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234화 (234/235)

234화

19. 에필로그(Epilogue)

머리에 세 가닥 뿔이 길게 자라 있는 코뿔소 크기의 마수가 소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소현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녀는 한동안 마수의 모습을 상세히 촬영하더니 곧 손에 든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측정 도구들을 꺼냈다. 겉으로 보아서는 뿔 달린 호랑이처럼 생긴 마수는 소현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몸을 만지거나 심지어 측정 장치에 달린 날카로운 바늘을 꽂아 넣는데도 꼼짝 못하고 콧김만 내뿜고 있었다.

마수의 몸길이와 체고 등을 비롯해서 마나의 양과 특성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기록하는 소현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진우가 양 팔에 각각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하나씩을 안고 서 있었다.

“여보, 조심해.”

진우는 상급 마수인 랑코의 곁에서 태연히 작업을 하고 있는 소현을 향해 걱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작업을 하던 소현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생긋 웃었다.

“당신이 확실히 마비시켜 놓은 것 맞죠?”

“응.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도중에 마비가 풀린 적 없잖아요.”

“아니, 그래도...”

소현은 계속되는 진우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에 걸쳐 랑코에 대한 측정을 계속했다. 상급 마수인 랑코가 지닌 마나의 특성과 마나량, 마나 반응 속도 등을 측정하는 일은 마수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외계 생물 학자 중에서 상급 마수에 대해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현 하나뿐이었다. 물론 남편인 진우가 적극적으로 도와 준 덕분이었다.

상급 마수의 마나를 지배해 녀석을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헌터가 진우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소현은 최근 가장 활발하게 마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학자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아빠.”

진우의 왼팔에 안겨 있던 사내아이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몸을 비틀었다.

“동현이 왜?”

“나, 저거 만져 봐도 돼?”

사내아이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랑코의 새끼로 보이는 고양이처럼 보이는 어린 마수가 있었다. 어미와는 달리 아직 이마에 뿔이 나지 않은 녀석은 겉으로 보아서는 새끼 호랑이, 혹은 다 큰 고양이처럼 보였다.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상아빛깔의 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어 어린 동현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마비가 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어미의 옆을 떠나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 혓바닥으로 랑코의 몸을 핥고 있었다.

진우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려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동현의 간절한 빛이 담긴 눈동자를 보고는 힘없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랑코는 비록 상급 마수였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그의 새끼는 크게 위험한 동물이 아니었다.

“엄마 일 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 조용하게 놀아야 한다?”

“네.”

진우가 허락하자 동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끼 랑코를 향해 잰 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에 매달려 있던 여자 아이가 몸을 버둥거렸다.

“아빠. 나도, 나도.”

진우는 어쩔 수 없이 여자 아이를 안고 있는 팔을 풀었다.

“오빠, 같이 가.”

이제 고작 세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자 아이는 앞서 간 동현을 부르며 랑코의 새끼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아이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발견한 소현이 진우를 향해 고함을 빽 질렀다.

“여보, 아이들을 이리로 보내면 어떡해요.”

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새끼 랑코는 위험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내가 잘 보고 있을게.”

“아니, 그래도...”

한 방만 잘못 맞아도 몸이 찢어질 수 있는 최강의 마수를 상대로 벌써 몇 시간째 태연히 녀석의 뿔을 두드리고 입을 벌려 속을 확인하기까지 하고 있으면서도, 소현은 정작 아이들이 새끼 랑코를 향해 달려오자 얼굴 가득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후 마수의 새끼를 더듬으며 까르륵 거리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그녀 역시 할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더니 다시 자신의 작업에 열중했다.

봄날 햇살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니코레임 행성의 어느 초원이었다.

*  * * * *

진우의 공간 이동 기술은 본래의 조르크 행성인들보다 더 뛰어났다. 그는 소현의 연구가 끝나자 가족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공간 이동을 해서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잘 다녀왔는가?”

은퇴한 콴톤 의장의 뒤를 이어 니코레임 평의회의 의장이 된 타르코스가 진우의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그의 가족을 맞이했다.

니코레임 인들은 고향을 되찾게 해 준 진우와 그의 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 보상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진우 일가족이 들어서고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저택은 일 년 내내 진우와 그의 가족이 방문할 때를 대비해서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내부에는 지구인들의 기호와 문화를 잘 알고 있는 니코레임 인들에 의해 안락하게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네. 덕분에 소현이 오랜만에 상급 마수에 대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네요. 감사합니다.”

진우의 인사를 받은 타르코스는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 말게. 우리야 그저 위치를 가르쳐줬을 뿐인데 뭐. 상급 마수를 그렇게 오래 붙잡아 놓고 연구할 수 있는 학자가 자네 부인 말고 누가 있겠나.”

진우는 그 말에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소현이 그렇게 대놓고 상급 마수들을 찾아다니며 연구할 수 있는 이유도 다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이~.”

엄마 옆에 서 있던 동현과 혜미는 타르코스를 발견하자 도도도도 달려와 타르코스의 품 안에 쏙 안겼다.

“어이쿠. 우리 동현이하고 혜미가 그동안 많이 컸구나.”

그들을 각각 한 팔에 안은 타르코스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그는 아이들을 안고 등을 토닥거리더니 문득 품 안에서 여러 개의 사탕을 꺼냈다.

“아저씨가 우리 동현이하고 혜미에게 주려고 사탕을 가지고 왔지. 자 어떤 걸 먹을래?”

그는 거실의 테이블 위에 여러 개의 사탕을 죽 늘어놓았다. 그것을 본 진우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양반이 또...

동현과 혜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사탕을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각각 서로 다른 사탕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드니?”

타르코스가 진우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네.”

둘이 합창을 하듯 그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 동현이하고 혜미는 어떤 게 마음에 들었을까?”

“색깔이 예쁜 거요.”

하지만 타르코스가 꺼내놓은 사탕의 색깔은 모두 똑같았다.

“자, 동현이하고 혜미는 이제 그만 방에 들어가서 놀자.”

소현은 아이들이 사탕을 손에 쥐자 서둘러 그들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차를 준비해 거실로 가져왔다. 세 사람은 차를 마시며 거실의 창밖으로 펼쳐진 넓은 정원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르코스가 아이들의 방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진우 자네가 처음 헌터 양성소로 테스트를 치르러 왔을 때도 크게 놀랐지만 그게 설마 유전이 될 줄은 몰랐네.”

“마나를 볼 줄 아는 능력 말입니까?”

“그래.”

“저도 몰랐습니다.”

조금 전에 동현과 혜미가 가져간 두 개의 사탕은 타르코스가 각각 음 계열과 양 계열의 마나를 실은 것들이었다. 동현이 가져간 사탕은 아마 그의 눈에 짙은 하늘색으로 보였을 것이다.

반면에 혜미는 분홍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이는 사탕을 가져갔다. 타르코스는 작년에 아이들을 향해 시험 삼아 과거 그가 구슬을 가지고 진우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장난을 쳤다.

그때 그는 아이들이 모두 마나를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을 자네처럼 헌터로 키울 생각인가?”

진우는 타르코스의 말에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엷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훈련은 시킬 생각입니다. 헌터 학교를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가족이 다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려고요. 하지만 저처럼 목숨까지 걸면서 수련을 시킬 생각은 없어요.”

타르코스는 진우의 말에 껄껄 거리며 웃었다. 그럴 것이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밀어붙이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지구에 특별히 위험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당분간은 진우가 있었다. 최상급 헌터만 해도 백 살이 넘게 사는 세상이었다.

이미 지배의 단계에 오른 것이 확실한 진우가 앞으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에 최상급 헌터가 한 명 더 나왔다면서?”

“네. 김상곤 형님이 드디어 최상급 헌터가 되셨어요. 화정 누님이 엄청 기뻐하시더라고요.”

“부인께서는 아직 상급이 될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까??”

소현은 갑자기 자신에게로 화살이 돌아오자 당황해서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제 나이에 중급만 해도 너무 빠른 거예요. 게다가 요즘은 수련도 많이 못하고 있는데요.”

진우는 소현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일이 년 안에 아마 상급에 도달할 겁니다. 이미 마나는 충분하니까요. 본인이 조금만 노력을 하면 될 거에요.”

“아마도 자네가 많이 도와주었나 보군.”

타르코스의 말에 소현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요즘도 진우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소현의 마나 움직임을 조정해주고 자신의 마나를 나누어 주었다. 지배의 단계에 든 그는 그녀의 몸에 손을 대지 않고도 마음만으로도 이미 그런 일이 가능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갈 생각인가? 당분간은 아이들하고 함께 가족들이 모두 움직일 생각이라면서?”

타르코스의 질문에 진우가 자신의 헌터 패드를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그들의 가족이 당분간 다닐 곳의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일단은 케이튼으로 가보려고요.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 아직 한 번도 그곳을 들르지 못했거든요. 조세연 박사님이 그렇잖아도 아이들 좀 데리고 놀러오라고 성화세요.”

그의 헌터패드에는 그 밖에도 무니악과 이니스프리, 조르크 행성 등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하나하나가 진우에게는 고난의 기억과 애틋한 추억이 함께 깃든 곳들이었다.

목록을 살피는 진우의 손 위로 소현의 손이 살며시 뻗어왔다. 진우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소현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타르코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다 자라면 지구에서... 아니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강한 가족이 될지도 모르겠군.’

니코레임의 하늘 위로 저녁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  * * * *

“또 진우 생각이냐?”

세자베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글로다이트의 국왕이 되었다. 그의 즉위 축하 연회에 참석한 카딘은 정해진 행사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발코니에 나와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세자베는 잠시 연회장을 빠져나와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망연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카딘은 이제는 국왕이 된 오빠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살짝 맺혀 있었다.

세자베는 카딘의 옆에 나란히 서서 그녀처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별들 중의 어느 한 곳에 진우님이 있다는 지구라는 행성이 있을까요?”

독백을 하듯 내뱉은 카딘의 말에 세자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글쎄다. 그의 행성이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에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카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곳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후세에는 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천하의 악당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얼마나 대응을 잘 하느냐에 달렸겠지요?”

“그래. 하지만 지금도 술사와 용사의 기술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카데미를 통해 속속 나오고 있으니 늘어나는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거다. 이대로 가면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카딘은 세자베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고 싶으냐?”

그녀는 오빠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맺혔던 눈물이 기어코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언젠가는... 우리도 저 우주 밖의 행성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래. 우리도 언젠가는...”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동쪽 하늘에서 새로운 별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을 담고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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