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78화 (178/235)

178화

헌터들 가운데에는 경지가 올라갈수록 명확한 특징을 갖게 되는 이들이 있었다. 가령 뜨거운 양의 마나에 특화되거나 반대로 차가운 음의 마나만 지나치게 많은 경우들이 그랬다. 신체적인 힘이 유독 크게 상승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수형 헌터들 중에는 시력이 유난히 발달하는 이들이 있었다.

본래는 진우나 최현처럼 전체적인 능력이 고루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오히려 특정 능력에 성장이 집중되는 경우에는 명확한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단계가 올라갈수록 발전이 더디게 마련이었다. 다만 능력이 집중된 그 한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는 장점이 있기는 했다.

지금 진우의 눈앞에 있는 멤브락이라는 자가 바로 그랬다.

진우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자 꼬챙이처럼 끝이 날카로운 칼 하나가 그의 목 왼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거의 목 앞까지 와서야 비로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릴 정도로 은밀한 일격이었다.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는 분명히 빈손이었다. 그런데 멤브락이 진우를 향해 팔을 뻗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레이피어처럼 가느다란 검신을 가진 칼이 나타나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은밀함에 특화된 자로군.’

진우는 양 손에 마나를 덧씌워 자신의 가슴과 어깨, 목 등을 노리고 쉴 새 없이 뻗어오는 상대의 검을 일일이 막아내거나 몸을 돌려 피했다. 싸움을 오래 끌 생각은 없었지만 이곳의 상급 사냥꾼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살짝 일었다.

멤브락은 그가 매덤 행성에 온 뒤로 처음 만나는 상급 사냥꾼이었다.

멤브락의 공격은 일체의 변화나 묵직한 베기 등이 완전히 생략된 채 오직 목표로 한 곳의 한 점만을 노린 빠른 찌르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검을 찌르고 거둘 때마다 짧지 않은 검신이 순간순간 눈앞에서 사라져 다음에 노리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시선 역시 공격을 하는 내내 오직 진우의 눈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특이하군.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어.’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멤브락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진우의 몸 구석구석을 노리고 수십 번의 공격이 퍼부어졌다.

웬만한 사냥꾼이라면 상대의 공격을 정신없이 막기만 하다가 결국 당하게 될 것 같았다. 엄청난 속도의 찌르기가 잠시도 쉬지 않고 연속해서 전개되는 동안 멤브락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이 계속될수록 정작 혀가 타는 듯한 초조함에 사로잡힌 것은 방어를 하는 진우가 아니라 멤브락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찌르기를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공격이 미세한 차이로 계속 허공을 찌르거나 상대의 손에 막히고 있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진우는 반격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수비에는 다급함이 없었다. 그것이 멤브락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꼬챙이로 철판 한 가운데를 가격한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빠르게 계속되던 멤브락의 공격이 갑자기 뚝 멈췄다. 마나를 덧씌운 진우의 왼손이 그의 이마를 노리며 찌르고 들어오던 상대의 날카로운 검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었다.

“지루하군. 찌르기 이외에는 다른 공격 방법이 없는 건가?”

멤브락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묻고 있는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찌르기 자체만 보면 확실히 상급 사냥꾼다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속도와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검을 이용한 찌르기였지만, 검 끝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강렬함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보통의 상급 사냥꾼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공격임에 틀림없었지만 아쉽게 진우에게는 지나치게 단순한 공격 패턴의 연속에 불과했다.

“너는 사냥꾼이라고 보기는 어렵구나. 사람을 상대로 한 공격에만 특화되어 있군.”

멤브락은 진우의 말을 들으면서도 입을 떼지 못했다. 손에 쥔 검을 놓을 수도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검을 잡고 있는 진우의 손으로부터 밀려들어온 거센 마나가 그의 몸을 옥죄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너, 멤브락이라고 했지? 네놈은 마수를 사냥한 적이 거의 없겠구나. 이런 기술 하나에만 집중했다면 정작 마수를 상대로 해서는 목숨을 잃기 딱 알맞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몇몇 마수에게는 이런 공격도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수의 종류는 다양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마수들은 상처를 입고도 죽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고 달려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마수들을 상대로 찌르기 하나만을 사용하다가는 일격에 목숨을 끊지 못할 경우 오히려 사냥꾼이 당하기 십상이었다.

진우가 볼 때, 멤브락은 상급 사냥꾼임에도 불구하고 반쪽짜리였다. 녀석은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암살자였다.

진우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냥꾼이 마수가 아니라 사람을 사냥하기 위한 기술에만 집중하다니.

“쳐, 쳐라. 공격해!”

멤브락은 진우의 마나 때문에 몸을 꼼짝할 수가 없게 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수하들에게 다급하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그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진우가 멤브락의 검을 잡아채는 순간 그들의 마나마저 동결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멤브락의 수하들 가운데 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그렇게 외쳤다. 수하들의 대답을 들은 멤브락이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웃기는 녀석이군.”

진우는 짧게 혀를 차며 상대의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것을 부러뜨렸다.

뗑강

멤브락의 홀쭉한 검이 반으로 부러져 땅에 떨어지자 녀석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무기를 훼손시키는 것은 실력이 월등한 이가 상대에게 치욕을 주는 방법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너는 절대로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멤브락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진우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우는 그것을 무시하고는 상대에게 다가가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짧게 묻겠다. 바바님과 모헨드로일은 어디에 있나?”

“직접 알아보지 그러냐.”

멤브락은 진우를 향해 눈을 사납게 치켜뜨더니 입가에 조소를 매달며 대답했다. 그러자 진우의 입에도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그와 동시에 멤브락의 몸 안에 있던 마나들이 거세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또한 약간 마른 체형이던 그의 신체 여기저기가 불룩거리며 제멋대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멤브락은 상급 사냥꾼이었다. 현재의 수준까지 오르면서 외상으로 인한 고통에는 나름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진우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있는 마나가 한꺼번에 뒤틀리며 가해지는 고통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내부의 장기가 제멋대로 자리를 이탈하면서 몸 전체가 연체동물이 된 듯 비틀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영혼이 찢기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그의 정신이 아득히 먼 곳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마나가 많을수록 더 아플 거다. 몸을 비트는 방법은 이곳에서 배운 기술이니까 너무 억울해 하지 마라. 그리고 차라리 죽겠다는 생각은 버려. 죽고 싶어도 네놈이 바바님이 계신 곳을 불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을 테니까.”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이런 고통을 느끼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아픔이 순식간에 그의 의지를 산산이 부숴 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그의 신체와 마나를 움직이는데 더해 멤브락의 신경 일부에 치료용 마나까지 덧씌워 감각을 아주 예민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탓에 그에게 전해지는 고통이 크게 증폭되었던 것이다. 해 볼 테면 해보라는 심정으로 버티려던 멤브락은 불과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항복을 선언했다.

그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비참한 굴욕이었다.

“말, 말하겠다. 제바알~~”

그러자 진우가 마나의 통제를 살짝 늦추고는 그의 눈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에 멤브락은 체면도 잃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바바님이 무사히 내 손에 구출될 때까지 너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거야. 네놈들 편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있다고 판단이 되거든 거짓말을 해도 좋다.”

멤브락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식은 괴물이다. 이런 놈을 꺾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온몸을 쥐어짜고 있는 이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놓여나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었다.

“바바님은 어디 계시냐?”

“레, 렌스님의 저택 지하에 있습니다.”

“렌스?”

“바바님의 사촌 동생입니다.”

“살아 계신 것은 틀림없지?”

“제가 이곳에서 직접 사로잡아 보낼 때까지는 분명히 살아계셨습니다.”

진우는 그 말을 듣자 멤브락의 머릿속에 있는 마나에 충격을 주어 그를 기절시켰다. 기절한 그를 어깨에 메고 저택의 담장을 뛰어넘자 기다리고 있던 카딘과 헤이둑 일행이 다급하게 진우를 향해 다가왔다.

“아버님은 어떻게 되었나?”

세자베의 물음에 진우가 어깨에 메고 있던 멤브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바바님을 붙잡아서 렌스라는 자의 저택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바바님의 사촌 동생이라고 하던데 아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카딘이 냉기가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왕위 계승 서열 4위인 아저씨야. 술사들이 중심인 우리 가문에서는 드물게 중급 사냥꾼이 된 사람이야. 아마 아버지를 붙잡아서 왕위 계승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낼 속셈일 거야. 그래야 명분이 서니까.”

상대가 사냥꾼이라는 말에 진우는 조금 놀랐다. 카딘의 가문이라는 것은 글로다이트의 왕가를 의미했다. 그리고 글로다이트 왕가는 시조에 해당하는 바질라크 이래로 대대로 실력 있는 술사들을 길러낸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 자란 자가 술사가 아닌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다소 뜻밖으로 생각되었다. 진우의 표정을 본 세자베가 씁쓸하게 웃으며 설명을 했다.

“왕실에서는 실력 있는 술사가 될 자질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냉대가 심하네. 거의 가문의 일원으로 대우받지도 못하지. 렌스 아저씨도 어렸을 때에는 술사가 될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어. 그래서 많이 소외를 당했지. 그래서 소일거리 삼아 우리 집안에서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네. 그러다가 나이 스물에 느닷없이 사냥꾼이 될 수 있는 마나 각성을 경험했다고 하더군. 그 뒤로는 아예 그 길로 나갔지. 십 년 전쯤에 중급 사냥꾼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네.”

그러자 헤이둑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 설명을 했다.

“왕실의 일원 중에서는 사냥꾼들과의 친분이 비교적 두터운 양반이네. 그래서 사위도 사냥꾼 출신 중에서 택했지. 지금의 수도 치안대장인 모헨드로일이 그렇게 해서 그 집의 딸과 결혼을 할 수 있었다더군. 이번 일을 꾸민 걸 보니 글로다이트 왕가를 술사에서 사냥꾼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가진 모양이야.”

진우로서는 글로다이트의 왕실이 술사 출신이든 사냥꾼 출신이든 별로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 경쟁자를 힘으로 배제시키는 일은 지구의 역사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납치된 사람이 카딘의 아버지였다. 그걸 그냥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렌스라는 자의 집을 아십니까?”

세자베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그는 멤브락을 어깨에 멘 채 앞으로 나섰다. 그때 헤이둑이 진우를 붙잡았다.

“저택 안에 있는 외부인들은 모두 제압했는가?”

“네. 모두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해 놓았습니다. 제가 마나를 풀어주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 일단 카딘과 세자베님 가족은 저택에 머물도록 하는 게 낫겠네. 렌스의 집은 나도 아니 자네와 우리 일행만 함께 가도록 하세. 본격적으로 싸움을 벌일 생각이라면 그게 나을 걸세.”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카딘이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반대했다.

“저도 갈 거예요. 아버지를 그대로 둘 수는 없어요.”

진우는 입을 앙다물고 앞으로 나서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입을 열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너와 세자베님 가족이 여기 남아서 우리를 기다리는 게 도와주는 거다. 바바님이 그곳에 있는 게 확실하다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반드시 무사히 구해온다고 약속하지.”

카딘은 잠시 반항을 하듯 그를 쳐다보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수긍하는 빛을 보이자 진우는 미즈락과 카리엘을 향해 부탁을 했다.

“두 분도 여기 남아서 저택을 지켜주세요. 렌스의 집에는 저와 헤이둑님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그 말에 미즈락과 카리엘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진우가 가는 마당에 다른 사람들이 더 있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미즈락과 카리엘이 카딘과 세자베 가족을 호위하며 저택 안으로 사라지자 진우가 헤이둑을 향해 말했다.

“렌스의 집이 여기서 얼마나 걸립니까?”

“최대한 빠르게 달리면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걸세. 내가 앞장 설 테니 자네가 따라오게.”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멤브락을 들쳐 멘 채로 렌스의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글로다이트 왕가의 권력을 두고 벌이는 싸움의 양상은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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