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어드벤처–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1화 (프롤로그) (1/235)

00001 「프롤로그」 =========================

쓰레기. 그게 자기 인생에 대한 단적인 소감이자 완벽한 요약이었다.

신세린(申世潾)은 그렇게 생각하며 읽은 책을 다시 뒤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간이었다. 빌어먹을, 공무원 공부 따위 개나 주라지. 제일 싼 공무원 교재를 선택했지만 이마저도 6만원을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나중에 찾아봤는데 자기가 고른 게 제일 안 좋은 교재라는 걸 깨닫자 어이가 없었다.

1년 남짓의 계약직 기간이 끝날 무렵. 정확히는 계약이 한 달 남았을 쯤에 높은 분으로부터 ‘우리는 너보다 더 자격증 많은 여직원 뽑을 거임. 재계약(再契約)? 그런 거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언젠가 계약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거의 1년이나 다닌 계약직이었다. 그걸 겨우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해고 통지를 받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현실은 소설보다 기이하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지금 생각해도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좆같은 대한민국에서 돈 없고 혈연/지연/학연. 흔히 말하는 ‘빽’이 없는 건 죄였다. 물론 그건 인정한다만, 그 좆같은 상황에 내가 부합(符合)되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계약직을 마친 후에는 정말 마음먹고 영어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그런 자기를 가만히 놓아주지 않으셨다. 대학 다닐 때 제대로 된 응원이나 지원은 안 해줬으면서 ‘너한테 빚이 4500만 원 정도 있단다! 빨리 일해서 갚아야지!’ 같은 말을 지껄였다.

사천 오백만원? 4500만!? 시발, 그게 동네 늬집 똥개 이름이냐? 아니,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이제 와서 말을 하는 걸까? 그것 또한 자기 인생을 쓰레기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누구는 졸업 선물로 자동차 선물 받고, 최신형 게임기 선물 받고. 아니, 하다못해 ‘졸업 선물’이라는 형태로 무언가를 받았다. 근데 나는 대학 다닐 때에도 별로 지원을 못 받았는데 이제 와서 빚을 선물로 받았다고? 참 웃기다 못해 기이한 인생이다.

앞서 말했지만, 그 좆같다 못해 기이한 인생이 내 것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지는 않았을 거다.

그 결과, 영어 공부 따윈 꿈도 못 꾼 채 2016년 1월 초. 처량하게도 도서관에 앉아 공무원 공부나 하고 있는 노릇이다. 근데 빌어먹을 부모님께서는 정말 중요한 걸 잊고 계신다.

내가 공무원 공부 하고 싶다고 했냐? 아니, 내가 빚을 만드는 데에 일조(一助)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멋대로 일을 벌여놓은 마당에 왜 나보고 갚으라고 지랄이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빚이 생긴 이유도 참 가관이었다. 좋은 집을 샀기 때문이었다. 이사할 때는 ‘이런 집에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통수를 칠 줄이야. 한 마디로, 아예 나한테 빚을 갚게 할 생각으로 저지른 거였다.

빌어먹을, 지름신이 강림할 거 같으면 자기들 능력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걸 질러야지. 아들한테 왜 자기들이 싸놓은 똥을 치우라고 지랄을 하는 거야?

안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해서 미치겠는데, 이젠 빚 갚으라고 공무원 공부를 하랜다. 당연한 소리지만 내가 산 책도 내 돈으로 산 거다. 한심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웃겼다. 뭐가 웃기냐고? 전부 다. 계약직에서 단숨에 잘린 것부터 포함해 부모님의 병신 짓. 아무런 죄도 없는데 갑자기 갚아야 하는 빚. 그리고 공무원 공부. 전부 다 웃겼다.

그것뿐일까? 최근 들어서는 나라, 정부, 대통령. 전부 미쳐 돌아가는 중이었다. 독재로 유명한 대통령의 딸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로 온갖 병신 크리티컬 급의 삽질을 터뜨렸고, 그 덕분에 이 나라는 더욱 살기 힘들게 됐다.

빈익빈부익부가 더욱 극렬하게 나타났으며, 이 와중에 정경유착(政經癒着) 현상은 더욱 더 심해졌다. 오직 가진 자들만을 위한 법안 등이 통과됐으며, 여당과 야당은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더욱 병신 같았던 건, 그런 와중에도 자기들한테 도움이 된다 싶은 법안이 있으면 모두 사이좋게 그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거였다. 결국, 자기들 밥그릇 싸움 하느라 바쁠 뿐이지 그놈이나 저놈이나 다 같은 개씨발놈들이라는 거다.

청년 취업은 더욱 더 하향세를 타고 있는데 비정규직 / 계약직을 양산시키는 법안이나 통과시키려는 여당. 그리고 ‘너희 청년이 그렇게 힘든 건 너희가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안 해서 그런 거란다!’라고 지껄이는 병신 같은 대통령과 똘마니들.

그리고 그런 대통령과 똘마니들을 보며 자기들 자지를 어루만지며 자위하는 노인들을 보니 이 나라에 정말 미래가 있는 걸까 싶었다.

“다 뒈져라, 병신들.”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사실 있었다 치더라도 이 목소리는 안 들렸을 거다. 정말 전부 쓰레기 같았고 좆같았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빚을 갚게 된 것부터 시작해 공부조차 내가 원하는 걸 못하게 된 상황.

안 그래도 힘든 현실을 짓밟고는 ‘현실이 어려운 건 너희가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을 안 해서 그런 거다!’라고 외치는 병신 같은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향해 힘차게 좆물을 뿜어내는 노인들.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좆같은 상황에 놓여야만 하는 자기 인생. 세상. 모두 다. 전부가 쓰레기였고 개씨발좆이었다.

이런 와중에 하고 싶지도 않은 공무원 공부가 어지간히도 눈에 들어오겠다 시발.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폰을 켰다.

핸드폰에 넣어둔 19금 판타지 소설을 보니 하반신이 부풀어 오른다. 제기랄, 나이 27살에 아직 섹스도 못 해봤다니. 30살 넘으면 정말 마법사 되는 거 아냐?

농담 삼아 나오는 말이지만, 솔직히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생식기 같은 세상에서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면 더 즐거울 테니까.

젠장. 나도 판타지 세상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가질 법한 욕구를 어른이 되어서도 가진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로맨틱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쓰레기 같았다.

로맨틱하다는 면으로 보자면 그 순수함을 잃지 않고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만, 현실보다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로 해석한다면 쓰레기니까.

그래도 이해해줘야지.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할까? 나도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무쌍을 찍고 싶다. 소드 마스터도 되고 9클래스 마법도 뻥뻥 쏴보고.

그리고 여자를 마구 후려 하렘도 만들고 싶었다. 오해가 생길까봐 미리 말해두지만 하렘(Harem)이다. 할렘(Harlem) 아니다! 흑인 형들이 권총을 쏘아대는 할렘에 가고 싶으면 너나 가라. 난 하렘 갈 거다.

현실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하렘도 판타지 세상에 가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아아,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수많은 여자들이 내 품에 안기려고 앙탈부리는 걸 생각하니……후후, 그. 상스럽지만……「발기」……해버렸군……후후!

그뿐이랴? 판타지 세상에 가면 엘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다양한 여자들이 가득하겠지! 공주, 엘프, 마법사, 도적, 격투가 등! 크으으으읏!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만나는 족족 이벤트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간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섬씽(Something)이 발생하고, 그걸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되지.

판타지 소설 같은 곳에서 나오는 말로 표현하자면……알아서 다리를 벌려주게 되어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겪고 싶어 하는 이벤트가 가득한 이상향! 낙원! 최고의 파라다이스가 아니겠는가?

뭐? 아무리 남자라지만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생각을 하냐고?

야,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그런 이상향(理想鄕)이 있다면 누가 안 가고 싶겠냐? 남자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겠지. 무릇 나뿐만 아니라 100명 정도 남자들을 세워놓고 ‘이런 곳에 갈 수 있는데 가실래요?’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간다고 할 거 같은데?

근데 시발 왜 내 앞에 그런 세상은 안 펼쳐지고, 엿 같은 공무원 교재가 날 반기는 걸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

두꺼운 공무원 공부 책을 베개로 삼으니 높이가 절묘했다. 이 빌어먹을 종이 쪼가리들의 집합체는 정말 짜증이지만, 베개로써는 안성맞춤. ‘킹 오브 베개’의 칭호를 수여받아도 모자람이 없을 거 같았다.

힘든 세상에 대한 경멸과 피로 +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 책 보면 오는 수면욕.

3박자가 어울려 나한테 ‘얼른 처자지 않고 뭐하냐?’라고 권유했고, 나는 그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뭐 어때. 어차피 공무원 공부는 포기 상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공무원 공부하면서 영어나 다른 외국어나 알아보자. 그래도 일단 영어부터 잘 할 줄 알아야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잠이 들었고, 그때는 절대 깨달을 수조차 없었다.

그게 내가 현실 세상에서 한 ‘마지막 생각’이라는 사실을…….

† † † † † † † † † †

“후, 후후……!! 이번에는 아닐 거야……그래, 그럼 곤란하지……나한테 오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쓰레기 같은 놈들 따위는 필요 없어…….”

마치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듯한 백발이었지만,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인물은 20대에 가까운 여자였다.

“얼른 와……나한테 와……니 여행의 시작은 거기일지 몰라도, 끝은 분명 나한테 올 거야……넌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어……!!”

광신도가 지닐 법한 강렬한 시선과 말투지만, 주변은 텅 비어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내 꿈을 이루는 거야……그래, 반드시……이번에야말로 쓸모 있는 놈이 올 거야……이곳으로……!! 반드시, 꼭 와야 해……죽기 싫어서라도 와야지……그렇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든 채, 그녀는 외쳤다.

“자, 니가 13번째 주인공(主人公)이야! 이번에야말로 나한테 와! 다름 아닌 나한테! 곧 시작될 여행의 목적지이자 끝에 오는 거야! 아,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핫!”

눈물마저 흘리며 웃는 그녀의 웃음은 마치 광신도와 같았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게 소설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신세린의 여행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유료연재(노블레스 성인)를 하게 된 신세린입니다. 팬픽인 「S.A.O – 마법사 이야기」를 통해 이미 뵌 분이 계실 테니 아시는 분은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원래라면 6~8월 무렵에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개인사정이 꽤 많아 결국 11월 끄트머리에 연재를 하게 됐습니다. 뒤늦게나마 올해 안으로 올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재는 월~금 5일 간 하루에 한 편씩입니다. 토요일에는 「S.A.O – 마법사 이야기」를 한 편씩 올릴 생각입니다. 유료연재가 부담스러워서 서비스 삼아 팬픽을 올리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팬픽 내에도 비슷한 내용을 썼었구요.

유료연재의 완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짓겠지만 팬픽만큼은 완결을 장담할 수가 없어 좀 그렇네요. 지금 쓰는 소설보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 팬픽을 신경 쓰는 걸 보니 이건 이거대로 좀 웃깁니다.

어찌됐든, 한 주에 5회 업로드인 성인 소설 「하렘 어드벤처 – 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어」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즐겁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서평, 코멘트, 평가. 모두 감사히 받고 있으니 보신 후에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올리는 시간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이 점에 대해 양해 부탁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