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4 「6-3 : 아이라(2)」 =========================
쓸모없는 무기와 아이템의 매각은 잘 처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기점에서 거의 균일한 가격으로 매매를 하고 있었기에 큰 손해도 안 봤고. 괴물이 가지고 있던 낫을 하나 빼고 다 팔아버리니 속이 시원하구만.
그 낫을 단 하나만 놔둔 것은 혹시나 싶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그런 것이지, 좋아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해둔다.
메이한테 사준 아밍 소드는 괜찮지만 조금 수수했기에 바꾸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다지 접근전을 안 하는데 좋은 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메이의 말을 존중하는 뜻에서 무기는 그대로 놔뒀다.
안나와 니나의 무기는 정말 극과 극이었다. 안나한테는 구슬이 박힌 아밍 소드(Arming Sword)를 사줬다. 그 구슬은 아이나가 제작한 것과 비슷한 형태와 성질을 지닌 것이었다. 마력증폭의 효과를 가지지만 당연히 5배로 늘려주는 무식한 위력은 아니었다. 원래 지닌 최대 마력치의 30%를 늘려주는 정도?
안나는 고화력 + 고위력의 마법을 주로 썼다. 마법을 주로 쓰는 안나한테 마력증폭 효과는 있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마법을 피해 가까이 온다 하더라도 안나는 용병으로 오랫동안 활약해온 여전사였다. 접근전에서도 그 무예를 뽐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니나한테는 위력이 마력을 쓴 데미지가 30% 증가하는 체인 글러브(Chain Glove)를 사줬다. 니나는 마력을 자기 몸에 사용해 강화시키는 접근전 타입이었다. 경쾌하게 움직이면서도 쉴 새 없이 적을 때리는 걸 보면 내가 흥이 날 정도였다니까?
마력 데미지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 자체도 뛰어났기에 운동 에너지에 의한 데미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투에 의해 증명됐지만 용병 모녀는 그 성격이나 전투 스타일이 극과 극이다. 하지만 서로를 지키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그 방식은 매우 마음에 들었기에 특별히 비싼 값을 지불하여 그녀들한테 맞는 무기를 사줬다.
이 용병 모녀의 파워 업은 파티 전체의 파워 업에도 기여하므로 나한테 있어서 손해될 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보니 로라와 안나, 메이와 니나. 엄마와 엄마. 딸과 딸이 레즈비언 섹스를 즐기는 것도 꽤 볼 만하겠는데.
조금씩 움직이려는 하반신을 누르느라 힘이 드는군. 옷을 벗고 다닐 수도 있지만 그런 짓을 하다가 잡히면 큰일 나니까. 얌전하게 있으라구, 존슨.
내 분신을 진정시키며 다음에 찾은 곳은 내 옷을 사기 위해서였다. 젠장, 엄청 많군. 생각 외로 많은 옷이 있었지만 더욱 놀라운 건 무기였다. 이 ‘하렘 어드벤처’에서는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코스튬’만 팔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무기’까지 팔다니?
옷만큼 다양한 종류는 아니지만 SF나 로봇물에 나오는 무기도 몇 개 정도인가 팔고는 있었다. 더욱 더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으며, 왜 만든 건지 궁금해진다. 알고는 싶지만 그건 나중에 알아도 상관없다. 내 옷은 이미 정해놨으니까.
혜린이한테 사준 것과 막상막하급으로 비싼 옷을 보니 좀 떨리긴 떨린다. 하지만 괴물 죽이고 온갖 무기와 아이템까지 팔았기에 걱정은 되지 않는다.
산 옷을 입자 조금 어색했다. 내 몸은 그다지 근육질이 아닌데 산 옷은 타이트했으니까. 원래는 가슴부터 배에 걸쳐 하얀 선이 있어야 하지만 검은색의 긴팔 옷과 바지. 어깨와 허리에 둘러진 붉은 천은 ‘캐릭터가 입은 옷을 완전하게는 재현 못 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닮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 코스튬은 그야말로 똑같은데 남자 옷은 이 따위로 만들다니. 그래도 코스튬에 붙은 효과 덕분에 기분은 매우 좋았다.
“어머, 내가 입은 거랑 비슷하네?”
“비슷한 게 아니라, 사실 내가 입은 게 설정상으로는 오리지널이야.”
내가 선택한 코스튬은 『Fate / Stay night』에 나오는 아처(Archer / アーチャー)였다. 혜린이한테 사준 옷의 원조(元祖)격의 캐릭터지.
이 캐릭터가 가진 보구(宝具) 무한의 검제(無限の剣製 / アンリミテッドブレイドワークス / Unlimited Blade Works)는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나올 정도로 유명하며 강력한 능력이었다.
내가 이 코스튬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첫 번째로 위력이었다. 무기 외에도 복제가 가능하지만 검 종류를 복제해서 미사일처럼 폭격시키는 전법은 매우 심플하면서도 강력했다. 얼마나 좋냐? 검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처럼 쏟아지는데 그걸 피할 수 있을 거 같냐?
화려한 기술이나 마법도 좋겠지만 무식할 정도로 많은 검을 우직하게 날리면 전투 끝. 승리해서 경험치 얻고 아이템 얻고. 아아, 이 얼마나 편한 작업이란 말인가? 스마트폰에 있는 게임을 ‘자동 전투’로 맞춰놓고 싸우는 느낌이 들 거다. 실험은 안 해봤다만.
두 번째. 혜린이와 같은 옷이었다. 생김새는 좀 다르지만 이 옷은 혜린이가 입은 옷의 오리지널에 해당한다. 사랑하는 혜린이한테 준 것과 같은 옷을 입다니. 그 자체로도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설마 너, 이거 사려고 그동안 옷을 안 산 거야?”
“응. 커플티 같잖아.”
“……진짜 여자 감동시키는 재주는 뛰어나네.”
“그럼,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야 뭐…….”
그녀의 배를 문질렀다. 배가 훤히 보이는 부분은 이미 꽤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곳에 나와 그녀의 사랑의 결정체가 있다니……프레그넌트 마을에서 벌였던 야외 결혼식 초야(初夜)를 생각하니 너무나 기쁘다.
로라는 ‘아앗, 너무해요……혜린이만 사랑해주다니. 그치만 이 옷도 세린한테 받은 소중한 옷이니……정말 너무해요’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한테 같은 옷을 사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만……각자의 밸런스 문제도 있거니와 돈도 문제였다. 누구는 사주고 누구는 안 사주고 할 수 없으니까.
메이는 ‘혜린이 언니랑 아빠, 잘 어울려요……그, 그치만 우리는 전부 가족이죠? 아빠는 마마의 남편이자 제 아빠……그리고 제 남편, 맞죠?’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로라와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둘 다 잘 어울려요.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라며 덧붙였다. 실제로 그렇다니까? 편애는 하지 않는다. 난 아내를 사랑하는 착한 남편이다.
안나와 니나는 무기에 흡족해 했기에 별 말은 없었다만……그녀들의 옷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녀들을 아내로 받아들이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면 좋겠는데. 노예라는 직책을 영원히 달게 할 수는 없으니까.
모든 건 다 해결했다. 점심까지 먹은 후 마법사 양성소를 찾아가니……오오, 꽤 으리으리한데? 프레그넌트의 경비대 건물보다 훨씬 더 크다니! 거의 3층에 윽박하면서도 넓기까지 한 이곳이 오직 마법사만을 위한 건물이라는 건가.
프레그넌트로 돌아가서 그 아늑한 공간에 있고 싶네. 로라의 방에 아내들과 노예까지 다 들어가긴 어려울 거 같은데. 이사를 해야 하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양성소의 홀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주눅이 든다. 우와, 양탄자 좀 봐라! 졸 비쌀 거 같아! 오오, 저 쇼파는 보기만 해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인다! 마법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비싸 보이는 가구가 여기저기 있으니 눈이 홱홱 돌아가는구나!
“어서오십시오. 어떤 일로 오신 건지……?”
안내 데스크를 겸하는 곳으로 가니 안경을 낀 직원이 우릴 반겼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왜 이런 곳에는 안경을 낀 사무원만 있는 걸까? 너무 정형화됐다고 해야 하나?
근데 안경 쓴 게 저 사람이 뭐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클리셰라면 클리셰다만, 가끔은 그런 클리셰를 부술 줄도 알아야지.
“어.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아이라’라는 여성을 좀 뵈어야 하거든요.”
“아이라님 말씀이시군요. 어떠한 용무로 왔다고 전해드릴까요?”
“고향인 프레그넌트에서 언니인 아이나님의 부탁을 받아 여기 왔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무직 여성은 무언가를 종이에 썼고 그 내용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아이라님께 내용을 전했으니 금방 오실 겁니다.”
아, 메시지였군. 현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메시지를 이렇게 보니 감격스러웠다. 요즘엔 카톡이나 텔레그램이다 뭐다 하면서 온갖 메신저가 다 있어서 폰의 기본 기능인 ‘문자 메시지’를 쓸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이곳에서는 마법사만이 쓸 수 있는 기능. 혹은 마법 도구로만 쓸 수 있는 기능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기능임을 생각하면……이곳의 발전은 빠른 건지 늦은 건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아, 아이라님께서 오셨네요.”
데스크와 반대쪽의 문이 열리며 나온 갈색 머리카락을 보니 아이나가 생각난다. 아아, 그 허당 아가씨. 제대로 밥은 먹고 있을까? 밤이 외롭다고 똥구멍에 아무거나 박았다가 똥이나 안 싸면 다행일 텐데.
아이나 본인이 들었다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전 그런 짓 안 해요! 안 한다고요! 애초에 허당도 아니에요! 어, 왜, 왜 웃는 거예요!?’라며 소리 지를 내용이다만. 중요한 건 안 들리고,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거다.
무례한 생각이면 좀 어때? 안 들키면 땡이지!
목에서부터 내려오는 옷은 그녀의 굴곡을 보여준다. 가슴과 허리, 엉덩이의 실루엣이 뚜렷할 뿐만 아니라 허벅지 부분에서 갈라지는 저 옷은……차이나 드레스다. 가는 허리가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는군. 장난 아닌데.
상복 같은 검은색 드레스도 그렇거니와 아이나와 아이라, 이 자매는 자기를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거 같다.
……설마 이 아가씨도 아이나 같은 허당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자매가 쌍으로 그렇겠어? 자매 아니랄까봐 머리카락도 포니테일로 묶었다. 보라색 눈동자는 우리를 보며 아는 사람이 있나 없나 체크 중인 거 같다.
“로라. 아이라를 본 적 있어요?”
“아뇨. 그 당시의 저는 아직 경비대 업무를 맡고 있지 않았어요. 5년도 전의 이야기니까요.”
그렇군. 그렇다는 말은 로라보다 늙었다는 걸까. 경계하는 눈치니 우선 인사부터 하자.
“안녕하세요, 아이라님. 프레그넌트에서 온 신세린이라고 합니다.”
“……알아. 들었어.”
다짜고짜 반말? 이 썅년이……그래, 아이나의 동생이고. 게다가 이런 저런 일이 있었을 테니 너그럽게 봐주자.
“아이나님의 부탁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 전해드릴 게 있어서요.”
“그 전에……비앙카. 이분들을 접대실로 안내해주세요. 서서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으니까요.”
어, 이 개년 봐라? 우리한테는 반발을 쓰면서 저 사무원한테는 존댓말을 써? 딱 봐도 우리한테 호의를 지닌 건 아닌 거 같은데. 아아, 저 아이 데리고 가겠다고 했는데 벌써부터 짜증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당시 내가 뭘 믿고 그딴 말을 했을까?
접대실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홍차와 다과가 있었다. 이렇게 온 거 먹을 건 다 먹고 가야지. 앉아서 홍차를 들이키니 단맛이 입 안으로 퍼진다.
웃효오오! 맛있다아! 겨우 홍차가 이렇게 맛있다니? 역시 비싼 건 다르다 이건가? 다과까지 모두 먹으니 기분이 좀 가라앉네. 음, 좋아.
“무슨 용무로 온 거지?”
“아이나님께서 전해드리라 부탁하신 물건이 있어서요.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