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99화 (199/235)

199화

“자네가 900관 도전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네. 삼백년 전의 첼스본 이후로 처음이군. 나로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어. 동시에 아주 서글픈 일이기도 하지.”

홀로그램 영상이기는 했지만 하이뇰의 표정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해가 안 되는 군요.”

진우는 하이뇰의 영상을 보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되다니? 뭐가 말인가?”

“둘 다요. 기쁘다는 것도, 그리고 서글프다는 것도.”

그의 말을 들은 하이뇰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용사의 관을 만든 것은 피엔다 행성 사람들이 900관을 정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지.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오늘 900관이 돌파되었으니 기쁜 일이기는 해. 다만 삼백년 전처럼 그걸 이루어낸 자가 피엔다 행성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점 때문에 서글픈 것이고.”

그의 말에 이번에는 진우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하이뇰은 이미 자신이 피엔다 행성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외계인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죠?”

확인 차 물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진우의 질문을 들은 하이뇰은 기가 막힌 듯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아마 자네가 이곳에 도착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고 짐작하기는 하네만, 어쨌든 통역기를 구입해서 거기에 대고 니코레임이라고 몇 번씩이나 외치지 않았나? 피엔다 행성 사람들은 외계 행성의 이름을 알지 못하네. 내가 정보를 다 막아놨으니까. 과학자들도 모르지. 기껏해야 이 행성이 속한 항성계의 다른 행성들 이름 정도가 그들이 아는 것의 전부네.”

“그것만으로 제가 외계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는 말입니까?”

하이뇰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었지. 자네의 외모가 이곳 사람들하고 똑같았으니까 말이야. 삼백 년 전의 첼스본도 그랬지만 자네들은 외모를 완전히 바꾸는 재미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자네가 정말 니코레임 출신인지, 아니면 이곳 피엔다 사람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제가 니코레임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진우가 그렇게 말하자 하이뇰의 영상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손가락 하나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이보게. 공연히 장난하지는 말게. 자네는 분명 외계인이야. 하지만 니코레임 사람은 아니지.”

“그럼 제가 어디에서 왔다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르겠어. 자네의 유전 정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 나와 있지 않더군. 자네 849관에서 쉬코핀에게 상처를 입었지? 그때 흘린 피 덕분에 비로소 자네의 유전 정보를 분석할 수 있었네. 그런데 분석 결과 자네가 피엔다 행성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니코레임 인도 아닌 것으로 나왔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떤 데이터와도 일치하지 않았네. 그 때문에 나도 적잖게 놀랐지. 그래서 정말 물어보고 싶었네. 자네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진우는 하이뇰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하이뇰님이 제 궁금증을 먼저 풀어주신 다음에 대답했으면 좋겠군요.”

“호오~. 나한테 궁금한 게 있었나? 뭔가? 먼저 물어보게.”

진우는 저절로 긴장되려는 표정을 억지로 풀었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질문은 개인적인 호기심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하이뇰님은 지배의 단계에 들어섰습니까?”

진우의 질문을 받은 하이뇰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그것은 마치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꼬마의 얼굴과, 맛있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사나운 맹수의 그것을 적당히 섞어놓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묻는 것을 보니 자네도 동조 단계는 확실히 넘어선 것 같군. 하긴 그랬으니 이렇게 빨리 900관까지 왔겠지. 그래, 자네 보기에는 어떤가? 내가 지배의 단계에 들어갔을 것 같은가?”

진우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한 채 질문을 던지는 하이뇰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말장난은 사양입니다. 지배의 단계에 들어섰습니까?”

진우가 재차 대답을 재촉하자 하이뇰이 토라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쩝. 생각보다 딱딱한 젊은이군. 그래 대답해 주지. 내가 지배의 단계에 들었냐고? 아니네. 하지만 거의 근접했었지. 아주 조그마한 차이에 불과했지만 끝내 그 벽을 넘지는 못했어.”

“그래서 이 시스템을 만든 겁니까?”

“그런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아. 수련을 통해서는 지배 단계의 벽을 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시스템을 통해 그것을 실현시키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복수를 위해서였어. 그리고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과학자네. 용사가 아니라.”

첼스본은 자신이 남긴 자료에서 하이뇰이 지금의 시스템과 용사의 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우는 그 자료를 읽은 뒤, 하이뇰이 지배 단계에 진입하고 싶은 꿈을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실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스템에서도 어렴풋이 그런 기미가 느껴졌지만, 특히 용사의 관은 지배 단계에서나 꿈꿀 수 있는 마나 운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첼스본은 하이뇰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시스템과 용사의 관이 그의 복수심의 산물이라고 했지만, 진우는 그 안에서 지배 단계로 진입하고 싶어 하는 열망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용사가 아닌데도 지배 단계에 근접했었다니 놀랍군요. 하지만 그건 단순히 과학자의 상상력이나 추측만으로는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용사로서의 수련을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요?”

용사가 아니라 과학자라고? 진우는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마나 운용 능력은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추론이나 이론만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하이뇰이 동조 단계 이상의 용사가 아니었다면 그가 아무리 천재라도 용사의 관을 만든느 것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진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 용사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지. 내가 지배 단계에 근접했다고 말한 건 확실히 용사로서 그랬다는 것이 맞아. 그러나 나는 스스로 용사라기보다는 과학자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 점에 대해서는 자네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니 그렇게 고까운 눈으로 쳐다보지 말게.”

진우의 표정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하이뇰이 굳이 변명을 했다.

“아무튼 과학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말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시작 버튼을 누른 것뿐이라고 얘기해야겠군. 나머지는 지난 천 년 동안 시스템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네. 이 시스템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들을 구축할 수 있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용사의 관만은 거의 순수하게 내가 완성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 용사의 관은 시스템을 설계하면서 개발해 낸 모든 기술이 집약된 것이야.”

진우는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사의 관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그가 그렇게 묻자 하이뇰의 홀로그램 영상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흠.. 그건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내가 조르크 행성에서 태어난 피엔다 사람이라는 것부터 이야기해야 하거든.”

“첼스본님에게 말했던 것은 그분이 남긴 자료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에게도 용사의 관을 만든 목적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더군요. 저는 그 이야기의 조금 더 구체적인 부분을 싶습니다.”

“꼭 듣고 싶나?”

“네. 반드시.”

하이뇰의 영상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는 이미 첼스본이 자료에서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했던 내용이 몽땅 포함되어 있었다. 진우는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  * * * *

하이뇰은 피엔다 인이었지만 애초에 조르크 행성에서 태어났다. 지금과는 달리 천 년 전의 피엔다인들은 포털 이동 장치를 통해 수많은 행성에 활발하게 진출해 있었다.

그들은 지구를 방문한 니코레임인들처럼 자신들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전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플레비크인들처럼 침략자 행세를 하지도 않았다. 외계 행성인들과의 교섭을 통해 그곳에 전초 기지를 세운 뒤, 필요한 자원을 찾고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피엔다 인들의 주요 목적이었다.

하이뇰의 부모는 모두 조르크 행성에 파견나가 있던 과학자였고, 그 역시 어려서부터 과학자가 되기를 꿈꿨다. 따라서 나중에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하이뇰의 부모 역시 기쁜 마음으로 그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이뇰이 너무 뛰어났던 것이다.

하이뇰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부모는 더 이상 그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가르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하이뇰은 혼자만의 연구를 계속했다.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르크인들이 가지고 있던 특이한 능력과 관계된 것이었다. 그들은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에 성공하셨습니까?”

진우가 묻자 하이뇰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라지 않는군? 공간 이동은 대단한 기술이네. 자네가 포털 이동 장치의 원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무식할 정도로 계산만 해 대는 그 탐욕스럽지만 멍청한 장치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사람이 직접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기절할 정도로 놀랄 텐데 말이야.”

하이뇰은 그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 진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우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나, 정말이요? 조르크 인들은 정말 대단하네요.”

빌어먹을.

진우의 반응에 비로소 만족한 표정을 지은 하이뇰은 설명을 계속하려고 했다. 진우는 간신히 그의 말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첼스본이 언급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로서는 설명을 조금이라고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첼스본도 공간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먼저 조르크 행성에 들렸었어요. 그곳 사람들은 행성 간 이동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행성 내에서는 자유롭게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이뇰은 별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그들의 기술을 이용하면 행성 간 이동도 가능하기는 하네. 원리는 포털 이동 장치와 전혀 다르지만 말이야. 다만 그들은 행성 간 이동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마나를 가지고 있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현실적으로 그 정도 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지. 포털 장치를 이용한 이동과는 달리 그들의 기술은 이동 거리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마나를 필요로 했으니까.”

“하지만 첼스본은 지배의 단계에 들게 되면 많은 마나가 없이도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할 거라고 하던데요? 조르크 인들의 방법을 써도 말이에요.”

진우의 말을 들은 하이뇰이 씩 웃었다.

“그건 첼스본의 말이 아니야. 내가 첼스본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지.”

지배 단계에 들게 되면 포털 이동 장치보다 훨씬 적은 마나를 이용해서 행성 간 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이뇰이 하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조르크 인들의 공간 이동 기술을 과학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는 실마리를 이론적으로 풀어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험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용사가 아니었으므로 체내 마나량이 극히 적었고, 그렇다고 마나 스톤을 구해서 실험할 정도로 풍족한 여건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불행과 행운은 꼬리를 물고 연속된다고 하지만, 꼬리의 연속이 불행으로부터 시작하느냐, 아니면 행운으로부터 시작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법이다. 하이뇰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시작이 불행이었다.

하이뇰이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조르크 인들의 공간 이동 기술에 대한 연구를 잠시 접고 새로운 주제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생각보다 일찍 윤곽이 드러났다. 그는 마침 조르크 행성에 1년 정도의 기한으로 방문하여 연구를 하던 아버지의 친구에게 자신의 최근 연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고, 특별한 생각 없이 나온 이야기였다.

하이뇰의 부모는 이야기를 듣고 자식의 천재적인 발상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석 달 뒤 아버지의 친구는 피엔다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 하이뇰과 그의 부모는 피엔다로 강제 소환을 당했다. 돌아와서 새로운 연구를 완성하라는 국왕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게 시스템에 대한 연구였다고요?”

“그래. 당시에는 이론적인 틀을 완성했을 뿐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하이뇰의 표정은 한 없이 어두웠다.

천 년 전의 피엔다에는 국가가 존재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크리켄데르 역시 당시에는 한 국가에 속한 도시였다. 당시의 국왕은 하이뇰이 창안한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 국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해 줄 획기적인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이뇰에게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완성시키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아직 어렸던 하이뇰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에게는 이미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구 주제가 있었다. 그는 남의 강요에 의해 연구를 하는 것이 싫었다. 조르크 행성에서 태어나서 자란 하이뇰로서는 국가와 국왕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서움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열여섯 살의 천재 소년은 아직 어리고 철이 없었다.

자신의 명령이 거부당하자 국왕은 대노했다. 하이뇰과 그의 부모는 즉시 구금되었고, 심지어 고문을 받았다. 그제야 권력이 지닌 힘에 놀란 하이뇰은 울면서 연구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국왕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들의 구금 상태는 풀리지 않았고, 곧 처형될 거라는 소문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머니의 동생, 그리니까 나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양반이 1급 용사였어. 그 분이 목숨을 걸고 감옥에 숨어들어와 갇혀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를 구출하셨지. 우리는 간이 포털 장치를 이용해서 조르크 행성으로 탈출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탈출에 성공한 것은 외삼촌과 당신뿐이었지요. 부모님은 탈출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요. 조르크 인들의 마을에 몸을 숨기셨다고 들었어요.”

하이뇰의 홀로그램 영상이 흐릿해졌다. 그의 얼굴에 잠시 눈물이 비치는 듯했다.

“첼스본이 그 이야기도 남긴 모양이구나. 맞아.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지. 나는 그 국왕과, 국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어.”

조르크로 탈출한 하이뇰은 그때부터 과학자의 길만 고집하던 데에서 벗어나 용사의 기술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함께 탈출했던 외삼촌의 충고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몸을 피신했던 조르크 행성의 마을 사람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사십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을 때, 그는 동조 단계에 든 용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들도 완성할 수 있었지.”

그제야 하이뇰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름과 신분을 완벽하게 위장한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국왕에게 접근했다.

열여섯 살에 감옥을 탈출했던 어린 소년이 육십이 다 된 나이로 돌아오자 아무도 그의 모습에서 사십년 전의 하이뇰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1급 용사였던 전날의 국왕은 그때까지도 건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조 단계에 든 나는 체내의 마나를 완벽하게 감췄지. 아무도 내가 용사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 나도 그저 그냥 뛰어난 과학자로서만 행세했어. 국왕을 위해 일하는 다른 얼간이들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어. 내가 동조 단계에 들 정도로 열심히 수련하는 와중에 틈틈이 연구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 덕분에 나는 오래지 않아 왕실 연구소에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지.”

그때부터 하이뇰의 복수를 위한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는 과거보다 훨씬 완성된 수준의 시스템 구축 계획을 국왕에게 제시했다. 국왕은 기뻐하면서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십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수도인 크리켄데르를 비롯해서 전국에 하이뇰이 제안했던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점점 다른 나라로 퍼져나갔지. 내가 은근슬쩍 핵심적인 기술들을 다른 나라로 유출시켰거든. 결국 오래지 않아 행성 전체에 시스템이 구축되었지. 발칵 뒤집힌 왕궁에서 대대적인 수사를 했지만, 설마 기술 개발의 책임자인 내가 직접 자신의 기술을 다른 나라로 유출시켰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조금 의심을 하긴 했지만 놈들이 꼬투리를 잡게 내버려둘 정도로 내가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그 대목에서 하이뇰은 몹시 유쾌한 듯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지만 듣고 있는 진우의 마음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사람도 결국 매덤의 바질리크하고 비슷하군. 이건 뭐 천재의 숙명도 아니고...’

하이뇰이 왕실을 위해 일을 한 기간은 이십 년 남짓이었다. 그 동안 그의 시스템은 행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그가 설계한 용사의 관 역시 곳곳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명목은 용사들의 수련을 위한 것이었다. 규모는 지역의 재정 능력에 따라 달랐지만 수많은 도시에 크고 작은 용사의 관이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용사의 관이 가상 모드로만 작동하게 해 놨거든.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용사 훈련에 획기적인 설비라고 기뻐했지. 그때만 해도 행성 곳곳에 실제 마수들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으니까 어떤 나라든 실력이 좋은 용사들을 양성해 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지.”

왕실에서 근무한 지 이십년이 조금 지났을 때 하이뇰은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고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리고 그 만의 장소에 칩거한 채 시스템에 대한 조종과 수정을 시작했다. 수십 년을 벼르던 그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작품 후기 ============================

하이뇰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집니다.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 자르려니까 너무 길어지네요. 일단 여기서 끊고 나머지 얘기는 내일 올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니코레임 어에 대한 이야기는 별 건 아니지만 나중에 나올 겁니다. 말 그대로 별로 심각한 설정이 되어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글에 대한 스포를 스스로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설명이 나중에 나올 거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그럼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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