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79화 (179/235)

179화

제하이어의 중심지를 가운데 두고 카딘의 집으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시간쯤 빙 돌아 달리자, 얕은 구릉을 배후에 둔 커다란 저택이 나타났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을 밝히고 있는 마나등으로 인해 저택의 모습이 환하게 보였다.

“저곳이다.”

헤이둑이 대로변에 있는 작은 집에 몸을 숨긴 채 손가락으로 렌스의 저택을 가리켰다.

“늦은 시간인데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병사나 일반 경비들 같아 보이지는 않고, 사냥꾼들인가요?”

“그럴 거야. 가지고 있는 무기의 종류가 여러 가지인 게 보이지? 병사나 경비대라면 저렇게 무기가 제각각이지는 않겠지.”

진우는 헤이둑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이 일반 병사들보다는 훨씬 강했다. 진우는 저택의 정문에서 이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집안 전체에 대해 마나 탐색을 시도했다. 바바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였다.

“저기 가운데에 있는 저택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이층짜리 건물이 보이죠?”

한참 동안 탐색을 하던 진우가 손가락으로 저택 오른쪽의 벽돌 건물을 가리키며 헤이둑에게 물었다.

“그래. 보인다. 바바님이 저곳에 있는 것 같으냐?”

“네. 저 건물 지하의 오른쪽 끝 쪽에서 바바님의 마나가 느껴져요. 마나의 흐름이 순조롭지 못한 것으로 보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녀석들이 고문이라도 했나 보구나. 어떻게 할래? 몰래 숨어 들어가서 바바님을 먼저 구출할 테냐?”

진우는 잠시 머리를 숙이고 고민하더니 다시 한 번 벽돌 건물을 향해 세밀하게 마나 탐색을 실시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고개를 들고 헤이둑에게 부탁했다.

“그게 낫겠어요. 저택 뒤의 구릉이 보이죠? 저택 앞쪽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니까 일단 저곳으로 이동을 했다가 먼저 안으로 숨어들어가지요. 헤이둑님은 저와 함께 담을 넘었다가 멤브락과 함께 벽돌 건물 밖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바바님을 구출해서 나오면 헤이둑님이 그 분을 등에 업고 댁으로 모시고 가면 될 거예요.”

“진우 너는?”

그 말에 진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저는 그 렌스라는 자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서요.”

그 말에 헤이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 이건 왕실의 권력 다툼에 관계된 일이다. 너무 깊게 끼어들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자 진우가 비틀린 웃음을 웃었다.

“이미 깊게 끼어들었어요. 아시잖아요? 국왕이 사망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와 카딘을 잡아들이려고 했던 놈들이에요. 저를 제외하면 나라에 둘 밖에 없는 상급 사냥꾼까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이기도 하고요. 바바님만 구해 물러서는 것으로 일이 적당히 마무리될 리가 없어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끝장을 봐야지요.”

진우의 말에 헤이둑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기척을 죽이며 저택의 오른쪽을 빙 돌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택 뒤편의 야트막한 구릉에 다다르자, 진우는 멤브락의 몸을 들쳐 멘 채 다시 한 번 목표로 한 벽돌 건물에 대해 세밀하게 마나 탐색을 실시했다.

“먼저 들어갈 게요. 헤이둑님은 잠시 뒤에 따라 들어오세요.”

진우는 그 말과 함께 몸을 날려 가볍게 저택의 뒤편 담장을 넘었다. 어깨에 한 사람을 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몇 미터에 달하는 담장을 넘은 그의 움직임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 하나 내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그가 멤브락을 내려놓은 뒤 벽돌 건물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확인한 헤이둑은 진우의 뒤를 따라 저택의 담장을 넘었다.

*  * * * *

진우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마나를 펼쳐 안에 있던 다섯 명의 보초를 모조리 기절시켰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는 둔중한 충격으로 인해, 보초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순식간에 건물을 지키던 자들을 쓰러트린 진우는 지하의 여러 방들 중에서 가장 끝 쪽에 있는 방에 갇혀 있는 바바를 발견했다. 그는 손에 마나를 덧씌워 방문의 잠금장치를 끊어버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맨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누워 있는 바바를 깨웠다.

“바바님, 바바님. 정신 차리세요. 진우가 왔습니다.”

그가 바바의 몸을 잡고 몇 번 흔들자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의식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누워 있던 바바가 간신히 눈을 떴다.

“누, 누구.. 지누 술사?”

“네, 접니다. 바바님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 자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바바는 갑자기 진우가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인해 말까지 더듬었다. 진우는 그의 몸에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에 피멍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곳에 끌려온 뒤로 모진 고문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일단 치료용 마나를 이용해 손상된 바바의 몸을 회복시켰다. 시간이 없어 완치시킬 여유는 없었지만 일단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판단이 들자 진우는 바바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밖에 나가면 헤이둑님이 계실 겁니다. 그 분이 댁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진우의 말을 들은 바바가 아직 성치 않은 몸을 애써 바로 세우며 그의 손을 잡았다.

“못난 꼴을 보였군. 고맙네. 은혜를 잊지 않겠네.”

진우는 더 말을 하려는 그의 입을 막고 일단 벽돌 건물 밖으로 업고 나갔다. 보초가 모두 제거된 건물의 앞에는 헤이둑이 멤브락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우는 헤이둑에게 바바를 넘겨주며 당부했다.

“일단 두 분은 빨리 댁으로 돌아가 계세요. 저는 여기 일을 끝마치고 나서 가겠습니다.”

진우가 땅 바닥에 쓰러져 있던 멤브락을 어깨에 메고 움직이려고 하자 이미 바바를 들쳐 없은 헤이둑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냐? 저택에 모여 있는 사냥꾼들 숫자가 제법 되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진우가 헤이둑에게 고개를 돌리며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몸 성할 것을 걱정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저놈들이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진우는 저택의 정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우가 움직이자마자 헤이둑은 바바를 업은 채로 담장을 넘어 다시 구릉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저택에서 사냥꾼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진우를 에워싸는 모습을 힐끗 보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더니 아무 말도 없이 바바를 업은 채로 카딘이 있는 저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 *

멤브락을 어깨에 멘 채 나타난 진우를 발견한 사냥꾼들이 신속하게 진우를 향해 다가와 그를 넓게 에워쌌다. 그 가운데 중급 사냥꾼으로 보이는 인물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진우를 향해 물었다.

“웬 놈이냐?”

그들이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보고도 진우는 아무 말이 없이 어깨에 메고 있던 멤브락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얼마 전부터 깨어나 있었지만 여전히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동결되어 있던 멤브락은 꿍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인해 벌겋게 물들었다.

“저건 누구... 헉, 멤브락님?”

진우를 향해 소리를 치던 인물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멤브락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우를 노려보았다.

“멤브락님은 네놈이 저렇게 만든 것이냐?”

진우는 씩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대는 진우의 뒤와 주변을 잠시 살피듯 둘러보더니 얼굴색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너 혼자 여기에 왔느냐?”

진우 역시 다시 웃는 얼굴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대의 얼굴에 기가 막혀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간이 큰 놈이구나. 멤브락님을 저 꼴로 만들어 놓고도 감히 여기를 혼자 오다니.”

그 말을 들은 저 꼴의 멤브락은 눈에서 살기가 뿜어 나올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몸을 꼼짝할 수 없으니 눈빛으로 화를 내는 것 이외에는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땅바닥에 흉한 몰골로 쓰러진 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방금 말을 꺼낸 사냥꾼 녀석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다짐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저택 안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며 몇 사람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땅바닥에 쓰러진 멤브락의 모습에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낯선 인물이 저택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진우를 향해 다가왔다.

진우는 새롭게 나타난 인물들 가운데 또 다른 상급 사냥꾼이 있는 것을 보고는 나직이 혀를 찼다.

‘나라 안에 둘 밖에 없다는 상급 사냥꾼이 모두 렌스의 일을 돕고 있구나. 역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가.’

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인물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진우에게 말을 했다.

“이 집의 주인인 렌스다. 네놈은 누군데 이 늦은 시간에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담장을 넘은 것이냐?”

그 말에 진우가 피식 웃으며 대답을 했다.

“만물이 벽이 있는 곳까지 명령을 내려 잡아들이려고 한 주제에, 정작 내 얼굴도 모르고 있었구나.”

진우의 말에 렌스의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만물의 벽? 그럼 네놈이 바로 술사 지누?”

그 말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렌스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멍청한 경비대 녀석들이 네 놈을 놓치고는 하도 말이 안 되는 보고를 하기에 짜증이 났었는데, 제 발로 여기를 기어들어오다니.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황당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잖아도 사람들을 풀어 잡아들이려고 했었는데 수고를 덜어주어서 고맙구나. 건방진 자식.”

마지막 말을 할 때는 렌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때 그의 오른쪽에 있던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렌스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멤브락이 땅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으로 보아 저 자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경비대의 보고를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실력이 대단한 자인 듯 싶습니다. 먼저 저 놈을 사로잡고 나서 말씀은 나중에 천천히 하시지요.”

그의 말을 들은 렌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자 렌스에게 말을 건넸던 남자가 다시 한 발 더 앞으로 나서며 진우의 정면에 섰다.

“나는 상급 사냥꾼 웰멕이라고 한다. 지누라고 했지? 멤브릭을 저 지경으로 만든 놈이 네 놈이냐?”

진우는 웰멕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맞아. 그런데 자꾸 이렇게 한 놈씩 나서면서 일일이 물어볼 거야? 이제 나설 놈은 다 나선 건가?”

진우의 말에 웰멕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는 진우의 말을 무시하고는 주변에 있는 사냥꾼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공격해라.”

그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듯 전신의 마나를 한꺼번에 일으켰다. 그러나 진우는 이미 그의 수준을 짐작하고 있던 터라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사냥꾼들이 미처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우의 몸에서 일어난 마나가 저택 전체를 사납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냥꾼들은 물론 기세를 일으키며 진우를 압박하려던 웰멕마저 갑자기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혓바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경악했다. 그때 진우가 다가와 오른손으로 웰멕의 목을 움켜잡았다.

“멤브락도 마찬가지지만 너희들은 제대로 된 사냥꾼이라고 할 수 없어. 어떻게 상급 사냥꾼이라는 녀석들이 이렇게 치우친 마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 너희들은 아무래도 마수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진우가 느낀 웰멕의 마나는 극도의 차가움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런 식의 마나를 사용해서는 상급 마수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수의 몸 전체를 일시에 얼려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렇다고 그들의 몸을 한 번에 관통시키기에는 마수들의 가죽이 너무 단단했다.

이들의 실력으로 상급 마수를 잡으러 나섰다가는 오히려 죽음을 당할 게 뻔했다.

‘사냥꾼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 그런가? 어떻게 둘 밖에 없다는 상급 사냥꾼들의 상태가 이렇게 극단으로만 치우쳐 있는 거지?’

진우는 저택 안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일반인들은 모두 한 곳에 몰아넣어 가두어버리고, 마나 동결로 인해 쓰러진 사람들 역시 저택의 홀 가운데에 따로 모아서 자신이 직접 감시했다. 이들의 능력으로 자신이 시전한 마나 동결을 풀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저택의 주인인 렌스는 몸이 제압당하자 얼굴이 퍼렇게 질려서 진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입을 열어 말할 수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 위에 체념의 빛이 어렸다. 그것을 본 진우가 그의 마나의 일부를 풀어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몇 가지만 물어보자. 크랄 국왕이 죽은 뒤에 네놈의 대처가 너무 빨랐어. 어떻게 그럴 생각을 한 거지?”

그러자 렌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질문이 이상하구나. 어떻게 그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물어야 정상이지. 이 나라에는 사냥꾼들에 대한 대우가 너무 형편없어. 반면에 술사들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후한 대접을 받고 있지. 힘을 가진 자가 그걸 참고 산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그의 대답을 들은 진우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글로다이트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사냥꾼들에 대한 대우는 너무 경제적인 측면에만 치우쳐 있었다.

마수 사냥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사냥 의뢰에 주어지는 금전적인 보상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문제는 사냥꾼에 대한 대우가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었다.

사냥꾼은 무역이나 대규모 상거래에 참여할 수 없었다. 가진 돈을 활용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었다. 또한 사냥꾼은 관직에 등용되지도 않았다.

나라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마수를 잡아라.

그럼 돈을 주겠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계속해서 목숨을 장대 끝에 매달아 놓고 살 수는 없었다. 죽을 때까지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돈을 벌고 나면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더 이상 위험한 사냥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사냥꾼의 수가 계속 줄어가는데, 경험 많고 노련한 사냥꾼들은 자꾸 현장에서 발을 떼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헤이둑이 아주 별종인 셈이었다.

“사냥꾼들은 마땅히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이 없다면 제아무리 만물의 벽을 봉쇄한다고 해도 마수들의 침입을 막아낼 수가 없으니까. 만물의 벽을 봉쇄한다고 해서 마수들이 다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사냥꾼을 보는 시각은 오로지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라는 것뿐이야. 그걸로 끝이지. 자기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자들이 그 세상을 위해 계속 목숨을 걸기를 바란다는 건 웃기는 일 아닌가? 난 그런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냥꾼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푸대접은 받지 않는 세상 말이야.”

진우는 렌스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말에 일부 공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바질라크도 그렇고 렌스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의 일부가 옳다고 해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합리화될 수는 없었다. 남들을 설득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힘을 이용해서 강제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가려는 자들에게 진우는 강한 거부감이 일었다.

‘그렇게 따지면 만물의 벽을 무너뜨린 내 행동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

진우는 만물의 벽을 무너뜨리는 게 길게 생각하면 행성을 위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믿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냥꾼의 수가 자꾸 줄어든다면 매덤 행성에는 미래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재난을 줄이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이겨낼 힘조차 잃어버리도록 방치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역시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남들과 의논 없이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 점에서 바질라크나 렌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네가 이 행성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우에게 매덤 행성은 낯선 외계의 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 행성에 대해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행성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창한 일을 벌였다. 게다가 그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되돌릴 수는 있었다. 만물의 벽을 다시 만드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아직 절벽 속에 있는 마나 구슬은 멀쩡했다. 암각의 바탕이 된 재질을 만드는 방법도 진우가 지하 연구실에서 가지고 나왔던 문서에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자신이 만물의 벽을 다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 일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까.’

이 행성에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행성 사람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애써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설득이 쉽지 않기도 했겠지만 자신에게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결국 바질라크나 렌스와 다를 바가 없는 인물이 된 것이지.’

진우는 계속해서 악을 쓰다시피 이야기를 하는 렌스를 기절시키고는 저택 안을 뒤져 찾아낸 통신용 장치를 이용해 카딘의 저택으로 연락을 취했다. 날이 밝기 전에 세자베와 헤이둑 일행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렌스의 저택으로 몰려왔다. 그들이 저택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진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바질라크와 똑같은 인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은 지고 가야겠군.’

진우는 매덤 행성에 머무는 기간을 몇 달 더 늘리기로 했다. 만물의 벽을 되살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지구로 귀환하기 전에 몇 가지 해야 될 일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매덤 행성에서의 일은 내일 마무리가 될 겁니다. 저는 이 글 전체를 진우의 성장기로 잡고 있습니다. 진우의 성장이 마무리 되면 아마 이 글도 끝나겠지요.

여러분들이 보신 것처럼 진우는 헌터로서 빠르게 성장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굉장히 큰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런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독단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 편에서 등장한 바질라크라는 인물은 사실 어찌 보면 진우의 레플리카, 복제본과 비슷합니다. 반면교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바질리크를 옹호하는 분들의 글을 보면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바질리크에 대한 묘사나 설정이 제 뜻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여러분과 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요. 그런 불만과 지적이 모두 진우에 대한, 그리고 제 글에 대해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지적을 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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