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5-1 : 다가오는 위기(1)」 =========================
대략 6일 안으로 주변의 괴물들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우리의 계획은, 어찌 보면 무모하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글링 러쉬나 다름없는 물량을 자랑하는 괴물들을 겨우 6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박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괴물들을 없애버리는 원정(遠征)에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았다. 우선 병력(兵力)이다만……이 병력부터가 문제였다. 괴물과의 전투로 안정적인 주민의 수를 확보하지 못한 부카케 마을은 주민 반수(半數)에 가까운 사람들을 병력으로 투입하고 있었다.
성깔 있고 실력도 있다만, 그런 고급 인력을 죽게 내버려둘 수도. 그렇다고 전투에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원정을 계획할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요소? 무기도 중요했다.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맨손으로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무기를 쓸 수도 없었다. 이 마을에서는 전사와 마법사 계열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기둥의 설치 및 수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들한테는 마력을 증폭시키는 장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은 법. 마력 증폭 장비를 쉽게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구한다고 한들 수는 많아봤자 두세 개. 이런 상태에서 원정은 꿈도 못 꿨다.
병사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만 거기에 또 생각지 못한 점이 있었다. 바로 숙련도(熟練度). 쉽게 말해 ‘짬’이었다. 고기도 씹어본 놈이 안다고, 괴물과의 전투를 통해 놈들의 패턴이나 약점 등을 아는 사람이 적었다. 왜 적냐고? 아는 놈들은 싸우다 죽었으니까.
사람의 지식은 글이나 책을 통해 전해지기 마련인데, 이 하렘 어드벤처는 그런 문학적인 면에서는 발달이 덜 된 거 같았다.
괴물의 패턴이 아무리 단순화 되었다 치더라도 그걸 전해서 방지책(防止策)을 마련하거나 그래야 하는데……쉽게 죽어버리니 그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미카 같이 살아남아서 경비대장까지 가는 게 이례적일 정도니 사망률(死亡率)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말아먹을 괴물 새끼들.
이 하렘 어드벤처는 아이템 등을 윈도우에 집어넣을 수 있으므로 식량이나 부피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이 정도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쉽게 말해……나갔다가 다 죽을 수도 있고 전투력도 안정적으로 보장 못 하는데 원정 따윌 나갈 수 있겠냐 이 말이다.
모두가 원정이나 괴물 퇴치를 포기하고 소극적인 방어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어려운 난세(亂世)에서 영웅이 나타나듯, 현재 진행형으로 괴물을 쓰러뜨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와 내 아내들이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네 명으로 구성된 5인 파티. 그 5인 파티가 마을의 전체 병력을 써서도 달성하기 힘든 괴물 퇴치 원정을 하고 있다니. 누가 웃겨서 자빠져도 ‘음, 비웃는 거 이해간다’라고 생각될 정도라니.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그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거다.
현재 진행형으로. 바로 나와 내 아내들이!
M16A1만 너무 쓰는 게 그랬기에 이번에는 K2 소총을 꺼낸 상태였다. 이제 사격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기에 몰려오는 적들한테도 침착하게 총알을 먹여줄 수 있었다.
혜린이는 ‘클로에 폰 아인츠베른’의 능력을 최대한 쓰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더럽게 비쌌던 만큼 그 잠재능력(포텐셜 ; Potential)은 매우 높은 것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보지 않은 그녀한테 모든 능력을 다 쓰라고 하는 건 무리였다.
이전에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가 못 하는 일을 남한테 시킬 정도로 개새끼는 아니라니까? 난 내 아내를 배려하는 착한 남편이라고.
내 말을 비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 거 같다만,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참을 인(忍)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던가? 당연한 소리다만 참을 인 자(字) 세 개를 써서 참아야 할 정도로 내가 욕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만……그건 내가 정할 게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다.
투영마술과 같은 검의 투척. 그리고 그 검을 이용한 접근전 정도가 혜린의 한계인가. 아니, 한계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하자. 그녀는 아직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한계와는 다른 의미의 벽에 부딪친 거라 생각하자. 긍정적인 생각이 주는 힘을 믿는 거다!
오늘로 우리의 괴물 퇴치……사실상 원정에 가까운 토벌은 6일차에 접어들었다. 놀랍게도 하루에 한 방향. 동서남북 4방향을 하루에 하나씩 토벌한다는 우리의 계획은 실제로 진행됐었다. 그 악랄하다 못해 힘들 정도의 사냥은 옛날 40km 행군을 방불(彷佛)케 했다. 진짜 존나게 힘들었어……!
괴물들끼리 무슨 대화나 텔레파시를 나누는 건 아니다만, 황야에 있던 놈들을 잡아 족치는 건 꽤나 힘들었다. 이동하느라 힘들었고, 이동하자마자 한 시간 정도 쉬다가 토벌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괴물끼리 동료 의식이나 유대감이 없는 건 알겠다만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이 몰려드는 괴물놈들을 보니 이쪽이 질릴 정도였다.
야……너희 아무리 그래도 같은 괴물인데……동료인데 뭐 그런 거 없냐? ‘히익! 우리 동료가 무참하게 살해됐어!’ 라든가……아니면 ‘이, 이길 수 없어! 이런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라든가.
얘네들 머리에는 오로지 ‘헤벳! 고기! 인간! 닌겐! 먹는다! 여자는 괴물 생산을 위한 고기로 삼아주마 헤벳!’ 같은 것만 들어있는 걸까……. 응. 아마 그런 거 같다. 지금도 죽은 동료를 발판 삼아 나한테 점프하고 있으니까. 그 갸륵한 노력을 총알로 치하하며 눈을 돌린다.
6일 중 4일 동안 각 방향에 있는 놈들을 퇴치하느라 죽을 맛이었지. 얼마나 힘들었냐고? 첫 날에는 경비대로 복귀한 후 모두 잠만 잤다. 세상에……혜린이나 로라마저 나와의 관계보다는 휴식이 우선인 거 같았다. 미카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돌아와서 봐야 할 경비대 업무도 있었기에 결국 그대로 잠만 잤다.
2일차(日次)에 들어가자 우리의 전법(戰法)은 원거리 공격으로 바뀌었다. 몰려 있던 놈들이 개떼 같이 몰려오는 덕분에 난 오랜만에 조정간을 ‘자동’으로 맞추고 쏠 수 있었다. 로라와 미카는 원거리(遠距離)의 적을 마법으로 격퇴했다. 황야다 보니 화염 속성 마법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었다.
시라누이 마이의 초필살기, 수조의 춤(水鳥の舞)은 투척하는 부채에도 화염 속성이 부여됐기에 맞은 놈들이 화염에 휩싸인 채 죽어가는 건 꽤나 볼만했지……. 그렇다고 개떼 같이 뭉쳐서 오면 메이가 입은 배리어 재킷의 캐릭터, 페이트 테스타로사의 번개 마법이 작렬했다.
사격계 고속 직사탄(射擊系 高速 直射彈) 마법, 포톤 랜서(Photon Lancer)와 함께 플라즈마 랜서(Plasma Lancer)도 혼용(混用)하는 모습을 보니 마도사 뺨치구나 싶더라……. 플라즈마 랜서는 단순한 직사탄 마법과 달리 유도 성능도 어느 정도 있었기에 놈들을 일망타진하는 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원래부터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마법사였지만, 고속 이동 마법 소닉 무브(Sonic Move)를 써서 가끔씩 접근전을 벌이기도 했기에 점점 로라와 닮아가는구나 싶었다. 내 딸이다만 앞으로의 성장이 참으로 기대된다. 당연하지만 이동할 때마다 출렁거리는 가슴은 레오타드에 의해 매력적으로 보완되고 있었기에 눈요기에도 그만이었다.
멋대로 달려오다가 멋지게 뒈지는 꼬락서니를 보니 참으로 기분이 상쾌했다. 이때만큼은 괴물 퇴치라는 이름 아래 얼마든지 폭력성을 드러내도 문제가 없었기에 모두 전력을 다했다. 스트레스와 분노를 풀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뿐이랴?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내 사랑스런 여인들과의 협동으로 인해 경험치와 돈 또한 빵빵하게 들어왔다. 크흐흐, 정말 최고군.
프레그넌트에서 경험치를 조금밖에 안 주는 녹색의 촉수 괴물을 상대하면서 느꼈던 건 부족함이었다. 경험치도, 얻는 돈도. 모두 부족했기에 레벨 10에 도달해서도 ‘아……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고민했었지. 마침 그 와중에 아이나의 부름을 받게 된 거고.
근데 지금은 정반대다. 싸울 때마다 들어오는 경험치와 돈을 보며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라는 고민이 들 정도라니……. 얼마나 빈곤하게 싸워온 걸까. 나랑 내 아내들. 그런 아내들을 보다 윤택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 또한 전투에 집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4일차의 늦은 밤까지 토벌을 하며 결국 이루어낸 동서남북 4방향 토벌. 밤에 들어오니 경비대의 모두가 우릴 선망(羨望)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죽을 맛이었으니까.
응? 섹스는 안 했냐고? 물론 2일차부터 했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식으로 전법을 바꾼 덕분에 나도, 그녀들도 그 정도의 기운은 남아 있었거든.
우리는 돌아오면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안았다. 함께 욕조에 들어가 사랑하는 아내의 보지에 좆을 박은 채 씻는 건 예삿일. 배틀 코스튬을 입은 상태에서 그 날의 전과(戰果)를 이야기하며 똥구멍을 찌를 때마다 귀여운 비명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지. 다음 날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게걸스럽게 자지를 빠는 아내들을 쓰다듬는 건 최고였어.
5일차에 들어서는 주변의 남은 괴물을 소탕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동해야만 했다. 예전처럼 켄타우로스 보행법을 쓰고 싶었다만, 언제 괴물이 습격할지 몰랐기에 그건 참아야 했던 게 아쉽다. 동료들이 죽자 남은 놈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싶었는데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놈들은 우리를 없애기 위해 모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저번과 같은 작전을 실행하자니 기둥을 훼손시킬 인간. 즉……자기들이 잡은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일이 재발(再發)하도록 놔둘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전과 같은 마을 습격은 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그 습격 자체가 이미 너무나 미친 계획이었다. 아마 던질 시체와 그 엄청난 숫자가 아니었다만 실행할 엄두도 안 났겠지.
그렇다고 따로 다니자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혼자 기둥을 없앨 수도 없고, 1:1이라면 경비대원이랑 싸워도 질 놈들이 뭘 믿고 그러겠냐?
웃긴 게 뭔지 아냐? 이놈들, 동료를 위하는 마음은 없으면서 ‘서로 이용하려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는 거다. 뒈진 동료를 발판이나 고기 방패삼아 마법을 피하려는 습성부터 시작해, 서로 모이기 시작한 걸 보니 딱 그 생각이 들더군.
생각해봐라. 동료애(同僚愛)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새끼들이 뭉치기 시작한 이유? 칼날이나 다름없는 날카로운 자지를 서로 핥아주기 위해? 어……생각해보니 좀 역겹긴 한데, 실제로 그러다가 자멸하면 웃겨서 죽을 거 같다. 실로 서로의 상처를 핥아준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최후겠네.
근데 저 씨발 좆같은 괴물 새끼들은 끝끝내 우리 좋은 일은 시켜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모였다는 것 자체가 남은 병력 모아 꼴아박기. 흔히 말하는 ‘어택땅’을 시도하기 위함이라니…….
괴물 치고는 없는 팀워크까지 발휘하며 병력을 모은 것에 칭찬을 해야 할까……아니면 죽으려고 아예 팀까지 맺었다고 비난을 해야 할까. 어찌 됐든 나한테는 고마운 일이다. 죽이면 레벨도 오르고, 돈도 얻으니까.
그 바보 같은 행동에 나는 총알로. 내 아내들은 부채와 검, 원거리 마법으로 친절하게 답해줬다. 저글링 러쉬는 초반에는 무섭지만 후반에 가면 그리 무섭지 않다. 설령 업그레이드를 한 저글링이라도 말이다. 이유는 모두 알겠지? 저글링 러쉬하느라 저글링 만들고, 업그레이드까지 한 건 기특하다. 치자.
근데 그 동안 우리는 손 놓고 딸이나 치고 있을 줄 아냐?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전략과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그런 우리한테 어택땅이라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멍청한 놈들아!
접근전을 최대한 피하며 마법을 먹이는 전법 덕분에 놈들의 진형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애초에 그럴 지능도 없다만……. 힘을 모아 만든 괴물 대군세(大群勢)가 맵 병기나 다름없는 전체 마법에 불타고, 감전당해 죽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장관(壯觀)이라니까?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놈들을 쓰러뜨린 후 주변을 돌아다니며 남은 놈들을 소탕하느라 5일차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6일차. 놈들의 수는 엄청나게 줄어 있었다. 발견하면 적어도 30에서 40마리 있던 괴물들은 20마리를 넘으면 ‘오오, 꽤 있네?’라고 감탄이 절로 나왔으니까.
말했듯이, 이 와중에도 죽은 동료는 철저하게 이용하겠다는 양 점프했던 놈을 죽인 나는 시야를 돌리며 적을 찾으려 했는데……. 뭐야 이거. 벌써 끝인가?
예닐곱 마리 정도가 남아있을 뿐, 더 이상의 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즉시 조준-발사. 한 마리 사망. 남은 여섯 마리 중 두 마리씩 팀을 짰지만 까놓고 말해 여섯 마리가 한 번에 달려들어도 한 명한테 ‘닿을까 말까’다.
쓰러뜨릴 수 있다 없다의 레벨이 아니라, 닿을까 말까의 레벨. 공격은 고사하고 접근조차 못하는 놈들한테 무슨 선택권이 있겠는가? 그저 그 빌어먹을 몸뚱이로 다이빙 어택을 하는 것뿐. 하지만 그걸 두 손 벌려 반길 사람은 이곳에는 없었기에 그 시도 또한 수포(水泡)로 돌아간다.
날아가는 검기와 부채, 검과 마법. 다양한 투척용 도구 및 마법에 의해 놈들은 하늘에서 죽었다. 번개 혹은 뇌(雷) 속성 마법이라니까 우습게 아는데……. 감전사(感電死)는 생각 외로 무서운 거다.
감전이 되면 그 엄청난 고통에 마구 날뛰는데 그러나 동료한테 닿으면? 2차 감전이다. 뇌 속성 마법 자체가 감전의 요인인데 이걸 처리 못한 채 다른 동료한테 돌진하니 근육 수축과 함께 2차 감전이 일어나는 거지.
당연한 소리다만 이걸 저 괴물들이 알 리가 없다. 메이나 로라 또한 정확한 지식은 없지만 적어도 뇌 속성 마법은 주변에 친구나 동료들이 있을 때 쓰면 안 되는 마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게 이토록 한심하고 안타깝다니. 좀 더 안전을 위해 많은 걸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진짜 후회스럽다.
남은 괴물마저 행복한 죽음─공중에서 투척 무기나 마법을 맞고 죽는 게 평범한 죽음은 아니니까……행복했을 거야. 틀림없이─을 맞이하자 다시금 허허벌판에 바람이 분다. 황야이기에 바람을 막아줄 만한 것이 없었고, 전투로 인해 땀에 젖은 우리한테 있어서 이 바람은 승리를 알리는 바람이었다. 시원하군…….
“미카. 이 다음에는?”
“아니……이젠 아마 없을 거야. 아침부터 돌아다녀서 찾은 게 겨우 이 정도라면 거의 전멸(全滅)에 가깝겠지. 오후에는 나갈 필요가 없을 거 같아.”
그 말에 마음속으로 ‘앗싸아아아!’라며 기뻐했다. 6일차에 접어드니 피로(疲勞)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할 일이긴 했다만 이 정도쯤 했으면 슬슬 괜찮지 않을까 싶었고, 다행스럽게도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진짜 엄청 죽여 댔군……. 이게 보통 게임이었다면 ‘학살자’라는 타이틀이나 트로피를 획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트로피나 타이틀은 얻지 못했지만 돈과 레벨은 확실히……아주 확실히 건져냈군. 내 레벨과 파티 멤버의 레벨을 보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기가 차서 그런 것도 있다만……너무 행복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레벨은 24. 혜린은 15. 로라는 27. 메이는 16. 미카는 대망의 30. 레벨 30대로 들어간 그녀를 보니 진짜 끝내주게 노력했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28이었던 미카는 레벨 자체가 높았기 때문에 함께 토벌을 해도 경험치를 많이 못 얻었다. 그런데 6일간 그렇게 많이 죽여 댔으니 안 오르는 게 이상한 거지…….
내 레벨이 20대로 들어갔기에 나도 새로운 마법을 세 개 정도 익힐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전투에 쓸 수 있을 법한 마법도 두 개 정도 있었기에 더욱 더 기대가 됐다. 응? 왜 실전에서 안 썼냐고? 그야 익숙하지 못한 마법 따윌 마구 쓰다가 위험에 처하는 꼴불견은 되기 싫었으니까.
익숙한 방법으로 싸워도 잘못했다간 죽을 판에 마구잡이식 이판사판 마법 사용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싶다.
레벨 업에 의한 마법 습득뿐만 아니라 돈과 아이템도 얻었다. 그 중에는 꽤나 좋은 것도 있었기에 하반신이 불끈거렸다. 후후……참아야 하느니라. 존슨, 늘 자기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만 아직이라네. 진정한 재미는 참았다가 폭발시키는 거지.
6일차의 오전 업무이자 마지막 업무를 마친 우리는 경비대에 도착해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약간 늦었긴 하지만 늦은 이유가 마을을 위한 것이었기에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라며 묻기까지 했다니까. 이 짓,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샤워실에서 땀과 황야의 흙에 더럽혀진 몸을 씻으니 이제야 좀 살 거 같았다. 원래라면 샤워를 한 후 밥을 먹는 게 보통이겠다만……피곤한 채 몸을 씻으면 밥이고 뭐고 잠이 와서 미칠 거 같거든. 아마 그렇게 생각했기에 모두 밥을 먼저 먹은 게 아닐까?
내일은 떠나는 날이지만 여행의 준비를 오늘부터 바로 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음식은 아이템 창에 넣어둔 채니 문제가 없고 장비도 최상급이다. 개인 정비를 하며 내일 텔레포트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 ‘개인 정비’라는 게 뭘 뜻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소탕이 종료된 걸 보고하겠다며 미카가 나가자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자주 한숨을 쉰다만 그게 전염된 건 아니고. 토벌이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기쁨과 피로가 담긴 한숨이었다. 모두 내 주변으로 오는군.
“고생 많았어. 얘들아.”
“고생은 고생이었어. 프레그넌트 때보다 확실히 빡세긴 빡셌으니까. 장비도 달라지고.”
혜린이는 아직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코스튬을 보며 ‘뭐……예쁘고 노출이 많으니까 좋지만’이라 했다. 섹시 가수답게 살짝 드러난 근육이 내 정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지금 했다간 밤이 힘드니까 참자고.
“로라도 고생 많았어요. 뭐 힘들 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단지 이 부근의 괴물들을 처리하면서 저희 마을에도 마법사 육성(育成)을 건의할까 생각했거든요.”
나랑 같은 생각이군. 텔레포트 에어리어에 대해 말하니 그것까지 포함해 마법사의 육성이 필요할 거 같다고 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까지 생각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후후……행복하네요’라며 그녀는 웃었다.
“아빠! 아빠! 나, 아빠랑 열심히 싸웠어!”
“오오, 그래. 메이야. 메이 덕분에 여러 모로 편했어. 아빠 목숨 구해주느라 정말 고생 많았구나.”
메이의 머리도 쓰다듬으니 ‘헤헤, 잘 했지?’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앗, 이런.
“미안. 혜린아. 그,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후후, 괜찮아. 난 이러면 되는걸?”
그녀는 자세를 낮추어 내 가랑이에 얼굴을 비빈다. 큭……엄청나게 선정적(煽情的)이군. 바지 너머로 느껴지는 따뜻한 섹시 스타의 뺨은 엄청난 위력이었다.
“혜, 혜린……거긴 제가……!”
“안 돼. 로라도 메이도 모녀(母女)가 사이좋게 세린을 차지했잖아? 뭐어, 나야 여기로 만족하지만……쓰읍!”
샤워를 마친 후라지만 내 고간에 대고 흉한 모습까지 보이며 냄새를 맡다니! 그 뇌쇄적(惱殺的)인 모습을 보니 바로 입에 박아주고 싶은 기분이 물씬물씬 풍긴다. 빌어먹을……! 역시 삐진 거 맞잖아…….
“그, 그건 그렇다 치고. 내일 자멘에 도착하면 하룻밤 자고 바로 출발하는 거지?”
“예. 자멘부터는 저도 처음이라 솔직히 긴장이 되네요. 그래도 자멘까지 텔레포트 한 번으로 갈 수 있으니 그건 좋은 거 같아요.”
“그 덕분에 이 부근의 괴물은 거의 씨가 말랐지. 분명 마을 사람들도 한동안은 안전할 거야.”
내 아내와 이 마을이 무사하다.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기뻤다. 아이나와는 다른 의미로 미카와 헤어지게 되겠지만……우리한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 여행을 마칠 때까지 정착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설령 정착한다 치더라도 내가 있을 곳은 부카케가 아닌 프레그넌트. 모두의 고향이자 내 첫 마을이니까…….
“세린. 뭐 좋은 아이템은 있었어?”
지금도 벌떡 선 자지를 뒤통수로 은근히 자극하던 혜린의 목소리. 아, 맞다.
“어, 응. 있잖아. 나 잠시 나갔다 올게.”
“왜? 아이템 팔 거라면 내일 팔아도 되잖아.”
“사랑하는 아내들이랑 오늘 밤부터 내일 가기 전까지, 듬뿍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내일 즐기다가 나갈 바에야 차라리 미카가 없는 지금 나갔다 오는 게 좋잖아?”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아이템 매각을 빨리 해두면 나중에 편하니까. 괴물을 죽여서 나온 아이템 중에서 고급품은 당연히 없었다. 쓸모없는 무기 등을 매각(賣却)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드디어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를 마쳤군. 난 필요 없는 아이템을 덕지덕지 모아두는 취미는 없으니까.
저녁은 경비대원이 먹는 식단과 다를 바 없었다. 그나마 다른 거라면 미카가 수고했다며 어딘가에서 조달해온 애플파이 정도일까. 당분은 몸에 필요하고 머리를 돌아가게 했으므로 맛있게 먹었다.
저녁까지 다 먹은 후 내 아내들과 한 방에 모이자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르는 거 같았다. 모두 홍조를 띠운 채 내 얼굴과 하반신을 번갈아 보고 있었고, 그 행동이 남자가 여자의 얼굴과 가슴 등을 보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로라는 침까지 슬쩍 흘리고 있군.
“후후, 자……내일까지 실컷 즐겨볼까?”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의 눈은 몽롱해졌다. 본능과 쾌락만을 위해…….
============================ 작품 후기 ============================
5챕터로 들어온 걸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벌써 40편 정도를 진행했다니. 하루에 한 편씩 올리는 일일 연재니 사실상 40일이 지났다는 거겠죠. 조금씩이지만 작가의 꿈을 이루어나가고 있는 저 자신을 보니 기쁘긴 합니다. 약을 빨며 후기를 적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은 진지하면서도 생활이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후기를 적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거의 매번 댓글을 남겨주시는 열심히쓸게요님의 입대 코멘트로 인해 꽤 많은 글을 적었고 독자분들 중에도 그 건으로 코멘트를 달아주셨습니다. 제 글을 보시는 대부분의 독자분들은 남성분이실 테고(여성분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놀랍습니다. 이런 글을 여성분이 보신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꽤 듭니다) 하니 적는 거지만……군대 진짜 좆같습니다. 그 건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코멘트에 대한 답변부터 하겠습니다.
流江님, 죄송합니다. 말씀해주신 작품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캐릭터에 관해서라면 애니 관련 글로 몇 번 봤었는데……그냥 '이런 캐릭터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말씀해주신 캐릭터의 특성이나 코스튬은 작품에 반영하기 어려울 거 같네요. 캐릭터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내일이없는오늘님과 열심히쓸게요님의 코멘트는 사실상 군대 관련이니 적게 됐습니다만……군대에서 저도 다쳐봤습니다. 아주 심한 건 아니지만 전역한지 5년 넘은 지금도 완치가 안 된 겁니다. 다치게 된 원인이 저한테도 있긴 하지만……데려다 준 병원은 좋은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 아니라 동네에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다친 곳의 봉합이나 마취 등을 받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왜 더 크고 괜찮은 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던 걸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제 책임이 90% 이상 넘는 상처긴 했지만 대부분의 남성분들. 특히 군대에 갔다가 다치신 분들은 이 말 한 마디면 고개를 끄덕이며 저한테 공감해주실 겁니다.
'군대에서 다쳤잖아. 원해서 군대 갔냐? 가고 싶어 군대 간 놈이 어디 있어?'
군대에 안 갔으면 다칠 일도 없었던 일. 다친 책임은 대부분 제 책임이었지만……자율이라는 이름의 반강제적 입대 때문에 들어오게 된 군대잖습니까. 다치면 치료라도 잘 해줘야지. 대체 뭘 기준으로 그런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갔던 건지 지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제휴를 맺은 거라면 더 좋은 곳을 선택해야지. 대체 뭐 때문에 그런 곳을 골랐던 건지……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도 다친 곳의 신경은 다른 곳보다 무딘 편입니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더 좋은 시설에 데려다 줬더라면 이런 꼴은 안 났을 텐데……더 좋은 병원에 데려다 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던 걸까 하고 말입니다.
이런 안타까움은 나중에야 해결됐습니다. 전역해서 지내던 중 DMZ 목함지뢰 사건으로 다친 장병을 치료 안 해주는 거 보니 웃음이 나오더군요. 입대 후에 여러 가지를 깨달으며 국방부가 얼마나 더러운 곳인가는 알았지만 설마 발목 날아간 장병한테까지 그런 처사를 하다니. 그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발목이 날아가 일상생활에 평생 지장을 얻게 된 사람한테조차 그런 식으로 대하는데……장병들의 고충이나 상처 따위는 그냥 개돼지 노예들의 투덜거림으로 보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더 걸작인 거 하나 더 가르쳐 드릴까요?
다쳐서 한쪽 손목 못 쓰는데 훈련 모조리 동참했습니다 ㅋㅋㅋ
농담하냐고요?
장난치냐고요?
저도 농담이나 장난이면 좋겠네요. 그럼 웃어 넘길 수나 있으니까요.
훈련할 때 비상사태 발령해서 군장 싸는데……한쪽 손목 못 쓰니 군장을 제대로 쌀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전에 싸놓긴 했었는데 반합이랑 군화 제대로 못 넣는다고 발로 까였습니다. 군대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사라졌다고요? 어떤 시발 새끼가 그딴 말을 합니까? 그 폭행을 다친 사람한테 했고 실제로 당한 게 저거든요? 진짜 기가 막혔습니다.
훈련해서 땀이 나거나 세균이 들어가면 덧날 수도 있는데 열외고 뭐고 없더군요. 야간 훈련까지 모조리 시켰습니다 ㅋㅋㅋ 그거 당하니 삘이 오더군요. 아, 좆됐구나. 선임이나 군번 꼬인 거라든가……그런 레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좆됐구나. 진짜 좆됐구나. 그런 생각이 몇 천 번이고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절대 다치지 마세요. 인실좆 정도가 아닙니다. 입대할 때는 대한의 자식이지만 입대한 후에는 남의 자식. 다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적당히 싼 동네병원이나 돌팔이만 가득한 국군통합병원에 보내는 정도가 다인 곳입니다. 절대 다치지 마세요. 나라 지키다 다쳐도 나 몰라라 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국군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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