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5-8 : 다가오는 위기(8)」 =========================
“노……예?”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양 니나는 내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다 못해 아주 질질 싸는 고귀한 생활……은 아니군. 괴물과 싸우는 용병보다 더욱 바닥에 위치한 계급. 바로 ‘노예(奴隸)’란다. 알겠니, 니나야?”
“아, 냐! 마마! 마마! 어떻게 좀 해! 어떻게 좀 해보라고!”
니나는 고개를 겨우 돌리며 안나한테 소리쳤다. 하지만 안나는 대답할 상태가 아닌 거 같은데……. 날 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응? 뭐?”
“……왜?”
아니, 왜라니.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주어랑 서술어 갖추라고. 문장조차 못 만드는데 내가 알아먹을 수 있을 리가 있냐…….
“왜 우리를 배신한 거야? 어째서……?”
고작 그거 말하려고 그렇게 중얼거렸냐?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안 쉬면 안 될 정도로 얘들이랑은 대화가 어려웠다.
“배신이라니. 자고 있던 사람을 납치해서 폭행. 내 아내들한테 손찌검을 한 건 물론이고 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기한테까지 발길질을 한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배신 운운을 하는 거야?”
“웃기지 마……웃기지 말라고!”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소리만큼은 정말 크군. 부들거리는 몸을 보니 감정은 몸에 표출되는 건가? 좋은 거 알았다. ‘자지의 맹세’에 의해 컨트롤 되더라도 완전히 인격을 교체하지 않는 한 감정 표출은 가능하다……. 메모해둘까.
“이제야 이 지긋지긋한 삶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돈을 벌어 난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금 태어날 수 있었는데……그걸! 그걸 네놈 새끼가!!”
“고귀하긴 개뿔이. 너희 같이 인간으로서 썩어빠진 년들이 고귀함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냐? 뭐……내 아내들이라면 모를까.”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빠……’라며 울먹였다.
그래, 내가 니 애비다!
I Am your father!
다스베이더만 이 대사 말하라는 법 있냐? 나도 한 번 해보자! 음홧홧!
“씨발……씨발! 씨발! 씨팔! 씨파아아알!!”
몸은 서있지만 정말 발광이라도 하려는 듯 소리를 질러댔다.
“……세, 세린……나는 살려줄 거지? 응?”
안나가 히스테릭하게 욕을 하고 있는 동안 니나는 뭘 믿고 있는지 나한테 그렇게 말한다.
“응? 내가 왜?”
“그, 그치만……내가 널 위해 애플파이를 가져왔는걸? 널 생각해줬다고!?”
소리를 지르던 안나는 갑자기 니나쪽으로 소리를 지른다. 목을 돌리는 정도의 자유는 지금 막 허락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지. 음, 나도 착하다니까?
“개소리하지 마, 니나! 내가 사온 걸 어떻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니!? 너란 아이는 정말이지……!!”
“시끄러! 엄마는……네년은 늘 그랬어!”
오오, 내분(內紛)인가. 메이와 로라는 내 품에 안겨왔고 혜린은 ‘어휴……왜 나는 맨날 이런 역할이야……’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뭐가 고귀한 너한테서 태어났다는 거야? 정말 고귀했더라면……재산이 있었더라면 좀 더 나를 편하게 만들었어야지!! 쓸모없는 년! 니년 때문에 내 인생은 쫑났어! 알어!?”
“뭐, 뭐, 뭐라고?”
딸의 폭언(暴言)에 안나는 다른 쪽으로 쇼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 된 것도 그렇다만, 딸한테 저런 폭언을 들을 줄이야. 예전 로라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 나라도 저런 말 들으면 쇼크일 거 같다.
“늘 괴물과 싸우고 고용주를 찾느라 아양 부리는 생활 따윈 이제 지쳤어! 용병 생활 따윈 지긋지긋하다고! 마마라면……날 낳은 년이라면 나 하나 정도는 제대로 부양(扶養)해야 하는 거 아냐? 뭐가 잘났다고 늘 나한테 화풀이야? 그러면서 하는 말은 ‘너란 아이는 정말이지……’라고? 개년아!”
“이 좆같은 년이……!!”
안나의 눈에서 당장이라도 레이저가 나갈 거 같았다. 으음, 좀 쫄았다. 솔직히.
“개 같은 년아!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은혜도 모르는 년 같으니라고! 나야말로 너한테 불만이 없는 줄 알았어!? 널 낳아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늘 실수투성이에 바보 같은 짓! 네년 같은 딸을 가진 내 인생이 불쌍하다 못해 처량하다 처량해!”
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그 말을 듣자 니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어, 어떻게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어!? 마마는……?”
“마마? 흥, 웃기지 마! 네년 같은 병신한테 마마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역겨웠다고! 아아……어째서 나는 좀 더 제대로 된 딸을 가질 수 없었을까? 왜 나처럼 뛰어나고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라 너 같이 덜 떨어진 년이 태어난 걸까 하고 후회한 줄 아니!?”
메이가 로라의 손을 쥐며 ‘엄마……’라고 하자 로라는 ‘괜찮아요, 메이……더 이상 전 신경 쓰지 않아요’라며 서로를 껴안았다. 그럼, 그렇고말고! 한 때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그걸 이겨냈다!
물론 그걸 이룩한 건 바로 접니다! 내가 좀 잘났어야지!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낳은 주제에……뭐가 잘났다고 큰소리야? 조금 전에도 그래! 세린 때문에 목이 막혔는데 내 걱정은 하지도 않았어!”
“어차피 무사한 거 아는데 미쳤다고 널 걱정하니? 너 따위는 얼마든지 낳을 수 있어! 소중한 건 돈이야! 중요한 건……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라구! 네년 따위는 돈을 벌기 위해 쓰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아! 아니, 소모품은 주인한테 대들지 않지! 넌 도구 이하의 쓰레기라고!”
그 순간, 정적(靜寂)이 맴돈다. 이건……심해도 너무 심한데.
“자아, 세린……이걸 풀어줘? 응? 그, 그래……내가 끝내주게 기분 좋게 해줄게! 응? 부탁이야……저런 년보다 더 예쁘고 귀여운 여자애를 낳아줄 테니까……!!”
“마, 마마……!”
“시끄러! 노예가 된다면 니가 노예가 되는 게 나아! 난 너를 낳고 키우느라 이렇게 힘들었는데……엄마를 위해 한 번이라도 좀 도움이 되렴!”
니나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떨어졌다. 불쌍하기도 하지만……이런 상황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진심. 그건 딸한테 ‘죽어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 마마……마마……!!”
“으응? 세린? 부탁이야……내 배에는 너와 내 소중한 아기가 자라고 있다구……설마 아기를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응? 세린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니까……그렇지?”
상상 이상의 쓰레기군. 지금까지 별의 별놈을 다 만나봤지만……. 안나는 TOP. 가히 정점에 달할 정도의 쓰레기였다. 로라는 눈살마저 찌푸린 채 메이한테 ‘저런 건 보면 안 돼요……’라 말할 정도였다.
“……하아.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난 두 명의 인격을 교체해버렸다. 이 이상 놔두었다간 정신이 붕괴될지도 모르고……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교체된 인격은 둘 다 조용한 인격이었다. 그 방정맞은 몸에 조용한 인격이 들어가니 내가 깜짝 놀랐다.
“너희 두 명한테 명령을 하달한다.”
두 명은 자세를 낮추었다. 아, 이런 거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한숨을 쉰 다음 명령을 내렸다.
“돈을 받고 우리를 팔아먹은 여관 주인의 살해 및 그년이 가진 돈을 모두 가져오는 게 첫 번째.”
난 원래 살인은 안 하는 성격이다만……이 일의 근원 중 하나인 여관주인은 결코 살려둘 수가 없었다.
그년이 계속 존재한다면 이후에도 우리와 같은 일을 겪을 사람들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었으니까. 그년을 죽임으로써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했다. 아, 당연하지만 이런 일에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는 추호도 없다.
“두 번째. 이틀 후에 이곳을 떠날 테니 이 집을 포함해 너희가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한 후 돈으로 가져올 것.”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녁이다. 몸은 자유로워졌지만 지금까지 힘든 일을 겪었기에 내일 하루 정도는 푹 쉬며 기력을 회복시켜야만 했다. 내일은 쉬고 그 다음날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겠지. 물론 그 전까지 이 집은 우리가 쓸 거고. 우선은 이 두 개를 내리자.
“명령은 이상이다. 충실하게 이행해라.”
“알겠습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교체된 인격은 그야말로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형 같았다. 옛날에는 저런 걸 바랐다만 지금 보니 오싹하구만. 두 명이 사라진 후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세린, 괜찮아요?”
“아. 좀……피곤해서 그래요. 하하.”
원래라면 승리의 여운을 느껴야 했지만 배도 고프고 지친 상태. 게다가 딸을 매몰차게 도구라고 부르는 걸 보니 승리감은커녕 죄책감만 느껴진다. 그녀들이 저지른 짓은 용서할 수 없지만……정말 심했다.
“아까 그 니나라는 아이……괜찮을까?”
“지금은 다른 인격으로 교체됐으니 상관없겠지만, 솔직히 걱정이야.”
고개를 돌리며 뻐근한 몸을 푼다. 으윽, 우드득거리는 소리! 쟤네들 때문에 진짜 죽을 맛이었지. 자유를 찾게 된 건 참 좋은데 몸을 풀 방법은 생각을 못 했었군.
“불쌍했어요……그 니나라는 사람. 마치……옛날의 저 같았어요.”
메이가 내 꼬라지를 불쌍히 여겼던지 치료 마법을 걸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너랑 로라가 사이가 나쁘진 않았잖아.”
“그렇지만 저도 엄마를 원망했었어요. 괜히 저희 때문에 그렇게 된 거 같아서…….”
내가 쓰다듬으려 하자 로라가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앗, 선수를 치다니?
“메이. 그건 그렇지 않아요.”
“엄마…….”
둘 다 마음이 복잡하겠지. 저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로 싸웠었으니까.
“분명 당시의 저는 메이를 싫어했지만……소중했기 때문에 그렇게 뒤틀렸던 거라 생각해요. 저런 식으로 메이를 도구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건 부모로서……아니.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자 행동이에요.”
이렇게 다시금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니 메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로라의 품 안에서 우는 메이를 보니 좋긴 좋은데……나는 왜 낙동강 오리알 된 기분일까……. 둘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자니 미안하네.
혜린이의 배에 손을 대봤다. 조금 부풀어 오른 배는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상징. 하긴……이런 미인이라면 설령 이게 똥배라도 아름답기 그지없겠지.
“세린……그거 알아? 안나가 내 배를 짓누를 때 날 위해 일어서줘서……정말 고마웠어.”
“부부 사이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살짝 느끼한 대사였지만 혜린이는 입을 맞추며 감사를 표했다. 그래. 이런 오붓한 시간이 최고지. 배를 문지르며 조금이라도 내 사랑이 그녀와 아이한테 닿기를 바랐다.
“근데 조금 전의 그걸 보니까……어. 꺼내고 싶네.”
“뭘?”
“예전의 인격.”
“으으……정말 꺼내야 해? 나 싫은데…….”
오랜만에 그 ‘가짜 혜린이’를 볼 걸 생각하니 이미 사정을 마친 물건이 조금씩 꿈틀댔다.
“그 인격이랑 한 번 공존해보면 안 될까? 그런 음탕한 혜린이도 최근에 끌리거든…….”
“앗, 그러고 보니 너……어제도 그랬지만 은근히 변태다? 고통을 주는 것도, 당하는 것도. 둘 다 좋아하는 거 같던데?”
내가 차마 깨닫고 싶어 하지 않던 진실이 최초의 아내 입에서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로라와 메이도 날 보며 한소리 한다.
“맞아요, 세린. 세린은 가끔 너무 짓궂다구요. 그야……섹스를 하면 과격해지니 그럴 수도 있지만……그런 말 대부분에는 진심이 포함된 거 알아요?”
“어, 로라. 아기를 죽여도 좋으니 박아달라고 하던 건 로라잖아요.”
“그, 그건 어쩌다보니 그런 거예요! 당신과 제 사랑의 결정체를 죽여도 좋을 리가 없잖아요?”
“맞아요, 아빠! 너무 못 살게 굴면 저도 화낼 거예요!”
입을 빵빵하게 부풀린 메이가 그렇게 말하니 귀여워서 무섭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그렇기에 놀린다. 골려본다. 그것이 나의 정의(Justice).
“슬픈데, 메이……. 니나가 너와 로라를 괴롭힐 때 도와줬는데 아빠를 그렇게 못 살게 굴다니. 아아……슬픈데.”
“……아, 아빠! 아니에요! 이건 아니에요! 그, 그러니까 그건……하와와……!!”
어디에서 들어본 거 같은 다급한 목소린데. 난 장난이라며 메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물론 그 손은 가슴을 주물럭댔고 메이는 싫은 기색조차 없이 얼굴을 붉혔다.
‘자지의 맹세’에 대해 말한 건 혜린뿐이지만 인격의 교체 등은 그녀들한테도 말했다. 로라가 예전에 경쟁을 했던 혜린이의 인격은 현재 봉인중이지만, 오랜만에 꺼내고 싶어지는데.
방을 나오니 그곳은 허름한 집이었다. 집은 나름 크지만 낡은 곳이 많았다. 옆에 있는 방을 지나가며 보니 거기가 혜린이랑 아내들이 잠을 깬 곳이라 했다. 좀 더 발걸음을 옮기니 사람이 두 명 정도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침실 겸 거실이 나왔다. 여기에서 침식(寢食)을 해결한 건가.
집이 그리 크지 않다보니 부엌이라고 부르기 묘한 공간이 있었다. 식량 창고 같았고 뒤져보니 빵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망할.
난 내 명령을 실행하고 있는 두 명한테 모두 함께 먹을 것까지 사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말 답 없이 살아왔군, 이 모녀. 이럴 줄 알았으면 집 좀 치우고 나가라고 할 걸 그랬나? 에이, 뭐 어때. 잘 곳은 찾았는데.
빵과 물로 적당하게 허기를 해결한 후 그들이 잤던 공간에 앉았다. 여기 와서 정말 온갖 일을 다 겪는군. 괴물에 마법, 납치, 하늘을 나는 소총 등.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경험과 추억이 쌓여가는 느낌은 의외로 매우 뿌듯했다.
“오늘과 내일은 푹 쉬고, 모레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자. 모두, 괜찮지?”
피곤한 건 그녀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이견(異見)은 없었다. 그녀들한테서 강탈당한 옷은 되찾았다. 아이템이나 돈은 빼앗기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토사물 범벅이 된 옷을 보니 마력으로 깨끗하게 만들며 나도 옷을 사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사자니 좀 마음에 안 드는 게……이 마을에서 너무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좀 그랬다. 그렇다고 안 사자니 어보션의 무기점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으니까. 안나와 니나의 레벨을 볼까…….
안나와 니나의 레벨은 꽤나 높았다. 안나의 레벨은 33. 니나의 레벨은 27. 단순히 레벨로만 치자면 우리 파티 중 최강인 로라와 같거나 더 높은 레벨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성장폭이 혜린 이하였다. 레벨 1이 올라가면 HP와 MP가 70씩 올라가는 혜린. 그러나 안나와 니나는 둘 다 40씩이었다. 자질(資質)이나 재능(才能)의 차이인가?
그 결과 안나의 HP와 MP는 1320. 니나는 1080이었다. 혜린의 레벨은 15였지만 1050. 니나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밑이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스탯의 성장폭이 이래서야……알고 있는 마법이나 기술들도 그냥저냥. 그저 레벨만 높은 허우대 느낌이랄까. 하긴 뭐……얘들을 어떻게 쓸지는 사실 마음속으로 정한 상태니까. 곧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이 들어왔다.
“여관주인은?”
“죽였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도록 뒷문으로 불러냈으니 발견하더라도 큰 이상은 없을 겁니다. 그녀가 가진 돈 또한 모조리 가져왔습니다.”
무미건조한 살인 보고. 내가 이런 걸 받게 될 줄은 몰랐다만……. 여관주인이 가졌던 돈과 그녀들이 가진 재산. 그리고 사실상 이틀 후부터는 다른 사람의 집이 될 집문서까지 모조리 판 덕분에 엄청난 양의 돈이 들어왔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곤란한 일은 없겠군.
먹을 것까지 차린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다정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빠른 저녁이긴 하지만 어차피 내일까지 쉴 거고……밤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니까.
인격을 교체했다지만 모녀가 동시에 저렇게 말수도 없는 음침한 성격이 될 줄이야 내가 알았겠냐? 나도 인격 교체하기 전까지는 뭐가 뭔지 모르니까 혜린이한테 휘둘렸었지.
원래라면 두 명을 굶겨야 했지만 앞으로 있을 즐거운 일을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했다. 묵묵하게 먹을 걸 옮기는 두 사람한테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어차피 밤이 되면 싫어도 쾌락의 비명을 지르게 될 테니까. 지금은 먹을 것에 신경 쓰자.
저녁을 먹은 후 청소를 하라는 명령을 하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너저분했던 거실에 필요 없던 것은 모조리 버리기로 했으므로 청소가 아니라 사실 ‘버리기’에 가까웠다만, 내 물건도 아니니 아깝지도 않다. 저녁이 되자 모두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 모두에는 안나와 니나. 두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후, 음탕한 년들…….
“자, 그럼……오늘 충실하게 명령을 따랐으니 상을 줄까? 안나와 니나, 내 걸 좀 빨아주겠어? 두 명이 사이좋게 해준다면 정말 최고일 거 같은데.”
“아, 예!”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며 그녀들은 옷을 벗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기에 어깨에 있는 갑옷 등을 벗자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게 됐다. 그런 주제에 훈도시를 입으니 묘하게 에로틱하군……위는 훤히 보여주면서 밑은 가리다니.
이게 바로 무서운 거지. 다 드러나는 것보다 덜 보여주는 게 에로하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神秘)지.
“아아, 이게 주인님의 자지……쪼롭……쪼읍……!!”
“주인님, 감사합니다……하음, 아물…….”
두 모녀가 사이좋게 내 것에 입을 맞추고, 빨고, 문다. 그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명의 인격은 서로 조금씩 다투기 시작했다.
“니나……이곳은 엄마한테 양보하세요. 어머니인 저한테 주인님의 자지를 빨 수 있는 기회를 양보해야 진실된 딸 아니겠어요?”
“흐, 흐응. 싫어. 마마야말로 꺼지지 그래? 마마 같은 늙다니, 주인님은 싫어할 테니까. 그쵸, 주인님?”
“아앗! 그, 그렇지 않아! 그렇죠, 주인님? 살짝 늙은 거 같지만 매력적인 여성이야말로 주인님의 타입이죠? 네?”
……아아. 맞다. 그랬지. 혜린이의 인격을 봉인한지 오래돼서 잊고 있었다만, 인격의 교체는 말 그대로 인격을 교체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인격이 가진 주된 성질이나 성격은 어렴풋하게나마 남아있었다. 혜린이의 경우 ‘무책임’이란 형태였지. 이 두 명은 인격이 바뀐 후에도 다투는 건가. 사이가 좋다고 해야 할지, 악연(惡緣)이라고 해야 할지.
“글쎄다. 그럼……날 먼저 사정시키는 쪽을 사랑해 줄까나.”
그러자 두 명의 눈이 서로를 봤다. 엄마인 안나가 탐욕스럽게 입을 쩍 벌려 내 자지를 한 번에 삼키자 니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앗! 싫어! 마마! 여긴 귀여운 딸한테 양보해야 하잖아!”
“음, 쮸릅……푸핫! 무슨 헛소리니, 주인님과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양보하는 게 딸의 미덕이잖아? 쪽쪽! 쮸읍! 하아, 주인님. 어떤가요? 주인님을 위해 오늘 많은 일을 한 안나의 입보지, 최고죠? 그렇죠?”
“후후, 그래……. 좋은데.”
세 명의 아내들은 이걸 보고 있다. 어차피 한 번 사정한 후에는 분신술로 그녀들을 행복하게 만들 거니까.
이건 일종의 여흥(餘興)이다. 인격은 교체됐지만 기억은 남게 조작을 해놨지. 다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즐겁게 경쟁하라구. 모녀끼리 말이지. 혜린이의 인격을 꺼내는 것도 좋지만……살짝 상처 입은 혜린이도 괜찮겠지.
“조금 아쉽네. 안나가 혜린이의 배를 짓누를 때……솔직히 짜릿했거든.”
안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니나는 기회를 잡은 듯 눈을 번뜩였다.
“그때 혜린이의 아기를 죽였더라면……어쩌면 안나를 내 첫 번째 아내로 삼아줄 수도 있었는데. 아. 하지만 아기를 죽이려는 못된 엄마는 필요 없나?”
“아, 주인님! 그건 제가──꺄악!”
변명을 하려는 안나를 밀쳐낸 니나는 단숨에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내 물건을 빨기 시작했다. 오옷, 굉장한데……!! 당장이라도 사정할 거 같아!
“아앗! 그만해! 그만두렴! 이 쓸모없는 년! 얼마나 엄마를 방해해야 속이 풀리니?”
“쯉쯉! 쮸웁! 쪼오오옵!”
대답조차 하지 않겠다는 양 좆을 빨아대는 그녀의 눈은 조금이지만 흰자가 보였다. 오오, 위험하다. 가겠는데……!!
“윽, 싼다! 하, 하! 모녀끼리의 싸움이라니……보기 좋은데. 읏!”
웃는 것도 잠시였다. 니나의 입에서 폭발한 정액은 조금씩 흐르며 바닥을 더럽혔다.
“헤, 헤헤……내가 이겼어……병신 같은 마마 따위한테 안 져…….”
“아, 아앗! 아까워! 으읍!”
“흐읍!?”
입을 닫았지만 흐르는 액체를 아까워하던 안나는 니나한테 키스했다. 사과나 감사의 표시가 아닌, 그녀 입에 있는 내 정액을 차지하기 위한 키스였다.
손을 흔들며 밀쳤지만 안나는 더욱 집요하게 키스했고, 혀까지 넣어 그 안을 휘저었다. 그 결과 입을 뗐을 때는 더러운 실이 두 사람의 입을 연결하고 있었다. 내 정액이니 매우 진할 거다.
“모녀가 쌍으로 더럽구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아, 아아……주인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안나가 최선을 다해 봉사할게요……네?”
“주인님! 제가 이겼어요! 상으로 준 걸쭉한 정액을 가져간 이 쓸모없는 년한테 벌을 주세요! 그럴 거죠? 네?”
왜 나는 인격을 교체하기 전이나 후나 한숨을 쉬어야 할까. 눈물 나올 정도다. 으윽, 이번 인격도 꽝이었어…….
아니, 진짜 왜 이러냐 전부. 혜린이는 이 광경을 보고 ‘나도 저랬다 이거지? 진짜 싫다……’라며 회의감을 보였다. 로라와 메이 또한 예전의 자신들을 보는 듯 했던지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혔다. 이 모녀는 정말 대단하군.
분신술을 쓰자 네 명 더 늘어났다. 총 다섯 명의 세린이 나타나자 모두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즐겁고 오붓한 섹스 파티의 시작이다.
물론 오리지널인 나는 분신과 함께 안나와 니나를 맡기로 했다. 그러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이미 애무(愛撫)를 시작한 가운데 나는 혜린한테 물었다.
“혜린아……한다?”
“아잉……세린. 꼭 해야 해?”
“응. 저년들을 보니 달아오르기도 하고……오랜만에 혜린이가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거든.”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 즐기기도 하고,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는 걸 즐기기도 하고.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 두 개의 속성을 지닌 나는 원래 세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쓰레기다만……여기 관점으로 봐도 쓰레기는 쓰레기다. 어, 어. 이게 아닌데. 흠, 흠. 어흠.
“으이구……그럼 아까 아기를 죽이면 첫 번째 아내로 삼는다는 것도 진담이야?”
“설마. 그치만 내 소중한 아기와 아내의 목숨을 위협한 여자와 섹스라니. 짜릿하잖아?”
“쓰레기 같은 개새끼.”
“응. 하지만 니 남편이지.”
혜린이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긍정의 표시다.
“내 다른 인격과 공존이 가능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일단은 해봐.”
“고마워, 혜린아.”
오랜만에 혜린의 ‘가짜 인격’을 불러낸다. 그렇게 우리의 밤은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자기 아기를 죽이려 한 여자들을 범하며 기뻐하다니. POW변태ER. 제가 쓴 소설이라지만 이쯤 되니 막장이라는 말조차 쓰기 어렵네요. 용케 이딴 걸 썼구나 싶습니다. 코멘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만쉴래님, 재계약이라는 말마저 한자를 붙일 정도라니. 소설 쓰면서 너무 한자나 단어에 치중했다는 후회감이 듭니다. 여러 사람들한테 들은 지적이지만 이쯤 되면 진짜 버릇이 아닌가 의심이 드네요. 더 큰 문제는……이것도 줄여서 업로드했다는 겁니다.
업로드 하기 전에 쓸데없는 한자나 영어 넣은 거 없나, 긴 문장은 분리하고 대화끼리는 붙여서 넣도록 작업까지 하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앞으로 진짜 좀 자제하자고 반성해야겠습니다. 안 그러면 독자분들이 떠나실 테니까요. 저 자신을 위해서도 고쳐야겠지만 읽는 독자분들이 거슬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쓸게요님, 항상 코멘트 및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팬픽을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아스나는 좋아하지만 키리토. 특히 원작에 나오던 카야바 아키히코 광신자 모드는 정말 싫어하는 편입니다. 이번에 개봉되는 극장판에 대해서도 기대감 30%, 회의감 70%를 가질 정도로 말입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잡설이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제 생각을 강요하거나 타당성을 얻으려는 게 아니므로 이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 극장판은 좋은 의미로는 라이트노벨의 방향을 크게 바꾼 대표작으로서의 입지.
나쁜 의미로는 양판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소설의 플롯과 스토리에 대한 걱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한국과 일본. 장르소설계와 라이트노벨계는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한 때 저희 한국에서 유행했던 이세계깽판물이 2~3년 전부터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아마 아실 겁니다.
현재 저희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 그곳에서 엄청나게 강하거나 위대한 존재로 태어나 멋진 모험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보며 저희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드는데……?'
그야 그럴 겁니다. 제 나이가 30 되기 전인데 저랑 비슷한 나이. 혹은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은 쉽게 기억해내시겠죠.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킬링타임용으로 읽었던 소설들이 바로 이세계 소환물이었으니 말입니다.
사망이나 교통사고, 동전 줍는 걸로 이세계 소환 - 존나 짱센 능력 얻음 - 이세계에서 깽판 치며 엘프나 공주, 섹돌을 획득 - 나쁜 놈 보스(흔히 말하는 영주나 군주, 악의 국가 등) 퇴치를 하며 정의 구현 - 모험을 할 때마다 점점 늘어나는 히로인들과 붕가붕가 - 엔딩
이건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한 때 장르소설계 연재 사이트로는 가장 이름을 날린 조아라. 그 조아라에서 나온 이세계 깽판물만 하더라도 수없이 많을 테니 말입니다. 굳이 조아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출판사에서 여러 작품이 나왔을 정도로 이세계 소환물은 인기를 끌었던 소재였습니다.
그런 이세계 소환물이 일본에서 유행하기 전에 게임 라이트노벨의 바이블이자 어마금의 뒤를 이은 작품이 나왔으니……그게 바로 소드 아트 온라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즐겼지만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메인 타이틀인 소드 아트 온라인. 아인크라드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고 말았죠.
그러한 진행에 거부감이나 실망을 느낀 독자들을 유입 혹은 붙잡아두기 위해 게임이나 외전을 만들고는 있지만……사실상 소드 아트 온라인의 인기는 점차 사그러드는 추세라고 봐야 할 겁니다. 어마금(어떤 마술의 금서목록)도 시간이 지나자 라이트노벨의 1위 자리를 내어놓아야 했습니다.
리제로 등으로 인해 이세계물이 더욱 유행하게 된 지금에 와서는 소드 아트 온라인의 인기는 계속 내려가거나 현재 순위를 유지하는 정도겠죠. 그렇기에 극장판의 개봉은 더욱 더 흥미와 걱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과연 소아온의 인기가 다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런 극장판처럼 주인공 존나짱 쎄다 플롯으로 가서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나오게 할 것인가.
AI? 가상세계에 사는 인격체의 성장이나 고민? 까놓고 말합시다. 독자들이 원하는 건 존나 짱 센 키리토한테 여성 캐릭터들이 와서 썸씽을 펼치거나 하는 이야기지, 폐인 상태에서 정신만 사이버 월드로 날아가 고생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소드 아트 온라인이나 알브헤임 온라인, 건게일 온라인에서 너무나 벗어나버린 앨리시제이션. 아스나나 주변에 있던 히로인들은 완전 대놓고 개그 캐릭터로 전락해버리고 안에서는 무슨 알아들을 수 없는 싸움과 설정 이야기뿐. 저도 그냥 보다가 하차했습니다.
하차해도 상관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아온의 인기는 절정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는 추세고 주변에는 소아온을 대신할 만한 작품들이 널려 있으니까요. 적당한 뽕빨물이나 먼치킨게임 혹은 먼치킨환생물 작품들이 수두룩한데 머리 아프게 만들면서까지 힘든 설정이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단순한 플롯이나 진행에 독자들이 지루해할까봐 그럴 듯한 설정이나 세계관을 넣었는데……그게 반대로 독자들을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다니 말입니다. 카와하라 레키의 작품인 '액셀 월드'도 소아온과의 연결로 인해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 되어버렸죠. 액셀 월드도 안 본지 엄청 오래됐네요.
여러 가지로 잡설이 길었지만 결론이 뭐냐고 묻는다면……문학은 서로 비슷한 소재. 예전에 써서 인기가 없어져버린 소재를 부활시켜 사람들을 감동케 만드는 거라고 해야겠죠. 일본에서 이세계 환생물이나 회귀물이 유행하자 저희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재를 사용한 작품들이 많아졌으니까요.
참으로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모를 사이.
그게 바로 한국과 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아온 팬픽을 썼지만 사실상 3기는 정지된 상태고 설령 3기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팬픽을 쓸 의욕이나 시간도 없는 상태입니다. 한 때 최선을 다해 썼던 작품으로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가진 채 바라볼 수밖에 없네요.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