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211화 (211/235)

211화

16. 행성 조르크

늘 그렇듯이, 몇 달 만에 지구로 돌아온 진우는 만날 사람들이 많았다. 타르코스를 비롯한 헌터 양성소 사람들, 헌터 학교의 펄스너 교장, 이제는 제법 자란 아이의 손을 잡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듯한 표정을 감추는 못하는 김상곤 부부, 정말 오래간만에 지구에서 재회한 정태.

하지만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둘이었다. 애인인 소현과 스승 조승운. 그리고 이번에는 소현보다도 조승운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한때는 1m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는 한강은 이제 커다란 잉어를 잡아 파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정도로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진우와 조승운은 맑은 한강이 커다랗게 휘어져 흐르는 서울 근교의 그림 같은 한식집에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나는 동안은 각자 보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우는 피엔다 행성에서 있었던 일을 10분 만에 간략하게 설명했고, 신문 지상에 오르내릴 정도로 계속해서 치열해지는 포털 관리 권한에 관한 일을 책임지고 있는 조승운은 단 1분 만에 자신의 할 말을 다 했다. 그의 최종적인 결론은 ‘정상적인 놈들이 하나도 없다’였다. 그리고 진우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도 돌아오자마자 최근의 뉴스를 살펴보았던 것이다.

“스승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헌터이셨죠?”

서로 그다지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에 대한 인사치레의 대화가 끝나자 진우가 문득 조승운을 향해 불쑥 물었다.

“그랬지. 유일한 최초는 아니지만, 처음 마나를 몸 안에 받아들인 선발대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최초의 상급 헌터와 역시 최초인 최상급 헌터는 유일하지 않았나요?”

진우가 자신의 과거에 관한 일을 꺼내자 조승운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맺혔다.

“그래. 내가 최상급 헌터가 된 뒤로, 그 다음 최상급 헌터가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었지. 그런데 무슨 일이냐. 네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 옛날 일을 다시 묻다니 말이야. 오랜만에 스승을 만나니까 새삼 존경스러워 보여서 그러는 거냐?”

조승운의 농담에 진우 역시 씩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고치고 대뜸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뭐가?”

“최상급 헌터가 되고 나니까 어떠셨는지 궁금해서요. 무려 10년이나 유일한 최상급 헌터로 계셨잖아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텐데요.”

조승운의 눈길이 잠시 진우에게 머물렀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그 일을 물을까? 그는 진우의 얼굴에 나타난 복잡한 표정을 살피는 듯하더니 시선을 창밖을 흐르는 강물로 돌렸다.

“글쎄다. 조금 복잡했던 것 같구나. 일단 몹시 성가셨었지.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외로웠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평생 고유의 무술을 익히느라 다른 데 한눈을 팔지 않고 살다가, 그게 벽에 부딪혀 고민하던 무렵에 외계인들 덕분에 헌터가 될 수 있었지. 그 뒤로는 또 헌터로서 수련하느라고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었구나. 최상급 헌터가 되고 나니 주변에 함께 길을 걷는 친구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외롭기는 했었지. 하지만 원래도 평생 혼자였으니 외로움에는 이미 익숙해졌던 것 같구나. 한국에서 제일 강한 남자가 되었다고 해서 우쭐해서 거드름을 피운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레 더 울적하거나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조금은 긴 조승운의 회상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다시 짤막한 물음을 계속했다.

“힘들지 않으셨어요?”

“뭐가 말이냐?”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게 말이에요. 그리고 당분간 사람들이 이해해 줄 가능성도 없다는 사실도요.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하셨던 거잖아요. 남들에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곳 말이에요.”

조승운은 진우를 보며 계속해서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의 말이 끝났을 때 그 웃음은 안타까움으로 변해 있었다.

“왜 그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거냐?”

“이해를 시키지 못하면 저 혼자 외톨이가 되잖아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직접 가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도 없는 곳이고?”

“네.”

“그게 싫으냐?”

진우는 조승운의 말에 잠시 생각을 했다. 싫으냐고?

“싫지는 않아요. 하지만 가끔 답답하기는 해요. 어떤 때는 화도 나고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그저 제가 말을 잘못하고 있거나,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사실은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요.”

“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싶으냐?”

진우는 조승운의 질문에 순간 말이 막혔다. 이해시키고 싶으냐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그들을 위해 이해를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들에게 이해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짜증나는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승운은 진우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한 마디를 뱉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스승이었다.”

“네?”

진우는 갑자기 조승운이 엉뚱한 얘기를 꺼내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널 만났으니까. 네 녀석은 뭘 가르치든 한 번 이상을 물었던 적이 없었지. 말을 해 주면 금방 알아들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뒤에는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따라했고. 심지어는 내가 가르치는 것 이상을 해 냈지. 스승으로서는 그보다 운이 좋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운 좋은 제자는 너 하나였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진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다른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상곤이 녀석조차도 두 번 세 번, 어떤 때는 열 번 스무 번을 가르쳐 주어야 했지. 그중에 어떤 것은 지금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런데, 사실은 그게 정상인 거다.”

“그럼 저는 비정상인가요?”

진우가 그렇게 묻자 조승운은 갑자기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네가 비정상이냐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네 녀석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보다는 뛰어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조승운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씩 웃으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이해받지 못해 외로운 게 아니다. 이해하지 못해서 외로운 거지. 상대방을 이해해라. 그러면 네가 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뭘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나야 죽 혼자 살았으니 가끔 외로웠지만 너는 소현이가 있지 않느냐. 여자 친구도 있는 놈이 외롭기는 뭐가 외로워.”

조승운의 말이 맞았다.

*  * * * *

조승운을 만난 다음날 진우는 헌터 양성소에 들러 타르코스를 만났다. 그가 지구에 귀환한 뒤에 간단한 보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 진우는 첼스본의 기록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왠지 그 이야기는 굳이 타르코스에게 하지 않은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는 첼스본에 대해 조금 상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첼스본이 니코레임 헌터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나요?”

진우의 질문을 받은 타르코스 소장은 눈썹을 모은 채 고개를 갸우뚱하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네가 그동안 방문했던 외계 행성에서의 수련 결과만을 놓고 얘기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면도 있어.”

“어떤 점에서요?”

“일단 마수 사냥만을 놓고 따지면 첼스본은 실제로 마수를 사냥한 적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러니 실전에서의 솜씨를 비교하기가 적당하지 않지. 게다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첼스본보다는 플레비크 인들과 싸우다 죽은 레비스를 가장 뛰어난 헌터로 꼽기도 하지. 어쨌든 그는 니코레임을 지키려다 죽은 영웅이었으니까.”

진우는 타르코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코스는 진우가 갑자기 왜 첼스본에 대해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보다는 목전의 급한 일이 더 중요했다.

“조르크 행성은 언제쯤 출발한 건가?”

“이틀 뒤에 떠날 거예요. 어차피 이번 수련은 특별히 위험한 것도 없고, 수련의 결과도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요.”

진우의 말에 타르코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의 단계는 아직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네. 적어도 우리 니코레임 행성에서는 그랬지. 자네가 이번에 그곳에서 꼭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네.”

진우는 타르코스의 말에 씩 웃었다.

“그럴게요. 그리고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  * * * *

지구를 떠나기 하루 전날 소현은 진우의 집을 찾아와 오랜만에 직접 솜씨를 발휘하겠다고 나섰다. 그녀가 진우를 위해 성대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 것이다.

이미 며칠 동안 거의 떨어지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그와 보내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해서 그는 소현이 만든 음식을 배가 터질 때까지 집어넣었다.

식사를 마친 소현은 진우에게 조르크 행성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조르크 행성에눈 떠 있는 섬이 있다는 게 사실이야?”

그동안 몇 번을 반복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소현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머리가 좋은 그녀가 진우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녀의 말에 싫은 기색을 내지 않고 또 다시 같은 대답을 되풀이해야 했다.

내일 이곳을 떠나면 또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가 언제일지 기약할 수가 없었다.

“맞아. 조르크 행성에도 산과 벌판, 바다와 호수가 있기는 해. 하지만 그곳에서 문명을 건설한 조르크 인들은 모두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섬에서 살아. 땅에는 온갖 짐승과 마수들만 돌아다니지.”

“그럼 그 사람들은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서 지상으로 내려가야 하겠네?”

소현의 말에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르크 인들은 마수를 사냥하지 않아. 그냥 섬과 섬을 오가면서 살지. 조르크에는 마수들이 많지만 그걸 사냥하는 사람들은 없어.”

“그럼 그곳에는 여기처럼 헌터들이 없겠네?”

“아니 있어. 그것도 굉장히 뛰어난 헌터들이 있지.”

“그럼 그 헌터들은 뭘 사냥하는데?”

진우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눈에는 누차 조르크에서의 수련이 안전하다는 것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근심이 가득했다.

“말했잖아.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그곳의 헌터들은 모두 농부이거나 어부, 혹은 나뭇꾼이나 광부들이야. 전문 사냥꾼은 없어. 조르크 인들은 우리의 헌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베네토르라고 불러. 엄밀히 말하면 이곳과 같은 헌터들은 없다고 할 수 있지.”

“응... 그렇구나. 그런데 어부라고? 섬에 물고기도 있어?”

진우는 피식 웃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공중에 떠 있는 섬이라고는 하지만, 큰 섬은 우리나라보다 클 거야. 커다란 호수가 있는 곳도 많거든. 그곳의 어부들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거야.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호수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럼 그곳에 가서는 뭘 수련하는 건데?”

“공간을 이동하는 방법.”

“공간을 이동한다고? 포털 같은 거 말이야?”

진우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조르크 인들은 포털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순식간에 다른 섬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가 봐. 그런데 그게 포털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 그냥 여기 있던 사람이 퍽 하고 사라져서 저쪽에서 짠 하고 나타나는 거지. 포털이 열릴 때처럼 검은 구멍이 생긴다든가 하는 것은 없어.”

“그럼 그 기술을 이용해서 행성 이동도 가능한 거야?”

“그건 어려워.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야지. 그들의 공간 이동 기술은 마나가 많이 들거든. 거리가 멀어질수록 필요한 마나도 많아지지. 아주 뛰어난 베네토르는 행성의 삼분의 일 정도를 순식간에 가로질러 이동할 수도 있다고는 하더라. 그래도 우주를 넘나드는 이동은 불가능해.”

“너도?”

그 말에 진우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아직 그 기술을 배우지도 못했어. 그건 거기서 공간 이동 기술을 배운 뒤에나 확인해 봐야지.”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미 배운 사람들이 있었을 거 아니야? 니코레임 인들 가운데 조르크에 갔던 사람들도 많았다면서?”

진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많았지. 하지만 아무도 공간이동 기술을 배우지는 못했어. 그래서 원래는 특별한 순서가 없던 수련 장소 가운데 조르크 행성이 가장 뒤로 밀렸지. 다른 곳에서 수련을 모두 마친 다음에 가장 나중에 방문하는 곳으로 말이야.”

진우는 그 말을 마치고 그녀를 꼭 끌어앉았다. 그제서야 소현의 질문이 멈췄다.

품에 안긴 소현의 몸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오래 헤어져 있는 것 때문에 섭섭해서 슬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두려울 게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친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과 마주치며 다니는 사람이기도 했다.

진우는 그 점이 몹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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