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74화 (174/235)

174화

진우는 만물의 벽 뒤편에 있는 알마크 산의 깊지 않은 골짜기에서 투르가를 기다렸다. 제법 여유를 부리며 투르가를 유인했지만 사실 지금 그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골짜기의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딛고 서 있는 발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짧은 시간 동안 만물의 벽 전체를 붕괴시키느라 마나 기관에 있던 마나까지 일시에 끌어내어 사용해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었지만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마나를 운용했던 터라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근육은 물론 신체의 장기조차 입이 있었다면 비명을 질러댈 정도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투르가는 진우가 만물의 벽 봉쇄를 끝낸 뒤에는 마나가 거의 바닥에 이를 것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마나량만 따지면 진우에게는 오히려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보다는 지켜보던 투르가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마나를 일시에 발현하느라 온 몸이 크게 상한 것이 더 문제였다.

진우는 골짜기에서 투르가를 기다리는 동안 몸 전체에 치료형 마나를 돌려 조금이라도 몸 상태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투르가가 가벼운 동작으로 그의 앞에 내려섰다.

“멀리 가지는 않았군. 여기서 할 건가?”

진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는 투르가에게 물었다.

“싸우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뭐지?”

“네가 쓰러지면 다음에 또 다른 상급 전사가 나를 찾아오는 건가?”

그의 말에 투르가는 조소를 지었다.

“건방지구나. 너에게 다음이라는 건 없다. 너는 오늘 여기서 내 노예가 될 거다.”

그의 말에 진우는 잠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프레일을 상대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너희들이 나를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게 그냥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요즘 문득 다른 생각이 들더군.”

진우는 투르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동안 그를 만나면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를 노리는 거지?”

그의 말에 투르가가 흠칫 하더니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게 무슨 소리지?”

진우는 그의 반문에 피식 하고 웃더니 몸 전체에 마나를 돌렸다. 주변에 있던 마나가 사납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가 준비를 갖추는 것을 본 투르가 역시 마나를 일으키며 동조를 시도했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허공에서 군데군데 마나가 뭉치는 것이 보였다.

진우는 허공에 수십 개의 마나창을 띄우더니 그를 향해 달려들며 소리쳤다.

“대답은 일단 너를 쓰러트린 다음에 듣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마나창이 투르가를 향해 빛살과 같은 속도로 쏘아졌다. 투르가는 굳이 진우의 공격과 정면으로 부딪히려 하지 않고 몸을 슬쩍 뒤로 빼면서 자신의 주변에 질긴 마나벽을 만들었다.

텅텅텅

자신의 마나벽에 진우의 마나창들이 충돌하자 투르가는 세밀하게 마나벽을 조정하여 그것들이 비스듬히 비껴 맞도록 했다. 그런 마나벽에 부딪힌 마나창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가면서 주변의 계곡을 덮고 있던 바위들을 산산이 부쉈다.

튀어 오른 바위조각들이 어지러이 날리고 있는 한 가운데를 뚫고 다시금 진우의 손을 떠난 마나 검이 물러서고 있는 투르가를 향해 날아갔다. 무시무시한 마나의 기운이 담긴 일격이었다.

“합!”

투르가는 이번 일격이 마나벽만으로는 방어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자 자신 역시 길쭉한 도의 형태로 마나를 형상화시켜 진우의 마나검을 막아갔다.

검과 도가 부딪히는 충격만으로도 주위의 골짜기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강한 진동이 퍼져나갔다. 그 힘을 미처 다 흘리지 못한 투르가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뒤로 밀려나갔다.

“후~. 과연 프레일이 당할 만 하군.”

욱신거리는 손목을 가볍게 푼 투르가가 이번에는 자신의 머리 위로 농구공만한 마나 구슬들을 수십 개 만들어내었다.

“받아라!”

그의 고함과 함께 허공에 떠 있던 구슬들이 진우를 향해 산사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우는 자신도 마나벽을 만들어 그것들을 방어하려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몸 겉으로만 질긴 방어막을 만든 채 쏟아지는 마나공들을 일일이 피하며 그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갔다.

텅, 텅

몇 개의 마나공들이 그의 몸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진우의 다리 부근을 미끄러지듯 비껴 지나가던 마나 공들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폭발하면서 계곡 전체를 진동시키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꽝~~~!

이곳이 약탈의 계곡처럼 수직으로 솟은 절벽들에 둘러싸인 곳이었다면 아마 일격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다. 정작 마나공이 터진 곳은 진우의 다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지만, 폭발이 일어난 바로 아래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일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으윽.”

진우의 바지가 뜯겨져 나가면서 붉은 색의 피가 바닥에 뿌려졌다. 폭발이 감지된 짧은 순간에 다급하게 마나벽을 만들었지만, 미처 충분히 마나를 불어넣지 못한 마나벽의 일부가 찢겨나가면서 다리 부근에 상처를 입고 만 것이었다.

진우는 오랜만에 겪는 직접적인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비명을 애써 억누르면서 황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대도 형상으로 실체화 된 투르가의 마나가 물러나는 그의 옆구리를 훑으면서 지나갔다. 또 다시 그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핏방울들이 알마크의 계곡 위를 적셨다.

“타앗.”

진우는 급히 몸을 회전시키면서 두 손에 마나를 덧씌워 재차 휘둘러오는 투르가의 대도를 막았다.

챙~

두 사람의 칼과 손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 반동으로 인해 서로의 거리가 잠시 멀어졌다. 진우는 간신히 다급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나벽을 만들어 그대로 방어하려 했다가는 큰일날 뻔 했군.’

자신도 자주 사용하는 마나 폭탄이었지만, 투르가의 그것은 짧은 시간 동안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마나를 응축시키고 있었다. 한 방을 크게 노린 공격이었던 것이다. 이어진 공격이 마치 정해진 수를 밟아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것으로 미루어, 처음부터 노리고 있던 한 수였던 것으로 짐작됐다.

진우는 일단 허공에 마나창을 띄워 원거리 공격으로 상대의 공세를 줄이려고 했다. 그가 동조를 이용해 주변의 마나를 조정하려던 찰나, 갑자기 투르가가 진우를 향해 달려들더니 손끝에 날카로운 마나를 형상화시켜 곧게 찔러 들어왔다.

‘쳇.’

진우는 어쩔 수 없이 마나 동조를 포기하고 자신 역시 마나를 덧씌운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막아갔다. 그 순간 갑자기 투르가의 손끝에 실린 마나가 부드럽게 변하더니 진우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응?’

진우가 깜짝 놀라 그의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상대방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몸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신체 내부가 변형되면서 몸속을 흐르던 마나가 무언가에 막힌 듯 흐름이 도막도막 끊어졌다. 진우는 황급히 투르가의 팔을 뿌리치고는 거리를 벌리려했다. 하지만 상대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물러나는 진우에게 계속 다가들며 양 손에 실체화시킨 커다란 마나칼을 휘둘렀다.

챙, 챙, 챙...

진우 역시 왼손에는 덧씌운 마나를 결정화시키고, 오른 손에는 마나검을 실체화시켜 그의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아직 손상이 채 회복되지 않고 있던 몸의 내부가 투르가에 의해 이상하게 뒤틀린 뒤로는 마나의 흐름이 자꾸 끊기거나 흩어졌다. 상대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흐름을 잇기 위해 억지로 끌어올린 마나가 몸의 내부에 오히려 상처를 주면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점점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힘들어졌다.

‘이 자식이.’

진우는 투르가가 자신의 몸에 한 짓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놈은 매덤 행성에서 술사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응용하여 자신의 몸 내부를 변형시킨 것이었다. 그것은 본래 마나를 이용해 외모를 바꾸는 것이었는데 투르가는 그것을 변형시켜 상대의 신체 내부를 뒤틀어버리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 기술은 다행히 진우 역시 카딘으로부터 배운 것이었고, 이미 헤이둑을 자신의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기술이었다. 진우는 억지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뒤틀린 마나의 흐름을 따라가며 변형된 몸의 내부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푸욱

하지만 그러자니 몸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자신의 아랫배를 향해 파고 들어오는 투르가의 칼을 피해 급히 물러섰지만, 아쉽게도 따라 들어오는 상대의 칼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깊이를 허용하고 말았다. 몸을 빨리 뺀 덕분에 배 전체가 갈라지는 것을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진우는 뒤틀렸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급하게 수십 개의 마나창을 띄워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투르가를 향해 내쏘았다.

“치잇.”

투르가는 달려드는 마나창을 무시하고 진우의 숨통을 끊고 싶었지만, 지금 두르고 있는 마나막으로 모든 공격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할 수 없이 몸을 멈추고 마나벽을 강화시켜 먼저 방어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따다다다당

그가 만든 마나벽에 정면으로 부딪힌 마나창들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부서져나갔다. 공격은 모두 봉쇄되었지만 덕분에 진우는 간신히 몸을 바로잡고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매덤 행성의 기술을 배웠군?”

진우가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하자, 투르가는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여기에 오래 있었거든. 그럼 뭐라도 하나는 배워야지?”

그의 말을 들은 진우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맞는 말이야. 어딜 가든 뭔가를 배우는 자가 발전을 하는 법이지.”

그 말과 함께 다시 진우의 몸 주위로 수십 개의 마나창이 등장했다. 진우가 손짓을 하자 그 중하나가 사나운 기세로 투르가를 향해 날아갔다.

날아간 마나창은 여전히 두껍게 둘러쳐진 투르가의 마나벽에 부딪혀 사라졌다. 그러나 진우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손짓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마나창 가운데 하나가 다시 날아가 상대의 마나벽에 충돌하고는 사라졌다.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응?’

마나창들은 처음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와는 달리 일시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씩 날아가 투르가의 마나벽을 두드리고 사라졌다.

‘뭐하는 거지?’

투르가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진우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십 개의 마나창도 동시에 견뎌냈던 그의 마나벽이었다. 마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 탐색을 하는 것처럼 한 개씩 시간을 두고 부딪혀오는 마나창을 이기지 못할 리가 없었다.

투르가는 진우의 공격이 계속해서 한 개씩 날아와 자신의 마나벽에 부딪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의아했다.

“벌써 마나가 부족한 건가? 아니면 나를 자극하려고?”

그가 사나운 목소리로 진우를 향해 묻자 그는 그저 싱긋 웃으며 여전히 장난을 하듯 허공에 떠 있는 마나창을 한 개씩 꾸준히 쏘아보내고 있었다.

“이 자식.”

투르가는 이를 악물고 양 손에 마나를 모아 대도의 형상으로 실체화시킨 다음 진우의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노리고 베어갔다. 그와 함께 진우의 머리 뒤에서 수십 개의 마나창이 떠오르더니 그의 배후를 노리며 날카롭게 떨어져내렸다.

“차앗~!”

진우는 자신의 등 뒤로 두터운 마나벽을 만든 다음, 투르가와는 달리 양손에 마나를 덧씌운 채 직접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따당

철판을 두드리는 것과 유사한 소리가 연속해서 울리며 진우의 마나벽에 부딪힌 마나창들이 소멸했다. 그와 동시에 일 초에 수십 번이 바뀌는 현란한 변화를 일으키며 두 사람의 손이 어지럽게 부딪혔다.

두 사람 모두 상대의 눈을 주시하며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 번씩 서로의 손이 마주칠 때마다 진우와 투르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따앙~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충돌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 순간 여전히 허공에 떠 있던 진우의 마나창 가운데 하나가 다시 쏜살같이 투르가를 향해 쏘아졌다.

“이 자식이.”

투르가는 신경질적으로 마납벽을 만들어 진우의 마나창을 막았다.

“뭐하는 거냐?”

그는 마치 자신을 얕보는 것처럼 끊임없이 마나창을 쏘아대는 진우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진우는 그의 고함에도 아랑곳없이 그저 이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일거리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마나창을 쏘아대기만 했다.

“핫!”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투르가가 전보다 훨씬 길쭉해진 대도를 형상화시켜 진우를 향해 내던지려고 하는 찰라, 이제까지 마나벽에 부딪혀 허무하게 사라지기만 하던 진우의 마나창이 갑자기 투르가의 마나벽을 불쑥 파고 들었다.

“헉.”

깜작 놀란 투르가가 급히 몸을 둘렸지만 그의 마나벽을 뚫고 나온 마나창이 어깨를 길게 찢으며 지나갔다.

“크윽.”

대단한 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진우의 마나창이 자신의 방어를 무력화시키자 투르가는 크게 놀랐다.

“어떻게 내 마나벽을 뚫은 거지?”

그러자 진우가 투르가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나도 배운 게 있거든.”

그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다시 허공에 떠 있던 진우의 마나창 하나가 투르가를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혔다.

============================ 작품 후기 ============================

요즘 개인 사정 때문에 12시 1분을 자키기 쉽지 않네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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