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4-3 : 여행길(3)」 =========================
“‘남자’……라고?”
생소한 단어를 확인하려는 듯 미카는 혜린한테 물었다. 내 고환을 ‘푸핫……’이라며 열심히 빨던 그녀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예에……. 남자란 이와 같이 다리 사이에 ‘자지’가 달린 사람이에요. 저와 대장님 다리 사이에 달린 게 뭔지 아시나요?”
“그야 당연히 보지지.”
‘보지’라는 말을 안다는 건 그녀 또한 여자라는 거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인지하고 있군.
“후후……이 자지. ‘좆’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여자의 보지와 같아요. 매우 민감하고, 소중한 거죠. 하지만 밖에 있는 괴물들이랑은 달라요. 그 몸이 새파란 괴물, 아시죠? 이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덮치지도 않고, 독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한 번 가까이 와서 보세요.”
당장 내 좆을 자르고도 남을 검을 가진 상대가 터벅터벅 다가오니 공포감 장난 아니다. 난 그저 혜린의 명령대로 가만히 선 채 신음을 내고만 있었다.
“대장님보다 훨씬 약한 이 남자가 사람들을 해칠 리가 없잖아요? 음, 음풉……푸하.”
“그렇군. 가까이에서 보니 근력도 별로 없고……이 정도라면 우리 경비대원들한테도 지겠는데.”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무사할 수 있다면 비교당하든 무시당하든 간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아, 오랜만에 느끼는 자괴감이다…….
“보시다시피 괴물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 남편이죠.”
“남편은 뭐지?”
“남편이란 여자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후후, 대장님. 가까이 와서 보세요.”
다행스럽게도 검을 거둔 그녀는 혜린처럼 자세를 낮추어 내 좆에 가까이 온다. 날 죽이려 했던 아리따운 여성을 눈앞에 둔 덕분일까? 한 층 더 흥분하는 하반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 번 만져보시겠어요? 부드럽고 연약해요.”
살짝 손가락 끝으로 건드렸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한테 내 좆을 만지게 한다는 현실은 내 몸을 전율(戰慄)시킬 정도의 스릴과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삐죽하며 나온 액체에 미카는 눈을 크게 떴다.
“호오……신기한데. 그 괴물놈들의 촉수와 비슷하지만 매우 달라. 움찔거리는 걸 보니 매우 약한 기관인 거 같군.”
“그렇죠? 후후……게다가 더 멋진 점. 알려드릴까요?”
완전히 물건을 파는 점원 모드가 된 것처럼 혜린은 중요한 점을 하나씩 가르쳐가며 미카를 얌전하게 만들었다.
“이 좆에서는 생명의 씨앗을 대신할 아기 씨앗을 거의 무한정에 가깝게 뽑아낼 수 있답니다?”
“뭐, 뭣? 그게 사실이냐?”
“물론이죠. 누구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혜린의 말투는 마치 매우 높은 사람을 상대하는 듯한 것이었고, 계속해서 자세한 설명과 친절한 태도를 베풀어서였을까? 미카도 약간 경계심을 푼 거 같았다. 아니면 수상한 짓 했다간 바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거나…….
“후후……그게 사실이라면 멋진데? 최근 생명의 씨앗이 들어오질 않아서 여러 모로 힘들었거든.”
“아, 대장님. 안 돼요. 아기 씨앗은 뿜을 수 있지만 횟수가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 소리에 미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지간히 기대했나 보군.
“제가 제 남편과 이렇게 알몸으로 다니는 건, 저희가 영원한 사랑을 맺은 걸 모두한테 보이고 싶기도 하고 축복받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저흰 그걸 ‘결혼’이라 해요. 함께 사랑을 나누며 아기를 만드니까요.”
“그, 그건 꽤 부럽군……. 결혼이라…….”
혜린이 내 고환에 뺨을 문지르며 ‘후후, 어때?’라고 생각한다. 최고다. 역시 내 첫 번째 아내. 매력적인 걸로도 모자라 이렇게 현학적이고 꾀가 많다니. 당장 입에다가 박아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제 일행과 조금 전에 이 마을에 왔거든요. 이 마을은 무기의 질이 높다길래 이 외의 무기점에도 한 번 들를 생각이었습니다. 제 남편이 피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이만 실례해도 될까요?”
미카는 아쉽지만 날 잡을 이유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지……’라며 일어서려 했다. 헌데 혜린의 입이 살짝 올라간 거 같은데……?
“대장님. 가시는 건 좋지만 저희 남편이 대장님 앞에 서니 아무래도 위축된 거 같네요. 한 마을의 경비를 맡고 계신 분이라서 그런지 그 위압감에 잘 움직이지 못 하는 거 같아요.”
“그건 미안하게 됐군. 이쪽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해서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축복의 키스를 한 번 해주시고 가실 수 있나요? 이곳에 말이죠…….”
혜린은 검지 손가락으로 내 귀두(龜頭)를 톡톡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던 나와 내 자지. 그리고 혜린을 본 미카는 ‘그러도록 하지’라고 승낙했다.
“그나저나 아까운데……아기 씨앗이라니.”
“대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건 정말인가? 기쁘군. 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가봐야 할 거 같으니 키스만 하도록 하지. 쯉…….”
거친 성격 주제에 키스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귀여웠다. 깜찍한 입이 내 좆에 닿은 순간 익숙한 메시지가 떠오른다.
[‘자지의 맹세’가 발동했습니다. 스테이터스 파티에 ‘미카’가 추가되었습니다.]
그 순간, 바로 ‘자지의 맹세’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원래라면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할 생각이었다만 언제 칼을 휘두를지 몰랐기에 바로 발동을 시켰다. 인격을 바꾸진 않았지만 생각 등이 표시되는 걸 보고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예. 안녕히 가세요……후훗.”
혜린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이전에 ‘자지의 맹세’에 대해 말했으므로 그 발동 조건을 알고 있었고, 훌륭하게 그걸 만족시켰다. 그녀의 보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그녀는 ‘후후, 기분 좋은데?’라며 다리 사이를 적셨다. 으음, 달콤하군.
“우리 혜린이, 귀여운 것도 대단한데 머리도 좋네?”
“그러어~엄. 누구 아내인데……후후.”
둘이서 오붓하게 오픈 섹스라도 하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이곳은 프레그넌트보다 경비나 치안이 강한 것 같았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로라의 지인(知人)을 내 몸종으로 만든 건 좀 그렇다만, 어쩔 수 있겠냐. 먼저 건드린 건 저쪽인데.
어찌 됐든 우리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인물도 사라졌기에 나와 혜린은 다른 무기점을 들르기로 했다.
무기점은 구석진 곳까지 합쳐 총 네 곳. 구석진 곳조차 프레그넌트의 무기점에 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기에 꽤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다.
메이한테 줄 무기는 샀다만 혜린의 옷은 꽤나 고민을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보류하기로 했다. 옷을 차려입은 후 여관방에 들어가니 그곳에는 이 마을에서 최초로 알게 된 사람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왜 미카가 우리 방에 있을까. 아니, 뭐……이유는 대강 짐작이 간다. 로라와 메이가 여관방 식탁에 먹을 걸 차리고 있었고 미카는 기다렸다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왔어요. 로라.”
“어서오세요, 세린. 미카랑 이미 만났다면서요? 너무해요……혜린이랑 그렇게 사이좋게 다니다니.”
이런. 옷을 벗고 다녔던 게 이미 알려졌나. 다음에는 로라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하자 메이는 ‘그럼 나는?’이라고 했다. 그럼 모녀(母女)를 데리고 다녀볼까? 그것도 좋을 거 같네. 현실 세상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만, 이곳에서는 모녀 덮밥이야 간단하니까. 실제로 프레그넌트에서도 꽤 즐겼고.
“그런데 미카 씨가 왜 여기 있죠?”
“오랜만에 친구가 왔는데 회포(懷抱)나 풀려고 왔지. 그리고 ‘씨’라고 안 해도 돼. 너, 로라뿐만 아니라 메이랑도 결혼했다며? 아내가 세 명이나 있어?”
저 표정이 ‘너 따위가 아내를 세 명씩이나 데리고 있다고?’라고 말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 단지 결혼이나 중혼(重婚)에 대한 개념이 없기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겠지.
“프레그넌트에 한 명 더 있습니다. 아이나라고…….”
오랜만에 입에 담는 이름이군. 듣고는 ‘아이나……아이나?’라고 두 번 정도 이름을 반복하던 미카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소리를 높였다.
“어엉? 그 어린 촌장님? 일 외에는 사람이랑 잘 안 어울리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개인 사정이 있어서요.”
아아, 아이나. 오랜만에 이름을 말하니 생각나네.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아이나의 동생 아이라를 데려 올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젠장. 잘 풀리면 좋을 텐데.
이런 내 생각과 관계없이 회포를 풀기 위한 준비는 이미 다 된 상태였다. 저녁 먹고 출출하다 싶었는데 잘 됐군.
망토도 없고 칼도 없었다. 말 그대로 친구랑 노가리를 까기 위해 온 전형적인 여자의 모습에 속으로 안심을 느꼈다. 안 그래도 강한 사람인데 술 마셔서 깽판 쳤다간 큰일이잖아? 이미 ‘자지의 맹세’가 적용됐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도 안심이긴 하다만, 위험 요소는 치워두는 게 최고지.
술은 잘 마시지 못하였기에 주스를 대신했고 그렇게 시작된 조촐한 파티는 꽤 즐거웠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선 나부터였다. 숲에서부터 온 후 프레그넌트에 거주하며 괴물들을 무보수(無報酬)로 퇴치했다는 말을 듣자 미카는 ‘오오, 너 제법인데?’라며 날 칭찬했다. 난 그 말을 듣고 ‘과찬(過讚)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이기도 하니까.
혜린이랑 이 세상에 떨어진 이후 살아남으려고 온갖 발악을 다 했었지. 그걸 생각하니 눈물이 진짜 앞을 가린다 가려. 괴물도 살아남으려고 죽인 거였지. 뭐, 나중에는 레벨 업과 돈을 위해 좋아서 한 짓이다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로라와 메이를 화해시켜준 것뿐만 아니라 결혼하여 사랑을 나누게 된 이야기. 그리고 프레그넌트의 모든 여자들한테 아기 씨앗을 심어주었다는 말을 듣자 미카는 흥분한 표정으로 날 봤다.
“오오! 그럼 너, 우리 마을에도 그 아기 씨앗을 뿌려줄 수 있지? 응?”
“그, 그게……. 저희도 여행길이 멀기 때문에 확답(確答)해드릴 수가 없네요.”
그러자 미카는 ‘뭐? 왜 로라랑 프레그넌트 마을 사람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데?’라며 소리 높였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내 경우에서는 거의 두 달 동안 오픈 섹스부터 시작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며 나름 친해지려고 노력했었지. 그러던 도중에 로라와 메이를 만나게 됐고. 아이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런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이 마을에서 모든 여자들한테 정자를 나누어주라고?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하면 안 되잖냐 그런 짓. 나라도 양심은 있는 인간인데 미쳤다고 그 짓을 하냐?
“미카. 그건 프레그넌트의 장래를 위해 아이나님이 이례적으로 긴급 소집까지 한 명령이었어요.”
“기, 긴급 소집이라고? 우와……프레그넌트도 어지간히 위험했나보네. 하긴……생명의 씨앗이 안 오는데 꽤 멀리 있는 너희 마을에는 당연히 안 오겠지.”
메이가 21살. 즉……1년 전에 낳은 아이였다. 뱃속에 있었던 기간까지 합쳐도 짧으면 9개월. 길면 1년에서 1년 3개월 동안 생명의 씨앗이 오지 않았기에 모두 급박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이나가 괜히 프레그넌트의 미래를 운운한 게 아니었구나 싶다.
이곳은 내가 있던 한국처럼 인력을 무한정에 가깝게 뽑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남자가 없는 대신 ‘생명의 씨앗’이라는 걸 써서 인력(人力)을 탄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딸을 낳는다 치더라도 괴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가득한 곳에서 천수(天壽)를 누린 채 죽는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중세 시대에 가까우면서도 샤워기나 따뜻한 물. 그 외에 홀로그램 스크린을 나름 자유롭게 쓰는 이들의 모습은 중세 시대와 현대 시대. 그리고 먼 미래의 시대까지 모조리 싸잡아 합친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계속해서 이 세상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인지 말이다.
신(神)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또한 이곳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였지. 여러 가지를 캐묻고 싶어도 모른다는데 어떻게 해?
내가 알고 있는 자료는 너무나 적었고, 그런 자료로는 가설(假說)은커녕 추측도 불가능하다. 돌아가고 싶어서 알려는 게 아니라 답답해서 알려는 거지.
“미카. 최근 경비는 괜찮나요?”
“아니. 최악이야.”
배려심 많은 로라와 대놓고 말하는 미카의 상성은 어찌 보면 재미있었다. 서로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살고 있는 마을의 환경이나 사정, 생각, 행동 방식이 너무 달랐으니까.
맥주를 쭉 들이킨 그녀는 보기 드물게 한숨을 쉬었다. 강인한 사람이라도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강인하기 때문에 누군가한테 사정을 설명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지.
“기둥을 써서 괴물들을 막고 있지만 정말 끈질기단 말이지. 최근에는 우두머리까지 움직이기 시작했어.”
“우두머리? 괴물한테도 우두머리가 있어요?”
내가 묻자 미카와 로라, 메이가 날 봤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냐? 내가 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란 거 이제 알았냐? 로라랑 메이, 너희는 이미 알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얘는 그런 것도 모르냐?”
“세린은 다른 지역에서 왔거든요.”
로라가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자 미카는 ‘그 지역에는 괴물이 별로 없었나 보지? 괜히 이런 곳으로 와서 너도 고생하는구만! 하하핫!’하며 내 등을 두드렸다. 좋아서 온 건 아니다만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런 여행이야 고생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나저나 아이나 참 보고 싶네…….
“우두머리라는 건 말 그대로 괴물놈들의 대가리지. 통솔자 비슷하기도 하고.”
“덩치가 크거나 뭐 특별한 점이 있나요?”
“있지. 아주 걸레 조각으로 만들어도 시원찮을 점. 괴물을 낳기 위해서 여자를 달고 다니니까.”
“예?”
생각하기 싫은 걸 억지로 생각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맥주의 힘에 마음이 약해진 걸까?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는 눈물은 모르겠지만 분노는 확실히 담고 있었다.
“잡은 여자를 데리고 다니며 아이……아니, 괴물을 낳게 하지. 그 조그마한 보지에서 나올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죽어. 보지와 배가 찢겨나가며 피범벅이 된 괴물은 태어난 후 자기를 낳은 여자를 뼈까지 다 먹어버리지. 한 때 약했던 경비대원이 그렇게 되는 걸 보고 밥도 못 먹은 적이 있었지.”
끔찍하군. 숲에서 여자를 구하지 못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 당시의 무력감(無力感)은 지금도 느끼고 있다. 난 진심으로 미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 힘을 가지고 있어도 눈앞에 있는 사람 하나 구할 수가 없다니.
괴물을 몇 마리고 죽여 온 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괴물을 죽인다 한들 그 여자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괴물한테 겁탈 당하면 대략 3시간 만에 배가 불러오지. 하루가 지날 때쯤이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면 되고.”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정말 쓸데없는 마법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걸 물었다.
“생명의 씨앗으로 잉태한 아기나 괴물의 새끼를 없앨 방법은 없나요?”
“생명의 씨앗으로 잉태한 아기는 없앨 수 있어. 하지만 그 경우 아기뿐만 아니라 씨앗도 사라져. 아기로 인해 영양분의 공급이 어렵거나 선천적(先天的)으로 몸이 안 좋을 경우에는 아기를 낳는 중이나 낳은 후, 죽을 수도 있지.”
아이나의 어머니가 그러했다. 아이나와 아이라를 가진 건 좋았지만 무리해서 낳은 나머지 결국 세상을 달리했다. 안타까운 이야기였기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괴물의 새끼는 마법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조치를 취했을 때의 이야기지. 제일 좋은 건 그렇게 되기 전에 괴물 새끼들을 모조리 쳐죽이는 거야. 해야 할 일은 간단하고, 그렇게 해서 얻는 결과도 최고잖아.”
지당하신 말씀. 모든 적(괴물) 사살이라는 명령이 이토록 멋지고 즐겁게 들리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 생명 존중의 사상을 가진 나나 혜린이다만, 괴물만큼은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괴물은 다 죽여야 해. 생명의 씨앗으로 겨우 낳은 아기가 그런 새끼들한테 죽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려. 하지만 아기가 죽었다고 해서 생명의 씨앗이 돌아오지도 않거니와, 다시 임신을 한들 죽은 아기랑 똑같은 아기가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생명의 씨앗은 소중한 거야. 그걸 쓰는 데에는 책임감도 필요하고.”
미카가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메이는 ‘헤헤……’하며 웃었다. 후후, 저 귀여운 아이가 바로 내 딸이다. 내 아내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경비 방침과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하던 미카는 즐거웠다며 자리를 떴다. 로라는 배웅하겠다며 함께 나갔고 나와 혜린, 메이는 먹은 걸 치운다.
경비대장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확실히 실감이 난다. 그 괴물들이 얼마나 악랄한 놈들인지. 사람을 자기 동료를 낳기 위한 씨받이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죽어버린 사람마저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먹는다니.
어떠한 자원(資源)이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 자원이 인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은 팔이나 발이 없어지면 쑥쑥 자라는 그런 괴물이 아니다. 연약하디 연약한 생명체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하면서 약한 존재. 늘 모순을 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같은 사람을 ‘도구’로 써서는 안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내가 살던 대한민국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는 이런 상식을 병신 취급하고 있다.
당장 빈민국 같은 곳에서는 어린 아이를 이용해 희귀 광물을 캐는 것부터 시작해,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서는 소년병을 만들기도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건 ‘불법(不法)’이다. 말할 필요가 있냐?
나? 내가 이곳에서 한 짓은 내가 살던 곳으로 가면 불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범죄로 취급되지도 않았기에 상관없는 거지.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내가 옷 벗고 다니겠냐? 나도 비싼 쌀밥 먹고 대학까지 졸업한 놈이거든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인간의 목숨은 매우 소중하다. 그런 인간을 자기와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이용하려 한다는 것은……자기는 매우 소중한 인간. 하지만 남은 이용하든 죽든 상관없는 생명체로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 내가 아무리 썩어빠졌지만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마음도 없고.
내 정자로 인해 임신한 여자들이 ‘드디어 아이를 다시 낳을 수 있게 됐어……’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을 땐 참 감동스러웠지. 이들한테 있어서 아기라는 건 희망이자 기쁨. 축복이다. 시대적인 요소든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 요소든 간에 아기란……생명이란 그 정도로 소중한 것이다.
그런 생명을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은 후에도 오직 자기들만의 쾌락과 생존을 위해 이용하려는 괴물들을 생각하니 화가 난다. 빌어먹을. 여기가 우리 마을이었다면 반복적으로 토벌을 했겠다만 여긴 프레그넌트가 아니다.
설령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지금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아이라를 만나 구슬을 전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을 해야 한다는 임무가.
“아빠, 괜찮아요?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어?”
이런.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던 거 같다. 구하지 못한 여자와 괴물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게 내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 그렇습니까?’하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화제도 아니었기에.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안타깝군.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여기 오기 전까지 꽤 많이 죽였잖아.”
혜린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사정은 몰랐다만 서큐버스를 제외한 괴물들은 모조리 죽여 버렸지.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더 많이, 더 열심히 죽였을 텐데. 내 곁으로 온 혜린과 메이를 팔로 감싸 쓰다듬는다. 로라만 오면 자면 되겠군. 이런 기분으로 여자를 품는 건 좀 그렇다만…….
순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진동이 방에 울렸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고 방바닥과 창문이 바르르 흔들리며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린다. 뭐지?
“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주세요!!”
밑도 끝도 없이 살려달라니!? 나와 혜린, 메이는 곧바로 밑층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저 멀리서 부서진 돌조각이 보인다. 설마……설마!?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민간인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경비대! 괴물을 격퇴하며 후속부대를 기다린다! 빨리 안 알리고 뭐하고 있어!?”
이럴 수가! 마을 한복판에 괴물이라니!?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손이 떨렸다. 뭐가……뭐가 어떻게 된 거야? 프레그넌트에서 괴물들이 성벽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매복을 하며 사람들을 기다리기만 했었지! 아니, 넘으려는 시도조차 못 할 정도로 높았던 것도 한 몫하겠지만……! 이건 상식을 초월해도 한참 초월한 거 아냐?
“세린!”
저 멀리서 커다란 가슴을 흔들며 다가오는 로라와 미카. 미카는 곧바로 경비대원한테 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빨리 보고해!”
“그, 그게……저놈들! 저 괴물 새끼들……사람을……사람을!!”
“뭐?”
부서진 기둥 사이를 자세히 본 순간, 먹은 게 올라올 뻔했다. 그곳에는 사람이었다고 추정되는 고기 조각이 흙과 기둥에 섞여 있었다.
“아, 아마……그, 괴물을 낳고 힘이 다한 사람을 던져 기둥을 파괴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사람을 던져서 기둥을 파괴했다고? 사람은 기둥보다 약하니 당연히 저민 고기처럼 되겠지! 그걸 정말 시도했다고? 어이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다. 미카는 눈을 감은 채 숨소리만 낸다. 정말 끝내주는군.
“세린. 싸워야 해요.”
“당연하죠. 혜린아, 메이야.”
“걱정 마. 준비됐어.”
“저도 언제든지 싸울 수 있어요!”
우리 파티의 사기(士氣)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관계없는 사람들이라지만 이런 횡포를 보고 모른 척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니까. 눈을 번뜩거리며 다가오는 괴물놈들을 보며 모두가 달려 나갔다. 처음으로 마을에서 벌이는 괴물과의 전투는 그렇게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점점 코멘트와 조회, 선작수가 줄어듭니다. 잠시간 연재를 멈춰야 하는 생각도 드네요……. 새로운 작품도 준비 중이긴 한데 그것과 동시에 연재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작가분들도 이런 고민을 하셨을 거라 생각하니 여러 모로 제가 아직 많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루나 3일짜리 홍보 아이템도 얻기가 매우 힘들구요.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수치를 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소설이 재미가 없다면 재미없다고 코멘트라도 달려야 하는데 그런 내용도 없어서 더 안타깝네요. 뭐가 문제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까요.
개인 취향이랑 다른 거야 말할 것도 없지만 선작수가 늘어나는데 조회(최신 업로드)가 점점 줄어드는 걸 보니 자유게시판에 계신 분들이 확실히 좋은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선작수가 늘어난다 = 조회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봤었는데……몸소 깨닫게 되네요. 똘끼 충만했던 후기에서도 점점 약의 냄새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구요. 아마 다음 주부터는 업로드 시간이 예전처럼 오전 8시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