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86화 (186/235)

186화

테스트실은 사방 10m 정도 되는 텅 빈 방이었다. 진우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허공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용사 자격증 테스트에 참여하신 진우님 환영합니다. 저는 테스트 관리자입니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진행되는 테스트에 관해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테스트 관리자고만 소개했다.

‘시스템이군.’

기계가 내는 목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웠지만 그래도 어딘가 사람의 음성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진우는 이곳 역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멈췄던 테스트 관리자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곳에서 진우님이 경험하실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 일은 없습니다. 용사의 관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테스트 도중 큰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 되면 실제 신체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테스트가 바로 중지됩니다.

이 점 명심하시고 최선을 다해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리고는 말이 끊겼다. 진우는 한참을 멀뚱하게 서 있다 아차 싶은 생각에 ‘네’하고 대답했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그렇게 대답을 하자니 조금 민망했지만 진우의 대답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설명이 이어졌다.

“테스트는 마나 총량과 마나 운용능력을 측정하는 기본 두 단계와, 종합적인 전투 능력을 측정하는 응용의 세 단계를 합쳐 모두 다섯 단계로 진행됩니다. 응용 단계에서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테스트를 중지시킬 수 있습니다.

테스트 중지를 원하실 경우에는 크게 ‘중지’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진우는 이번에는 바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곧이어 허공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지금부터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활용 가능한 마나량 측정입니다.”

그 말과 함께 진우의 앞에 허리 높이의 책상이 나타났다. 책상 위에는 손바닥이 그려져 있는 둥근 원반이 있었다. 원반 뒤의 허공에는 길쭉하고 투명한 막대그래프와 점수를 표시할 수 있는 전자시계 비슷한 장치가 떠 있었는데, 아마도 진우의 마나량을 표시하기 위한 것 같았다.

“원반 위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주입하십시오. 주입되던 마나가 끊기거나 더 이상 늘지 않으면 측정이 자동으로 완료됩니다. 시작하십시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인 원반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나를 주입함에 따라 원반 뒤의 막대그래프가 조금씩 차오르면서 시계처럼 생긴 장치의 숫자가 빠르게 변했다.

진우는 막대그래프가 웬만큼 차오르자 그만 손을 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끝까지 마나를 주입해 보았다. 그러자 막대그래프가 꼭대기까지 차오르면서 시계 장치가 붉은 빛으로 깜빡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테스트 관리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마나량 측정을 종료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단계는 마나 변환력 측정입니다.”

책상과 원반이 한꺼번에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허공에 두 개의 철봉 모양으로 생긴 손잡이가 둥실 떠올랐다. 진우는 시스템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지금부터 철봉을 통해 여러 가지 성질의 마나가 진우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갈 겁니다. 진우님은 그 마나의 특성을 파악해서 자신의 마나를 같은 성질의 마나로 변형시키십시오. 변형시킨 자신의 마나를 거꾸로 철봉에 주입시키면 성공입니다.

한 종류의 마나에 대해 성공하면 철봉의 마나가 다른 종류로 바뀝니다. 마나의 종류는 모두 삼십 종류입니다.

성공 시간도 측정의 대상이 되니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진우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두 손에 쥔 철봉을 통해 마나가 주입되는 것이 느껴졌다. 생소한 마나였지만 진우는 곧바로 마나의 특성을 파악하고 자신의 마나 일부를 철봉과 같은 성질로 변형시켜 주입시켰다. 매덤 행성에서의 훈련을 통해 이런 식의 마나 변형에는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서른 종류의 마나에 대해 철봉과 같은 성질을 마나를 주입하는 두 번째 측정은 몇 분이 되지 않아서 완료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측정이 끝났는데도 시스템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우도 할 말이 없었던 지라 멀뚱멀뚱 빈 공간을 바라보고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테스트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본 두 단계에 대한 측정 결과 테스트 응시자 진우님의 실력에 대한 평가가 조정되었습니다. 응용 삼 단계의 수준이 지금부터 상향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 번째 측정을 시작하겠습니다.”

뭐? 진우는 테스트 중간에 수준이 조정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료를 통해서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말에 진우가 놀라서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세 번째 측정이 시작되었다.

진우를 빙 둘러싸고 허공에 지름이 3~4m 정도 되는 둥근 구가 만들어졌다. 그 구의 표면 위에 수백 개의 파란색 점이 동전 크기로 빼곡하게 찍혀 있었다. 점 하나하나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부터 진우님을 둘러싼 구체에 찍힌 점들 가운데 일부가 무작위로 빨갛게 변합니다. 빨간색으로 변한 점들에게서는 파란색과는 다른 마나가 느껴질 겁니다.

눈으로 확인해도 좋고 마나 탐색을 쓰셔도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빨갛게 변한 점들을 마나를 주입한 손가락으로 찌르십시오. 점들의 색깔이 변한 뒤 1초 이내에 찌르면 성공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시작한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체 위의 점들 가운데 일부가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어째 갈수록 불친절해 지는 것 같네.’

진우는 속으로 나직이 투덜거리면서도 양손을 이용해 색깔이 변한 점들을 차례로 찔러갔다. 무작위로 색깔이 변한다고 하더니 그 말처럼 구체 위의 점들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계속 색깔을 바꿨다.

진우는 처음에는 색깔이 변하는 점들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찔러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이 변하는 점들의 개수가 늘어나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마나 탐색을 이용해서 마나의 기운이 달라지는 점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우는 침착하게 마나 탐색에서 느껴지는 결과에 따라 눈부신 속도로 점들을 찍어나갔다. 나중에는 손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져서 허공에 잔상이 남을 지경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진우에게 갑자기 팔이 여러 개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10분 정도 쉬지 않고 점들을 찍어나가자 어느 순간 색깔의 변화가 멈추더니 갑자기 구체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또 다시 테스트 관리자라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네 번째 단계입니다. 지금부터는 허공에 무게 10퀸탈의 쇠구슬들이 나타날 겁니다.

이 쇠구슬들은 허공을 날아다니며 테스트 응시자를 공격합니다. 진우님은 몸을 움직여 쇠구슬을 피하거나 마나가 주입된 손이나 발을 이용해서 막으시면 됩니다.

손발에 주입된 마나의 힘이 쇠구슬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라고 판단되면 방어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힘의 차이에 따라 그에 맞는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쇠구슬의 속도와 개수는 점점 늘어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억양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테스트 관리자라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점점 사무적이 되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진우는 뭔가 푸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살짝 나빠졌지만 일단 다음 측정에 대비하기 위해 몸 전체에 마나를 돌렸다.

10퀸탈이면 대략 120Kg이 조금 넘는 무게였다. 그 정도 무게의 쇠구슬들이 허공을 날아 공격해 온다면 그 위력이 보통이 아닐 게 분명했다.

‘얼마나 빠를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은 맞으면 그냥 죽겠군.’

쇠구슬은 농구공 정도의 크기였다. 처음에 나타난 쇠구슬은 열 개 정도였고, 그다지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우가 그것들을 무난하게 피하거나 막아내자, 세 번째 측정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난이도가 올라갔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쇠구슬들의 속도와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측정이 시작된 지 10분가량이 지났을 때에는 쇠구슬들의 속도가 눈으로는 도저히 잡아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런 쇠구슬들이 허공을 가득 메운 채 무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무거운 쇠구슬들이 마치 거인이 휘두르는 철퇴처럼 사방을 종횡무진으로 누볐지만 진우는 어렵지 않게 그것들을 피해냈다. 아무리 많은 쇠구슬들이 빠르게 움직여도 딱 사람 하나 빠져나갈 정도의 틈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진우에게는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쇠구슬의 수가 점차 늘어나 백여 개에 가까워지자 결국 더 이상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냥 피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힘으로 막아보라는 얘기네.’

진우는 양팔에 마나를 단단하게 덧씌웠다. 그리고는 더 이상 피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쇠구슬들을 향해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내질렀다.

따다다당

쇠구슬과 진우의 주먹이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던 쇠구슬들이 하나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부서진 쇠구슬들은 하나 둘 땅으로 떨어지더니 잠시 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테스트실 전체에 한 동안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허공을 날아다니던 쇠구슬들이 모두 부서져 땅에 떨어지고 어느새 텅 빈 허공만이 남았다.

‘가상이라고 하더니 손에 부딪히는 감촉은 아주 생생하네. 용사의 관에서는 이게 단순히 감촉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지?’

쇠구슬이 모두 사라지자 다시 테스트 관리자라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번째 단계가 완료되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마수를 직접 상대하는 순서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테스트는 현실이 아니라 가상입니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되더라도 실제로 목숨을 잃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럼 다섯 번째 단계를 시작하겠습니다.”

테스트 관리자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진우의 정면 공간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키가 6m 가량에 달하는 마수가 등장했다. 진우는 나타난 마수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이거... 뭐냐? 테스트라더니 무슨... 벌써 이런 녀석이 나와?”

진우의 눈앞에 있는 것은 페르빈데쉬라는 이족 보행형 마수였다. 구부정한 등에 온 몸이 단단한 각질로 뒤덮인 녀석은 엄청난 힘과 속도를 가진 것으로 자료에 소개되어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마수들에 비해 특별한 공격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힘과 민첩성만으로도 충분히 중상급 마수로 분류되었다. 용사의 관에서도 무려 500관(關), 즉 500단계에서 등장하는 마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상급 헌터라고 할지라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녀석이었다.

“보통의 용사 지원자들이 정말 이런 마수를 쓰러트릴 수 있는 거야?”

물론 그렇지 않았다. 다만 진우의 경우 앞선 네 단계에서의 성적이 너무 빼어났기 때문에 테스트 관리자가 그것을 참조하여 그에게 맞는 마수를 등장시킨 것이었다. 사실상 진우의 성적으로 보아서는 이보다 더 강한 마수를 등장시켜야 했지만, 테스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마수가 페르빈데쉬였기 때문에 녀석이 나타난 것뿐이었다.

“으어엉~”

페르빈데쉬는 진우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포효하더니 곧바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자격증 테스트에서 나오기에는 너무 강하다는 것이지, 중상급 마수가 그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기록으로만 보았던 녀석에 대한 설명을 직접 확인하기 취해 한 동안 놈의 공격을 피하거나 방어하면서 탐색을 시도했지만 곧 흥미를 잃고 말았다.

“이거나 먹고 그만 끝내자.”

진우는 팔과 다리에 마나를 강하게 발현시킨 상태에서 녀석을 향해 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다가 그대로 놈의 심장 어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단단한 각질과 그에 못지않은 탄탄한 근육으로 감싸인 페르빈데쉬의 가슴속으로 진우의 주먹이 어깨까지 푹 파고들었다. 진우가 녀석의 피가 잔뜩 묻은 팔을 잡아 빼자 페르빈데쉬는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더니 잠시 후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으로 테스트는 모두 끝나고 말았다.

“모든 테스트가 끝났습니다. 방을 나가시면 측정 결과에 따라 용사 자격증이 주어질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방은 처음 진우가 들어왔던 때처럼 아무런 무늬나 장식이 없는 평범한 빈 방으로 변했다. 진우의 팔에 잔뜩 묻어있던 피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진우는 마지막에 공연히 혼자 기운을 쓴 것 같아 민망함에 머리를 한 차례 긁적이고는 방을 나갔다. 밖에는 여전히 간편한 옷차림의 근육질 사내와, 단정한 옷차림의 여자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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