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수련을 위해 다른 행성으로 가기 위해 포털을 탈 때마다 진우는 늘 혼자서 헌터 양성소로 갔었다. 그는 지구를 떠날 때 누군가 자신을 배웅하는 것이 싫었다.
아는 이와 헤어져 검은 구멍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혼자서 저승으로 떠나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르크 행성으로 떠나는 날 아침, 그는 조승운이 운전하는 무중력 자동차를 탔다. 조승운은 아침 일찍 그와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직접 차를 몰고 진우의 집으로 찾아왔다.
“전에 한식집에서 너와 했던 이야기 말이다.”
조승운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면서 진우에게 말을 꺼냈다.
“너와 헤어진 뒤에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묻는 건데, 혹시 요즘 네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 주지 못할까봐 불안한 거냐?”
진우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승운은 조수석에 앉은 진우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닌가 보군. 그럼 소현이 때문이냐?”
“네.”
“불안하냐?”
“네.”
조승운은 잠시 동안 말없이 차를 운전하더니 다시 전방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
“소현이에 대해 네가 뭘 불안해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그 아이의 신변을 지켜주마. 다시 한 번 묻겠다. 어째서 소현이에 대해 걱정하는 거냐?”
그 말에 진우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조승운은 자신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간혹 진우 본인보다 아버지나 스승인 조승운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아무래도 플레비크 인들이 지구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놈들이 지구로 온다고? 하지만 여기는 마나가 하나도 없어서 녀석들도 싸움을 하기에는 좋지 않은 곳이지 않느냐?”
“예. 하지만 굳이 모든 지구인과 싸울 필요가 없지요. 유력한 인사들 중에 몇 명을 잡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드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진우의 말을 들은 조승운의 얼굴색이 싹 변했다.
“뭐라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들 가운데 중급 전사 몇 명만 와도 우리로서는 당해내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모두가 힘을 합해서 달려들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에요.”
조승운은 무중력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잠시 도로변에 차를 내렸다. 그는 진우에게로 몸을 돌렸다.
“니코레임인들이 이곳으로 직접 쳐들어올 가능성은 적다고 들었다. 타르코스가 그렇게 말했지. 그리고 너도.”
진우는 조승운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래서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에 확신이 가지 않았다.
“스승님. 제가 매덤 행성에 갔을 때, 플레비크 상급 전사 한 사람이 그곳에 정체를 숨기고 잠입했어요. 녀석은 그곳의 국왕을 비롯해 주요 인사 몇 명을 노예로 삼았거든요. 그리고는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지요. 저는 같은 일이 지구에서 벌어질까봐 걱정이 돼요. 특히 제 주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그들에 의해 죽거나 노예가 될까 불안해요. 플레비크 인들은 호전적인 전사지만 무식하게 싸움만 좋아하는 근육 덩어리들이 아니에요. 일대일 대결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걸 고집하지는 않아요. 그들은 이길 수만 있다면, 설사 우리가 보기에는 비겁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놈들에게는 승리가 곧 정의니까요.”
조승운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네가 보기에 그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냐?”
“상급 전사는 동조 단계에 든 자들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아니고는 지구에서 그들을 상대할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중급 전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상급 헌터 이상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힘들어요. 제법 강한 중급 전사일 경우에는 스승님처럼 최상급 헌터가 아니라면 필패입니다.
플레비크의 하급 전사만 하더라도 최현 교관님 정도가 아니면 덤벼들어봤자 애꿎은 목숨만 잃을 거예요. 그리고 플레비크에는 그런 전사들이 아주 많아요.”
“정면으로 붙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겠구나.”
조승운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네가 그냥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고, 생각해 둔 방법이 있느냐?”
“정면으로 부딪힌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끄는 방법 밖에 없어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들의 마나를 차근차근 소진시키는 거지요. 그리고 녀석들이 마나를 거의 잃을 때가 되면 지구에 있는 헌터들 모두가 합심해서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겠구나. 대부분의 도시가 폐허가 될 거고. 게다가 녀석들이 마나가 떨어질 때쯤 해서 포털을 타고 돌아가기라도 하면 시간지연 작전도 소용이 없고 말이다.”
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지만 조승운의 말이 맞았다. 조승운은 굳은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정면으로 부딪히는 게 좋지 않다면, 다른 방법은 뭐냐?”
“제가 놈들의 상급 전사를 하나씩 상대해서 없애는 거지요. 지금까지 운이 좋게 그런 방식으로 세 명을 죽일 수 있었어요. 물론 그 중의 한 명은 무늬만 상급이기는 했지만요.”
조승운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너라면 플레비크 상급 전사를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겠느냐?”
진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생각했다. 함부로 자신감을 내세울 문제가 아니었다.
“일대일이라면 이길 가능성이 많아요. 한꺼번에 둘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쉽게 지지도 않을 것 같고요. 하지만 셋 이상이라면 저도 이길 수 없을 거예요.”
“그럼 플레비크 행성으로 직접 쳐들어가는 것은 힘들겠구나.”
“네. 그곳에는 상급 전사만 해도 세 명이나 있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제가 만약 플레비크 행성으로 찾아가서 한 명을 없애는데 성공하더라도, 그 동안 다른 행성에 퍼져 있는 상급 전사들이 죄다 몰려들 거예요. 연락을 하는 데에도 포털을 이용할 테니까요.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본성을 다시는 외계인들에게 유린당할 수 없다는 강한 공감대가 있어요.”
마스바로크가 찾아와 상급 전사 다섯 명을 차례로 꺾은 뒤로 플레비크 인들은 수 백 년 동안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시는 본성을 외계인에게 능욕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는 마치 종교적 신조와 같은 것이었다.
플레비크를 직접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상급 전사 대부분을 한꺼번에 상대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니코레임에는 두 명의 상급 전사가 있다고 했느냐?”
“네.”
“그리고 너는 어차피 니코레임인들을 돕기 위해 그곳을 찾아갈 생각이고?”
“네. 약속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니코레임 행성을 되찾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네 말에 따르면 그곳에서 상급 전사를 죽일 경우. 그들에게 노예가 되어 있던 다른 니코레임인들도 모두 함께 죽는 것 아니냐?”
진우는 조승운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타르코스에게 그 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타르코스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우는 동족의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라고 해서 별다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을 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좋다. 그럼 정면으로 맞붙는 것도 아니고, 니코레임이나 플레비크로 직접 쳐들어갈 것도 아니라면,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냐?”
진우는 조승운의 말에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더니, 내키지 않는다는 듯 결국 입술을 떼었다.
“그들을 제가 있는 곳으로 부르려고 해요.”
“그들이라니요? 누구 말이냐?”
“니코레임에 있다는 두 명의 상급 전사들 말이에요. 노르호지와 벨푸라고 하더라고요.”
“그들을 부른다고? 어디로? 설마 조르크로 부르겠다는 말이냐?”
진우는 조승운의 눈을 보며 대답을 미루었지만, 그의 눈빛으로 전해지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솔직히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맞아요. 그곳에 지배의 단계에 오를 수 있는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흘려 보려고요. 제 생각에는 놈들이 그 얘기를 들으면 조르크로 올 거 같아요.”
“지배의 단계라고?”
조승운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지배의 단계라니? 그런 엄청난 비밀이 있다면 왜 그런 곳의 위치를 플레비크인들에게 알려준다는 말인가? 조승운의 생각을 짐작한 진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비밀이 있는 곳은 디카오라는 마을인데, 그곳에는 이미 플레비크 인들이 다녀갔어요.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최소한 일부는 알고 있는 사실이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비밀은 가짜이거나 최소한 플레비크 인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어요. 만약 니코레임의 두 상급 전사가 그 비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 소용이 없는 계획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반드시 조르크 행성으로 올 거예요.”
조승운은 진우에게도 나름 생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건 네가 보았다는 첼스본이라는 옛날 사람의 기록과 연관성이 있는 생각이냐?.”
진우는 타르코스에게는 하지 않았던 첼스본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조승운에게 했었다. 조승운은 자신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진우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동안 플레비크 상급 전사 녀석들이 한 명씩 찾아갔던 것은 너를 죽이려고 하기보다는 노예로 만들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지?”
“네. 그리고 갈수록 조심스러워지기는 했지만 놈들은 굳이 저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노예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해요.”
“상급 전사인 너를 말이냐?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상급 전사들 간에 서로 싸우거나 노예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 않느냐?”
“네. 일종의 금기인가 보더라고요.”
“흠... 이상하구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상급 전사를 노예로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 단순히 조금 더 강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 역시 지배 단계에 오르는 데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승운은 말을 멈추고 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생각도 그래요. 그래서 노르호지와 벨푸라는 녀석들에게 첼스본의 기록 가운데 디키오 마을에 관한 부분만 보내 보려고요. 제가 그 마을에 머물 것이라고 말을 하고 말이에요. 그러면 제 생각에는 녀석들이 그곳으로 저를 찾아올 것 같아요.”
진우의 말에 조승운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진우의 말에 담긴 그의 각오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참을 말이 없이 가만히 있더니 무중력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만약 네가 그 두 녀석을 반드시 상대해야 한다면, 확실히 니코레임 행성보다는 조르크에서 놈들과 싸우는 게 여러 면에서 더 낫겠지.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니코레임 인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될 테니까. 하지만 조르크 인들에게는 잘못하면 재앙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상식적으로는 조승운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플레비크 인들은 조르크에 대해 어느 정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점을 이용해서 그들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되도록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서 싸움을 벌이면 말 그대로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문제는 첼스본의 기록을 어떻게 놈들에게 전하는가 하는 것이에요. 만약 지구에서 니코레임으로 직접 자료를 전송하면 타르코스 소장이 금세 알아차릴 거예요.”
조승운은 진우의 말에 흐음 하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그를 향해 말을 했다.
“너 간이포털 장치에 몇 개 여유가 있다고 하지 않았니?”
“네. 플레비크 전사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두어 개 챙겨둔 게 있기는 해요.”
“그거 이번에 가지고 가지 않지? 어디에 있느냐?”
“저희 집 금고에 있어요.”
“그럼 집 열쇠하고 금고번호를 내게 주거라. 놈들에게 전송할 자료도 내 헌터 패드로 보내고. 그러면 내가 자료를 출력해서 간이포털 장치를 이용해서 직접 보내마.”
“스승님이요? 그냥 제가...”
조승운은 진우의 말을 막았다.
“지금 다시 네 집으로 돌아가기도 그러니 그냥 내가 가는 길에 너희 집에 들러서 필요한 자료를 보내는 것으로 하자.”
그는 스승인 조승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결국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시 헌터 양성소에 그를 내려준 조승운은 포털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현이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 다녀올 동안 안전하게 잘 지키고 있겠다.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열심히 수련해서 좋은 성과를 가지고 오거라.”
진우는 미안함과 감사함에 어쩔 줄 몰라했지만 결국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는 조승운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헌터 양성소를 향해 걸었다. 비가 오려는지 낮게 깔린 먹구름 때문에 대낮인데도 사방이 어둑어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