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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98화 (98/235)

00096 「10-5 : 서장(序章)의 끝 (5)」 =========================

“끄, 끝났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입으로 말했다. 너무나 중요했기에. 생각해보면 참 긴 여정이었다.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캡슐을 위해 여기까지 온 마리아와 아테나. 그들이 있을 때 나누었던 마을 사람들과의 단체 난교 파티. 그리고 서큐버스를 포획해 2천 개에 달하는 캡슐을 만드는 오늘날까지. 정말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해냈다. 거의 일주일 동안 분신들의 얼굴이 헬쓱해질 정도로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어댔고 자지를 박아댔다. 손, 입, 질, 엉덩이. 어쩔 때는 가슴이나 등, 날개에 자지를 꾹꾹 박아대며 억지로 사정을 유도했다. 15명밖에 안 되는 레이 시리즈였지만 서큐버스 특유의 매혹 마법에 의해 지칠 줄을 몰랐다.

그 매혹 마법 덕분에 아내들을 소홀히 한 결과 엄청나게 사과를 해야만 했지만 그건 별개의 이야기다. 중요한 건 캡슐이 모두 제작됐다는 거지. 2000개의 수량을 나타내는 캡슐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오오……드디어.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다. 시발, 나보고 또 이 짓을 하라고 하면 진짜 자살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누가 ‘응? 허리 흔들어대며 좆물 뽑아내는 게 어려워?’라고 물으면 ‘니가 2천 발 이상 뽑아볼래?’라고 묻고 싶었다. 하루 24시간을 내내 그 짓에만 사용해야 한다니.

내가 섹스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원하는 건 평화다. 평온한 시간과 단락한 가정.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단 말이다.

근데 왜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죄책감을 느끼며. 더군다나 아내들한테 욕까지 먹어가며 이 짓을 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매일 말하면서도 할 일 하는 걸 보니 나도 호구 확정이군. 이 ‘하렘 어드벤처’에도 호구가 있다면 그건 나 하나로 족하다. 호구를 만드는 시대는 살기 어려운 시대일 테니까.

마리아와 아테나는 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겠지.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던 생명의 씨앗. 그걸 대체할 캡슐을 일주일 만에 2천 개. 수도와 다른 마을 분량까지 다 만들었는데 안 기쁠 리가 있겠냐? 나한테 화가 난 아내들이었지만 이 소식에는 솔직하게 기쁨을 표했다.

캡슐 2천 개를 주는 내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감격스러워서 그런 거다. 세상에. 이게 진짜 내가 해낸 거란 말인가? 2천 발이라니. 생각만 해도 놀라웠다. 분신들이랑 레이 시리즈가 아니었으면 택도 없었겠지.

레이 시리즈는 헛간에서 자고 있다. 그녀들을 마을의 경비 등에 쓰기에는 아직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혼란 마법도 그렇지만 매혹 마법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암시를 걸었으니 내가 또 정신 못 차릴 위험성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녀들을 내 아내들보다 사랑하지 않는 한은.

……그래도 수고했으니 오늘 밤에 또 안아주자. 내 아내들이 들으면 경을 칠 생각을 하며 마리아와 아테나한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가고 싶지만 오늘 밤을 여기서 묵은 다음 가겠다며 대답하는 그녀들의 눈동자 속에는 쾌락을 원하는 눈빛이 보였다. 오늘 또 고생하겠군. 그럼 오리지널인 내가 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여행길에 오르거나 당분간 일 때문에 못 만나는 상황이 있다면 내가 직접 그녀들을 안아야 했다. 일종의 불문율이라고 해야 하나. 아내가 많으니 한 명 한 명 상대하는 것도 힘들다. 그렇기에 레이 시리즈 중 가장 처음 만난 레이를 아내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13명이면 충분하다.

아내로 삼았던 여자들 중 가장 갑작스러웠던 건 역시 희진이와 은채였다. 그녀들로 인해 현실 세상에서 나나 혜린이 어떻게 됐는가, 우리 외에도 다른 사람이 소환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프레그넌트에서 살아야 하는 이상 한 사람 몫을 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결국 그녀들을 범하게 됐다만, 가장 생각지 못한 결혼이었지. 지금은 만족하니까 됐지만.

내일 마리아와 아테나를 함께 따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미카와 아이라였다. 미카는 서큐버스를 구하느라 부카케 주변에 갔을 때 말했었지. 캡슐을 나눠줄 때 가겠다고.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는 거다. 빨라서 나쁠 건 없겠지?

아이라는 어보션의 마법사 양성소에 있는 사람들한테 직접 캡슐을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생명의 씨앗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직접 나눠줌으로써 인사도 하고, 기쁨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인가. 역시 아이라땅, 카와이이!

미카와 아이라, 마리아와 아테나. 잠시간 떠나게 되는 네 명을 보니 섭섭하다. 다시 보게 될 거라지만 아내들이랑 헤어지는 건 싫다. 전근 발령 난 남편을 둔 아내들은 어떤 기분일까. 남편의 건강부터 시작해 잘 지내고 있을까, 큰일은 없나 등 걱정할 게 엄청 많겠지.

그치만 겨우 아침을 먹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그녀들과 사랑을 나누기에는 좀……피곤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저 기계 같이 허리를 흔들기만 하면 그녀들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전에, 아내들에 대한 실례겠지. 사랑은 감정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행위니까.

캡슐 제작 때문에 지친 건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아내들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휴식을 필요로 했다. 아내들 기분도 풀어주고 피로도 잊게 해주는 것이라면…….

“얘들아. 우리 소풍 가자.”

또 뜬금없고 밑도 끝도 없이 꺼낸 내 말.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모두는 지난 번처럼 ‘얘가 무슨 헛소리 하는 거냐……’라는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풍이라는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소풍이요?”

“응. 숲이 안전해졌는지도 확인하고, 그동안 수고했잖아? 괴물이 없는 숲을 거닐면서 경치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

갑작스럽긴 하지만 나쁠 것은 하나 없는 내 제안에 모두 동의를 나타냈다. 소풍이라……정말 오랜만이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랑 소풍을 가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원래 세상에서는 외톨이였던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소풍을 가게 될 줄이야. 아니, 내 입에서 사람들한테 ‘같이 소풍 가자’라는 말을 꺼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풍 준비는 생각 외로 빨랐다. 먹을 것을 아이템처럼 다루는 ‘하렘 어드벤처’에서 보따리 같은 걸 들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레이를 제외한 내 아내들과 내가 숲을 향해 출발하니 참 장관이었다. 13명의 미인과 평범한 남자 한 명이라. 현실에서는 무거운 거 들 때 쓰이는 짐꾼이었겠지. 내 포지션은 안 봐도 뻔하다.

숲에 가니 역시 공기는 맑았다. 무식하게 커다란 나무를 보니 용케 이런 곳에 소환당해서 살아남았구나 싶었다. 감회가 새로워도 너무 새롭군. 캡슐을 제작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걸까? 내가 감상적으로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는 괴물을 토벌하느라 밟았던 땅이지만 그 괴물이 없어진 현재, 이곳은 안전하면서도 아름다운 숲이었다. 괴물을 퇴치하느라 숨을 죽이며 싸웠던 옛날과 달리 마음껏 웃으며 숲을 돌아다니니 아내들도 기뻐하는 눈치다. 다행이군.

“아스카. 주변에 니 종족이 있어?”

혹시나 싶어 아스카한테 물었지만 그녀는 없다고 했다. 예전에 낳았던 놈들마저 모조리 없어졌나. 우리한테는 좋은 소식이지. 괜히 왔는데 남아 있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니. 소풍 온 의미가 없잖냐. 멋진 광경을 보며 걷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숲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평화를 일구어낸 숲이다.

“저희, 정말로 해낸 거네요…….”

로라가 멍한 표정으로 숲을 보며 중얼거렸다.

“……예. 혜린이랑 로라, 메이. 그 외에도 모두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이제 로라도 평화를 누리셔야죠. 우리 아기를 위해서도…….”

그녀의 배를 쓰다듬자 로라는 몸을 기대왔다. 아아, 좋다. 정말 좋다……. 그래, 내가 바란 건 바로 이런 거였다고. RPG의 로망인 전투나 마법도 좋다. 현실 세상에서는 절대 꿈꾸지 못했던 최강의 힘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평화도 간절히 바랐다. 어째서 바란 게 이런 조촐한 평화냐고? 말할 필요가 있냐? 내가 있던 현실은 쓰레기였으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일에 휘말려 살아오기를 27년. 사람들한테 고통 받고 외면 받았다. 중학교 시절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힘든 일만 가득했지.

안 그래도 수험생이라 힘들었는데 주변에 있는 놈들은 자기보다 약한 놈 괴롭혀 키득거리는 병신 새끼들뿐.

대학에 들어갔지만 어려운 집안 때문에 공부에 모든 걸 몰빵 했어야 했다. OT? 미팅? 꿈도 못 꿨지. 그저 [집-학교-도서관]의 로테이션.

다른 아이들은 시험 친 후에 ‘아, A학점 맞기 존나 어렵네 ㅋㅋㅋ’라며 웃을 때 난 성적에 있는 A학점들을 보며 ‘장학금 받을 수 있을까……’라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군 복무야 누구나 힘들도 지친 이야기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전역하자마자 등록금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했다. 다른 아이들은 전역 후 학교에 복학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논다거나, 배낭여행을 간다거나. 좀 돈이 있는 집안 아이라면 어학연수를 가거나 하겠지. 하지만 난 그런 것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저 돈, 공부, 불안.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실에 쫓기며 어떻게든 대학교 3~4학년 부근에 도달하자 부모님은 나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셨다.

‘실은 우리가 너 전역 후 1년쯤 있다가 이사를 했잖니? 그때 빚을 내서 집을 사버렸단다. 아, 많지 않아! 한……4천만 원 정도? 너도 이 집에 살고 있으니 그 빚을 갚아주겠지? 니가 학자금 빚도 있고 그렇지만 좀 갚아주렴! 안 그래도 이 집을 빚 내서 샀는데 매달 관리비 내는 것도 힘들단다. 아, 그치만 한……4천 5백만 원 정도 갚아주면 더 좋고!’

하하. 웃겼다. 웃겨서 웃은 것도 있지만 어이가 없어서 웃겼다. 지금까지 딱히 엄청난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고, 부모님의 속을 썩인 적도 별로 없었다. 입 닥치고 집안을 위해, 미래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빚이라니. 그것도 상의도 없이. 단 한 마디의 말로 빚을 통보해버렸다.

힘들고 어려워도……그래도 가족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힘든 나날을 버텨왔다. 비록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난 가족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

헌데……이 세상에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 사랑하며 지탱해줄 유일한 존재. 정확히는 ‘그랬어야 하는 존재’한테 빚을 통보받은 나는……그 날로 모든 걸 포기해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일구어낸 인생 따위는 길가에서 좆을 박아대고 있는 수컷 개새끼보다 못한 것이었다. 내 욕심이나 이루고 싶었던 것을 꾹 참으며 여기까지 왔건만 남은 건 빚이라니. 상의조차 없었던 통보. 그것도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의 금액이었다.

나름 노력해 계약직에 들어갔지만 그것도 1년. 큰 재능이나 학연, 지연, 혈연이 없는 나한테 있어 대기업 취직이나 공무원은 요원한 이야기였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됐는데도 아빠는 책임감 없이 담배와 술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자기보다 어린놈한테 부려 먹히면서.

엄마도 아는 사람의 식당일을 도우며 어떻게든 살아가고는 있지만 빚을 갚는 건 꿈도 못 꿀 정도다. 아무런 대책 없이 빚까지 만들며 산 집에 올 때마다 한숨을 토해냈다. 빚을 져도 좋으니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적 따위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어느 새인가 나는 빚이라는 커다란 것에 짓눌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더욱 멋진 건 바로 독재당의 존재였다. 2016년까지. 대통령이 된 독재자의 딸 또한 독재당의 당원이었다. 2016년 기준으로 8년간 정권을 잡은 그 빌어먹을 년놈들 덕분에 한국의 경기는 급속히 나빠졌다.

금수저 부모나 좋은 혈연, 지연, 학연. 빽을 두지 않는 한 성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를 만들었지. 이쯤 되면 모두가 알리라.

그래. 빚을 지기 전부터 시작해 빚을 진 후에도. 이 ‘하렘 어드벤처’에 소환되기 전까지. 난 그 유명한 헬조선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 취업이 어렵기에 기업에서는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하지만 소규모, 중소기업 주제에 바라는 신입 사원의 스펙은 대기업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미친 스펙을 요구했다.

그런 높은 스펙을 지닌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에 들어간들 미래는 뻔했다. 그 멋진 스펙으로 온갖 일에 이용당하겠지. 적은 돈에 뼛속까지 이용당할 바에야 차라리 대기업에 들어갈 거라며 모두 대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그런 사람들한테 세상은 이렇게 말했다.

[야. 노력한다고 모든 사람이 보답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너희 중 누군가는 입사 면접에서 떨어져 이미 합격한 다른 누군가를 보며 부러워하거나 이를 갈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냐? 다 사이좋게 손잡고 입사성공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잔혹했다. 달리기를 하면 1등이 있듯이 꼴등도 있다. 누군가 입사해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입사를 할 수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 사실은 절망 그 이상의 것이었다.

대기업에 못 들어가니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되자 싶어 모두 공무원에 도전하지만, 공무원이라 해서 모두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도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이었고,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든 중소기업 등에 입사를 한다 치더라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양산해 쉬운 해고, 노예처럼 부려 먹히고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헬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전혀 해결을 하려 하지 않았다. 독재자의 딸은 청년들의 문제 따위는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정권 장악과 집권체제의 장기화.

쉽게 말해……자기들이 더 오래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청년들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독재에 익숙해진 노년층들한테 절대적인 인기를 구사하며 선거 때마다 이긴 그들은 노년층, 청년층, 아동이나 서민들을 위한 정치 따윈 아예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 독재당과 대기업,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부정을 저질렀다. 그걸 겪어야 했던 나도 참…….

아, 더 최악인 점 하나 더 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님이 바로 그 독재당의 열렬한 신자(信者)였다.

부자도 아니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과 그녀의 아버지.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개새끼를 믿으며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 믿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한숨밖에 안 나왔다.

내가 바랐던 거? 강한 힘? 어, 바랐다. 돈도 있었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내가 정말 바랐던 것은……가족이었다.

내 평생을 바쳐 노력했건만 그걸 멋지게 배신하는 것도 모자라 빚까지 얹어주는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진실된 가족. 서로 사랑하고, 웃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며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그런 가족 말이다.

숲을 둘러보며 ‘엄마, 저기도 가봐요!’라며 로라의 손을 잡는 메이를 보니 절로 웃음이 든다. 안나와 니나도 모녀끼리 이렇게 숲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게 처음이었던지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웃었다.

기쁘다며 약간 눈물을 흘리는 아이나를 아이라와 미카가 다독이고 있고, 희진이와 은채는 이 숲에 소풍 오게 될 줄은 몰랐다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기쁘다. 정말 기쁘다. 캡슐을 다 만든 거? 기쁘지만 그건 지금 내가 느끼는 기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내 가족이……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함께 이렇게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 빚조차 해결하지 못한 나한테 결혼 따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빚도 어떻게 못하는데 결혼이라니. 헬조선은 결혼과 출산부들한테도 지옥 같은 곳이었기에 더욱이 그런 건 꿈도 꿀 수조차 없었다. 그저 자위와 한숨으로 살아가야 했던 나날.

누군가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묻는다면 진짜 그 새끼 면상에 주먹을 처박아주고 싶었다.

노력 따위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노력은 노력일 뿐이다.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만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 따위는 아무것도 없겠지. 노력은 그런 불가능을 피하기 위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다니까? 현실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랑. 이룰 수 없었던 섹스나 가족의 꿈이 모두 현실로 나타나다니.

재수 없지만 가끔 이 모든 것이 모두 환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아주 긴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에 오래 있어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 못 하는 거 아닐까 하고.

그치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현실이면 어떻고 꿈이면 어떤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으면 되고, 그곳이 바로 현실인데.

진짜든 가짜든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자기한테 있어서의 진짜’가 되는 거다.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캡슐을 모두 만들었다. 아직 나눠주는 건 하지도 않았지만 가족들이랑 이렇게 숲에 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다니. 정말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시궁창 같았던 내 인생이 이 세상에 와서 드디어 보답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함께 숲을 거닐던 아내들은 어디가 아프냐, 뭐가 잘못됐냐며 물었지만 난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너무 행복해서 그런 거라고 하자 ‘숲에 괴물이 없고 평화로워져서 그래요?’라며 메이가 묻는다. 꼭 그것만은 아니라고 대답하며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웃는다.

감정이 복받친 것뿐.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에 정말 괜찮다고 했다.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들한테 정말 괜찮으니 숲을 마음껏 둘러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안심했는지 다시 그녀들은 숲을 거닐며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괜찮아?”

“아, 응. 그냥……옛날 생각이 나서.”

혜린이와 아스카는 내 곁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혜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스카는 ‘원래 오래 있던 곳이다. 그보다는 니 곁에 있고 싶구나’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우직하다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고마웠기에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호오, 그러고 보니 세린에 대한 건 들은 적이 없구나. 옛날에도 이런 곳을 거닐었던 것이냐?”

아스카의 말에는 ‘옛날 생각이 나서 울었냐?’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었다. 난 손을 저으며 웃었다.

“하하, 설마. 매일 공부만 하고 집안일 도와주느라 바빴어. 이런 곳에는 잘 오지도 못했고.”

우리 부모님은 까놓고 말해 나쁜 부모님은 아니었다. 날 데리고 소풍도 가셨었고, 나름 신경도 써주셨다. 나이가 들어갊에 따라 그런 이벤트나 배려가 많이 사라지고 점점 삶에 지치셔서 그런 거지. 그렇다고 빚을 만들어 나한테 떠넘긴 걸 긍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만…….

“힘들게 살아온 거라면 대체 왜 운 것이냐?”

“말했잖아. 행복해서 그랬다고.”

“행복하면 웃는 거 아니느냐?”

아스카랑 하는 대화는 즐거웠다. 다른 세상의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종족 자체가 아예 달랐으니까. 현실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괴물. 심지어 지능을 가진 여성체라는 점에서 또 즐거움이 더해간다.

“너무 행복하면 웃는 걸로는 모자라거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는 거야.”

“이해하기 어렵구나……아, 그렇구나! 이해가 가느니라!”

어렵다던 개념을 단숨에 이해하다니. 역시 아스카. 여왕의 칭호는 겉치레가 아니었어.

“내가 세린의 자지에 박히다보면 머리가 새하얘지며 눈물이 나오는데 그것과 같은 것이로구나! 그 느낌은 실로 천상의 기쁨이었느니라!”

……어, 음. 그렇다 치자. 내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하자 아스카는 기뻐했다. 혜린은 이런 우리의 대화에 키득거리며 내 쪽으로 몸을 기대온다.

“행복해?”

“그럼……. 현실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행복이 이렇게 많아서 오히려 불안할 정도야.”

“사라질까봐?”

정말이지……혜린이한테는 무언가를 감추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 과거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건 혜린이와 희진이, 은채. 세 명 정도였다. 그나마 많이 아는 게 혜린이. 희진이와 은채한테는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표현해도 맞아 들어간다만.

“현실에 있을 때 난 늘 엿 같은 일만 겪었거든. 좋은 일 하나 생기면 나쁜 일이 열 개는 넘게 생겼다니까?”

“그 맘 알아. 이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캡슐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좀 쉬면 좋겠어. 태어날 아기도 생각해야 하니까.”

혜린이의 배를 문지르자 아스카가 ‘부, 부럽구나……나한테도 해줬으면 좋겠구나……’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배를 양 손으로 문지르니 기분 참 묘하구만.

즐거워하는 모두와 숲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마리아와 아테나를 직접 상대해줬다. 미카와 아이라까지 포함해 모두 네 명이었지만, 레이 시리즈와 상대하다보니 오히려 수가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었다. 단숨에 레이 시리즈와 몸을 나눌 때의 1/3 이하로 줄었으니까.

캡슐은 먹으면 바로 임신 상태가 된다. HP와 MP를 회복시켜주는 것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기력을 회복시켜준다’라고 대답하라고 일러뒀다. 괜히 HP랑 MP 회복시킨다고 했다가 또 난리 날 일 있냐. 이제 힘든 일에 휘말리는 건 넌덜머리가 난다.

생명의 씨앗과 달리 임신 상태는 10개월 간 지속될 것이다. 내가 있던 현실처럼 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낳게 되는 아기가 고속으로 성장할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혜린이를 비롯해 많은 아내들의 배가 불러오는 걸 보니 점점 내가 아빠가 되어가는 걸 실감한다.

아빠라……. 내가 정말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스스로 고개를 흔들었다. 좋은 아빠가 아내들을 이렇게 많이 만들겠냐. 놈팽이 자식. 은채와 아이라가 날 욕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좀 간다. 나도 나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걔들은 오죽했을까.

절정에 도달한 후 자고 있는 그녀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창문을 본다. 창문 너머의 하늘은 검지만 달빛 덕분에 운치 있는 풍경이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광경도 변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잠을 청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캡슐제작이 끝났네요. 마리아와 아테나를 등장시켰을 때부터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작중 등장하는 '생명의 씨앗'은 세린이 소환됐을 때부터 더 이상 만들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로 인해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캡슐 에피소드를 넣게 됐습니다만, 그 분량이나 내용은 예전까지 이어져 오던 것들과 상당히 이질적인 성질을 띠게 됐습니다.

모험과 싸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던 하렘 어드벤처가 갑자기 마을 여자들과 괴물들까지 동원한 좆물 짜기 이벤트로 전락해버렸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량 조절 및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아이템을 만들지 못한 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쓰는 노블레스 장편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역시 독자분들한테 죄송스럽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루인sv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렘 멤버를 추가시켰지만 고생만 더 하게 되는 에피소드기도 했습니다. 글로 쓰긴 했지만 실제로 생각한다면 무지 힘든 일이겠죠. 2천발이라니. 분신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빨리 잡아도 1년은 걸리지 않았을까요. 하루 24시간 내내 섹스만 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어, 아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여하튼, 마침내 캡슐 제작편이 끝났습니다. 모험과 가슴 떨리는 감동보다는 여자들과의 난교 이벤트로 가득한 내용이었기에 구독을 그만두신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로리콤MK님, 실제로 거울 보면서 면접대비 웃는 연습도 하곤 했습니다. 왜 과거형이냐고요? 요즘엔 안 하거든요. 어쩌면 5월부터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아 직무관련 자료 찾아보느라 바쁩니다.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5월이 되면 또 자정 0시에 업로드해야 하나, 아침에 업로드해야 하나죠. 새벽에 올리자니 자정 업로드 러쉬에 밀리고, 아침에 하자니 안 그래도 인지도 없는 이 소설이 아침에 업로드된다고 엄청난 인기를 끌겠습니까. 그냥 모르는 소설 업로드됐다고 하겠죠.

100편이 되면 남은 4월은 취업 및 추후 소설분량으로 인해 잠시간 업로드를 멈출 생각입니다. 아마 다음 주 월요일이 마지막 업로드가 되겠네요. 그 전까지는 내용과 분량을 착실히 채워 모든 독자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설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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