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1-9 : 전투」 =========================
“시발 새끼들이 미쳤나!! 이 개만도 못한 놈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외치는 욕은 총성에 지워졌고, M16A1에서 나간 탄알은 부지런히 눈앞의 괴물에게 처박히고 있었다. 대략 10발 정도가 박히니 활동이 정지됐고, 적어도 한 탄알집(탄창)을 쓰면 세 마리까지는 어떻게든 없앨 수 있었다. 이걸로 네 마리째……!! 제기랄!
“혜린 씨!”
“크, 으윽!”
부웅! 검은 브래지어와 팬티─파란색 셔츠는 촉수 공격에 찢겨져 나갔다. 시발 새끼들!─를 입은 채 몽둥이를 휘두른다는, 어찌 보면 에로틱한 시츄에이션이지만 지금은 발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가녀린 몸으로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몽둥이는 제대로 괴물을 스치지도 못한 채 허공을 지나갔다. 시발, 저 괴물 새끼가!!
“꺄악!”
몽둥이를 강타하자 쥐고 있던 혜린은 뒤로 나동그라졌고, 괴물의 촉수는 이리 저리 움직이며 공격 포인트를 탐색하고 있었다. 제기랄……이전에 죽은 여자처럼 혜린이를 죽게 내버려둘 거 같냐 시발놈아!!
《두두둑! 두두둑!!》
《쥬벡!? 그, 르으으으!!!!》
촉수와 다리, 눈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유? 그야 간단하지 않은가! 눈과 같은 기관은 일상생활을 비롯해 전투 등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기관 중 하나다. 동시에 그런 기관은 늘 노출되어 있기에 보호·엄폐가 필수불가결.
안타깝게도 이러한 기관은 단련을 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그건 저 괴물도 마찬가지다!! 영장류인 인간마저 단련이 불가능한데, 저런 괴물 새끼가 눈을 비롯한 신체를 단련한다고? 개소리도 작작해라!!
네 발을 더 쏘니 놈은 괴로움에 발버둥 치며 죽어갔다. 탄알이 맞는 곳도 중요하지만, 대강 세보니 열 발을 골고루 맞으면 저렇게 발버둥 치며 죽어갔다. 죽을 만큼 아플 거다. 죽을 만큼 아파하며 죽어라.
다섯 마리의 시체가 더럽게 흩어져 있었고 그 중에는 탄알로 인해 촉수나 발 부분이 찢겨 나간 것도 보였다. 창자 같은 걸 보니 기분이 더러운 건 둘째 치고 지금까지 먹은 게 역류할 거 같았……읍! 젠장, 시큼하잖아! 위험했어! 하마터면 진짜 토할 뻔 했어!
“혜린 씨! 괜찮아요!?”
“아, 아아아……!!”
“괜찮아요! 괴물 다 죽였어요!”
“아, 으으, 응…….”
겨우 대답을 하는 걸 보니 심각하군. 어쩔 수 없다. 군대에 있을 때 페인트 탄으로 토너먼트를 벌였던 때와는 다르다. 애초에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혜린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그녀를 몰아붙인 것도 이렇게 되는 데에 한 몫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와 대판 싸운 후, 일어나 그저 걷기만 한 지 꼬박 하루. 우리는 그 숲을 걸으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짚으로 만든 바구니부터 시작해, 찢어진 옷의 파편. 산산조각이 난 검의 손잡이.
많은 핏자국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의미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그토록 산재(散在)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사는 곳이 가깝다는 걸 나타냈다.
사람들이 죽은 흔적을 보고 희망을 가지다니. 인간이란 정말이지……. 자기 자신에 대해 역겨운 감정을 가지면서도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아야 한다며 자신을 위로하는 이 이중적인 태도. 혜린도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지금까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괴물들이 조금씩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와 그녀는 겨우 둘밖에 없는 총력전(總力戰)을 벌여야만 했다.
내 레벨은 1, MP는 100. 30발의 탄알집을 교체할 때마다 MP가 30씩 소모되는 건 너무나 격심했기에 우린 아주 위급할 때를 피하고는 도망치는 것밖에 선택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전투로 인해 그녀의 정신과 체력도 한계에 달했다.
“조금만 쉬죠.”
대답조차 할 수 없는 걸 보니 절로 기분이 다운됐다.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조작 윈도우를 불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이걸 두고 말하는 거겠지. 내 레벨은 2가 됐다. 즉, 레벨업을 했다는 거다.
레벨업과 함께 한계에 도달해 있던 HP와 MP게이지는 맥시멈 수치를 가리켰다. 좋았어……!! 이걸로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이 탄알을 쏠 수 있겠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것이다. 전투 중 계속 뜨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싸웠기에 지금 내 아이템 윈도우에는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쌓여져 있었다. 아이템 중에 쓸 만한 걸 얼마 없나…….
돈도 당장은 쓸 수 없고. 무기 메뉴로 이동하자 그곳에는 드물게 세 개의 리스트가 있었다. 몽둥이는 [사용중]이라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 남은 두 개는…….
“2번, 배니쉬(Vanish).”
소멸 커맨드에 의해 혜린의 옆에 놓여 있던 몽둥이는 빛이 되어 사라졌고 그녀는 그걸 바라볼 뿐이었다. 무기 메뉴에서 가장 그녀가 쓰기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걸 클릭 후, 무기 소환의 커맨드를 말했다.
“그거……새로운 무기야?”
“……그런 거 같네요.”
내 앞에 나타난 것은 30cm에 달하는 단검이었다. 이름이 정말 ‘단검’이라니. 대체 이 세상은 무슨 생각으로 이름을 짓냐? 네이밍 센스 한 번 가관이다.
하긴……지금 이 상황에서 이름이 무슨 상관이겠어. 칼을 건네자 그녀는 머뭇거리며 받았다. 아, 그렇군……저런 건 쓰기 좀 그렇지. 자기도 베일 수 있으니까.
“휘두르는 것뿐이라면 몽둥이보다 그게 나을 거예요.”
“……고마워.”
인사에 손을 휘두르며 적당히 대응했다. 지금 와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낯간지럽다. 남은 무기는 ‘도끼’였다. 진짜 이름 한 번 정직하게 짓는구만. 핸드 엑스(Hand-Axe) 같은 기본적인 이름은 아예 넣지도 않은 걸까. 마을에 도착하면 무기상부터 가야겠군.
30분 정도를 쉬니 다시 한 번 위기감이 습격해 왔다. 여기서 이렇게 쉬고 있는 동안에도 놈들은 무리를 지어 올 거야. 얼른 여기서 나가야 해……!! 분명 숲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무리를 지어 우리를 죽이러 올 리가 없을 테니까.
“갈까요.”
“……응.”
가기 힘든 사람 억지로 끌고 가는 기분이지만 어쩌랴.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게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이자 해야 할 일, 우리만이 가진 자격일 테니까. 비틀거리는 그녀가 내 몸에 닿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옷도 엉망이다. 자칫 잘못하면 저 속옷의 끈이 끊어질 거 같은데……. 제기랄, 무기상에 가기 전에 제대로 된 옷부터 입어야겠어.
내 타이츠와 바지도 이미 피에 젖은 지 오래다. 아무리 적당히 옷을 입는 나라지만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아. 새삼스럽게 잡생각을 하며 나와 그녀는 서로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 † † † † † † † † † † † † † † † † † † † † † †
“아, 씨발…….”
절로 욕이 나왔다. 혜린은 이제 뭐라고 할 힘도 아깝다는 듯, 어설프게 칼을 쥐었다. 열세 마리 정도의 괴물이 우리를 둘러싼 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이런 베라먹을……!! 어떻게 하지!? 원형으로 둘러싼 괴물들을 상대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일렬로 앞에 있다면 그냥 총을 갈겨주면 그만이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어느 쪽이든 총을 쏘면 반드시 그 반대쪽이 텅 비게 된다.
우리가 앞을 향해 공격했다가는 뒤에서 촉수가 날아와, 내 항문을 뚫어 청년막을 관통하는 것은 물론이며 목숨까지 가져간다는 소리다. 이런 와중에서도 농담을 하다니. 내 센스도 상당한데 그래.
《케르윽!》
시작은 가장 앞에 있던 놈의 촉수로 시작됐다. 빠르게 날아오는 것에 그대로 당해줄 수는 없었고 난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혜린은 나와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촉수가 돌아가자마자 다시 내 곁으로 달려와 싸우는 자세를 취했다. 흩어졌다간 그야말로 순식간에 뒈진다. 그렇기에 이런 전법(戰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돼?”
“……한 놈만 족쳐서 도망쳐야죠.”
원형 대열의 가장 좋은 점이라면 적을 가두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어느 한쪽만 뚫리면 완성도에 영향이 가므로 적을 가두는 기능이 크게 없어진다는 거다. 열세 마리가 우리를 둘러쌌지만 그래도 간간히 보이는 틈들. 하지만 내가 공격을 하면 분명 다른 쪽에서 촉수로 공격을 할 거다.
……
…………
………………어쩔 수 없군.
“혜린 씨.”
“응?”
“제가 지금부터 미친놈 널뛰듯이 총을 쏠 겁니다. 절대 일어서지 마세요.”
난 조정간의 레버를 ‘반자동’에서 ‘자동’으로 돌렸다. 군대에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자유사격을 판타지 세상에서 하게 되다니. 이건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난 크게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몸을 비틀며 사격을 개시했다.
“단발인 줄 알았냐!?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아아아아!!”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나가는 탄알들은 촉수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놈들에게 처박히기 시작했다. 눈, 발, 촉수, 허벅지, 발가락 등 진짜 탄알이 스치기만 해도 죽을 거 같은 부위에 진짜 박히는 걸 보니 오싹했다.
“큭!?”
갑자기 날아온 촉수에 짧은 신음을 하며 내 몸은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조작 윈도우를 부르니 200을 가리키고 있던 내 HP는 110으로 줄어 있었다. 야! 한 방 맞았는데 거의 반을 깎았다고? 파워밸런스가 뭐 이래? 밸런스 패치를 발로 했냐? 발로 밸런스 패치했냐?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을 바닥을 집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정신보다 몸이 더 솔직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어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쥔 채 M16A1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헉……!”
비틀거리며 바닥을 본 후 다시 앞을 본 순간, 괴물은 거의 1m 간격 내로 들어와 날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더러운 미소를 보니 일어나야 한다는 적색경보와 포기하면 편하다는 미친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나……죽는 건가? 이 거리에서는 도저히 피할 재간이 없다. HP가 30% 이하일 때 자동사격이 실시되지만, 먼 거리에서 맞았는데 90이 소모된 정도로 볼 때 이 간격에서 촉수 공격을 먹었다간 THE·END. 즉사다. 이건 뭐 HP를 볼 필요도 없을 정도다.
놈의 촉수가 날 향해 날아오려는 순간────.
“이야아아아압!!”
《푸욱!》
《그, 흐?》
무언가가 깊숙하게 박히는 소리가 들렸고, 괴물은 자신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괴물의 목에 단검을 힘껏 처박은 이혜린의 모습이 있었다.
괴물은 뭐가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얼굴로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고,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칼을 뽑았다. 단검과 함께 분출된 피가 그녀의 몸을 적셨지만 거기에는 아랑곳 않고, 자세를 잡으며 외쳤다.
“일어날 수 있겠어!?”
“어, 예!”
그녀는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위로 올렸고, 난 거기에 인형처럼 따라 올라갔다. 이렇게 쉽게 일어설 수 있다니. 감탄은 나중에 하자.
곧바로 주변의 주변을 향해 다시 자동으로 총을 갈겼고, 최초의 공격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공격도 못하고 있던 놈들은 그렇게 세상을 하직해야만 했다. 총알을 박아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는 전투에 의해 경험치와 돈, 아이템을 얻었다는 메시지 윈도우가 떴고 난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겼, 네요. 하하.”
“……그래.”
혜린은 그저 웃고 있었다. 피로 물든 칼을 들고 있으니 진짜 호러가 따로 없다. 나중에 칼 들고 날 찌르려 하지는 않겠지.
“세린.”
“예?”
“……구해줘서 고마워.”
“아,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죠. 그때 혜린 씨 아니었으면 저 죽었어요.”
“나는……아니. 아무것도 아냐.”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상태 정비가 먼저다. HP와 MP는 어떻게든 남아있군. 하지만 이 괴물들을 죽여도 경험치는 10밖에 주지 않는 것 같고 아직 레벨업은 멀었다. 효율이 너무 좋지 않은데.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 나와 혜린은 다시 숲을 걷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결국 회사에서 올려버렸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글을 올리는 게 쉽지는 않네요. =_=; 앞으로는 더 빨리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Britaniafate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법은 당장 쓸 수 있지만 현재는 '숲에서 나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에 마법 사용은 조금 더 기다려야겠습니다. 얼마 안 가 사용하니 편안하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작과 구독, 코멘트, 추천. 모두 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소드 아트 온라인 팬픽이 올라옵니다. 이 소설과 달리 무료 연재 팬픽이니 즐겁게 봐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