虐的)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자기를 구하러 온 남자 주인공을 보고 감동하는 거지.

이럴 때 ‘왜 나 같은 사람을 구하러 여기까지 와 준 거야?’라고 묻겠지. 그럼 남자 주인공은 ‘그야 니가 소중하니까!’ 따위의 대사를 지껄이기 마련이다.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 등에서는 동료. 나카마[仲間(なかま)]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는 한다. 동료라고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국의 정서와는 조금 맞지 않아 ‘친구’라고도 번역을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히로인은 눈물을 흘리며 남자 주인공의 품에 안기게 되고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되겠지.

첫 번째 타입에 비해 두 번째 타입의 설명이 길어진 것은 극적 효과 및 히로인이 느끼는 심정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기를 구하러 올 거라는 믿음과 달리 자기 하나 구하러 와줄 정도로 자기가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안 하니까. 그런 와중에 구하러 와줬으니 감동을 안 할 리가 없지.

악역은 이런 오그리토그리한 장면에 토하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으며 ‘에에잇, 뭐 하는 거냐! 쏴라! 저놈은 겨우 한 명이다!! 쏴 죽이라고!!!’ 같은 3류 엑스트라 대사를 마구 내뱉는다. 물론 주인공의 활약에 놈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이런 패턴은 이제 지겹다 못해 한숨이 나올 정도다.

적을 다 쓰러뜨린 후 히로인을 데리고 나오는 주인공. 주로 ‘공주님 안기’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히로인을 안게 되지.

아, 가끔 히로인의 옷이 찢겼을 경우에는 자기 옷으로 그녀를 감싸며 공주님 안기를 하고는 한다. 그럼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2배 이상으로 증가하니 알아둬라.

뭐?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세세하게 다 아냐고? 하하, 이 사람들 왜 이러시나? 내 비록 27살이지만 가끔은 순정만화도 읽어보고는 그랬다. 순정, SF, 판타지, 학원물, 액션, 공포, SF 등. 각종 매체를 두루 접하며 얻은 지식이 이 정도니 확실히 미디어가 정형화(定型化)되긴 정형화 됐구나 싶더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들 공감할 거다. 「적한테 붙잡힌 히로인」이라니!? 적어도 살면서 한두 번 이상은 접하는 클리셰가 아니겠는가? 만화 같은 곳에서 이런 게 나오면 누구나 ‘남자 주인공이 나타나 적들을 개박살내고 히로인을 구출한다’는 결말을 예상할 수 있지!

무릇 만화뿐만이 아니다. 디즈니나 픽사를 비롯해 다양한 옛날 고전 동화에서도 이런 건 얼마든지 나오곤 했다. 이러한 클리셰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해피 엔딩을 원했겠지. 어쩌면 ‘불합리한 폭력과 부조리에 대항하는 마음’을 담아 썼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면 소설이나 동화에서나마 이루어지게 하고 싶었을 테니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 한 번 정도 이름을 들어봤을 「박씨전(朴氏傳)」의 경우 앞서 말한 마음이 매우 짙게 들어간 작품이기도 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때 겪었던 패배를 창작물 안에서나마 승리로 누리려 했던 작품이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정신승리’가 들어간 작품이었지.

청나라 때 패배했던 것을 창작물 안에서나마 위로 받음으로써 당시의 힘들었던 시대를 어떻게든 극복해나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고 해야겠지. 이와 같은 작품을 대체역사물(代替歷史物)이라 부른다. 실제 일어났던 역사와 다른 역사를 적음으로써 현재와 다른 미래를 그리는 작품이지.

대체역사물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나오는 작품이긴 했지만 거기에는 국뽕─‘국가 + 히로뽕’의 합성어. 자기 나라가 매우 우월하며, 우리 민족만한 민족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우월주의가 섞인 애국심(愛國心)이다. 사실 애국심이 아니라 옹호심(擁護心)이다만─이 좀 섞인 경우도 있었기에 무조건 즐길 수 있는 작품 부류는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것부터 시작해 ‘만약 우리가 일본을 지배했더라면?’이라는 떡밥을 쓰기도 했었고, 이와 같은 떡밥은 한국인들한테는 매우 잘 먹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일본한테 35~36년을 지배 당해온 우리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매우 큰 손실을 입게 됐으니까. 그 울분과 분노를 대체역사물 속에서나마 풀고 싶었던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 모를 리가 있겠냐? 지배당해온 역사 때문에 친일매국노가 활개 쳤고 현재도 그 새끼들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는데 짜증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잖냐.

독립운동가들은 독립 활동을 해서 나라의 독립에 이바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보수나 감사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매국노들은 나라를 팔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떵떵거리며 살았고, 나라와 민족을 팔아 얻은 밑천을 잘 굴려 오늘날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미친 실태지…….

그런 현실이 너무나 저주스러웠기에 지금은 이 ‘하렘 어드벤처’에 오게 되어 기쁘다고 생각하고 있다만……그것도 평범한 일상을 누릴 때지. 이렇게 괴물한테 언제 잡혀먹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해봤으니까!

내가 히로인이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할 것이다. 난 남자 새끼고 히로인 같은 타이틀을 달 정도로 멋진 놈도 아니니까. 하지만……아내들을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그녀들이 나를 구하러 와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믿을 정도로 그녀들을 위해 온갖 짓을 다했지.

그런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냐?

납치당한지 5일 동안 목소리조차 안 들리다니! 씨발!

“……설마.”

혼자 중얼거렸다. 감시하는 사람은 내가 수갑에 묶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군대 있을 때도 그랬다만 노가리 까는 것만큼 시간 잘 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물론 나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중얼거렸다. 내가 생각한 ‘불안함’과 ‘절망’을.

“……날 구하러 오지도 않은 건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 입은!? 스스로 말해놓고도 섬찟했다. 날 구해주러 온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할 수도 있잖아!?

그래, 그렇다! 군대에서 근무할 때도 후번 근무자가 원래 도착해야 할 시간보다 늦게 오고는 했지! 그런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무능하다, 도움이 안 된다, 쓸모없다며 그녀들을 욕하던 내 정신은 어느 새인가 ‘지금 날 구하러 왔는데 숲에서 헤매고 있다’라는 설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들이 아예 나를 구하러 오지도 않았다는 최악의 상상을 하기 싫었으니까!

몇 번이고 말했다만 늘 내가 느끼는 안 좋은 예감, 느낌은 확실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렇기에 최악의 사태에 대해 생각하는 걸 늘 피해왔었지. 하지만 하필이면 지금! 여기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누군가 보든 말든 간에 고개를 좌우로 막 저었다. 하하,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어! 설마……내 아내들이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리가 없다고!

“하아, 하아……! 씨발! 아냐, 아니라고……!!”

지금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선택지가 하나의 가능성으로 나타나자 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과호흡을 할 것 같은 몸을 겨우 진정시키며 주변을 보니 여전히 간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괜히 관심을 끌기는 싫었으니까.

침착해. 침착해라. 침착해지는 거다, 신세린. 야. 말이 돼? 니 아내들이라고. 비록 14명이긴 하지만 모두한테 공평한 사랑을, 동등한 사랑을 주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아내들이잖아. 그런 아내들이 안 온다고? 널 버렸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응?

내 내면의 목소리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업적, 그녀들한테 나누어준 사랑을 지껄여댔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인 채 가만히 있고 싶었지만 가슴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다. 말도 안 돼……말도 안 된다고!

그렇지만……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해서……날 버렸다는 비참한 선택지의 실현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생각해봐. 난 납치당한 바로 다음날 여기 있었어. 텔레포트를 쓰지 못하는 안즈는 이 숲까지 배가 능력으로 달려왔다고 해야겠지. 아, 그래. 그냥 텔레포트를 썼다 쳐. 그럼 이상하잖아…….

‘안즈가 쓸 수 있는 텔레포트를 아이라나 마리아, 아테나, 헬레나가 못 쓸 리가 없잖아……?’

“……아, 앗……!!”

절망으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내 마음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그 말대로다……!! 수도에서 근무를 권유받았던 아이라는 명실상부한 고위급 마법사다! 그런 그녀가 텔레포트를 써서 이 주변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나 또한 그녀의 마법들을 복사했기에 써본 적이 있었다. 텔레포트는 생각 외로 편리한 마법이라 발동과 사용에 큰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정확한 좌표를 잡기는 어려웠지만 ‘대강 그 주변’이라는 느낌으로 쓴다면 1분만으로도 충분했다.

5분이 아니다. 5시간도 아니다. 5일이 지난 현재까지 날 구조하려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건……아무리 봐도 ‘오지 않았다’라는 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숲에 들어와 헤맸다고? 야, 말이 되냐? 5시간 정도 걸려 텔레포트를 썼다 치자. 비행 마법은 엿 바꿔 먹었냐? 하늘을 날면 될 일이잖아!

그뿐만이 아니다! 아스카나 레이 시리즈는? 아스카나 레이는 괴물이다. 괴물은 다른 괴물과 함께 지낼 수 없으므로 서로의 존재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즉, 그녀들은 괴물임과 동시에 다른 괴물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 역할도 동반한다는 거다!

그녀들의 힘이 있다면 괴물을 피해 오는 건 손쉬운 일이다. 사실 비행마법을 쓴다면 애초에 괴물들의 리치(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굳이 괴물을 느끼며 올 필요조차 없지! 그런데 안 왔다고?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오, 그래. 말이 나와서 말인데……시발, 그거 외에도 근거가 없는 줄 아냐? 휴식, 식사, 섹스 등 시간이 날 때마다 ‘날 구하러 올 거야……’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은 어느새 배신감으로 가득 찬 채 잔혹한 현실에 대한 근거를 하나씩 들이밀고 있었다. 이게 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하면서도 말이다.

마리아, 아테나, 헬레나는? 걔들은 왕비, 임금,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이다. 누구든 간에 전투력은 끝발 나는 최강급 클래스 캐릭터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납치당했다는 건 틀림없이 그들한테도 전해졌을 것이다! 나는 그녀들의 남편이지 않은가?

“……야, 너무한 거 아니냐……?”

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현실에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원래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와서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기로 했는데……그 꼬라지가 이거야?

“……아니지? 나 버림받은 거 아니지……?”

‘아냐. 난 버림받았어. 생각해봐. 넌 임금이자 왕이야! 여왕의 남편이나 공주의 아버지 겸 남편! 그리고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인 헬레나의 남편이기도 하지! 임금이 위험에 처했다는데 여왕기사단은 당연히 투입되겠지! 근데 이거 봐! 5일째 되는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잖아? 이게 뭘 뜻하겠어?’

나는……버림받았다.

“으, 아아……으아아아아아아────────!! 씨발,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버림받았을 리가 없다고! 으아아아아────────!!”

미친놈처럼 소리 질렀다. 더 이상 간수고 지랄이고 간에 상관없었다. 상관없고말고!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때냐? 야, 이게 말이 돼? 내가 버림받았다고? 하하, 말이 안 되는 말을 지껄이고 있네 지금?

“씨발,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 아냐, 이건 아냐! 이건 현실이 아니란 말이야! 씨바아아아알!”

“이 새끼가 미쳤나……?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날 향해 다가오는 간수를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맞든 말든 일단 물어야 한다!

“시간!”

“……뭐?”

다짜고짜 내가 알 수 없는 말을 꺼내자 그녀는 ‘이 새끼가 지금 뭐라 한 거지?’라는 표정으로 날 봤다. 그래, 시간이다!

“프레그넌트에서 여기까지 오는 시간 말이야! 얼마나 걸려? 얼마나 걸리냐고!?”

“말했잖아, 그런 거 니가 알아서 뭐……”

“빨리 말하라고 씨발년아! 말해! 말하라고! 안 그럼──어컥! 으, 악!”

배때지에 정확히 들어간 킥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뒹굴렀다. 수갑으로 인해 구를 때마다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시, 간……! 시간을 말하라고……!!”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묻자 그녀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투로 입을 연다.

“미친 새끼……세 시간이다. 됐냐?”

“……세, 시간?”

세 시간이라고……?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짧은 거리였다. 난 다섯 시간을. 그것도 ‘뛰어서’라는 조건으로 생각했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지금의 나한테서 정상적인 사고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간수의 말을 들으니 더욱 더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에 다시 물었다.

“뛰, 뛰어서 세 시간이지……응?”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비웃었다. 설마……그럴 리가……!!

“미쳤냐? 아무리 우리라도 세 시간 동안 내리 뛸 수 있겠냐? 당연히 걸어서 세 시간이지 병신아! 넌 여행까지 다녀본 놈이 그딴 걸 질문이라고 묻냐? 어휴……이 숲에 정착한 게 우리가 아니라 너였으면 이미 옛날 옛적에 죽었겠다 등신아!”

끝. 종료. 게임 오버. 다 끝났다. 파멸의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난 마구 웃으면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땅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이건 거짓말이라고 소리쳤고 간수는 날 욕하며 다시 이야기를 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내가 봐도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안 들었으니 당연한 처사겠지.

시끄러운 놈 내버려두고 이야기나 마저 하러 간 그녀가 그토록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나도 참 병신이었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마을과 마을 간의 거리는 일주일이었고 우리는 그 동안 ‘걸어서’ 다녔다. 뛰지 않았다.

아무리 뛴다고 한들 사람이 뛸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무리하다가 괴물과 만나면 전투가 어려우니까. 그렇기에 걸어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걸어서 세 시간? 하하, 뭐? 걸어서 세 시간이라고? 텔레포트를 하면 아무리 늦어도 10분. 아니, 10분도 길다. 5분이겠지. 마리아와 아테나가 자리를 비우지 못하더라도 그녀들을 제외한 내 아내들만 와도 하루는 안 걸린다.

헌데 5일 동안 오지 않는 거리가 걸어서 세 시간 거리라고? 각 마을 간 여행길의 1/7도 안 되는 거리라고?

“으, 크흑……아, 냐……! 아니라고……! 이런 건 현실이 아냐……!!”

누군가 내 모습을 보면 ‘시발, 저 새끼 왜 저래? 어제까지 가만히 있던 놈이 왜 갑자기 저 지랄 떠는 거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건 내 속을 몰라서 그러는 말이다.

난 불안했다. 여기에 납치된 첫날부터 지금까지! 불안함과 슬픔, 고독을 ‘아내들이 구하러 와줄 거다’라는 생각으로 버텼단 말이다!

어제 출진하려는 안즈와 키리한테 질문을 던지면서도 아내들이 올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설령 야만족이 패배한다 치더라도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내들이 구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으니까!

근데 이게 뭔데? 이게 뭐냐고!? 하하, 말도 안 되잖아! 걸어서 세 시간 거리인 숲에 5일 동안 아무도 안 왔다고? 14명이나 아내가 있는데 단 한 년도? 어떻게……어떻게 너희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냐……? 어떻게 너희가……!?

“혜린아……! 로라……!! 메이야……!!”

나와 함께 이 세상에 왔던 혜린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메이와 힘든 현실에 힘들어하던 로라.

그런 로라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던 메이.

“아이나……아이라……미카……!!”

나한테 마을의 미래뿐만 아니라 동생을 보고 싶다고 울던 아이나.

언니와 함께 있고 싶었던 마음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던 아이라.

잃어버린 눈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던 미카.

“안나……니나야……!!”

용병생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안나.

그런 안나와 지긋지긋한 현실에 염증을 느꼈던 니나.

“희진아……은채야……!!”

슈퍼 스타의 꿈을 꿨지만 혜린과 달리 밝은 스포트라이트의 빛을 받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던 희진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하던 은채.

“아스카……마리아……아테나……헬레나……!!”

괴물이었지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 아스카.

여왕인 마리아와 공주인 아테나.

두 명을 지키며 모두를 사모하게 된 헬레나.

그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그토록 달콤하며 아름다웠는데……모두와 함께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 숲에서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답해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깨달았다.

나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 작품 후기 ============================

웃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존나 오랜만이에요!

아이마스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졌지만 이 드립은 계속 써야 할 거 같아요!

웃우우우우우──웃!!

플로듀서, 점점 이 소설이 좆망하고 있어요!

코멘트는 남겨주시는 독자분 외에는 거의 없고 선작수도 점점 줄어가고!

재미도 없어지고 초심을 잃은 소설이 점점 좆망하는 게 보여요!

엑에에에에────엑!!!

플로듀서, 좆망이에요 좆망!

소설도 좆망, 스토리도 좆망!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작가님 인생도 좆망테크트리에요!

작가가 아니라며 변명하지만……그럼 이런 소설은 쓰지도 않겠죠?

좆 to the 망! 그게 작가의 인생이에요! 웃우우우우웃!

……

…………

……………… 예, 안녕하세요. 인생좆망테크트리 탄 작가, 신세린입니다.

오랜만에 쓰니까 힘드네요. 저도 힘들지만 소설 속의 세린도 점차 깨닫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5일 동안 그 누구도 안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프레그넌트와의 거리는 세 시간. 그것도 걸어서. 뛰어서 가거나 비행 or 텔레포트만 쓰더라도 쉽게 올 수 있는 거리를 5일 동안 안 오다니. 이걸 버림받았다고 해야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찌 됐든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배신. 흔히 장난삼아 말하는 통수크리 처맞으면 어떤 줄 아세요? 눈앞이 진짜 깜깜해집니다. 아, 세상이 샛노래진다는 표현도 있죠. 좀 다르긴 해도 비슷한 현상은 겪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도 분명 그런 경험하신 분 계실 겁니다.

통수 처맞으면 진짜 정신이 멍해집니다. 난 누구인가, 왜 여기 있나, 뭐 때문에 이런 일을 겪고 있나, 내 팔자가 이렇게 병신 같았던가 등. 진짜 온갖 생각이 다 올라오거든요. 그런 일 겪으면 진짜 소설 쓰기 힘들어집니다. 더 나아가 일 자체를 하기가 힘들어지죠.

정신이 나약해서 그렇다고요?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집안 폭삭 망하거나 믿는 사람들한테서 통수를 좀 처맞아봐야 정신을 차릴 겁니다. 정신이 나약하다든가 헝그리정신이 없다든가, 그딴 문제가 아닙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신뢰나 정신적 지주가 완전히 박살났다는 게 치명적인 거죠.

까놓고 말해, 생각을 해봅시다. 믿고 있던 사람이나 안정적이었던 일상이 개박살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그리 중요하게 안 여겼다는 거겠죠. 믿는 거나 좋아하는 거 없이 삭막하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시작된 싸움, 구하러 오지 않는 아내들, 고립된 상황. 이 상황으로부터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앞으로도 세린을 굴렁쇠 굴리듯 열심히 굴릴 테니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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