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220화 (220/235)

220화

지구의 콴톤 의장이 보내온 좌표에 따라 라우라 마을에 도착한 벨라토르는 진우와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비카리토 촌장의 집을 찾았다. 그가 도착한 시간은 해가 막 지려던 때라서 비카리토 촌장은 마침 마루에서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누구시요?”

점잖은 목소리였다. 벨라토르는 조르크 인들과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는 벨푸의 지시에 따라 비카리토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블리젠이라는 행성에서 온 벨라토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야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곳은 나 혼자 사는 집이요.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소만?”

“진우라는 지구인입니다. 그가 지금 이곳에 없습니까?”

진우를 찾아왔다는 말에 비카리토는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외계인이 자신의 집에서 진우를 찾으니 조금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자신을 찾아왔는가?

조르크 행성은 외계인들이 많이 찾는 행성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평생을 사는 동안 외계인을 한두 명 만나는 것만 해도 흔치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외계인이 두 명이나 자신을 찾아왔다.

게다가 나중에 온 외계인은 팔다리가 여섯 개나 되는 것으로 보아 절대로 진우와 같은 행성에서 온 자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어째서 진우를 찾는다는 말인가?

“손님이 무슨 일 때문에 진우를 찾는지는 모르겠소만, 아쉽게도 진우는 이미 며칠 전에 이곳을 떠났소. 꼭 만나야 하는 일이 있었다면 조금만 더 일찍 올 것을 그랬소.”

비카리토의 말을 들은 벨라토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읽은 자료에 의하면 조르크 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우가 정말로 이곳을 이미 떠난 것으로 보아야 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진우는 디키오로 갔소.”

“디키오라는 곳이 이 섬에 있는 다른 마을입니까?”

벨라토르의 말을 들은 촌장은 그가 조르크 행성에 대해 진우만큼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디키오는 조르크 행성인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외계인은 디키오라는 지명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오. 디키오는 다른 섬에 있소. 이곳에서 아주 먼 곳이요.”

벨라토르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고 말았다. 그럴 수가. 일이 골치 아프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키오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곳이 이 섬 위에 있는 다른 마을이 아니라면 자신으로서는 찾아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진우라는 사람은 어떻게 그곳을 간 것입니까?”

“어떻게 가기는. 그야 당연히 제 발로 갔지요. 그 친구는 나에게서 공간 이동 기술을 배워 직접 그곳으로 건너갔소.”

“어... 그가 공간 이동 기술을 배웠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벨라토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도 공간 이동 기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한 그 기술은 외계인이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올 때도 설마 진우가 다른 섬으로 움직였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공간 이동기술을 배워 다른 섬으로 갔다는 것이다.

벨라토르는 자신의 신세가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음을 직감했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비카리토 촌장에게 물었다.

“저기, 그럼 혹시 저를 디키오라는 곳으로 데려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비카리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곳이 비록 손님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허락된 장소도 아니오. 정 가고 싶다면 댁도 진우처럼 공간 이동 기술을 배워서 가야 할 거요.”

벨라토르의 얼굴 위로 암담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벨푸의 명령에 따라 반드시 진우에게 전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한데 지금으로서는 그를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혹시 디키오라는 곳의 좌표를 아십니까?”

그는 여차하면 일단 블리젠 행성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포털을 이용하여 디키오로 직접 찾아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비카리토의 말에 그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좌표? 그게 뭐요?”

벨라토르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  * * * *

대전 시 외곽을 따라 헌터 아파트로 향하는 도로는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헌터 아파트 부근에는 다른 주택가가 상가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헌터들도 대개는 다른 행성으로 헌팅을 나가있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소현이 헌터 종합 병원에 연락해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그를 도와줄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최현과 박화정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그들은 헌터 종합 병원으로 바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집이 서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구급차가 도착하기를 넋 놓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조승운의 상태가 너무나 위중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왼쪽 배를 뚫고 지나간 밀레스의 창은 창자를 짓뭉개 놓았다. 다행히 간이나 신장과 같은 주요 내장 기관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출혈이 너무 많았다.

“할아버지, 제발.”

부상을 당한 사람이 최상급 헌터인 조승운이 아니었다면 숨이 끊어졌어도 진즉에 끊어졌을 것이다. 배를 관통해서 구멍이 뚫렸으니 지금까지 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안 돼요.”

소현은 몸속의 마나를 전부 동원해서 조승운의 배를 치료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다행히 출혈은 멎었지만 조승운의 안색은 이미 창백했다.

그는 밀레스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은 뒤 긴장이 풀리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소현은 그의 손상된 내장기관을 회복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마나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조승운의 맥박은 점점 느려졌다.

소현은 조금 더 열심히 치료 기술을 수련하지 않았던 것을 지금처럼 후회한 적이 없었다. 수련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솜씨가 좋은 중급 치료형 헌터가 둘이나 있었다. 케이튼 행성의 조세연 박사야 다른 행성에 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박화정은 이따금씩 자신에게 와서 수련을 조금 더 하라고 권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소현은 웬만해서는 대전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진우 때문이었다.

김상곤의 곤 클래원들을 따라 사냥이나 탐사를 나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현이 따라 나섰던 헌팅은 대개 안전하기 이를 데 없는 가벼운 것들이었다. 그녀가 진우의 여자 친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김상곤이 조금이라도 위험이 예상되는 사냥에는 소현을 데리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소현이 참가했던 헌팅에서는 부상을 당한 클랜원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던 적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녀가 치료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박화정은 가끔씩 대전을 오가면서 그녀에게 치료 기술을 가르쳤다. 그 외에는 소현은 헌터 아파트의 수련실에서 혼자만의 수련을 해왔었다.

그것이 지금은 너무나도 후회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한국 최고의 헌터이자 진우의 스승인 조승운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그를 살릴 능력이 없었다.

“살려야 해. 내가 반드시 살려야 해.”

소현은 조승운의 배에 손을 올리고 계속해서 마나를 퍼부었다. 외상을 치료하거나 출혈을 멈추게 하는 것과는 달리 손상된 내장을 회복시키거나 잘린 손발을 잇는 기술은 중급 헌터 이상이어야 가능했다.

자신은 아직 그런 기술을 쓰지 못했다. 기술 자체야 이미 완벽하게 배워서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헌터의 기술이란 단지 방법을 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마나를 그 기술에 맞게 운용할 수 있어야 했는데, 소현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마나는 충분했다. 진우가 지구에 들를 때마다 한 번씩 그녀의 몸에 있는 마나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자신의 마나까지 일부 옮겨주었기 때문에 그녀의 몸에는 이미 중급 헌터가 되기에 충분한 마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현은 그 많은 마나를 자신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운용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제가 반드시 살려드릴게요.”

그녀의 머리에 진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에 지금 조승운이 죽어버린다면 다시는 진우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정신을 조승운의 뱃속에 집중시켰다. 미친 듯이 마나를 퍼붓기만 하던 그녀의 마나 움직임이 조금씩 조승운의 마나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맥박이 조승운의 맥박에 맞춰 느려졌다. 그와 함께 조승운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간 마나가 그녀의 심상에 엉망이 된 그의 뱃속 모습을 보여주었다.

‘찢긴 창자를 아물게 하고 이물질을 밖으로 배출시켜야 해.’

내장이 터질 경우 배안은 이물질로 엉망이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럴 경우 배를 열어 뱃속에 퍼진 이물질을 제거해야 했는데, 그것은 외과 수술 중에서도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에 속했다.

출혈과 쇼크에도 대비해야 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중급 치료형 헌터라면 그 모든 작업을 배를 열지 않고도 할 수 있었다. 만약 중급 이상의 치료형 헌터들의 수가 많고, 그들을 응급실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급 치료형 헌터들은 헌터들의 사냥 팀에도 흔치 않을 만큼 귀한 존재였다.

소현은 박화정에게서 배운 대로 자신의 마나와 조승운의 마나를 동조시켜 그의 내장이 스스로 자신을 재생시키면서 상처를 치료하게 유도하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지금까지 실제로 중한 환자를 치료해 본 경험도 없었거니와 중급에 맞는 마나 운용마저도 제대로 성공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소현은 절박했다.

당장이라도 응급차가 도착한다면 모를까, 지금 조승운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과 조승운의 목숨을 맞바꿀 수 있다면 그마저도 마다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소현이 조승운의 배에 손을 얹고 정신을 집중시킨 뒤 5분가량이 지났을 때, 그녀의 몸 주위에 우윳빛의 서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진우와 비슷한 색깔이었다.

그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에서 뻗어 나온 서기가 조금씩 조승운의 몸을 감싸더니 두 사람의 몸을 완벽하게 이어주며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조승운의 찢어진 내장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던 실혈이 멈추면서 조금씩 재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마나를 받아들인 조승운의 몸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복구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  * * * *

소현이 한창 조승운의 몸을 치료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져있을 때 헌터 종합 병원 소속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엉망이 된 두 대의 차량을 지나쳐 조승운이 쓰러진 곳 근처에 구급차를 세웠다.

들것을 든 응급 요원들이 도로 위에 쓰러져 있는 조승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응급 요원 가운데 한 명이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멈춰.”

들것을 들고 뛰던 응급요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 기다려. 지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헌터 종합 병원에는 가끔 큰 부상을 입은 헌터들이 실려 오는 일이 있었다. 그런 경우 드물게 치료형 헌터들이 응급차에 같이 올라타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부상당한 자신의 동료를 치료하기도 했었다.

소리를 지른 응급 요원은 그런 장면을 두어 번 목격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소현이 조승운을 치료하는 모습이 예전의 경험과 유사했다.

응급 요원 교육을 받을 때 교관 가운데 한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치료형 헌터들 가운데에는 자기 동료들 치료하는 도중에 각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럴 경우 헌터의 몸 밖으로 서광이 비친다.”

그 교관이 말했던 모습과 지금 소현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했다. 교관이 보았다던 서광은 오렌지색이었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우윳빛이었다. 하지만 분명 서광이었다.

“그럴 때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자칫하면 치료하는 헌터는 물론 환자도 모두 위험하다. 서광이 모두 잦아들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한다. 반드시 명심하도록.”

만약 그 교관의 말이 옳다면 지금 저 두 사람은 지금 건드리면 안 되는 상태였다. 그는 초조함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도로 위에 있는 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각성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소현의 각성은 5분 만에 끝났다. 그동안 조승운의 내장은 간신히 구멍을 메웠지만 아직 뱃속의 이물질을 완전히 밖으로 배출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소현이 조승운의 배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자 재빨리 응급요원들이 조승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조승운을 구급차에 싣는 것을 본 소현은 그제야 자신이 타고 왔던 무중력 차량에 올라타 구급차를 뒤따랐다.

몸이 바닥에 가라앉을 듯이 피곤했고, 부러진 자신의 다리는 아직 치료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각성의 효과였다.

*  * * * *

“어떻게 됐어?”

미리 도착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던 박화정을 향해 허겁지겁 뛰어온 김상곤이 물었다. 조승운이 입원한 특실 밖에서 면회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박화정은 김상곤을 향해 입술에 손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했다. 급히 목소리를 낮춘 김상곤이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스승님은 어때? 괜찮으시데?”

박화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큰 상처였는데 다행히 내장이 빠른 시간 안에 회복이 되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시데요. 병원에서 수술을 해서 뱃속에 고인 피와 이물질을 모두 제거했어요. 수술이 끝난 뒤에는 저도 조금 전까지 마나로 치료를 해드렸고요. 워낙 나이에 비해 건강하신 분이니까 마취가 깨면 일어나실 거예요.”

박화정과 조금 떨어진 의자에는 소현이 벽에 등을 기대고 졸고 있었다.

“소현이는 언제 왔어?”

김상곤의 물음에 박화정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승님 내장을 치료한 게 소현인가 봐요.”

“뭐?”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김상곤이 눈을 크게 떴다. 박화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현이가 드디어 중급 헌터에 들어선 거 같아요. 앞으로 더 수련을 해서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지만요.”

“그럼?”

“소현이를 아무래도 케이튼으로 보내야 할 거 같아요. 본인이 아무리 싫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가면 조세연 박사도 있고, 또 마나도 풍부하잖아요. 지금이 중요한 시기니까 스승님이 깨어나시면 스승님한테 졸라서라도 꼭 보내야 해요. 중급 치료형 헌터는 귀하니까요.”

김상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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