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4 「13-3 : 약 한 사발 거하게 빨고 적는 특별편 (上)」 =========================
“하아, 하아……!! 드, 드디어 물리쳤어!”
난 3류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는 ‘드디어 복수를 갚았어!’라고 외치는 캐릭터나 할 법한 대사를 지껄였다. 내 밑에는 쓰러진 백발(白髮)의 여자가 몸을 꿈틀대며 차가운 바닥을 경험하고 있었다.
“으, 끅……흐아아아앗! 드디어 이겼다고! 내가 이 미친년을 이겼어! 이겼다고!”
난 손을 들고 힘껏 외쳤다. 이 어찌 소리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 13-3편이니 133편! 지금까지 132편 동안 날 엿 먹이고 물 먹인 것도 모자라,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의 주범이자 원흉이었던 머리 하얀 미친년을 드디어 쓰러뜨렸는데! 어떻게 감격의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드디어……드디어 이 ‘하렘 어드벤처’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거야……!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라고!”
앗. 이런 걸 지껄이다가 죽은 엑스트라가 한두 명이 아닌데. 그런 걸 생각했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격해지면 말을 많이 하듯이 내 이성은 멈추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본능은 입을 지껄이게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와 아내들, 이 세상을 니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겠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안 될 거다! 여기서 넌 죽을 테니까!”
“으, 큭……이건 말도 안 돼……!!”
내가 맛 간 소리를 하는데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쟤도 참 웃겼다. 아니, 그럴 때는 ‘시발, 빨리 죽여 병신아’ 같은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몸은 마치 누군가 조종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서슬 퍼런 칼을 그녀의 목에 댄 채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냐? 유언 정도는 들어주마.”
이건 완전 악당이나 할 법한 대사잖아! 난 명색이 주인공인데! 이 ‘하렘 어드벤처’의 주인공이라고! 왜 내가 3류 악당이나 지껄일 법한 사망 플래그 대사를 뱉는 건데?
“나를……해도……!”
“뭐?”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짜증인 것도 모자라 3류 대사를 연달아 내뱉는 것에 확 엎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그녀의 입에서 유언이 나왔다. 뭐? 다시 한 번 말해봐.
“나를 쓰러뜨려도 제2, 제3의……!”
“아, 씨발! 걍 죽어!”
칼로 모가지를 서걱. 그걸로 끝이었다. 엄청난 양의 피가 나오며 땅바닥, 목, 그녀의 목덜미를 더럽혔다. 살짝 분수처럼 치밀어 오르는 피가 얼굴에도 튀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내가 싸이코 패스라서 그런 것도……어. 없지 않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만. 지금까지 하도 엿을 먹여서 그런지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죽어버린 그녀를 보고서도 짜증이 났다. 뭐? ‘나를 죽여도 제2, 제3의……’라고? 그 후에는 안 봐도 뻔하지! ‘나를 죽여도 제2, 제3의 자객이 올 것이다!’라는 헛소리나 찍찍 지껴대고(지껄여대고) 앉았겠지! 시발, 어떻게 죽기 전까지 나를 빡치게 만드냐!?
분노도 잠시. 난 주변을 둘러봤다. 그래, 난 이겼다. 날 지금까지 가지고 놀던 절대자와 싸워 이긴 것이다! 으하핫! 그래, 이제 세상에는 평화가 퍼질 것이다! 모두 행복을 만끽하겠지! 난 그 속에서 아내들과 함께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음홧홧핫! 데퍄퍄퍄퍄퍗!
“……그런 스토리로 흘러갈 줄 알았냐?”
“어, 어!? 뭐, 뭐야!? 왜 너 살아있냐? 모가지 잘랐는데!?”
피를 철철 흘려 옷이 시뻘개진 것도 모자라 목까지 달랑달랑한 여자가 일어서다니! 난 공포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아, 아니지! 여긴 판타지 세상이니까 저렇게 살아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좀비영화도 있는데 저렇게 반쯤 죽다 살아난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나를 쓰러뜨리고 해피 엔딩을 맞이할 거라 생각했냐? 유☆감! 잔(残)★넨(念)! 이건 작가가 약 한 사발 거하게 빨고 적는 특별편이었습니다! 따라서 너랑 나는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고, 이건 꿈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단다? 꺄하하핫!”
“뭐, 뭐라고……!?”
난 믿을 수가 없었다. 꿈? Dream!? 그럼 이 이야기(13-3)가 시작됐을 때부터 내가 겪었던 모든 건 꿈이란 말인가? 환상? 현실이 아니라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참을 수가 없는 분노가 터져버렸다.
“시, 시바아아아아아────────알! 이건 아니지! 이건 아냐! 작가! 작가!”
난 허공에 대고 작가를 불렀다. 시커먼 공간에 서있는 나와 저 미친년. 두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작가를 불러대다니. 내가 봐도 좀 미치긴 미친 거 같았다.
하지만 그게 어쨌든 말인가? 작가를 부를 정도로 내 분노는 컸다. 지금까지 쌓아온 게 단숨에 폭발한 느낌이랄까?
“오냐. 작가 여기 있다. 왜 불렀냐?”
우리 앞에 나타난 작가는 어딜 봐도 특징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난 안다. 평범하게 생긴 주제에 「S.A.O - 마법사 이야기」 같은 맛 간 팬픽부터 시작해 「하렘 어드벤처 - 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 같은 맛 간 변태적인 소설을 마구 적은 미친 남자! 저게 바로 작가놈이다!
“이 이야기를 적고 있는 작가한테 진짜 디스 한 번 쩔어 주는구만……. 명색이 작가인데 좀 더 깍듯하게 대해주지?”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날 이 지경까지 만들어놓고 이런 특별편에 와서야 모습을 드러낸 주제에 어떻게 저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분노로 머리가 돌아버릴 거 같았지만 그럼 저 미친 여자와 작가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었기에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뭐? 깍듯? 깍듯하게 대할 가치가 있어야 깍듯하게 대하지! 지금까지 날 엿 먹이고 물 먹인 것도 모자라 이런 특별편에서까지 나를 우롱하다니! 작가고 뭐고 없어! 이젠 그냥 확……!”
얼마나 빡쳤으면 작가한테까지 칼을 휘두르려고 했을까? 내가 봐도 무리수였지만……상관없다! 지금까지 당한 게 얼만데!? 여기 와서 괴물 만난 것부터 시작해 온갖 수난을 다 겪었다! 살다가 이 나이에 납치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당한 걸 다 합쳐서……이자까지 쳐서 확실하게 되갚아주마!
“잠깐!”
“……!?”
작가를 향해 돌격하려는 순간, 작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뭐, 뭐지?
“날 죽일 수 있을 거 같냐? 난 작가야. 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고작해야 글로 이루어진 너한테 살인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겠냐?”
“살인을 못 하니까 기분이나 맛 봐야지! 시발 자기 소설의 주인공을 이렇게 굴려대는데 누가 널 존경하겠냐 시팔놈아!”
“있는데? 야, 세린아!”
내 이름을 부르자 그의 옆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저, 저건……!
“너, 너는! ‘하렘 어드벤처’를 쓴 이후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소드 아트 온라인 팬픽의 주인공, 신세린!?”
나와 같은 이름에 비슷한 설정을 보니 작가가 얼마나 설정 짜기가 귀찮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치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이, 이럴 수가! 팬픽의 신세린을 불러내다니! 이거 다른 작품인데?
“내가 쓰는 작품이니 관계없단다. 자, ‘마법사 이야기’의 주인공, 신세린. 이름이 겹치니까 마법사 세린이라 부르지 뭐. 우리 마법사 세린은 뭐 할 말 있지 않냐?”
초췌하게 변한 마법사 세린은 작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날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전투의사가 없는 건 확실했지만 저놈도 마법사. 마법으로만 치자면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전투에 적합한 마법도 더 많았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천천히. 하지만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를 향해 칼을 휘둘러야 하나 고민하던 것도 잠시. 그는 내 앞에 서더니 입을 열었다.
“……바꿔줘.”
“……뭐?”
바, 바꾸긴 뭘 바꿔?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불만과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그는 외쳤다.
“나랑 바꿔달라고 시발! 난 아스나 돌보랴 보스 죽이랴 고생 이빠이 만땅인데 넌 5백 명 넘는 여자랑 섹스하면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이제 와서 작가한테 불만을 표출하다니! 시발, 아스나랑 섹스도 못 한 나를 비웃는 거냐 이 빌어처먹을 개새끼야!”
“……서, 설마……!”
난 설마 싶어 작가를 봤다. 아냐. 그럴 리는 없어. 아무리 작가 새끼가 인간이 덜 됐다고 하지만 설마 ‘그런 잔인한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이런 내 소망을 무시하듯 작가는 사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 ‘설마’란다. 이 ‘하렘 어드벤처’를 쓴 이후로 ‘소드 아트 온라인 - 마법사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다.”
“……!!”
몸서리를 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 그 말인즉슨……!?
“눈치가 빠르군. 그래. 지금도 아스나는 디어벨과 마법사 세린을 BL 소재로 삼아 열심히 망상이나 하고 앉아 있고, 명색이 주인공인데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되니 아스나랑 19금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몇 달이나 지나가버린 거지.”
“……으, 아아! 이 악마! 어떻게 그런 짓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소드 아트 온라인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의 팬픽을 쓰게 된다면 모두가 바라는 그 19금씬! 정사(情事)라고도 하고 섹스라고도 불리는 그 행위를 하기 마련인데 그걸 안 적다니! 그것도 모자라 몇 달씩이나 정지 상태라고? 연재 정지 상태라고!?
“자기 팬픽은 적히지도 않는데 실시간으로 열심히 진행되다 못해 여자랑 섹스 삼매경인 니가 하도 배부른 소리를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래서 불러왔지. 그래, 기분이 어떠니 마법사 세린?”
“기분 줫 같습니다! 시발! 시팔! 시벌! 시볼! 시불! 씨바아아아아알! 소설 참 좆같이 쓰네!”
바둑으로 유명한 이세돌과 구글의 알파고가 붙었을 때 ‘바둑 좆 같이 두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는 했는데 이젠 팬픽 캐릭터가 작가를 디스하는구나. 나를 욕하는 건지 작가를 욕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분노에 가득 찼다는 거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둘 다거든!? 시발 뭐? 특별편에서까지 우롱을 해? 야 이 씨발놈아! 난 아예 진행 자체가 안 되어서 특별편이고 지랄이고 아무것도 못 해! 아스나랑 같이 있는데 19금 진행이 안 되는 기분을 니가 알아? 당장 내 하반신은 언제든지 섹스 스탠바이인데 작가가 안 적어서 진행이 안 되는 기분! 그 피 말리는 느낌을 니가 아냐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소드 아트 온라인의 아스나와 함께 지내며 19금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니……!!
“그, 그건 너무 괴로운 일이잖아……!!”
그의 마음을 너무나 단적으로 표현하자 마법사 세린은 목청을 더욱 크게 올려 욕한다.
“이해가 가냐, 썅놈아! 너 때문에 작가가 다른 거 쓸 시간이 없어졌어! 특별편? 특~별~편? 이런 똥통에 익사시켜 죽여도 시원찮을 새끼를 보았나? 지금까지 질펀한 섹스 파티를 벌여 즐길 거 다 즐기다가 이제 와서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되니 욕하는 꼬라지라니!? 시발 왜? 굶어죽을 거 같은 사람 앞에서 ‘아, 배 너무 부르다! 뭐? 푸아그라? 그런 거 안 먹어!’라고 지껄여보지!? 이 망할 놈아!”
난 나를 향해 마구 욕하는 신세린(마법사)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저 욕을 들은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까.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지며 마음껏 누릴 걸 누렸던 내가 이제 와서 작가한테 투정을 부리는 건, 신세린(마법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가 차다 못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웃긴 일이었을 테니까.
“그……미안하다.”
“시발, 미안하면 바꾸자고! 너 지금 상황 마음에 안 들잖아!? 내가 너랑 바꿀게! 가서 3천 궁녀를 뛰어넘을 정도로 하반신 박을 거니까 바꿔! 바꾸라고!”
“그, 그건 좀……. 아직 중반부가 막 시작됐을 뿐이고…….”
“비겁한 변명입니다! 지금까지 누릴 거 다 누리다가 스토리 진행 좀 안 되니까 작가부터 부르는 본새 보십쇼! 비겁한 변명입니다!”
아, 저 새끼를 그냥! 실미도 흉내 내듯이 이상한 말투로 날 비난하다니! 불난 집에 휘발유랑 경유랑 등유를 철철철 처부어 대는구나! 이제 마법사 신세린의 눈에서는 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흑흑……바꿔줘! 바꿔달라고! 나도 아내랑 섹스해보고 싶어! 딸이자 아내인 여인과 하나가 되며 ‘헤헷, 너의 몸 안은 매우 아늑하군! 내 아기 씨앗을 듬뿍 뿌려주마!’라고 말해보고 싶다고!”
“아니, 넌 스토리 진행이 부러운 거냐 아니면 19금 정사씬 찍는 게 부러운 거냐!?”
여자들이랑 사랑을 나누며 던질 대사까지 준비한 걸 듣자 어이가 없었다. 대체 뭐가 부러운 거냐?
“둘 다! 넌 만족하다 못해 아주 배가 불렀으니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거야! 내가 니 대신 아내들을 어루만져줄 거라고!”
참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난 곧바로 반론했다.
“안 된다 이 악마야! 메이랑 니나랑 아테나는 내 딸이다! 내 딸이자 아내는 내 거라고! 내 아내들한테는 손끝 하나 못 대니까 그렇게 알아!”
“작가 죽이고 싶어 했잖아! 그럼 싸워! 내가 대신 갈 테니까!”
“아, 왜 내 말을 못 알아 먹냐 씹새끼야!? 내 아내들한테 손 못 댄다니까!? 야, 작가 새끼야! 계속 히죽거리지 말고 뭘 좀 어떻게 해봐! 니 나태함과 게으름이 불러 온 결과를 나한테 들이대지 말란 말이다!”
“흑흑……으허어엉……!!”
결국 마법사 신세린은 주저앉아버렸다. 원래 남자가 이렇게 울면 추하다, 남자가 뭐 저래 라며 욕하기 마련이지만 난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라도 자기가 나오는 팬픽이 6~7개월 중단된다면 이런 반응을 보일 테니까.
“이해해라. 팬픽이 진행이 안 되다 보니 마법사 세린이가 많이 날카로워져서 그래.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안타까운 일이야.”
“아니, 니놈 탓이거든요? 작가 니놈 새끼 때문에 이렇게 된 거거든요!? 뭘 그렇게 방관자 입장으로 보고 있냐? 니 탓이라니까? 야, 내 말 듣고는 있냐!?”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해질 수 있단 말인가!? 자기가 안 적어 놓고는 그걸 남 탓처럼 이야기하다니! 저 뻔뻔함과 오만함! 역시 이 작품의 작가답다! 암, 안 그러면 대낮부터 여자를 강간한다거나 하는 미친 짓은 상상도 못 하겠지!
“칭찬이냐?”
“욕이다, 이 망할 놈아! 날 엿 먹이고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다른 작품의 신세린까지 괴롭히다니! 넌 진짜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냐!?”
내 정의(正義)를 품은 지적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저 새끼가……!
“……야, 너 너무한 거 아니냐?”
그는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목이 잘려있던 미친 여자 또한 어느새 멀쩡한 상태로 함께 걸어온다. 특별편이니 내가 죽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날 향해 걸어오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너, 너무하다니……?”
오히려 내 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이 작가의 입에서 나오자 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저게……? 내 앞까지 온 그는 세린을 토닥이며 날 본다. 그 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의 의미지. 야, 너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방금 마법사 세린이 너한테 바꿔달라 했잖아. 그래서 넌 뭐라 했냐?”
“그, 중반부가 시작됐으니까…….”
“대놓고 말해 임마. 그냥 ‘못 바꾼다’라고 말하면 되잖아. 독자도 알기 쉽고 너도 간편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이 얼마나 간결하고 좋냐?”
자기 정리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내 생각을 무시한 채 작가는 계속 입을 놀려댄다.
“내가 왜 너한테 너무하다고 했는지 알아? 야, 너 정말 너무하다. 이 특별편에서 니가 날 불렀지? 왜 불렀냐?”
“그, 그거야……스토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는데 이런 특별편에서까지 날 엿 먹이니까…….”
내 말이 끝나자 작가와 머리 하얀 미친년은 킥킥댔다. 이 연놈들이 진짜…….
“그게 바로 너무하다는 거지! 야, 정말 못됐다 너……. 날 욕하면서 주인공 자리는 못 바꿔주겠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작가의 말에 난 주춤했다. 그, 그건…….
“나 욕하고 작품 형편없다고 디스하면서 니가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려고 한다는 뜻이잖아! 나한테 막말, 쌍욕, 폭언을 날리면서도 ‘그래도 난 주인공이니까 이렇게 해도 돼! 이럴 자격이 있어! 이 특별편이 끝나면 다시 아내들이랑 질펀한 섹스를 즐겨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답이었으니까.
“그뿐이야? 마법사 세린이 바꿔달라고 했을 때 넌 끝까지 싫어했잖아? 아, 그래. 물론 사람이라면 자기가 가진 걸 남한테 내주기 싫은 건 당연한 거지! 근데 넌 좀 심하지 않냐? 내가 널 엿 먹였다고? 그래, 엿 먹였지. 주인공이라지만 무조건 좋은 경험만 할 수는 없으니까! 근데 생각해봐! 그 고생과 시련 속에서 니가 얻은 것들을!”
“내, 내가 얻은 건…….”
많았다. 우선 14명의 아내. 이혜린, 로라, 메이, 아이나, 미카, 안나, 니나, 아이라, 항희진, 박은채, 아스카, 마리아, 아테나, 헬레나. 그 외에도 마법이나 아이템 등 많은 걸 손에 넣었고, 레이 시리즈와도 즐겨댔지.
“이제 알겠냐? 다른 작품의 주인공이 진행도 못해서 허덕거리고 있을 때 넌 얻을 거 다 얻고, 즐길 거 다 즐기고. 온갖 걸 다 누린 주제에 이제 와서 니 마음에 좀 안 든다고 깽판을 부리다니. 그러면서도 니 자리에는 있고 싶다 이거잖아? 와, 놀부 심보 쩔어주네요?”
“아, 아……!!”
변명의 요지조차 없었다. 특별편이라는 이름을 가장해 작가가 나를 아주 박살내려고 작정을 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지. 너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줄 아냐? 나도 있거든? 시발, 너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기는 아냐? 근데 이 최종보스한테 괴롭힘 좀 당한다고 울먹대며 작가 욕을 하다니!”
앗, 옆에 있는 머리 하얀 여자는 최종보스 맞구나. 대놓고 말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흑막(黑幕)이기도 했고 미스테리어스한 느낌을 물씬 풍기던 그녀가 순식간에 ‘최종보스’라고 이마에 딱지를 붙인 느낌이 든다.
“지가 누리고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안 하면서 자기가 모자란 거에는 존나 민감하지!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너무하잖냐! 마법사 세린이랑 비교해봐!”
훌쩍대며 우는 신세린(마법사)를 보니 미안했다. 뭐라 말할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비교할 가치도 없지! 겨우 20편 남짓 적은 소드 아트 온라인 팬픽의 6배 이상의 분량! 팬픽에서는 나오지 않은 19금씬이 가득! 팬픽에서는 그나마 썸을 타는 여자가 아스나 한 명인데 너는 14명의 아내부터 시작해 아주 삼천궁녀를 능가하고 남을 문란함! 야아, 내가 말해놓고도 민망하네! 비교가 되어야 비교를 하지!”
이젠 아예 OTL 자세가 되어 주먹으로 바닥을 친다.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야기를 끝내는 건 작가지 내가 아니었으니까.
“목숨 위협 받는 게 참 좆같은 건 아는데……그래도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지! 아무것도 없는 애 앞에서 아주 패션쇼부터 시작해 니가 가진 재산 목록까지 훤히 보여주면서 부자 인증을 하면 어떻게 하냐?”
“그, 그건……작가님이…….”
어느새 나는 작가를 ‘작가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고 내가 했던 행동은 확실히 오만했었다. 작가도 쭉 안고 있던 감정(주로 분노)이 터진 건지 점점 목청을 올렸다.
“내가 적긴 했지만 그래도 자중을 좀 했어야지! 오죽하면 내가 이렇게 특별편에 나와서 디스를 하겠니? 넌 니가 나를 디스하고 있다고 느끼겠지만 정 반대거든? 내가 너를 디스해도 모자랄 판이거든? 어휴, 내가 니놈 19금 장면 묘사한다고 개고생한 걸 생각하면 진짜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뭐? 작가놈? 진짜 주인공 확 바꿔줘!?”
“바꿔주세요! 작가님! 전 작가님을 믿습니다!”
“아, 쫌 놔라 임마! 넌 어떻게 된 게 소드 아트 온라인 팬픽에서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맨날 나한테 매달리냐!? 야, 바지 안 놔? 안 놔? 벗겨진다고 미친 새끼야! 남자놈 팬티랑 자지 보고 싶냐!?”
눈물을 흘리던 신세린(마법사)은 어느새 그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채 애원을 하고 있었고, 작가는 그런 세린을 차마 발로 찰 수는 없었던지 폭언을 던지며 떼려 하고 있었다.
폭언의 내용은 ‘시발, 리즈벳이랑 시리카 19금 씬 안 적어준다’, ‘그런다고 공천 못 받는다’, ‘리파랑 스구하 적으려면 SAO부터 클리어해야 하는데 나 죽는다 썅놈아’ 등등.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도 몇 개 있었다만 그보다 더 황당했던 건……. 소드 아트 온라인 팬픽 때도, 여기서도 그랬다는 건 최소 한 번 이상 바짓가랑이를 잡고 실랑이를 벌였다는 사실인데……. 저 신세린도 그렇거니와, 나도 그렇거니와. 대체 어쩌다 이런 미친 작가 밑에서 탄생하게 됐을까?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은근슬쩍 디스(Dis ; Disrespect를 나타내는 말. 비난 행위를 나타낸다)하는 거 그만하지? 그런다고 니가 복에 겨운 줄 모르고 막 날뛰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거든?”
“……죄송합니다.”
누가 자기 욕 아니랄까봐 귀신 같이 잡아낸다. 신세린(마법사)은 ‘정말이죠? 정말 19금 씬 적어주는 거죠? 우후훗~! 앗싸아아! 웃~우우웃!’이라며 지랄 발광을 하고 있다. 그걸 본 소감?
……나, 행복했구나. 오리지널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만나 사랑도 나누고, 결혼도 하고. 게다가 그 내용은 벌써 130편을 넘어갔고.
어딜 보더라도 행복하긴 행복한 편이었다. 목숨이 위협받는 거야 작가의 재량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외에는 불편할 것도 모자란 것도 없는……평범하면서 행복한 주인공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작가놈이다 썅놈이다 날 디스했지만 이제 와서 자기가 복에 겨웠던 놈이라는 걸 깨달은 소감은 어떻습니까, 신세린 씨?”
“……정말 죄송했습니다.”
난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니 사과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진심을 담은 사과가 부디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로 일이 모두 해결될 거 같으면 세상에 전쟁은 안 일어나고 경찰은 필요 없겠지?”
시발, 사과 좆같이 받네. 신세린(마법사)이 알파고가 ‘바둑 좆같이 두네’라고 말하듯 ‘소설 참 좆같이 쓰네’라고 말했는데 참으로 멋진 묘사였다.
사람이 반성과 진심을 담아 사과했는데 그걸 참 좆같이 받는군. 작가에 대한 죄송함과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뒷끝작렬, 꼬장작살이군.
작가는 실실 웃으며 ‘응? 내 말 맞지? 대답 좀 해봐?’라며 깐죽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테이크 다운 - 파운딩 콤보]로 이어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작가한테 이길 수도 없지만 했다가 나중에 무슨 복수가 돌아올지 모르거든. 맞지?”
“……네.”
머리 하얀 미친 여자도 실실 대며 웃고 있다. 넌 웃지 마라. 기분 더러우니까.
“뭐, 좋아. 사과는 받아주지.”
그 말을 듣자 단숨에 빛이 들어오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그럼……!!”
“하지만…….”
이제 소설이 평탄하고 순탄하게 진행되냐고 물으려 했던 순간, 불길한 말이 들린다. 작가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최고로 활짝 웃으며 최후의 선고를 내린다.
“용서한다고는 말 안 했다?”
……이 소설은 작가부터 갈아야 했어.
그게 내 솔직한 기분이었다.
============================ 작품 후기 ============================
이왕 약 빨 거, 화끈하게 빨아보자 싶어서 쓴 특별편입니다. 특별출현으로 나온 신세린은 굳이 말씀드릴 필요도 없겠죠. 현재 완결 처리된 「S.A.O - 마법사 이야기」의 주인공인 신세린입니다. 팬픽 연중되더니 노블레스에 출현하는 기회까지 누렸네요. 별로 기쁜 일은 아니지만.
적은 후에 알게 됐지만 ‘하렘 어드벤처를 쓴 후부터 소아온 마법사 이야기는 한 편도 안 썼다’는 것은 가짜 엔딩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박근혜 탄핵 결정 기념으로 쓰긴 썼는데 그걸 가짜 엔딩 겸 완결 처리를 하려고 쓴 거지, 본편으로 보기에는 좀 그랬거든요.
소아온 마법사 이야기 16.5를 경험하지도 못한 채 연재중단된 세린은 아마 ‘시발, 팬픽 좆 같이 쓰네!’라며 저를 욕할 겁니다. 근데 어쩌겠습니까? 저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안 그래도 하렘 어드벤처의 인기와 조회수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오 ^0^/
약을 빨아서 미친 짓을 한 김에 본작의 주인공인 세린한테도 극딜을 합니다. 한 마디로 ‘시발, 소설이나 세계관 좆같다고 하면서 섹스나 누릴 건 다 누리고 쳐앉아있네 개씨발 새끼!’죠.
물론 이런 말 하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다른 사람보다 덜하니까 노오오오력해서 참아야 하나요?’라고 비꼬는 분도 계시겠죠. 그치만 제 소설과 후기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매우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전 이명박근혜를 포함한 부역자 매국노 개씨발 연놈들, 헬조선, 노오오오력 드립, 꼰대, 일베 버러지 등을 매우! 존나게 싫어합니다. 그런 제가 노오오오력을 거론하겠습니까?
사람마다 겪는 고통과 놓인 입장이 다르니 잘 이해해줘야죠. 단, 본편에 나오는 세린은 낙태배빵이나 강간 등 즐길 건 즐기면서 힘든 것으로부터는 눈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노오오오력과 열정페이를 긍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주인공으로서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꼬집을 줄도 알아야겠죠. 작가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어찌 보면 ‘언제 뒤질 줄 모르니까 섹스나 하렘 같은 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 생각도 옳습니다. 제 생각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거든요.
그치만 세린의 경우, 소아온 마법사 이야기의 세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만족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거 같기에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어차피 특별편이기도 하고, 이왕 쓰는 특별편이나 약 왕창 빨아보자 싶어 적었습니다만……적고 보니 작가인 제 불만이 많이 들어가 있는 거 같네요.
세린의 불만? 나니☆소레? 우마이? 오이시이?
세린의 불만 따위, 미토메라레나이와(인정할 수 없어)!!
젠카이노……하레무 아도벤챠아아아아앗!
왜 라부라이부(러브라이브)가 아니냐고요? 한 번쯤은 이 지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해보니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쁘고 목소리 좋은 미소녀라면 모를까,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새끼가 저러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적는 저도 극혐삘 나는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다음편도 약 빨고 적는 거니까 그냥 웃으시며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P.S -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 자유한국당 시발님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