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2화 (2/235)

00002 「1-1 : 여행의 시작」 =========================

갑작스럽지만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자고 일어나니 자기 방이 아니네?> 같은 상황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으며, 이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누군가 이 상황을 300자 이내로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문학적 소질을 지니고 있으며 뛰어난 상황파악능력 또한 겸비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냐고 묻는다면 실로 좋은 지적이다. 그렇고말고. 나이 27 처먹은 청년이 갑자기 <어? 자고 일어났더니 판타지 세상이네? 우왕ㅋ굳ㅋ 정ㅋ벅ㅋ 난 이제부터 판타지 세상의 용사로 살아가겠어요!>라며 깝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좋은 지적이다. 응? 칭찬만 하지 말고 얼른 문제점을 말하라고? 어허, 이 사람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잖아. 뭐, 그렇게 빨리 말하라고 하니 좋다. 문제가 뭐냐고?

“……여기 어디지?”

일어나보니 도서관이 아니었다는 거다.

† † † † † † † † † †

“오케이, 오케이. 좋아. 쿨해지자. 쿨Kool해지는 거야.”

누군가 내 말을 들었다면 ‘어? 쿨의 약자는 Cool아닌가요?’라고 태클을 걸겠지만 난 상큼하게 그 발언을 무시할 것이다. 그도 그럴게, 쿨을 Kool로 적는다고 지구 멸망하는 것도 아니잖냐. 사람이 독창성이 있어야지.

“근데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었더라?”

아 참! 이런 병신 같은! 지금 자고 일어났는데 본 적도 없고 와본 적도 없는 곳인데 내가 지금 스펠링 생각할 때가 아니지? 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봤다.

녹음이 우거진 곳. 엄청난 규모의 나무와 수풀이었다. 나무는 하나 같이 식물원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와 두께를 지닌 초대형 급 나무였으며 위에는 붉은 뭔가가 달려져 있었다. 사과인가? 근데 잠시만. 사과나무가 저렇게 무식하게 컸나? 이렇게 많은 나무를 보니 여긴 마치…….

“숲이잖아.”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래. 숲이다. 숲? 나무나 식물 많이 자란, 평소에 가볼 일도 없는 곳 말하는 거지? 근데 왜 내가 일어나자마자 숲에 있지?

내가 서있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잠시만. 잠시만. Wait a minute.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보자. 난 조금 전의 스펠링 장난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잡고 현재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Q. 난 지금 어디에 있지?

A. 숲이다. 근데 이렇게 보니 장난 아닐 정도로 높은 나무다. 땅에 떨어진 잎들은 하나 같이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보다 훨씬 더 크다. 이렇게 잎이나 높이가 비정상적인 나무가 주변에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아이쿠,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군. 난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Q. 왜 네가 여기 있는 건데?

A. 그걸 알면 내가 여기서 이렇게 생각과 대답을 혼자 하진 않겠지? 게다가 중요한 건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나이 27살짜리 청년을 누군가 숲에 버려두고 갔다고? 자고 있는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그게 말이 되냐? 무슨 솔리드 스네이크도 아니고 원.

그런 임무는 특수부대라도 불가능할 것 같다. 더군다나 특수부대라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문이고 창문이고 다 부수고 사람을 데려간다면 모를까, 대체 뭐 하러 나 같은 놈을 여기에 놓고 가겠냐?

생각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봤다. 너무나도 조용하다. 여기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새의 울음소리나 저 멀리서 아주 약간씩이지만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가 그나마 이 정적을 방해하지만, 솔직히 저 소리들은 이 숲의 분위기를 더욱 더 조성시킬 뿐이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10m는 가뿐하게 넘는 나무. 성인의 머리보다 더 큰 초록색 잎.

“……설마.”

에이, 설마. 난 고개를 저었다. 그렇고말고. 아무리 예상외의 상황이라지만, 내가 자기 전에 생각했던 단어가 계속 떠오른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진짜 판타지 세상은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판타지 세상이라니. 아니, 뭐. 어, 솔직히 말해서 하도 현실이 좆같고 갑갑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은 있었다. 그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욕구는 누구나 가지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갑자기 판타지 세상에 오다니. 소설책에서 흔히 보이는 금화를 줍는다거나, 무슨 이벤트를 거친 것도 아니다. 헌데 자고 일어나니 내가 가고 싶어 했던 판타지 세상이라고?

하하, 설마. 도서관에서 잠들기 전뿐만 아니라 늘 ‘아, 시발! 내가 판타지 세상에 가게 된다면 9클래스 마법이나 소드 마스터 검기 같은 거 난사하면서 아주 하렘을 건설할 텐데!’같은 걸 생각했던 게 한두 번인 줄 아냐?

내가 그토록 바랐을 때는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눈을 뜨고 일어나니 갑자기 판타지 세상에 도착했다고?

진정하자고 생각했지만, 이미 내 뇌는 ‘너는 지금 판타지 세상에 소환됐다’라는, 최악의 결과를 확정지은 상태 같았다. 내가 이미 판타지 세상에 왔다는 걸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겠지.

그래도 난 부정했다. 세상을 오래 살다보면 ‘상식’이라는 게 생기고, 그 상식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굳기 마련이다. 판타지 세상이라니.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자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었다. 어른이 되니 ‘판타지 세상? 그런 게 어디 있어? 살아가기 바쁜데. 그런 거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아, 영어 배우자니 존나 어렵고. 근데 영어도 안 되면 어디 중소기업도 못 가는데……’ 같은, 삭막한 생각만 했었지. 판타지 세상의 존재유무(存在有無)라고? 거론할 가치조차 없었다.

《사사삭》

“흡!?”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놀라며, 평상시에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단말마를 지르며 난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분명히 뭔가 움직이는 소리였는데? 난 내가 가진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아, 물론 그렇다고 내가 촉각이나 시력을 몇 백배나 강화시킬 수 있는 초능력자라는 건 아니다. 그럼 오죽 좋겠냐만은─주변을 둘러봤다. 뭐지? 방금 분명히 뭔가……움직이며 수풀 같은 걸 지나는 소리가 들렸는데?

《사사삭……》

내 목을 시작으로 몸 전체에 닭살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사람이 이런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드는, 일종의 생존본능이 이토록 충실하게 발동되다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난 곧바로 주변에 있는 수풀을 봤다. 옳지! 저 정도라면 내가 들어가도 괜찮겠다! 난 곧바로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수풀을 가르며 다가오는 소리는 적어도 여기와는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였기에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수풀 속은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무언가를 보거나 상황을 관찰하는 편에 있어서는 절호의 위치였다. 난 당장 나올 것 같은 비명을 억누르며 현재 상황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숨는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도망 안 치면 죽으니까」

그저 그 한 마디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공포영화나 좀비영화에서 무언가 수상한, 적어도 인간으로 인식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낀 사람밖에 못 느끼는 일종의 위험감. 그리고 나는 지금 27년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그 느낌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거다.

사삭거리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내가 숨은 수풀의 정중앙보다 약간 오른쪽. 북동쪽에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소리의 정체가 조금씩 보였고 나는…….

“……흐읍!”

남은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손을 감쌌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런 병신 같은!?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호랑이도, 사자도. 심지어 곰도 아니었다. 그건……괴물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성인 남자가 네 발로 땅을 짚었을 때……그래, 마치 개가 걷는 것 같은 포즈를 한 녹색의 괴물이었다. 등에는 아무리 봐도 좋은 형태로 보이지 않는 매끈한 촉수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다. 눈은 흰자였지만 그 흰자 속에는 붉은색 안구가 홱홱 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세상에……세상에 맙소사! 난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

…………

………………

여긴 정말 판타지 세상이었어!

이런 시발!

오오 신이여!!

난 평소에 믿지 않았던 신을 마음속으로 애타게 찾았다. 신이시여, 부탁드립니다! 이건 악몽이라고 말해주세요! 지금 당장 이 악몽에서 깨어난다면 평생 동안 신에게 봉사하겠습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할 정도로 난 패닉에 빠져있었다.

곧 녀석은 자기가 나온 곳과는 반대 방향인 북서쪽으로 그 몸을 옮기기 시작했고 난 그 괴물이 모습을 완전히 감춘 지 5분이 지난 후에도 수풀 속에서 내 입을 막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세, 세상에……말도 안 돼.”

인간이 위험에 처하면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실어증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지니 실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나 기력조차 없었다.

말도 안 돼……방금 그거, 생물이지? 아니, 생물이 아니라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초록색 성인남자 크기에 등에 촉수를 달고 다니는 괴물이라고? 그건 대체 어느 나라 어느 동네에서 개발한 유전자 변형 생체병기인 거냐? 응? 차라리 좀비영화에 나오는 좀비가 더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손으로 억누른 나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봤다. 아냐……여기에 조금 전의 그 녀석과 같은 위압감을 느끼지는 못하겠다. 적어도 이 주변에는 없다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수풀에서 나올 엄두는 나지 않았다. 조금 전의 그 괴물과 맞닥뜨린다면……죽음뿐. 그런 것이 절로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 그래! 해, 핸드폰……!!”

난 그때서야 생각이 난 문명의 이기를 입으로 내뱉었다.

핸드폰! 핸드폰이 있다면 지금 여기가 어디든 간에 경찰이나 구급차를 부를 수 있을 거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은 현실도피였다는 것을 난 나중에 깨달았다. 이런 판타지 세상에서 핸드폰 따위를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허나 그 당시의 나는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매달리지 않으면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패닉에 빠져 있었기에, 그런 상세한 부분까지 생각할 여력(餘力)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난 허겁지겁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일어나서 한 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넋을 놓고 정신줄도 놓아버리는 행동이었다니. 실로 쪽팔리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이해하자. 사람이란 게 너무나 엄청난 일을 겪으면 기본적인 것조차 잃어버린 채 행동하기 마련이니까.

내가 입고 있는 옷은 계약직일 때 자주 입고 나갔던 파란색 바지(청바지는 아니다)와 파란색 와이셔츠. 그리고 초록색 코트였다. 시발! 왜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없는 거냐고!? 핸드폰만 있었더라면……!! 적어도 여기서 어떻게 움직이거나 구조를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매정하며 현실적이다. 비어있는 두 주머니는 ‘지금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헛지랄 그만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나한테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고, 난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두 손으로 다리를 때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시팔!”

결국 난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땅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약간 시원한 느낌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그 괴물이 나타났을 때부터 계속 수풀 속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있었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그런 자세로 있었던 건지 상상도 안 가는군.

“……응?”

난 눈을 비볐다. 뭐지? 헛것인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약 30cm 정도 되는 거리 앞에 뭔지 모를 붉은 빛이 보였다. 조금 전,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 괴물을 봐서일까.

‘어? 뭐야 이거? 왜 저게 하늘에 둥둥 떠 있지?’라며 오두방정을 떨거나 하지는 않았다. 너무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 사람의 신경이나 정신이 둔해진다는 소리를 오늘 경험하는구나.

가만히 떠있을 뿐인 빛에 손을 뻗었다. 어째서였을까? 이런 정체 모를 숲에서 괴물을 보고, 눈앞에는 빛이 둥둥 떠 있는 비현실(非現實)에 조금이라도 적응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그 붉은 구체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였을까.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이유를 내포한 채 다가가는 내 손가락은 곧 그 구체를 건드렸고, 구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난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진짜 놀라야 하는 것은 바로 그때부터라고 말이다.

붉은 구체가 사라진 지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나타난 것은 사각형이었다. A4용지를 가로가 길게, 세로가 짧게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스크린에 몸을 움찔거렸다. 사각형의 스크린은 초록색을 띠고 있었고 그 앞에는 뭔지 모를 구체와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어, 어?”

조금씩 스크린은 깔끔해지기 시작했다. 그래프가 사라지고, 안에 있는 글자들이 정돈되기 시작하는 걸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거, 어디서 봤는데. 어디였더라. 어어?

아, 그래 맞아!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트노벨 원작의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비슷한 걸 봤었지! 주인공들이 손을 스윽 허공에 내리니 메뉴창이 촤라락 열리는 게 멋있었지.

그러고 보니……인터넷 소설 사이트 조아라에서 소드 아트 온라인에 마법사가 나오는 팬픽을 적던 사람이 기억난다. 주인공이 병신 같아서 꽤 즐겁게 봤었는데 연재중지가 됐었지. 제목이 「S.A.O - 마법사 이야기」였었지 아마. 그 작가는 지금쯤 뭐하고 있으려나?

내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나타난 건 아니지만, 곧 나타난 글자는 연재중지가 된 소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박살내기에는 아주 충분했다.

[어서오세요, 하렘 어드벤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설의 용사님.]

판타지 세상에 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잊을 수 없는 그 날(日).

……나는 전설의 용사가 됐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본편으로 들어갔습니다. 프롤로그야 그렇다 치더라도 실제로 유료연재를 하니 좀 긴장되네요. 여러 모로 부족한 부분도 많고 어설픈 전개도 보이지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깨알 같은 팬픽 광고 + 작가 디스가 들어가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소아온 팬픽과 이 소설에 나오는 신세린은 동명이인(同名異人). 이름만 같지 알맹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혹시나 오해하거나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적어둡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선작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을 최선을 다해 쓰겠습니다. 코멘트나 추천, 선작. 모두 다 환영하니 꼭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