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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37화 (137/235)

00135 「14-4 : 왜 내 인생은 늘 이러냐……? (10)」 =========================

게임은 여러 장르가 있다. 전략 시뮬레이션, 대전격투, FPS, 퍼즐이나 보드 게임 등. 각종 다양한 장르 중 자기 취향에 맞는 걸 선택해 노는 것. 그게 바로 ‘게임’이자 ‘오락’이다.

오락이라니까 매일 전자오락실에 가서 뿅뿅하는 거라 생각하는데……그건 너무 편협한 생각이다. 그야말로 편견이지.

뭐? 전자오락실이 뭐냐고? 아뿔싸! 정말 안타깝다. 설마 내가 아저씨. 흔히 말하는 ‘아재’가 되다니! 아직 결혼도……아, 아니네. 생각해보니 결혼도 하고 아내도 14명이나 있으니 아재긴 아재군. 그치만 아직 아저씨라고 부를 나이는 아니라고! 빌어먹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전자오락실은 흔히 말하는 오락실(娛樂室). 게임 센터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한자나 우리말을 그대로 쓰는 걸 선호했기에 오락실이라 불렀지. 오락실에서 보드 게임을 하진 않잖아? 전자 오락기가 많으니 전자오락실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으슥한 오락실에서 돈을 빼앗거나 하는 놈들이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놈들이다. 스스로 거지라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원.

그러다 오락실 주인한테 걸리면 안 그랬다고 발뺌하지만 곧 강제퇴출 당하게 되지. 하아……옛날이라고 해서 정이 넘치는 그런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저씨들은 ‘나 때가 좋았다’, ‘나 때는 말이지!’ 같은 말을 자주 지껄이는데……그런 게 아저씨라고 한다면 나는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처지를 존중하고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노력과 희생만을 강조하는 아저씨 따위 엿이나 먹으라 그래라.

지금은 많이 없어진 오락실이다만 예전에는 엄청 갔었지. PC방이 나오며 점차 오락실 붐이 사라지기도 했기에 이런 저런 추억도 많은 곳이다만……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오락실을 몰아낸 주범은 PC방이기도 하지만 그 중 최고의 게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스타크래프트」였다.

10년 이상 사랑받았으며 지금도 PC방에 가면 있는 그 위대한 게임, 스타크래프트.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심지어 아저씨들도 한 번 정도는 해본 적 있는 그 게임! 한국인이고 PC방 혹은 게임에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해봤을 법한 그 게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갑자기 왜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꺼냈냐고? 어허, 잠시만 있어봐. 오히려 기쁠 거라 생각하는데? 맨날 섹스 판타지 같은 것만 나오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SF가 나오니까 좀 신선하잖아.

아, 물론 저그는 싫지만. 그런 놈들하고 만나긴 싫다. 촉수 괴물만으로도 충분히 짜증 만땅이라고!

스타크래프트에는 공격(Attack) 명령이 있다. 마우스로 클릭해도 되고 밑의 메뉴바에 있는 공격버튼을 눌러 공격대상을 지정할 수도 있다. 헌데 공격대상이 꼭 적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공격버튼을 눌러 대상을 ‘땅’이나 ‘건물’로도 지정할 수 있었다.

어느 장소를 공격 장소로 지정하면 그곳으로 가다 마주치는 적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기능이 있었기에 자주 애용되고는 했고, 공격 장소로 땅을 지정했기에 ‘어택땅’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게 되었다. 어원(語源)은 [어택(공격 ; Attack) + 땅(Ground)] 정도로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컨트롤 같은 거 몰라요 이히힛! 그냥 공격! 무조건 공격! 뒤지든 말든 공격! 으하핫, 공격이다!’라는……까놓고 말해 컨트롤 개무시하고 공격만 한다는 의미로 바뀌게 됐다.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컨트롤을 개무시하면 남는 건 죽음밖에 더 있겠는가?

내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한 것도 아니지만……최소한 병력을 다루는 거라면 전략을 가지고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공격만 찍어대다 다 죽으면 도대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의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캐릭터가 모조리 몰살당해도 즐거운 거라면 차라리 FPS게임을 하든가 다른 게임을 해야지. 서로의 전략을 겨루거나 자신만의 택틱스를 응용해 싸우는 게임에서 그런 짓을 하면 주변 사람들한테 게임 똑바로 하라고 욕 먹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략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해야 해서 그럴 수도 있고, 소중히 키운 유닛들이 갈려나가는 것에 희열(喜悅)을 느끼는 변태일 수도 있다.

사람 따라 취향이 다르고 성벽(性癖)도 다른데 그것 하나 이해를 못 해주겠는가?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니 그런 식으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응? 그런 사람이랑 같은 편 돼서 플레이해보라고?

니가 해라! 그딴 폭탄은 필요 없다고!

행동이나 말은 사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건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게임에서 어떻게 플레이하느냐, 어떤 경향을 보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알 수도 있다. 철두철미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깟 게임 대강 대강 하면 되지 ㅋㅋㅋㅋ’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철두철미함이 게임에 나타나는 사람, 게임 같은 건 적당히 즐기면서도 해도 된다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게임은 즐거운 거다. 그런 사람들과 붙으며 자기의 강한 점, 약한 점, 보완해야 하는 점 등을 알 수 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즐거우니까 노는 거다.

하지만 이것 또한 명심해야 했다.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FPS게임에서 총 맞으면 리스폰(부활)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죽는다.

리스폰? 하핫, 무슨 개소리를. 그냥 죽는 거다. 정말 아무런 전조(前兆)도, 징조(徵兆)도, 조짐(兆朕)도 없이 바로 사망. 끝. 라이프 오버(Life Over)다.

단순히 총 가지고 붙는 FPS게임이 그런데 전략 시뮬레이션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싸워야 하는 장르와 가장 닮은 현실은 역시 전쟁이나 부족 간의 전투겠지.

조폭? 하하, 걔들은 총 한 자루만 있어도 죽는 놈들이야.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나오는 애들이 조폭 같아 보이냐?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싸운다면 당연히 지도자는 거기에 합당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야만족의 마을을 거기에 대입한다면 안즈와 키리가 그렇겠지.

하지만 어제 들은 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야만족이 있는 이 숲(마을)을 지키는 최소 인원 외에는 모조리 전투에 나간다고 했다.

바보냐……!? 아니, 잠깐만.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은 겨우 100명이다! 숲에 있는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은 건가? 만약 이들이 다 갔는데 별동대(別動隊)가 와서 마을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생명의 씨앗을 써서 싸웠던 때와 달리 내 정자를 주입당한 현재는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 판명이 나지 않았다! 만약 그걸 실험했더라면 안즈와 키리가 다시 나한테 왔어야만 했지만……4일째가 되는 오늘날 점심때까지 그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내가 왜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것이다. 그래. 이건 어택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꼬라박기, 꼴아박기 등 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뜻은 같았다. 올인(All in). 모조리 칩을 거는 거다. 야만족의 미래와 동료들의 목숨이라는 칩을 이렇게 모조리 걸다니……바보냐?

날 납치한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괴물한테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죽는다 한들 누구한테도 득이 될 일은 없었으니까. 빌어먹을 괴물을 제외하고 말이지. 그놈들은 죽으면 좋다고 시체를 뜯어먹을……짐승만도 못한 놈들이었으니까.

난 그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고 간수는 친절함과 짜증을 담은 발차기를 내 배때지에 박아 넣었다. 수갑 때문에 제대로 배를 쥐지도 못한 채 컥컥 댔고 그녀는 한 번만 더 주제도 모르고 건방진 소리를 지껄였다간 정말 죽이겠다며 협박했다.

그 후에는 어떻게 했냐고? 입 닥치고 조용히 있었다. 여자들한테 그저 기계적으로 정액을 주입하며 이 분노를 어떻게 없애야 할까 싶었지. 과격하게 하반신을 들어 올리며 그녀들을 공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망할……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기는 아냐?

이런 상황까지 오니……오히려 웃겼다. 대체 왜 나는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하려 한 걸까? 얘들이 모조리 죽는다면 나도 죽을 테니까? 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간단히 말해서……나는 싫다. 누가 죽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내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전부 다!

목숨에 관련되면 이렇게 사람이 달라지는 이유? 그야……내 눈앞에서 사람이 무참하게 죽는 걸 봤으니까. 아직도 잊어지지가 않는다. 초록색 촉수 괴물한테 강간당하듯이 유린당하다 온몸이 찢기며 죽었던 그 여자! 난 계속해서 그때를 회상하며 나 자신한테 이렇게 되물었다.

[왜 그 여자를 죽게 내버려뒀어?]

신기했다. 그 머리 하얀 미친년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공격하다니. 그 정도로 그 당시 그녀를 구하지 못했던 죄책감은 컸던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난 답했지.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어. 그 여자가 살해당하는 걸 본 후에 몸이 움직였단 말이야. 난 전사가 아냐. 훈련받은 특수부대원도 아니고. 내 한 목숨 챙기는 것도 힘든……그런 병신이라고]

내 말은 방어적이며 소극적이었다. 어떻게든 ‘그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정당화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걸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변명이라는 게 참 웃겼다.

[그거냐? 그때 그 여자는 못 구했으니까 주변의 사람들 목숨을 구해서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려고? 그딴 짓 한다고 니 노력을 누가 알아줄 거 같냐? 당장 니 모습을 봐라. 니 꼬라지를 보라고. 넌 그냥 좆물을 짜이고 있는 병신이야. 누가 널 소중하다고 여겨줄까?]

와, 쩔어준다. 내면의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통렬하게 공격할 줄이야. 듣고 있는 내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 난 알고 있다. 이런 짓을 한다고 한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도 없고 죽은 여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근데 왜 노력하냐고?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지. 설령 죄책감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는 걸 희희낙락(喜喜樂樂)거리며 보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내가 살던 현대사회는 헬조선이긴 했지만 사람의 목숨을 막 죽여도 된다는 사상은 없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랬지.

“……그렇다고 내가 살던 세상이 좋다는 건 아니고.”

옛날 생각에 잠기는 건 나중에 하자. 이 여자들은 남자와의 관계를 처음 가지면서도 내가 생각에 잠겨 있거나 하면 곧바로 알아내 응석을 부리고는 했다. 거친 여자들이지만 밤일에서는 얌전해지는 아내들과 비슷했기에 곧바로 집중할 수가 있었고, 그런 일을 몇 번 하다 보니 저녁을 먹게 됐다.

저녁 먹기 전까지 20명을 상대했으니 이제 조금만 더 하면 100명을 채우게 된다. 하아……그치만 곤란하군. 모두 다 임신을 해버리면 분명 괴물과의 전투가 시작될 거다.

아기들을 모조리 낙태시켜 내 말을 듣게 하고 싶지만 이 빌어먹을 수갑 때문에 도망도 못 치는데……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직 싸움도 안 일어났는데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모두. 알고 있을 텐데? 내 불안한 예감이나 마음부터 시작해 모두가 생각하는 그것. 바로 그것 말이다. 그게 뭐냐고?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라는 이 생각! 이 빌어먹을 생각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작가부터 시작해 읽는 독자, 주인공인 나! 모두 다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것부터 시작해 ‘이것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겠지’라며 더욱 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생각 했다가 그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모두 다 알 텐데? 모를 턱이 있나! 과거, 현재, 미래 모조리 통틀어서 계속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일인데!?

그뿐만 아니라 성공한다 치더라도 나한테 보장된 미래는 없었다. 영원히 이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싫다! 그딴 건 싫다고!

괴물은 다 죽고, 야만족은 살아남고, 나는 집에 갈 수 있는 궁극의 엔딩! 해피 3단 콤보 세트 같은 건 없냐? 있으면 좀 주라, 내가 먹게 시발!

“너는 밥 먹을 때도 표정이 막 변한다?”

간수가 아닌 목소리에 번쩍 눈을 뜨자 그곳에는 안즈와 키리가 있었다. 오오, 세상에! 이렇게 딱 맞는 타이밍에 올 줄이야! 아주 잠깐이지만 얘들한테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 그럼 지금 왔겠냐?

“이제 20명도 채 안 남았지? 최대한 노력해달라고. 오늘 내로 끝나면 너도 당분간은 편해질 테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망할 년. 저 말을 들으니 다시 속이 부글거린다. 아아……난 왜 이딴 년들을 살려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걸까? 정말 호구 중의 호구군. 생각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우고 ‘알겠다’라는 말 한 마디로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이기든 지든, 뒤지든 말든. 그딴 거야 니들 사정이고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지.

그래도 두 명이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긴 걸 보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맞든 말든 조언 하나 해준다 치자. 똑똑한 지휘관이라면 부하나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바보짓은 안 할 테니까.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라고? 천만의 말씀! 싸움이든 폭력이든 간에 어디에든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우연에 걸려버리면 아무리 공들여 짠 계획이라도 순식간에 박살나기 마련이다.

내가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안즈와 키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들을 필요가 있었다.

“그, 저기……사실이야?”

“뭐가?”

이런.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이었군. ‘사실이야?’라니? 그 사실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다짜고짜 묻는데 누가 ‘응, 사실이야’라고 대답할까?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바보 같은 실수도 다 저지르는군.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질문했다.

“정말로 내일 괴물들이랑 싸울 거야?”

“어. 그럼, 걔들이랑 춤이라도 출 줄 알았어?”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하지 마라. 나 답답해 돌아가신다.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그럼 또 때릴 거 같았기에 다른 질문으로 분노를 풀기로 했다.

“배가 능력을 써보긴 했어?”

“응. 잘 되던데? 너한테는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 거의 80~90명 이상의 야만족이 배가 능력을 가지고 덤비는데 그 괴물 새끼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직 나는 싸워보지 않았지만 경험자가 저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한편으로는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는 슬펐다. 기쁜 건 그나마 도움이 됐다는 거지만 슬픈 건……난 정말 어디까지나 ‘도구’로 사용됐다는 점이지.

“생명의 씨앗을 사용했을 때랑 다른 점 없었어?”

“아까부터 왜 그딴 걸 묻냐?”

당장에라도 입을 닥치고 ‘시발, 뒤지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해라!’라고 큰소리를 치고 싶었지만……그래. 이게 마지막이잖아. 어차피 싸우러 나간 후에는 말을 못 할 테니까 지금 묻고 싶은 걸 묻자.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도.

“불안해서. 생명의 씨앗이랑 내 아기 씨앗은……배가 능력을 쓸 수 있는 시간에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러자 키리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저년이 뒤질라고……남은 걱정해서 이런 말 하는데 넌 비웃냐? 하아……그래. 내가 멍청하고 바보고 호구였다. 뭐가 좋다고 이런 여자들을 걱정했담? 안즈의 태도 또한 비슷했기에 빨리 할 말이나 하고 꺼지라고 생각했다.

“남 걱정보다는 니 걱정을 해야 하지 않겠어? 이 싸움이 끝나지 않는 이상 너는 집에 못 갈 텐데?”

“끝나면 돌려보내줄 거야?”

내 소망을 대놓고 표현하자 그녀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싸움의 결과와 니 행동 여하에 따라서 말이지.”

영원히 안 돌려보내겠다는 말이군. 결론 났다. 내 불안한 마음은 정말 딱 들어맞았다. 마음을 읽는 능력은 없었지만 안즈의 저 말과 태도로 보건대……날 돌려보낼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아마 배가 능력뿐만 아니라 야만족의 번성을 위해서 날 아주 뼛속까지, 영혼까지 써먹겠지.

“묻고 싶은 건 그거뿐이야? 뭐어……빠르면 내일. 만약 니 상태가 안 좋아도 모레면 출진(出陣) 준비가 끝날 테니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물어봐. 대답할 수 있는 거면 대답해줄게.”

정말 잘난 척하는 말투다. 마치 ‘ㅋㅋㅋ위대한 나님께서는 미천하고 병신 같은 너님의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음ㅋㅋㅋ’라고 말하는 거 같군.

내가 임금이긴 하지만 저딴 말투는 쓰지 않았고 행동도 저런 식으로는 안 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거기에 어울리게 행동을 해야지.

방글거리며 웃고 있는 그 면상에 강화 마법 건 주먹으로 힘껏 후려갈기고 싶었지만……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난 고개를 젓고는 묻고 싶은 걸 물었다.

“왜 그렇게 단숨에 결판을 내려는 거야? 그렇게 있는 병력을 모조리 데리고 나갔다가 전멸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별동대가 있을 수도 있잖아.”

질문은 가장 불안한 것부터. 전멸 및 별동대의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건 아니겠지?

“별동대……? 무슨 헛소리야? 그 괴물놈들한테 그런 지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배가 능력만 있으면 확실히 죽일 수 있는 놈들이라 했지? 반대로 말하자면 놈들은 배가 능력 없이 죽이기는 어려워. 자기들한테 있어서는 우리가 식량이나 다름없는데 별동대 같은 걸 만들겠어?”

설득력은 있지만 그걸 뒷받침하기에는 근거가 너무 모자랐다. 겨우 저런 자신감 하나로 마을의 모두를 데리고 나가려는 건가? 코로 한숨을 쉰 후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배가 능력을 싸우는 도중에 쓸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넌 걱정도 팔자다. 말했잖아. 이미 실험이 끝났다고.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안심해.”

머저리 같은 년……. 이쯤 되니 난 그들의 실패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도구며 노예라지만 계획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곳에서는 ‘너는 앞으로 모를 테니 알려주지’라며 온갖 계획과 뒷사정을 떠벌리는데 난 이게 뭐야? 정보통제나 먹으라는 말이냐? 어휴, 좆같아서 원.

“너랑 키리는 이 마을의 지도자……같은 거야?”

“임시적이지만 말이지. 오래된 야만족은 대부분 죽었어. 우리를 지키려다 말이지.”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시궁창에 떨어지니 별로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렇게 소중하면 알아서 지켰어야지. 이제 와서 내가 ‘흑흑, 불쌍하구나……앞으로도 정액을 많이 만들어낼게!’라며 눈동자를 반짝일 거 같았냐? 지랄 뽕을 뽑아라…….

“솔직히……이렇게 단시간에 야만족 대부분을 임신시킬 거라는 생각은 못 했거든. 그런 면에서는 너한테 감사하고 있어.”

“캡슐을 만들면 더 빨리 할 수 있었어.”

“오우, 그건 안 될 말이지. 넌 딱 봐도 마법사 타입이거든. 마법사란 놈들은 뒤가 구린 놈들이라……괜히 놔뒀다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말이지. 그럴 바에야 힘들지만 몸을 섞어서 아기 씨앗을 얻는 게 좋거든.”

미친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사상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 덕분에 좋은 걸 알게 됐다. 내 생각이 정확하다면……그녀들의 반격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다름 아닌 그녀의 판단 때문에 말이다. 어떻게 그런 걸 아냐고?

안 좋은 생각은 나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니거든.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늘 나한테만 벌어져야 한다는 법칙은 없었으니까. 생명의 씨앗과 내 정자의 차이. 그게 바로 그녀의 패착(敗着)이 될 거 같았다.

“키리는 아무리 봐도 너랑 성격이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묻고 싶은 것들 중 원하는 데이터를 다 모으자 여유가 생겼다. 그녀와 키리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던 것도 마음에 걸렸기에 바로 물어봤다. 그녀들이 패배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간이 답해줄 테니까.

“그야 다를 수밖에. 쟤는 캡슐을 쓰자는 쪽이었고 난 아예 너를 잡아오자는 쪽이었거든.”

그 소리를 듣자 정말 눈물을 흘리고 싶어졌다. 아니, 캡슐을 쓰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었고 내가 이렇게 시궁창 같은 곳에서 허리를 흔들어댈 일도 없었을 텐데, 이 빌어먹을 안즈년은 왜 나를 납치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걸까?

“왜 너를 납치했는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니까 가르쳐줄게. 니가 말했잖아? 싸우는 도중에 배가 능력을 쓸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랬지. 넌 그럴 걱정이 없다 했고.”

기억력 좋다며 추임새를 넣은 안즈는 다시금 건방진 웃음을 띤 채 입을 열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봐. 싸우는 도중에 캡슐이 다 떨어지면? 밖에 나가서 사와? 괴물들이 ‘캡슐 부족하니까 사와, 기다려줄게’라고 말이라도 할 거라 생각해?”

……그렇군. 내가 생각했던 것을 쟤들이 생각 못 했을 리가 없지. 효율적인 면에서 볼 캡슐은 내가 직접 정액을 주입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편리한 것이었다. 그냥 먹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캡슐의 재고가 떨어진다면?

만들 수도 없고 사러 갈 수도 없다.

해결책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편리함 부분에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위급한 상황─캡슐이 떨어진다거나 배가 능력을 너무 써 아기가 유산(流産)된다거나 하는─이 된다면 퇴각해 다시금 나로 하여금 임신 상태를 만들 생각이었다는 거군.

그 치밀한 생각도 놀라웠지만 다시금 안타까웠다. 밝은 세상을 보기는커녕 어머니인 야만족으로부터 사랑조차 못 받은 채 죽어갈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더 묻고 싶은 게 있냐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물을 것도 없거니와 묻는다고 한들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남은 여자들한테 빨리 정액을 주입하라는 그 말에 알겠다고 하니 이제야 고분고분하게 말을 알아듣는다고 좋아하더라. 개 같은 년들.

아마 실패로 끝날 거 같고, 실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기분이 좀 홀가분해졌다. 남은 여자들을 차례로 안으며 그녀들의 실패를 바랐지만……한편으로는 그녀들의 죽음을 바라는 일이었기에 나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들이 죽는 걸 바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그치만……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죽음조차 이용하려는 내 모습이 나를 납치해서 멋대로 쓰는 그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납치나 범죄 행위 같은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은 없기에 사실 그 생각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 그들은 범죄 행위에 준하는 행동을 저질러 나를 데려와 이 짓을 시키고 있지.

하지만 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들한테 빚진 것도 없었다. 즉, 나는 정말 이들한테 미안할 것도. 그들을 생각해줄 이유도 없었다.

나도 정말 좆병신 호구 새끼군……. 당장 내 목숨 걱정해도 모자랄 판에 이 여자들 걱정할 팔자냐?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다시 섹스에 집중했다. 걱정은 걱정, 미래는 미래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일에나 집중하자.

생각이 마치자마자 다시금 정액이 발사된다. 부르르 몸을 떠는 야만족을 끌어안은 채 지금만큼은 뇌를 녹이고도 남을 거 같은 이 쾌감에 몸을 맡기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걸 해결해주는 요소는 시간이었으니까…….

============================ 작품 후기 ============================

무능한 아군은 용맹한 적군보다 무섭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무능하면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간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이등병보다 더 두렵겠죠. 의미도 없고 성과도 모르는 병신짓을 좋다고 시킬 테니까요.

군대 이야기가 계속 돼서 죄송합니다만, 최근 집안사정이 많이 안 좋아 웃우우웃!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후기도 점점 어두워지게 되네요. 본편도 분위기가 좋지는 않지만 후기까지 이러니 우중충한 기분이 듭니다.

여하튼, 군대에서 주의해야 하는 건 인간관계. 병사들 간의 인간관계도 중요합니다만 간부와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괜히 간부한테 밉보이거나 눈 밖에 나면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간부는 본인 의사로 병사를 부려먹을 수 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그뿐입니까? 좋은 사람이 있을지, 병신 같은 선임이나 간부가 있을지는 모조리 운빨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운이 좋았나 나빴나 고민하시는 분들. 군대에 가면 잘 알게 됩니다. 싫어도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안 느낄 수가 없거든요.

저요? 전 보통보다 약간 낮은 정도였습니다. 때리는 사람은 극히 적었지만 동기가 워낙 많아 여러 모로 안 좋았거든요. 2~3명이라면 모를까 5명 이상 동기가 있으니 ‘니 군번 문제 많더라’라는 말 많이 들었거든요.

도움도 안 되는 동기에 텃세나 부리는 선임. 중대장은 병신짓 하다가 소원수리 당해 돌고 돌아 온 곳이 저희 대대였습니다. 물론 저희 대대에서도 병신짓했었죠. 제 평생 그런 또라이는 처음이었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네요.

내려간 지역, 보직, 인간관계, 훈련의 강도 등. 슈퍼운빨대전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네요. 슈퍼로봇대전에서는 그나마 강캐나 개캐라도 있었지, 현실에서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실로 시궁창.

그나마 직접 때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훈련의 강도가 셌던 적도 그리 많지는 않았었습니다. 전방이나 특수부대 같은 곳보다야 훨씬 괜찮은 곳이었습니다만……차마 ‘꿀 빨며 군 생활했다’라고는 말하기 어렵네요.

아직 군대 안 가신 분들은 가능한 한 좋은 곳에 가시길 바랍니다. 이 빌어먹을 슈퍼운빨대전에서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고르는 걸 목적으로 두시면 더 좋을 겁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로리콤MK님, 항상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인sv님과 로리콤MK님이 아마 가장 많은 댓글을 다신 독자이실 겁니다. 예? 로리 캐릭터는 언제 나오냐고요?

……흐, 흥! 착각하지 말라구! 딱히 아청법과 깜방 생활이 무서워서 로리 캐릭터를 안 적는 게 아니니까! 쭉쭉빵빵한 여성들로 독자분들의 눈과 하반신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그러는 거니까……뭐, 뭔데? 왜 히죽히죽 웃는 건데? 아이~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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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제가 적고도 역겹습니다. 앞으로 이런 짓 안 하겠습니다.

Sfak님, 인격 부분에서는 좀 고민했습니다. 최근에는 인격 부분에 대한 것이 안 나왔습니다만 '명색이 「자지의 맹세」인데 좀 개사기 성능 좀 넣어줘야겠지?' 싶어 인격 조작을 넣었습니다.

후반부에 가서는 그 인격조작에 대한 사실이 나옵니다만, 초반에는 조작당한 성격 그대로 행동하는 혜린의 모습이 나옵니다. 차차 후반부로 가시면 인격에 대한 정보를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코멘트 달아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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