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214화 (214/235)

214화

“저기 커다란 나무가 보이십니까?”

공간 이동 기술을 가르쳐주겠다던 노인은 그의 집 앞에 펼쳐진 넓은 밭 너머를 손으로 가리켰다. 밭이 끝나는 곳에 그의 말대로 제법 높이 솟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진우는 노인이 왜 그 나무를 가리키는지 몰랐지만 일단은 대답을 했다.

“보입니다.”

“그럼 저곳으로 가 보십시오.”

“걸어서 말입니까?”

난데없이 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라는 노인의 말에 진우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렇게 되물었다. 노인은 그의 물음에 빙그레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공간 이동 기술을 배우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 기술로 가야지요.”

“하지만 저는 공간 이동 기술을 알지 못합니다. 그걸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배우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는 거고요.”

“그렇군요.”

노인은 다시 웃었다. 그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진우는 그의 집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노인은 자신에게 무얼 바라는 걸까. 진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자 노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그의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의 뒤에 다소 얼빠진 표정을 하고 서 있는 진우를 힐끗 뒤돌아보았다.

노인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져 있었다.

“잘 보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노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우는 갑작스럽게 펼쳐진 공간 이동 기술에 깜짝 놀랐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밭 너머의 나무로 돌렸다. 거기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노인이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친...”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다가 흠칫해서 얼른 입을 다물었다.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데에는 이보다 더 멋진 깜짝쇼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노인은 밭두둑을 돌아 자신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너무나 한가롭고 여유가 있었다. 시골의 촌장임에도 불구하고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옛 그림 속의 신선이 노니는 것 같았다. 보기는 좋았지만, 덕분에 진우는 한참을 노인의 집에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잘 보셨습니까?”

노인은 마루에 올라와 다시 의자에 앉으면서 진우를 향해 물었다.

“뭘.... 말입니까?”

“방금 보여드렸지 않습니까. 공간 이동 기술이요.”

기가 막혔다. 물론 그랬지. 사전 경고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밭 건너편의 나무 아래에 나타났으니까. 보기는 봤다. 하지만 그게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노인은 도대체 뭘 봤냐고 묻는 걸까?

“저기... 갑자기 사라져서 밭 건너편에서 나타나신 것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잘 봤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러실 수 있었는지를 묻는 거라면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잘 보셨군요.”

그걸로 끝이었다. 노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진우는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멍하니 자신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노인이 씩 웃으며 물었다.

“차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빌어먹을.

*  * * * *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진우는 노인이 따라주는 차를 넉 잔이나 마셨다. 차는 맛이 좋았지만 입맛이 썼다.

그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노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공간 이동 기술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나는 어떻게 운용하고 좌표 계산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가 본 적이 있는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는가? 움직일 수 있는 무게나 부피의 제한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진우의 질문을 묵묵히 듣고 있던 노인은 그의 말을 끊으면서 불쑥 물었다.

“진우님은 말을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네?”

“어릴 때 어떻게 말을 배우셨는지를 묻는 겁니다.”

진우의 입이 조개처럼 닫혔다. 말을 어떻게 배웠냐고? 그런 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어휘가 늘고 조리 있게 말을 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 어떻게 해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아니었다.

진우가 아무런 말도 없이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자 노인이 다시 씩 웃었다.

“제가 공간 이동 기술을 배운 것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그걸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냥 어느날부터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러니 저에게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달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배웠는지를 모르니 어떻게 가르쳐드려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요. 그래서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당신의 부모님이 말을 가르쳤던 방법괴 비슷할 겁니다.

그냥 보여드리는 거지요.”

아하, 그러시구나. 진우는 기가 막혔다. 얼핏 들으면 노인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사람들에게 걷는 방법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혹은 말로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왼 발, 오른 발’을 외치는 게 낫다. 그러나 코치가 올림픽 육상 경기에 내보내기 위해 선수를 훈련을 시키는 것이라면? 자신의 오랜 경험을 정교한 이론으로 다듬어 선수가 납득할 때까지 이해시키면서 훈련시켜야 한다. 마라톤 선수의 두 손을 잡고 ‘왼 발 오른 발’을 외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기... 그게 그냥 남이 하는 걸 보면 저절로 익힐 수 있는 기술입니까? 그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거 아닌가요. 설명을 약간 상세하게 해 주시면...”

“저는 그냥 보고 배웠습니다.”

말이 또 잘렸다. 이 노인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는 법이 없었다. 진우는 속으로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런 진우의 속 타는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다 그렇게 배웠고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이 조르크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마나 운용의 천재라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잖은가 말이다.

“그럼 몇 번만 더 보여주시지요. 말씀하신 대로 보고 배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진우는 끓는 속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마나를 볼 줄 알았다. 그러니 설사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그들의 몸과 밖을 운행하는 마나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서 혼자서라도 연구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공간 이동 기술은 굉장히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합니다. 다시 보여드릴 수는 있지만 그건 내일 해야 할 것 같군요. 마나가 다 떨어졌어요. 그 기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가 없거든요.”

진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  * * * *

진우는 그날부터 노인의 집에서 묵기 시작했다. 달리 묵을 곳도 마땅치 않았고, 노인이 이곳에서 지내도 되겠느냐는 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노인의 집에서 지낸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왜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도 공간 이동 기술을 배우지 못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최상급 헌터도 사용할 수 없는 고급의 기술을 어떻게 그냥 보고 배운단 말이야. 설명도 하나 없이.”

그러나 노인의 말이 거짓이라거나 무성의하다고 탓할 수도 없었다. 불과 며칠 뒤에 열 살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아이가 자신의 눈앞에서 공간 이동 기술을 이용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그 아이가 사라진 곳에서 잠시 넋을 잃고 서 있다가 황급히 아이의 집을 물어 찾아갔다.

“얘.”

꼬마 아이는 자기 집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네?”

진우가 자신을 부르자 한창 땅에다 금 몇 개를 그어 놓고 그것을 폴짝거리며 넘고 있던 아이가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너 조금 전에 저쪽에서 여기로 공간 이동 기술을 쓴 거 말이다.”

“공간 이동 기술이요?”

“그러니까 그게... 저쪽에서 이쪽으로 그냥 휙 하고 날아온 기술 말이다. 그거 어떻게 배운 거냐?”

진우의 물음에 아이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자신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냥요.”

“그냥?”

“네. 그냥 배웠어요.”

“부모님이나 누가 가르쳐 주신 적은 없고?”

며칠 동안 속을 끓이느라 워낙 답답했었다. 아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기색이 보이는 바람에 묻고 있던 진우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변하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진우는 속으로 아차 싶어 얼른 표정을 풀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걸 누구한테 배웠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그걸 말해주면 내가 맛있는 거 줄 게.”

진우는 손에서 초콜릿 바 하나를 꺼내 직접 껍질을 까서 아이에게 건넸다. 꼬마는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그의 손에서 초콜릿 바를 낚아채더니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먹었다. 울먹이던 꼬마의 표정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맛있어요.”

“그래 맛있지? 만약 네가 공간 이동 기술.... 음, 그러니까 아까처럼 휙 하고 움직이는 그 기술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지를 가르쳐 주면 방금 먹은 걸 하나 더 줄게.”

그러자 꼬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녀석은 곧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웅... 그게 그러니까... 가르쳐 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냥 배웠어요. 아무나 다 할 줄 아는 건데요?”

맥이 탁 풀렸다. 이곳에서는 아무나 다 할 줄 아는 기술이란다. 물론 그 말은 노인에게서도 이미 들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외계 행성에서 온 무수한 천재 헌터들 가운데 누구도 배우지 못한 기술이라는 게 문제였다. 진우가 막막한 기분에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데 꼬마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저씨, 그거 하나 더 주시면 안 돼요?”

진우는 씩 웃으며 품에서 초콜릿 바 하나를 더 꺼내어 꼬마의 손에 쥐어주었다.

“물론 줘야지. 근데 말이다. 나 아저씨 아니다. 형이라고 불러라.”

그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힘없이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  * * * *

노인은 하루에 한 번씩 진우에게 공간 이동 기술을 보여주었다. 아침에 밭으로 일을 나가기 전이나, 반대로 일을 끝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한 번씩 기술 시범을 보여주었다.

말이 시범이지, 진우가 느끼기에 그의 기술 시범은 그저 일상생활의 한 면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공간 이동 기술을 아침에 쓴 날은 저녁에 걸어서 돌아왔고, 걸어서 밭에 나간 날은 저녁에 집까지 순간 이동을 했다. 하지만 그 시범의 어디에도 작정을 하거나 의도했다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진우는 노인이 공간 이동 기술을 쓸 때마다 그의 몸에서 나타나는 마나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자신이 마나를 직접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가장 집중해서 마나의 움직임을 살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기술이야. 매번 나타나는 마나의 움직임도 엄청나고.”

하지만 아직도 어떻게 체내의 마나를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자타가 천재라고 칭찬하는 그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좌절이었다.

진우는 노인이 자신의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날마다 노인과 함께 되도록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둘 중의 하나겠지. 타고난 유전 인자 속에 녹아 있거나, 아니면 문화와 관습, 혹은 생활 속에 완벽하게 배어 있거나. 자신이 그걸 배우기 위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미처 느끼지 못할 만큼.”

전자의 경우라면 말 그대로 이 행성의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배울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후자라면?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먼저 배워야했다. 혹은 그들의 생활 속에 젖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진우는 이곳 사람들이 공간 이동을 쓸 수 있는 이유가 후자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