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4 「10-3 : 서장(序章)의 끝 (3)」 =========================
“발견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몬스터 테이밍을 위해 가는 건 나 혼자만으로 충분했다. 그 말에 아내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비상사태를 대비한다. 4만에 달하는 MP를 가진 나한테 있어서 그녀들의 존재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갈 수는 없다.
온존해놓은 4만의 MP 게이지를 확인 후 천천히 다가가며 주위를 살핀다. 여전히 헐벗은 그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걸어가는 동안 하반신은 꼿꼿하게 서며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 후후……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어.
원래라면 혼란마법을 걸어야겠지만 스스로 다가오는 먹잇감에 대해서는 별 경계를 나타내지 않았다. 이건 예전에도 그랬지. 스스로 다가가는 나한테 눈웃음을 지는 그 모습.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한 게 하나 없군. 원 패턴이지만 나한테 있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지.
형태는 사람의 형태. 몸의 색깔은 사람과 비슷했지만 핑크색을 띠고 있었고 등 쪽에는 조그마한 검은색 날개가 있다.
예전에 살펴보지 못했던 이유는 새로운 몬스터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괴물 토벌보다는 여행의 완수가 더 중요했기에 그런 거다. 살랑거리는 손가락은 척 봐도 날 유혹하고 있다.
“여행이 많이 힘들죠……?”
“어……?”
어, 어랍쇼? 얘 말하네? 이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웃음을 띠고 있다. 내가 멈추니 이번엔 자기 쪽에서 오는군. 저 멀리에 있는 두세 마리도 날 눈치 챘는지 다가온다. 이게 무슨 사냥 게임도 아니고…….
“너……말할 수 있어?”
“예에♪ 후후, 굉장한 마력을 느껴요…….”
딱히 허락을 맡을 필요는 없지만 내 바지를 능숙하게 벗긴 서큐버스는 하늘을 향해 선 남근에 얼굴을 비벼댔다.
크윽……장난 아닌데……!? 내 아내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대놓고 바람을 피다니……이런 말하면 쓰레기겠지만 이미 쓰레기니 말한다.
현실 세상에서 바람피는 남자들의 기분이 이해가 간다! 세상에……이토록 강렬할 줄이야! 물론 아내들 앞에서 아이라를 범했던 적도 있고 난교 파티를 나눈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의 아래서 한 일이다. 아스카조차 그랬고.
내가 그녀들과 몸을 나눌 때는 늘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 그치만 아내들을 저 멀리 내버려둔 채 괴물과 몸을 섞으려고 하다니…….
위험하니 나 혼자 가겠다는 말은 아내들 걱정해서 한 말인데 이런 식으로 멋지게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구. 이거야 원……횡재한 기분인데?
굉장한 마력이라면 내가 지닌 마력을 뜻하겠지만 역시 괴물은 괴물이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캡슐을 만들 수 있는 원천이자 아기 씨앗인 정액에 대해 눈치 챈 건가……. 전투력은 모르겠지만 통찰력 하나는 쩔어주는군. 좋아, 작업에 들어가볼까?
“하하, 이런 미인이 대놓고 자지에 얼굴을 비비니 기분 짱인데?”
“자지……? 그게 이 물건의 이름인가요?”
갸우뚱하면서도 내 물건을 손에 쥐고 있는 걸 보니 꽤 집요한 성격 같은데. 부디 얀데레만큼은 아니기를 빌자. 미카도 살짝 얀데레 끼가 있어서 무섭단 말이야…….
“그럼, 좆이라고도 부르고 자지라고도 부르지만……이건 너희를 포함한 여자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거지. 마음껏 맛보라구……. 그치만 그 전에 소원 하나 들어줄래?”
“소원……?”
“그래. 이 좆의 좆대가리 보이지? 너처럼 미인의 키스를 받으면 기뻐서 더 노력할 거 같거든. 너 같은 미인은 좀처럼 볼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저 멀리에 있는 아내들이 들었다면 경을 칠 말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저기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것뿐만 아니라 아내들의 미모까지 디스해버리다니. 난 쓰레기다. 그치만 지금은 괜찮겠지.
내 칭찬이 기뻤던 건지 서큐버스는 혀를 낼름거리며 귀두에 키스를 한다. 그 순간…….
[‘자지의 맹세’가 발동했습니다. 마법 적용 대상이 괴물이므로 ‘몬스터 테이밍’이 동시에 발동합니다. 스테이터스 파티에 ‘서큐버스’가 추가되었습니다.]
[몬스터 테이밍 / 소비 MP 0 / Passive]
- 여성 캐릭터(괴물)를 자신의 충실한 몸종으로 만드는 마법. ‘자지의 맹세’ 발동 시 여성 캐릭터가 괴물일 경우 자동으로 함께 발동된다. 효과는 ‘자지의 맹세’와 동일하며 추가된 여성 캐릭터(괴물)는 이후 [스테이터스] 메뉴에 파티 인원으로 추가되며, 몸과 마음 모든 것을 플레이어한테 지배당한다. 괴물의 경우 괴물의 출산이나 신체적 구조 등을 임의적(任意的)으로 조작할 수 있다.
몬스터 테이밍이 자동으로 함께 발동되는 걸 보니 감미가 새롭구만. 예전과 달리 이젠 그 뜻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테이밍 성공이군. 이렇게 쉽게 되다니……. 저항은커녕 아예 부탁하니 조건까지 만족시켜줬다. 스테이터스를 열어 일단 명령 몇 개를 내렸다.
1) 마을 사람들 및 파티 인원에 대한 공격은 절대 금지(자기 보호는 가능)
2) 마을 사람들 및 파티 인원의 무차별적인 MP 흡수 금지
혼란 마법을 비롯하여 공격마법이나 육체적인 위협 등을 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예전에 아스카한테 걸었던 내용을 살짝 고쳤지. 이걸로 마을 사람들이나 아내들을 공격할 일은 사라졌다.
두 번째 명령은 MP(마력)의 무차별 흡수였다. MP가 부족하면 나한테 오거나 아내들의 힘을 빌리면 된다. 마을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애초에……내 욕심과 계획을 위해 데려오는 거다. 그런데 이득은 내가 보고 피해는 남한테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큐버스도 출산을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추가로 더하면 될 일이다. 우선은 이 여자를 기점으로 모든 서큐버스를 파티에 넣자.
몽롱해진 얼굴을 보니 이미 성공하고도 남았군. 자지에 키스를 해대며 힘겹게 숨을 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앗, 그러고보니 이 메시지를 잊고 있었군.
[‘몬스터 테이밍’에 의해 추가된 멤버는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20명이나 있다니 그걸 다 생각해야 하나……. 그치만 그러자니 힘들다. 지금 이름 하나 지어준 다음 뒤에 숫자를 붙이거나 해야지. 좀 성의 없는 짓이긴 하지만 20명의 이름을 모두 하나하나 생각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뒤에 숫자를 붙이는 편이 나중에 관리하기 편할 테니까 그냥 그러자.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건 좀 그랬지만 이름 후보는 바로 나왔다. 아스카와 대비되는 이름이며 어찌 보면 양산형 이름일 수도 있는 그 이름.
아스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그 이름을 설마 괴물들한테 OO-1, OO-2 같은 식으로 붙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지만……어쩔 수 없지.
“니 이름은 앞으로 ‘레이’다.”
[몬스터 테이밍에 의해 귀속된 ‘서큐버스’의 이름이 ‘레이’로 변경됐습니다.]
저지르고 말았다……!! 난 속으로 저질러버렸다는 후회감을. 동시에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달성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래. 레이와 아스카. 이 이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거라 생각한다.
[그거 유희왕GX에 나오는 ‘텐죠인 아스카’랑 ‘사오토메 레이’말하는 거죠?]
아니라고, 시발! 아, 물론 유희왕 시리즈는 즐겁게 봤다! 나는 GX를 리얼 타임으로 본 세대였고 실제로 듀얼 몬스터즈가 SBS에서 방영할 때 한글판 스타터도 샀었지! 5D's 때부터 안 보기 시작했다만 그래도 좋아는 한다! 그러니까 블랙 매지션 걸 코스튬을 아이라한테 줬지!
하지만 다르다! 레이와 아스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당연히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에반게리온으로 인해 오타쿠 붐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로 그 인기와 파급력은 굉장했다. 나 또한 한국판 더빙 비디오를 보고 ‘와, 예쁜 캐릭터 많다’라고 느꼈을 정도니까.
한국판 비디오에서는 대부분의 이름이 한국식. 혹은 이름만 있는 형식으로 변경됐었다. 아스카의 경우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가 ‘에레나 랭글러’로 바뀌었었지.
‘랑그레이’를 ‘랭글러’로 바꾼 건 독일식 이름을 영어 발음으로 바꾼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만……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애니메이션에서 아야나미 레이는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다. 그 비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레이와 똑같이 생긴 ‘영혼 없는 육체’가 수없이 많기에 그녀는 일종의 클론으로도 볼 수 있다. 단순한 클론은 아니지만.
서큐버스가 죽더라도 그녀를 대신할 서큐버스가 있다……같이 잔인한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여러 명이 있으니 양산형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고 이름 또한 아스카를 썼으니 레이도 쓰자는 생각에 붙였다. 내가 봐도 참 절묘한 네이밍 센스라고 생각한다.
“넌 이제부터 ‘레이’야. 잘 부탁해.”
“……네, 주인님.”
명령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군. 비록 물리적인 공격을 하지는 않는다지만 주종(主從)관계는 확실히 해두는 게 좋았기에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쓰게 했다.
“자, 레이. 첫 번째 임무야. 주변에 있는 모든 서큐버스들한테 날 데리고 가줘.”
“……네.”
맨 처음 매혹적으로 말을 걸었을 때와는 달리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걸 보니 좀 거시기한 기분이군. 하지만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건 나중이라도 상관없다. 지금은 최대한 빨리 이 주변의 서큐버스를 포획하는 게 중요하니까.
명령을 내리며 다시금 느낀 건 ‘자지의 맹세’가 너무나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좆에 키스를 한다고? 존나 어렵잖아 시발!’이라고 생각했었다. 난 지금까지 여자랑은 인연조차 없었던 놈이니까. 혜린이도 잘 때 몰래 한 거지.
처음의 내 예상과는 달리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는 내 생식기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감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조건을 달성시키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레이와 함께 찾은 서큐버스들을 너무나 손쉽게 세뇌시키며 생각한다.
[……이 강한 마법을 대체 왜 나한테 준 거지?]
캡슐 제작은 이번에 맹세를 맺게 되는 서큐버스들을 데리고 가서 빡세게 작업하면 될 일이다. 그럼 난 평화를 되찾겠지. 그러나 평화를 얻게 된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늘 마음에 걸리는 단 하나의 요소. 바로 그 백발(白髮)의 여자……!
생명의 씨앗을 못 만들게 된 것부터 시작해 온갖 사건의 시작은 바로 그 여자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아니, 그 이전에……그 여자 외에는 의심할 사람조차 없다!
이게 추리 소설이라면 너무나 완성도가 낮은 작품이 되겠지. 왜냐고? 의심이 가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으니까! 이게 무슨 추리 소설이야!?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추리 소설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걸 미리 말해둔다! 난 추리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한다! 그 안에는 추리 소설도 포함되고. 용의자가 한 사람인데 그 용의자가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느냐,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등을 보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딱 봐도 이 모든 일을 벌인 사람은 바로 백발 여자고, 미카나 내 몸을 지배했던 그 이후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나한테 호의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럼 다시 묻자.
[왜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한테 이런 강력한 마법을 준 거지?]
이해할 수가 없지 않은가?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최종 보스. 흔히 말하는 ‘끝판왕’은 늘 주인공한테 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을 얕보며 ‘흥, 그런 놈은 내버려둬도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같은 병신 헛소리나 지껄여대다가 역관광을 당한 다음에 후회하지.
자지의 맹세를 비롯해 온갖 음흉한 마법을 제공한 그 여자가 흔하디 흔한 클리셰 하나를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럼 대체 왜 적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고, 아군이 될 가능성이 없는 나한테 이런 강력한 마법을 준 거지? 왜?
마법뿐만 아니다. 내가 가진 두 정의 소총은 이 세상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다. 모두 다 마법이나 무기로 싸우는데 나 혼자 현대병기이자 만병지왕(萬兵之王 ; 모든 병기 중 왕)인 총을 가지고 싸우니까. 조준을 못 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말이지.
미카와 내 몸을 지배했다는 점에서 볼 때 누구든 조종이나 지배가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그럼 또 이해가 안 간다. 언제든지 그런 짓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하지? 왜 위협이나 이상한 소리만 하고 늘 사라지는 걸까?
나한테 바라는 게 있으면 와서 직접 말하면 된다. 내가 그걸 들어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판단할 테니까. 들어줄 수 있으면 ‘예,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주신 게 있는데 그거 하나 못 해드리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서로 친근하게 지낼 수 있다. 마음에 걸리는 걸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단 말이다.
근데 왜 남의 꿈이나 섹스 중에 나타나 초를 치고 가냔 말이다. 나한테 바라는 걸 듣긴 들었지. ‘더 변해라’라니. 내가 현재진행형으로 변하고 있는 건 나도 자각했다. 하지만 변해서 뭘 어쩌란 말이냐…….
나도 인간이기에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에이, 그런 여자가 무슨 상관이야? 이제 캡슐만 만들면 평화를 되찾겠지! 괴물도 없는 프레그넌트에서 매일 여자들과 몸을 나누며 해피(Happy)한 인생을 살자고!’라는 생각도 한다. 전부 다 잊어버리고. 고민이고 지랄이고 간에.
그치만……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사건이 그 여자 때문이라면 이번에도 뭔가 올 거 같았다. 마리아와 아테나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어 서큐버스를 잡고는 있지만……솔직히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이게 무슨 소셜 게임도 아니고. 언제까지 영원히 퀘스트만 진행할 수는 없지 않은가?
캡슐을 마을과 수도에 나눠준 후에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영원히 내가 나서서 일을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내 탓도 아닌데 이 일을 하는 건 마리아와 아테나의 부탁이기도 하고, 나도 아예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그치만 이제 한계다. 제발 그만 좀 해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문제는 있었다. 이제 혜린이는 임신 5개월 차다. 14주 정도만 되어도 배가 나오는데 이젠 멀리서 보기에도 불룩해진 배를 보니 얼른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혜린이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아기가 걱정돼서 그런 거다.
이 세상에서 생리나 배란일의 개념은 없다. 원래라면 임신으로 인해 격한 운동 등은 하면 안 되지만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고통이나 충격이 아기한테 전달될 일이 없는 듯했다. 혜린도 임신으로 인한 고통은 잘 못 느끼겠다고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아기를 무사히 낳은 후라면 모를까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니 부담이 된다. 제기랄……이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언제까지……언제까지 그 정체 모를 여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하는 거람.
이 세상에 소환시켜주고 무기와 마법까지 준 건 고맙게 여긴다. 하지만 이제 그만 좀 해라. 한계라고…….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의식주만 주고 평생 일하라고 하면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니까.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는 사람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정체모를 미친년의 손바닥 위에서 언제까지 놀아나야 하는 걸까. 싫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아주 간단하지.
‘그 여자……다음에 나타나면 반드시 죽여주마……!!’
살의를 가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누구 한 명한테 가진 적은 없었다. 그 여자는 전혀 영광스럽지 못하게도 내 살생부에 올라온 상태였다. 제0순위로. 내심 속으로는 그녀가 나타나는 걸 기다리고만 있다. 그녀를 죽임으로써 모든 일을 끝낼 생각이었으니까.
나한테 마법과 무기, 이 세상에 올 기회를 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 건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뭐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 불러달라고 부탁한 적 없거든?]
내가 뭐 개처럼 울부짖으며 ‘제발 절 이 [하렘 어드벤처]에 소환시켜주세요!’라고 빌었냐? 그런 적 없다. 아무 예고도 없이 소환 당했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정체도 모르고 뭘 생각하는지도 모를 미친년한테 평생을 바치라고? 사양한다. 그딴 건 하고 싶은 놈한테나 하라고 해라. 난 아니다.
배은망덕이든 뭐든 마음대로 지껄이라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안전한 장래를 위해서도. 그 여자는 방해물이다. 은인도 아니고 호인(好人)도 아니다. 목적을 위해 날 소환해 위협하고 이용하는 시발년일 뿐.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즐겁게 해줬으니 답례로 죽여주마.
범할 생각조차 없다. 아니, 너무 위험하다. 모두를 조종할 수 있고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죽여서 끝내야 한다. 범해서 ‘자지의 맹세’로 귀속시킨다는 얄팍한 이상 따윈 버려라.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본능이 알고 있다고. 그런 미래 따윈 없다는 걸…….
아름다운 서큐버스들은 레이에 의해 점차 모여들었다. 그녀들한테 기계적으로 ‘레이 01’이나 ‘레이 02’ 같은 [이름 + 번호]를 붙여주며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뒤숭숭한 것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나는 급박했다. 오죽하면 나 스스로가 살인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려 할까?
20마리 정도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 수는 그것보다 좀 적었다. 총 15마리인가. 몬스터 테이밍 자체에 성공했다는 기쁨이 있지만 실제 수를 보니 그 기쁨이 조금 줄어드는군.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라니까……. 서로 나한테 안기려는 건 좋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얘들아. 우린 이제부터 프레그넌트라는 마을로 갈 거야. 그곳에서 함께 살 거야. 괜찮지?”
모두 황홀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카랑은 달리 애초에 사람한테 큰 해를 끼치지도 않고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에 설득은 용이했다.
“너희도 알겠지만 거기 가서 함부로 사람의 마력을 빼앗으면 안 돼. 대신 나나 내 아내들.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놓을게. 너희한테 마력을 공급할 사람은 주로 내가 될 거야. 바로 이 자지로 말이지…….”
하반신을 움찔거리자 모두 홍조를 띠며 좋아했다. 아직 사정을 한 번도 못 했다. 불끈거리는 건 좋지만 작업이 우선이지. 이젠 성욕보다 작업을 우선시하게 되다니. 설마 내가 워커 홀릭의 기질을 가지게 된 건 아니겠지……? 불안하다.
레이를 비롯한 서큐버스들을 데리고 아내들한테 간다. 무장은 이미 해제된 상태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걸 저 멀리서도 확인했나보다. 아이라는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세린. 이 서큐버스들도……?”
먼저 입을 연 건 아이나였다. 촌장답게 마을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미리 확인을 해둔다. 이 철두철미한 성격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는 허당에 귀여운 아가씨지. 아이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당연히 사람들한테 위해는 안 가하지. 우리 아내들한테 그런 짓 하게 내버려 둘 거 같아?”
이번에 테이밍한 서큐버스들. 약칭 ‘레이 시리즈’는 그 누구도 아내로 삼지 않을 예정이었다. 수가 너무 많은 것도 있지만 이 이상 아내를 늘려버리면 나도 부담이 너무 크다. 13명이라고 하니 13일의 금요일이 생각나네. 설마 이 세상에 전기톱까지 있는 건 아니겠지? 제발 참아주라.
“캡슐을 만드는 작업이 끝난 후에는 성벽의 감시나 외부의 괴물 등에 참여하게 할 생각이야. 괴물은 같은 종이든 다른 종이든 인간보다 훨씬 더 감지(感知)가 빠를 테니까.”
시퍼런 색의 촉수 괴물들과 서큐버스가 서로 적대적이라는 걸 들었을 때부터 은근히 생각하던 거였지. 괴물에는 괴물로 대항한다. 사람보다 괴물의 탐지력이 더욱 뛰어나고 그 괴물이 우리 편이라면 당연히 이런 식으로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함께 있던 아스카한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이유는 서로 같은 파티 멤버여서 그런 거겠지. 마을 사람으로도 볼 수 있고 파티 멤버로도 볼 수 있는 아스카와 레이는 사이가 아주 좋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종(種)이니까.
하지만 명령으로 내려졌기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걸 보니 더욱 더 그 여자를 죽여야만 한다고 느끼게 됐다.
내가 해온 행동이지만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조종하는 건 그 자체로도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이런 일을 나나 내 아내들이 더 이상 겪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미카.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부카케에 잠시 들렀다가 갈까?”
미카를 위해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만나는 건 나중에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캡슐을 만들어야 하는 때잖아? 게다가……이왕 만나는 거라면 캡슐을 가지고 가서 모두한테 나눠주고 싶어. 만나는 건 그때로 충분해. 배려해줘서 고마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걱정을 끼친 건가. 난 정말 형편없는 남편이군. 나 혼자 조바심에 모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거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다. 원래라면 좌절해야겠지만 이젠 아니다. 좌절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완수해야 한다.
아이라한테 부탁해 우리는 프레그넌트로 돌아갔다. 작업은 점심을 먹은 후부터 시작할까. 생각 외로 빨리 끝난 포획에 더욱 더 자신감이 늘어났다. 마력이야 썩어 넘칠 만큼 있으니 이젠 캡슐 제작에 몰두하기만 하면 된다.
덧붙여 나도 레이와 한 번 몸을 섞어보고 싶었으니 나쁠 것도 없고. 힘든 일, 즐기면서 해야 하지 않겠어?
내 아내들도 동참은 하겠지만 이젠 마을 사람들까지 동원해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었기에 내심 즐거웠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캡슐 제작과 평화를 되찾는 것. 그리고 이 평화를 위협하는 그 여자를 죽이는 것.
이 사실에 대해 그 여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그 백발의 여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나한테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며 욕을 할까? 아니면 받은 힘으로 깝치고 있는 병신이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고 비웃을까?
어느 쪽이든 보일 법한 반응이다. 집 지키던 개가 주인을 물려고 하는 구도니까.
그러나 난 그녀한테 날 키워달라고, 돌봐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다. 힘은 줬지만 그 힘으로 여기까지 미래를 쌓아올린 건 바로 나다. 어찌 보면 자만이고 오만이겠지만 뭐가 됐든 상관없다.
난 그저 지키고 싶다.
미래와 평화, 아내들.
그리고 아기들을.
위협이 될 것이 뻔한 그 여자를 두 손 벌려 맞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늘을 봤다. 하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푸른색으로 빛날 뿐이었다. 이제 조금만……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난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아스카가 나왔을 때부터 레이라는 캐릭터가 나올 줄 알았다고 생각하시는 독자분들이 계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데퍄퍄퍗! 독자들도 작가랑 같은 레벨 데슥! 데퍄퍄퍗!"
대부분의 독자분들은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데……와타시들이……저런 미친놈(작가)과 같은 레벨……? 와타시들은……비정상……?'
데퍄퍄퍗! 함께 미친자들이 걷는 길─크레이지 로드─를 걷는 뎃샤아아아앗────!!
……정상으로 돌아와서, 서큐버스들을 무사히 테이밍한 세린입니다. 인간성의 상실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윤리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히 타락했다고 봐야 할 거 같네요.
원래 하렘 어드벤처의 주민이었던 사람들이야 세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지만 이혜린이나 원래 세상의 사람들은 사실 이러면 안 됐었는데……세린에 의해 윤리적인 부분이 타락해버렸다고 보는 게 정확하겠네요.
현재도 존재하고는 있지만 한국에서는 채택하고 있지 않은 일부다처제. 그 일부다처제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애니나 만화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슬프면서도 안타까운 일이겠죠. 일부다처제를 위해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건지, 정말로 좋아해서 섹스를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테니까요.
루인sv님과 로리콤MK님이 '등장인물들이 미쳤다'라고 말씀하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미친 작가가 이세계 이야기를 쓰며 섹스 파티를 자세히 묘사하는데 이걸 정상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적는 저도 막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는 독자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인간성의 상실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기를 낙태시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윤리적 타락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성의 상실 = 윤리적 타락]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 경우에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선 = 인간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윤리나 도덕의 상실 ≠ 인간성의 상실]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선은 지키고 있지만 생명존중 사상이나 윤리적 가치관은 점차 타락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묘사하자니 어렵지만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모두를 지키며 함께 살고 싶어! 내 주위의 사람들이 상처입는 건 원하지 않아! = 인간성 존재'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 따위는 얼마든지 죽여도 돼. 해피해피♡ 아기를 죽여 얻는 쾌락은 이루 말할 수 없어……♪ = 생명경시 사상 + 윤리적 타락'
이렇게 볼 수 있겠네요. 인간성이라는 커다란 원 안에 윤리나 도덕이 들어가있는 상태. 수학으로 치자면 벤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명이 너무 어렵네요. 예전에 코멘트를 자주 남기시던 詭計智將님께 이 부분에 대해 빠르게 설명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 물론 이러한 윤리적 타락과 생명경시 사상을 이끌어낸 세린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작가인 제가 합삐합삐한 인생만 부여할 거라 생각하시는 독자분들이 있다면 꼭 다시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 절대 그렇게 착한 놈 아닙니다 ^^
이상입니다. 어느 정도 일이 해결돼서 후기도 조금씩 길게 적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감기 걸리신 로리콤MK님은 약 복용하실 때 꼭 졸음 유발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시고 잡수시기를…….
네? 제 뒤에 있는 가냘픈 아이는 뭐냐고요? 어허, 이분들이! 남자라면 자고로 1남자 1로리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법! YES 로리 NO 터치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히힛♡ 아저씨랑 재미있는 거 하면서 놀자? 부부부부히이이잇────!' 플레이를 하는 건 합법이라구요!
……네?
…………불법이라고요?
………………잡혀간다고요?
……레, 레드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