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9-2 : 여왕과 공주 (2)」 =========================
괴물의 여왕이었던 아스카를 데리고 갔을 때의 반응도 좀 그랬다만, 여왕과 공주를 데리고 가자 더 가관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들이 입고 있는 황금의 비키니는 여왕과 여왕기사단만이 입을 수 있는 옷 같았다.
게다가 비키니 상반신이나 하반신에 있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하트 마크는 여왕과 공주 외에는 입을 수 없다는 듯했다. 공주의 경우 기사단장이면서도 공주니 좀 특이한 케이스긴 했다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현재 아이나의 집무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 아내들과 갑작스런 불청객 두 명. 아스카는 헛간에 있으니 열 명의 아내와 나. 그리고 두 명. 총 열 세 명의 사람이 집무실에 모이다니. 이건 이거대로 장관이군.
혜린과 희진, 은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꽤 얼어있는 거 같았다. 사실상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두 명씩이나 와서 그런 거겠지. 현실 세상에서 온 우리는 시큰둥하다. 우리가 뭐가 예쁘다고 쟤들한테 공경하게 대해야 하냐?
아이라의 근황을 물어보던 마리아는 마을의 최고 책임자인 아이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재 마을의 치안부터 시작해 괴물이 나타나는 빈도 등. 다양한 것을 물었기에 마리아에 대한 평가는 더욱 높아졌다. 원래부터 꽤 온후한 성격이었다. 가슴도 말이지……!
축 늘어진 그 가슴은 그야말로 젖소였다. 저 가슴에 얼굴을 파묻을 생각을 하니……읏! 제기랄. 또 발기해버렸다. 내 좆에 대해 아는 여자들은 새파래진 얼굴로 나를 봤지만……어쩌겠냐. 저 여자가 매력적인 거지. 나한테는 잘못 없다.
온후하면서도 마을에 대한 여러 가지를 묻는 마리아도 아름다웠지만,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듣는 아테나 또한 엄청난 미인이었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도 그렇다만 메론 같이 풍만한 저 가슴 또한 꽤나 매력적이군…….
수박과 메론이라고 하니 크기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지만, 축 처지지 않았으면서도 그 특유의 탱탱함과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테나가 마리아를 이긴다.
이거야 원……. 이런 벽지(僻地)에 스스로 오다니. 내가 ‘자지의 맹세’로 그녀들을 세뇌한다 치더라도 나한테 나쁠 건 없겠지. 애초에 오지를 말았어야지 그러면…….
대화를 들으면서도 느꼈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은 백발 여자의 사주다. 틀림없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난 지금까지 나한테 일어난 대부분의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레벨 10이 되자 촌장이었던 아이나가 날 부른 것부터 시작해 미카나 안나 & 니나 모녀와의 만남 등.
그 의혹은 원래부터 강했지만 항희진와 박은채의 소환 이후로는 아예 확신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오늘 저 두 명이 온 것으로 완전히 사실이 됐다. 생각해보라. 여행을 떠난 것으로 인해 난 많은 아내들을 얻게 됐다. 심지어 전투의 경험부터 시작해 레벨 업, 돈, 아이템. 어떤 경우에는 무기까지 얻었다. 날 강인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요소를 여행에서 얻게 됐다.
그뿐일까? 내가 현실에서 딸감으로 쓰며 사랑을 외치던 희진이와 은채. 두 명까지 이 세상에 소환됐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혜린, 희진, 은채. 이 세 명이 소환됐다니. 아무리 바보라도 이쯤 되면 알아차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미카의 몸으로 날 위협하며 ‘더 변해라’라고 했던 그녀.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알 수 없다만, 중요한 건 날 기준으로.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준비해준다는 것이었다. 진짜 궁금하다. 대체 아군이야 적이야……?
아군은 아니다. 그래, 그건 확실하다. 날 비웃으며 목을 조르기까지 한 그녀가 아군일 리는 없다. 하지만 세상을 아군과 적이라는 이분법만 쓰며 살아갈 수는 없다. 적? 적이라면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여성들을 보내는 거지?
또 한 가지. 그 모든 것이 그 백발 여자의 사주라면 그 여자는……사실상 이 세상의 신(神)이라는 소리다. 왜냐고? 개인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조종하니까! 나한테 ‘자지의 맹세’를 비롯해 여러 마법을 준 것도 그녀가 아닐까 싶다.
어째서? 왜 나 좋으라고 온갖 이벤트에 여자까지 아주 트럭으로 주는 거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얻은 모든 것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마련이다만, 난 마법이나 내가 취한 여성들에 대해 무언가를 지불한 적이 없다. 그저 행복과 평화를 얻고 싶어 했을 뿐.
그런 평화와 행복을 모두 가진다면……그녀는 대체 무얼 할 생각일까. 짐작이 안 간다. 제기랄……! 난 그 여자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그 여자는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내가 딸감으로 쓰던 여자부터 시작해 성벽, 무얼 하고 싶은지까지! 개인정보가 털려도 이렇게 탈탈 털리진 않았을 텐데…….
기분이 어떻냐고? 솔직히 말하마. 무섭다. 그 귀신같은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날 어떻게 할 건지도 모르니까. 그저 흘러가는 현실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아이나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거의 끝에 와있었다.
내가 마을에 와서 토벌을 한 것부터 시작해 자기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여행 떠난 것.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것으로 모두를 임신시킨 것 등. 희진이와 은채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날 다시 봤다는 식으로 본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아이라 데려 오느라 좆 빠질 만큼 고생했지.
“내일 괴물 토벌이 완료한 것과 동시에 숲이 안전하다는 걸 공표할 생각입니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그렇게 많은 일을 반년도 되지 않아 해내다니…….”
마리아와 아테나의 시선이 나로 향했다. 쑥스럽구만. 그래도 내가 해낸 일이긴 하다. 나 혼자 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해야겠지만.
“여왕님. 확실히 굉장하지만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아내들의 힘도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아, 저 빌어먹을 년이! 아테나는 자기 어머니를 ‘여왕님’이라 칭하며 은근히 날 디스했다. 한 마디로 ‘쟤 혼자 다 한 거 아님! 잘난 거 아님! 깝ㄴㄴ 깝치지 마셈!’이란 뜻이다. 나중에 들었지만 다들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고 한다. 옳은 말이지만 옳다고 해서 다 말하면 안 된다나? 나도 옳다고 생각은 한다만……대놓고 말할 건 없었잖아.
“하지만 그 괴물의 여왕까지 거느리다니……. 대단하군요.”
“과찬이십니다. 아름다운 여왕님께서 칭찬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진심으로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며 좆을 세우니 다들 ‘세린도 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때는 ‘자지의 맹세’를 통해 생각이나 마음을 읽는 게 더 빠르다. 대화에도 집중을 해야 하니까.
“어머, 고마워요. 그렇지만 아쉽네요. 아이라나 세린 같은 인재를 수도에서 만나지 못하고 여기서 만나다니…….”
별 뜻은 없겠지만……난 여기가 좋다. 권모술수와 온갖 더러운 것이 넘쳐 나는 한국도 싫고 대도시도 싫다. 난 조용하면서도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프레그넌트에서 한 평생 살 것을 이미 결심한 상태다.
처음에는 열 받았지만 화가 풀린 후 생각해보니 저들을 굳이 ‘자지의 맹세’로 세뇌하거나 지배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 온 게 관광이라면 그냥 즐기다 가라. 괜히 마을이 떠들썩해지거나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짓만 안 한다면야 그냥 도시 사람 놀라왔다가 갔구나 셈 치면 되니까.
마리아는 날 보더니 웃었다. 살짝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테나를 한 번 본 후 다시 날 보며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고 보니 제가 왜 여기 왔는지에 대해 아직 말씀을 못 드렸군요. 여기 온 이유는 바로 세린. 당신을 보기 위해서랍니다.”
“……네?”
이 아줌마 또 무슨 헛소리야……? 난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 아이라 때문에 오신 거라고 들은 거 같습니다만.”
“잘못 들으셨네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깨달았습니다. 우리한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아주 많이요.”
아, 시발……. 저 말투를 들어보니 틀림없이 귀찮은 일에 휘말린 거 같은데. 이런 안 좋은 예감과 일은 마치 의기투합이라도 한 것 마냥 착착 맞아 떨어지는 게 내 인생 퀄리티란 말이야……제발 부탁이니까 날 좀 내버려 둬. Leave me alone 이라고, 망할!
“실례지만 여왕님. 혹시 세린이 무슨 실례나 죄를 범하기라도……?”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이곳에 찾아오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아이라. 당신이랍니다.”
아이라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카메라 있었으면 바로 찍었을 텐데…….
“아이라 같은 훌륭한 인재가 어보션을 떠난 것도 안타까웠지만 문득 이런 호기심이 들더군요. 5년이나 노력해 강사직을 따낸 당신이 왜 갑자기 홀연 떠난 것인지. 여러 가지로 조사한 결과……그리 수가 많지는 않지만 당신의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아기 씨앗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 그 학생들. 휴강한다고 좋아했었지. 하아……그거 외에 또 있을 거 같은데.
“또한 당신은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약도 제조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능력뿐만 아니라 마력 회복의 고질적인 문제를 고칠 약까지 만들 수 있다니. 거기에 괴물의 여왕까지 거느리는 능력. 대단하다는 말로도 형언(形言)키 어렵군요.”
“과찬이십니다.”
이렇게 말해야 했다. 원래라면 ‘하하, 제가 원래 좀 잘났습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 아니면 그거 못 했을 겁니다? 제가 사람이 착하고 좋아서 그랬지 나쁜 사람이었으면 아주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었어요! 아, 칭찬은 더 해주셔도 됩니다!’라고 깝쳤겠지만……그걸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과 같이 우수한 인재를……수도(首都)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이 지랄 할 게 보였거든. 그 말이 끝나자 아내들의 표정은 놀라움을 띠고 있었다. 왜 저렇게 놀라지? 내가 스카우트 받은 게 그렇게 충격일까. 이해가 간다. 나 같은 놈이 스카우트를 받았으니 좀……그렇겠지. 한심하고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는 놈이니까.
“그, 그것은 안 됩니다!”
“여, 여왕님! 외람되지만 그건!”
자리를 박찬 건 아이나와 아이라였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같이 일어나네. 그래도 날 위해 저렇게 용기 내서 말한 거니 기특하구만. 두 명의 표정은 정중하지만 결사반대의 메시지를 띠고 있었다.
“무엄한 놈들! 여왕님께 이 무슨 불경스런 언행이냐!”
“괜찮아요, 아테나. 아이나, 아이라. 이유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예절과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테나에 비해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 걸까? 마리아는 아이나의 아이라의 발언을 권했고 아이나부터 먼저 입을 열었다.
“세린은……저희 마을의 은인입니다. 여기 왔을 때부터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밖의 괴물을 퇴치해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안의 크고 작은 문제의 해결에도 앞장섰습니다. 제 남편이 되어주기도 했고, 저를 위해 3주에 걸쳐 가야만 하는 어보션에……. 제 동생을 데려 오기 위해 가줬습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은 건 아니다. 돈과 경험치를 얻었지. 로라와 결혼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경비대 기숙사 생활이고. 여관비 안 나가고 식사도 무료. 군대에 온 느낌이 가끔 들기는 하지만 거기처럼 가혹 행위나 똥군기, 구타 등은 없다. 정말 멋진 곳이다.
“저희 마을의 은인……아니. 구세주에 가까운 세린을 수도로 보내버리면 저희는…….”
아이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좀……감동했다. 내가 똥싸개, 허당, 바보라고 놀릴 때마다 힘차게 날 때리던 아이나가 날 저렇게 생각해주고 있었다니. 진짜 빈말로 그러는 게 아니라, 감동스럽다. 사랑스럽고. 나 또한 여기를 나가고 싶지는 않다. 미쳤냐?
“저, 음……세린은. 그……생각하시는 것만큼 뛰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어째서 아이나의 동생이자 내 아내 중 한 명인 너님은 날 디스하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까, 아이라 님?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다. 난 이런 때는 마음이나 생각을 읽지 않는다. 그녀들이 노력하고 용기를 짜낸 말을 멋대로 훔쳐보고 싶지는 않다.
“성욕이 높아서 주변의 여자들을 안고 싶어 하며 남을 괴롭히는 재주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매우 뛰어납니다. 그 때문에 저희도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냥 수도 가겠다고 손 번쩍 들까? 힘차게 거수하며 ‘나 수도로 돌아갈래~’라고 하면 짱이겠지. 영화 ‘박하사탕’은 아직 못 봤다만……앞으로도 못 보겠군. 이 ‘하렘 어드벤처’에 와버렸으니까.
생각해보니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다. 수도 태생이라면 모를까 수도로 돌아가기는 어딜 가…….
“그렇지만……데리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한 달에 걸쳐 어보션까지 와서……당시 가족 관계로 힘들어하던 저를 위해 노력해줬습니다. 보답을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언니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나섰습니다.”
보답은 받았다니까? 경험치랑 돈도 그렇지만 이렇게 참한 아내들 얻은 걸 보면 그 여행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백발 여자의 사주가 없었다는 말은 못 하겠다만…….
“비록 바보 같고 멍청하지만……누군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많은 걸 해낸 세린이 수도로 가버린다면 저희는 모두 슬퍼할 겁니다. 또한……다른 사람은 챙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챙기지 않는 세린이 외로워하지 않도록 함께 있는 것이 저희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아닌뎁쇼. 저는 저 자신을 실컷 챙기고 있는뎁쇼. 당장 저기 있는 여왕과 공주를 제 아랫도리에 환장한 여자로 만들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라는 말은 죽어도 못 하겠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이라의 말을 들으니 눈물이 찔끔 났다. 당시 내가 뒀던 무리수 덕분에 여러 가지로 힘들도 고달픈 여행길이었지만……그래도 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지켰다는 사실에 나름 만족감을 느꼈다. 아이나와 아이라가 어떤 마음일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의 마음 읽는 건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렇게 그녀들의 진실된 마음을 들으니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의견을 차례대로 나타냈다. 맨 먼저 말한 건 혜린이었다.
“첫 번째 아내인 저는 곧 아기를 출산해요.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나왔는데 정작 아버지가 없다면 얼마나 외롭겠어요? 아기를 위해서도 세린은 이곳에 남아야 해요.”
혜린이 나름 예절을 차려서 망정이지. 아마 혜린 성격 같았으면 쌍욕을 퍼부어도 이상할 건 없었을 거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지 않고 상대방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 그런 거지.
“저와 딸. 제 가족을 모두 책임지고 있는 세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비록 경비대장이라는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지만……그 자리를 벗어나 진심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는 바로 세린입니다. 그 세린을……수도로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기 경비대장의 선출은 여행 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었고 그 원인은 나였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지. 공손하면서도 감정에 호소하는 로라의 말은 아테나마저 ‘음……’이라는 신음을 하게 만들었다.
“그……아빠가 가버리면. 엄마도. 혜린이 언니도. 다른 모두가 슬퍼할 거예요. 아빠가 짓궂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면서까지 다른 곳으로 갈 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옳지 우리 딸! 하하! 아빠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정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내가 미쳤냐? 온갖 금은보화 등을 준다고 해도 떠날 생각은 없다. 우리 귀여운 딸! 으하핫! 저게 바로 내 딸입니다! 내 아내이기도 하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안 줄 거다!
“마을을 지키며 지킨 사람은 많았지만……정작 저 자신은 많은 걸 잃었습니다. 잃은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슬펐습니다. 여자로서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으니까요. 세린은 그런 제 눈과 몸. 처지를 모두 사랑해줬습니다. 절 사랑해준 사람이 절 지켰듯이, 저도 사랑하는 세린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촌철살인이군. 지키고 싶은 이. 사랑하는 이를 멀리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가련한 마음이 전해진다! 크으으~! 국어책이나 수능 문제집에 들어가도 아깝지 않을 말이야! 근데 저 멋진 말을 언어영역에 넣을 생각이나 하다니. 나도 참 개막장이군…….
미카는 자기의 눈까지 보여주며 진심을 호소했고, 마리아는 입을 막기까지 했다. 놀랐겠지. 괴물에 의해 다친 사람을 일일이 치료할 정도의 마법사도 없었지만, 잃은 신체 일부를 되돌릴 고위 마법사도 없었으니까. 이미 시간이 지났지만 슬픈 일이다.
“저와 딸은 용병 생활로 지쳐 있었습니다. 정착할 곳은 별로 없었고 용병 생활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기피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그런 저희한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아빠에요. 다른 언니와 마마들도 많이 도와줬구요.”
안나와 니나가 바라던 것은 ‘고귀한 삶’이었지만……그곳에는 ‘새로운 삶’이라는 전제가 늘 존재했다. 힘든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바라던 새로운 시작. 그 시작을 이곳에서 할 수 있도록 주선했던 건 나다. 아이나나 로라의 도움도 있지만.
“딸도, 저도. 세린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습니다. 이 아기가 아버지와 함께 안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괴물 토벌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그, 돈이나 커다란 집 같은 건 더 이상 안 원해요. 그저 아기들이랑 같이 숲에서 소풍을 하는 그런……어. 음. 그걸 뭐라 하지?”
아이구! 우리 니나, 역시 공부도 해야 했어! 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소박함.”
다들 날 본다.
“……왜? 딸이 말하다가 막혔는데 도와줘야지.”
니나는 그 말에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맞아요. 소박한……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행복을 원해요. 그 이상은 더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그 조그마한 행복을 빼앗아가지 말아주세요…….”
처음에는 천박한 빨간 머리였지만 지금은 사랑스럽다 못해 꼭 껴안아주고 싶은 머리였다. 정열의 색깔처럼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뜨거운 용병 모녀는 이 순간을 거듭해 다시금 진정한 아내와 딸이 됐다.
“저나 제 동생이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어요. 그 고마움을 한 평생 걸쳐 전해주고 싶어요. 게다가 이 세상에서 남편은 제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꾸게 만들어 주거든요.”
“……얘 데려가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고생하실 거예요. 아마, 안 데려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룬 것은 적었고 그 기회마저 잃은 항희진. 하지만 난 그런 그녀를 사랑했고 혜린처럼 대해주기로 했다.
나한테만큼은……이 세상에 있는 단 한 명의 남자. 신세린한테 있어서는 희진이는 연예계 데뷔에 실패한 걸레 무속인이 아니라 ‘섹시 스타의 아이콘, 엉덩녀 & 축구공녀. 항희진’이었다. 그런 내 배려에 희진이는 이곳에서 살 것을 결심했다.
금수저 무개념 계집애, 박은채는 투덜거리며 말했지만 난 저 뜻을 안다. ‘데려가지 마라’라는 걸 표현한 거다.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표현한 것도 유능하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날 데리고 가려 할 테니까 그런 거고.
……맞겠지? 설마 진심으로 날 병신 취급하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맞을 거야. 그렇게 믿자. 어, 생각을 확인하자니 좀 무서운데…….
이곳에 없는 아내, 아스카의 의견은 없었다만 사실 그녀한테도 내가 있는 게 나을 거다. 내 물건을 그렇게 바라는 것도 있다만, 괴물인 그녀를 감싸줄 만한 사람도 필요할 테니까.
완전히 적대감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럴 때마다 최대한 대화로 달래봐야지. 세뇌나 암시를 써도 괜찮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줄 생각이다.
아스카를 제외한 아내들의 의견에 마리아와 아테나는 당혹스러운 것 같았다. 나도 당혹스러운데 쟤들이 안 그러면 이상하지. 이렇게까지 의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의지 받고 있다니. 당신은 정말로 뛰어난 자로군요.”
“과찬이라니까요. 제 아내들은 제가 없으면 슬프다고 하지만 저도 아내들이 없으면 슬픕니다.”
아테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만뒀다. 마리아는 가볍게 한숨을 쉰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한테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데려갈 수는 없죠.”
나를 포함해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조심해서 가라. 원하면 밥 먹고 쉬다 가도 괜찮고. 그 정도야…….
“하지만 여러분한테도 사정이 있듯이, 저희한테도 사정이 있습니다. 세린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이유가 말이죠.”
왜 꼭 끝에 초를 치냐? 아, 씁. 욕이 나올 거 같았지만 저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내 힘을 빌려야만 하는 이유?
“여왕님……이곳에서 말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그녀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도 말해야죠. 세린의 힘을 빌리기 위해 여기에 온 이유를 말이죠.”
주변을 둘러본 후 마리아는 나지막하게.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을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현재 ‘생명의 씨앗’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걸 들은 순간 나도 잠시간이나마 아찔함을 느꼈다. 빌어먹을……그걸 이렇게 듣게 될 줄이야. 세상 일 진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거라니까?
“그, 그럼 최근 ‘생명의 씨앗’이 오지 않았던 건 전부……?”
아이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마리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네. 현재 수도를 비롯해 이 세상에 ‘생명의 씨앗’은 더 없습니다. 제조자인 저희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걸 만들 수 없게 됐습니다.”
“어, 저기요.”
내가 손을 들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거 하지 말라니까…….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비앙카한테 들은 걸 이야기하자 엷은 웃음을 지었다.
“네.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된 건 사실이죠. 더 이상 씨앗을 만들 수 없기에 고민하던 도중 들은 것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세린.”
그런 거라면 여기 온 이유가 납득이 간다. 이것도 그 백발 여자의 짓인가……. 뭐든 그 여자 탓으로 돌리는 건 안 좋은 일이지만 이런 의심을 받고도 남을 짓을 했으니 그러는 거지. 오히려 이거 외에 또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생명의 씨앗을 대신할 아기 씨앗을 만들 수 있는 분께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저희를……이 세상을 도와주세요.”
마리아가 고개를 숙이자 못 마땅한 표정을 짓던 아테나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난 이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내 고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거 같다.
============================ 작품 후기 ============================
웃우우우웃────!!
플로듀서! 아기 씨앗이에요, 아기 씨앗!
작가가 이젠 정신줄까지 놨는지 대놓고 아기 씨앗을 제공해달라는 전개로 가버렸어요!
전개로 가버렸다는 글을 적으며 '가, 가버렷! 절정으로 가버렷!' 이라는 걸 생각했다는 시점에서 일상생활 가능한지 의문인 레벨이에요! 웃우우우우우────웃!
플로듀서! 노답이에요, 노답!
할 줄 아는 건 없으면서 '내 정의의 자지로 찔러죽여주마!' 따위의 대사나 지껄이는 성범죄자한테 세상을 구해달라니!
작가부터 시작해 작품, 스토리, 플롯, 캐릭터, 전개까지! 모조리 노답이라서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없어요!
플로듀서! 좆망이에요, 좆망!
……넵. 노답 작가입니다. 이젠 적다보니 'ㅎㅎㅎ작가인 나도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오줌 발싸(발사 아님, 발싸임)!'하는 수준까지 와버렸네요.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들 중 대부분은 'ㅋㅋㅋ 와, 존나 개노답 작가네! 뭐 소설을 이 따위로 적냐?'라며 웃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이 미친 초☆전★개와 약 한 사발 거하게 빨고 적은 거 같은 글에 익숙해지신 분들은 틀림없이 '암, 이래야 노답 병신 작가답지!'라며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Q. 이렇게 된 이상……국회로 쳐들어간다!
A. 그래야 이말년 작가답지!
이걸 제 소설식으로 바꾼다면…….
Q. 이렇게 된 이상……여왕과 공주까지 임신시킨다!
A. 그래야 미친 작가답지!
Q와 A가 Question과 Answer의 앞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질문형은 단 하나도 없네요. 어디까지 막장으로 갈지 작가인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평소에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주제에 여차할 때는 아내들이 실드를 쳐주는 세린이었습니다. 물론 현실에는 저런 사람들이 거의 없죠.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저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일 겁니다. 그 정도로 사람을 믿는 것도,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둘 다 어렵다는 거겠죠.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루인sv님, 철혈과 테니프리는 비교하면 안 되는 작품입니다 ㅋㅋㅋ 테니프리는 코믹스의 뮤지컬 중에 가장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컨텐츠입니다. 아직 안 보고는 있지만 '신 테니스의 왕자님'이 코믹스 & 애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작품이죠.
어, 루인sv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물론 이해합니다. 일본에서는 테니누(テニヌ)라고 부르며 '저런 테니스가 어디 있어? 저건 테니스가 아니라 테니누라고!'라는 태클을 걸죠.
저도 처음에는 나름 괜찮네 싶었지만……제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됐습니다. 효테이전에서 분신을 한 키쿠마루를 기점으로 테니스의 왕자는 테니누의 왕자로 바뀌어버렸죠.
그치만 스포츠 만화 중에서는 미형 캐릭터가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소년만화의 패턴도 꽤 많이 넣은 작품입니다. 인기가 없었다면 히가중이나 시텐호지와의 대결은 애니로 나올 수조차 없었겠죠. OVA긴 하지만 결국 끝편을 만들 정도의 인기와 매출을 올렸던 작품. 그게 테니스의 왕자입니다.
그에 비해 철혈은……건담이라는 초유명한 IP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각본가 연놈이 뭘 잘못 처먹은 건지 이 모양 요 꼬라지를 만들어버렸네요. 막말로 한국의 각본가한테 건담을 만들라고 해도 이거보다는 더 잘 만들 겁니다. 아니, 사실 더 잘 만들 수밖에 없겠죠. 대부분의 남성은 반강제적으로 입대를 했었으니까요.
오리지널 작품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테니스의 왕자.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건담을 시궁창에 박은 철혈의 오펀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부류입니다.
니르쪼님, 정말 확실하게 요약해주셨네요. 테니스의 왕자는 병신 같긴 하지만 살인 테니스나 테니누의 개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나 다름없습니다. 병신 같지만 뭔가 멋있는 기술과 전개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야 말았죠.
주인공인 에치젠 료마도 인기가 많았지만 효테이의 아토베 케이고, 세이슌 학원의 후지 슈스케 or 테즈카 쿠니미츠의 경우에는 주인공 이상의 인기를 얻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인 료마가 너무 잘난 척하며 허세를 부린다거나,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아토베를 꺾고 삭발시켰다는 점 때문에 비호감 표를 받긴 했습니다만……그래도 여성 덕후들을 확실히 잡았다는 점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는 부분이죠.
반면에 철혈은 전작인 AGE보다 훨씬 더 나락과 시궁창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AGE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한 마디에는 모두 동의할 겁니다.
'AGE가 망작이면 철혈은 개좆망 씹좆망 작품이에요!'
그 누구도 반박할 여지가 없을 겁니다. 어지간하면 이런 단정적인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건담에 한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밖에 없네요. 철혈을 뛰어넘는 좆망작은 아마 평생 볼 일이 없을 겁니다. 존나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데스티니까지 리얼타임 실시간 시청했던 저조차 고개를 저으며 포기한 작품이 바로 철혈입니다.
그 유명한 나가이 타츠유키와 오카다 마리가 힘을 합쳐 5년 동안 만든 게 이런 똥이라니!?
여러분, 일본 가서 각본가 하세요.
나가이와 오카다보다 잘 쓸 자신 있으면 여러분도 건담 같은 초유명 IP를 다룰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 만들어도 철혈보다 더 잘 만들 자신 있으신 각본가 지망생분들.
얼른 일본의 각본가에 대해 알아보세요.
나가이와 오카다보다는 아마 더 잘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이상입니다. 건담과 테니프리라니. 이 무슨 무서운 혼종이란 말입니까? 적은 저조차 뭐 이런 조합이 ㅋㅋ 하고 실실 웃고 있네요. 테니프리도 좋지만 역시 전 건담이 더 좋습니다. 앞으로도 건덕 기질을 풀풀 풍기는 막장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 쓰레기 같은 철혈이지만 그나마 좋아하는 기체라면 슈발베 그레이즈, 바르바토스(지상전 5형태), 구시온 리베이크 풀시티, 시덴 정도네요. 바알은 뭔가 멋있긴 한데 이렇다만할 활약을 못 해서 옥새건담이라는 이미지밖에 안 듭니다. 예? 유성호(류세이고) 계열이요?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핑크색만 좀 치우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