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07화 (107/235)

00105 「11-4 : 중장(中章)의 시작 (4)」 =========================

대련장의 열기는 꽤 뜨거웠다. 대련에 쓰이는 검은 프레그넌트의 경비대에서도 볼 수 있었던 목검이었다. 나도 최근에는 로라나 미카한테 검술 같은 걸 지도받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고 묻는다면……총이랑 투영마술 못 쓰는 신세린은 그냥 병신이었으니까.

그 머리 허연 여자……응? 왜 백발이라 안 하냐고? 백발이라 할 때마다 한자 꼭 넣어주는 것도 귀찮고, 이러다가 ‘범인은 백발의 여자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같은 짓 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 저렇게 부른다.

머리 하얀(허연) 미친년.

음, 멋진 단어 선택이다.

그 여자한테 정신까지 탈탈 털리니 내가 가진 전투력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아무리 최강의 무기와 힘을 가지면 뭐하냐? 못 쓰는데.

그 여자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력했다. 내가 지금까지 쓰던 무기와 마법, 코스튬의 힘. 그 어느 것도 효력이 없었다. 애초에 사용조차 못 하니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전락했지.

그 미친년한테 아무런 힘이 통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고간을 쫙 벌린 채 ‘자, 이곳에 당신의 엑스칼리버를 박아주세요★’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기분 더럽네. 저딴 행동을 하며 저 따위 말이나 지껄인다면 그 미친년이 아니라 내가 더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될 거 같았다. 음, 그래. 절대 하지 말자. 차라리 죽지.

그런 미친 대사를 뱉을 바에야 검이든 뭐든 주워서 덤벼보자 싶은 마음이 들더라. 검이 없으면 주먹으로라도 달려들고 싶었고. 검이든 주먹이든 간에 덤벼들어서 역관광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전처럼 무력함에 젖어 도망조차 못 치는 꼴사나운 광경을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괴물 토벌할 때는 남이 뭘 하든 간에 ‘오늘 괴물은 어떻게 죽여 볼까나? 좀 창의롭고 판타스틱하게 죽이는 방법은 없나?’ 같은 것만 생각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참 미친 생각만 했다는 느낌이 든다. 늦게 온 중2병이라 치자.

요즘 들어 목검이나 경비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지.

생각했는데 실천은 왜 못 했냐고? 일주일간의 섹스 파티 후 캡슐 제작하느라 미친 듯이 좆물을 뽑아냈는데 그거 할 틈이 어디 있냐? 내가 묻고 싶다 시팔!

그거 끝난 후에는 그 빌어먹을 ‘포기하는 삶’을 사느라 뒤질 맛이었는데 그것도 못 해먹을 짓이더군. 그래서 기분 전환 겸 마리아와 아테나를 찾아온 거다. 누군 뭐 매일 놀았는 줄 아냐?

목검과 목검이 부딪칠 때마다 나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좋구만……. 아내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나무 소리가 울려 퍼지는 느낌도 좋아한다. 난 자연에 감명을 받기 쉬운 타입인 거 같다.

로라와 미카가 목검을 들고 싸울 때 갑자기 둘이 왜 서로 칼을 들고 싸우나 싶어 헐레벌떡 나간 적도 있었지. 움직임이 너무 빨라 두 명이 목검을 들고 있는 것조차 볼 수 없었을 정도다. 내 동체시력이 너무 낮은 탓도 있었지만 서로 친하던 두 사람이 칼을 들고 싸우는데 태평하게 보는 놈이 어디 있냐?

배워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역시 좀 부끄러워서 그런 거겠지.

배우는 것에 나이나 학력 등은 제한이 없다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괴물을 퇴치하는 도중이었다면 또 모를까, 신나게 괴물들을 모조리 쳐죽인 다음 ‘검술이나 무술 좀 가르쳐 줘!’라고 말하면……으음.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짓이군.

어찌 됐든 배우긴 해야 했기에 이번 수도 관광이 끝나면 부탁해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였다.

“공주님. 그, 옆에 계신 분의……성함이?”

“응? 아, 세린 말이야? 왜?”

헬레나라는 여자는 지금까지 내 이름도 잘 몰랐던 걸까. 하긴, 나 같은 놈팽이의 이름을 기억할 바에야 검술에 관한 걸 기억하는 게 훨씬 뇌에 이롭겠지.

나도 내 자신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만, 그 허연 머리 미친년 덕분에 자아 찾기를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서…….

“여왕님과 공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하자면……두 분은 세린 님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답니다. 남편에게 귀속된다는 행복함을 뒤늦게 깨달은 게 후회가 될 정도에요. 그렇죠, 세린?”

수박 같은 폭유(爆乳)의 가슴골에 손을 끌어안으며 매혹적으로 말하다니. 누구 발정시켜 죽일 일 있냐? 내 얼굴은 안 봐도 헤벌레~한 표정을 짓고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 좋다. 솔직히 존나 좋지. 현실에서는 절대 못 볼 엄청난 가슴인데 그 가슴에 내 팔을 끌어당겨주니 행복하다 못해 죽을 지경이다.

“세린……오늘은 절 사랑해주시는 거죠? 여왕님도 중요하지만 차기 여왕은 바로 저라구요……?”

아니, 아테나 씨! 댁은 어머니이자 여왕님인 마리아 옆에서 왜 무서운 드립을 치십니까!? 누가 보면 왕위를 계승하느라 어머니한테 칼빵 날리는 줄 알겠습니다 그려!?

게다가 그 멜론 같은 커다란 가슴으로 손을 조여 오면……으윽! 참을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침대로 직행하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하는 이 운명……망할!

두 명의 대답을 들은 헬레나의 표정은……뭐? 뭐냐 너? 왜 날 보며 웃는 건데? 저런 식으로 웃는 사람을 현실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다. 여기 와서도 몇 번 봤었고. 저건……비웃음이다.

자, 잠깐만. 비웃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근데 왜……왜 나를 보고 비웃는 거지?

난 내가 착각한 거라 생각했다. 그, 그래. 그럼 그렇지. 아직 대화도 안 나눈 나를 비웃다니.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시궁창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헬레나의 시선을 피해 주변을 살펴봤다. 하지만 이번에 들려온 헬레나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세린 님.”

“네, 네?”

아이구, 등신! 왜 존댓말을 하는 거냐!? 그래, 존댓말? 좋지! 처음 만난 사람한테 반말 찍찍 깔 수는 없으니까! 그치만 이렇게 당황해하며 대답을 하면 저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나 자신을 마구 디스하면서도 시선과 몸은 헬레나 쪽으로 향한다. 가슴의 크기는 희진이나 은채처럼 작은 편이지만 저 둔부……저 탐스러운 엉덩이에 박으면 어떤 느낌일까. 매우 신경이 쓰였다. 엉덩이의 크기로만 치자면 우리 아내들 중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 같은데…….

“세린 님께서는 마리아 님과 아테나 님의 남편……임금님의 위치에 계시는 분으로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비웃다가 갑자기 왜 공손하게 구는 걸까. 이런 태도는 좀 껄끄러웠다. 이래서야 마치 속으로는 존나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공손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잖냐. 그런 사람의 대부분은 나랑 상성이 안 맞는 인간인데. 일단은 나 자신을 까는 식으로 상황을 얼버무릴까.

“임금님은 무슨……괴물이랑 싸워서 진 제가 뭐가 잘났다고 임금님 역할을 하겠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실을 교묘하게 섞었으면서 나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다니. 역시 신세린! 비굴하기 짝이 없구나! 미리 말해두지만 이거 칭찬이다!

농담 섞인 내 자조(自嘲)의 말에도 불구하고 헬레나는 여전히 날 보고 있었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살짝 날카로운 눈으로. 왜 저렇게 날 보는 거지? 무슨 경계 당할 만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세린 님께서는 프레그넌트 주변의 괴물을 소탕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씨앗을 대체하는 ‘캡슐’이라는 걸 만든 분이시기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캡슐의 혜택을 봤기에 소중한 아기를 가질 수 있었구요.”

배를 문지르는 그녀의 살은 나와 비슷한 살색이었다. 동양인 특유의 피부색을 보니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내가 동양인이라 그런 거겠지.

그렇군. 이 세상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캡슐을 먹었다는 건 이미 모두 임신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봐야겠군. 새삼스럽지만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괴물을 퇴치해 모든 사람들을 구했을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 캡슐까지 만들다니. 정말 훌륭하신 업적입니다. 마리아 님과 아테나 님께서 선택하신 게 납득이 갑니다.”

……뭐, 뭐지. 아니. 방금 뭐지? 지금까지 이 여자가 말하는 것에서 무언가가 거슬렸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뭔지 아주 희미하게나마 짐작이 갔다. 떡밥을 던져볼까?

“저보다야 마리아나 아테나가 더 수고를 많이 했죠. 마리아와 아테나가 캡슐을 분배할 때 헬레나 씨한테 명령을 내린 건가요?”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느꼈던 위화감을 밝히려 했다. 그녀한테 질문에 대한 거부권은 없었기에 잘 하면 내가 쳐놓은 함정에 걸려들겠구나 싶었다.

“예. 세린 님이 만든 캡슐을 여왕님과 공주님께서 각 마을에 분배하실 때 저 또한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여왕님과 공주님의 곁에서 떨어질 수는 없었기에 수도에서 분배 활동을 했습니다.”

……하아. 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설마 하는 마음으로 던진 질문. 그 질문에 이렇게 멋지게 대답을 할 줄이야.

이쯤 되면 내 아내들 중 일부도 눈치를 챘겠지. 저 여자가 나한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압존법(壓尊法)이었다. 압존법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이게 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가장 높은 사람한테 말을 할 때는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하대(下待)하여 나타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해보자.

공무원이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곳의 민원센터 대장……이라 해야 하나? 쉽게 말해 소장이라고 치자. 옛날에는 동사무소라 불렀으니까.

그 동사무소의 소장은 공무원보다는 높다. 하지만 소장이 아무리 높아도 대통령보다는 낮겠지. 그럼 대통령한테 말할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1) 대통령님, 저희 센터 소장님께서 잠시 나가셨습니다.

2) 대통령님, 저희 센터 소장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3) 대통령 시발년아, 정치 대국적으로 안 하면 죽여버린다?

미리 말해둔다만 내 소설에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특정(特定)되지 않았다. 이름조차 안 나왔지. 이 소설은 픽션이며 이곳에 나오는 모든 것은 허구다.

인물명, 단체명, 조직명을 비롯해 여러 사정이 현실과 겹치는 것은 100% 우연이다. 절대 관련 없다. 중요하니 다시 말해둔다.

개인적으로는 3번. 대통령한테 총을 겨누며 ‘시발, 정치 좀 대국적으로 해라’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발터PPK와 리볼버 38구경. 정식 명칭으로는 ‘M36 치프 스페셜’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총 두 자루 정도면 대통령을 이 세상 하직시키기에는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1~3번 중에 가장 맞는 말은 무엇일까? 모두가 대부분 3번을 고르고 싶겠지만 참자. 이 소설 작가가 마티즈에 처박혀 코로 설렁탕 마시는 꼬라지. 흔히 말하는 ‘코렁탕’을 당하면 더 이상 소설 진행이 안 되니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답은 2번이다.

압존법은 쉽게 말해 청자(듣는 사람)가 주체(主體)보다 높은 사람일 경우 그 주체를 낮추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한테 ‘형님이 나가셨습니다’ 같은 말은 안 지껄이잖아. 엄마나 아빠가 가족 중 가장 위에 있는데 왜 자식을 높이냐. 이렇게 쉽게 예를 들어주니 군대에서도 쉽게 쓸 수 있을 거다.

저 헬레나라는 여자가 왜 나한테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내가 뭐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설마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감을 가지고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시험 삼아 질문을 던졌지.

헬레나라는 여자는 내가 한 행동에는 일반적인 표현을 썼지만 마리아나 아테나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높여 말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높여 말하는 건 좋지만 그 주체가 오직 두 사람이며, 나에 대해 말할 때. 혹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말할 때 사실은 인정하면서 표현은 일반적으로 쓰는……매우 교묘한 화법을 구사했다 이거다.

이런 걸 어떻게 눈치 챘냐고? 군대에 갔다 오면 싫어도 알게 된다. 압존법이 사회생활에서 꼭 쓰이는 건 아니지만…….

한국 군대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사회는 계급 사회다. 그 계급을 이용해 무리한 행동을 하고는 한다. 성희롱 등의 행동에 대해 반항이나 저항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계급이지. 계급 때문에 달려들 수가 없으니까.

흔히 ‘계급장 떼고 싸우자’라고 하는데 그건 매우 힘든 일이다. 군대에서 가혹 행위는 처벌받는 행위지만 하극상 또한 엄하게 처벌받는 행동이다. 밑에 있는 사람이 윗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하면 군기가 흐트러지며 작전이나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게 되니까.

요즘에는 상명하복의 개념이 조금 더 명확하게 되어 같은 병사끼리는 명령 등을 할 수 없게 됐다. 이건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지켜지기 어려운 일이었지.

계급장을 들이대며 시키는 짓 안 하면 내리갈굼과 집합 등이 쏟아지니까. 다른 사람한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지만 그걸 거부할 권한도 없다니. 웃긴 일이다.

군대에서 나오면 저런 생활이나 문화와 이별을 하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군사정변부터 시작해 쿠데타까지 일어났던 대한민국이다. 군대식 문화나 예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황이다. 신입사원 훈련회나 수련회를 군대처럼 하는 건 예삿일이다.

요즘에는 대학에서도 병신 같은 군대 문화를 흉내내느라 고생이 많다. 그거 때문에 TV에도 나오곤 했지. 군대도 안 간 새끼들이 ‘앞존법(압존법 아니라 [앞에 봐라]할 때 그 ‘앞’이다. 미친 미필 새끼들이 뒤질려고 환장했냐?)’부터 시작해 [‘다’나 ‘까’]로 문장 끝내라, 존나 정중하게 전화 받아라 등 온갖 병신 지랄을 했지.

이런 군대 문화는 솔직히 말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회는 군대가 아니라 ‘사회’이며, 그런 문화는 한국에서조차 점차 기피시 되고 있으니까.

헌데 아직 군대도 안 간 미필 새끼들. 군대 갔다 온지 1년도 안 된 짬찌 새끼들이 군대 기분이나 내며 왕고 노릇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군대식 문화가 주입된 한국은 다른 사람을 배척하며 자기의 권위나 입지를 확고히 굳히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한테 ‘시발, 우리나라에 대해 니가 뭘 알아? 한국은 이런 곳이야. 까라면 까야 한다고!’와 같은 개소리나 지껄이며, 그게 한국의 문화이자 끈끈한 정이라 한다. 그런 말 지껄이는 새끼들 후려 패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군대식 문화는 조금씩 사라지는 추세지만……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그런 짓 한다고 충성심이 무럭무럭 솟아날 거 같냐?

유명한 소설 ‘삼국지’에서 위연(魏延)이란 인물이 나온다. 황충을 구하기 위해 반역을 했고 제갈량은 그에 대해 ‘반골의 상을 가진 인물’이라 평한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결국 약해진 제갈량의 명령이나 행동에 사사건건 불만을 토하며 나중에는 반역까지 하게 된다. 이걸 보고도 모르겠냐?

충성심? 부하한테 마음으로, 진심으로 대해주면 충성심은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헌데 군대식 문화 따위를 실행하며 ‘이 문화에 의해 신입사원들이나 새로운 새내기들은 충성심이 듬뿍 생길 거야. 데프프……’라 생각하는 병신들을 보니 참 답이 없었다. 그 병신들이 대한민국을 차고 넘치게 만드는 것도 답이 없다만…….

이 헬레나라는 여자는 틀림없이 나한테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금님─난 내가 임금님이나 왕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만, 그렇다고 저 여자한테 비웃음 당할 정도로 한심한 인생 살아왔다는 생각도 안 든다─이라고 일컬어지는 나한테 비웃음을 던질 리가 있겠는가?

아아, 빡친다. 정말 싫다. 왜 나는 매일 이런 사람만 만나게 되는 걸까? 이제야 좀 평화와 행복을 누리나 싶었는데 이딴 게 나타나다니. 최악이었다.

그치만 소리를 지르며 뭐라 할 수도 없었기에 한숨을 쉰 후 다시 훈련으로 눈을 돌린다. 됐다. 괜히 기분만 잡칠 바에야 상대를 말아야지. 하지만 헬레나는 날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세린 님. 괜찮다면……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들어주실 수’라고 표현해야지, 빌어먹을 년아. 압존법 제대로 가르쳐 줘?

군대에서 후임한테 심한 말이나 욕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하는 예절 등에 대해서는 늘 조심하라고 당부하던 나였다. 얘는 근데 그걸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욕을 한 사발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빌어먹을.

“부탁이요? 제가 능력이 모자라 들어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완곡한 거절이란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자기 능력을 낮추면서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면 거절하는 입장도 좋고, 거절당하는 사람의 기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테니까.

“아뇨,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단지 세린 님께서 하실지 어떨지를 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끝까지 어설픈 존댓말 쓰면서 개기겠다 이거지? 일단 들어나 보자 싶었다.

“저는……세린 님과 대련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듣자 황당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입을 연 건 마리아와 아테나였다.

“헬레나. 왜 세린과 대련을 하고 싶다는 거죠?”

마리아의 말에 비난이나 문책의 뜻은 없는 듯했다. 오히려 왜 그런 걸 부탁하는지에 대한 의문 쪽이 더 강했다.

“송구스럽지만……여왕님과 공주님의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경비와 안전에 대해 생각해왔습니다.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지내며 여왕님과 공주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다만?”

뜻도 좋고 표현도 좋은데 왜 이렇게 불안한 느낌이 들까. 더 불안한 건 이런 느낌이 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로또는 죽어도 안 맞는 주제에 이런 불안한 느낌만큼은 정말 잘 맞는다니까?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만……내 뜻은 역시 현실과는 맞물리지 않는 거 같았다.

“임금님에 해당하는 세린 님이 여기에 온 이상, 여왕님과 공주님께서는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세린 님과 보내실 거라 예상됩니다. 그럴 경우 여왕기사단인 저희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자연히 줄어들게 되며, 이는 평소보다 경비가 약해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온 이상 마리아와 아테나는 많은 시간을 나랑 보내게 되겠지. 그 시간 동안 기사단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위험이 초래된다면 그들도 면목이 없게 된다. 그치만 용의주도하구만. 내 존재를 싫어하는 주제에 이용할 곳에는 착실하게 이용해 먹다니. 내가 무슨 도구도 아니고 원.

“여왕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해야 하는 임무를 소홀히 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만약의 경우, 여왕님과 공주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세린 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 시발. 압존법으로 대체 몇 개를 지적해야 하냐? 이용해 먹을 곳에는 착실히 이용해 먹는 주제에 디스하는 꼬라지 보소!

당장 화를 내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 했다. 저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니까. 무턱대고 대응했다간 내 이미지만 날아갈 거고.

“헬레나. 왕궁의 경비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여왕님이나 나.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어지간한 적은 없앨 수 있다고.”

아테나의 지원사격이 이리도 고마울 줄은 몰랐다. 이것도 맞는 말이지. 최고의 마법사인 마리아. 마법은 몰라도 접근전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는 아테나. 두 명 중 한 명만 있어도 최강 클래스급의 파티를 만들 수 있는데 어떤 바보가 암살을 하러 오겠냐?

“맞는 말씀입니다만……전 절대 공주님이나 여왕님의 힘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사고나 위험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고 그 위험으로부터 여왕님과 공주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세린 님이 오셨을 때부터 생각한 것입니다만 여왕님과 공주님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닌 분이라면 제 실력도 시험해볼 겸 대련을 신청하고 싶었습니다.”

너 정치인 하지 그러니?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 여자, 악랄하구만! 날 싫어하는 주제에 자기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변명이나 핑계 거리로 삼다니!

쉽게 말해 ‘너님이 여왕님이랑 공주님 지킬 수 있어야 함! 그런 너님한테 한 수 배워보고 싶음! 물론 내가 너 패도 괜찮음 ㅋㅋㅋ’이란 뜻이다. 아, 망할…….

이 여자는 모른다. 내가 ‘자지의 맹세’로 마리아와 아테나를 굴복시킨 것을.

힘?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난 연약하디 연약한 남자다. 당장 칼이나 안 맞으면 다행인데 뭐? 대련을 부탁해? 이런 망할! 우라질 년!

하지만 여기서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는 없었다. 나나 아내들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대련이나 훈련을 하던 사람들 모두 다가 날 보고 있었기 때문이지.

얘들아, 그런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난 사람 시선이나 주목 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야…….

거절을 하고 싶지만 그러자니 눈도 있고 이 여자가 계속 태클을 걸 거 같다. 음,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어볼까? 일부러 내 가치를 더욱 떨어뜨려보자. 혹시 아냐? ‘이런 놈과 싸울 생각을 한 내가 바보였다!’라는 마음이 들지?

“저랑 대련해도 너무 쉽게 끝날 거 같은데요. 전 그렇게 안 강하거든요.”

“겸손하네요. 실력 있는 사람은 그 솜씨를 아무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못 미더운 솜씨입니다만 세린 님과 꼭 대련을 해보고 싶습니다.”

말은 좋지만 번역하자면 ‘입 닥치고 붙어라’다. 야, 니가 무슨 유희왕의 주인공이냐? 다짜고짜 ‘어이, 듀얼해라’라고 말하는 그거냐? 머리를 감싸 쥔 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만 그럴 수도 없다. 아내들 앞에서 도망치기도 싫고. 어쩔 수 없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일단 싸워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대략 20분 정도 후에 대련을 개시해도 괜찮을까요?”

거부권이나 준 다음에 그런 말을 하지?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 미소에 난 괜찮다고 대답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걸어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처구니가 없군. 현실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도전을 판타지에서 받게 될 줄이야.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다만…….

마리아와 아테나는 그녀가 가진 반감의 뜻을 아직 파악 못 한 거 같았다. 혜린이나 다른 아내들은 지금이라도 그만둬도 된다고 했지만 난 일단 해보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이대로 도망치자니 꼬랑지 말고 도망친 개 드립 칠까봐 짜증나서 그만 못 두겠다.

목검을 준비한 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헬레나를 보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오늘이나 내일 밤에 너도 내 똘똘이 밑에서 좆물을 호소하는 암캐로 만들어주마……!’

엉덩이를 범해주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그녀가 내 하반신에 매달려 교태 어린 목소리로 아양을 떠는 상상을 했지만……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이 상황을 후회하게 된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로 군대 경험이나 기억은 영 좋은 게 없습니다. 이건 비단 저만 해당되는 게 아니겠죠. 끈끈한 전우애보다는 한두 달 먼저 왔다고 선임 행세하는 사람을 보며 '니는 왜 그렇게 삽니까, 병신아?'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으실 겁니다.

실제로 가혹행위 등을 하는 사람은 알기나 아는 걸까요. 전쟁이 나면 등 뒤에서 살포시 총 한 방 맞고 저세상 하직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이 나서 같은 중대원들이랑 다시 만나게 된다면 존나 함박 웃음을 지으며 총을 쏴주고 싶네요. 여러분은 밖에 나와서 군대 놀이 하지 맙시다. 이 세상은 군대도, 계급 사회도 아니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돈으로 다 해결되는 거니까.

유희왕 5d's 는 못 봤지만 '어이, 듀얼해라'는 알고 있습니다. 만족동맹과 「\(`д´)ゝ듀엣!」도요. 아아……이젠 5d's 하면 만족동맹밖에 떠오르지 않아…….

아크 파이브? 으, 읏! 머리가……어, 어디선가 들어본 애니메이션 제목인데……뭐지? 떠올리려고 하니까……으, 윽! 머리가!

……

…………

………………Arc-V? 나니☆소레?

그딴 거─아크 파이브는 다 보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깔 수 있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 각 차원과 전 작품의 캐릭터들로 명작을 만들 거 같았지만……붸쯔니 손나 코토와 나깟따제!─보다는 선거에요, 선거!

플로듀서, 대통령 선거예요, 대통령 선거!

5월 9일, 대통령 선거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해주세요!

아, 물론 전 그 날도 근무하러 갑니다.

시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