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4-4 : 여행길(4)」 =========================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 ‘하렘 어드벤처’ 세상에는 여러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의 코스튬이 있지만 실제로 그걸 쓰는 여성은 극히 드물었다. 코스튬을 사는 것부터 시작해 그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싸울 수 있는 건 내가 알기로는 우리 파티 외에는 없을 것이다.
먼 거리에서 총을 조준해 쏘는 건 쉬웠다. 사람이 함께 있다면 쏠 수 없었겠지만 이 마을은 습격이나 피난 훈련이 잘 되었던 덕분인지 순식간에 싸우기 적합한 장소로 변했으니까.
M16(얻긴 했지만 K2는 잘 안 쓴다. 안 그래도 낮았던 명중률이 K2 되어서는 바닥이었기에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까)과 화접선, 로라와 메이의 마법이 날아가자 놈들은 피하지도 못한 채 걸레짝이 됐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새끼들은 우리와 싸우는 도중에도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 난 그놈들의 목적을 너무나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당장 우리를 무시하고 지나가면 맛있는 인간(먹이)들이 가득한데 미쳤다고 우리랑 목숨 걸고 싸우고 싶을까.
“경비대!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괴물을 절대 놓치지 마라! 이놈들은 피난처(避難處)에 있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역시 경비대장! 눈치 백단이라니까! 아니지? 내가 하는 생각을 모르면 그거야말로 경비대장 실격인가? 난 평범한 사람이니까. 로라 또한 이놈들의 영악한 작전을 눈치 챈 건지 급박한 표정이었다. 어렵지만 결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직면한 거 같은 표정이군.
“세린! 아무래도 흩어져야겠어요! 이 괴물들, 두 갈래로 나뉘어서 행동하기로 미리 결정한 거 같아요!”
“알겠어요! 혜린! 가자! 로라는 메이랑 가세요!”
로라는 싫다고 하지 않았다. 우리 파티 중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라다. 하지만 메이나 혜린은 달랐다. 혜린은 코스튬의 힘이 있다 치더라도 메이는 근접전이 약하다. 그런 메이와 내가 한 팀이 되었다간 금방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에 메이는 로라와 한 팀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딸이니 더욱 지키고자 하는 열망(熱望)도 강할 테고.
“메이야, 이거!”
급히 호신용 단검(護身用 短劍) 대신 산 아밍 소드(Arming Sword)를 건네줬다. 흔히 롱 소드(Long Sword)로 알려진 한손 장검은 부무장(副武裝)에 가까운 무기였다.
아주 크지도 않고 뛰어난 위력은 아니지만 단검처럼 들고 다니기에도 편하고 위력도 결코 낮지는 않다. 맨손이나 단검에 비해 훨씬 더 강한 전투력을 늘 지닐 수 있도록 생각한 결과, 아밍 소드를 결국 샀다.
“아빠, 고마워요! 소중히 쓸게요!”
“부서도 괜찮고 박살나도 괜찮으니까 절대 다치지 마! 알겠지!? 로라, 조심해요!”
“세린도 조심하세요!”
원래라면 내 아내들은 나와 헤어지는 걸 싫어한다. 나야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이 상황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곳이 프레그넌트였다면 네 명이 힘을 모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괴물들을 막아줄 경비대도 있으니 괴물새끼들이 두 부대로 나뉜다 치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
그러나 이상은 멀고 시궁창 같은 현실은 가까운 법 이곳은 프레그넌트가 아니다. 프레그넌트였다면 지형(地形)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 추적이나 섬멸이 쉬울지 몰라도, 전혀 모르는 곳에서 우리끼리 다녔다간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괴물이 어디로 갔는지는커녕 우리가 마을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네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다간 시간 낭비에 노력 낭비다.
우리 파티가 두 팀으로 나뉘면서까지 도와줄 이유나 의무가 없다고? 아,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 미카는 로라의 지인이다. 경비대장으로서 일하는 그녀를 모른 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술을 마시며 과거를 후회하던 미카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럴 수는 없다. 당장 사람을 구할 힘이 있고, 그 사람이 위험에 처했는데 내 한 몸 귀하고 중요해서 도망치다니. 그게 인간 할 짓이냐?
로라와 메이는 경비대를 따라 동쪽으로 갔다. 미카는 ‘미안하게 됐어. 따라와!’라며 우릴 통솔한다. 그녀는 이곳의 지리에 훤하다 못해 아주 밝은 사람이다.
그녀를 따라가며 주변을 보니 환장할 뻔했다. 안 그래도 저녁이라 어두운데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을 못 하겠군. 한술 더 떠서 괴물들의 몸은 시퍼런 색이었기에 제대로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라이트(Light)!”
살짝 근육만 가득한 바보 아닌가 싶었는데 그 생각은 취소해야 할 것 같군. 판타지 마법에나 나오는 기본 마법, 라이트가 세 개 연속으로 발동됐다. 그녀의 주변에서 나온 빛의 구체는 주변을 날아다녔고 저 멀리서 우릴 향해 침을 흘리는 괴물을 곧 포착할 수 있었다.
“저 새끼!”
총을 겨누자 괴물 새끼는 곧바로 내가 겨눈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젠장……학습 능력이 있구나! 총이 아무리 빠르다지만 쓰는 건 나다! 군대에 있었던 때와는 달리 마력으로 탄알을 보충했기에 탄알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탄알이 아니라 내 사격 솜씨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거지!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접근해서 쏘는 방식을 택했었다. 접근해서 서너 발 쏘면 싫어도 맞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데다 저런 식으로 회피를 해서야……!!
“조심해!”
혜린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오랜만에 바닥 굴러보는군. 맨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난 바닥이나 땅, 흙이랑 무지 친한 거 같았다. 입에서는 기침이 끊임없이 나왔고 손과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맞은 거군.
프레그넌트 밖에 있는 숲에서 괴물들이랑 싸울 때 맞은 적은 솔직히 거의 없었다. ‘거의’라는 말은 약간은 있다는 말이니까. 세어 봐도 2~3대 정도? 그 외에는 용케 근접전에서 총으로 놈들의 촉수를 막았었지. 아니면 피하느라 구르거나 한 거. 오랜만에 맞았기에 몸도 아팠지만 기분도 더러웠다. 으윽, 눈물 나온다.
“감히 세린한테……! 에잇!”
요염한 목소리와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날아간 강력한 부채는 아무래도 놈한테 맞은 것 같았다. ‘퍽!’이라는 강한 소리와 함께 괴물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난 겨우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저 멀리에 있는 총을 보니 여기가 군대가 아니라 다행이네 싶었다. 군대에서 총 놓으면 또 뭐라고 할 테니까.
“괜찮아?”
“아, 니……콜록!”
내 레벨은 12. 따라서 HP는 1200이다. 하지만 1000 아래로 살짝 떨어진 HP를 보니 놈들은 프레그넌트 주변에 나오는 촉수괴물보다 더 강하다고 판단했다. 걔들은 90~100 정도의 데미지였는데 얘들은 기본이 200이야?
“계속 온다!”
미카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빌어먹을! 지금 이딴 짓 할 때가 아냐!
“혜린아……!! 난 괜찮으니까 미카를 도와!”
“너는? 너도 지금 씹창이잖아!”
지금 아름답고 고운 말 쓸 때가 아니었다. 확실히 한 대 맞았다고 부들대는 내 상태는 씹창이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만 아직 ‘완전한 씹창’은 아니었다.
“아직은 아냐! 나중엔 씹창될 지 몰라도 아직은 괜찮아! 미카 도와서 빨리 엄호해줘!”
“……정말 괜찮겠어?”
솔직히 안 괜찮다. 하지만 미카와 나, 둘 중 어느 쪽이 더 강하고 이 상황에 적합한가 따위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당연하지! 사랑하는 우리 혜린이, 새로운 옷도 못 샀는데 죽을 거 같아? 못 죽으니까 걱정 말고 가!”
“……조심해.”
그녀는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미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아……오랜만에 혼자가 됐구나. 잠자리든 식사든 여행이든 간에 늘 함께였던 그들이 모두 가버리니 홀로 남았다. 난 쿨럭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씹창이 된 몸을 일으켜 총을 주우러 간다. 저게 없으면 진짜 좆되니까.
[크륵?]
아, 씨발……!! 입으로 꺼내기에도 너무 힘들었기에 난 「2번」으로 지정한 K2 자동소총을 꺼냈다. 빛과 함께 나타난 소총을 견착시킨 후 주위를 둘러본다. 미카와 혜린은 날 때린 괴물을 처리한 후 더 많은 괴물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으윽, 진짜 싫다. 내가 왜 혜린한테 가라고 했을까.
보통 영화 같은 곳에서는 죽을 법한 동료가 ‘날 버리고 가!’라고 하면 ‘그럴 수 없어!’라고 대답하기 마련이다. 괜히 다친 자기 때문에 동료들이 곤경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나도 그랬지.
하지만 이 상황이 되니 ‘자기 버리고 가라고 했던 놈들도 사실 버림받은 후에는 꽤나 슬프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테 버림받는다는 건 좋든 싫든 반길 만한 사실이 아니잖아.
“컥!”
다시 한 번 굴렀다. 아아……역시 내 전투력 형편없구나. 이번에는 등이었다. 조금 전에 맞은 곳이 왼쪽 어깨였기에 욱신거렸는데 이젠 등도 아프다. 꼭 뜨거운 물이라도 부은 것 마냥 후끈거리는 등. 하지만 손이 제대로 닿지도 않았기에 끅끅거리며 제대로 나오지 않는 기침만을 해댔다.
[크륵?]
[케르륵?]
시, 시발! 두 마리라고? 이건 생각 못 했는데……!! 눈앞이 빙빙 돈다. 젠장……혜린 보고 전투력이 걱정된다고 했지만 이렇게 보니 우리 파티의 제일 약골은 바로 나였잖아.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온갖 명령을 잘난 듯이 내렸으면서, 실제로 괴물과 1:1. 혹은 2:1 상황에 놓였다고 바로 이 지랄을 하게 되다니. 난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자기가 까이면 변명을 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었다.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난 평범한 사람이다. 로라처럼 경비대장급의 능력을 지니지도 않았고, 메이처럼 마법도 못 쓴다. 혜린처럼 옷도 못 입고. 혹시나 싶어 시험해봤다만 여성 코스튬은 오직 여성만 입을 수 있었다. 너님들은 시발, 나이 27살 처먹은 남자가 시라누이 마이 코스튬 입은 거 보고 싶냐?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남성 코스튬이 있다는 사실을 이 마을 무기점을 돌아다니며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는 기뻤지. 드디어 나도 좀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구나 하고.
혜린이 옷도 못 샀는데 내 옷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보류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씹창이 될 줄이야. 옷을 안 사서 이 지경이 됐다고 슬퍼해야 할지, 소중한 옷 입은 채 바닥에 안 뒹굴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좀 좆같았다.
[쥬그박!]
“악! 아악!”
오른쪽 어깨를 스친 날카로운 감각은 지금까지의 타격과는 확실히 달랐다. 무언가 따뜻한 것이 어깨를 적셨고 그게 피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끈적한 피가 어깨를 타고 내려와 손가락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걸 보니 이게 무슨 호러 영화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그래. ‘하렘 어드벤처’라는 이름의 현실이야…….
총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려 했지만 발에 힘이 안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다리를 엉거주춤하게 만들어 누워서 쏘는 자세를 취했다. 예비군 훈련에서도 최악인 내 사격 솜씨였다만 여기 와서 나아질 건 없었다. 그저 쏠 뿐. 하지만 놈들은 내 상태가 씹창이든 지랄이든 간에 총알의 스피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흩어졌다.
두 마리가 양 옆으로 흩어지자 미칠 거 같았다. 이 시발 좆같은 영악한 새끼들! 사람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까지 몰아붙이고도 이렇게 용의주도(用意周到)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프레그넌트 밖에 있던 놈들과는 다른 의미로 엿 같았다.
“억!?”
비명인지 단말마인지 모를 것을 뱉으며 내 몸은 왼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번에는 오른쪽 옆구리. 보아하니 누운 나를 힘껏 발로 찬 거 같았다. 내가 축구공이냐, 시발 것들아?
눈을 떴는데 하늘이 하얀 건지 노란 건지 모르겠다. 터벅거리는 발소리……아니, 저놈들은 손과 발을 모조리 기어 다니는데 쓰니까 발소리라고 해도 되겠지? 그런 것들이 터벅터벅대며 내 주변을 돌아다녔다.
아아, 싫다……. 난 왜 ‘동료한테 먼저 가라고 하고, 필사의 신념으로 적을 막다가 죽는 병사A 역할’을 해야만 하는 걸까.
원래 세상에서는 여자를 품는 건커녕 여자랑 이야기도.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던 내가 여기 와서 원 없이 오픈섹스에 섹스파티까지 모조리 다 했다만……그것과는 별개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마법을 펑펑 쓰며 먼치킨이 되는 일이었다.
뭐? 멍청한 소리라고? 너님들이 판타지 세상에 한 번 와보지? 마법 한 방이면 100만 대군도 전멸시켜버리는, 그런 먼치킨이 되고 싶었는데……. 아! 물론 내가 지금 쓰는 ‘자지의 맹세’에 대해서는 대만족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사람이란 자기가 없는 것에 신경이 쓰이는 생물이잖아.
마법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정의의 용사도 한 번 되어보고 싶었는데……현실은 몇 대 처맞고 꿈틀대고 움찔대는 버러지A 역할이라니. 심하다.
근데 무슨 뾰족한 수 있냐? 내가 있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만 힘없는 놈은 무슨 짓을 당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너도 알잖아.
힘이 없으니까……. 힘없는 놈은 힘 있는 놈한테 처맞고 명령받고 무시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그 힘 있는 놈을 쓰러뜨릴 힘이 없기에 그런 모욕을, 처사(處事)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생활의 일진부터 시작해 회사 생활, 좆같은 대한민국 문화와 정부. 대통령. 모두 다. 그 부조리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지.
괜히 데모다 서명운동이다 하면서 힘 있는 자, 기득권자한테 대항하려 해도 잡히거나 해서 원하지 않는 처벌을 받은 채 THE END. 실로 좆같은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이곳으로 왔는데도 힘없는 놈은 뒈지라니. 참……세상이란 어디든 간에 잔인한 거 같았다. 힘없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 정도는 줘야하지 않겠는가?
날 때리고 피까지 흘리게 만든 저 좆같은 괴물 새끼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사람은 아니다만 딱 봐도 자기보다 강한 상대한테는 꼬랑지를 내리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은 하이에나처럼 찾아내서 사냥하는 전형적인 쓰레기. 그래. 더군다나 사람의 목숨을 그저 자기들만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 Trash of Trash 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난 죽었을 거다. 힘이 없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저항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헌데 이 괴물들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건 바로…….
“여기서는 내가 평범한 좆병신이 아니라는 거지…….”
그 순간. 다가오는 두 놈 중 한 마리한테 집중 사격이 가해졌다. 어디에서 날아온 총알인지 모른 채 죽었을 거다. 동료가 순식간에 죽자 또 한 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헛수고다.
다시금 여섯 발 정도의 총알이 발사됐고, 한 발씩 맞을 때마다 오케스트라 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큰대자로 누워있던 나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으윽, 오른쪽 어깨 쓰라리다. 피 아직도 나네.
내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두 마리의 괴물이 검은색 피를 흘린 채 죽은 모습이 보였다. 빌어처먹을 놈들. 피색깔은 괴물 만국 공통이냐? 왜 다 검은색이냐……. 한숨을 쉬며 주변 건물에 의지하며 일어난 나는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는…….
“오랜만이다. 얘들아.”
어두워진 하늘을 날고 있는 M16A1 과 K2 자동소총이 있었다. 아마 내 아내들 중 누구든 간에 이걸 본다면 아마 놀랄 거다. 장담컨대.
내가 가진 M16A1과 K2 자동소총은 내 HP가 30% 이하로 내려갔을 경우 자동사격모드로 바뀐다. 재장전 및 자동사격으로 인해 평소 탄알집 하나를 갈면 소비되는 MP가 30에서 50으로 늘어나지만……자동사격 기능까지 더해서 겨우 MP가 20 더 소비될 뿐이었다. 오히려 이게 더 이득이지.
더욱 더 좋은 건 마력증폭기 구슬과 구슬 조각을 받은 내 최대 MP는 7500. 아직 7000 이상이 남아있지만 단순 계산으로도 140번. 즉……알기 쉽게 말하자면 4200발 이상의 5.56mm 탄환을 놈들한테 쏟아부어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재장전 및 자동사격모드라는 대단한 힘을 왜 숨기고 있었냐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정확히 말해줄 필요가 있겠지. 난 숨긴 게 아니라 ‘쓸 수가 없었던 거다’라고 표현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하렘 어드벤처에 왔을 때 괴물한테 처음으로 습격당했었다.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실컷 처발렸고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갔지.
그때 날 살려준 것이 바로 M16A1. 바로 자동사격모드로 들어간 내 무기였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아니, 못 썼다. 이유?
너님들은 자동사격모드 쓰자고 죽기 직전까지 맞고 싶습니까?
이 모드는 전투력 부분에서는 가히 압도적이다 못해 무적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유야 간단하지! 내 좆같은 사격실력과는 달리 이 모드로 들어가면 이놈들은 날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실로 자동사격 및 요격 무기라고 봐도 되겠지.
건담의 판넬이나 비트가 생각날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면 내가 부하고 내 총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가 싶더군.
하지만 강한 힘에는 많은 책임이 따르는 법. 스파이더맨의 벤 파커 삼촌이 말씀하셨던 것과 살짝 다르다만, 이 모드를 쓰기 위해서는 내 HP가 30% 이하로 떨어져야 했다.
난 결코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아니다. 물론 고통을 주는 걸 즐기는 변태도 아니다만……응? 그런 새끼가 모녀와의 섹스를 즐길 때 은근히 가학적인 면을 보여줬냐고? 어허! 사람이 가끔 그럴 때도 있지!
흠, 흠! 다시 이야기 시작한다. 단 한 번 쓰고 나서부터는 지금까지 쓰지 못했던 이유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지. HP가 30% 이하라니. 죽기 직전이잖아.
프레그넌트 마을로 들어간 후부터는 인격을 바꾼 혜린과 팀을 맺어 싸웠었다. 그때부터 나는 안정적이고 확실한 사냥을 했기에 HP가 닳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심지어 로라, 메이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는 지시나 후방 백업을 맡았기에 내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지. 멀리서 총을 쏘는 덕분에 레벨을 올리긴 쉬웠지만 역시 이번 전투를 통해 나 자신도 단련을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훈련이나 수련, 노력을 통해 주인공이 레벨 업 / 각성 이벤트를 거치는 건 참 좋지. 근데 후우……요즘엔 아내들이랑 섹스할 시간도 별로 없는데 내가 꼭 그 짓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물스물 들어온다.
죽어버린 두 괴물 덕분에 돈과 경험치가 들어온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주변에서 날 따라오는 두 자루의 총은 매우 든든했기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하렘 어드벤처’.
그리고 난 주인공인지 용사인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는 이곳에서는,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입을 닥쳐야만 하는 힘없는 소시민은 아니었다. 부당한 일, 옳지 않은 일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원래 그런 힘이 없었으면서 힘 좀 생겼다고 나대는 거 아니냐고?
그래, 그렇다 시발. 근데 어쩔래?
그럼, 내가 여기서도 폭력이나 부당한 일에 오들오들 떨며 입 닥치고 있어야 하나? 여기서는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부당한 일은 겪지 못했고 아직 보지도 못했다. 시민 의식이나 청렴결백함으로 따지자면 한국에 있던 내가 제일 더러워 보였을 정도니까. 아무런 짓도 안 저질렀는데도 말이다.
‘자지의 맹세’를 써서 마음껏 여자들을 안은 거? 그 마법을 써서 조종했던 건 혜린밖에 없었다. 모두 생명의 씨앗을 대체할 내 정자를 원했고, 얻은 후에는 좋아했다. 뭐……혜린이한테는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은 한다만. 이미 그 건에 대해서는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했기에 마음에 크게 걸리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 힘을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기만 해도 내가 이곳에 온 가치는 충분히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혜린과 미카가 있을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부디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며…….
============================ 작품 후기 ============================
다음 주부터는 예전처럼 오전 8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업로드를 할 생각입니다. 취업 활동 때문에 이것저것 바빠서 12시 넘은 후에 업로드 등을 하다 보니 수면 시간이 자연히 줄어들게 됐습니다.
12시에 업로드를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기에 조회수가 많이 줄어든 것도 업로드 시간을 변경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초반에 올렸던 8시 부근쯤이 더 돋보였기에 '예전 시간대로 돌아가자'라고 마음 먹게 됐습니다. 이 시간 변경은 팬픽에도 적용됩니다.
표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좀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예전에 쓰던 표지는 리퀘스트로 받은 것이었습니다. 노출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표지를 부탁드렸었는데……신고로 인해 잘려버리게 됐습니다.
그 후 부랴부랴 임시(사실상 계속 쓸 표지이긴 했습니다만) 표지를 만들긴 했었지만 이내 다른 표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제작하게 된 게 현재의 표지입니다.
표지에 있는 여성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이 점 양해바랍니다. 지금 쓰는 표지도 신고→강제 교체 테크트리를 각오하고 쓰는 것이기에 사실상 임시 표지입니다. 당연히 현재 표지로 끝까지 갈 생각은 없고, 완결 후에는 정상적인 표지로 바꿀 생각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표지는 초기에 썼던 표지입니다만……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번에 표지 신고 당하면 초기의 표지를 다시 사용할 생각입니다. 또 신고 당하면 가장 노멀한 표지(잠시간 썼었던 빨간색 배경 + 타이틀 표지)를 쓸 생각이구요.
기껏 리퀘스트해서 받은 소중한 표지인데 신고 한 방으로 단숨에 사용 불가능이 되어버렸기에 그려주신 분한테도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라도 현재 표지는 신고 당하기 전까지 계속 쓸까 싶습니다. 실제 인물이 아닌 표지마저 '신고→강체 교체' 수순을 탔는데 이제 와서 겁먹을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초기 표지가 잘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취업 활동 때문에 준비해야 하는 건 많은데 몸 상태는 심각합니다. 감기 때문에 힘든데 친척 모이는 곳에 가서 3시간 이상을 있다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주는 영 운이 없는 것 같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다음 주부터는 아침 시각에 업로드를 할 생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