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6-4 : 아이라(3)」 =========================
내가 비록 ‘하렘 어드벤처’라는 세상에 왔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한국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까놓고 말해 좆같은 곳이다. 잘난 건 하나도 없으면서 잘난 척은 존나 하고, 남의 눈에 신경 쓰느라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뿐이랴? 오지랖 넓어서 남이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내 말이 옳다 니 말은 틀렸다 등 온갖 병신 삽질을 한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한 행동과 생각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흔히 말하는 소시민(小市民)이다. 힘도 없는 병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부모님의 병신짓이나 주변 사람들의 헛짓으로 인해 불이익을 보곤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아……다른 세상에 와서까지 화나게 만드는 정도라니. 내 인생이 시궁창이긴 시궁창이었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소시민이었던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힘이 없었으니까. 부카케에서는 그런 현실에 빡쳐서 좀 미친 짓을 했었다만…….
그런 내 입장에서 볼 때 어제 아이라가 했던 행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래, 마법 공부해서 잘난 건 알겠는데……남 업신여기려고 그렇게 공부했냐?
학문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릇 자기 자신한테 엄격해야 하며 남한테 인자해야 하기 마련이다. 겸손과 도덕으로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아야지. 근데 시발 어제 그 태도가 학문을 배운 사람의 태도냐? 지금 생각해도 화날 정도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그년의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목숨 걸고 온 거냐? 용납할 수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쳐들어가 그년의 목을 따고 싶었다만……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살인죄다. 죽이고 싶다고 다 죽이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남아 있겠는가?
내가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거니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도 않다. 세상은 평탄하게. 하지만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두 번째로 아이나의 부탁 때문이었다. 당시 내 머리가 돌았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저 빌어먹을 년을 데려와 보겠다고 약속했었다. 내 아내이자 사랑스러운 아이나를 위해서라도 저년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가지를 잘라서 ‘자, 니 동생 모가지야! 일단 모가지도 몸에 포함되니까 괜찮지? 약속 지킨 거지? 응?’이라고 말했다간…….
워, 워우. 시발,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안 된다. 응. 절대 안 된다.
내 목숨을 포함해 여러 가지가 위험하다. 그건 그만두자.
살인은 나쁜 거예요……데프프!? 아, 앗. 이런. 내 정신 상태가 잠시 안드로메다로 갔었군. 안드로메다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어.
세 번째 이유는 좀 웃긴데……누군가 듣는다면 ‘어, 그래도 말은 되네?’쯤 되는 이유였다. 간단하다. 못 이길 거 같거든. 난 어제 그 계집애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 그렇구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지! 걱정 마. 오늘이라도 당장 텔레포트를 써서 돌려보내줄 테니까. 그 시골에는 텔레포트 에어리어도 없지? 그래도 주변의 안전한 곳에 보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이 여자애는 너무나 병신 같은 짓을 했다. 바로 자기 정보를 드러냈다는 거다. 현대(現代)를 살아가는 나나 혜린한테 있어 정보란 매우 무서운 것임과 동시에 소중한 것이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정보 자체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한테 섣불리 자기 정보를 말하다니. 개인 정보 안 털려봤지?
개인 정보 털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기 정보가 듣도 보도 못한 놈들한테 털려서 안 좋은 방향으로 이용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짜증을.
정보라는 건 그 정도로 소중한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지만 남한테 빼앗기거나 이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거지.
어제 대화에서 드러낸 아이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본인의 위치나 힘에 대해 섣불리 말한 이유? 아마 ‘이런 놈들한테 말해봤자 니들이 뭘 할 수 있겠음? 얌전히 집에 가라? 아, 택시비는 내가 내줄게!’라는 느낌으로 말한 거겠지. 더욱 더 용서할 수가 없구만. 내가 니 시다바리냐 시발년아……?
아내들과 아침을 먹은 후 여관주변을 걷고 있었다. 새로운 여자를 모색……하려는 마음이 1%도 없다고는 말을 못한다. 주된 이유는 그게 아니다. 생각이 막히면 몸을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뛸 수는 없지만 걸으며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정보 수집도 해야 하고.
아내와 함께 오는 게 일반적이지만 같이 있으면 또 야외 섹스를 저지를 거 같아서 혼자 나왔다. 모두 지치기도 했고, 개인 정비도 해야 했기에 잠시 간의 휴가라 생각하는 게 좋겠지. 난 지금부터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 그년을 엿 먹일 생각이었다.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자지의 맹세’로 그녀를 지배한다면 가능은 하겠다만 그런 식으로 돌아간들 아이나가 기뻐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모가지 들고 돌아가는 것도 그렇다만 동생이 지배된 채로 돌아오는 것도 좀 그렇다. 날 죽이려고 들지는 않겠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보통 이 경우 언니의 사랑을 말하며 설득을 하는 게 정석이다. 슈퍼로봇대전에서도 관련 캐릭터한테는 ‘설득’ 커맨드가 생기듯이 말이다.
뭐? 슈퍼로봇대전을 안 해봤다고? 뭐든지 하나 해봐라. 진짜 재미있다. 난 최근에 안 하지만 슈퍼로봇대전을 할 때 참 즐거웠지. 일부러 약한 캐릭터를 키우는 미친 플레이도 했었다니까?
내가 소리 높여 언니의 사랑을 말하면 이 빌어먹을 아이라는 ‘언니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라며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다. 그리고 함께 프레그넌트로 돌아간다. 이게 최고의 엔딩이자 굳 엔딩 루트겠지.
아, 연애 시뮬레이션은 몇 번 안 해봤다. 딸 치는 게 더 좋았거든.
헌데 이 빌어먹을 계집애한테 그런 설득은 안 통할 거다. 통할 거 같았으면 언니가 준 구슬을 태웠겠냐? 아아, 진짜 좆같다. 그 구슬 안 쓸 거면 나 줄 것이지.
7500이라는 최대 MP는 적은 건 아니었지만……한 때 프레그넌트에서 처음으로 구슬을 얻었을 때의 최대 수치였지.
당시 레벨 10이었기에 내 최대 MP는 1000. 여기에 마력증폭기와 2.5배 증폭의 성능까지 합쳐서 딱 7500이었다. 레벨 30이 되어서……그곳에서 여기까지 오며 많은 경험을 하며 도달한 곳이 그때와 같은 최대치 마력이라니.
아이나가 사무치게 보고 싶구만. 그 허당 아가씨, 진짜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다. 빌어먹을.
내 진실된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실력 행사를 할 수밖에. 그냥 돌아오기에는 너무나 심한 짓을 해버렸다. 그 여자는. 그냥 말해도 될 걸 반말에 건방진 짓까지 하며 날 도발시키다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하게 해주지.
내가 생각한 거지만 웃겼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어떻게? 내가 고문을 할 것도 아닌데. 나한테 있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면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거나 그런 종류의 사건이지만, 그토록 냉정하게 언니를 비난하는 여동생한테 소중한 게 있을 리가……?
“……있는데?”
갑자기 길 한복판에 서서 중얼거렸다. 어? 어어? 어라?
내 지능과 잔머리는 서로 폭풍섹스를 하듯 멋지게 어우러졌고, 난 입을 틀어막았다. 토할 거 같아서 그런 거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생각. 하지만 어쩌면……그 여자는 나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만 입꼬리는 활짝 올라간 상태였다. 그래……그렇군. 그렇게 한다면 이 여자한테 우리가 당한 수모와 고통을 경험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레그넌트에도 돌아가게 할 수 있어! 암!
내가 이렇게 웃으며 생각하는 걸 보니 누구나 ‘아, 저 새끼 절대 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쓸 생각은 아니겠지’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이지. 난 변태 씨발 개씹창 새끼니까.
이왕 변태가 된 거 나도 한 번 물어보자.
“내가 왜 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써야 하는 건데? 지금까지 안 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명답(名答)이다. 참으로 멋진 대답이었다. 암, 그렇고말고. 정상적으로 살아온 결과가 ‘하렘 어드벤처’에 오기 전의 나라면, 그런 방법은 더 이상 쓸 생각이 없다.
노력해서 얻은 게 빚과 불행뿐인데 미쳤냐? 사람은 행복해져야 하는 법이고 그 행복을 위해서라면 좀 특이한 길을 선택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나처럼 말이지.
좀 이름이 뭣 같지만 ‘아이라 귀환 작전’을 위해 내가 알아보아야 할 것은 여러 가지지만……일단 ‘양성소의 정보’부터 모아야지.
RPG에서 정보를 모으고자 한다면 술집(PUB)에 가는 게 일반적이다. 술집 갔냐고? 내가 미쳤음? 난 술도 못 마시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대낮부터 술이라니. 완전 깨잖아.
주변 노점상의 향기로운 음식들을 둘러보다 제일 맛있을 거 같은 곳을 발견했다. 와플인가. 오랜만에 먹는 와플이다. 현실 세상에서도 가끔 먹고는 했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까지 팔 줄이야. 최대한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갔다.
“예쁜 아가씨. 와플 하나 주세요.”
이 세상에 남자는 없다. 따라서 이들은 ‘여자’밖에 모르며 그런 여자를 ‘사람’이라 칭한다. 여자들끼리 있으니 남한테 보이든 말든 외모를 안 가꾸는 여자도 있겠지.
설령 그렇다 쳐도 여기 사람들은 이미 내가 살던 세상의 여자들쯤은 가뿐하게 넘을 정도로 예쁘다. 기본적으로 예쁘니 안 씻어도 그 미모는 어디 안 간다.
그치만 여자 간에 예쁘다, 귀엽다, 아름답다는 말을 잘 쓰지는 않는다. 꼬실 것도 아니니까. 그렇기에 이들은 자기 미모에 대한 칭찬에 꽤 어색한 반응을 보인다.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난 물론 한다. 섹스의 즐거움을 위해서. 내 아내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서도 말이지.
파란 머리카락으로 귀를 약간 덮고 목까지 내려오는 숏컷. 오오, 이런 스타일도 꽤 좋지. 와플을 판매하던 그녀는 내 칭찬에 웃으며 ‘고맙습니다. 뭘 드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초코를 부탁했고 와플에 초코 시럽 뿌린 걸 먹으니……크으으! 죽인다! 아내들한테 나중에 사주자.
“참 맛있게 드시네요.”
“미인이 주셔서 더 맛있어서 그런 거죠.”
내 아부성 섞인 칭찬에 ‘아이, 참~고맙습니다’라며 웃는 걸 보니 참 좋다. 아내들이랑 나왔으면 경을 칠 뻔했군. 손가락에 묻은 것까지 핥은 후 물어보고 싶은 걸 하나씩 물었다.
“여기는 마법사 양성소가 유명하다고 하던데……어제 보니 엄청 크더군요.”
“아, 가보셨나요? 마법사 양성소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력량이 큰 아이들이거든요. 고위 마법사가 꿈이라면 마법사 양성소에 다니는 게 제일 빠를 거예요. 용병이나 독학으로는 고위급에 오르는 게 엄청 힘들다고 들었거든요.”
안나와 니나가 그 좋은 예시지. 체계적으로 공부한 메이나 경비대장 업무를 해온 로라와 달리, 안나와 니나는 실전을 바탕으로 레벨을 올려왔다. 레벨은 올랐고 실력도 나쁘지 않지만 전체적인 스테이터스는 꽤 낮았다. 레벨‘만’ 높고 스탯 자체는 성장폭이 좁았기에 그걸 보완하려고 맨손으로 전투까지 시켰지.
“어제 여기 왔는데, 오기 전까지 ‘아이라’라는 사람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요. 실제로 그런가요?”
“아, 아이라님 말씀이시죠? 자주 제 가게에 오곤 하세요. 그분도 초코 시럽을 좋아하거든요.”
그 계집애와 내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니. 이건 기뻐해야 할 부분일까? 기뻐해야 할 부분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정보는 모으면 모을수록 다다익선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열심이시고 평판도 좋아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마법사로서도 굉장히 뛰어나신 분이랍니다! 텔레포트 에어리어가 없이도 레이프로 갈 수 있는……몇 안 되는 고위급 마법사로 이름이 꽤 알려졌어요.”
확실히 쩔어주는구만, 그 처자. 괜히 건방진 소리를 지껄인 게 아니었어. 자신만만했던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근거와 실력이 있었다 이거군.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여자를 용서하는 건 아니다.
좋아, 더욱 더 구미가 당기는군. 우릴 업신여겼던 그 계집애는 자기 정보가 이렇게 새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겠지. 으흐흐, 멋진데?
한때 애독했었던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사설 탐정이 불법이다. 국내에서 남편 혹은 아내의 바람이나 여러 가지를 조사하는 데에 서비스 센터나 심부름 센터. 좀 나쁘게 말하자면 흥신소를 찾는 수밖에 없다.
명탐정 코난은 욕이 나올 정도로 작품을 오래 끌어서 흥미가 사라졌고, 소년탐정 김전일은 위안부 관련으로 우익이라는 걸 까발렸기에 더 이상 미련도 흥미도 없었다.
이런 것들이야 사소한 것이니 중요한 게 아니다만……지금은 내가 탐정이 된 기분이었다. 단 하나의 목적. 그 썅년을 엿 먹인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탐정 말이지.
“와, 그러면 인기도 많겠네요!”
“네. 근데 이해할 수가 없는 건……수도에는 안 가신다는 거예요.”
수도에 안 가? 아까 전에는 갈 수 있다며?
“예? 조금 전에 수도인 레이프로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아……말을 잘못 했네요. 실은 굉장히 우수한 분이셔서 언제까지 양성소에 남아 있을 거냐는 질문을 자주 들어요. 고위급 마법사로 수도에서 근무하는 건 어떠냐는 권유를 자주 받는다고 하셨거든요.”
그 정도로 잘난 건가? 이 세상에 와서도 재능으로 인한 격차를 맛보게 되다니. 재능은 누구나 가지기 마련이다만 ‘나한테 정말로 필요한 재능’은 다른 사람한테 간다. 나한테 오는 건 나한테 필요 없는 시련과 고통뿐. 이 이야기는 비단 나 한 명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한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
정말로, 진심으로 원하는 건 아무리 바란다고 한들 자기한테 안 온다. 원하는 게 있다면 존나 죽을 만큼 노력해서 자기 힘으로 이루거나, 남의 힘을 빌리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운이 좋아 복권에 당첨됐다거나 하는 경우겠지만 그 경우마저 매우 예외적인 것이었기에 이뤄질 가능성은 0(제로)에 가깝다. 물건이든 재능이든 자기가 바라는 걸 얻을 수는 없지.
“수도에서 근무하는 게 여기보다 힘들어서 그런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수도라고 해서 여기보다 훨씬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고위급 마법사를 동원할 정도로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아이라님은 그냥 ‘여기에 있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셨어요.”
이건 좀 특이하네. 여기에 있고 싶어서 남는 거라고?
“이 마을을 좋아하는가 보네요.”
“좋아하기도 하지만……여길 떠나면 곤란하다고 했거든요.”
“왜요?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산물 때문에요?”
와플 판매원은 내 말이 웃겼던지 쿡쿡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뇨, 그……편지? 아, 맞아요. 여기에서 벗어나면 편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누구 편지냐고 물으니 먼 곳에 있는 지인(知人)의 편지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참 이상하죠? 수도로 옮긴다는 편지를 적으면 그만일 텐데…….”
……설마 그 편지. 아이나한테서 온 편지를 말하는 건가?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저 썅년을 혼내줄 수 있을까’라는 계획을 세우느라 풀가동되던 뇌가 멈춘다. 어, 음? 이상하다? 그런 걸 말할 년이 아닌데?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다르지만 ‘하렘 어드벤처’에도 편지라는 건 존재했다. 우체국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일정한 요금을 지불하고 편지나 짐을 부탁하면 그걸 외부로 전해준다. 다른 곳은 텔레포트 에어리어가 있으니 그걸 쓸지 몰라도 프레그넌트는 그런 게 없으니 아날로그 형식으로 가져다준다.
당시 가짜 인격의 혜린이와 함께 괴물 퇴치를 하며 외부로 나가는 길을 뚫어줬던 적도 몇 번 있긴 있었지. 우리야 그런 거 쓸 일도 없고 받을 일도 없으니 좋은 일 하는 셈 치자 싶어 노력했다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아이라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 아나요?”
“아마 모를 거예요. 아이라님은 실력도 좋으시고 인간관계도 좋으신 분이지만 가족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여기 와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셨는데, 이런 이야기는 양성소에서는 할 수 없다고 그러셨어요.”
무섭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난 그냥 와플이나 먹으며 정보나 수집하자는 생각으로 물었는데 이런 정보까지 얻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래서야……이래서야 내가 레벨10이 됐던 때와 마찬가지잖아.
그 당시에도 프레그넌트에서 괴물 퇴치를 하며 레벨 업을 했었다. 하지만 10이 된지 얼마 안 돼 아이나의 부름을 받았고, 여행길에 오르게 됐다.
난 그 당시 ‘에이, 설마. 무슨 이벤트도 아니고. 이래서야 내 레벨이 10이 되자마자 날 위해 모험을 시키는 거잖아. 아무리 이 [하렘 어드벤처]가 게임 같다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걸 여기 와서도 느끼다니!? 아니, 느낀 정도가 아니다. 틀림없다. 이 세상에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일정의 조건을 만족시키면 발생하는 ‘이벤트(Event)’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얻게 된 것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백발의 여자가 떠오른다. 그 여자 짓인가? 그 여자가 모든 걸 꾸민 건가? 이쯤 되면 내가 망상증 환자가 아닌가 싶은 의심도 들지만, 여기 와서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오직 그 여자. 그 미친 여자밖에 없었다. 부카케에서 괴물의 습격을 막느라 다쳤고, 의식을 잃은 와중에 만났던 그 여자…….
대체 목적이 뭐지? 이 세상부터 시작해 그 여자의 목적. 이런 이벤트를 만든 것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공포심과 호기심이 어우러지며 내 머리를 어질거리게 만들었고, 왼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른손으로는 와플 판매탁자를 잡은 채 겨우 몸을 지탱시켰다.
“어, 어디 아프세요?”
“……예. 빈혈 증세에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빈혈이었으면 차라리 말이나 안 하지. 이런 이야기, 혜린이라도 하기 어렵다. 머리를 가볍게 저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래. 이게 이벤트든 뭐든 간에 정보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이 정보를 토대로 아이라를 어떻게든 공략해야만 한다. 아이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여행을 ‘성공’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 세상은 게임이며 난 주인공이라는……그런 오만한 생각은 안 한다. 그래서야 내 아내들을 인공지능으로 취급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이게 게임의 이벤트 같은 거라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야 한다.
내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은 AI(Artificial Intelligence ; 인공지능 - 人工知能) 같은 게 아니라고 하면서, 나랑 관련 없는 사람들은 게임 캐릭터처럼 최대한 이용해 먹으려 하다니! 나 자신의 더러운 이중 잣대를 속으로 욕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아이라라는 분은 그걸 말씀하시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좀……외로워 보였어요. 웃으며 말하려고는 했지만 웃으면서 말할 내용이 아니었거든요. 답장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씀드렸지만 그러기 어렵다고 하셨어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 편지를 손수 다 태웠다고 했으면서 그 편지 때문에 이곳에서 떠날 수 없다고? 읽어보지도 않고 다 태웠다고 했으면서 이건 대체 무슨 소리냐? 그거냐? 언니의 편지를 태우는 것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변태냐? 아, 진짜 미치겠다.
그래도 중요한 건 건졌다. 좋든 싫든 아이라는 편지를 비롯해 언니인 아이나와의 교류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우리한테 했던 말은 일종의 립 서비스라고 봐야 하나? 자기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 것도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군.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지도 않았는데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 될 거 같았다. 아내들한테 선물로 줄 와플을 샀다. 자세히 가르쳐줘서 고맙다며 정중하게 인사도 했고. 이런 정보까지 얻었는데 와플 많이 사주는 거야 껌이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정도로 그 여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하대(下待)하며 바보 취급했다는 점을 용서해줄 정도로 너그럽지는 않다만! 그 건에 대해서는 확실히 대가를 치르게 만들 거다. 자매 사이를 화해시키면서 내 졸렬한 복수도 성공시키려 하다니. 나도 참 미친놈이긴 미친놈이다.
내가 가진 마법.
아이라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와 사정.
우리한테는 말하지 않았던 아이라의 비밀.
생각할 게 너무 많았기에 정리를 해야만 했다. 여관에 가서 와플을 주니 아내들은 모두 기뻐했다. 맛있다며 함께 웃는 메이와 니나를 보니 이러다가 딸만 두 명 생기겠군 하는 기분이 든다.
아이라한테 모든 사정을 듣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의 진실된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자지의 맹세’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걸 실현시킬 방법은 우습게도 내가 엊그제 욕을 하며 짜증을 냈던 마법이었다. 좋아, 좋아.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군.
필요한 때는 제대로 못하면서 자기 복수 같은 하찮은 일에는 전력을 다하는……병신 같은 내 자신을 흡족해하며 난 ‘아이라 귀환 및 조교 계획’을 찬찬히 짰다.
귀환에 조교까지 더해진 걸 말했다간 또 뭐라 한 소리 들을 거 같았기에 그 계획명은 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열심히 약을 빨고 하루를 버티는 메리사(신세린)입니다. 실제로 먹는 약은 없지만 하루하루가 아스트랄하다 보니 약을 빨아서라도 버티고 싶네요.
다음 주에 발표되는 입사지원 서류합격은 그저 괴롭기만 합니다. 안 되면 또 새로운 입사지원서를 작성해야 하니까요. 이번 주 평일도 이걸로 마지막이네요. 독자분들도 불금과 토일을 편하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keriaba님, 많이 충격을 받으신 거 같아 걱정입니다. 제가 쓴 글은 솔직히……까놓고 말씀드려서 좀 맛이 간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섹스 파티라니. 이 무슨 부러운……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벤트일까요. 적은 후에도 '아, 내가 존나 미친놈이구나! 그래서 이런 글을 적는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보는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만들 정도로 막장 소재를 잘 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하찮은 기술이라도 갈고 닦으면 훌륭한 것이 되듯이 막장 소재라도 잘 쓰면 사람들한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보시는 분들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마무라 우즈키, 간바리마스! 부이!
예? 30 가까운 남자의 에헤가오 더블피스(아헤가오 더블피스 아님)는 극혐이라고요?
끄흑! 다,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슥!
열심히쓸게요님, 여성과의 대립을 적긴 했지만 불안해서 말씀드립니다. 전 절대 여혐이 아닙니다. 성인소설을 적는 것도 모자라 막장 소재나 이벤트를 채택하는 바람에 '올ㅋㅋㅋ이 작가 완전 여혐인데?'라고 오해받을까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늘 코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
流江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기동력을 살려 싸우기에는 사출보다 투영쪽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아처 코스튬을 선택했습니다. 길가메쉬보다는 아처 쪽을 더 좋아하는 성향도 포함된 거구요. 너무 사기 캐릭터의 코스튬을 넣었다간 후에 수습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네? 못 믿으시겠다고요? 믿으세요. 믿으면 행복합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레드썬!
이상입니다. 구독, 추천, 선작, 코멘트, 서평 등 무엇이든지 환영합니다. 부담 없이 남겨주세요. 악플이나 부담되는 내용이 아닌 한은 최대한 대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 시마무라 우즈키가 귀엽지? 나도 좋아해. 그 망측한 엉덩이! 줄여서 망딩이! 헤헤, 찰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