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1-7 : 위협」 =========================
《철썩!》
“큿!”
잠에서 번쩍 깬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뺨이 얼얼한 거였다. 안 봐도 뻔하군. 내 앞에는 씩씩거리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이혜린이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어라? 뭔가 이상한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호기심보단 통증이 앞서고 있다.
좀 진지한 말이 아니긴 하지만, 미인이라도 화를 내니 예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난 날 때린 사람한테 ‘제 뺨을 때리시다니! 다른 쪽 뺨도 때리세요!’라며 뺨을 내줄 정도로 선량한 놈도 아닐뿐더러, 그럴 의무도 없다. 애초에 그런 미친놈도 아니고. 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 이 씨발놈이……!!”
다시 한 번 매섭게 날아온 따귀. 하지만 맞아줄 정도로 난 착한 놈도 아니고, 맞아주고 싶지도 않다. 미쳤냐? 그녀는 씩씩거리고 있었고 몸 군데군데에는 내가 뿌렸던 생명의 씨앗들이 메마른 자국이 있었다. 조금 더 진득하게 남아있었더라면 눈요깃감은 됐을 텐데.
“미친 새끼……!! 너, 너! 니가 무슨 짓 했는 줄이나 알아!!”
“글쎄요. 제가 무슨 짓을 했을까요?”
“뭐, 뭐라고!?”
그녀는 기가 막혔던 건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내가 무서워해야 하거나 그래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내가 그녀를 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녀를 딸감 삼아 좆물을 뿌렸을 뿐. 그것뿐이다.
“내, 내 몸에 그 더러운 좆물을 뿌린 주제에……!!”
“아, 그거요? 어쩔 수 없잖아요? 혜린 씨가 매력적이니까요.”
“미, 미친 새끼!!”
“어이쿠, 심하네요. 미친 새끼라뇨……. 전 지금까지 당신 보호해 주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겨우 좆물 좀 뿌리신 거 가지고 너무하네요.”
난 능글맞게 웃으며 그녀 앞에 마주섰다. 나도 할 말 좀 하자.
“이런 말하면 제가 시발놈 같겠지만……. 오히려 혜린 씨는 저한테 강간을 당하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녀는 기가 찼는지 더 이상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생각해 보세요. 여긴 혜린 씨를 강간해도 구해줄 사람도, 절 가둘 경찰관도 없어요. 아직도 여기가 당신이 있던 세상으로 보여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여긴 판타지 세상이고 저희가 가진 도덕이나 윤리 같은 건 그냥 개좆이에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라구요.”
“미, 미쳤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미치다뇨.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고, 전 거기에 따르고 있는 것뿐이에요. 아니면 뭐에요? 혜린 씨는 제가 좆물을 끼얹은 게 그렇게 싫으신 거예요? 이거 섭한데요. 전 혜린 씨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섹시스타에게 좆물을 끼얹고, 오히려 그걸 감사히 여기라니. 게임에서조차 이러한 시츄에이션은 없었고, 난 정신과 함께 점점 더 불끈 솟아오르는 나의 물건을 느꼈다. 그녀는 내 웃음과 함께 점점 더 단단해지는 물건에 이제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뭐……좋아요. 사과할게요. 하지만 혜린 씨.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전 혜린 씨를 위해 나뭇잎과 먹을 걸 열심히 구했어요. 괴물을 없애기 위한 방법도 생각했구요. 그런데 당신은 하루 종일 하는 게 처먹고 처놀고 처자는 거밖에 없잖아요?”
입을 뻐끔거리는 걸 보니 승부가 난 거 같다. 난 사실을 나열했고 그녀는 감정에 호소했다. 근거를 갖추지 못한 절규와 사실을 담담히 나열하는 것. 그 차이에 있는 것은 너무나 컸다.
“고소할 거야……!! 시발, 넌 콩밥 처먹을 거야……!! 알아!!?”
“모릅니다. 그 잘난 경찰 많이 부르세요. 여기에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괴물 득실거리는 숲에? 참 대단하시네요. 그 대가리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원…….”
그 순간, 내 말은 저 멀리서 들려온 ‘무언가’에 의해 끊겼다.
《꺄아아아악────!!》
나도, 그녀도. 그 비명이 들린 곳을 쳐다볼 뿐. 그곳으로 발을 옮기려 하지 않았다.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상황이 이해된 이혜린이 누굴 향해 말하는 것인지 모를 혼잣말을 뱉었다.
“뭐, 뭐야? 방금 그거 여자 비명이지?”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만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는 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 간다면 자기한테까지 불똥이 튄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나한테 안긴 채 이런 질문을 한 거다.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그녀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다는 건, 나 또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난 괴물이 눈앞에 있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솔직히 몸이 떨렸다. 당연하잖냐. 나 그 괴물한테 뒤질 뻔 했다. 하마터면 영영 밥숟가락을 들 수 없게 될 수 있었단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가봐야겠네요.”
“무, 뭐? 너 방금 못 들었어!?”
“그래도 가봐야죠! 게다가 저 괴물이 우리한테 올 수도 있다구요!!”
“헛소리 하지 마……!! 너 방금 말했잖아! 괴물을 죽일 수 있다고! 니가 가서 죽으면 난 누가 지켜줘!?”
세상에! 이렇게까지 타산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걸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니!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물론 지금 이혜린이 저 밖에서 들려온 비명의 주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말은 그야말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너는 무조건 내 곁에 있어야 해’라는 걸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무슨 어처구니없는……!! 난 더 이상의 논쟁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그녀를 놓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살려주세요!! 누가, 제발! 언니! 언니!》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언니라고? 그럼 최소한 두 명이 있는 건가? 하지만 목소리는 한 명분밖에 들려오지 않는다.
게다가 조금 전의 언어는 한국어다. 그럼 뭐지? 여긴 한국인이 많이 소환되는 곳인가? 제기랄!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이런 정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으, 으아아아아앗! 아아아아악────!!》
비명은 이제 단말마로 변해 있었다. 멀리서 달려가는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내 뒤에서는 좀 기다리라며 날 쫓아오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혜린은 내가 걱정 돼서가 아니라 혼자 있다가 습격 받으면 곤란하니 날 따라온 거겠지. 슬프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아아아아악! 찢어져! 안 돼! 헤긋! 히, 긋! 아, 끄아아아악!?》
점점 가까워져오는 목소리. 근데 신기하게도 본능은 ‘더 이상 가면 위험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래, 위험하지. 아무리 무기 사용방법을 알았다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지금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의 현장을 생각하니 실로 가고 싶지 않다. 내가 고어와 그로테스크를 즐기는 변태인 줄 아냐?
하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도덕과 윤리는 내게 ‘실천’만을 강요했다. 빌어먹을……!! 쓸데없이 이런 곳에서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거에 목숨 걸다니. 나도 미친놈이라니까!!
그리고 수풀을 걷어내며 도착한 곳에서 보인 것은…….
“……아, 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초록색 괴물은 여전히 그 징그러운 촉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괴물이 아니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발견한 여성이었다.
“히, 히긋! 아, 안 돼! 나, 싼……큭!”
《부우우욱! 좌악! 찌저저저적!》
“그, 갸아아아아아앗! 아, 끄륵!? 아, 으, 으아아아아앗!!”
괴물의 촉수는 이혜린보다 더욱 더 갈색의 피부를 지닌 여성을 범하고 있었다.
아니……죽이고 있었다.
구릿빛의 건강한 다리 사이로 보이는 여성의 소중한 곳.
아기를 낳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곳.
남성과 사랑을 나누며 생명의 씨앗을 뿜어내고 담아내는 소중한 곳.
열 개 정도의 촉수가, 그녀의 소중한 곳에 들어가 미친 듯이 활개치고 있었다. 소중한 곳이 갈라지는 정도는 이미 복부까지 가버려, 금방이라도 반으로 갈라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은 보이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성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타액으로 범벅이었다. 그녀는 웃음을 지은 채 울고 있었고, 콧물을 흘리며 비명과 환희를 노래하고 있었다.
자기가 아픈 건지, 기분 좋은 건지,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를 정도의 표정에 난 손에서 힘이 빠지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아, 안 돼……!! 여기서 멍 때리다간 정말 뒈진다!
“히, 히힛! 아, 윽! 아, 아아앙────! 거긴 안 돼! 히끅! 아, 아아악!”
건강한 여성한테서 새어나오는 앙탈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 어떤 남성도 자신의 물건을 세운 채 그녀를 생각하며 자신의 것을 위로하겠지.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본다면 그럴 마음은 싹 사라질 거다. 이제 그녀의 소중한 곳부터 시작해 배까지, 엉덩이까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흐흑? 그, 끄흥♥》
괴물이 웃었고
《찌거거걱! 쯔저적! 좌아아아악!》
그걸로 끝이었다. 체내로 침투한 촉수는 마치 팝콘이 터지듯 밖으로 나왔고, 공중에서 고통과 쾌락에 젖어있던 건강한 여성은 생을 마감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생체폭발 쇼에 뭐라고 해야 할까. 박수라도 보내야 할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분노보다는 슬픔과 연민이 느껴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산 채로 사람을 찢어죽이다니. 고대 중국의 엄벌 중에서도 그런 게 있었지. 능지처참(陵遲處斬)이었던가. 하지만……설령 여기가 판타지 세상이더라도 지금 나는 현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다.
물론 이혜린과 싸울 때는 우리가 살던 세상의 도덕이나 윤리가 개좆만도 못 하다고 말했지만, 그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생명이 가치 있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만 하는 그런 세상에서 난 왔다!! 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 저 여성이 무슨 죄가 있기에 저 괴물한테 저토록 잔인하게 범해지고 죽어야만 했나?
“꺄아아아아아악!!”
나와 괴물의 정신을 환기시켜준 것은 죽은 여성이 아니라 멀쩡한 이혜린이었다. 저 병신 같은 년이!! 저건 대놓고 죽여 달라는 거나 다름 없잖냐!!
괴물은 나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피로 물든 촉수가 움직일 때마다 핏방울이 대지로 떨어졌고, 그 핏방울을 보자 퍼뜩 생각났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이 시발놈아────!!”
머리가 맑다. 해야 할 일은 두 말하면 입 아프고 세 말하면 비디오고 네 말하면 DVD고 다섯 말하면 블루레이다. 그렇고말고.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죽어봐라, 이 개새끼야!! 「1번」!!”
그 말과 함께 내 손에는 한 줄기의 빛과 함께 M16A1이 나타났다. 내가 조사를 하며 찾은 것 중 하나는 바로 단축키. 일종의 ‘매크로’였다. 무기나 아이템을 장비하면 금방 사용할 수 있도록 단축키가 있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난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조사하던 중 ‘단축’을 명령내릴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걸 연습했다. 그 결과, 명령어를 부르면 윈도우를 조작할 필요 없이 바로 무기를 쓸 수 있다는 걸 터득했다.
난 개머리판을 어깨에 댄 후, 세밀한 조준 없이 바로 괴물을 향해 쐈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울려 퍼지는 총성과 화약냄새. 괴물이 몰려올 수도 있다고? 올 수 있다면 오라 그래!! 이미 이성을 잃은 나는 그저 놈을 죽이는 것밖에 머리에 없었다.
“엄살떨지 마, 이 좆같은 놈아!! 너한테 죽은 그 여자는 그거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아팠을 거란 말이다!! 이제 와서 무슨 피해자 코스프레냐, 개새끼야! 시발놈! 너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일 거야!!”
내 마음을 대변하듯, M16A1은 더욱 더 거칠게 놈을 몰아붙였다. 스무 발이 들어가는 탄알집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쏜 탄알은 30발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마 마력을 사용한 재장전이 이루어진 거겠지. 이제 놈의 촉수는 곤죽이 되어 걸레만도 못한 형체를 이루고 있었고, 움직임은 멎은 것 같았다.
사격을 멈췄다. 이제 더 이상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데미지. 난 그제야 주저앉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닦을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사람을 위해 우는 것이 뭐가 부끄럽단 말인가? 이건 사람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일 텐데.
땅을 주먹으로 찍어도 속이 시원치 않았다. 제기랄……!! 조금만 더 빨리 오면 살릴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후, 처음으로 겪은 전투.
나는……원래 내 주변에 있던 사람과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살리지 못했다.
† † † † † † † † † † † † † † † † † † † † † † †
괴물이 죽고 여자의 살점과 장기가 즐비한 땅을 보니 욕지기가 절로 치밀어 올라왔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묘지를 만들어 주자니 차마 저 살점들을 만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속으로는 사과와 죄책감을 하면서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못하다니. 나도 참 나쁜 놈이다.
“주, 죽은 거야?”
참 빨리도 온다. 지금에서야 내 뒤로 와서 오들오들 떠는 이혜린을 보니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무능한 아군은 눈앞의 용맹한 적보다 더 무서운 법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참 멋진 말이다. 옛 성인들의 말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명언과 속담, 사자성어도 좀 공부해둘 걸 그랬어. 때늦은 후회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리.
“그, 방금 그 총은 세린이 쓴 거야?”
“예.”
“어떻게? 응? 어떻게 쓴 거야?”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도저히 지금은 설명할 때가 아니었다. 갑자기 나를 덮쳐오는 피로감에 나도 모르게 살짝 몸이 비틀렸다. 멋모르고 마력을 마구 사용해서일까. 살아남은 대가치고는 싼 거지만 이런 게 연속으로 계속된다면 곤란하다. 살점과 괴물의 육편이 너저분한 곳을 피하며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말 하면 정말 개자식이겠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난 저 여자가 죽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물건을 찾으려 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비참할 정도로 찢어진 여자의 옷차림은 상당히 이상했다. 가슴과 둔부를 가리는 최소한의 천조각 외에는 장신구나 신발조차 볼 수 없다니. 무슨 원시부족도 아니고 원.
피가 흥건한 땅에서 발을 옮긴 것은 조금씩 피가 떨어지거나 뿌려진 곳이었다. 즉, 이곳으로 도망치기 전까지의 루트를 따라간다면 적어도 어디서부터 도망치거나 괴물과 조우했는지를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네. 이대로 가자니까…….
“……응?”
생각을 끊고 들어온 것은 초록색의 조작 윈도우였다.
[적을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 100, 돈 100원을 획득했습니다.]
[무기 ‘몽둥이’를 획득했습니다.]
아이템인가. 시체를 앞에 두고 기뻐할 수는 없지만, 무기를 얻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이걸로 내 가설이 확실해졌군. 몬스터를 죽여 아이템을 얻었다는 건,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판타지 세상에 왔다는 걸 증명하는 거니까.
이 세상에서 나나 이혜린은 무기나 돈을 사용해서 싸우거나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확고하면서도 간결한 결론이 나왔다.
“우읍……!”
시체를 보고 토하다니. 나도 토하고 싶다만. 어쩔 수 없지. 갈색 빛의 건강미 넘치는 몸에 검은색 속옷이라는 매력적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토하는 모습만큼은 별로 예쁘지 않았다. 시발, 모른척하고 갈 수도 없군. 하지만 싸우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을 통해 확실히 알았다.
이 여성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 늘 자위를 할 때 딸감으로 삼았고, 그 노출도에 내 물건이 서긴 했지만 그것뿐. 그건 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성에 대해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성욕의 표시일 뿐이었다.
이렇게 몸을 사리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옳지. 하지만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조차 표하지 않다니. 적어도 이 여성이 자기가 됐을 수도 있는데. 이젠 혐오감과 적대심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무기를 얻었으니 함께 싸울 ‘동료’라고 봐도 되겠지만……딱히 동료로 삼고 싶지는 않다. 토할 걸 다 토했는지 그녀는 나와 괴물을 번갈아 보고 있다. 조금 전까지 화내던 사람 맞냐.
“……전 저쪽으로 가볼 건데, 어떻게 하실래요.”
“지, 진짜 저기로 갈 거야?”
그럼, 가짜로 말하겠냐 병신 같은 년아. 난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일단 가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사람이 왔던 흔적이나, 사람이 살던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괴물이 나오면 그, 총으로 또 지켜줄 거지?”
“……예.”
정말 잘 참았다. 난 주먹이 나가려는 걸 꾹 참았다. 지켜줄 거냐고? 이건 그야말로 ‘내가 위험하면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라. 하다못해 날 보호하기 위해 싸워라’라는 말 아니냐. 대체 이 여자는……!! 조금 전까지 좆물을 끼얹은 놈마저 살아남기 위해 이용하려 하다니……!!
하지만 화를 내거나 할 시간은 없었다. 육감적인 몸매를 검은색 속옷으로 감싼 여성. 그리고 피에 물든 옷을 입은 나. 아무리 봐도 언밸런스한 일행인 나와 그녀는, 죽은 여성이 도망쳐왔을 거라고 생각되는 루트로 조금씩 발을 옮겼다.
시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아주 잠시지만 뒤를 돌았다. 난 고개를 숙여 최후의 애도를 표시했고, 이혜린은 그런 나를 보며 그저 두려운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댓글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히로인의 성격은 원래부터 안하무인식 연예인 성격으로 설정해둔 상태입니다. 이제 히로인이 점차 달라지는 모습(정확히는 주인공에 의해 변화되는 모습)이 나오니 지켜봐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업로드 시간을 8시 이후로 해야 할 것인가, 출근 전으로 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로 고민 중입니다. 업로드 시간이 정착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