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7-2 : 재회」 =========================
“후에에에에에────ㅇ!!”
동생을 만난 게 이토록 기쁜 걸까? 아이나는 아이라를 부여잡은 채 펑펑 울어댔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5년 간 헤어졌던 자매의 감동스런 상봉 장면이라고 여기겠지만…….
울음소리 진짜 깬다.
애도 아니고 뭐야 대체!?
“어, 언니……?”
“후에에에엥! 아이라! 아이라……!!”
괜찮은가 싶어 이름을 불렀지만 그저 아이라의 이름만 부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일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난 곰곰이 생각해봤다.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오랜 여행을 끝마친 주인공이 ‘다녀왔어’라고 말한다. 그럼 ‘어서오세요’라며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지.
이런 장면은 주로 일본 만화나 애니에서 나오는 연출이지만, 전체적인 장면을 모두 본 사람들한테는 감동적인 재회의 장면으로 여겨지기에 큰 문제는 없다.
내가 그런 걸 바라고 다녀왔다고 한 건 아니다만, 그래도 반겨주기나 해야지. 아이라 보자마자 쫄래쫄래 다가와 안아서 펑펑 우는 건 또 뭐야? 아니, 명색이 남편인데! 얘 데려 오느라 진짜 온갖 일을 다 당했지! 생각해보니 정말 파란만장한 여행이었다.
출발부터 프레그넌트의 괴물들을 좀 쓰러뜨리면서 시작한 여행. 괴물들이랑 싸우다 부카케에 도착하니 그날 밤에 바로 괴물 습격. 괴물 쓰러뜨리다 떡 실신 되어서 어떻게든 텔레포트 에어리어를 통해 자멘에 갔더니 납치당했지.
납치당한 후로 꽤 힘든 경험을 하며 탈출. 탈출 후에 어보션에 갔더니 싸가지 만땅의 아이라와 조우. 지금까지 소중하게 썼던 구슬을 박살낸 데다 우리를 모멸했지.
일이 잘 풀려서 이곳으로 왔지만 프레그넌트 안에 온 게 아니라 또 전투. 그리고 여기 왔더니 찬밥 신세가 된 채 쓸쓸히 홀아비 맛을 보고 있다.
……아아, 빡친다. 왜 이런 수난과 고난을 겪어야만 했을까? 가장 일차적인 문제는 바로 이 여행을 주도한 아이나였다. 사실은 마력증폭기를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만, 그때 내 머리나사가 단체로 빠졌는지 ‘동생을 데려오겠다’라는 무리수를 뒀지.
결국 그 덕분에 아이나도 건강해졌고 마음 사람들과의 화합을 나누기도 했기에 그건 좋다 쳐. 근데 이건 아니잖아. 데려온 나는 개무시고 아이라만 소중하고 귀중하고 중요하냐? 어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난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입을 열었다.
“저기요, 아이나 씨?”
“아이라! 보고 싶었어! 아이라!”
“어, 응. 나도 그렇긴 한데. 어……세린이 뭐라고 하는데.”
그래, 아이라! 너도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구나! 아이라도 이 상황이 너무 뻘쭘한 건지 아이나의 주의를 나한테로 돌리려 했지만 아이나는 멋지게 무시했다.
“언니가 미안했어! 내가 나쁜 년이었어……!!”
“어, 그건……괜찮은데.”
아이라의 저 표정은 ‘아, 내 말 안 듣는구나……’라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혜린이는 ‘남편의 위상이 바닥까지 떨어졌네’라며 웃었고 로라와 메이는 ‘저, 촌장님?’이라며 어떻게든 내 업적을 말하려 했지만 이것도 무시당한다. 안나와 니나는 ‘말을 안 듣는데’라는 말로 내 기분을 표현해줬다. 노린 건 아니겠지만 고맙다. 빌어먹을.
“내가 왜 너희 언니가 허당이라고 했는지 이제 알 거 같니?”
“……미안하다. 언니 때문에 고생 많았겠네.”
현재진행형이다. I've been having a problem이라고! 망할!
아니, 이렇게 적으니까 현재완료진행형이네? 예전부터 가졌었고 지금도 문제를 지닌 채 개무시당하고 있다니. 하하, 이게 바로 내 인생 퀄리티죠 시팔! 이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만, 어쩔 수 없지. 날 이렇게 만든 건 너니까.
“나 없는 동안 또 마을 한복판에서 똥을 싸지른 건 아니……어풉!?”
내 관자놀이에 너무나 멋지게 들어간 주먹. 난 내가 주먹을 맞았다는 것조차 실감할 수 없었다. 분명 두 손으로 아이라를 감싼 채 울고 있던 아이나는 어느새 파이팅 포즈를 잡아 날 때린 거였다!
“아니라니까요! 대체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먹는 거예요!? 전 그런 짓 안 했다니까요!?”
“아, 썩을! 때리긴 왜 때려!?”
“맞을 만하니 맞았죠!”
순간, 아이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라한테 갔다.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또 물었다.
“야. 이해가 가냐? 내가 한 말이 이제 이해가 가?”
“……미안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그럼, 사과해야지 시팔! 아이라와 함께 지내기 전부터 지금까지. 툭하면 날 때리고 화를 냈기에 ‘너 언니랑 완전 판박이다! 어떻게 하는 짓이 그렇게 똑같냐?’라고 했지. 그럴 때마다 ‘니가 맞을 만하니 맞은 거지! 게다가 언니랑 난 달라! 나야 혼자 지냈으니 성격이 이렇게 됐지만 언니가 그럴 리가 없잖아!’라고 했다.
그럴 리가 없기는 개뿔이 없냐 썩을! 게다가 예전과 달리 파이팅 포즈까지 잡은 채 날 때리다니! 아, 말아먹을! 왜 나를 때리는 기술이나 능력은 하루가 몰라보게 증가하는 걸까?
아니, 그럴 필요 없다고! 애초에 때리지를 말라고!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매일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건지 참으로 의문이었다.
“아니, 그 좆뺑이를 치면서 돌아왔는데 아이라만 눈에 보이냐? 우린 뭐,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기야? 이산화탄소냐고?”
“그, 그건…….”
후후, 좋았어! 이제야 내 이야기를 듣는군! 한 대 맞은 게 기분 나쁘긴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우리 귀여운 아이나를 마음껏 괴롭혀주마! 움홧핫핫!
“너무하잖아! 내 아내들과 내가 목숨을 걸고 여행을 했는데 아이라만 사람 취급을 하다니! 이거 너무 섭섭한데?”
“그……아! 맞아요! 음, 어…….”
불안하다. 또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거 같아서. 그런 말 하는 건 아이라나 아이나. 둘 중 한 명으로 충분하다. 부탁인데 이상한 말 좀 하지 마라.
“잠을 자다가 꿈을 깨니 아이라가 눈앞에 있었어요! 아직 잠기운이 안 가셔서 아이라밖에 안 보였던 거예요!”
“말이 되냐 이 똥싸개 아가씨야!? 이런 망할! 생각한 변명이 고작 그거야!? 야, 잘 봐! 잘 보라고! 이게 바로 허구헌 날 마음에 안 드는 일만 있으면 날 쥐어 패던 너네 언니라고!”
아이라마저 ‘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 변명은 좀……’이라는 표정으로 아이나를 본다. 아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철부지 허당 아가씨를 사랑스럽다고 여기게 된 걸까. 목숨 걸고 여동생과의 관계를 주선했을 뿐 아니라 여기까지 데려온 내가 불쌍하다 못해 가련하다 쒸펄!
“똥싸개 아니라니까요!? 아니, 그……그래요! 제가 좀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던 적은 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잘 처신하고 있다구요!”
“처신은 개뿔이! 뭐? 잠을 자다 일어나? 우리가 들어왔을 때 멀쩡하게 업무 보던 사람이 잠기운은 무슨 얼어 죽을 잠기운이야? 언니나 동생이나 쌍으로 날 엿 먹이는구나, 너희는!”
아이나는 할 말이 없는지 꼬리 말은 개처럼 추욱 늘어진다. 하핫, 이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고생담도 좀 늘어놓자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희 진짜 5년이나 헤어진 거 맞냐? 너도 그렇거니와 아이라도 무슨 일만 있으면 날 팬다고! 허구헌 날 툭하면 날 패는데 이래서야 내가 남아나겠냐?”
“……저는 모르겠지만 아이라는 이유가 있어서 팰 거 같은데요.”
훗. 코웃음이 나왔다.
“여기 오기 전에 아이라가 그 말이랑 똑같은 말을 했답니다, 이 허당 아가씨야!”
“허당 아니라니까요! 그, 좀 허둥댄 거뿐이에요!”
아이라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 내가 맛본 절망, 너도 실컷 맛봐라. 이 아가씨 때문에 내가 한두 번 힘든 게 아니었지. 그치만 이렇게 허둥대니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떠볼까?
“호오, 그래?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른데?”
아이나가 움찔했다. 그녀를 보던 사람들 모두가 한숨을 쉰다. 이 허당 아가씨야……이런 3류 저질 떠보기에 넘어가면 어쩌자는 거니?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갈 수는 있겠냐?
원래라면 이쯤에서 멈췄어야 하지만, 남편인 나를 무시하고 아이라를 안은 것도 있었거니와 귀여운 아이나를 괴롭히는 게 오랜만이라 멈출 수가 없었다.
“오면서 탈리아한테 들었는데, 꽤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고 하던데? 그치만 아이나는 자주 흥분해서 실례를 많이 한다더군. 침대 시트를 간 게 세 번이 넘는다고 하던데…….”
“두, 두 번이에요! 게다가 똥은 겨우 한 번밖에 안 쌌다구요!”
좆망 ^0^/
좆망 ^ㅗ^/
좆망 >_
좆망 소리가 빵파레처럼 울려 퍼진다. 내 아내들은 내가 한 말이 사실상 떠보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정직하게 바보 인증을 해버린 아이나를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바보는 시간이 지나도 바보다. 이게 오늘 얻은 교훈 중 하나다.
“……진짜 쌌냐?”
대답은 주먹이었다. 배에 꽂힌 주먹에 놀랄 틈도 없이 연속으로 내 가슴과 배, 팔을 막 때렸다. 시뻘개진 얼굴을 보니 귀엽긴 한데, 은근히 세게 때리네! 베라먹을 계집애!
“악! 망할! 쿨럭! 아, 씁! 때리지 좀 마!”
“우쒸! 우쒸! 날 속였어!”
“속은 놈이 바보지! 게다가 너, 또 쌌냐!? 윽! 아, 쫌! 누가 나 좀 구해줘!”
아무도 안 구해주더라. 너희 너무한 거 아니냐? 옷 벗고 즐길 때는 그토록 깊은 사랑을 나눴으면서 왜 맞을 때는 아무도 안 구해 주냐?
대략 3분 정도를 때리던 그녀는 지쳤는지 헉헉 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헛, 망했다!?’와 같은 표정을 지은 그녀는 뒤를 돌았고 그곳에는……허당 아가씨를 안타깝게. 하지만 자애롭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 이, 이건……!!”
“됐어, 언니. 괜찮아…….”
이번에는 아이라가 아이나를 안았다. 무슨 변명이 나오나 궁금했는데 저렇게 안으니 다행이네. 단체로 마약을 빨았다거나 환각 마법에 걸렸다는 헛소리를 하면 이번에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싶었거든.
“언니……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세린한테 다 들었어.”
갑작스런 포옹에 아이나는 조금 전 허당 모드와 언니 모드 중 어떤 모드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다 렉에 걸린 거 같았다. 재부팅 시켜주리?
“나만 힘들고 괴롭다고 생각했지만……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언니도 힘들고 괴로운데 오직 나만이 괴롭고 외로웠다고 투정부려서 미안해. 언니를 떠난 거부터 시작해 언니 편지에 한 통도 답장 안 한 거……모두 다 정말 미안해…….”
“아이라…….”
사람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유용하게. 그리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는 있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사람만이 가진 권리이자 자격이니까.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그러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반성하고 노력할 수 있는 생명체.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니까.
“난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근데 현실은 안 그렇더라……? 언니가 보내준 편지가 아니었으면 아마 여기에도, 양성소에도 있을 수 없었을 거야. 혼자서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언니가 없었으면……아니, 그 편지조차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야. 난 그냥 나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철부지 계집애였어.”
내가 농담 삼아 계집애, 망할 년이라 하지만 정말 살의(殺意)를 담아 그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라는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도 모자라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과거의 어리석었던 자신을 후회하며 흘리는 눈물은 아이라의 몸, 옷에 닿으며 흘러 퍼진다.
“언니가 세린을 보내주지 않았더라면……언니가 편지를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은 채 평생 그렇게 바보 같이 살았을 거야. 나쁜 건 전부 언니고 난 무조건 옳다고 믿은 채……그런 주제에 서랍에 모은 언니의 편지에 답장도 못하는 겁쟁이로 평생을 살았을 거야. 언니, 정말 미안해. 그리고……고마워. 이런 나를 끝까지 생각하고 사랑해줘서.”
“……응.”
목메인 거겠지. 그저 듣고 있을 뿐인 나조차 애절함을 느끼는데 본인들은 어떨까. 떨어져 있던 5년의 시간은 말로는 두 글자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긴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긴 시간이기도 하고.
“……언니. 용서해줄래? 철부지였고 바보 같았던 나를……언니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나를 용서해줄래?”
“……응. 물론이지. 용서고 뭐고, 나. 전혀 화 안 났어. 사랑스러운 내 동생, 아이라가 돌아왔는걸? 그걸로 충분해……흐끅……!!”
“고마워, 언니……야……!! 으, 우욱……!!”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렸군.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감정이 복받쳐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다니. 행복한 고민이군.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서로 간에 하고 싶었던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다.
혜린이를 포함해 내 아내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 우애 깊은 재회의 장면을 보고 있었다. 에구, 나도 눈물 나올 거 같네. 여기 와서 눈물만 많아졌다니까.
그치만 상복 비슷한 드레스와 핑크빛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자들끼리 껴안고 우는 건……좀 에로하다. 특히 아이나의 경우 저 달콤하디 씁쓸한 눈물을 내 좆에 뚝뚝 떨어뜨린 것도 있어서 그런지 좀…….
“세린……정말 고마워요. 아이라를 데리고 와줘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만나자마자 안겨서 울었을 정도니까. 우리야 여행에서 돌아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5년이나 떨어져 있던 동생이다. 보고 싶은 정도가 다른 게 당연하겠지.
“나만 노력한 거 아냐. 모두 다 도와줘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못 했어.”
아이나는 안나와 니나를 포함한 모두한테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멋쩍은지 모두 괜찮다며 대답했다. 안나와 니나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기에는 너무 판타스틱한 경험이 많다. 지금은 그저 이 아름다운 재회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자.
“이걸로 부탁한 여행이랑 임무는 모두 끝. 이 정도면 만족해?”
“충분해요. 정말 고마워요. 모두들……. 정말 꿈만 같아요.”
“야, 말을 해도 어떻게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냐? 이게 꿈이라면, 다시 일어나서 그 고생을 한 번 더하라고? 으휴…….”
안나와 니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었다. 저 둘의 경우, 이게 꿈이라면 나보다 더 비참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할 테니 웃을 수가 없었다. 납치라는 과격한 수단까지 써야 했을 정도로 힘든 삶이라니. 내 삶은 아니지만 저 두 명이 다시 그런 삶을 살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잃은 게 없다고는 말을 못 하겠지만, 그에 비례해 얻은 것도 많은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모험이자 여행.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거 같다. 약간 비꼬아서 말한다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여행’이었지만. 아이라와 함께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웃던 아이나는 해맑게 물었다.
“아, 참. 아이라. 마력증폭기는 받았어?”
절대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 중 하나를 듣자 아이라의 눈은 서서히 아이나한테서 나한테로 옮겨왔다. 나보고 어쩌라고……. 니가 불태웠잖아.
“응? 세린이 왜? 세린, 전해준 거 맞아요?”
“어. 물론이지. 그걸 내가 설마 꿀꺽 했을까봐?”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아이나가 가장 잘 안다. 내가 직접 ‘내가 이 엄청난 마력증폭기 들고튀면 어떻게 하려고 이걸 맡기냐?’라고 물었지. 그때 아이나는 사랑하는 로라와 메이를 아내로 둔 사람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했다. 듣기 좋은 대답이었지.
“근데 왜 세린을 쳐다봐, 아이라?”
“어, 음. 언니. 그게……에헤헤.”
푼수 같이 웃는 아이라를 보니 미래가 걱정된다. 아이라의 눈빛에는 ‘이 새끼야! 니가 괜찮을 거라며! 그럼 니가 적절하게 실드를 쳐서 이 상황을 타파해야 하는 거 아님?’이라는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난 뭐라 대답했냐고?
‘인간아, 도와준다고는 했지만 니가 한 번 아까 주먹 맞아볼텨? 더럽게 아프다! 아니, 생각해보니 내가 부순 것도 아니고 니가 중2병 걸려서 멋대로 파괴한 건데 왜 내가 그걸 실드 치며 널 구해야 하냐, 이 허당 푼수 아가씨야!’ 라고 했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운데, 그 누구 하나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아이나가 아이라를 용서한 건 사실이지만 대놓고 ‘마력증폭기 전달 임무에는 성공했지만 아이라가 그 중요한 마력증폭기를 홀라당 태워먹었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이나가 바보─물론 대놓고 말하면 열받아하면서 날 때리므로 직접 말은 안 한다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하핫!─라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아이라를 응시했다.
“아이라……무슨 일 있었어? 응? 혹시 마력증폭기가 부서지거나 그런 거야? 응?”
“어, 언니. 그게 아니라. 실은……그. 불탔어.”
겨우 말을 꺼냈지만 그것마저도 진실이 아니었다. 아니, 진실이긴 진실이다. 문제는 ‘불탔다’가 아니라 ‘불태웠다’가 맞지. 자동사(自動詞)가 아니라 타동사(他動詞)를 써야 하는 거다.
“무, 무슨 소리야? 마력증폭기가 타오를 정도로 써버린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요. 어, 흠! 흐음!”
진짜 못 봐주겠군. 내 잘못은 아니지만 또 나한테 뭐라고 할 느낌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어. 새로운 아내를 구해줘야지.
“있잖아. 아이나. 이야기 해줄 테니까 그……화내면 안 된다?”
“화를 왜 내요?”
“여하튼, 화내면 안 된다? 응? 그럼 말해줄게.”
아이나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제기랄. 모두 다 날 본다. 대체 왜 이 끝물에 와서도 내가 원하지 않는 일에 이렇게 휘말려야 하는 걸까. 그래도 뭐……화 안 낸다고 했으니 약속은 지키겠지.
“내가 구슬을 건네줬거든.”
“네.”
“그거, 걔가 태워먹었어.”
너무나 멋지게 사실을 요약했다. 나한테는 사실 나도 몰랐던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흐르는 게 아닐까 하는 잡생각을 하면서. 아이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라가, 태워먹었다고요? 음식을요?”
“아니! 이 허당 아가씨야! 니 동생이 언니가 준 소중한 마력증폭기 구슬, 태워먹었다고! 대체 음식은 왜 나오는 건데? 군고구마냐? 먹고 싶으면 겨울까지 기다리라고!”
내 혼신의 절규에 감동한 건 아니겠지. 그 말을 들은 아이나는 천천히 아이라를 본다. 아이라의 표정이 어떻냐고? 음, 그래. 뱀한테 잡아먹히기 직전의 생쥐다. 요약 끝!
“그, 그게……그때는 자세한 상황을 몰라서 그만……!! 언니가 준 구슬을 태워버렸어……미안해!”
90°로 몸을 숙이며 사과를 했지만 아이나의 표정은……어우, 야! 존나 호러다! 아니, 우리 깜찍한 아이나의 표정이 장난 아니다! 마치 ‘내가 웃고 있지만 넌 내가 씨발 웃겨서 웃는 걸로 보이니?’라는 오오라를 팍팍 내고 있어! 무섭다! 존나 무서워!
“……태웠어? 내가 준 구슬을?”
“그……그때는 아직 자세한 사정을 몰랐으니까 그랬던 거야! 야, 오죽하면 우리한테도 반말 찍찍 까면서 막 대했겠어? 애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거지? 하하, 응? 아이나, 용서해줄 거지?”
농담 삼아 과거까지 꺼내며 실드를 치지만……느꼈다.
아, 좆됐다.
메이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히익……엄마……’라며 로라의 품에 안기려 했지만……로라조차 ‘메, 메이. 괜찮아요’라며 메이의 뒤에 숨으려 했다. 서로가 서로의 뒤를 노리다니. 너희는 어새신(암살자)이냐?
혜린은 한숨을 쉬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안나와 니나는 ‘와, 저 아가씨도 살기(殺氣)를 내뿜네! 진짜 촌장 맞아?’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현역 용병이 감탄까지 할 정도라니. 진짜 빡치긴 빡쳤나 보다.
“그러니까……그런 거죠? 세린이 고생하며 가져다 준 구슬. 제가 5년에 걸쳐 힘들게 만든 마력증폭기를 우리 귀여운 아이라가……태웠다?”
“어……그게.”
“결과만 말해요.”
“넵.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비겁하다고 하지 마라. 너도 목숨 위협 느껴봐. 이렇게 될 거다. 고개만 든 아이라는 ‘언니……?’라며 어색한 웃음을 보인 채 아이나를 봤다. 아이나의 표정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사신 강림(死神 降臨)」
“어, 언니?”
아이라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언니를 불렀다. 이해 간다. 나라도 아이나가 갑자기 내 등 뒤로 가 한 손으로는 가슴을 잡으면 놀랄 거다.
“……아이라.”
“네!?”
무슨 음성 변조한 것도 아닌데 엄청난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건 몰라도 두 개는 알겠다.
하나는 아이나가 화났다는 거.
또 다른 하나는……아이라가 큰일 났다는 거.
“아파도 참아라?”
“네? 흐끅!?”
철썩!
정말 호쾌한 소리가 집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세, 세상에!? 엉덩이 때리기라니? 태어나서 엉덩이 때리기는 처음 봤어! 모두 다 경악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언니, 얏?! 후꺅!? 때리지, 맛?! 부헥!? 부힉!?”
돼지가 낼 법한 비명이었다만 욕정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렇겠지. 저걸 보고 자지가 벌떡거리면 안 그래도 미친 내가 더 정신병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너란 애는! 정말이지! 언니 속을! 왜 이렇게! 썩이는 거니!?”
대단하군. 4~5글자에 걸쳐 자기 마음을 터뜨리며 엉덩이를 때리다니. 마치 랩 하는 기분이 들었다.
“세……린?! 구해죠! 구해져어어!”
섹스할 때 완전 정신이 나갔을 때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엉망진창 발음이 나왔다. 구해줄 거냐고? 머리에 총 맞았냐? 저기 들어가서 백마 탄 왕자처럼 아이라를 구할 바에야 그냥 입 닥치고 내 몸 보신하련다.
“언니를 엿 먹이니 기분 좋았니? 언니한테 답장 안 한 것도 모두 그거 때문이었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면 아름답게 언니를 엿 먹일 수 있나, 물 먹일 수 있나. 그걸 생각한 거였지? 응?! 응!? 대답해, 이 못된 계집애야!”
쩐다! 이번에는 나눠서 때리기다! 한 방 한 방의 데미지는 세게 때리는 것에 비해 별로지만 저렇게 연속으로 치니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을 텐데!? 더군다나 지금까지 쌓인 분노를 저렇게 현학적 & 문학적으로 폭발시키며 때리다니! 멀티 태스킹 능력 쩔어준다!
동생에 대한 아낌없는 스팽킹 테크닉을 보니 내 테크닉 따윈 풋사과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변명을 하려는 아이라는 요염하지도 않은 신음을 내며 끅끅 거렸다.
“……얘들아. 나가자.”
전쟁터에서 퇴각 명령을 내리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를 구해줄 것이라 여기고 있던 아이라는 배신이라도 당한 양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날 본다. 아니, 그 와중에 내 말까지 모두 다 듣고 그럴 틈은 있니?
“익?! 세린, 구해, 깍!? 꺅! 언니! 언니이이잇!?”
“시끄러! 너란 애는! 너란 계집애느으으────은!!”
엉덩이 때리기. 영어로 하면 스팽킹. 좀 유치하게 말하면 궁디 팡팡을 맞는 아이라를 놔둔 채 우린 조용히 집무실을 나왔다. 감동스런 자매의 재회는 궁디팡팡으로 끝날 거 같군.
나도 섹스할 때 엉덩이를 때리지만 어디까지나 감정이 격해졌을 때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나 아이라, 모두 감정이 격해졌을 때 표현이 꽤 폭력적이구나. 앞으로 주의하자.
“살려줘어어어어──뿌럅?! 언니! 언니────잇!”
“그래, 살려줄게! 살려는 줄 테니까 엉덩이 흔들지 맛!”
사이좋은……응. 사이좋은 거 맞을 거야. 아마도. 여하튼, 사이좋은 자매의 5년만의 만남을 기념하며 우린 조용히 집무실을 나왔다. 그날 밤,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일 때마다 아이라가 움찔거렸던 이유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대놓고 개그편으로 쓴 에피소드입니다. 후기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약을 빨고 쓴 본편 중 하나네요. 개그 에피소드였지만 각 캐릭터의 특성이나 성격이 너무 잘 드러나서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자매가 서로 닮았다는 게 잘 드러나는 편이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아이라가 세린을 때리며 했던 말이나 허둥지둥대며 했던 변명을 그대로 아이나가 쓰는 걸 보며 웃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에피소드는 성공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기분은 여전히 꽤 나쁩니다. 일어나니 아침부터 빡치게 만드는 조아라 때문에요. 반반무 신청을 위해 바꾼 표지를 다시금 강제 삭제한 후 하는 말이
-저작권 침해 가능성
-미성년자 관람에 부적합한 내용
여기서 '신세린'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지만 네이버 블로그나 다른 곳에서는 '메리사'라고 쓰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가 두 닉네임과 동일인물인가.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사용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아니 시발, 제가 '메리사'라는 닉네임을 안 쓰는 사람이라면 미쳤다고 남이 제 소설을 블로그에 소개하겠습니까? 링크랑 스토리까지 정중하게 포스팅하면서?
게다가 저작권 허락을 안 받고 쓰면 좆되는 건 저잖아요? 저작권 관련으로 대량의 표지 교체 및 삭제가 이루어졌는 걸 알면서도 무단으로 표지를 쓴다? 스스로 좆될 생각 아니면 그딴 짓은 못 하죠.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작가를 바보취급하는 건가 싶어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분노가 치밀어오르긴 했지만 위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반반무 신청했는데 아직도 심사는 안 하고 있는 주제에 이런 건 존나 빨리 제재하네요. 이러니까 이 모양 요 꼬라지겠죠.
요즘 잘 나가는 웹소설 사이트 어디냐고 물으면 다들 문피아,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웹소설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전에 유조아였을 때도 몇 번 들렀었지만 그 빌어먹을 놈의 자부심만큼은 아직도 잘 남아있는 거 같습니다.
까놓고 말해서……조아라는 초보 소설가가 발을 디디기 가장 좋은 곳이지 제일 잘 팔리는 곳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네이버 웹소설과 카카오페이지, 라이벌로 여겨졌던 문피아(어플과 운영이 엉망이라는 건 무시합시다)가 조아라를 이겼죠. 작가한테 주는 40% 인세요? 몇 년 동안 35%하다가 꼴랑 5% 올린 거죠. 10%도 아니에요. 이 정도면 기존의 노블레스 작가들이 왜 고개를 저으며 조아라를 떠났는지 이해가 갑니다.
아, 예. 저작권은 좋다 칩시다. 저작권을 아예 통으로 쌈싸먹은 올마스터가 계약 및 출판이 이루어졌다는 것 따위는 무시합시다. 암요, 우리 위대한 조아라님이 자기들 한 짓은 옳다고 칭찬할 수 있지만 남들이 한 행위는 더럽고 치사하다며 욕할 수 있겠죠. 예, 이해합니다. 암, 이해해야죠. 작가들 취급이 이 따위니까요.
근데 이건 뭡니까? 미성년자 관람에 부적합? 아니, 이보세요 조아라님? 노블레스와 프리미엄 중에 상당수를 차지하는 게 19금이라는 거 잊으셨습니까? 마치 '우리 조아라는 클린~한 컨텐츠만을 다루고 있습니다'라는 듯이 대응하는 거 그만 좀 하죠? 19금 소설 쓰는 저조차 부끄러워질 정도의 대응이네요 이건.
이게 대체 뭡니까? 해야 하는 일에는 게으름 피우고 이상한 짓이나 하지만 남들이 신경 안 쓰거나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소름 돋을 정도로 열성을 보이네요! 아침 8시까지만 해도 있었던 표지가 9시 되기 전에 사라졌어요! 전 이거 보고 존나 놀랐습니다!
세상에!? 조아라 운영진이 이렇게 빨리 일을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9시 이후부터 일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런데 9시도 안 됐는데 표지 삭제? 존나 부지런하시네요?
근데 시발, 이틀도 전에 신청한 반반무 신청은 어떻게 심사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를 않는 거죠? 우선순위라는 말도 모릅니까? 일도 중요하지만 반반무 같이 독자 유입을 가속시키기 위한 이벤트를 벌였다면 거기에 대한 심사 및 업무를 봐야지, 왜 표지 따위에 그렇게 연연해하는 건데요? 전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구요.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는 거죠? 일의 기준이나 우선순위라는 단어를 안다면 그렇게 일하시면 안 되죠!? 많은 사람들이 신청해서 기다리고 있는 반반무 이벤트. 이거 댁들이 시작한 겁니다? 작가들이 해달라며 울부짖은 적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습니다. 이런 이벤트를 벌여서 독자들 유입을 노려보겠다는 심산은 가졌으면서 그건 안 해. 근데 별 상관없는 표지 제재는 전력을 다해 임한다? 진짜 왜 이럽니까?
지금 쓰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후속작도 일단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세 번째 소설을 쓰게 된다면……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진짜 이 따위 취급받으면서 글을 써야 하나 싶네요.
조아라의 독자수 저하 및 작가들의 탈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궁금하시죠?
니들 하는 짓부터 일단 좀 보세요.
남탓만 하면서 정신승리하지 말고.
P.S - 너무 짜증나고 해서 코멘트에 대한 답변은 못 썼습니다. 다음부터 정상적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