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증폭기를 건네주자 내 마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악……15000 이상의 마력이 순식간에 7500으로 줄어들었어! 아이나와 그 구슬을 나누길 잘했지! 이 마력이라도 어디야?
“이건……마력증폭기?”
“네. 아이나님께서 동생인 아이라님을 생각하시며 만든……매우 소중한 구슬입니다.”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동생이 이 어보션에 있는 마법사 양성소로 떠난 후 노력해서 만든 구슬이다. 편지에 답장조차 없는 동생을 위해 만든 S급 아이템인데, 매우 소중한 구슬이라는 말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네.
정작 그 엄청난 구슬을 받은 아이라 본인은 아무런 말없이 구슬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표정은 조금 흐려져 있었기에 결코 안녕하시지는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아~빡친다! 그래, 결국 이 와중에 와서도 난 내가 원하지 않는 일까지 모조리 하는구나. 이왕 나쁜 놈 되고 별 짓을 다 저질렀다. 이번에도 저질러주마, 빌어먹을 세상아.
“아이나님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만 답장이 없으셨고, 마법사 양성소에서 있으신 걸 감안해 만든 구슬입니다. 혹여나 아이라님께서 편찮으시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업무 상 프레그넌트를 떠날 수가 없기에…….”
“답장이야 당연히 없지. 오는 편지 내가 족족 다 태웠거든.”
……뭐?
……방금 이 씨발년이 뭐라 지껄인 거지?
“어, 저……. 죄송합니다만. 그. 잘못 들은……건가요?”
“뭐라고 들었는데?”
내 귀가 병신이거나 저 계집애의 입이 병신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태우셨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잘 들었네. 맞아. 읽어보지도 않고 태웠어. 여긴 겨울에도 난방이 잘 돼서 땔감으로도 못 써먹었지.”
……이게 미쳤나? 화가 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혜린, 로라, 메이. 모두 믿을 수 표정이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저 계집애가 이상한 거다. 그건 틀림없었다. 사정을 들은 안나와 니나는 우리처럼은 아니지만 살짝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저……정말 죄송합니다만. 왜 그러셨는지 여쭈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마음에 안 들었거든. 동생 버려놓고 편지? 그 소중하다 못해 잘난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 병신 짓이나 하라고 그래. 등신 같은 년이……편지 보낸다고 내가 질질 짤면서 그 마을로 돌아갈 거 같았어? 어휴…….”
……내가 지금 얘 죽여도 괜찮겠지?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못 하겠지?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간신히 참았다. 보다 못한 로라가 입을 열었다.
“아이라님. 아이나님께서는 최근까지 괴물의 증가와 습격 외에 생명의 씨앗을 얻을 수 없는 문제까지 처리하느라 매우 힘드셨습니다. 여기 계신 세린이 괴물 퇴치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오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겁니다.”
완곡하면서도 상대방을 지적하는 말투는 역시 어머니가 아니고서는 못 하겠군.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로라!
“그래서?”
“네?”
아니, 그래서라니. 너 국어 성적 빵점이니? 문장을 제대로 듣긴 들은 거냐?
“그래서 뭐 어쨌다고. 사랑스런 언니가 집을 나간 동생을 가엾게 여겨 선물과 함께 사람들을 보냈다. 그건 좋아. 수고했어. 근데 나보고 어쩌라고?”
표정이 구겨졌다. 아이라 표정? 아니, 내 표정. 이 정도까지 했으면 예절 많이 지킨 거다.
“어린 동생은 돌보지 않았지만 피가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돌봤겠지? 역시 언니야. 대단해. 존경스럽다니까? 그럼 그 존경스러운 짓 평생 하라고 그래. 난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돌봐달라고 애걸한 적도 없으니까.”
손에서 힘이 쭉 빠진다. 얘 미쳤냐? 안나와 니나가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해서 화를 냈던 적도 있다만, 이건 다른 의미에서 막장이다. 언니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고 있다.
“언니의 구슬이라……그래. 그럼 이제 이건 내 거지?”
“그래.”
반말로 대답했다. 내가 왜 이런 썅년한테 ‘아,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냐? 3주 넘는 시간 동안 이딴 대접 받으려고 그 힘든 여행을 한 줄 아냐? 손가락으로 가볍게 든 구슬을 주먹으로 쥐었다. 왜 주먹으로 쥐냐? 그게 힘준다고 부서질 거 같냐?
“내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불안하다. 내가 ‘잠깐만……’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에서는 화염이 나타났다. 이런 미친!? 설마? 내 나쁜 상상은 늘 맞아떨어진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화염은 더욱 불타올랐다. 그 화염이 꺼진 곳에는……구슬의 부스러기만이 남아 있었다.
“아……아아……!”
“뭐가 ‘아……아아……!’야? 내 거라며. 내 물건 내가 부순다는데 왜 오버를 하고 지랄이야? 아! 그렇구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지! 걱정 마. 오늘이라도 당장 텔레포트를 써서 돌려보내줄 테니까. 그 시골에는 텔레포트 에어리어도 없지? 그래도 주변의 안전한 곳에 보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야 이 씨발년아!”
저질렀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니, 예전부터 해야 하는 행동을 이제야 했다. 후련하기 짝이 없군. 대놓고 욕을 들은 아이라의 표정은 비웃음을 띤 얼굴이다.
“욕은 왜 해? 내 거라며? 내 물건 내가 부순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이 미친 시발년아! 아이나가 그거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해!?”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허허. 미쳤다.
같은 언어를 쓰는데 말이 안 통해.
얘 대체 정체가 뭐야?
“가증스러운 짓거리 좀 하지 말라고 전해. 동생은 못 돌본 주제에 피조차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한테 웃음 팔고, 아양을 떨던 그 개년한테 말이지……아! 혹시 알아? 자기 외로움도 달래달라며 몸이라도 팔고 있을지?”
모두 할 말을 잃은 거 같았다. 난 깨달았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이나에 대한 아이라의 증오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그래도 혈연 지간인 언니를 잊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이건 뭐냐? 증오라는 말도 귀여울 정도다. 혐오와 증오를 동시에 합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정말이지 역겹다구. 그 개년은 이제 와서 대체 무슨 짓거리람? 너도 언니한테 속은 거 같은데, 그년은 자기를 위해서라면 가족이든 뭐든 다 이용하는 여자야. 더 힘든 일에 이용당하다가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떠나는 게 좋을 텐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해서 이런 말 하는 거야.”
“내가 좋아서 곁에 있는 거다, 병신년아.”
아, 속 시원하다! 내가 저 바보년의 헛소리를 경청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 손! 없지? 없지? 응, 난 이런 놈이다. 내가 좋아서 여기에 온 거라고.
지금까지 우리의 여행을 모욕해줘서 고맙……지는 않군. 이젠 내가 공격할 차례다. 나도 웃었다. 매우 환하게. 당연한 소리지만 쟤 입장에서는 기분 더럽게 웃는다. 이거 의외로 어렵다?
“왜 웃어?”
“아이구……우리 아이라 아가씨. 삐져도 단단히 삐졌네?”
“……삐졌다고?”
“아, 뭐. 삐쳤다. 삐졌다. 표준어나 사투리가 좀 차이가 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토라졌다 이거지.”
주변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나와 아이라한테 집중된다. 어디 한 번 말로 해보자 썅년아.
“내가 뭐에 토라졌다는 거야?”
“뭐긴 뭐겠어요? 우리 아이라 아가씨, 좋아하는 언니가 자기는 안 봐주고 마을 사람들 신경 써주니까 단단히 화가 난 거지! 삐진 거지! 어이구……그려, 그려. 내가 니 맘 알아.”
놀리는 식으로 말하며 웃는다. 근데 진짜 웃겨서 웃는 것도 있다. 아아, 좋다. 기분 정말 좋다. 우리의 여행을 그딴 식으로 폄하(貶下)한 너한테 내가 왜 예절을 차려 줘야 함? 미쳤음? 정신 나갔음?
“언니가 마을에서 나와 여기까지 와서 무릎이라도 꿇을 줄 알았지? 응? 우쮸쮸, 우쮸쮸! 우리 아이라 아가씨, 심하네~! 사람이 사정이 생겨서 중요한 일을 못 볼 수도 있는 거지!”
“기분 더러우니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좋았어, 걸려들었다!
“어이쿠~! 이거 죄송하구만유! 이런 천한 놈이 아이라 아가씨처럼 고귀한 분도 몰라 뵙고 헛소리를 찍찍 뱉어서 죄송하구먼유! 그래도 뭐……이왕 뱉은 거 더 뱉어볼까 싶구만유. 기분 나쁘슈?”
사투리까지 쓰며 아주 몹쓸 놈 흉내 내는 것도 재미있네? 대답은 안 하지만 기분은 확실히 더러운 거 같다. 비웃음이 사라졌으니까. 앗, 살짝 아이나 닮았다.
하핫! 3주 약간 넘는 시간 동안 맺힌 원한과 짜증! 그리고 우리 귀여운 아이나를 괴롭히지 못한 것까지 전부 다 합쳐서 널 괴롭혀주마! 음홧홧!
“그래, 마을 떠나서 혼자 공부해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셨수?”
“너 따위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높은 곳까지 올라갔지. 왜? 부러워?”
이번에는 다른 말투로 가볼까. 이거 재미있는데…….
“테? 와타치가 어째서 너 따위를 부러워 해야 하는 테치까? 그딴 자리 줘도 안 받는 테치! 마법으로는 대성(大成)했을지 몰라도 인격은 쓰레기 테치.”
“……큭……!”
지이이인짜 기분 좋다! 아이나를 놀려먹는 느낌으로 말하니 효과가 아주 직빵이구만! 좋았어! 이대로 청와대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 우선 얘부터 박살내자. 감히 나한테 개길 생각을 못 하도록 철저하게 말이지.
“테? 기분 나쁜 테치까? 기분 더러운 테치카? 근데 그거 아는 테치? 너님 기분 나쁜 건 알면서 왜 우리가 기분 나쁜 건 모르는 테치까? 너님 기분은 위대하고 늘 신경 써야 하지만 우리 기분은 길가에 있는 쓰레기처럼 막 대해도 되는 테츄카?”
말을 못 한다. 그야 그렇겠지……. 우리는 적어도 아이라의 기분을 맞춰 가면서 이야기했다. 헌데 아이라는 우리 기분이고 뭐고 모조리 다 개무시하고 적대감을 드러낸 채 이야기했다. 이런 상태에서 승패를 가르는 대의명분은 우리 쪽에 있다.
“기분 더럽지? 이런 식으로 기분 존나 더러울 거다. 앞으로 사람보고 덤벼라. 알겠니 좆만아?”
“……할 말 끝났으면 꺼져. 바빠.”
“아직 이야기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긴 어딜 가. 야. 그거 어떻게 할 거냐?”
“뭘.”
“구슬. 그거 부수고도 내가 헤실거리며 참 잘 하셨습니다 이 지랄 할 거 같았냐?”
“내가 왜 니 기분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는 나는 왜 너님 기분을 생각해야 하는데?”
할 말 없겠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냐?
“니 기분이 남한테 존중받아야 마땅한 거라면 우리도 마찬가지거든? 여기에는 너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도 있어.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아, 그래. 언니가 안 봐주니까 삐져서 나간 동생. 맞아. 거기까지 했지……응?”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거기에는 분홍색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성들이 지팡이를 우리한테 향하고 있었다. 어, 잠깐만! 야 뭐야 이거?
“손님 대접은 끝났어. 잘 가라.”
“아직 우리 이야기 안 끝났는데?”
“난 끝났어. 경비대원분들은 이분들을 정중하게 모셔드리세요.”
시발, 끝까지 우리한테는 하대(下待)한다 이거지? 하지만 여기서 사고를 일으키면 진짜 좆될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나가는 수밖에. 결국 우리는 경비대원에 의해 퇴출당할 수밖에 없었다. 망할.
여관에 들어오자 모두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렇겠지. 그런 대우 당했는데 기분 좋으면 마조히스트……인데. 그건 내 이야기인데? 근데 난 지금 기분 더럽다. 이게 바로 내가 변태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지! 크하하핫!
“설마 아이나님한테 그런 말씀까지 하실 줄은……너무 심하셨어요.”
로라는 아이라의 그 언행(言行)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 거 같았다. 난 믿는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그러게.”
구슬은 전해줬고 이야기도 나눴다. 그 결과는 다들 잘 알다시피……구슬은 파괴됐고 이야기는 개판으로 끝났다. 겨우 이 따위 결과를 위해서 3개월 이상을 여행한 줄 아냐? 나도 오기가 있다. 이렇게는 끝낼 수 없지.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이제 우리가 간들 그 여자는 우리를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고를 저질렀다간 여기 감옥에 갇혀서 콩밥이나 먹는 신세가 되겠지. 둘 다 싫다.
“우선은 방법을 생각하자. 이대로 물러서긴 좀 그러니까.”
잠자리에 누워 아내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광경. 그건……여행 시작 때부터 오늘까지 함께 해온 아이나의 구슬. 그런 구슬을 태우며 아이나를 욕하던 아이라의 증오와 분노였다.
============================ 작품 후기 ============================
요즘에는 소설의 조회수나 추천수도 고민이지만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고민도 큽니다. 상시 약을 빨고 쓸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약 빨았는 후기를 쓸 때는 '진짜 이딴 식으로 후기 작성해도 괜찮을라나?'하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정상적이거나 짧은 후기를 쓸 때에는 '진짜 이딴 식으로 써도 괜찮을까?'하고 또 생각합니다.
약을 빨고 써도 문제, 안 빨고 써도 문제. 설령 후기가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작가인 저와 작품, 주인공인 신세린까지. 모두 약을 거하게 한 사발 빨았기에 후기에 관계없이 미쳐 날뛰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깨달을 수 있더군요.
[아, 그렇구나. 약을 빨든 안 빨든 간에 이미 작가인 나부터가 문제인데……그런 나에 의해 창조된 소설. 그리고 그 정상적이지 못한 소설 속에서 활약하는 주인공! 모두 다 비정상, 약쟁이잖아? 그럼 후기는 막 써도 상관없는 거네?]
존나 미친 결론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차피 막장인데.
그런 고로……후낫씨이이이이이──잇!! 미쳐 날뛰는 테챠아아아아앗!!
이 소설이 더 막장으로 가버렷!
신고 당해 짤릴 날도 머지않았다는 사실에 가버렷!
신고 당해서 '끄흐! 어째서 와타시가 신고당해야 하는 데스카!?'라며 (분노가) 절정에 도달해버렷!
이제 이 소설에서 정상적인 인물이나 요소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사실에 작가가 미쳐버렷!
이 '~해버렷!'이 언제 끝날지 몰라 컴퓨터가 폭주해버렷!
철혈의 오펀스가 막장으로 가며 끝나는 것에 기뻐해버렷!
점점 뭘로 후기를 때우면 좋을지 몰라 고민해버렷!
이제 슬슬 이 '~해버렷'도 끝나버렷!
……그냥, 예. 늘 이렇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