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3 「11-2 : 중장(中章)의 시작 (2)」 =========================
기쁨에 겨운 한숨을 쉰다. 설마 다시 이 상황에 처할 줄이야. 이렇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왼쪽에 앉은 마리아와 오른쪽에 앉은 아테나를 보며 다시금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내들은 이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마치 영화의 귀족들이 앉을 법한 직사각형 테이블. 그 긴 곳에는 많은 의자가 있었고 병사들도 몇 명 있었다. 테이블의 형태는 대학 구내 식당에서 보는 거니까 그렇다 치자. 근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밥 먹을 때 남이 밥 먹는 걸 왜 쳐다보는 건데?
내가 왜 병사들이 저기서 우리 밥 먹는 걸 보냐고 물으니 ‘여왕과 공주는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는 병사를 거느린 채 행동한다’라고 대답했다. 듣고 보니 타당한 의견이었다.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 사람들의 도덕심은 매우 높지만 암살 등의 위험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자멘 같이 치안이 개판인 곳도 있었으니까.
암살 등이 아니더라도 여왕이나 공주 같이 높은 신분이라면 몸이 다치거나 했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늘 사람이 따라다녀야 하는 거구나. 어쩐지 정치가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같았다. 경호원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주위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그들은 노란색의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입는 핑크색 비키니 아머는 그렇다 치자. 마법사니까 기사나 경비대원과의 차이점을 부각시켜야 했으니까. 근데 왜 저런 옷을 입고 있지 하고 궁금해서 물었는데……. 이유를 들으니 그것 또한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황금색 비키니는 왕가의 사람만이 입을 수 있었다. 보통 병사들은 제식용의 비키니 아머를 입지만, 여왕인 마리아와 공주인 아테나가 손수 뽑은 여왕기사단(女王騎士團)은 달랐다.
원래라면 경비대원이나 기사가 입는 은빛 비키니 아머에 마법사들이 입는 핑크색을 섞어야 하는 것이 타당했다. 검술이나 마법, 어느 쪽이든 균형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명색이 여왕기사단인데 여왕을 상징하는 색깔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이 나왔다. 제식용을 그대로 입을 순 없고 마법사들이 입는 핑크색 비키니를 입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왕가의 사람들만 입는 것이 허용된 황금색 비키니 아머를 입을 수는 없었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중 누군가가 ‘여왕기사단은 여왕과 공주님을 모시니 그 색깔은 황금색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기본적인 색깔의 틀은 여기서 잡혔다 치자. 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볼 때 황금색에 가깝되 황금색은 아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황갈색(黃褐色)은 검은 빛을 띤 누런색. 좀 심하게 말해서 똥색이었다. 그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색을 찾던 중 ‘황금색만큼 눈에 띠는 색은 없을까?’를 고민하게 됐고 그로 인해 나온 게 노란색 비키니 아머라고 한다.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 선택은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
사람은 색깔에 따라 다양한 영향을 받게 된다. 패스트푸드 안이 빨간 것은 패스트푸드점이 피칠갑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다. 피칠갑을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만, 여하튼 내부가 빨간 것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색깔의 영향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빨간색은 식욕, 성욕을 돋우는 색이다. 유명한 패스트푸드 점은 대부분 빨간색의 간판이었다. 눈에 잘 띄기 위한 용도로도 안성맞춤이지만 색으로 인해 식욕 등을 돋우게 만드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또 빨간색으로 도배가 된 방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눈에 띄는 곳을 보니 배가 고파서 들어갔다. 패스트푸드를 먹는데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하면 미안하니 나왔다. 그런데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니. 돈 벌기도 좋고 로테이션 돌리기도 좋고. 실로 멋진 색깔의 영향이었다.
반대로 파란색은 식욕을 떨어뜨리며, 푸른색으로 도배가 된 방에서는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겨우 색깔이 하나 달라진 것으로 이렇게 많은 영향을 받다니.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영향을 받기 쉬운 타입이라고도 생각하고.
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생각나서 말한다. 몸을 빨간색으로 도배하고 뿔 달았다고 세 배 빨리, 세 배 강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세 배 이상 눈에 띄니까 3배 빨리 뒤질 확률도 높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레드 컬러 + 뿔 조합 = 3배 빠르고 강하다!]라는 이미지는 버려라. 설령 빨간색에 뿔 달린 MS 타고 무쌍도륙을 찍는 놈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었다.
그건 기체가 좋은 게 아니라 파일럿이 뛰어난 거다. 통상 자쿠보다 30% 정도 더 좋은 샤아 전용 자쿠는 그래봤자 스펙상으로는 건담한테 진다. 그 성능차를 조종실력과 경험으로 파일럿이 존나 대단한 거지.
아! 물론 샤아가 멀쩡하다는 건 아니고. 로리콘 호구 새끼지. 그만두게, 버나지군! 내가 홍차도 타주지 않았던가!?
빨간색은 아무래도 좋고, 여왕기사단이 노란색을 선택한 건 나이스 초이스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파란색과 달리 눈에 가장 잘 띄는 노란색은 안전에 가장 적합한 색이다.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한테 자신감을 갖게 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주눅 들 일도 없겠고.
운동신경을 활성화하고 근육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생성하므로 활동적인 사람들한테 딱이다. 게다가 색깔 또한 황금색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눈에 띄므로 여왕기사단한테 있어서 매우 적절한 색깔이라고 칭할 수 있겠지. 결국 그들은 노란색 비키니 아머를 입게 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눈에 띄는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자들이 밥 먹는 우리를 쳐다보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어쩌겠냐. 그냥 입 닥치고 먹어야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두 명이었다.
숲의 모든 괴물을 퇴치한 것뿐만 아니라 여왕이었던 아스카까지 포획함으로 인해 프레그넌트는 사실상 완전한 평화를 되찾게 됐다. 그걸 기념하며 모두와 함께 섹스 파티를 열었을 때 마리아와 아테나를 내 아내로 삼게 됐지. 그건 좋다 치자. 문제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후후, 세린. 맛있나요? 임금님인 당신이 여기에 오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 이 스프를 좀 먹어보세요. 제 침이 들어간 것이니 틀림없이 좋을 거예요.”
이건 마리아다. 혹시나 싶어 마리아한테 ‘절대 비싼 음식이나 환영회 같은 거 하지 말아줘’라고 말해뒀길 잘 했지. 왕궁에서 먹는 거니 조리가 잘 된 맛있는 음식이 나오긴 했지만……솔직히 말하마. 맛이 안 느껴진다. 담백해서 그런 게 아냐. 이렇게 음식을 떠다 주니 긴장이 돼서 그렇지.
혹시나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노란색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왕기사단은 입을 벌린 채 닫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래, 너희 마음 이해가 간다. 나도 지금 아가리를 꾹 닥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거든. 근데 닫으면 억지로라도 입을 벌려 먹일 위인이 옆에 둘이나 있으니 문제라는 거지…….
마리아는 아예 나랑 같이 먹을 생각으로 조금 푸짐한 1인상을 부탁한 거 같았다. 여자가 먹기에는 많지만 남자가 먹으면 괜찮을 거 같은 양이었으니까. 이렇게 떠먹여주는 건 기쁘긴 하지만 남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내들 또한 이럴 거라 생각했는지 그냥 얌전히 식사를 하고 있다. 직사각형은 네 변 중 양 변의 길이가 동일하게 길며 나머지 변은 동일하게 짧은 다각형이다.
나와 마리아, 아테나는 그 짧은 변─짧다지만 대략 2m를 약간 넘는다. 이 정도면 세 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다. 이런 것까지 계산한 건가? 마리아, 무서운 아이!!─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나는 여왕기사단, 아내, 마리아와 아테나. 온갖 사람들의 눈치를 신경 써야 했지만 그녀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거 같았다.
마리아는 입에서 걸쭉한 침을 스프에 흘린 후 숟가락으로 휘적휘적 섞어댔다. 자기가 먹을 것이라지만 침을 굳이 뱉어 섞는 행위는 매우 더러우며 비위생적인 행위였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왕이라 그런 걸까.
그리고 그 스프를 나한테 권하고 있다. 하아……. 이미 몇 숟갈 먹었으니 사실 아무래도 좋은 문제다만. 그렇게 나랑 밥 먹는 게 좋은 걸까?
나한테 떠먹여줄 때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귀엽긴 귀여웠다. 스프는 놔두고 빵을 잘라 반씩 먹을 때는 ‘아니, 왜 니가 침을 넣은 건 스스로 안 먹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만.
무엇보다 기쁜 건……크다. 이미 섹스를 마친 후라지만 저 수박만한 가슴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남근이 불끈거렸다. 발기 중이라서 식사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테이블 아래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용해 내 자지를 만지는 마리아는 내 반응을 보며 즐기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어머니도 중요하지만 여기도 봐주셔야죠, 임금님?”
은근히 이쪽의 음식도 먹어달라는 메시지가 들어간 유혹의 말. 아테나 또한 멜론 같이 탱탱하면서도 커다란 가슴을 나한테 대며 날 유혹하고 있었다.
유연한 발을 사용해 엄지 발가락과 검지 발가락으로 내 자지 부분을 문지를 때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싶었다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망할.
누구보다 자애롭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져야 할 두 사람이 이렇게 음탕한 창녀처럼 변하다니. 어떤 새끼가 이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거냐!? 잡히면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마! 그 덕분에 내가 이 지경에 빠졌잖아! 빌어먹을! 대체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모녀덮밥을 따먹은 거냐!?
……나였구나.
……씨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내가 한 행위 덕분에 이런 힘든 상황을 겪게 되다니. 과거에 그저 좋다고 하반신을 박아대던 나 자신을 힘껏 때려주고 싶다. 그렇다고 당장 내 자지에다 칼을 처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아……. 힘들다.
“앗, 임금님도 차암~. 안 먹고 계시니까 흘려버렸잖아요. 아까워라…….”
누가 보더라도 국어책 읽기. 발연기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 말이었다. 아쉽다는 감정보다는 즐겁다는 감정이 담긴 그 말. 미안하다며 아테나 쪽을 본 순간, 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냐. 설마. 그럴 리가. 하하……응. 그럴 리가 없잖아.
“아앗, 스프가 우연히 가슴골에 떨어졌네요. 곤란하네……식사 중에 비키니 아머를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후후……현명하며 박식하신 임금님께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잘 아실 거라 믿어요♡”
차라리 날 죽이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꾹 참아야만 했다. 뭐니, 아테나야? 너 나한테 불만 있어? 안 그래도 가시방석인 이 국면을 더욱 더 시궁창으로 만들기 위해 이 날을 기다렸다, 뭐 이런 거니? 응? 그런 거야?
당장이라도 밥상 뒤집기를 시전하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이곳은 프레그넌트가 아니다. 프레그넌트라 하더라도 밥상을 뒤집거나 하는 미친 짓은 안 한다만, 그런 예절에 어긋나는 짓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아직 밥도 다 못 먹었고, 먹기 위해 만든 밥을 엎어버리다니. 먹을 걸 소홀히 하는 사람은 천벌 받는다.
또한 나를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들 앞에서 밥상 뒤집기 따위를 시전했다간 곧바로 목이 날아갈 거 같았다. 여왕인 마리아와 공주인 아테나가 옆에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그래도 불안함을 없앨 수는 없었다.
마리아는 이 광경을 보고 ‘어머……그런 수가 있었네?’라며 손으로 더욱 자지 부분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렸기에 아마 눈치 빠른 아내들은 마리아의 창녀 같은 손장난을 눈치 챘을 거라 생각한다. 될 대로 되라, 망할!
스프로 더럽혀진 가슴골에 입을 파묻는다. 국물을 마실 때처럼……소중한 아내들의 애액을 마실 때처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었다. 스프가 입에 빨려올 때 ‘아앙~♡ 우리 임금님, 딸의 찌찌를 빨고 싶었어? 헤헤♪’라며 자극했기에 미칠 것만 같았다.
이미 살에 붙은 건 혀를 이용해 낼름거리며 처리했다. 혀가 닿을 때마다 ‘흐윽!’소리를 냈고, 여왕기사단은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달려들 기세였다.
이게 여왕기사단을 이용한 암살 계획이라면 거의 성공이라 본다. 내가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나쁜 놈이 될 수 있다니. 이것도 어찌 보면 능력이라니까?
혀까지 써서 깨끗하게 만든 가슴팍을 보며 ‘아테나야……앞으로 이건 하지 말자. 응?’이라 부탁한다. 젠장……필요할 때는 임금님이고 부탁할 때는 머슴이나 노예냐? 망할……! 속으로 욕을 하며 다시 식사에 들어갔다.
이 이상 곤란한 해프닝이 일어나면 뒤에 있는 기사단 일원이 단숨에 내 목을 딴 후 ‘적장, 잡았다!’라고 소리칠 거 같았다.
젠장, 삼국무쌍 시리즈도 좀 플레이해둘 걸 그랬어. 난 먼치킨 같은 걸 싫어해서 대전격투나 RPG, 육성 시뮬레이션 등을 자주 플레이했지.
먼치킨이라……. 난 과연 먼치킨일까? 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먼치킨이란 단어의 유래에는 여러 가설(假設)이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먼치킨은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게임의 스토리나 밸런스를 어지럽히는 플레이어’로 인식된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서 그 뜻은 매우 크게 바뀌게 되었다.
한국에서 ‘먼치킨’이라는 단어는 [존나 강한 사기 캐릭터]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양산형 판타지 소설 이전에 나온 말이었고, 그 말의 어원은 한국조차도 아니었기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헌데 게임 속에서 밸런스를 해친다는 개념이 양산형 판타지 소설과 맞아 떨어져 그러한 단어가 유행하게 됐다.
혼자 공격, 방어, 회복, 특수 능력 등 온갖 거 다 쓰면서 드래곤 때려잡고, 9클래스 마법 남발하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백만 명씩 죽이는 힘을 가진 자. 이게 흔히 말하는 먼치킨의 이미지였다. 주로 판타지 세상 등에 소환된 주인공이 기연(奇緣) 등으로 이런 힘을 얻게 되는 게 일반적이지.
나? 그 백발의 여자가 준 ‘자지의 맹세’를 비롯해 여러 마법을 쓸 수는 있다. 그뿐이랴? 만병지왕(萬兵之王 ; 모든 병기 중 왕)인 총도 두 자루나 가지고 있다! HP가 30% 이하가 되면 이기어검술처럼 막 날아다니며 적을 쏘는데 그게 끝내줬지! 그거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입은 코스튬의 힘으로 투영마술 또한 쓸 수 있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닐 수 있는 전투력을 몇 배, 몇 십 배나 초월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겠지. 이렇게 보면 내가 대단한 놈처럼 보일 것이다. 나도 ‘사실 나, 꽤 대단한 사람 아냐?’라고 착각할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백발의 여자한테는 이길 수가 없었다.
현실은 너무나 잔인하고 잔혹했다.
그 여자가 나한테 준 모든 무기와 마법은 결국 그녀의 허락 아래 쓸 수 있는 물건. 그녀와 싸웠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법은 고사하고 무기를 꺼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템이나 무기 조작을 담당하는 홀로그램 윈도우의 사용권한조차 빼앗겼었지.
내가 매크로로 무기를 불러낼 수는 있지만 그 여자 앞에서 그딴 짓을 해봤자 허공에 삽질. 무다무다! 아무런 쓸모없는 병신짓이다. 날 가지고 노는 여자의 허락이 없으면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다니. 이게 무슨 먼치킨이란 말인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단순히 전투력이라는 부분에서 볼 때 난 너무나 허약했다. 현실 세상에서 온 세 명은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물리적인 전투력이든 마법이든 간에 내 아내들 중 누구랑 붙어도 난 패배밖에 도달할 길이 없었다.
무기도 못 불러내고 마법조차 쓸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아내들을 이기냐? 제일 허약할 거 같은 메이조차도 기본적인 검술 실력을 갖췄는데!?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내 존재의 가치가 비참해져 갔기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하지 말라’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현실에서 온 세 아내를 제외한 전투력 측정의 결과…….
로라, 미카, 메이, 안나, 니나, 아이나, 아이라 - 사☆망! 경비대장급 클래스 두 명에 경비대장의 딸답게 마법에 익숙한 메이! 심지어 용병 생활로 잔뼈가 굵은 안나와 니나까지! 내 목숨 부지는커녕 시체나 찾을 수 있으면 용하지!
심지어 아이나는 촌장이기에 상당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아이라는 수도에서 근무를 권유받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다!
신세린의 목숨 부지? 그건 뭐죠? 먹는 건가요? 우적우적! 하핫, 신세린의 목숨 따윈 입 안에서 부서지는 과자보다 약한 겁니다! 신세린 죽이기, 참 쉽죠?
아스카, 마리아, 아테나 - 축★사★망! 일단 괴물의 여왕인 아스카는 평범한 나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자기 힘으로도 죽일 수 있지만 동족인 괴물의 힘을 빌려서도 죽일 수 있으니 선택지가 참 많네. 골라잡아 땡잡이인가?
여왕인 마리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마법에 통달한 여자다. 그 딸이자 공주, 여왕기사단 단장인 아테나는 마법은 마리아한테 질지언정 접근전은 마리아를 뛰어넘었다 한다. 이 두 명 중 누구랑 싸워도 이길 수 없지만, 둘 다랑 싸운다면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싶어 남은 아내 세 명. 이혜린, 항희진, 박은채. 세 명과의 전투 시뮬레이션 또한 생각해봤다. 결과? 존나 우습더라. 내가 죽는다. 패배가 아니라 ‘죽는다’였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오냐고?
달아오른 상태에서 보지에 자지를 박다가 칼침 한 방 푸욱! 끝. 하하, 자지를 박다가 칼에 박혔네. 아하하…….
……내가 먼치킨? 그딴 말 하는 놈 아가리에 내 자지를 박아주고 싶었다. 물론 남자라면 안 한다. 총으로 쏴죽여야지. 미치지 않고서야 남자놈의 입에 내 걸 넣으면서 ‘으읏, 사랑해!’라는 대사를 칠 리가 있겠는가? 내 정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남자놈과 알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침실로 왔다. 아내들의 분위기? 물어볼 필요가 뭐 있냐?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저기압인 건 확실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래야 하는 걸까. 참으로 의문이다. 뭐? 떠먹여주는 식사를 거절 안 하고 먹은 게 원인이라고?
밥상이 차려져 있는데 안 먹는 게 남자 새끼냐 씨발!? 수박처럼 커다란 가슴! 멜론처럼 부드러운 가슴을 나한테 갖다 대며 향기로운 식사를 대접하는데 안 먹는 게 남자 새끼란 말이냐!? 작가의 허가……? 인정할 수 없어(미토메라레나이와)!
“입에서 침 흐른다.”
뭐라고? 내 입을 확인해봤다. 응? 안 나오는데? 다들 왜 내 얼굴을 보냐?
“제정신이었으면 자기 입에서 침이 흐르는지 어떤지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기쁜 거 같네, 아빠.”
데긱! 메이 같이 말하지만 니나가 이런 말을 하다니! 가슴이 쓰라리다.
“그, 그게 아니라. 그……그래! 왕궁 식사는 맛있구나~그런 느낌이 들었거든!”
“어머, 천박하고 맛대가리도 없는 경비대 식사는 앞으로 입에 대지도 않겠다……이런 건가요?”
으아아아아! 로라까지 가세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망할! 내가 왜 여기를 오자고 했을까!? 모두와 함께 수도 구경도 하고, 지금까지 괴물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평화도 누려보자 싶었는데! 이런 자충수를 두다니! 으흐흐흑! 내가 병신이었지!
“아니, 그게 아니라……으, 그래!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 하니까 참 좋구나~싶어서!”
“하하, 세린도 참. 세린은 가족의 가슴골에 얼굴을 처박아 혀로 낼름낼름 밥을 처먹는 게 오붓해? 앞으로 그렇게 해야겠네?”
아이나 니이────임! 너님은 또 왜 삐딱선이십니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니, 레이한테 매혹 마법으로 당했을 때랑 왜 이렇게 비슷하냐? 응, 그거냐? 나 동네북이냐? 무슨 일만 있으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실컷 두드리는 동네북인 거야!?
“자, 얘들아. 세린 놀리는 건 이쯤 해두자. 그보다 세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게 놀리는 거라면 진심으로 공격했을 때 난 이미 죽었을 거 같은데.”
“지금은 살아 있으니까 됐잖아.”
혜린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난 아니거든? 당하는 나는 전혀 괜찮지 않거든? 살아있기만 하면 온갖 모욕을 들어도 된다 뭐 그런 신념도 없거든?
“여기 계속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수도 구경이나 하러 가는 게 어떨까 싶어서.”
확실히 맞는 말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빈둥대며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것이라면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점심을 막 먹었는데 잠을 자면 몸에 나쁘겠지. 아내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밤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낮에 할 필요는 없다.
“그럼……나갈까? 마리아랑 아테나한테 일단 말은 해두자. 손님인 우리가 멋대로 나가면 아무래도 실례잖아.”
“말을 전하는 거라면 내가 대신 갔다올게. 니가 가면 못 돌아올 거 같거든. 밥 먹을 때 마리아가 자지에 대고 손장난 했지?”
역시……. 혜린이는 이미 눈치를 챘던 건가. 주위에 있던 아내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심지어 아테나가 그 매끈한 다리로 내 남근 주위를 문지르며 자극을 줬던 것까지 모조리.
“그……미안. 나도 가능하면 어떻게 하고 싶었는데……뒤에 있던 여자들이 무서웠거든. 괜한 짓 했다가 베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니까?”
“그건 아마 맞을 거야. 여왕기사단 입장에서 볼 때 넌 불청객 비슷한 사람이니까.”
적나라하게 사실을 지적하는 아이라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또 쓰라리다. 위약 같은 거 혹시 파나? 하나 정도 사두면 좋을 거 같다. 아니, 백 개 정도 사야 하나……요즘 가슴이 아플 때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 대부분의 원인이 아내들의 바가지라는 점도 슬프다.
“마리아 님은 이 나라의 여왕님이야. 그런 분이 침까지 섞은 고귀한 음식을 떠먹여 주는데 안 부러울 리가 없잖아?”
바보냐, 너네는!? 그렇게 당장 폭발하고 싶었지만 몇 명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 맞다. 이 ‘하렘 어드벤처’는 우리와 생각이나 사상이 꽤 달랐지. 고귀하신 분이 주는 음식이라면 침이 섞였든 어쨌든 간에 고귀한 것으로 취급되는 건가…….
어머니와 딸이 서로의 보지를 비벼대며 사랑을 고백하는 곳이다. 그런 생각이나 관념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지.
하지만……여왕기사단이라. 괜히 쓸데없는 적을 늘려버린 건 아니겠지? 내 탓도 아닌데 복잡한 문제가 생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디 나쁜 일이 안 생기기만을 빌 수밖에 없나…….
“식사할 때 얼핏 봤지만 세린한테 좋은 감정을 가진 거 같지는 않았어. 괜한 문제가 없으면 좋을 텐데…….”
걱정하는 안나한테 ‘하하, 무슨 일 있겠어?’라고 말은 했지만 생각하는 건 나랑 같구나 싶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자기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마리아가 나한테 온갖 애교와 아양을 떨며 접대를 한다. 충분히 분노할 만하다. 완전히 내 탓이 아니라고도 말을 못 하겠군.
푹 쉬려고 수도에 온 건데 괜히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우리만 손해다. 최대한 언행에 주의하자고 생각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마리아와 아테나한테도 너무 과도한 스킨십을 삼가자고 말해야겠지만……그 두 사람이 들어줄 거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그런 부탁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캡슐 제작부터 분배까지. 많은 일을 도맡아 온 그녀들과 몸을 섞고 싶은 것 또한 진심이었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녀들의 환대는 솔직히 기쁜 것이었다. 그녀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데 누군가의 눈치만 보며 행동해야 한다니. 그래서야 원래 살던 세상에서 행동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은 싫었다.
마리아와 아테나가 그녀들한테 소중한 존재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한테도 있어서 그 둘은 소중한 아내다. 남편과 아내가 사랑을 나누는데 누군가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여왕기사단 모두한테 내 존재와 행동, 아내들과의 사랑을 납득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
그런 게 있을까……?
============================ 작품 후기 ============================
계약직이긴 한데 역시 찾으려면 꿀빠는 직장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직장을 찾을 때 꿀빠는 직장을 찾으세요. 힘든 일과 좆같은 야근을 하며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인생은 살지 마세요.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제가 장담합니다.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사는 힘든 인생보다는 꿀빨며 손쉽게 돈을 버는 인생이 훨씬 더 좋습니다. 힘들게 살며 일하면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생은 '노오력'입니다. 이쯤 되면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비키니와 색깔, 마리아 & 아테나의 식사가 두드러졌네요. 스프에 침을 섞어 휘적거리는 것부터 시작해 가슴골에 스프 흘리기, 발이랑 손으로 자지 자극하기 등. 온갖 게 다 나오다가 먼치킨의 어원까지 나옵니다. 진짜 이러다가 우주까지 나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아, 아니네요. [빨간색 + 뿔 = 3배]라는 것까지 나왔으니 우주세기까지 건드렸네요. 여러분 머리속에서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안 맞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라고 지껄이다 처맞는 호구가 생각나신다면 정확하게 떠올리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샤아─어이쿠, 이름 말해버렸다!─부터 시작해 철가면, 아샤 크로노클, 라우 르 크루제, 미스터 그라함……이 아니라, 미스터 무사도, 째하트 가레트, 비다르 등. 분위기는 있어보이는데 호구나 허당짓을 하는 걸 생각하면 진짜 용하긴 용합니다. 정체를 가리려고 가면을 쓰는 건지 창피한 거 감추려고 그러는 건지 원.
근데 가면을 쓰든 말든 '소문 들었어? 저게 바로 그 전설의 호구래!'라며 쑥덕거리는 건 들릴 테니까……큰 의미는 없네요. 그냥 그러려니 합시다. 남자의 중2병은 평생 간다고 하잖습니까.
어쨌든, 본문에서도 나왔듯이 컨트롤은 엄청 중요한 겁니다. 호구로 불리는 샤아지만 샤아급 아니면 아무로를 막기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람바 랄이나 검은 삼연성, 마쿠베 같은 네임드가 아닌 이상은 쉽게 아무로를 막을 수가 없었죠.
그런 아무로를 매번 궁지에 몰아넣었던 샤아입니다. 호구다 허당이다 놀리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네임드입니다. 오죽하면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샤아의 이야기라고 할까요.
퍼스트 건담 = 본편
Z 건담 = 주인공 사이드에서 활약하는 샤아 이야기
ZZ 건담 = 샤아가 없는 공백을 메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습의 샤아 = '샤아의 반란'으로 불리는 사건 발생
건담 UC = 샤아의 짝퉁이 등장해 모두를 혼란에 빠트림
쩝니다. 더블제타를 제외한다면 모두 다 샤아랑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무로조차 퍼스트 이후에는 제타에서 잠깐, 역습의 샤아에서 겨우 주인공으로 되돌아갔을 정도인데……단순히 출연빈도 및 비중으로만 친다면 아무로는 샤아한테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이지만 이길 수 없다니. 참으로 기묘한 이야기네요.
코멘트를 남겨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역시 보시는 분만 보시는 개막장 소설! 앞으로 이 개막장이 얼마나 커질지 걱정(기대 아닙니다, 걱정입니다)되네요. 코멘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은 시간이 남을 경우에 자세히 해드리겠습니다. 회사 생활 때문에 후기 작정도 어렵네요. 이 계약직 때려치는 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P.S - 야근 때문에 힘들어서 후기가 많이 평범합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